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세이'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2.02.07 #27. 어느 날 결혼식을 다녀오며 2
  2. 2012.01.24 #26.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5
  3. 2012.01.17 #25. love letter 2
  4. 2011.12.27 #22. 사랑하는 자, 차별받지 않게 하라 2
  5. 2011.11.15 #16. 사랑한다 6
2012. 2. 7. 08:30

 저는 결혼식에 가는 게 좋습니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양한 것이 결혼식마다 드러나는 것도, 특히 - 그 부부와 집안이 어떤 가치관을 추구하느냐가 드러나는 - 주례사를 듣는 것도 좋습니다. 결혼식마다 주례사에 들어가는 내용이 생각보다 천차만별인 점이 아주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어디를 가든 공통적인 얘기는 상대방의 결점을 감싸라는 얘기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지난 여러 연애들이 결점을 감싸지 못해 헤어졌습니다. 그러니 백년해로하기 바라는 부부에게 마땅히 옳은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연애에도 어느 정도의 경험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지금까지의 경험들이 해야 할 과제를 마친 것처럼 든든하고 기쁘지만. 그야말로 이제 '어느 정도'의 경험은 겪었다할만한 상황이 오면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부터도 이별을 계속 겪는 것이, 맞는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인지 아니면 내 그릇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인 건지 혹은 둘 다인건지.

 어느 쪽이든 오늘은 무척 기분이 묘하였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결혼식이었으니 아마 이 결혼식 때문은 아니었을 겁니다. 새삼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고 그 생소하고 낯선 느낌이 어렴풋이 낯익었습니다.


 그리고 외로웠습니다. 

 

 지금 혼자인 이 시간 때문이 아니라,
 혹시 영영 당신을 만나지 못할까봐 무척.


 아마 우리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그리고 혼자인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마음은 더욱 쉽게 우리 가까이 찾아올테죠.



 그러나 조금 침착해져봅니다. 너를 만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자신의 상황에서 사람을 만날 기회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면, ‘만나는 일’이 생기기 위해 그 이상 무엇을 더 노력할 수 있는 걸까요? 노력해볼 일이 전혀 없는 건 아니겠지만 사실 그건 노력에 비례해서 반드시 성과가 나오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더 늘려보고, 내가 원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을 주로 더 찾아보는 것 등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the one을 만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조바심을 낸다한들 "만나기 위해"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제 진인사대천명. 다만 결국 내가 원하고 네가 원하는 삶을 함께 만들어 갈 서로를 찾고 싶은 거라면, 지금은 그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빨리 만들어 가는 것밖에는 할 수 없지 않을까.
 

 그래서 마침내 너를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게. 그리고 그 때엔 부디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만나기까지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더라도, 
내 소울 메이트. 너를 만날 수만 있다면.

 


 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사람들이 식장 여기저기의 꽃들을 조금씩 가져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혼식의 꽃은 그렇게 나누어 가져가서 행운을 얻어가는 거라네요.




  결혼식장에서 가져온 바로 그 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일생의 메이트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이 가기를 기원합니다.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s : 우리 블로그에 알찬 답글을 달아주셨던 직업현자님이 일생의 메이트를 만나 3월 3일에 백년가약을 맺으신대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 
        우리 모두 함께 축하하고 그 기운 좀 나눠받아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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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 24. 08:30


1.

 빼도박도 못하게 이제 신년이군요.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어떤 계획들을 가지고 계시나요?





2.

일요일 포스팅을 담당하시는 스릉님이 번호매겨 포스팅하신 포맷이 무척 좋아서 저도 따라해보아요.

저는 원래 요 포맷을 좋아해요. 그래서 일기쓸 때 이렇게 번호매기는 포맷을 자주 쓰는데요, 그래선지 저번 일요일 포스팅은 이전의 포스팅보다 좀더 친근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전의 포스팅이 제복입은 느낌이었다면 이번 포스팅은 캐쥬얼해서 더 진솔한 느낌이랄까? 어떤 게 더 좋다는 얘기는 아니어요. 특히 저는 제복입은 사람을 좋아...

이 포스팅을 읽으시는 분들도 좀 더 친근한 느낌 받으신다면 좋겠네요ㅎㅎ


3.

저는 제사 음식을 무척 좋아하는데

올해는 너무 간이 짜서 슬펐어요 T-T ...

그래도 약과랑 한과랑 곶감 등은 잔뜩 챙겼어요  호호.


4.

명절이란 자고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례 가족과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지만서도 
올해는 이런 생각 해봅니다.

모두 성인이고 모두 싱글일 때 친구들끼리 한 집에 모이는 겁니다. 잘 아는 사람 몇이 주축은 되겠지만 각자의 지인이나 손님들도 함께 모여서 잘 모르는 사람끼리도 모여보는거죠.
그리고는 전도 부치고 송편도 빚고 제사 음식 만들어서 제사도 지내보고
각자 한 해의 운을 빌면서
끝나고는 제사 음식 나눠먹으면서 정치얘기든 일상 얘기든, 혹은 화투를 치든 술을 마시든, 명절 특선 TV를 같이 보든 뭣하면 윷놀이를 하든지 뭐든지 간에

고렇게 모여 놀아도 재밌겠다.


4.

하긴 그러면 일가친척들은 또 언제 만납니까.


5.

때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바꿀 수 없는 본질적인 나, 내가 사랑하는 나 자신을 타인들은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면,
단지 그 부분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수 없는 당신의 어떤 부분이
다수의 타인으로 하여금 당신이라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6.


새해에는 <여러분>의 필진들이 한번 모여보려고 요래조래 시도를 해보고 있는데요
전 필진 현 필진 관계없이 한번이라도 흔적을 남겨주셨던 분들과 모이려는 건데,

과연 만날 수 있을지? 

해를 거듭할 수록, 모임의 인원이 많을 수록, 만나기는 어려워지지만
어려운 만남 하게 된다면 후기 올릴께요 :D


7.


올해도 우리 힘 내보아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 17. 08:30

 여러분 혹시 영화 <러브레터>(1995)를 기억하십니까?

 질문을 던질 때만 해도, '기억 못하실리가!' 라는 생각으로 한 말인데 벌써 17년 전 영화군요? 모르는 분들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기억하는 분이 틀림없이 더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혹 영
화를 보지 않은 분들도 이 영화의 '오겡끼데스까'의 장면만은 알고 계실 거에요. 그 장면은 영화보더 더 유명하고 인기를 끈 장면이면서, 영화 내에서는 한 명의 히로인인 히로코의 감정 클라이막스 장면이기도 한 중요한 씬입니다만,  사실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연정'의 주인공은 또 다른 히로인인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아닌가 합니다. 


                                                             봐요, 히로코도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요.

 이 영화의 묘미는 여기서 보여주는 "매우 뜸들이는 연정"에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마지막 씬에 도달하기 전까지 여자 이츠키 그녀는 남자 이츠키 그가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알지 못합니다. 주변의 추궁에서 '그런 거 아니야'라고 일관하죠. 중학생 때 반 아이들의 짖궂은 놀림에 그녀가 울자 그가 클라스메이트를 때렸을 때부터 우리는 다 알겠든데... 

 그렇지만 그녀만 탓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왜냐면 자신의 감정을 그녀보단 분명히 알고는 있었던 그도 도대체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를 않습니다. 사실 요즘의 우리들이라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어!'라고 말할만한 행동들 뿐이거든요. 이를테면 이런 거죠.



 새학기 첫날, 출석을 부르는 시간에 처음 서로를 의식하게 되는 성과 이름이 같은 두 어린 남녀. 이름이 같은 사람을 쉽게 잊을 수는 없죠. 이때부터 필연적으로 둘은 서로를 의식하게 됩니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쓰기 때문에 혈연이 아닌 남녀가 이름이 같다면 놀림당하기 십상입니다. 게다가 저 때는 가장 철없다는 중학생 시절 아니겠습니까?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두 남녀는 결국 아이들의 장난으로 도서위원일을 함께 맡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는 거의 일을 하지 않기 일쑤. 그리고 이상한 장난을 치곤 합니다.




 그러자 나중에, 그녀는 히로코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이건 우리도 미처 몰랐겠다! 싶은 강도의 어필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은 요즘 우리가 말하는 대로 그가 그녀를 충분히 많이 좋아하지 않아서였을까요? 놀랍게도 아닙니다. 왜냐면 그녀와 닮은 히로코를 본 순간, 여자에게 쑥맥인 그가 첫눈에 반했다,며 고백을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이라는 환상이 가진 힘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진실하고 강력한 감정이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던 거죠.

 그러나 계속 그 정도 범위에서 그는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그녀에게 약간은 심술을 부리지만, 뭘 더 어쩌지는 않습니다. 그냥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뿐. 신경을 쓰고 있을 뿐, 뭔가 잘해준다거나 사귀자고 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저 좋아할 뿐이죠. 감정이 표현될 때 해소되는 것이라면, 이 감정은 끝끝내 해소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지연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더는 그가 그녀를 볼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오자, 그는 그녀에게 러브레터를 전하지만, 그녀는 그게 러브레터인지 알지 못한 채 또 수 년이 흐르고 맙니다. 그 러브레터란 것도 걸작인 것이 그녀의 이름을 적은 독서카드 뒤에 그린 그녀의 초상화이거든요. 우회와 지연을 더하고 더한 엄청난 지연이죠.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뜸을 들인 그 마음은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야 드디어 수신인에게 도착합니다. 온 러닝타임동안, 그와 그녀가 처음 만난 이후부터 그는 죽고 그녀만 남아 살아가고 있을 때까지의 시간 동안, 뜸들이며 무르익은 그 감정은, 어린 사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무척이나 큰 감흥으로 터지게 됩니다.

 만약 그 마음이 더 일찍 그녀에게 전해졌다면? 
 그녀가 그의 편지를 받았을 때 발견을 했거나, 혹은 아예 그가 더 단도직입적으로 마음을 고백했다면?
 과연 영화는 지금 같은 여운을 남길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묘미는 바로 그 "뜸들임"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본 그 영화가 담고 있는 그 순수한 사랑의 감정에 무척 매료되면서도 꽤나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것만으로 족했던, 뭔가를 더 바라지도 않거나, 감히 바라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안으로만 담아둔 마음을 오래오래 유지했던 '순정어린' 때는 언제가 마지막이였는지 기억하고 계시나요? 만약 이게 현재의 우리들에게 들려진 얘기라면  아마 그가 친구를 때린 그 포인트에서 이미 '요거는 사랑이구만'이라며 잽싸게 그 포인트를 찍어내서 그 감정들을 모두 해부해 드러내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너 나 좋아하니?'라고 도발적으로 말한다던가, 키스부터 했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는 나랑 사귀자, 느니 하면서 말이죠. 

 우리가 더 이상 그런 순정어린 사랑을 하지 않게 된 건 우리가 더 이상 중학생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17년 전과 지금의 사회분위기 자체가 많이 달라진 탓이 있지 않을까요? 빨리 빨리, 어서 결론을 내자, 라는 느낌으로 말입니다. 혹은 이제는 무언가를 진득하니 안고 가기보다는 욕망을 즉각적으로 드러내어 빨리빨리 해소해 버려야 하는 문화가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뭔가를 오래 안고 있기에는 해야 할 게 너무 많잖아요? 원인을 찾자면 이것저것이 될 수 있겠지만 요는 문화 자체가 즉각적이고 빠른 방향으로 변화했고 연애 문화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중학생도 저런 순정어린 사랑을 잘 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요.

 그런 변화를 두고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런 순정어린 사랑이 반드시 더 좋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요. 무조건 회귀하자는 것은 대체로 위험한 생각일 수 있죠.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간다"는 사실은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해야하는 합당하고 현명한 이유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그렇다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천천히, 은은히, 뜸들이는' 사랑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 위상 혹은 유의미한 지점이 무엇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소개팅이나 선처럼 애초에 어떤 목적을 가진(조건이 맞으면 함께 한다는 식의) 만남을 주로 하고 있는 요즈음이라 그런지, 조금은 저 순수한 사랑이 그립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것으로 족했던, 오래오래 그 감정을 가슴 속에서 숙성시켰던 그런 때가. 그래서 쉽게 변하지 않았던 마음이라는 것이. 사랑이 소모품처럼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순수한 연모의 정으로 남을 수 있었던 그런 때가. 감정도 비교적 빨리 타오르고 빨리 식는 지금의 문화에서
오랜 시간 뜸을 들였을 때 감정이 더 깊어진다는 것은 예전의 사랑이 주는 교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조금 더 천천히 진득하게 사랑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조금은 욕망을 절제해 가면서 말이죠.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S.


더딘 사랑

 

                                           이정록

돌부처는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말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2. 27. 13:08

 

 

 요즘 나라 일에 워낙 굵직한 사건들이 많죠. 그래서 지금은 조금 덜 핫한 이슈가 되었지만 ‘서울학생인권조례’ 역시 한 주 전만 해도 꽤나 논란 속에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조례안이 상정되면서부터 그 내용과 통과여부를 놓고 지지층과 반지지층의 설전이 눈에 띄었는데요, 사실 상대적으로 덜하다 뿐이지 사안 자체에서는 이 조례안이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이후에 논란이 더욱 커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본회의를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서 재심의도 거론되고... 재심의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지지층과 반지지층의 시위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군요.

 

 힘겹게 통과하고도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이 조례안의 주요 내용을 여러분도 많이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논란이 되는 주요 내용은 동성애와 임신·출산에 따른 차별 금지, 교내 집회의 자유, 양심과 종교의 자유보장 등의 내용입니다. 이 중에 가장 두드러지게 언급되는 부분은 역시 동성애와 임신 출산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인 것 같습니다. 이 조례안이 동성애나 임신 출산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으음. 그 논리구조도 모르겠는 바는 아닙니다. 어떤 상황을 터부시하지 않고 그것도 가능한 상황이며 다른 상황과 똑같이 대우받는 상황이라고 여긴다면 그 상황에 거부감이 없으니까 그걸 멀리하려하지 않게 되리라는 생각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 입장에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벌로(차별로) 겁을 주면 그 내용을 피하려고 하는 효과는 분명 있겠지만 그건 너무 해당사항이 없는 다수의 입장만 고려하는 내용이라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좀 무섭기까지 해요. 임신 출산을 하거나 동성애 성향을 가지지 않은(혹은 가졌다고 티내지 않는) 다수 학생들이 그런 내용에 해당되지 않기 위해 그런 내용에 해당하는 소수 학생들을 차별한다는 게 말입니다. 혹은 차별받는 소수 학생이 다수의 해당 내용으로 돌아서게 만드려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기대되는 효과라는 게 참 애매합니다. 이미 임신 출산한 학생이 그런 일 없었던 것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동성애 성향을 지닌 학생이 자기 성적 성향을 맘대로 바꿀 수 있는 건가요? 제가 동성애 성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후자의 질문은 정말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해도 반드시 이성애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아 물론, 그게 살아가기에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위험이 없으니까, 혹은 소수자가 아니니까 더 편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만, 근본적으로 피하고 터부시해야할 이유는 뭘까요? 솔직히 말하면 저에겐 그 조례안의 내용이 좀 새삼스럽기까지 했어요. 읭? 그럼 여태까진 차별해도 되는 거였어? 라는 생각이 들었달까요. 그리고 특히나 동성애 차별금지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당연한 얘기인 것 같은데 왜 이렇게까지 반감을 사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저에게 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의견이 있는 분은 저에게 귀띔 좀 해주세요. 그런데 제가 체감하고 있는 옳고 그름과는 달리 막상 생각을 시작하니 이 판단이 단순한 문제는 아니더군요. 애초에 동성애라는 개념에 대해서 차별금지 찬성입장과 반대입장의 전제나 정의가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고, 차별금지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그 내용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파고들수록 혼란스러워져서 그 부분은 좀 더 생각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제가 차별금지를 지지하는 동성애란 같은 성을 사랑하는 성적 지향을 말합니다.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성적 성향의 한 종류이고, 어떤 성을 대상으로 하느냐의 기준에 따라 구분되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개념이에요. 대상으로 하는 성이 다른 것은 저에게 별다른 거부감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진실하고 각자를 성장시키는 동성연애가 있다면 저는 무척 아름답다고 느끼고 좋아할 거에요. 하지만 무분별한 성관계나 도구적인 관계가 성행하는 동성연애가 있다면, 그런 이성연애와 마찬가지로 싫어할 거에요. 그렇지만 싫어한다고 해서 그들의 인권을 보장하지 말고 차별해야 한다면 그것에는 쉽게 찬성할 수 없어요. 물론 싫어하는 연애가 한 쪽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로 일어났다든지 속아서 일어났다든지 피해가 너무 강력하다든지 하는 경우에는 제제와 처벌을 도입하는 데 찬성할 수 있지만, (결국 어디까지를 한 주체의 자유로 인정할 것인지의 문제일까요?) 그래도 인권을 보장하지 말자는 부분은 매우 조심스러울 것 같습니다. 사형수에게도 인권이 있잖아요.

 

 어쨌든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평소 동성애에 대한 암묵적인 차별이 얼마나 성행했었나를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지상파 방송에서 혹시 동성애자에요? 라고 묻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나는 이성을 엄청 좋아합니다. 라는 대답을 전제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진짜로 성적 성향을 궁금해 하는 질문이라기 보단 “에이, 아니죠?”라며 웃어넘길 준비를 하고 있는 질문 같달까요. ‘오해’자체가 웃음의 포인트가 아니냐는 생각도 하실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 오해가 항상 한쪽 방향으로만 전개된다는 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때로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오해하거나 하는 장면이 등장해서 거기서도 사람들이 웃게 된다면 그건 웃음 포인트가 오해에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언제나 동성애자로 오해하는 경우만이 웃음거리가 된다면, 동성애 자체가 웃음거리인 양 여겨질 수 있으니까요. 문제가 이런 차별이 너무 일상적으로 스며들어 있었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오른손잡이는 왼손잡이의 불편함을 모른다잖아요. 저도 오른손잡이라서 왼손잡이들이 불편함을 토로하는 말을 들을 때 ‘어머 그렇게까지 불편할 게 있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그저 왼손잡이도 이러할진데 비유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동성연애자는 얼마나 불편함을 느낄까 싶습니다. 사실 나영이부터도-최대한 그런 편견을 배제하려 노력은 했지만-이성애의 연애를 중심으로 해서 쓰이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혹시 그로인해 마음 상하게 만들 만한 글은 없었나? 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되었어요.

 

 그러므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지지합니다. 누구를 사랑하건, 인간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지지합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상대에게 피해주지 않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사랑을 지지합니다. 이 논란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포함하여 계속되었다는 점이 또 조금 슬펐어요.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이라는 말은 크리스마스의 모토라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죠. 여튼 저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지지합니다. 내년에는 우리 모두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래보아요. 이제 새해에 인사드리겠군요. 여러분 모두 연말 마무리 잘 하시길. Happy New Year!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15. 08:30



사랑한다는 말 앞에는 항상 지금은, 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순간에 피었다 사라지는 꽃처럼 원래 그런 것이다.
오래 지속되는 사랑은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 아니라
어제 핀 꽃이 지고, 오늘 다시 새롭게 꽃이 피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 마음은 어제의 마음이 아니라, 오늘 새롭게 피어난 마음이다.
그러니 당신은 어제의 사랑이 오늘 피어나지 않았다고
지난 사랑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말았으면 한다.

비록 오늘은 꽃이 피지 않았고
앞으로 더 이상 그 꽃은 피지 않겠지만,
그래도 어제와 이전날에 피었던 꽃이
살아 숨쉬는 생명으로 진정성을 가졌던 일만은 사실이지 않은지.

사랑이 끝났다는 것은 무척 가슴아픈 일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우리의 사랑이 끝난 일 때문에,
우리의 지난 사랑을 의심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 휴재 공고를 하며 올린 '새로운 시도'입니다. 그 동안의 글이 너무 분석, 설명 위주의 글이었던 것 같아서 조금은 감성적인 쪽으로 글을 써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 비슷한 내용을 건의해주시기도 했고요. 애초에 '칼럼'이 아니라 '에세이'로 이 코너를 소개한 것도 이런 분야의 글을 염두에 두었기도 했기 때문인데요, 출처가 없는 것은, 제가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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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