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23. 05:30


스릉님의 포스팅입니다. http://libertyanddiversity.tistory.com/entry/예비-대학생에게-당부하고-싶은-것
요기에 댓글을 열심히 달아주셨던 쥬빌리님께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쥬빌리님께 가장 드리고픈 말이지만, 다른 분들도 들어주시고 보충하거나 반박해주시면 더욱 좋겠기에 따로 포스팅을 해 봅니다.


  댓글로 논의하기에는 불편한 부분도 있고, 또 댓글로 하면 너무 길어져 읽기 불편하실 것 같아서 이렇게 포스팅 올립니다. ㅎㅎ 그런데 사실 쥬빌리님이 말씀하고 싶어하시는 포인트를 지금 잘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아서 제가 옳게 답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ㅠ_ㅠ 괜히 제 입장만 또 반복하고 있는건 아닐지 걱정인데요; 일단 저는 우리가 인문학의 가치에 대해 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답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인문학을 신선놀음이라 생각하는 것은 사실도 아니며 위험하다는 것이 제가 해명하고픈 바이구요.

우선 인문학을 신선놀음이라고 표현하신 이유에 대해서는 잘 읽었습니다. 제가 파악하기로는 그게 생계유지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경제적 자살)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아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유복한 집안의 자제이거나 생계를 내팽개쳐야만 할 수 있다는 말에서는 제가 권한 내용에 대해 오해하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대로 깊이 전공을 하겠다면야 어렵겠지만, 모두가 전공자 수준으로 인문학을 공부할 필요는 사실 없거든요. 아마 "인문학을 한다"라는 말의 의미가 서로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제 말은 '생계를 팽개치고 인문학을 깊이 전공하라'는 뜻이 아니라 '무슨 일은 하든지 인문학적 마인드를 키우라'는 뜻이었어요. 사실 대학생 시절이 그러기에 가장 좋은 때고요.

또한 애초에 제가 경계하고 싶었던 부분은 '신선놀음'이라는 표현이 주는 부정적 뉘앙스였습니다. 신선놀음은 아무 근심걱정 없이 즐겁고 평안하게 지낸다는 뜻으로 필수적인 게 아니라 '유희'에 가까운 행동을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표현 아니겠습니까? 경제적으로 걱정 없는 사람이어야 하기 쉬운 학문이라고 해서, 그것 자체가 즐겁고 평안하게 지내는 일은 결코 아니라는 거지요. 단지 유희도 아니고요. 인간의 본질과 더 나은 인간과 현실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 필요한 사유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그러니까 현실에 없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뜻이지요. 인문학이 돈벌이로 직결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세상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하기 쉬운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걸 해야 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생각도 역시 위험하고요. 누구나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 모두가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이죠. 민주주의 사회에서 내 눈 앞의 이익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더 바람직한 것을 선택하려면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서는 힘듭니다.

물론 취업에 직결되지 않는 학문이라는 점은 사실이고, 많은 인문학도의 고민입니다. 열정이 있어도 마음놓고 그 공부를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은 안타깝지요.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 관련 진로를 기피한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으로서는 그렇게 선택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하지만 앞서 말한 이유 때문에 우리가 인문학 자체를 기피하게 되면 안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걸 선택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걸 해야한다는 생각도 안하는 건 옳지 않다는 뜻입니다. 저는 "행동하지 못할바엔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의미없다"고는 생각 안해요. 생각이라도 하고 있어야 아주 조금의 행동으로라도 이어지지 않겠어요?(물론 생각에 그치기 보다는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훨씬 더 좋지만요)

그리고 인문학이 이미 결정된 무언가를 그저 전달하려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본적인 공부들은 물론 정해져 있는 것들을 배우지만 제 생각에 그건 사유의 틀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감을 잡기 위해 배우는 기초공사지 인문학의 본질도 궁극적 목적도 아니에요. 만약 이미 결정된 것들을 전달하려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기존의 인문학자들이 부유했다는 점이 부정적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요. 현실적인 고통 없이 나온 생각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일테니까요.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도 한 가지 사유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는거구요.

그리고 제가 하는 말이 경험에서 나온 말인걸까 궁금하신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오해 없기를, 저도 직업 전선에 나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제가 저의 생계를 온전히 책임져 보았다는 뜻이지요. 그런 사람으로서 짧게나마 경험한 사회는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적정한 수입에 안정된 직장이 물론 중요했습니다. 직업 전선에 나가기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가 본 후에는 더욱 그게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에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픈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자기 앞가림을 하라는 말씀은 백번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죄다 철없는 짓이라는 말에는 전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은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가치를 존중하되,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 드린 것 기억하시죠? 생계 유지도 하고, 가치에 대한 고민도 해야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를 다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렇기에 더욱 만약 인문학은 그저 신선놀음,이라고 생각하면 그쪽에는 손이 가지 않을 것 아닙니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거나 그걸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그게 사실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을 안하시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또 답 주신 내용 중에서 고전을 읽는 것보다 현실적 삶에 집중하라고 권한다고 하셨지요? 저도 경험에서 얻는 깨달음이 얼마나 생생하고 힘을 가지는지 느꼈기 때문에 현실적 삶이 주는 교훈을 무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지만 고전을 읽는 것이 주는 교훈은 또 다른 차원의 것이지요. 인용하신 '지하로부터의 수기'같은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으려면 참 험난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계몽과 이성의 우상화, 이상화에 대한 고발을 고민하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질 수 있는 잔혹성에 대해 자각하는 것이 왜 나쁘지요? 그게 인간이라는 존재가 선하고 아름답다는 환상을 깨어서 충분히 가슴 아프고 괴로울 수는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은 엄연히 사실이고, 그 부분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게 인간 본질의 전부도 결코 아니지 않겠습니까? 거기서부터 또 새롭게 해야하는 고민과 과제가 주어지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우리를 더 좋은 인간이 되도록 단련시켜 줄 것입니다. 쥬빌리님이 찾고자 하는 절대적 진리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혹은 그것을 찾고 싶어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더 좋은 인간이 되고, 인간이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한 고민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인문학이 행동을 요청한다고 하신 말씀이 참 훌륭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행동을 하려고 계획하시는 건 더 훌륭하시고요. 사복을 전공해야겠다는 생각도 저는 정말 훌륭한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무엇을 향해 행동할지 모르고 행동하는 건 위험하다 생각합니다. 물론 쥬빌리님이 무엇을 향해 행동할지 모른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이 앞으로도 영원하진 않을 가능성은 꽤 높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고민의 과정이 수반되겠지요. 무엇을 행동할지 알기 위해서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걸 도와주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동의 의지를 가지신 쥬빌리님이 어떤 것을 향해 행동을 하면 좋을지도 반드시 고민하셨으면 좋겠다는 뜻이고요.

지난번 댓글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을 잘 전달 못한 것 같다보니 말이 길어졌네요. 무엇보다도 조금 더 나이많은 사람의 훈계처럼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제가 그럴 입장도 아니고요. 제 생각도 완성되지 않은 생각이고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옳은 말도 아닐 겁니다. 다만 쥬빌리님과 좀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서 말씀드렸고, 혹은 다르다고 오해한 부분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래도 만약 다른 생각이었던 게 사실이라면 그게 우리 서로에게 자기를 돌아볼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쥬빌리님의 댓글에 해명도 하고 의문도 던져보았습니다. 제 답에 대해 또 답을 해 주신다면 그것도 반가울 것이고, 읽고서 한번 생각만 더 해 주신대도 충분하겠습니다.


앞으로 쥬빌리님의 대학생활이 알차게 채워지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6. 01:31


안녕하세요? 훈석입니다.

저는 보는 것을 굉장히 즐기는 편이라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와 드라마, 책과 친하고,

아시다시피, 그것을 나누고 싶어 금요일에 관련 포스팅을 하기도 하죠.

웹툰 또한 무척 좋아합니다.

살면서 이루고픈 일 목록 중에,

#268. 책을 내자!
가 있습니다.

그 책엔 제가 쓴 글과 함께 직접 그린 그림도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모든 일은 한 멘션에서 시작됩니다.




네이버 웹툰 <나이스진타임>, <삐뚤빼뚤해도 괜찮아>의 김진 작가님의 멘션.




그래서 전 갔습니다. ㅎㅎ
네, 대답은 듣지 못했어요...

(출처: www.nicejintime.com)



신촌에 결혼식이 있어서,
마구마구 축하해주고,
강남으로 향했습니다.















입구에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님들의 사진이 있었어요.



"마감 빵꾸 내지 않겠습니다."
<노병가>, <패션왕>의
귀염둥이 기안84님. ㅎㅎ



아이고, 무지막지하게 흔들렸군요.

<콘스탄쯔이야기> 를 연재하시는 김민정 작가님 입니다.


김진님 혼자의 사인회가 아니었다는걸
도착해서 알았습니다.

<의령수>, <아이고>의 김우준 작가님과
<미호이야기>의 혜진양님 (허혜진) 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한시간쯤 남아 전시장을 먼저 둘러봤습니다.





<목욕의 신> 하일권
God of Bath
40.5X53cm, Mixed media on canvas, 2001.


믹스드 미디어라고 하지 말아요!
때밀이잖아요!
ㅎㅎㅎㅎㅎㅎ

아무튼 이렇게 기발할데가!



대표작
<3단합체 김창남>
<두근두근두근거려>
<안나라수마나라>
<삼봉이발소>
<목욕의 신>



<패션왕 우기명> 기안84
Fashion King. Woo Kee myung
39.4X54.5cm, Watercolor on paper, 2011

대표작
<노병가>
<패션왕>




<작가의선물; 이상한 액세서리> 김민정
Strange accessories sent from the author
22.7X15.8cm, Oil on canvas, 2011


잘 안보일까봐 크게 다시 찍었습니다.



<아슬아슬한 공동체> A strange community
19X33.4cm, Oil on canvas, 2011

<꽃스탄츠> Constanze with flower
45.5X53cm, Oil on canvas, 2011


모두 김민정 작가님 그림이구요.
배열이 독특했어요.

<꽃스탄츠>라는 이름도 굉장히 재치있었구요.

대표작은 현재 네이버 웹툰 연재중인
<콘스탄츠 이야기> 가 있습니다.


<열쇠줍는 아이> 최윤진
FINDER - The child who seeks for the key-
29.7X42cm, Watercolor on paper, 2011

대표작
<열쇠줍는 아이>




<아이고> 김우준
IGO(자유 그리고 청춘)
150X150cm, Acrylic on canvas, 2011

대표작
<의령수>
<아이고>




<연꽃> 혜진양
lotus blossom
45X37.5cm, Watercolor on paper, 2011

대표작
<미호이야기>


<좋은 하루 되세요> 노란구미
Have a nice day
73X91cm, Acrylic on canvas, 2011

대표작
<내가 결혼할 때까지>
<세개의 시간>
<돈까스 취업>



<그녀의 옷장> 김진
Her Closet
72.5X90.5cm, Acrylic on canvas, fabric, 2011


제가 이 전시회에 간 이유죠. ㅎㅎ

대표작
<나이스 진타임>
<삐뚤빼뚤해도 괜찮아>





<Coffee & Tea> 권윤주 SNOWCAT
52X32cm, Acrylic on Paper, 2011


<Power On>
56X57.5cm, Acrylic on Paper, 2011



<뽀통령 뽀로로> 이희재
33X27cm, Chinese ink, Watercolor on Korean paper, 2011

대표작
<명인>
<골목대장 악동이>
<간판스타>
<나 어릴적에>
<세상 수첩>
<아이코 악동이>




<바람만들기> 사이로
54X37cm, Chinese ink, Watercolor, Acrylic on Korean paper, 2011




<아침풍경> 사이로
54X37cm, Chinese ink, Watercolor, Acrylic on Korean paper, 2011



참 보기 좋은 그림입니다.

대표작
<만화응접실>
<서울 별곡>
<월요 경제만평>
<사이로 카툰>






 



사람이 많이 북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갤러리 내부 모습이구요.





저 사람 좀 지워주세요.



 


"엄마가 밥먹으래요."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세 작가분의 싸인을 모두 받았어요.

ㅎㅎ





아 그리고,
"선생님. 조금만 뒤로 가주세요."
라고 한 주최 측 스태프. 잊지않겠어요.......



끗!

뉴욕 프라이드~

Posted by 배태랑
2011. 11. 1. 08:30

안녕하세요. 글을 '배설'하기 좋아하는 스릉입니다. 어제 무지무지 일찍 잔 덕에 새벽부터 잠이 깼는데, 토끼고양이님의 휴재 공고(빨리 나으세요 ㅠㅠ)를 보고 히히 나도 한번 연애이야기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동이 트기 전부터 키보드를 두들기도 있습니다. (제가 스틸 전문입니다.) 연애라고 하기엔 너무 어리고 풋풋했던 시절의 짝사랑입니다만, 라디오 사연에 당첨된 적도 있는 재미난 이야기라 공유해보고 싶어요 :) 올해 봄쯤에 제 미니홈피에 올렸던 글이라 시점도 약간 안 맞고, 반말로 쓴 것은 양해 부탁드려요!










3월도 어느덧 말경으로 치닫고 있고, 선생님도 학생들도 모두 지쳐가고 있다. 학기 초의 쌩쌩한 기운들은 야간자율학습과 놀토 및 일요일 자습으로 날아가버린 듯 하다. 교사도, 학생도 행복하지 않게 하는 야간자율학습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것 역시 고민해볼 문제다.

 

이맘때쯤 되니 몇 교시에 교실에 들어가더라도 조는 아이가 서너명씩은 꼭 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즐겁게 수업하는 그레이트티처이길 원하는데, 그렇다고 안쓰럽게 조는 아이들을 혼내고 싶지는 않고, 이럴 때마다 나름대로 갖고 있는 이야기보따리를 풀고는 한다.

 

지난 주 수요일인가. 애들이 하도 피곤해하고, 재밌는 얘기를 해달라고 하길래 첫사랑 보따리를 풀었다.

 

중학교 시절, 틱 장애를 심하게 앓았던 나는 대인기피증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었다. 나를 혼내는 선생님들, 나를 놀리는 친구들이 싫어서, 거의 모든 시간마다 양호실에 가서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하고는 했다. 성적이 좋을 수가 없었다. 중학교 2학년 2학기 기말고사에서 영어 67점을 받았다. 당신네 아들이 총명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부모님께는 큰 충격이셨을 것이다. 학원을 가는 게 어떻냐고 말씀하셨다. 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두렵다고 했다. 어머니는 당신 친구분의 남편이 부원장으로 있는 학원에 가라고 했다. 잘 말씀해주시겠다고. 니가 두려워하는 그런 일들은 없게 해주겠다고.

 

그렇게 나는 등불학원에 첫 발을 디뎠다. 반편성 고사를 봤고, 운 좋게도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반에 들어갔다. 시내의 모든 중학교에서 30위권 안에 있는 애들만 모아놓은 반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나는 그반에서 최고 열등생이었던 셈이다. 설렘은 커녕 긴장과 주눅으로 가득한 무거운 마음으로 교실의 문을 열었다.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나는 H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예쁜 아이였다. 과장을 조금 섞자면, 자체적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그런데도 성격이 아주 쾌활하고 좋았다. 나는 지금도 장난끼 가득하고, 잘 웃고, 농담도 잘하는 말괄량이가 좋다. 당시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김현주를 닮았지만, 김현주보다 더 예뻤던 그녀는, 등불학원에서 만난 H는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용기도 없고, 당시 틱 때문에 엄청나게 위축되어 있었고, 내 기억으로도 아주 찌질했던 나와는 달리, 강릉이라는 좁은 도시에서 H는 하이틴 스타였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우리 때 가정용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유행했던 얼짱 카페의 4대 천왕, 이런 것처럼 H는 강릉에서 그런 존재였다. 이름 붙이고 말 만들기 좋아하는 아이들의 입에서, H하면 동명중학교에서 가장 예쁘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웃긴 말이지만, 난 그때 H와 신분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반년동안 말 한 번 걸지 못했다. 그냥 교실 구석 맨 뒤에 앉아, 저 앞에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얼굴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내가 여리여리한 것도 있었지만, 그땐 다들 그랬던 것 같다. 순수하고 맑았던 시절, 누굴 좋아해서 고백한다, 사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런 개념이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중3으로 진급했다. 강릉은 예나 지금이나 비평준화 지역이고, 우리 때는 고입선발고사 시험도 있었다. 좋은 점수를 받아야 고등학교를 골라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우등생들로 가득한 우리 반에서는 모두가 강릉고와 강릉여고에 진학하길 희망했고, 모두가 충분히 진학 가능한 성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중3이 되면서부터 학원에서 저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3시반에 하교하면, 5시부터 학원수업이 시작되고, 10시에 끝나는 시스템이었다. 다소 버겁긴 했지만, H를 보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던 것 같다. 오히려 학원에 더 오래 있고 싶었다. 그녀에게 말 한마디 못 붙이는 찐따였지만, 그래도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것 같다.

 

학원에서 야간수업을 하게 되니 저녁밥을 먹는 것도 골칫거리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 옆에 있는 한솥도시락에 가서 도시락을 사다 먹었다. 밥을 먹고 나면 야간수업을 받기 전까지 시간이 20분 정도 남곤 했는데, 이 시간 동안 여자아이들은 공기놀이를 하고 놀았다. 간혹 성격 좋고 쾌활한 남자아이들이 종종 끼고는 했는데, 나는 그런 성격도 아니었고, 공기놀이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다만 H와 함께 놀고 싶다는 생각만은 가득했다. 결국 집 앞 문구사에서 공기 몇 알을 샀고, 그날부터 피나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나는 엄청나게 다양한 공기기술들을 가지고 있다. 아마 남자 치고는, 대한민국 상위 0.1%안에 드는 실력일 거라 자부한다.

 

덕분에 나는 H와 말도 해보게 되고, 당시 유행했던 메일 주고 받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주 행복했다. 공부도 잘 되었다. 사는 맛이 났다. 성적도 쑥쑥 올라 중3때는 정규고사든, 고입모의고사든 간에, 열 번이 넘는 시험 중에 단 한 번도 전교 10등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그런 우리에게도 작별의 시간이 찾아왔다. 중3이 끝나가던 무렵, 학원에서는 반 편성을 새로 한다고 했다. 강릉고-강릉여고반, 명륜고-강일여고반, 경포고-문성고반, 등으로 반을 다시 짜겠다고 했다. 학원 담임선생님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어차피 우리반은 다 강릉고 강릉여고에 갈 애들이니 바뀔 일이 없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강릉고에 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당시 우리 아버지는 명륜고의 3학년 부장이셨고,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신입생 유치팀장이 되셨다. 각 중학교를 다니며 우수한 학생들을 데려오기 위해 애쓰시고 계시는데, 아들이 되어서 강릉고에 가겠다고 우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 전 강릉고 안 가요. 명륜고 갈거예요. 반에 있는 모든 친구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대체 왜? 우리 아버지가 명고 선생님이시거든요. 근데 제가 강릉고 갈 수는 없잖아요. 모두가 이내 끄덕이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슬펐다. 그때 H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어? 우리 아빠도 명고 선생님인데? 어????

 

나는 집에 오자마자 아빠를 붙잡고 물었다. 아빠, 우리 학원에 어떤 여자애가 있는데, 아빠가 명고 선생님이래. 이름이 H라는데.. 혹시 H씨 성을 가진 선생님 있어?

 

아빠는 껄껄 웃으셨다. 아니 H가 너랑 같은 학원에 다닌단 말야? 어? 아빠가 H를 어떻게 알아? 알다 뿐이냐. 너 기억 안 나? 어렸을 때 H네 가족이랑 속초 콘도에 놀러간 적도 있는데.. 승범이엄마, 거기 그 앨범 좀 가져와봐. 그거 알지?

 

엄마가 가져온 앨범에는 신기한 사진이 있었다. 85년 2월에 훼미리라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테이블 왼쪽에는 우리 부모님, 오른쪽에는 H부모님이 앉아 계셨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나와 H가 앉아 있었다.

 

우리 아버지와 H의 아버지는 같은 해에 학교에 부임했고, 나이도 동갑이었으며, 같은 해에 각각 아들과 딸을 낳았다. 장난 반 재미 반으로 정혼을 했던 셈이었다. 우리 나중에 사돈 맺자, 하면서 말이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반이 되었다. 어쩌다 한 번 그녀를 복도에서 만날 수는 있었지만, 예전처럼 매일 마주할 수는 없었다. 슬펐다. 우리 아버지가 명륜고에 있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그녀는 점점 더 예뻐지고 있었고,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비록 짝사랑이었지만, 이런 게 사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에서는 입학성적 상위 20명을 따로 빼내 동문 선배가 운영하는 학원에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등불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명륜고, H는 강릉여고. 나는 킴스학원, H는 등불학원. 우리는 만날 일이 없었다. 가끔 메일을 주고 받을 뿐이었다. 나는 다음소프트를 만든 이재웅 사장님께 무한한 감사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장님, 한메일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또 일 년이 지났다. 고2가 되었고, 이해찬 장관이 옷을 벗게 되면서 야자폭풍이 몰아쳤다. 전교생이 평일에는 밤 11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6시까지 자습을 했다. 학원에 갈 수 있는 시간은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오후 뿐이었다. 시내 학원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킴스학원도 망했다. 나는 킴스학원이 망하자마자, 등불학원에 찾아갔다. 그녀는 없었다. 등불학원도 이젠 황폐해져 있었다. 그래도 난 등불학원에 등록했다. 그녀가 없다고 해도, 그 건물에서, 그때의 선생님들에게 배우는 게 좋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등불학원은 강릉여고와 200미터 거리에 있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학원을 가기 위해 오후 자습을 조퇴하고 친구 세명과 함께 등불학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2001년 여름이었다. 강릉에도 편의점이 생기던 시절이었다. 강릉여고 건너편이자, 등불학원 옆에, 강릉에서 제일 큰 패밀리마트가 생겼다. 입 짧고 다이어트하기 좋아하는 여고생들은 주로 그곳에서 점심을 때웠다. 편의점답지 않게 테이블도 열 개나 있었던, 대형 패밀리마트였다. 그날도 패밀리마트 안에는 강릉여고의 학생들이 가득했다. 18세 열혈 남고딩들은 장난끼가 발동했다.

 

한 아이가 제안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지는 사람은, 저 안에 들어가서 생리대를 사오자고. 다들 미쳤다고 욕을 하면서도 어느 순간 뭘 낼지 고민하고 있었다. 내 친구들은 남자는 주먹, 이라고 생각하는 단순한 아이들이었다. 나는 호기롭게 보를 냈다. 나머지 세 친구는 가위를 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패밀리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40여명의 여고생이 있었고, 단 한 명의 남고생이 있었다. 왜 그렇게 생리대는 깊숙한 곳에 진열해놨는지, 사장님이 원망스러웠다.

 

위스퍼를 집어들었다. 나를 쳐다보고 있던 곳곳의 아이들로부터 괴성이 들렸다. 계산대까지 가는 10미터가 10리처럼 느껴졌다. 마침 계산대 직원마저 여자였다. 일년동안 받을 눈총과 야유를 다 받고, 이놈의 친구놈들을 죽여야겠다는 마음으로, 계산이 끝나마자자 후다닥 뛰어나갔다. 누군가와 부딪쳤다. 그 아이는 넘어지고, 나는 생리대를 떨어뜨렸다. 죄송합니다. 아 아파.. 어? 승범아?

 

H였다. 그녀는 내 얼굴과 위스퍼를 번갈아보았다. 그녀에게서 오던 메일이 끊겼다.

 

고3이 되었다. 그녀에 대한 기억도 흐릿해져갔다. 당장 내 앞에 서있는 입시라는 괴물과 싸우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포트리스도 끊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서강대에 입학했고, 서울로 떠났다. 수능을 잘 보지 못한 H는, 강릉대 유아교육과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도 아버지로부터 내 소식을 들었겠지. 서울로 떠나기 전에 한번 보고 싶었지만,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에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대학생이 되었다.

 

서울은 별천지였다. 하루하루 재밌고 신나는 일들로 가득했다. 나는 H를 까맣게 잊었다. 매일매일 즐겁게 사느라, 강릉을 떠올릴 일이 없었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그녀와 핸드폰 번호를 교환했지만 문자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일년이 훌쩍 지났고, 나는 선배가 되었다. 04학번들은 귀엽고 착했다. 학교 생활은 더욱 재미 있었다. 5월 대동제가 되었다. 당시 총학에서는 엄청난 이벤트를 기획했다. 학교에서 출발해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를 순회한 뒤 서강대교를 건너서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서강 자전거 대행진을 한다고 했다. 강원도 촌놈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마포경찰서의 협조를 얻어 그 혼잡한 여의도의 교통을 통제하면서까지, 우리는 자전거를 타며 서울을 누볐다.

 

해방감도 찰나, 새내기 한 명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천안에서 올라온, 그녀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아이였다. 대학교 생활이 얼마나 재밌었는지, 그 당시의 나는 그 그 후배의 이름을 보면서도 H를 떠올리지 못했다. 여튼 서울에 갓 올라온 새내기 한 명이, 여의도 한복판에서 사라진 셈이었다. 그 아이는 자전거가 익숙하지도 않았다. 급하게 핸드폰을 열었다. ㅎㅅㅎ를 검색하고 무작정 통화버튼을 눌렀다. 생각보다 금방 받았다.

 

어.. 안녕? 웬일이야?

웬일은 무슨..야! 어디야!

나? 강릉이지..

뭐? 강릉?

 

핸드폰을 다시 봤다. 그 후배가 아니라 H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후배를 찾는 문제가 더 시급했다. 겨우 연락이 닿았고, 학교로 무사히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H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문자를 보내 사과를 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시간은 날아가는듯 흘렀다. 나도 '연애'라는 걸 하게 되었다. 좋은 아이였다. H가 생각날 일은 더더욱 없었다. 군 휴학을 하고 강릉으로 내려가 26개월 동안 공익근무를 했지만, 그래서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었던 셈이지만, 그녀의 이름을 떠올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복학을 했고, 얼떨결에 졸업을 했다. 야구기자와 국어교사 사이에서 헤매다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한 채 노량진 고시원에 들어갔다. 힘들었다. 일년 간의 수험생활을 마치고, 춘천 성수고등학교에 오게 되었다. 출근하기 전날, 일년간의 수험생활을 회고하는 다이어리를 남겼다.

 

잊고 있었던 이름, H가 댓글을 달고 스티커를 붙였다.

 

자기도 졸업하고 3년이나 임용시험 공부를 했다고 했다. 그 마음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힘들었을텐데 고생 많았을 거라고 했다. 다음에 강릉 오면 꼭 연락하라고, 밥 한 번 같이 먹자고 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었다. 6월, 삼척에서 강원도 사립학교 체육대회가 열렸다. 체육대회를 마친 뒤, 선생님들은 버스를 타고 춘천으로 떠나셨고, 나는 그곳에서 만난 아버지 차를 타고 강릉으로 왔다. 그녀를 한 번쯤은 만나고 싶었다. H에게 연락했다. 일요일 낮에 만나기로 했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이 15살 때,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18살 때, 그녀를 떠올리지 않게 된 것이 20살 때, 나는 5년간 그녀를 짝사랑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녀와 마주 앉아, 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 27살이라니.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쇼핑도 했다.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 만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떨리고 설렜는데, 만나는 동안은 이상하게 무덤덤했다.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오랜 친구와 함께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고 그리워했던 그 친구가 맞나 싶었다.

 

오늘 재밌었어. 종종 연락할게. 강릉 오면 또 보자!

 

그렇게 10년 만의 만남은 끝이 났다. 나는 나대로, H는 H대로, 일상으로 돌아가 잘 살고 있다. 가끔 안부를 묻고, 시덥잖은 농담을 던지며, 그냥 딱 그 정도의 관계로 지내고 있다. 나는 그녀를 그리워하고, 좋아하면서도 만날 수 없는 그 시간들을 통해 그녀에 대한 환상과 이미지를 점점 더 키워왔던 것 같다. 한 어린 소년의 짝사랑, 첫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기억은 세월의 가공으로 추억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화된다.

 

지금 나는 괴롭고 힘이 든다. 잠도 잘 오지 않고, 식욕도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오늘도 웃으면서 떠올릴 수 있겠지.

 

 

끝.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31. 18:00




그냥 속상해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안정이 안 돼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면 눈물이 나고.

그동안 너무 고생한 아들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초등 3학년부터 대학 4학년까지

자유 시간도 맘껏 가져보지 못하고

오직 한길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제 어쩌지

엄마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하나

무슨 말을 어떻게 해줘야 하나

아들에게 무슨 말로 위로해 주지

엄마는 아들에게 사랑 한다는 말 밖에는 해줄 말이 없네

 

- 프로야구 2차 신인지명이 있던 날 대학야구선수 아들을 둔 어머니가 쓴 글.



 

2011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한창입니다. 제가 응원하는 삼성라이온즈가 현재 SK와이번스를 시리즈 스코어 3:1로 앞서고 있어서 저 역시 한껏 신이 나 있습니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빛나는 조명 아래 수만 관중의 응원을 받으며 그라운드를 누빕니다. 그들을 바라보면 일견 야구선수라는 직업이 화려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그들이 서 있는 야구장은 피가 마르는 전쟁터입니다.

 

오늘은 공주시에서 열리는 박찬호기 초등학교 야구대회가 끝나는 날입니다. 오늘로서 2011년의 모든 아마야구대회가 끝이 납니다. 한국시리즈라는 큰 축제에 가려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꼬맹이들이 뛰는 그 그라운드에도 냉혹한 경쟁과 처절한 승부가 있습니다. 제가 노량진 고시원에서 살던 시절, 저희 고시원 앞 초등학교에는 야구부가 있었습니다. 아직 몸도 마음도 덜 자란 그 아이들은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방과 후마다 어두워질 때까지 연습을 했습니다. 저렇게 야구를 하면 야구가 싫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혹독하게 훈련을 하더니, 얼마 뒤에는 서울시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는 현수막이 교문에 걸리더군요. 어린 나이부터 선수들을 그렇게 몰아붙인 덕에 고교야구 팀이 60개가 채 되지 않는 한국 대표팀이 4천개의 고교야구부를 가지고 있는 일본 대표팀과 비등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를테면 엘리트 체육 시스템 덕분이겠지요.



 







지난 8월 25일은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고교 졸업생과 대학 졸업생, 군 제대 선수와 기타 선수를 모두 합쳐 총 770여명이 드래프트 참가 신청서를 냈는데, 그 중 프로구단의 선택을 받은 선수는 단 91명뿐이었습니다. 너무 적은 것이 아닌가 싶지만 사실 이조차도 NC다이노스가 신생구단으로 참여하며 타 팀에 비해 많은 선수들을 지명해 간 것을 포함한 숫자입니다. 지난 해에도 800명에 가까운 선수들이 프로의 문을 두드렸지만, 프로팀의 유니폼을 입은 선수는 단 65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나머지 선수들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요. 지난 3년 간 준수한 성적을 거둔 고교팀의 졸업생은 대학팀에 들어가 4년 후를 노릴 수 있으니 그나마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지역예선에서 고배를 마신 약체 고교팀의 선수나, 더 이상 진학할 학교가 없는 대학팀의 선수나, 군대마저 다녀온 20대 중반이 훌쩍 넘은 나이에 배트와 글러브를 놓아야 하는 선수는 이제 무엇을 하며 살아야할까요.

 

 

지난 십여 년간 그들에게 야구는 인생의 모든 것이었을 것입니다. 잠 편히 못 자며,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지 못하고, 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모두 참으며, 때로는 구타를 당하면서까지 놓지 않았던 배트와 글러브인데, 그들의 인생에서 야구를 빼앗아버린다면 무엇이 남게 될까요. 오로지 야구만을 위해, 단 하나의 길을 향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매진해 온 그 선수들은 이제 어떤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할까요. 진로를 찾지 못한 많은 야구선수들이 어둠의 세계에 몸담게 되는 것을 우리는 그저 바라만 보며 혀를 끌끌 차야만 하는 것일까요.

 

국가대표 야구대표팀이 일본과 미국, 쿠바를 꺾는 것을 보고 환호와 탄성을 보내는 것에만 그친다면, 십년 안에 한국 야구는 대만이나 중국만도 못한 수준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올해 NC다이노스가 창설되어 야구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처럼, 프로구단은 반드시 증설되어야 합니다. 선수수급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매년 프로 입단을 희망하는 선수 중 10% 밖에 프로팀의 유니폼을 입지 못하는 레드오션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요. 더 많은 프로팀이 창단되어야만 선수들의 목표의식이 뚜렷해져 전반적인 야구의 저변 확대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조급증 없이 운동을 하게 되면 당장 성적을 내는 것에 급급하지 않고 기본기부터 착실하게 가르칠 수 있어 빠른 기량 향상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선수의 수요와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야구 꿈나무들뿐만 아니라 여가로서 야구를 즐기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프로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는 선수는 정말 극소수이고, 그 중에서 성공하는 선수는 더욱 적습니다. 프로야구 선수 하나만을 보고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하는 선수들은 정말 딱한 존재입니다. 선택 받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는 제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앞서 말한 프로팀의 증설이 장기적인 대안이라면, 당장 시급한 것은 아마야구가 활성화되어 많은 실업팀이 생기는 것입니다. 프로야구에 하위리그를 신설하거나 실업야구를 부활시키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안이지만 KBO나 MLB를 보고 눈이 높아진 야구팬들에게 아마야구는 성에 차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년 고시엔이 열릴 때면 지역예선부터 만원관중이 들어차는 일본이 정말 부럽습니다.

 








지난 2011년 8월 25일은 누군가에게는 기쁜 날이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영영 야구와 이별을 해야 하는 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야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대학야구 선수를 사촌동생으로 둔 형으로서 이날은 기쁨보다 슬픔, 설렘보다 아쉬움이 더 큰 날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 십년 넘게 그라운드에서 흘려온 그동안의 땀과 눈물을 보상 받아 프로팀의 유니폼을 입게 되지만, 다른 누군가는 프로팀의 선택을 받지 못해 상급학교 진학이나 연습생에 한 가닥 희망을 걸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한 학년을 더 유급하면서까지 야구를 하게 될 테고, 가장 많은 누군가는 그동안 삶 전체와도 같았던 야구를 포기하고 그라운드를 떠날 준비를 할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 생각에 죄송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고, 그렇게 많이 고생하고 훈련했음에도 좀 더 잘하지 못한 그 시간들에 후회가 밀려오고, 주변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어 연락을 끊고 죽을 만큼 술을 퍼마실지도 모를 그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대들은 모두 최고였다고.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잃으면서까지 야구에 전념한 그대들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야구라는 힘든 삶을 견뎌온 강한 사람들이니만큼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어떤 것에 도전을 하든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어려운 야구도 해왔는데 세상에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냐는 마음으로, 겁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에 당당히 맞서길 바란다고.

 

웃음과, 울음과, 행복과, 감동을 준 그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It ain't over 'til its over
-전 뉴욕 양키즈 포수 요기베라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29. 08:30











얼마 전, 미국의 록밴드 토킹 헤즈 Talking heads의 곡 중 하나를 접하게 되었어요. 이름만 어렴풋이 들어오던 밴드였는데, 장기하씨가 이 밴드를 무척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어떤 밴드인지 궁금해져서 노래를 찾아보게 되었지요. 제가 처음으로 들었던 토킹헤즈의 노래는 "Psycho Killer"라는 다소 무시무시한 제목의 곡이었는데, 유튜브에서 이 곡의 라이브 영상을 보다가 그 밑에 달린 한 리플이 눈에 들어왔어요.











"This song is a bassist's dream!"







이 리플 덕분에 이번 포스팅을 구상할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흔히 베이스 하면 밴드 음악에서 촐싹대는 기타와 드럼 뒤에서 조용히 연주의 주된 흐름을 잡아주고 연주의 무게감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이 곡처럼 개성있는 진행으로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는 경우도 많아요.






록 음악이 섹시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전자 베이스의 존재일 거예요.
한석규가 허밍하는 소리부터 표범이 그르릉대는 소리까지 음색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거든요.
그냥 그렇다구요..아 왠지 부끄럽네요.






이 곡에서의 베이스는 밴드의 다른 요소들보다 기억에 남아요. 이 노래를 듣고 또 이 리플을 보고 나서 이처럼 베이스가 연주하는 멜로디가 인상적인 곡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머리에 몇 곡 떠오르는 게 있어 이 포스팅을 통해 여러분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위에서 언급한 "Psycho Killer" 부터 들어보도록 하죠. :)










"Talking heads 77"이란 제목의 앨범에 수록된 곡입니다. 앨범 제목대로 1977년에 발표된 곡이에요.
여성 베이시스트의 절도있는 연주가 그리고 표정이 눈과 귀를 끄네요. 특히 후주의 급박한 베이스 솔로가 멋져요.
보컬인 데이빗 번은 왠지 빅뱅이론의 쉘든을 닮은 것 같아요..ㅋ








토킹 헤즈의 멤버들 입니다. 오른쪽부터 데이빗 번David Byrne, 크리스 프란츠Chris Frantz, 여성 베이시스트인 티나 웨이마우스Tina Weymouth, 제리 해리슨Jerry Harrison입니다.
70년대부터 90년대초까지 미국에서 활발히 활동했다고 하네요. 실험적인 음악으로 해체한 지금도 많은 골수팬들을 확보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 곡은 아마 여러분 모두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곡이에요. 그.. 케이블 채널인 오씨엔에서 영화 중간중간에 이 곡의 전주를 삽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말 유명한 곡이죠. 영국의 록밴드 퀸Queen과 역시 영국 출신의 록커 데이빗 보위David bowie가 함께 쓰고 부른 "Under Pressure "입니다.











'뚜두두두두두둔' 하고 반복되는 전주가 귀에 익죠? 영국 록음악계의 두 거물이 함께 한 곡이니만큼 여러 팬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은 곡입니다. 아쉬운 것은 이 곡이 발표되고 수년 후에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했기 때문에 퀸과 보위가 한 무대에서 이 곡을 라이브로 연주한 적은 없다는 사실이에요. 지금 유투브에 떠돌고 있는 두 사람의 듀엣 영상은 한 팬이 그러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합성한 영상입니다.
프레디 머큐리 추모 콘서트에선 데이빗 보위와 80년대 영국 팝 듀오였던 유리드믹스Eurythmics의 여성 보컬 애니 레녹스Annie Lennox가 함께 이 곡을 불렀어요. 곡 후반부에서 빠심이 폭발한(...) 애니 레녹스가 데이빗 보위를 끌어안고 부비적거리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프레디 머큐리 추모 콘서트에서 선보인 위 곡의 라이브 영상입니다.
떨어져 이 여자야!
  







세번째 곡은 비교적 최근의 곡이에요. 이 곡의 주된 흐름은 베이스와 기타 그리고 신디사이저의 멋진 조화로 만들어진 둔중한 음색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정확히 어떤 식으로 만들어진 사운드인지는 제 지식 부족으로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들어보세요. "Creep"으로 유명한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 Radiohead"Myxomatosis"입니다.




 










최근 공개된 "Live from the basement" 라이브 영상 중 하나 입니다. 톰 요크의 눈부신 댄스를 곡과 함께 감상하시죠ㅋㅋ
이 곡은 라디오헤드가 2003년에 발표한 "Hail to the Theif" 앨범에 수록된 곡입니다. 이 앨범의 제목과 곡의 메세지 등이 당시 이라크전을 벌였던 조시 부시 미국 대통령에 대한 조롱이 담겨 있다고 알려져 논란을 빚었죠. 어떤 미국 사람들은 이 앨범 때문에 라디오헤드가 싫어졌다고 한 모양이지만, 그러든가 말든가 이런 의견과는 상관없이 라디오헤드는 꿋꿋하게 자신들의 음악의 깊이를 더하는 작업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나온 새 앨범에선 아예 안드로메다로..
귀를 끊임없이 간지럽히는 베이스 연주가 곡 전체를 이끌고 있어요.


 





이상의 세 곡이 이번 포스팅을 통해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은 곡입니다. 사실 이 세 노래 말고도 베이스 리프가 멋진 곡들은 넘쳐 날 거예요. 하지만 제 능력 부족으로 이만큼밖에 소개해 드리지 못하여 저로서도 참 아쉬워요. 제가 포스팅한 곡들 즐겁게 들으시고, 여러분이 즐겨듣는 노래들 중에 위의 세 노래들처럼 멋진 베이스 리프가 들어있는 곡이 있다면 리플로 알려주세요! 많이 부족한 글이 되었네요. 이상 겁도 없이 아무거나 다 리뷰하려고 달려드는 유수였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26. 11:44



2001 디자인 코리아에 다녀왔습니다




사람들이 득시글 득시글 해서 사진을 많이 못찍었지만

재미난 디자인들이 많더군요!


자 그럼 꽤나 저렴한 화질의 사진들 들어갑니다!





(저 시커먼 그림자가 접니다만..)


심플한 아이디언데,
사용하는 사람은 엄청 편리하겠죠.






나무를 모티브로 한 자전거





태양열 충전이 가능한 친환경 넷북입니다.




이건 LED 캔들 라이트인데요.
무선이어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미래형 자동차 디자인들이구요.






가족폭력 관련 포스터입니다.






ICE-SCREAM

빙하가 녹고있어요!







둥지모양을 형상화한,
클립 저장용 도구.






자전거 락. 입니다.
간편하고 좋죠?






자전거 경사로는 이미 지하철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구요.





병 안에 엠보싱을 넣어서
맥주가 퐁팡퐁팡 안나오게 방지해주는거라네요.




나무 모양의 수도





줄이없는 줄넘기.
이럴바엔 그냥 콩콩 뛰는거랑 무슨 차이가...





아가용 욕조 받침대.






침대와 책상 세트입니다.





화질이 그지같아서 민망하군뇨.

일회용품의 화석.이구요.






아쌀한 아이디어의 공익포스터들.






귀여운 피자 커터기.





초등학생의 작품입니다.
어머니 애쓰셨네요.



















역시 학생작품입니다.




이 아이디어는 정말 괜찮은 것 같아요.
좀 더 심플하고 예쁘게 디자인 되면 충분히 상용화 가능?




이지 컷팅 테이프이구요.



이것도 좋죠?

나무모양을 형상화한 USB 허브





하이브리드 시대이군요!






도별 특산물 포장 디자인입니다.









그리고 제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태양이 뜬 위치로 시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신개념 시계!



Posted by 배태랑
2011. 10. 18. 21:26

여러분 모두를 위한 공간 '여러분'
새로운 에디터 '스릉'님이 오셨어요!
앞으로 일요일을 책임지실거예요 든든합니다!

스릉님의 '학교에 안갔어'에서는
'교육'에 대한 깊이있는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으니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릴게요!

스릉님 웰컴특집으로 지식채널e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역시나 스압이 예상되니 손가락에 힘주시고 시작할게요!

제목 : 우리들의 뜨거운 고백 
방송일 : 2011. 10. 17.


선생님! 이런 것도 ‘시’예요..? 물론! 그런데, 세 번만 더 고쳐볼까?




원출처 : http://home.ebs.co.kr/jisike/content_mov_detail.jsp?command=vod&chk=L&client_id=jisike&menu_seq=1&out_cp=ebs&enc_seq=309021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10. 00:53



이 분의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먹먹해지기도 하고 그래요.
맑고 순수한 미성! 아직도 소년의 느낌이 남아있어 더 마음에 와닿는 것 같기도 하고. 무지 덤덤하게 노래하시는데, 노랫말도 담백한데, 뭔가 진심이 짠-하게 느껴지고.


어릴 적, 컴퓨터 슈퍼마리오 게임에 심취돼있을 때 엄마께서 "어떤 사람은 게임을 하다 마법의 성 같은 노랠 만들었다던데 너는 뭐하는거냐"고 하시면서.. 정확한 의미에서 엄친아는 아닌데 진정 엄친아스런 존재셨던 것 같아요, 더 클래식은.. 무튼 컴퓨터 게임에 영감을 얻었다는 전설 아닌 레전드(ㅋㅋㅋ) 다들 아시죠?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명곡입니다.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가도 놀라지 말아요~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이 너무나 소중해, 함께~라면~"


제가 너무 급 센치해졌네요. 무튼 엠넷의 슈퍼스타K 세번째 시즌, 버스커 버스커와 투개월, 헤이즈까지 김광진 씨의 동경소녀, 여우야, 연애를 선택하고 부르면서 또 한번 주목을 받았어요. 특히 동경소녀는 너무너무 좋아요, 으악! 한편 김광진 씨는 시골의사 아재가 하시던 경제포커스 후임이 되셨죠? 미성으로 전하는 경제이야기라니! 무튼.. 능력자 중 능력자십니다.


그리고 오늘 모셔온 유투브 영상은 바로 오늘, 지금, 이 가을밤에 여러분과 함께 듣고 싶은 노래입니다. 바로 김광진씨의 명곡 '편지'인데요. 나가수의 BMK 언니, 슈스케3의 이정아 양이 불러 많은 사랑을 받았던 무지 유명한 곡이죠. 역시 원곡의 매력이 甲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역시 원조가 최고여!

이 노래는 또- 김광진 씨의 연애담이 오롯이 담겨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로도 유명해요. 김광진 씨와 부인 되시는 분이 연애하실 당시, 여자분의 부모님께서 거세게 반대하셔서 여자분이 어쩔 수 없이 선을 보시게 되셨대요. 상대는 여러모로 무척 괜찮은 남자분이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김광진 씨는 화가 나서 그 남자분을 찾아가게 되는데요, 막상 남성분을 만나자 오히려 여자분을 잘 부탁한다며 돌아서게 됩니다. 그만큼 괜찮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여자분께서 김광진 씨를 선택하게 되고.. 그녀의 답을 기다리던 남자분은 그녀에게 연락이 없자, 자신이 아닌 김광진 씨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한 장의 편지를 그녀에게 남기고, 그 편지가 바로 우리가 아는 '편지'의 모티브가 된 거라고 해요.


비하인드 스토리를 떠올리며, 각자 간직한 옛사랑의 슬픔에 센치해져도 좋고,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가사를 음미하면서 들어주세요


 



편지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말
이대로 다 남겨 두고서

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하오
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


기나긴 그대 침묵을
이별로 받아 두겠소
행여 이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

오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

사실 그대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 맘만 가져 가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26. 16:58
아, 나른한 가을의 오후입니다.

치통인지 신경통인지 덕분에 잔뜩 가라앉아서 아침부터 골골대네요.
치과에 다녀온 후, 약을 먹고 나니 노곤노곤 더 기운이 없어요.
뒹굴거리며 컴퓨터하다가 발견한 멋진 영상이 있어,
여러분과 나누고픈 마음에 급! 소개해드립니다! 히히히

바로, 퍼포먼스의 여왕 비욘세 언니예요!
(언니라 부를 수 있어 기쁘군요 요즘 걸그룹들은 하아..)


진짜 콘서트의 신세계를 보여주죠?
2011 빌보드 어워즈에서 'run the world' 공연이에요!
역시 욘세 언니 카리스마는 甲 中 甲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거슨 사대주의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thㅔ요 ㅋㅋㅋ

흑언니의 카리스마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오늘이네요
종종 멋진 공연영상 공유하고 싶어지면
이렇게 급! 올릴게요 우후훗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13. 13:30
모두들 즐거운 추석 보내셨나요!

어느덧 연휴의 마지막 날이네요! (이런 젠장)
저는 이번 연휴는 열심히 일하면서 보냈어요. 참 즐겁네요..
그래서 올 추석은 그닥 추석 느낌이 안 납니당.
날씨 탓에 동그랗고 밝은 보름달도 안 보였구요.

그나저나 우리는 왜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까요?
동글동글, 우리 소원을 몽땅 다 들어줄 것처럼 성격좋게 생겨서 일까요?

어제, EBS 지식채널e에서는 바로 요런 생각에 대해 이야기해봅니다.
(사실 베티 눈팅하며 잉여짓 하다가 캡쳐본 건졌어요.. 잉여잉여)
혼자 알기 아쉬워서 살짝 공유해볼게요. 그럼 스압이 이어지니 손가락에 힘주thㅔ염!

제목 : 동그라미처럼
방송일 : 2011. 9. 12.

왜 우리는 달에게 소원을 비는 걸까?
사람들은 왜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까?
본능적으로 완벽한 동그라미가 되길 바라는 건 아닐까?
동그라미가 갖고 있는 물리적 심리적 덕목들과 소망을 품는 우리의 행동 간의 연관성을 생각해본다.





퍼옴 출처: http://hgc.bestiz.net/zboard/view.php?id=gworld0707&page=2&sn1=&divpage=70&sn=off&ss=on&sc=of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88502
원출처: EBS 지식채널e http://home.ebs.co.kr/jisike/content_mov_detail.jsp?command=vod&chk=L&client_id=jisike&menu_seq=1&out_cp=ebs&enc_seq=308730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