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9. 20:20
















 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스'를 보기 전까진 배트맨 시리즈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인정할게요. 더군다나 영화판 배트맨 시리즈는 제가 유치원생 꼬꼬마였을 시절에 유치한 설정 탓에 흥행에 한 번 크게 실패하고 더이상 제작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화판 역시 그다지 재미가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한 번 뿌리내린 선입견은 쉽게 바뀌기 힘든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게 웬걸... 4년 전에 갑자기 크리스찬 베일에게 잠깐 빠져 그의 출연작을 훑어보던 저는 (저는 이런 불순한 의도로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라고) 앞에서 말한 '배트맨 비긴스'를 보고 생각을 아주 고쳐먹게 되었어요. 그동안 배트맨을 어린애들 영화로만 생각해 온 제가 바보스럽게 느껴져, 누군가에게 사과라도 하고 싶어졌었죠. 근데 누구한테 사과를 해야하나..







   

-빨리 사과해!
-사..사과하겠습니다!
-필요없어!
-?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저는, 영화의 원작인 만화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과연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졌어요. 하지만 그 책의 제목이 뭔지, 우리나라에 나와있기는 한건지 알 수 없어 그저 궁금증만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작년에 서점에 들러 만화책 코너를 둘러보다 이 책을 발견했지 뭐예요. 수년동안 저를 애타게 했던 그 만화는 바로.. '배트맨 이어 원Batman year one'이었습니다.
 










미국의 유명 만화가 프랭크 밀러frank miller와 데이비드 마주켈리david mazzucchelli가 함께 그린
'배트맨: 이어 원'의 표지입니다. 1987년작이구요.
우리나라에는 민음사 산하의 '세미콜론'에서 2008년 말에 같은 제목과 표지로 출간되었습니다.
세미콜론에서 배트맨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속속 나오고 있으니 모아보아도 괜찮을 것 같군요!












 

작가 중 한 명인 프랭크 밀러의 사진입니다.
'300','씬시티','다크나이트 리턴즈' 등으로 유명한 작가죠.
'배트맨: 이어 원'은 1986년부터 시작된 그의 배트맨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사진 배경에서 알 수 있듯 최근에는 영화감독으로도 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스피릿spirit'라는 제목의 영화였는데..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고 합니다.




 

 

만화는 영화 '배트맨 비긴스'처럼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웨인그룹의 백만장자 아버지 밑에서 남부럽지 않게 성장해온 브루스는 부모와 함께 오페라를 보고 오던 길에 총을 든 강도의 손에 부모를 잃습니다. (영화에서는 저택 옆 동굴에서 날아든 박쥐 때문에 공포증이 생긴 어린 브루스가, 부모와 오페레타 '박쥐'를 보다가 두려움에 칭얼거려 함께 극장을 빠져나오다 강도를 만난 것으로 되어있죠.) 그 후 12년간 도시를 떠나 무예를 익히던 브루스가 고담시티로 돌아오면서 만화는 시작되지요.










부모를 잃었을 당시를 회상하는 브루스
브루스는 타락한 고담시티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그토록 두려워 했던 박쥐가 되기로 합니다.  







브루스는 부모가 살해당한 기억 때문인지 자신은 결코 살인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보여요. 그래서 배트맨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더라도 살인만은 피하려고 하죠. 또한 자신을 추적해온 경찰이 고양이를 쏘아 죽이려고 했다는 이유로 그를 손봐주는 등, 약간은 소년과 같은 모습도 보입니다. 브루스 웨인이 어렸을 적에 자기 탓으로 부모를 잃어버린 충격 때문에 정신적 성장이 소년시절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해석은 오래 전부터 나왔었죠. 그래서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로빈과 친구처럼 활약할 수 있는 것이라구요. 

아무튼 작품 속에서 배트맨은 초반의 어설픈 모습에서 벗어나 점점 더 치밀한 공작을 수행할 내공을 쌓아갑니다. 마침내는 고담시티의 부패한 경찰청장과 마피아 일당을 응징하게 되죠. 하지만 이건 혼자 이루어 낸 건 아닙니다. 때로는 간호사로, 때로는 정보원으로 그를 돕는 충직한 집사 알프레드, '생계형 히어로' 캣우먼으로 등장한셀리나 카일, 그리고 작품의 또다른 주인공인 고든의 협력이 없었다면 그런 성과는 불가능했을 거예요.    












불량 청년들에게 둘러싸여 힘겨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배트맨
발에 채이고 텔레비전으로 맞고.. 좀 안쓰럽습니다. 







작품이 영화와 다른 점 중 한 가지는, 영화에선 그 내적 갈등이 삭제되었던 고든 경감의 이야기가 꽤 비중있게 다뤄진다는 점입니다. 영화에서는 고담 시티의 무능한 경찰 시스템 안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고든의 모습만을 볼 수 있었지만, 만화에서는 그의 가정사와 인간적인(?) 갈등 역시 엿볼 수 있습니다. 만화는 브루스의 귀환과 고담 경찰청에 부임한 고든의 모습으로 시작되는데요, 시카고에서 막 고담으로 온 지 몇 시간도 안돼서 고든은 동료 경관의 나사빠진 언행에 질리고 맙니다. 이 멍청이 동료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고담 경찰은 사실 그 지역 마피아와 결탁하고 있어 이미 도시 치안을 다스릴 능력을 잃은 유명무실한 집단이에요. 고든은 이런 경찰 시스템을 개혁하고자 고군분투 하지만, 소위 '높으신 분들' 눈에는 이 고지식한 새내기 경관이 맘에 들 리가 없죠. 그래서 고든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고담 경찰로부터 갖가지 협박과 린치를 당합니다.

 고든의 사생활 역시 그들에게 고든을 협박할 빌미를 제공합니다. 작중에서 고든은 함께 일하던 미모의 여경사에게 잠깐 한 눈을 팔아 적잖이 마음고생을 합니다. 고든에겐 이미 임신한 부인, 바바라가 있거든요. 그런데도 고든은 직장에서 자신의 오른팔이 되어 주는 여경사 에센에게 마음을 주고, 또 그것을 윗선에 들키고 말죠. 경찰국 간부들은 이것을 빌미로 고든을 협박하지만, 그가 바바라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음으로써 갈등은 일단락 됩니다. 비록 고든은 아내와 함께 정신과 의사에게서 관계 개선 상담을 받아야 했지만요.   











동료 경관의 음모로 느닷없이 습격을 받은 고든 경감.
그는 나중에 이걸 똑같은 방식으로 갚아줍니다. 성깔 있어요, 이 아저씨.










불륜을 저질러 편치않은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고든. 바바라가 정말정말 너그럽게 봐 준 덕분에 그는 위기를 벗어납니다.
이 사람은 아내한테 정말 잘해야 해요.








 이렇듯 고든의 이야기가 이야기의 서브 플롯으로 자리함으로써 작품은 브루스 웨인의 원맨쑈에 그치지 않고 그 재미를 더합니다. 고든과 배트맨이 알게 모르게 힘을 합쳐 썩은 경찰청장을 응징하고 지역 마피아 두목을 처단하는 걸 보면 두 사람이 고담 시티를 지키는 히어로 콤비같아 흥미진진합니다. 처음에는 고든이 배트맨을 코스튬 입고 설치는 범죄자 정도로 여겨 수사를 시작하지만(이 수사과정에서 그는 에센이 가져다준 정보로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아닌지 의심합니다. 물론 브루스가 플레이보이 재벌 2세 코스프레를 해 정체가 탄로 날 위기를 넘기지만요.) 나중에는 그를 동료로 인정합니다. 만화는 청장으로 승진한 고든이 배트맨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막을 내리는데, 여기서 조커의 등장이 암시됩니다. 이건 영화에서도 그렇죠. 







 


여유로운 담배 한 모금.
고든은 승진도 하고 마피아도 때려잡고 가정도 지켰습니다.








작품의 제목은 '배트맨:이어 원'이지만, 어쩐지 배트맨보단 고든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워요. 사실상 이 이야기는 고담시티에서 새로이 등장한 두 영웅의 눈물겨운 생존기가 서로 얽힌 구조를 갖고 있어요. 배트맨뿐만 아니라 고든 역시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거죠. 프랭크 밀러와 데이비드 마주켈리는 길지 않은 분량 속에 그들의 성격, 과거, 몇몇 어설픈 면모들을 잘 나타내, 고담시티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황당무계한 가면 히어로 얘기의 배경이 아닌, 정말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구린내나는 도시의 모습으로 형상화시켰습니다. 물론 배트맨의 탄생 계기를 설득력 있게 묘사한 것도 큰 장점이고, 한국어 번역이 비교적 매끄러운 것도 작품의 재미를 떨어뜨리지 않은 요인이 됩니다.(브이 포 벤데타는.. 안그래도 어려운 글을 번역도 매끄럽지 못하게 해놓아서 거슬리는 부분이 좀 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큰 장점은 커버 디자인이 멋져서 책장에 꽂아놓으면 간지..가 납니다.ㅋㅋ 길지 않은 이야기니 일독을 권합니다! 
고든과 배트맨의 다정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포스팅을 마칠까 합니다. 그럼 다음 포스팅을 통해 또 만나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6. 01:31


안녕하세요? 훈석입니다.

저는 보는 것을 굉장히 즐기는 편이라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와 드라마, 책과 친하고,

아시다시피, 그것을 나누고 싶어 금요일에 관련 포스팅을 하기도 하죠.

웹툰 또한 무척 좋아합니다.

살면서 이루고픈 일 목록 중에,

#268. 책을 내자!
가 있습니다.

그 책엔 제가 쓴 글과 함께 직접 그린 그림도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모든 일은 한 멘션에서 시작됩니다.




네이버 웹툰 <나이스진타임>, <삐뚤빼뚤해도 괜찮아>의 김진 작가님의 멘션.




그래서 전 갔습니다. ㅎㅎ
네, 대답은 듣지 못했어요...

(출처: www.nicejintime.com)



신촌에 결혼식이 있어서,
마구마구 축하해주고,
강남으로 향했습니다.















입구에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님들의 사진이 있었어요.



"마감 빵꾸 내지 않겠습니다."
<노병가>, <패션왕>의
귀염둥이 기안84님. ㅎㅎ



아이고, 무지막지하게 흔들렸군요.

<콘스탄쯔이야기> 를 연재하시는 김민정 작가님 입니다.


김진님 혼자의 사인회가 아니었다는걸
도착해서 알았습니다.

<의령수>, <아이고>의 김우준 작가님과
<미호이야기>의 혜진양님 (허혜진) 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한시간쯤 남아 전시장을 먼저 둘러봤습니다.





<목욕의 신> 하일권
God of Bath
40.5X53cm, Mixed media on canvas, 2001.


믹스드 미디어라고 하지 말아요!
때밀이잖아요!
ㅎㅎㅎㅎㅎㅎ

아무튼 이렇게 기발할데가!



대표작
<3단합체 김창남>
<두근두근두근거려>
<안나라수마나라>
<삼봉이발소>
<목욕의 신>



<패션왕 우기명> 기안84
Fashion King. Woo Kee myung
39.4X54.5cm, Watercolor on paper, 2011

대표작
<노병가>
<패션왕>




<작가의선물; 이상한 액세서리> 김민정
Strange accessories sent from the author
22.7X15.8cm, Oil on canvas, 2011


잘 안보일까봐 크게 다시 찍었습니다.



<아슬아슬한 공동체> A strange community
19X33.4cm, Oil on canvas, 2011

<꽃스탄츠> Constanze with flower
45.5X53cm, Oil on canvas, 2011


모두 김민정 작가님 그림이구요.
배열이 독특했어요.

<꽃스탄츠>라는 이름도 굉장히 재치있었구요.

대표작은 현재 네이버 웹툰 연재중인
<콘스탄츠 이야기> 가 있습니다.


<열쇠줍는 아이> 최윤진
FINDER - The child who seeks for the key-
29.7X42cm, Watercolor on paper, 2011

대표작
<열쇠줍는 아이>




<아이고> 김우준
IGO(자유 그리고 청춘)
150X150cm, Acrylic on canvas, 2011

대표작
<의령수>
<아이고>




<연꽃> 혜진양
lotus blossom
45X37.5cm, Watercolor on paper, 2011

대표작
<미호이야기>


<좋은 하루 되세요> 노란구미
Have a nice day
73X91cm, Acrylic on canvas, 2011

대표작
<내가 결혼할 때까지>
<세개의 시간>
<돈까스 취업>



<그녀의 옷장> 김진
Her Closet
72.5X90.5cm, Acrylic on canvas, fabric, 2011


제가 이 전시회에 간 이유죠. ㅎㅎ

대표작
<나이스 진타임>
<삐뚤빼뚤해도 괜찮아>





<Coffee & Tea> 권윤주 SNOWCAT
52X32cm, Acrylic on Paper, 2011


<Power On>
56X57.5cm, Acrylic on Paper, 2011



<뽀통령 뽀로로> 이희재
33X27cm, Chinese ink, Watercolor on Korean paper, 2011

대표작
<명인>
<골목대장 악동이>
<간판스타>
<나 어릴적에>
<세상 수첩>
<아이코 악동이>




<바람만들기> 사이로
54X37cm, Chinese ink, Watercolor, Acrylic on Korean paper, 2011




<아침풍경> 사이로
54X37cm, Chinese ink, Watercolor, Acrylic on Korean paper, 2011



참 보기 좋은 그림입니다.

대표작
<만화응접실>
<서울 별곡>
<월요 경제만평>
<사이로 카툰>






 



사람이 많이 북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갤러리 내부 모습이구요.





저 사람 좀 지워주세요.



 


"엄마가 밥먹으래요."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세 작가분의 싸인을 모두 받았어요.

ㅎㅎ





아 그리고,
"선생님. 조금만 뒤로 가주세요."
라고 한 주최 측 스태프. 잊지않겠어요.......



끗!

뉴욕 프라이드~

Posted by 배태랑
2011. 11. 2. 08:30


















0.

특집이라고 제목을 다니 왠지 무한도전 같기도 하고 꽤 거창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만 사실 그냥 소개글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만화 리뷰 틈틈이 곤 사토시 감독의 대표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1.

 '퍼펙트 블루'는 '동경대부',''파프리카','천년여우'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곤 사토시今敏가 1998년에 발표한 첫 연출작입니다. 1963년에 태어난 곤 사토시 감독은 췌장암과 싸우다 2010년 8월 숨을 거두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작품 성향은 크게 다르지만, 일본 대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미야자키 감독의 뒤를 이을 인재로 주목받고 있던 그였기에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이가 많았다고 합니다.







곤 사토시 감독의 사진.
인터넷을 통해 그가 생전에 직접 쓴 투병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투병의 고통을 담담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은 그의 일기를 보면
이러한 위트와 재능이 훌륭한 작품으로 세상에 나올 기회를 잃은 것이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퍼펙트 블루'는 편안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남자분이든 여자분이든, 갖가지 형태로 여성의 신체를 소비하며 살고 있는 우리 모두라면 말이에요. 특히 여성분이라면 주인공 미마의 고통이 자신의 일처럼 생생히 느껴져서 영화를 보는내내 더 괴로우실 수 있습니다. 아이돌 가수에서 배우로 전업한 주인공이 겪는 원치 않은 고통과 울분..폭력.. 이런 것들이 시각화된 이 영화를 보고나면 우리 사회가 뜯어버린 비닐 포장지와 리본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장처럼 느껴지거나, 그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어쨌든 잔혹한 폭력 묘사때문에 데이트 영화로는 빵점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봐서도 안됩니다. 그냥 방에서 혼자 조용히 보세요. 공포감 증폭을 원하시면 불도 꺼놓고.







4. 

이야기는 여성 아이돌 그룹 '챰'의 공연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3인조 언더그라운드 아이돌(일본엔 아이돌도 이런 형태로 활동하나봐요)그룹인 '챰'에서 가장 인기 많은 멤버인 주인공 '미마'는 소속사의 결정으로 앞으로 아이돌 활동을 중단하고 배우로 데뷔하게 됩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대로 그룹 활동을 계속 하구요. 소속사의 명령도 있고, 배우를 꿈꾸어 시골에서 도쿄로 홀로 상경한 미마이기에, 그녀는 군말없이 그 결정을 따르기로 합니다.

배우로의 전업이 미마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만큼, 미마의 불안감은 물론이고 챰의 골수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됩니다. 하지만 배우 활동을 하는 것이 아이돌 활동보다 연예인으로서의 긴 수명을 보장받는 길이기 때문에 미마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역할부터 착실히 연기해갑니다.

추리 연속극 '더블 바운드'에서 범죄 피해자의 여동생 역할을 맡은 미마. 그런데 드라마 제작사 측은 미마의 소속사에 그녀가 성폭행 장면을 연기하길 바란다고 통보합니다. 게다가 소속사에서는 미마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높은 수위의 누드집을 발간하기로 하구요. 힘없는 신인 연기자일뿐인 미마는 촬영 관계자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억지로 이 두 가지 촬영을 소화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구요.
 
2인조 그룹으로 안정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나머지 멤버들을 보며 아이돌 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젖는 것도 잠시, 미마는 자신을 몰래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음을 감지합니다. '미마의 방'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마치 미마 자신인양 일기를 게재하고 있는 이름모를 이가 있음을 알아차린거죠. "아~ 오늘 촬영은 정말 하기 싫었어. 하지만 주변에 폐를 끼칠 순 없으니 할 수 없지" 홈페이지의 주인은 미마가 어떤 촬영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마치 머릿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생생하게 일기에 옮겨 놓았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있다는 공포감을 달랠 여유도 없이 이제 미마의 주변 사람이 하나하나 참혹하게 살해되기 시작합니다. 미마에게 싫은 일을 일방적으로 강요했던 소속사의 사장, 미마의 누드집에 실린 사진을 촬영한 (모델을 괴롭히며 촬영하기로 유명한) 유명 사진작가.. 그들이 수차례 흉기에 찔려 참혹하게 살해된 다음, 이제 미마 본인까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미마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이제 그녀의 생명을 위협하려는 그는 대체 누구일까요?












미마를 괴롭히는 건 그녀 자신이기도 합니다.









5. 

작품은 미마가 배우로 데뷔하고 나서 느꼈을 정체성의 혼란을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미마가 촬영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장면과 현실의 장면을 교차시켜 마치 미마의 인격이 여러갈래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수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송곳을 든 살인마의 모자가 벗겨지고 미마의 얼굴이 나타날 때에는 미마에게 자신도 모르는 다른 자아가 생겨 살인을 저지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으면 스토커가 미마인지 미마가 스토커인지.. 살인자인지 헛갈리게 되기 쉽지요. 영화 후반부의 반전을 보기 전까진 관객들은 미마가 새로운 생활에 따른 스트레스로 다중인격장애를 앓게 된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정말 그랬을수도 있죠. 어....? 하지만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음침한 생김새의 스토커는 이 영화의 트릭이 단순히 미마의 정신적 혼란으로 설명되지 않을 것이란 걸 관객들에게 넌지시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의 결말에 대해 쉽게 단정짓지 못하고 끝까지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지요. 마지막에 (스포일러 주의! 반전을 알고 싶은 분은 오른쪽을 드래그하세요.)미마의 매니저가 두 명의 스토커 중 한명이었다 라는 것이 명확해진 순간 관객들이 받은 충격은 상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도 입이 딱 벌어졌으니까요. 정체성의 혼란은 이 영화의 주된 주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러한 알쏭달쏭한 트릭은 이를 표현하기에 효과적인 것이 아니었나 합니다.  










   




무대에서 춤추는 미마를 보며 그녀를 자기 손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해보는 스토커.
이 사람은 항상 미마의 주변을 맴돌며 미마를 지켜봅니다. 









6.

이야기는 미마를 둘러싼 의문이 해소되고, 미마 역시 살인사건의 종결 이후 배우로서의 자신을 찾은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고 해서 그녀가 앞으로의 배우 생활에서 상품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에 혼란을 느끼고 갈등하는 일이 전혀 없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또 스포일러가!!)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인양 홈페이지를 꾸민 것이 그녀의 매니저였다는 것이 밝혀진 다음에 미마가 자기 자신을 '진짜'라고 간단하게 납득해 버리는 마무리는 좀 김새는 느낌이었어요. 그녀를 괴롭히는 이들이 사라졌다고 해도, 결국엔 미마 자신이 계속 그녀를 괴롭히게 되지 않을까요?








영화는 미마의 인격을 소재로 한참 관객들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다음
윙크와 함께 "난 진짜야"라며 거짓말 같이 일련의 충격들로부터 회복된 미마를 보여주며 막을 내립니다.
미마의 방황은 그걸로 정말 끝일까요? 




7.

곤 사토시는 이 영화에서 보여준 현실과 가상의 교차 시퀀스를 다른 작품에서도 선보입니다. 그 다음 연출작인 '천년여우'와 마지막 작품인 '파프리카'에서도 이러한 수법을 볼 수 있지요. 곤 감독은 주로 '다중적인 자아', '여러 가면을 쓰고 있는 현대인'과 같은 주제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천년여우'의 경우는 마찬가지로 여배우의 삶을 소재로 한 '퍼펙트 블루'보다 주인공 여배우가 보여주는 다양한 인격의 교차를 이야기 진행의 중요한 도구로 삼아요. (그래서 더 정신없습니다) 이러한 주제와 표현방식에 흥미를 느끼는 분이라면 곤 감독의 작품을 쭉 감상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대량소비사회의 여성의 성이 상품화 되는 풍조를 까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스스로 상품이 되길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현대인 모두의 운명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미마는 이야기내내 포장지로 예쁘게 꾸며진, '미마가 아닌 미마'를 팔면서 고통받으며,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이러한 인생을 사는 것은비단 그녀와 같은 여성 연예인들의 고통만은 아닐 거예요.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역시 남들이 그렇게 살길 원하는 인생을 살면서 평생을 '진정한 나'에 대한 의문으로 번민합니다. 이른바 '자기계발서'가 서점에서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 증후 중 하나라면 하나겠지요. 작품을 보고 나면, 미마가 '미마린'이라는 이름의 상품으로 소비된 것처럼 우리와 같은 현대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인격마저 상품으로 내놓아야 살아갈 수 있는 지경에 이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조직에 뼈를 묻을 수 있는 충성심을 갖춘 상품으로 꾸며진다고 하면 지나친 생각일까요.    







8.

다음에 소개할 곤 감독의 작품은 2001년에 발표된 '천년여우'입니다. 천년fox가 아니고 천년actress입니다ㅋㅋ 저는 '퍼펙트 블루'보다 이 작품을 더 좋아합니다. 왜냐면.....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26. 08:30

 











 

































 

 




















































































'초원, 바람, 잡목림 > I know that girl' 카테고리의 다른 글

6화  (8) 2011.09.29
5화  (15) 2011.09.14
4화  (19) 2011.09.01
3화  (17) 2011.08.10
2화  (22) 2011.08.0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19. 08:30



















0. 이 리뷰엔 영화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스포일러가 왕창듬뿍 들어있습니다. 경고 했어요.ㅋㅋ






1. 일단 감독의 전작인 '게드전기'보단 재밌게 보았습니다.






2. 이야기는 크게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묘한 인연으로 서로를 알아가게 되는 열여섯 소녀 우미와 그녀의 1년 선배인 슌의 사랑이야기, 또다른 하나는 그들이 재학중인 고등학교의 오래된 동아리 건물, '까르티에 라탱'의 철거를 막으려는 학생들의 노력이지요. 두 이야기 모두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 혹은 영화로 무뎌진 우리나라 관객들의 마음을 자극하기엔 참으로 미지근하고 무난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작품 속 슌의 대사를 통해서도 말하고 있듯이 우미와 슌 사이의 핵심적인 갈등 요소인(갈등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게.. 얘네는 이것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진 않아요.) '알고보니 남매' 떡밥은 통속적 멜로드라마에서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소재라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이런 낡은 떡밥이 들어있는 작품을 원작으로 삼아 영화를 제작한 것은, 지나치게 20대 취향에만 맞춰져 있는 최근의 일본 영화나 드라마의 이야기에 대한 반작용이 아닐까 합니다. 영화는 원작에는 없는 까르티에 라탱의 이야기를 집어넣어 '과거의 낭만을 되찾자'라는 메세지를 강화하고 있는데, 이러한 작품분위기와 남매 떡밥은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일 것입니다. 흑흑 우리가 남매였다니, 그럴 리가 없어!!












자신들이 형제일지도 모른다는 슌의 이야기에 놀란 우미.
생김새도 참 많이 닮은 두 사람이지만.. 사실은..






3. 우미와 슌의 사랑 이야기는 결국 그들의 부모 세대 사람들의 관계를 되짚어 자신들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내는 '뿌리찾기'와 같습니다. 까르티에 라탱 보존운동도 결국 학교문화 기저에 깔려있는 인문학적 뿌리를 지키려는 움직임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서사구조는 일본사회 전체의 사상적 회복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일본에는 분명 동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서구 과학 특히 인문·사회과학을 받아들였다는 자부심과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제국주의의 광풍이 전국을 뒤덮어 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 간 경험이 있으니, 19-20세기의 일본에서 꽃피었던 인본주의적 분위기를 회복하고 자국의 자존심을 다시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열망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60년대 초반에는 순수한 정신문화 부흥의 의지로 받아들여 질 수 있으나, 우경화 일로를 걷고 있는 최근의 일본에서 이러한 작품이 다시 나왔다는 것은 작품에 그것 외의 의도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어쩌면 이 작품이 올해 3월에 발생했던 동일본 대지진으로 흐트러진 이른바 '일본정신'을 재건하고 일본인들의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하려는 의도로 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일본정신'이라는 것이 건강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우리는 뻔히 알고 있습니다.








4. 이 영화를 마냥 르네상스에 대한 동경으로만 볼 수 없게 하는 것이 우미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일 것입니다. 외할머니가 운영하는 하숙집 일을 거들며 학교에 다니고 있는 우미는, 매일 아침마다 죽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안전한 항해를 기원합니다'라는 메세지가 담긴 깃발을 올립니다. 항해 어쩌고 하는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우미의 아버지는 선원이었어요. 우미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터였던 한국으로 가는 물자수송선에 탔다가 그 배가 기뢰를 맞아 침몰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고 하지요.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우미 아버지 세대의 옛 이야기를 보았을 때 우미의 아버지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해군 출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허나 작품에서 묘사되는 그는 그 전쟁의 가해자가 아니라 또 다른 전쟁에서 희생된 피해자일 뿐이지요.
   작품이 이야기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방식은 얄팍하디 얄팍합니다. 우미 아버지의 죽음은 주인공의 안타까운 처지와 그들 사이의 사랑에 약간의 미스터리를 제공하는 밑밥일 뿐, 그 자체가 이야기에 중요한 축이 되진 않아요. 재밌는 것은 이러한 얄팍함 덕분에(?) 이 작품을 우파적 메세지를 담은 작품이 아닌, 일본의 우파 정부를 비판하는 메세지를 담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야자키 고로는 그들이 회복하고자 하는 '과거'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작품을 둘러싼 여러 정치적 해석과 그에 따른 갈등에서부터 적당히 발을 빼려고 한 모양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의 '깊이 없음'은 의도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5.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할지 솔직히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아요. 다만 확실한 것은 '코쿠리코 언덕에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일본의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자는 것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 공동체 정신의 구심점이 되는 것이 인본주의적 가치인지.. 전체주의로의 회귀인지는 일부러 깊이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주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감독으로서의 첫 작품을 시원스레 말아먹었던 미야자키 고로의 입장에서는 관객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게 안전하다고 판단했겠지요. 비록 이 조심성 때문에 얄팍한 작품이 나왔지만 말입니다. 








감독인 미야자키 고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입니다.
왠지 기운 없어 보이는 미소네요. 아버지 등쌀 때문에









6. 이 영화에 대한 글들을 찾아 읽다가 누군가가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 중에는 왠지 노동하는 미성년자가 등장하는 경우 많은 것 같다고 지적한 글을 읽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는 아예 1년간 혼자 벌어먹고 살아야하는 임무를 띤 꼬마마녀가 주인공이었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는 영문도 모른채 고된 목욕탕 일을 해야 했죠. 이 작품의 주인공인 우미 역시 하숙집 식구들의 식사 준비를 혼자 도맡아 합니다. 아직 열여섯밖에 안된 학생인데 식칼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요..우미가 부엌일을 도맡아하는 설정 덕분에 아기자기한 그릇들을 구경하고 음식이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아, 이건 제 개인적인 감상인데.. 저는 지브리 작품에 나오는 계란 후라이가 그렇게 먹음직스럽게 보일 수가 없어요ㅋㅋ 노른자가 반짝반짝 탱탱한 게..인물들이 그걸 한 젓가락에 집어서 후르륵 삼키죠. 아유 어쩜 그렇게 맛나게 먹을까요? 응?ㅋㅋㅋ








저 각 잡힌 상차림을 보라. 여기가 하숙집이야 군대야
아아 저 계란 후라이 아아








   
7. 아무튼 별 생각없이 우미와 슌의 풋풋하다 못해 밍숭밍숭한 사랑 이야기를 듣고 싶은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 어느정도 만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홍보 팜플렛에는 이 작품이 '스튜디오 지브리가 선사하는 첫번째 사랑 이야기'라고 하는데, 사실 첫번째는 아니지 않나요? 그 전부터 이 정도 수준의 순수한 러브 스토리는 조금씩 선보여왔다고 생각했는데.. 만약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거듭할 때마다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강조해나간다면, 언젠가는 '폭풍의 언덕' 같은 격정적인 치정극을 내놓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지브리와 치정극이라.. 정말 안어울리는 두 단어네요.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29. 04:29

































































































































'초원, 바람, 잡목림 > I know that girl' 카테고리의 다른 글

7화  (8) 2011.10.26
5화  (15) 2011.09.14
4화  (19) 2011.09.01
3화  (17) 2011.08.10
2화  (22) 2011.08.0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21. 08:30











안녕하세요! 유수입니다.

갑자기 날이 추워졌네요. 다들 도톰한 옷들 준비하셨나요? 저는 옷보다 옆에 끼고(?) 다닐 사람 생각이 간절하네요.

여기다 넋두리 해봐야 생기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





갑자기 다가온 가을을 맞아, 가을날씨처럼 서늘한 만화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인공 소개가 되겠지만요.

오늘 소개해 드릴 만화는..두구두구두구두구

앨런 무어가 이야기를 쓰고, 데이빗 로이드가 그림을 그린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입니다.










 

2008년 말에 시공사에서 나온 한국어판의 표지입니다. 아직 절판되지 않았으니 서점에서 사실 수 있어요.
무정부주의 냄새가 펄펄 나는 이런 만화가 다른 곳도 아니고 시공사에서 나왔다는 게 참 신기해요.
음...그냥 그렇다구요. 




이야기를 쓴 앨런 무어Alan Moore의 사진입니다. 절대 나무 할아버지 그런 게 아니고
영국 출신의 만화 스토리 작가이자 소설가로, 이 작품 말고도 "왓치맨" "프롬 헬" 등의 작품을 집필했다고 하네요.
"브이 포 벤데타"는 작가의 출신지인 80년대 영국의 우파정권을 비판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2006년에 개봉하기도 했죠. 워쇼스키 형제 제작이었습니다.
앨런 무어는 처음부터 작품의 영화화를 반대했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 결과물에 대해서도 크게 실망하여 결국 영화화를 허락한 판권 소유사인 DC코믹스와의 연을 끊고 맙니다.
브이 포 벤데타의 이야기를 미국 관객 취향의 싸구려 수퍼 히어로 이야기로 전락시켰다고 말이죠. 
영화가 어떤지는 아래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 하겠습니다.








주인공 브이 역은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으로 유명한 배우 휴고 위빙이,
우연히 그의 복수극에 말려든 여인 이비 해몬드 역은 나탈리 포트만이 맡았습니다.
저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휴고 위빙의 멋진 목소리입니다.
역시 여자는 청각에 약한가봐요...













브이의 목소리를 감상하시죠.
잘 들어보시면 브이의 대사가 알파벳 V로 시작하는 단어를 엮어 만들어진 문장이라는 걸 아실 수 있을거예요. 
브이가 호기롭게 '부알라!'라고 외치는 부분부터..
이 대사 속에 쓰인 단어 중 몇몇은 만화 원작의 각 챕터 제목에 쓰인 단어이기도 합니다.

 
Voilà! In view, a humble vaudevillian veteran cast vicariously as both victim and villain by the vicissitudes of Fate. This visage, no mere veneer of vanity, is a vestige of the vox populi, now vacant, vanished. However, this valorous visitation of a bygone vexation stands vivified and has vowed to vanquish these venal and virulent vermin vanguarding vice and vouchsafing the violently vicious and voracious violation of volition! The only verdict is vengeance; a vendetta held as a votive, not in vain, for the value and veracity of such shall one day vindicate the vigilant and the virtuous. Verily, this vichyssoise of verbiage veers most verbose, so let me simply add that it's my very good honour to meet you and you may call me "V".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는 제 3차 세계대전을 겪은 가상의 90년대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1982년에서 1988년까지 연재되었습니다.
2006년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지요.
이 영화는(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원작과는 이야기의 흐름부터 몇몇 인물의 성격 따위가 많이 다릅니다. 특히 브이의 성격과 이비와의 관계가 많은 변화를 겪었어요. 사실 이 포스팅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까고 싶어서 올리는 글입니다. 왜냐하면 원작이 가지는 아련한 여운을 다 잘라먹고 브이란 캐릭터가 가지는 깊이를 얄팍하디 얄팍하게 깎아먹었기 때문이죠. 가장 짜증나는 부분은 브이와 이비의 관계를 지나치게 로맨틱하게 설정해둔 점입니다. 원작에서의 두 사람 사이에 성적 긴장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의 관계는 연인사이라기보다는 사제지간이나 부녀지간이라 하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거예요.   


그럼 지금부터 영화 "브이 포 벤데타"와 원작만화의 차이점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할게요.










영화와 만화 속 브이는 복수에 미쳐있다는 등의 공통점도 있지만 영화 속의 모습이 더.. 유치합니다.^^;






1. 나의 브이는 이렇지 않아! ;ㅁ;- 브이의 성격 변화



브이가 활약하는 만화 속 배경은 총통 아담 수잔의 독재 정권 발 아래에서 신음하는 암울한 영국 사회입니다. 이 정권은 제 3차 대전 직후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동성애자, 유색인종, 공산주의자 등 우파 독재 정권 수립에 방해가 될만한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다 라크힐 수용소에 집어넣습니다. 그 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주도했던 델리아 서리지 박사의 기록에 따르면 브이 역시 그 수용소에 갇혔던 사람 중 한 명으로, 실험을 겪는 과정에서 '적잖이 미쳐' 있었다고 합니다. 

브이 포 벤데타의 이야기는 이 수용소에 불을 지르고 탈출한 브이가, 수용소의 요직을 맡았던 인물들을 죽이는 것을 시작으로 최종적으로는 아담 수잔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복수를 완성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복수를 천천히 이루어나가는 브이의 용의주도함은 역시 이 사람이 제정신은 아니라는 걸 짐작하게 하죠. 혼자 힘으로 런던의 지하 어딘가에 은신처인 섀도우 갤러리를 짓고, 그 안을 정부에 의해 금지된 예술 작품들로 채우고.. 정부의 전반적인 행정을 주관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해킹할 기술을 익히는 등 보통 사람의 집념으로는 갖추기 힘든 능력을 브이는 갖고 있습니다. 제가 정신병증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연극적인 행동을 좋아하고 V로 압운을 맞춰 말하는 데에 집착하는 등의 행동을 보았을 때, 브이는 일종의 편집증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요. 
요컨데 이 사람은 약간 미친 사람일 뿐, 스파이더맨이나 엑스맨류의 초능력자라고는 할 수 없을 거예요.  


  



"Remember, remember, the fifth of november.."
위 장면에서 알 수 있듯 브이는 라임 맞추기를 참 좋아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대사를 인용하거나 토마스 핀천의 소설 'V'의 한 대목을 낭송하는 등
연극적인 행동을 좋아하지요.
위 장면은 작품의 첫 챕터에서 브이가 영국의 국회 의사당을 폭파시키는 장면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이야기의 맨 마지막에 브이의 시체를 실은 열차가 이 건물이 폭파하죠.



그랬던 것이.. 작품이 영화화 되는 과정에서 브이의 복수 준비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삭제되어, 그가 어떻게 경찰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는지 도통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브이가 자신을 체포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을 귀신같이 알아내고, 또 방송국에 침입하는 등 신출귀몰한 활약을 보이는 게 가능했던 것은 그가 정부의 네트워크 시스템인 '운명'을 해킹했기 때문인데요, 영화에서는 이 '운명'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탓에 브이가 마치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적의 움직임을 훤히 꿰뚫고 있는 초능력자처럼 보이게 되었어요. 그 대신 만화에는 나오지 않는 브이의 현란한 칼부림 솜씨-_-;;를 영화 속에선 마음껏 볼 수 있어요. (이때문에 영화를 보고나서 만화를 본 독자들 사이에서 원작의 브이가 너무 약해빠졌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고 해요) 개연성 따위는 개나 주고 슈퍼 히어로로서의 브이가 보여주는 액션에만 공을 들인 거죠. 이해는 합니다. 영화사도 영화 흥행시켜서 먹고 살아야지요.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운명'을 통해 정부 각 기관에서 브이에 대한 보고를 듣는 아담 수잔 총통.






브이가 '운명'을 해킹하여 총통을 놀라게 합니다. 까꿍!





이야기의 개연성에 관련된 설정뿐만 아니라, 브이의 사상에도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습니다. 원작의 브이는 골수 무정부주의자입니다. 브이가 원한 것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부 그런 게 아니라 영국 사회를 극심한 혼돈에 빠뜨려 정부의 통제능력에 빅엿을 먹이는 것일 뿐이죠. 하지만 영화에서의 브이는 대단히 얌전해졌어요. "국민이 정부를 무서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무서워 해야 한다" 브이의 이 대사에서 알 수 있듯 2006년에 재탄생한 브이는 잔혹한 또라이 아나키스트가 아닌 굳은 의지의 민주 투사로 그려져 있습니다. 원작의 브이가 가지는 급진적 사상이 영화 제작국인 미국의 정서와는 그다지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영화의 브이는 초능력 내 친구♪ 민주열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 속 브이는 앞치마 두르고 요리도 합니다. 이 장면 덕분에 원작의 브이보다 더 귀여워 보입니다ㅋㅋ







요런 걸 만들어 팔아먹으려고 브이를 그렇게 만들었군요.
그래도 영화가 브이 캐릭터의 상품성을 높여 준 덕분에 피규어 제작업체 같은 중소기업이 먹고 삽니다.(?)








2. 이비 해몬드와의 관계








비밀 경찰들로부터 이비를 구출하여 자신의 거처로 데려 온 브이.
이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도 모르게 브이의 후계자로 키워집니다.





 

브이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목격한 이비.
브이에게 살인의 부당함을 역설하다 결국 브이에게 실망하고 맙니다.
브이는 이 시점부터 이비를 2대 V로 키울 마음을 먹은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부조리한 사회를 보는 이비의 눈을 뜨이게 하기 위해 가짜 감옥을 꾸민 후 이비를 고문한 브이.
브이가 준비한 연극 덕분에 이비는 브이와 같은 혁명의 의지를 마음에 싹틔우게 됩니다.
이비 역시 정부에 의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일이 있지만, 브이와 같이 강한 복수심을 갖지는 않습니다.
'깨우친' 후에도 살인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구요.
이 점이 브이가 이비를 자신의 뒤를 이어 혼돈 이후의 영국 사회를 이끌 재목으로 삼은 이유인 듯 합니다.






원작에서 브이와 이비의 관계는 사제지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의사적 부녀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지요. 브이는 이비의 교육을 위해 위의 사진 설명에 써두었듯이 가짜 감옥을 꾸미는 등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작품 말미에선 그 교육이 대단히 유효했는지, 이비가 마침내 자신을 훈육한 브이의 의도를 깨닫고 그가 죽은 후 그의 가면을 쓰고 두번째 브이가 되지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비가 브이의 후계자라는 암시가 그다지 강하지 못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브이의 마지막 폭파 작품(?)을 바라보는 이비가 그의 삶을 기억하는 마지막 인물이 될 것이라는 막연하고도 진부한 묘사가 보일 뿐이지.. 이비가 적극적으로 브이의 계획을 이어 수행한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그럼 브이는 왜 이비를 고문하기까지 하면서 그녀를 일깨우려고 노력한 것일까요? 그냥 마음 속 연인과 같은 사상을 공유하기 위해서? 영화 속의 이비는 수퍼 히어로의 가슴아픈 로맨스를 장식해 줄 장치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속 브이와 이비의 댄스 장면
스승님이랑 무드 잡고 그러는 거 아니야~

퍼온 건 재생이 안되네요. '유튜브에서 보기'를 클릭하세요..ㅜ







만화 속의 같은 장면입니다.
섀도우 갤러리에서 함께 춤을 추는 이비와 브이. (섀도우 갤러리엔 반주 깔아 줄 주크박스에 미러볼까지 없는 게 없어요ㅋㅋ)

비장해보이기까지 한 만화 속 댄스 장면에 비해 영화 속 같은 장면은 참 분위기가 달달합니다.



   




3. 조연 캐릭터의 삭제


만화 브이 포 벤데타에는 정부 요직에 앉아 있는 여러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브이의 복수담과 맞물려 이어집니다. 그 중에서도 로즈마리 아몬드는 의도치 않게 브이를 도와 총통인 아담 수잔을 살해하는 중요한 캐릭터죠.






정부 요직에서 일하고 있는 데릭 아몬드를 남편으로 둔 로즈마리.
이 두 사람은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한 부부였습니다.







델리아 서리지 박사를 죽이고 나오는 브이와 맞닥뜨린 데릭 아몬드는
마누라 겁주느라 총에 총알을 넣는 것을 깜박하여 그만 브이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데릭을 죽임으로써 브이는 의도치 않게 자신의 계획을 도와 줄 아군 하나를 얻습니다.
그게 누군가 하면...



브이에게 남편을 잃은 로즈마리는 그 후 정부를 비롯한 그 누구도 자신의 처지를 돌봐주지 않는 것에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낍니다. 자신의 남편이 정부를 위해 일하다 죽었는데 말이죠. 퇴폐 클럽의 댄서로 전락한 로즈마리는 결국 총을 구해 총통 아담 수잔을 살해합니다. 브이의 계획에 없던 살인이 결국 그의 복수를 돕는 결과를 낳은 것이죠. 
영화에서 정부 관련 인물들이 이야기의 진행에서 가지는 비중은 그야말로 공기에 가깝습니다. 로저 다스콤이나 데릭 아몬드는 그야말로 첫 등장이 마지막 등장이 된 수준이고, 로즈마리는 그나마 등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영화는 수퍼 히어로 브이의 원맨쇼를 풀어내려고 로즈마리 아몬드의 암살 결행과 같은 멋진 장치를 다 버렸습니다. 정말 아쉽고 또 아쉬운 결정이예요..





나가며- 만화의 진짜 주인공은 브이가 아닌 '혁명' 아닐까




미국 관객 취향 수퍼 히어로의 칼부림과 허세로 도배된 영화와 달리 원작 만화 'V for vendetta'는 브이의 이야기만을 작품 전면에 내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브이가 비밀스레 끌어나가는 혁명의 흐름을 조용히 관망하고 있을 뿐이지요. 작품은 복수심에 눈이 먼 브이의 인간적인 면모와 이비의 성장, 영국 정부의 몰락 과정을 과장없이 묘사함으로서 브이의 무정부주의 사상을 유치하지 않고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 제시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이 정도면 마가렛 대처가 이끌던 80년대 영국 정부를 까고자 했던 앨런 무어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지금까지의 고찰에서 미루어 보건데..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브이도 이비도 아닌 혁명 그 자체가 아닌가 합니다. 브이는 히어로가 되기에는 성격면에 있어서나 능력에 있어서나 결함이 많고 이비 역시 2대 브이 역할을 안심하고 맡기기엔 아직 좀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결국 이 이야기는 어떤 미친 사람의 절절한 복수극이자 파시스트 정권에 희생된 다른 이들의 삶을 다룬 비극입니다. 이 만화를 읽은 독자는 '우와~ 브이 멋있다 피규어 사야지'와 같은 감정이 아니라 마지막 장면 뒤에 이어질 영국 사회에 대한 걱정과 브이의 덧없는 삶에 마음 한켠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될 거예요. 이런 건 브이의 화려한 액션에만 공을 들인 얄팍하디 얄팍한 영화에선 느낄 수 없는 것이지요. 

여러번 반복해서 읽기를 권유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내용뿐만 아니라 데이빗 로이드의 작화 역시 멋있어서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꺼내서 들춰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운 만화랍니다. 마지막으로 만화의 여러 일러스트를 보여드리며 글을 마치고 싶군요. 다음 주에 만나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14. 08:30









































































































이상한 아저씨가 나왔네요.


이번 화에는 페이지 어딘가에 제가 숨어 있습니다 ㅋㅋ


어디에 있을까요. 찾아보세요.:-P 쉬워요 ㅎㅎ







'초원, 바람, 잡목림 > I know that girl' 카테고리의 다른 글

7화  (8) 2011.10.26
6화  (8) 2011.09.29
4화  (19) 2011.09.01
3화  (17) 2011.08.10
2화  (22) 2011.08.0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1. 03:43
















 

 












 


 









 

 

 

 
































 

 







하루 늦게 포스팅 합니다.ㅠ 번번이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합니다..


늦은 주제에 이런 말씀 드리기 참 면목 없지만.. 사정 상 앞으로는 격주 연재 를 하려고 합니다.(저는 은규처럼 아직 학생이랍니다.. 개강을 해서..ㅠㅠ)

연재를 쉬는 주 수요일에는 '초원, 바람, 잡목림'폴더에 만화 관련 포스팅을 올리려고 합니다.

다다음주에 5화를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 만화 소개글도 기대해 주세요.

'초원, 바람, 잡목림 > I know that girl' 카테고리의 다른 글

6화  (8) 2011.09.29
5화  (15) 2011.09.14
3화  (17) 2011.08.10
2화  (22) 2011.08.03
1화  (21) 2011.07.2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24. 08:30


일주일동안 안녕하셨나요? 유수입니다.
날씨가 많이 시원해졌군요. 이제 따가운 햇살만 좀 기운을 잃으면 정말 가을이 왔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음....







뭐야 만화는 없고 이상한 게 또... 




"어...8월 24일에 4화로 만나자며...왜 또 그림은 없고 글만 있지?"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실 여러분의 머릿속엔 분명 이러한 의문이 떠올라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 4화는... 완성을 못했습니다.


그래요! 펑크입니다! 예고도 없이 원고 펑크냈어요, 제가!



참 잘했어요~
조커만도 못한 인간아




연달아 2주 휴재입니다! 여러분이 오냐오냐 해주시니까 배가 불렀네요!ㅜㅜ
4화를 기다리고 계셨을 분들께 정말 죄송스런 마음 뿐입니다.. 다음 주 수요일엔 꼭! 4~5화 같은 4화를 꼭 보여드릴게요!
은규 잊어버리지 말아주세요 ㅠㅠ



만화가 없는 대신 이번 주에도 역시! 만화 관련글을 여러분께 보여드리려 합니다.

 


지난 주에 프랑스 만화 및 세계 여러나라의 만화를 볼 수 있는 블로그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이번엔 블로그가 아닌 '만화'를 소개 하려고 합니다.
제목에서 이미 알아채셨을 것으로 압니다. 네, 이번에 소개해 드릴 만화는...일본의 만화가 이케다 리요코 1975년부터 1981년까지 연재한 「올훼스의 창입니다.






주인공 유리우스의 일러스트
그리고 저 창이.. 네 그 올훼스의 창입니다.






그림이 정말 전형적인 70년대 일본 순정만화 같지요?
그런데.. 어떤 만화랑 그림이 좀 비슷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시나요.

네, '올훼스의 창'은 사실...정말 유명한 만화, 어렸을 때 KBS에서 애니메이션 판으로 봤었던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작가의 또 다른 작품입니다.






비슷하지요? 90년대에 나온 애장판 표지입니다. 외갓집 오래된 책장에서 뽑아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인 이케다 리요코. 1947년 오사카 출생으로, 67년부터 만화가로 활동했습니다.
아아.. 미인이십니다. 정말. 그래서 그림도 그렇게 예쁜 걸까요.
그럼 내 그림도 예뻐야 하는데..
잘못했어요.



80년대부터 해적판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던 작품이긴 하지만.. 당시 검열로 인해 만화의 배경이 러시아 혁명에서 핀란드 독립운동(;;;)으로 바뀌는 등 심각한 왜곡이 있었습니다. 위의 90년대에 나온 애장판에선 러시아 혁명으로 고쳐져 나왔지만 인물의 이름이 멋대로 축약되어 있는 등 이것도 문제가 많습니다. 제대로 된 번역으로 읽고 싶은 분은 2001년에 대원씨아이에서 나온 단행본을 읽어셔야 하실 거예요. (근데 이 판본에는 비문이 많습니다.. 번역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건지..)





들어가며- 배경소개



널리 알려진대로 '베르사이유의 장미'가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면, 그 다음 작품인 '올훼스의 창' 은 1911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다만 1,2부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주인공인 유리우스가 러시아로 밀입국한 3부부터는 러시아 혁명의 진행 과정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집안의 유산 상속 문제로 여자임을 숨기고 남자 행세를 하며 음악학교로 전학 온 유리우스, 불우한 천재 소년 피아니스트 이자크, 그리고 러시아에서 독일로 망명하여 고국으로 돌아갈 때를 기다리며 바이올린과 학생으로 신분을 감추고 지내는 클라우스, 이 세 사람이 독일 레겐스부르크의 성 세바스찬 음악 학교에서 만나 서로 사랑하고, 자신들을 둘러싼 비밀을 풀어나가며 상처받고,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이 세 명이라는 점이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비슷하지요?

제목이 되는 '올훼스의 창'은 세바스찬 음악학교 구석에 있는 오래된 탑의 창으로, 그 창을 통해 서로를 만난 남녀는 반드시 사랑에 빠지지만..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올훼스'는 오르페우스의 옛 표기로 보입니다.)와 에우리디케가 서로 영영 이별하게 되었듯이 반드시 비극적인 결말을 맞고 만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창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커플 중 중심이 되는 인물은 모두 이 창에서 만납니다. (가톨릭 학교에 왜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 주인공인 유리우스-이자크-클라우스도 이 창에서 만나지요. 
이자크는 유리우스를, 유리우스는 클라우스를. 그리하여 유리우스와 클라우스는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이자크는 유리우스를 짝사랑하게 됩니다. 아.. 연애물의 케케묵은 클리셰, 삼각관계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삼각관계는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구요.





                                                        유리우스와 이자크가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본 고딩시절 과외 선생님이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이거 BL이야?"
                                                                           아니예요 선생님....-_-







                                                              같은 창에서 클라우스를 만난 유리우스.
                                   만나기는 이자크를 먼저 만났는데, 왜 유리우스는 클라우스를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이렇게 비밀 많은 선후배간의 사랑이 싹트고..






배경 설명은 이쯤 해두고...
인물 소개를 중심으로 내용을 알아볼까요?

세 주인공의 소개만 하죠. 이 만화가.. 등장인물이 50명이 넘거든요...ㅠ
 






주인공 1. 유리우스


 

 
 

이 작품의 히로인입니다. 레겐스부르크의 거상巨商 아렌스마이야씨의 숨겨둔 자식으로, 아버지의 본처가 죽자 첩이었던 어머니와 함께 아렌스마이야 가로 입적합니다. 유리우스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유산을 다 빼앗기게 생긴 배다른 두 누나 마리아와 아네로테와는 당연히 웬수지간이구요.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배워왔기 때문에 성 세바스찬 음악학교로 편입하게 됩니다. 이자크와는 동급생으로 15살, 5학년 입니다. 피아노의 천재인 이자크와 바이올린 천재인 클라우스 사이에 끼여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피아노 실력은 그저 그랬던 모양입니다. 작품 속에서 교수에게 혼나는 장면도 나오구요. 앞서 말했듯 올훼스의 창에서 이자크와 클라우스를 만나 그들과 연인으로 엮이게 됩니다.

아렌스마이야 가의 유산을 노린 어머니의 계획으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자아이처럼 길러져왔습니다. 그 때문에 얼굴은 곱상하지만 행동은 아주... 거칠지요. 툭하면 시비를 거는 라이벌 상회의 아들놈과 주먹다짐은 예사요, 후처로 들어온 어머니를 비웃는 다른 어른들을 집에서 내쫓기도 합니다. 16살이 넘어가면서 다른 남자애들이 자신보다 힘이 세져 싸움질은 곧 그만두게 되지만요.

첫 등장에는 이렇게 당차고 거칠었던 여인이었는데.. 집안의 비밀을 알게되고,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던 한 사람인 주치의 얀 선생을 죽여 살인자가 된 후, 소중한 이를 하나하나 잃어가면서 결국 사랑에 목숨거는 전형적인 히로인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어 저는 약간 실망이었어요.
1부 마지막엔 가문의 비밀 중 한 축이 되었던 아네로테 누나를 죽이고, 자신을 버리고 혁명을 위해 러시아로 돌아간 연인 클라우스를 따라가 그곳에 10년이 넘은 세월을 살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혁명의 난리통 속에 남편이 된 클라우스를 잃고 결국 실성한 상태로 고향으로 돌아오지요. 작품의 마지막에서 제정신을 되찾긴 하지만 집안의 오랜 원한관계로 엮인 이의 손에 결국 목숨을 잃고 맙니다. 남자 하나 잘못 만나(?) 너무도 기구한 인생을 산 인물이어서 보고 있자니 마음이 대단히 아팠습니다. 하아.. 좀 답답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작품의 중심축이 되는 인물이니 그만큼 그 인생에서 큰 울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울림이란 게 탄식과 슬픔이라 그렇지...아무튼 어머니의 욕심으로 일찍 인생이 뒤틀려버린 인물입니다.




주인공 2. 이자크






유리우스와 같은 날에 세바스찬 학교에 편입해온 학생입니다. 피아노 연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구요, 베토벤의 작품을 주로 연주합니다. 약간은 고지식하고 순진한 면이 있어 주변 사람들이 답답해 하기도 합니다. 일찍 부모를 잃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여동생과 살고 있었지만, 라이벌 학생의 음모로 장학금이 끊겨 술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생활비를 번 적도 있습니다. 

편입 첫날에 올훼스의 창에서 유리우스를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유리우스가 클라우스 역시 그 창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 고생을 하지요. 유리우스가 러시아로 떠난 후 그녀 때문에 미뤄왔던 오스트리아 유학을 떠나 자신의 연주에 대한 심각한 고민으로 번민하고, 처음으로 사귀게 된 교수의 딸에게 어장관리를 당하는 등(흑흑) 갖은 고생을 겪은 후 결국 피아니스트로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전 18권 중 8권에서 10권까지의 분량인 2부는 이자크의 유학생활과 귀향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어요. 

유럽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던 것도 잠시..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유증으로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되어 결국 명예와 돈, 아내를 모두 잃은 후 어린 아들과 함께 고향인 레겐스부르크로 돌아오게 됩니다. 사실 전 '올훼스의 창'의 이야기가 결국 이자크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세 인물은 공통적으로 작품의 어느 시점에서 고향을 떠나게 되는데요,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 다른 인물의 인생, 이야기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된 건 이자크가 유일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제가 예술가의 삶을 다룬 작품에 흥미를 느끼기 쉬운 인간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향인 레겐스부르크로 돌아온 이자크.
제가 참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주인공 3. 클라우스







그림 속 의상에서 알 수 있듯, 사실 러시아 사람입니다. 배다른 형이 공산주의 혁명 준비에 가담했다가 처형당한 후, 형의 약혼녀와 함께 독일로 망명하여 '클라우스'란 가짜 이름으로 신분을 감추고 살고 있어요. 진짜 이름은 '알렉세이'입니다. 망명 생활 중 학교에서 만난 후배 유리우스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혁명의 때가 오자 그녀를 버리고 러시아로 떠납니다. 아버지와 형으로부터 바이올린 연주의 재능을 물려받아 학교에서 천재 소리를 듣던 인재였는데.. 혁명에 몸을 던지며 그 재능을 포기하고 투사로서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정부군과의 교전 중에 사로잡혀 6-7년의 옥고를 견디다 탈옥한 후, 러시아까지 쫓아온 유리우스와 우여곡절 끝에 재회하여 짧게나마 그녀와 가정을 꾸리고 살게 됩니다. 결국은 혁명이 이루어지기 직전 유리우스의 실수로 암살 당하고 마는데, 그 과정이 꼭 저승의 입구에서 실수로 뒤를 돌아보아 에우리디케를 영영 잃게 된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와 흡사 합니다. 올훼스의 창에서 만난 연인다운 비극적인 결말이지요. 유리우스와 마찬가지로 참 기구한 인생이기도 하구요.

투사로서의 그의 삶은 11권에서 17권에 이르는 3부에서 주로 다뤄집니다. 첫 등장에서 불량소년과 같은 모습을 보여운 클라우..아니 알렉세이가 강한 의지와 행동력을 갖춘 혁명투사로 거듭나는 과정은 자못 감동적입니다. 그의 최후는 치열했던 생전의 삶에 비해 너무도 허무하지요.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러한 허무한 끝마침이 전설의 힘에 따라 인물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작품의 설정이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한 문장을 다 쓰고 끝에 호기롭게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이 딱 완결된 인생은 그리 흔하지 않다는 걸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잖아요? 별안간 떨어진 꽃망울과 같이 져버리는 인생이 흔하디 흔하지요. 알렉세이의 삶이 그러했고, 러시아 혁명으로 세워진 소련 역시 수십년 후 허무한 결말을 맞은 것과 같이 말이죠.  




 


나가며- "이 만화엔 인생이 있어요."








작품은 유리우스의 최후에 이어지는 이자크의 평화로운 일상으로 끝을 맺습니다. 위의 이미지가 마지막 페이지입니다. 서른이 넘은 이자크가 음악학교의 어린 학생들을 보며 자신의 청춘을, 인생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요. 이 만화엔 인생이 있어요.

이케다 리요코는 단행본으로 18권에 이르는 작품을 통해 20세기 초의 독일과 러시아의 정세, 50명이 넘는 등장인물들 각각의 이야기, 그리고 그 중심이 되는 세 주인공의 인생을 치밀하게 구현해냈습니다. 감수성은 예민하지만 아는 건 별로 없었던 중학생의 저는 이 작품을 다 읽고 나서 가슴이 뛰어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만드는 거야' '작품에 인생을 담아 낸다는 것은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일거야' 막연히 글 짓는 일을 하고 싶다고만 생각해왔던 중학생의 저에게, 이 작품은 거대한 충격이자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지금 이 글을 포스팅하면서 그 순간을 떠올리니 왠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후우..!


여러분은 이 작품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저는 이제 막 만화가가 될 준비를 시작한 애송이에 불과하지만, 언젠간 이 작품처럼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기엔 분명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만...여러분도 분명 '올훼스의 창'을 읽고나면 세 주인공의 삶 때문에 마음 속이 온통 흐트러져 버리는 경험을 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정말이에요. 도도히 흐르는 강을 보는 듯한 느낌의 만화 '올훼스의 창'이었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