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9. 18:57

지난 주부터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금요일에 접수가 마감된 학교도 있고, 아직 접수 중인 학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희 학교도 평소보다 분위기가 다소 뒤숭숭합니다. 많은 친구들이 걱정과 설렘을 동시에 안고 있는 것 같고, 그동안 SNS 세계에서 보이지 않았던 학생들도 지난 주만큼은 잠수를 해제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 3학년으로 살기 참 힘들지요. 고2 겨울방학도 힘들고, 3월부터는 더 힘들고, 6월 모평과 9월 모평을 거치며 점점 더 힘들어집니다. 그러다가 9월 모평마저 끝난 이 시기는 수험생들의 마음이 들뜨기도, 해이해지기도, 포기를 하기에도 좋은 시기입니다.



원서를 쓰고 나면 마음이 참 거시기합니다. 이미 절반쯤은 대학생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왠지 붙은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도 생기고, 괜히 돈만 버린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도 듭니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던 일주일이었을 겁니다.



지난 몇 달동안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왔는데, 자기소개서를 쓰고 추천서를 받다보면 저절로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수험생활이 끝나가는 것 같은 기분에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감상에 젖기도 할 테고,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해온 자신이 대견스러워 가슴이 뭉클하기도 할 겁니다.



근 일 년 가량을 정해진 계획에 딱딱 맞추어 공부해왔는데, 요 며칠 간은 자소서를 쓰느라 생활리듬도 바뀌었을테고, 그 때문에 공부패턴에도 변화가 왔을 겁니다. 어영부영하다보니 일주일이 슝 날아가버린 기분일 테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기가 쉽지도 않을 겁니다.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우리나라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이 가장 밀집하여 사는 곳이 서울대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 신림동 고시촌(서울특별시 관악구 대학동)입니다. 사시, 행시, 외시는 물론이고 공인회계사, 감정평가사, 변리사 등 다양한 전문직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모여 공부를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곳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PC방이 위치한 곳이기도 합니다. '대학동'이라는 단일 동에만 300개가 넘는 PC방이 있다고 하니, 더이상 할 말이 없지요.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시험날짜가 가까워올수록 PC방에는 점점 더 손님이 꽉꽉 찬다는 것입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잊기 위해, 눈 앞에 닥친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올해는 안 될 것 같으니 내년을 기약하자는 자기합리화를 거쳐, PC방 자리는 점점 부족해집니다.



고3 수험생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9월, 10월, 11월이 될수록 다들 점점 더 공부를 열심히 할 것 같지만, 아예 놓아버리는 친구들도 상당히 많이 생깁니다. 열심히 했는데도 안 오른다며, 이젠 정말 지친다며, 책과 연필을 놓는 친구들이 하나 둘 늘어납니다.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수험생활 중 가장 힘든 시기가 바로 지금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42.195km의 마라톤 중, 41km 지점을 달리고 있습니다. 1km만 더 가면 트랙이 놓인 운동장이 있고, 수많은 관중들이 환호를 보내는 운동장 안에서의 195미터는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가장 힘든 시기가 앞으로 남은 1km이며, 시간으로 따지면 한달 반 가량입니다.



고3 여러분. 조금만 더 힘을 내주세요. 막바지 힘을 다해주세요. 수시는 로또 긁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정시는 월급 타는 심정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되면 좋겠지만, 안 되어도 동요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수시모집을 대해주세요. 수시가 아무리 확대되어도, 입학사정관제가 생기고 논술을 보고 면접을 보고 다른 그 무엇이 더 생기더라도, 90% 이상의 전형에서 최종 관문은 수능입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수시가 70%이고 정시가 30%라지만, 대부분의 수시모집에는 최저등급이 있습니다. 대학 정원의 70%를 차지하는 수시에서 다시 70%를 차지하는 것이 논술전형이며, 논술전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논술이 아니라 수능성적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 논술전형에서도 또다시 70%가 우선선발이며, 우선선발에서 수능성적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내신성적이 페넌트레이스라면, 수능성적은 한국시리즈 7차전과도 같습니다. 차곡차곡 쌓아오고 준비해온 내신성적은 사라지지도, 지울 수도 없습니다. 생활기록부 보존 연한이 졸업 후 70년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세상을 떠날지, 생기부가 먼저 세상을 떠날지는 대충 감이 올 겁니다.



하지만 수능은 다릅니다. 수능 성적표를 받아든 그 순간, 지금까지의 모든 모의고사 성적들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합니다.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도 없이 단 한 번의 한국시리즈 7차전으로 우승팀을 가리는 겁니다. 어찌 보면 잔인한 제도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아주 매력적인 제도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불평등합니다. 곳곳에 불합리가 산재해있으며, 때로는 부조리가 정의와 원칙을 이기기도 합니다. 대학 입시 또한 평등하지는 않습니다. 부모의 재력과 관심의 정도에 따라 학생의 성적이 상당 부분 좌우됩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누구는 처음부터 출발하고, 누구는 20m 지점에서 출발하며, 어떤 누구는 신발도 안 신고 맨발로 출발합니다.



하지만, 이 불평등한 세계 안에 있는 여러 경쟁 중 가장 공정한 경쟁이 수능시험입니다. 전국의 모든 동년배들과 한날 한시에 같은 기준으로 동시에 경쟁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러기에 이 성적이 앞으로의 인생 중 많은 부분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식의 경쟁이 옳다고 생각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지만, 그것이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꿈이 크다는 것을 잘 압니다. 원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잘 압니다. 여러분은 그 꿈과 이상에 어울리게 노력해왔으며, 그것을 꿈꿀 자격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정말 중요한 시기입니다. 흔들리지 말고, 들뜨지 말고, 늘 하던 그대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잘 마무리해주세요.



응원합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6. 25. 08:46

오늘은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가 있는 날이다. 전국의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들은 잠시 후 같은 시험을 보게 된다. 3주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성적이 발표되고, 전국의 모든 학교가 성적순으로 서열화된다. 시험을 보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학교를 줄세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학교 성적이 공개되다 보니 일선 학교에서는 이 일제고사를 대비하기 위해 모의고사까지 보고 있다. 그래프로 반별 개인별 월별 성적을 표기하고, 가르치는 반이 부진한 교사에게는 경고문을 발송하기도 한다. 심지어 성적이 뛰어난 학급을 담당하는 교사에게는 금전적인 인센티브까지 제공하는 학교까지 있었다. 어떤 교육청은 고위 관계자가 수시로 일제고사 대비상태를 순찰하며, 몇 년 전에는 성적이 나아진 학교에 상품권을 지급해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실적(?)이 뛰어난 교사에게는 해외연수의 특전을 베풀며, 성과급에도 반영한다.

마치 기업체 영업부서에서나 가능할 듯한 반 교육적 행태가 전국 곳곳의 학교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공교육을 살리겠다는 교과부가 학부모와 전교조는 물론 보수적 교원단체인 교총까지 반대하는 일제고사를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역은 물론 학교와 학급, 개인별 서열을 매겨 한 줄로 세우겠다는 것이 일제고사의 운영방침이다. 이러한 방침 때문에 기상천외한 일들이 전국 곳곳의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 올해에는 사라졌지만 작년까지는 초등학교 6학년도 일제고사를 봤는데, 이 때문에 초등학생들에게 0교시 수업과 강제적 야간 자율학습까지 시키는 학교가 있었는가 하면 토요일과 일요일에 학생들을 등교시켜 일제고사 대비 문제풀이를 하는 학교도 있었다. 초등학생용 A4용지 4000쪽 분량의 문제집이 등장했는가 하면, 운동장에서 노는 것을 금지시키고 쉬는 시간을 5분으로 단축하는 학교도 있었다. 

일제고사 점수를 올리기 위해 음악, 미술, 체육 시간에 수업을 안 하고 일제고사 평가 대비 문제집을 풀게 하면 예체능 수업이 제대로 될 리 있겠는가? 학교에 따라서는 ‘학업성취도 평가 마무리 캠프’나 ‘학업성취도 평가 출정식’을 치르는 웃지 못할 일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하위권 학생들을 한 반에 몰아넣거나 성적이 떨어지는 아동을 특수학급(장애 학급)에 배치할 것을 강요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체 교과부는 무엇을 위하여 학교를 편법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아동을 학대하며, 즐거워야 할 공부를 목숨 걸고 하게 하는 일제고사에 집착하는 것인가? 입만 열면 교육과정 정상화를 노래처럼 부르는 교과부인데, 국어 수학 영어 세 과목만 일제고사를 치면 나머지 과목은 교육과정대로 정상적인 수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가?

사실이 이러함에도 교과부는 일제고사의 목적이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돕기 위한 것에 있다고 말한다. 일제고사가 도입된 이후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절반 가량 줄었다고 선전한다. 물론 일제고사가 학습부진 학생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장과 교육청의 책임성을 높인다는 것을 빌미로 각 학교, 지역별로 성적을 낱낱이 공개하고, 각 시·도 교육청 평가 기준과 학교별 성과급의 기준으로 넣을 것을 고집하며, 학생과 학부모의 응시 선택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부진학생지원이 목적이라면서 왜 시험 결과는 공개해 학교별 순위를 매기는가? 성적을 공개하면 일선 학교에서 평판 때문에 부진아를 감추거나 줄이려고 시도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가? 시험 결과를 통해 우수한 실적을 낸 학교장과 교육청에 금전적 인센티브를 더 많이 준다는 방침은 학습 부진 학교를 지원하겠다는 시행 취지와는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결국 일제고사의 취지는 부진아 지원이 아니라 학교와 학생을 시장에 내놓고 무한 경쟁을 부추기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기득권을 교육을 통해 합법적으로 재생산하려는 의도가 숨겨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가?

교과부가 진정으로 학습부진 학생을 지원하고자 한다면, 일제고사를 통해 열패감만을 부추기고 낙인찍을 것이 아니라, 학습부진의 원인이 다양하다는 점을 고려해 종합적 진단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학습부진아들은 대부분 불가피한 요인으로 인해 오랜 기간 학습결손이 누적된 학생들이며, 대체로 가정환경이 좋지 못하고 집중력 부족을 겪는 등 복합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학생들이다. 이들을 위한 교육 복지망을 구축하고, 학급당 인원수를 감축하여 교사에게 보다 세심한 배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순리다.

획일화된 평가인 일제고사는 산업화 시대의 주입식 지식 테스트에 불과한 낡은 패러다임이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방대한 지식과 정보에 접속할 수 있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 문제풀이 중심의 암기식, 반복식 수업은 학습에 대한 흥미를 말살시킬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섯 개의 문항 가운데 ‘정답’을 골라내는 단편적인 사고에 갇히게 한다. 입만 열면 창의성, 창조성, 창의지성을 외치는 교과부가 오히려 창의성의 싹을 잘라 버리는 반교육을 앞장서서 이끌고 있는 셈이다. 획일화된 문제를 풀기 위한 획일화된 교육은 제각각인 아이들의 성장 속도를 배려하지 못함은 물론, 다양한 소질과 적성을 펼칠 기회를 박탈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더불어 사는 능력이 OECD 국가 중 꼴찌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OECD가 아니라 UN이었으면 순위가 크게 올라갔을까? 즐거워야 할 학창시절부터 무한경쟁을 경험하는 아이들인데, 인성이 피폐하지 않다면 그것이 오히려 신기한 일일 것이다. GDP의 3%를 사교육비에 지출하는 세계 최고의 사교육 공화국임에도, 왜 우리 아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불행하고, 왜 우리 교육은 경쟁력이 없는 것일까. 

정말 화가 난다. 역겨운 상황에 화가 나고, 아무 것도 행동하지 못하는 내 비겁함에 더욱 화가 난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