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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 20. 08:30


이름 : 아쉽지만 몰라요
나이 : 20대 중후반 혹은 30대 초반?
직업 : 소위 간지가 풀풀 나는 큐레이터
만남 :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미술관


여러분, 안녕하세요! 장장 일주일만에 만나뵙게 되네요. 장마와 폭염이 들이닥친 그동안 잘 지내고 계셨나요? 저는 덕분에 건강하고 즐겁게 한 주를 보냈답니다. 영화도 많이 보고 공연장도 찾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이만하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네요. 흐흐흐 그나저나 본격적인 첫번째 포스팅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조금 더 재미있고 기발한 구성을 찾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다양한 포맷을 시도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그래도 우연적이고 충동적이며 자연발생적인 '우리 처음 만난 날' 코너답게 막 가자는(?) 방향으로 나갈 것 같네요. 기념할만한 첫번째 글의 주인공은 바로 디귿 미술관의 큐레이터, 사진전에서 만난 도슨트 언니입니다!

"touch me, touch me, touch me now! 나를 감동시켜봐"

다들 익숙하실 것이 분명한 이 노래는, 싸이가 작곡한 아이비의 3집 타이틀곡입니다. 대부분 아이비란 가수가 발산하는 농염한 섹시미 때문인지 여기서 'touch'란 단어를 '만지다'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가사에서도 나와있듯이 'touch'는 '감동시키다' 혹은 '마음을 움직이다'란 뜻도 지니고 있지요. "만져달라는 게 아니라 감동시켜달라는 의미"라며 2009년 어느 인터뷰를 통해 아이비 씨가 직접 전한 이야기입니다. 전자든 후자든 모두 말이 된다는 점에서 꽤 흥미로운 중의적 표현이었고 그래서 확실히 각인된 제목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 또 한 번의 'touch me'를, 그리고 '감동시켜달라는 뜻'이라고 말하는 오늘의 주인공을 만났습니다.




이달 초에, 존경하는 박오빠(무려 블로그 축전까지 작성해주심)와 사진전을 보기 위해 효자동 즈음에서 만났습니다. 약속 자체를 잊고 있었던 제가 30분 정도 지각을 하는 동안, 오빠는 한 카페에서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며 '참을 인'을 두세번쯤 새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박오빠와 함께 찾은 사진전은 그에 앞서 훈석님, 토끼고양이, 절미와 함께 미술관을 찾았다가 월요일 휴관이란 엄청난 수난을 겪는 등 우여곡절이.. 아무튼 범상치 않은 전시회만은 분명했습니다. 사진전의 이름은 'touch me'! 주인공은 바로 유르겐 텔러란 이름의 세계적인 사진작가입니다. 상업과 예술을 넘나드는 유명한 패션작가이기도 합니다.


                                                                                                                                       (출처: 중앙일보)

나른하고 몽롱한 이미지, 섹슈얼하면서도 건조한 느낌이 나는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사진작가의 얼굴 치고는 무척 친근한 편이죠? 게다가 진달래꽃! 은근 잘 어울리네요. 왠지 고집이 센 옆집 남자, 정육점의 터프한 주인아저씨를 연상케 하는 외모..란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답니다. 이번 전시회를 앞두고 방한해 미술관을 찾은 유르겐 텔러는 직접 사진들을 배치했다고 해요. 나름대로 애정을 갖고 준비한 작업이란 생각을 들게 하는 부분입니다. 어찌되었든! 박오빠와 저는 미술관 1층에서 티켓을 받고 전시가 시작되는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진들이 많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민망하지는 않았어요. (역시 동행이 누군가에 따라..) 그렇게 작품들을 감상했는데, 사실 그다지 재미는 없었습니다. 머릿 속 물음표가 커져만 가던 그 때, 안내하시는 분이 곧 도슨트가 시작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셨고 박오빠와 함께 미술관 로비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오늘, 이 글의 주인공을 만나게 된거죠!

도슨트 언니(라고 호칭을 붙였지만 어쩌면 저보다 어릴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포스가 있으시니!)는 첫 인상부터 모두를 압도(?)하셨는데, 우선 굉장히 아방가르드한 패션이 눈에 확 들어왔고 두번째로는 정감 넘치는 경상도 사투리로 선보이는 개그감! 무뚝뚝한 듯 툭툭 내뱉는, 짧은 몇 마디가 모든 관객들을 빵! 터트렸습니다. "제 사투리가 거슬리실지도 모르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는 부산 사람입니다"란 간단한 자기소개로 첫 번째 글의 주인공 자리를 꿰차신거죠. 어느새 스무명이 넘게 불어난 관람객을 보며 박오빠와 저는 "예습해놓길 잘했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북적북적, 도슨트 언니의 재미있고 씬나는 도슨트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모두 이쪽으로 오시죠. 아, 잠시만요. 사진 찍으시네요" 촬영을 저지할 줄 알았는데, 센스있는 포즈를 취하십니다. "유르겐 텔러가 외설적인 사진을 많이 찍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는 하지만 모두 섹슈얼하게만 해석하는 것은 너무 좁은 시각입니다"라는 그녀는 "물론 제가 드리는 설명도 여러가지 해석 중 하나니까 참고만 해주세요"라며 시크하게 말했습니다. "유르겐 텔러는 프레임 속 대상이 지닌 사회적인 명성이나 위치를 사진 속에서 전복시키고 싶어 했습니다"라면서 보여준 것이 바로 밑 작품입니다. 



"오른쪽 남성분의 직업을 아시는 분 계신가요?" 관람객들은 묵묵부답이었고, "참여율이 저조하니, 맞히시면 100원 상당의.. 제 뽀뽀를 상품으로 드리겠습니다. 1번 농부, 2번 광부, 3번 현대미술의 아버지!" 한 남성분이 "3번이요!"라고 외쳤고, 그녀는 무표정하게 "이리로 오세요"라고 농담을 건넸습니다. "오른쪽 남성분이 가진 명성과 업적이 보이지 않는 사진이죠? 그저 일상에 파묻힌 노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화려한 껍데기를 걷어낸 모습인데요, 좌측 여성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델이나 패션, 혹은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익숙할법한 저 여성분은 '릴리 콜'이란 이름의 톱 모델입니다. 테리 길리암 감독의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에서 히로인으로 등장하기도 하구요. 그녀는 "이 모델은 평소에 아름다운 의상을 입고 워킹하는 화려한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프레임 속에서는 옷이 아닌 신체에만 집중할 수 있어요"라며 "또 섹슈얼리티를 생각하는 관점에서는 우측 노인 옆의 과일과 좌측 여성의 가슴을 유사한 이미지로 보기도 합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몇 분 전에 작품 앞을 지나가면서 "이 모델 아는데!" 정도의 리액션을 보였던 제 감상이 민망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도슨트 언니는 '해석의 다양성'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볼 수도 있지만, 저렇게 볼 수도 있고. 대부분 유르겐 텔러의 작품을 성적인 관점으로 보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다고 말이죠. 물론 그의 작품 속에서는 페니스나 가슴을 연상케 하는 오브제 들이 다수 등장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모델들은 나체로 등장하죠. 그래도 잘 찾아보면 다른 측면들도 있다는 것이 그녀의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작품 속에서는 유년기에 대한 향수가, 다른 작품에서는 가족을 향한 사랑, 혹은 나르시즘이 느껴지거든요. 아무튼 앞서 그녀가 '사회적 자아를 벗은 본질적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기억나시나요? 그런 주제가 관통한다고 해석한다면, 유르겐 텔러가 수많은 명사의 사진을 찍은 이유도 어렴풋이 알 것 같지 않나요? 그녀는 아래의 두 사진도 연장선상에서 해석했어요.



위에 다리만 내놓고 있는 사람은 바로- 빅토리아 베컴! "처음에는 왜 저 곳에 들어가야 하냐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런 사진 속에서도 충분한 존재감을 빛낼 것이란 작가의 설득에 결국 쇼핑백 속으로 들어갔죠" 그녀가 전해준 이야기입니다.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사실 광고사진인 만큼 로고를 부각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였다고 하네요. 아래 사진의 경우, 역시 유명인인 모델 케이스 모스를 피사체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만 조금 다른 점은 유년기에의 동경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도슨트 언니는 "이곳은 실제로 케이트 모스가 딸과 함께 살던 곳으로, 유르겐 텔러를 초대하면서 사진촬영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란 설명도 덧붙여주셨습니다. 케이트 모스의 눈빛에 왠지 모를 쓸쓸함이 담겨 있는 것도 왠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죠?

오늘 만난 도슨트 언니는 그야말로 '유르겐 텔러의 그녀'였습니다. 유르겐 텔러를 소개하는 그녀를 소개해드렸으니, 제가 오늘 여러분께 소개해드린 사람은 결과적으로 두 사람이 되는거네요! 이런 긍정적인 얻어걸리기라니! 왠지 뿌듯하기까지 하네요. 아무튼 작품들까지 등장하면서 나름 풍요로운 글이었지만, 왠지 어수선하기도 하고.. 뿌듯해했던 제 모습이 민망해집니다. 흑흑.. 그래도 시크한 부산 사투리로 관람객들을 유르겐 텔러의 독특한 작품세계 속으로 퐁당 빠지게 했던 멋진 도슨트 언니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최대치의 관대함을,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그녀의 주옥같은 도슨트가 부분적으로나마 전해지길 바라고 또 바랍니다.

첫 포스팅이라 그런지, 욕심이 너무 과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듭니다. 유르겐 텔러를 제대로 소개해준, 유르겐 텔러 만큼이나 강력한 포스를 풍기는 도슨트 언니! 그녀의 매력을 전하는 동시에, 유르겐 텔러란 흥미로운 아티스트와 사진전에 대해서도 소개하고픈 제 마음을 이해해주세요. 전시는 이번달 말일까지니 혹시라도 궁금하신 분들은 검색 고고싱! 꼭 도슨트 시간에 맞춰 전시회를 찾으시기를 강력히 추천해드립니다! 그리고, 다음 포스팅에서는 조금 더 정돈된, 정갈한, 간결한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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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