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0. 08:27



복도를 다니다보면 장난치는 남자 아이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노는 행동이란 대략 뻔해서, A가 B의 뒤통수를 갈기고 도망가면 B가 A를 뒤쫓아가는 식이다.


어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학년 남자 아이 한 명이 다른 아이를 한 대 때리고 도망가는데, 맞은 아이가 때린 아이를 뒤쫓아가면서 외쳤다.

<야이 장애인아!>

비단 그 아이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이들이 '장애인'이라는 말을 욕처럼 쓰고 있다. 10대 남학생들에게서는 보편적인 언어생활로 자리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뒤쫓아가 잡아와서 다신 그런 말 못 쓰도록 혼내주려다 말았는데, 들을 때마다 여간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성, 흑인, 장애인 등 사회 곳곳에는 차별 받는 약자들이 많다. 황인종 남성인 나는 여성이 될 수도, 흑인이 될 수도 없지만 오늘 당장 장애인이 될 수는 있다. 그럼 의미에서 <비장애인>을 <예비장애인>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꾸준한 노력으로 <불구자>라는 말 대신 <장애인>이라는 말이 자리를 잡았고, 이제는 <장애인>과 <정상인>이라는 폭력적인 대립어 대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정상적인' 어휘를 사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계는 느껴진다. 특히 꼬꼬마 녀석들을 중심으로. 다음에 또 그런 말을 쓰는 놈 발견하면 허리를 접어버려야겠다.

최근 <장애인>을 <장애우>라 칭하는 문제가 화두가 된 적이 있다. 그동안 격리되어 왔고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분리되었던 <장애인>을 친근하게 여기기 위한 노력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우>라는 말은 지극히 <비장애인>적 시각에서 만든 말이므로 옳지 않다.

일반적으로 사회집단을 칭하는 개념어는 1인칭, 2인칭, 3인칭 모두가 가능하다. <노동자>나 <여성>을 예로 들 경우,

나는 노동자이다.
너는 노동자이다.
그는 노동자이다.

세 가지가 모두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장애우>라는 말은 어떤가.

나는 장애우이다.
너는 장애우이다.
그는 장애우이다.

나는 장애우이다? 우리는 장애우이다? 

'우(友)'라는 말은 타인이 나(장애인)를 지칭할 때만 가능한 것이지 자신 스스로를 가리킬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가리킬 때만 쓸 수 있는 표현인 것이며,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장애인을 철저하게 타자화한 말이다. 때문에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장애인을 나타낼 수도 없다.

장애우라는 말은 그 용법에도 제약이 따른다. <우리 아버지는 장애우이시다> <우리 선생님은 장애우이시다>와 같은 표현들 또한 어색하기 짝이 없다.

'친근함'을 부여하기 위해 <장애우>라는 말을 만들었다지만, 사실 잘못된 것은 <장애인>이라는 지칭어가 아니라 장애인을 친근하지 않게 여기는 비장애인들의 편견이 아닌가. 지금까지는 거리를 두고 지냈지만 앞으로는 친구라 부를 테니 친하게 지내자는 관념 또한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구성된 오만방자한 발상이 아닌가.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이라고 한다. 해마다 이날에는 각종 행사나 이벤트, 선물공세 등이 많이도 벌어진다. 주무 부처에서 행사의 의미와 시행방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농민의 날이나 임산부의 날에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듯, 장애인 또한 배려나 시혜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동등한 개인, 평등한 주체로서의 인식이 확대되는 날이기를 바란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