2011. 9. 6. 08:37

 사람들은 흔히 ‘연애에서 외모는 예선전일 뿐’이라는 말을 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외모가 가장 중요한 건 아니라는 뜻이고, 둘째는 외모가 안 끌리면 연애의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보통은 두 번째 뜻을 암시하는 용도로 많이 쓰여서 냉소적인 말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것은 단지 외모지상주의자의 잔인한 차별발언일까요?
 
 사실 저는 연애에서 외모가 가지는 중요도를 이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끌림’을 결정하는 사람의 매력 중에 특히 외모의 영향력은 제법 큽니다. 그건 왜 일까요?  아마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 가장 먼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외모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면에 끌리면 그때부터는 그 사람의 다른 점들도 더욱 좋아 보이기 마련이라 외모에서 이미 끌렸다면 그때부터는 호감을 갖는 일이 훨씬 쉬워지기 때문이죠. 그러니 실제로, 외모에서 끌리지 않았다면 그 다음에 더 매력적인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는 한, 외모에서 끌린 경우만큼 호감을 갖게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외모는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정보이므로 (일정 기간까지는)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도 하구요. 그리고 ‘연애’라는 관계는 다른 관계와 ‘다른 끌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연애를 다른 관계와 차별화하는 것은 ‘로맨스’나 ‘섹스어필’ 같은 ‘본능적 끌림’인 경우가 많은데 ‘외모’는 이 본능적 끌림을 좌우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분명 ‘외모’는 예선전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단계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호감이 시작되어서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때 느끼는 호감에서 다른 관계와 차별화되는 ‘끌림’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 ‘연애’의 예선통과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외모는 일반적으로 이 조건들을 충족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진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외모’가 연애 예선전의 유일한 기준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연애’에 대한 기대가 다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로맨스’나 ‘섹스어필’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외모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있거든요.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저 두 가지 요소가, 다른 관계와 차별화되는 연애라는 관계의 특징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얘기로 통용할 수는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예선에 오르고 나면 외모는 더 이상 우선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물론 가산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결승을 좌우하는 요소는 아니기 마련입니다. 이건 마치 학점만 좋다고 취업이 잘 되는 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0만 넘으면 문제없고 혹 넘지 못해도 다른 강점이 있으면 취업에 성공할 수 있지만 학점이 많이 나쁘면 취업이 힘든 거죠. 학점도 좋고 훌륭한 디자인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회사가 원하는 것이 경영 전문가라면 학점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채용은 불가능한 것이구요. 외모도 마찬가지입니다. 길을 걸어가면 사람들이 돌아서 쳐다볼 정도의 멋진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당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거나 평생을 함께할만한 다른 요소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더 이상 미래를 기대하기는 힘든 법입니다.


 결국, 외모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외모도 중요하다는 것이 외모에 대한 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은 외모는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 될 수도 있겠네요.





 ‘외모가 안 끌리면 연애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꽤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끌리는 요소에 외모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끌리지 않아서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외모가 안 끌려서 싫다’라는 말이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는 뜻도 아니구요. 외모로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면 그것은 꽤나 잔인하고 잘못된 일일 수 있지만 ‘호불호’는 가치판단이 아니니까요. 사랑과 마찬가지로 호감도 의무가 아닙니다.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사랑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냥 "just not that into me"일 수 있는 겁니다. 막상 그런 일을 당하면 내가 별로 매력이 없나, 의기소침해지기야 하겠지만, 결코 그렇기 때문에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구요. 그 기분에서 벗어나서 생각해보면 끌렸다면 좋았겠지만, 그냥 내 외모가 맘에 안 끌릴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도 외모가 거절의 이유가 되는 경우에 우리는 특히 상처를 받는 것 같습니다. ‘네가 고기를 안 좋아해서 싫대’라는 이유나 ‘네가 성격이 급해서 싫대’라는 거절의 이유보다는 ‘네 외모가 안 끌려서 싫대’라는 이유가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즘은 좀 덜하지만 과거에는 심지어 속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던 것 같거든요?)

 제가 생각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첫째로, 앞서 말했듯 외모는 일반적으로 굉장히 영향력이 큰 끌림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모에 영향을 받기 쉽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자신의 외모가 매력적으로 어필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면 자신이 일반적으로 인기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가치’에는 ‘보상’이 따른다는 것이 우리에게 내재된 생각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치’가 있다면 응당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죠. 그러므로 ‘보상’이 없다면 자연히 그것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연애에서 ‘보상’이란 ‘관심, 호감, 사랑’같은 것이겠지요. 즉, 외모가 마음에 안 들어서 호감이 안 간다. 라는 명제는 외모가 어필하지 못하면 사랑(보상)받지 못하므로 가치가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모’를 가지고 가치평가를 했으니 옳지 않다는 비난이 따라올 수 있는 거죠.


 결국 외모가 우리로 하여금 가치 없다는 느낌을 들게 할 수 있다면, 외모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어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물론 저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어떤가와 어떻게 느끼는 가는 다를 수 있고 둘 다 중요한 것이지요. 실제로 사랑받을 수 있어야 사람은 자기 가치를 더욱 확신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가 다양한 매력에 눈을 떠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한 가지 매력만을 유일한 기준인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면 우리는 훨씬 적은 사람밖에는 사랑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결국 다양한 매력에 눈을 뜨고 그것을 인정하는 일도 곧 사람을 사랑하는 일의 한 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말을 하다보니 여러분을 만나서 여러분의 외모적인 매력이 뭔지를 서로서로 말해주고 싶네요. 이미 제가 얼굴을 아는 분들은 궁금하면 물어보세요. 말씀해 드릴께요. 나에게도 말해줄 게 있을까?라며 주저하지 마세요. 누구든 자기 외모가 가진 매력이 있거든요. 혹 제가 말 못한다해도 제가 모를 뿐이니 상처받지 마세요ㅎㅎ 그런 때를 대비해서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도 필요하겠네요!


 아. 오늘 좀 오지랖입니다.

 아마 시간이 너무 늦어서일 거에요. 모른 척 해주세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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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