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5. 13:38

스물여덟의 내가 들은영화, <청춘스케치-Reality Bites>

 

 

 

 

<청춘스케치>는 영문의 원제가 더 어울립니다. Reality Bites, 현실이 아직은 창창한 청춘인 나를 전부 삼켜 버리기 전에 한번쯤은 보아야 할 영화, 들어야 할 음악을 소개하고 싶네요. 청춘영화라 하면, 으레 손가락 끝의 작은 움직임을 담아내는 맑은 멜로디부터 고막을 최대한으로 자극하여 모든 일을 잊도록 만드는 강렬한 울림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음악이 질펀하게 깔리기 마련이죠. <청춘스케치>OST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곡들 또한 젊은이들의 눈물, 웃음, 수다, 그리고 그 맑은 젊음과 닮아있습니다

 

 

 

 

 

#. 편의점에서 흘러나오는 The Knack<My Sharona>

 

<청춘스케치> OST의 첫 번째 트랙은 팝 역사상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곡이라 할 수 있는 The Knack<My Sharona>입니다. 리레이나, 트로이, 비키, 새미는 리레이나 아빠가 건네 준 주유소 신용카드 한 장 달랑 들고 편의점으로 우르르 몰려갑니다. 두 손을 가득 채우도록 고른 콜라 캔과 프링글스를 계산대에 내려놓는 순간, 그들의 귀에는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려오죠. “볼륨 좀 높여주실래요?” 비키를 필두로 리레이나, 새미의 흥겨운 막춤이 시작됩니다. 편의점 주인아저씨의 난감한 표정과 트로이의 뻘쭘한 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세 청춘의 발랄함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장면입니다. 한밤 중 주유소 옆 편의점은, 돈은 좀 없을지라도 Feel만큼은 충만한 청춘들과 <My Sharona>로 번쩍번쩍 빛이 나죠. 이 곡은 1979년 빌보드 차트 정상을 6주 동안이나 차지했던 인기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The Knack의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리드보컬인 Doug Fieger는 이 곡을 통해 그가 실제로 좋아했던 Sharona와 맺어지게 되었으니, 그들에게도 소중한 명곡임은 의심할 여지조차 없겠죠?

 

 

 

 

#. 행복한 첫 데이트의 느낌, 피터 프램톤의 <Baby, I love your way>

 

마이클은 프램톤이 자신의 삶을 바꿨다고 이야기하고 리레이나는 비타민음료 예찬론을 늘어놓습니다. 첫 데이트치고는 조금 황당한 주제일지도 모르지만, 닮은 구석 하나 없어 보이는 이 커플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거겠죠. 그러다 둘은 별을 보는 천문학을 좋아하지만 수학은 젬병인 공통점을 찾게 되고 깔깔대며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별빛처럼 빛나는 행복한 순간이라고 생각하지요. 그 간질간질하면서도 달달한 장면을 메우는 사운드 트랙은 바로 피터 프램톤의 <Baby, I love your way>. 영화에는 느릿하게 귀 끝에 맴도는 프램톤의 원곡이 들어가 있으나 OST에는 조금 더 리드미컬한 빅 마운틴의 곡이 실려 있습니다. 오리지널 곡도 함께 실려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빅 마운틴의 <Baby, I love your way>도 레게 버전다운 펑키한 그루브에 큰 인기를 끌어 원곡의 명성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었어요.

 

 

 

 

#.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Lisa Loeb<Stay (I missed you)>

 

사랑이란 것은 이미 그 자체로도 어렵습니다. 사랑과 우정의 위태로운 경계에 선 두 친구의 이야기, <청춘스케치>는 젊은 날 겪게 되는 휘몰아치는 감정의 편린들을 소박하고 솔직하게 담아냅니다. 몇 번이나 엇갈리기만 했던 트로이와 리레이나가 서로의 마음을 받아들였을 때, 관객들의 얼굴에는 쑥스러운 미소가 걸립니다. 그렇게 기쁘면서도 조금은 어설프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그들의 해피엔딩으로 대미를 장식한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곡은 Lisa Loeb<Stay>. 맑고 촉촉한 Lisa Loeb의 목소리가 돋보이는 이 곡은 그녀의 친구인 에단 호크의 추천으로 영화작업 후반부에 겨우 삽입되었지만 음반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끈 럭키 트랙이라고 해요. 엔딩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Stay>는 마치 리레이나가 트로이에게 속삭이듯이 사랑스럽습니다.

 

 

 

 

1994년 작인 <청춘스케치>는 어느덧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흘려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그 음악은, 2012년 우리의 얼굴, 우리의 목소리와 너무나도 닮아있어요.

 

청춘스케치 OSTU2, 레니 크라비츠, 줄리아나 햇필드, 스퀴즈, 그리고 에단 호크까지 그다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목소리들이 뒤섞여 있지만, 영화 속 각자의 자리를 빛내며 함께 청춘의 아름다운 순간을 노래합니다. 이것저것 뒤섞여 정신없어도 그 자체로 빛나는 것이 젊음이기에, “우린 이것만 있으면 돼. 담배 몇 개비, 커피 한 잔, 그리고 약간의 대화, , 나 그리고 5달러라는 그들은 그저 아름답습니다, 반짝반짝 빛납니다.

 

 

 

 

프랑스 한 소설가는 만일 내가 신이었다면, 나는 청춘을 인생의 끝에 두었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해요. <청춘스케치>를 두고두고 보고 싶고 그 OST를 두고두고 듣고 싶은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겠죠?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4. 5. 15:05

 

 

 

로맨스 영화의 미덕은 '공감'에 있다.

 

'건축학개론'처럼 아련한 첫 사랑의 기억이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처럼 헷갈리는 관계든,
'세렌디피티'처럼 운명적인 만남이든
'연애의 온도'처럼 이별과 만남의 반복이든.

 

사내커플이 주인공인 익숙한 사랑 이야기든,
뱀파이어와 마법사가 등장하는 판타지든


모든 로맨스는 결국 설레고 기대하고 실망하는 프로세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것마저도 상대적인 것이지만.


주인공이 짓는 표정, 한 마디의 대사,
너무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장면 한 컷을 만나기라도 하면
우리는 쉽게 주인공이 되어 스크린 안으로 들어간다.

 

영화는 영화가 지닌 프레임을 지워버리고
그 안으로 내가 포섭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영화를 밝히는 것은

다름 아닌 나의 로맨스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2. 21. 17:10

 

 

 

워커홀릭은 아니다.

나는 일에 파묻혀 사는 부류의 사람이 못 된다.

 

나는 놀고 먹기를 좋아하는 사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괜찮은 사람,

나는 시체처럼 누워있는 것도 즐기는 사람.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있는 것도 해볼만 한 사람,

나는 가만히 있어도 좋은 사람

 

하지만 이게 잘못된 걸까?

 

난 워커홀릭이 아니어도 된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아아, 정말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8. 08:30
안녕하세요, 사과모히토입니다.

오늘 제가 데리고 온 이야기는 책도, 인물도 아니고 우울하기 그지없는 이별에 대한 이야기인데 다들 마음이 준비를 단단히 하셨나요? 영하 10도를 밑도는 출근길에 줄창 슬픈 노래만 듣다보니 제 머리가 어떻게 되버렸을지도. 블로그에 잠깐 넘버링 바람이 분 적이 있었는데, 저도 늦게나마 참여해보겠습니다.

1. Sing for me

연애할 때든 실연 후든 모든 유행가 가사가 본인의 이야기인 것 같이 들리는 시기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제 경우에는 친구마다, 연애마다 그 사람이나 관계, 추억 같은 걸 떠오르게 하는 BGM이 하나씩 있는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일례로 나리를 생각하면 린킨 파크의 In the end나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가 흐르고, 조대기를 생각하면 god의 하늘색 풍선(팬미팅에서 처음 만났거든요, 하..)이 들리는 듯 합니다.



그래도 언제든 듣게 되는 노래가 있는데, 바로 브라운아이드소울의 시계입니다. 강군의 추천으로 듣게 된 곡인데 들을 때마다 도입부부터 마음이 잔잔해집니다. 딱히 누군가가 떠오르지는 않더라도.. 헤어지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경험했을법한 그 마음이 전해지곤 합니다.



하나 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이소라님의 감성은 대체.. 들을 때마다 뭉클해지는 노래죠. 원래도 유명했지만 더더욱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곡입니다. 가사가 정말 예술인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구석 하나없이 가슴에 와서 박힙니다.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아, 정말.. 뭐라 감히 표현하기도 힘드네요. 시계가 사운드, 목소리로 가슴을 울린다면 바람이 분다는 가사를 하나하나 귀기울여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2. 후유증 

간혹 몇 명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별의 상태를 즐긴다고도 말합니다. 농반진반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개인적인 소견으로도 사람은 참 슬픈 존재인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이전에 친한 선배와 이상한 심리테스트를 한 적이 있는데요. 입에 나는 하얀 상처 아시죠? 왜 알보칠을 부르는 그 곪은 것 말이에요. 그게 생겼을 때 당신의 선택은? 이 바로 질문이었습니다. 보기는 대충

1. 자꾸 건드려본다.
2. 그냥 냅두고 까먹는다.
3. 오렌지주스를 마신다. (살짝 가학적인 ㅋㅋㅋ)
4. 친구들에게 보여준다.
5. 다른 일을 못 한다.



감이 오시나요? 저 같은 경우에는 1번이었어요. 아플 게 뻔한대도 자꾸 건드려보게 되더라구요. 선배는 3번! 비타민C 섭취가 중요하다고 따갑더라도 그렇게 해야 빨리 낫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우습지만 이 심리테스트는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한 테스트입니다. 이미 감을 잡으신 분들이 많겠지만요! 해석도 너무 뻔하니 생략하겠습니다.

3. 이상한 이야기를 마치며

괜히 슬픈 노래들을 들어서 새벽부터 감성이 충만해 이런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아이팟에 들을 곡이 너무 없더라구요. 부디 이해해주시옵고, 이별을 경험했다하여 굳이 극복해내고자 용쓰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힘들어보는 여러분이 되기를? 음, 역시나 끝도 이상하군요. 언제든 '여러분'에서 여러분의 이야기를 공유해주세요. 위로도, 공감도 다 여기에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이별없이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총총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1. 08:30

괴물들이사는나라
카테고리 유아 > 4~7세
지은이 모리스 샌닥 (시공주니어,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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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줄평 : 우리 안의 어린이를 위해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는데 한참의 시간이 흘렀네요. 사실 이 블로그를 시작할 때 무엇보다 꼭 연재기일을 지키자는 굳은 다짐을 했었는데 뵐 낯이 없습니다. 그래도 새해를 맞이하여 다시 시작하는 '우리 처음 만난 날'이 될 거니까 용서해주세요!

그동안 제게는 개인적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입사를 하게 되었다는 빅뉴스!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과 그림책을 만드는 에디터로 무럭무럭 자랄 예정입니다. 책이 좋아서 국문학과에 가고, 이 코너도 연재하고,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러고보니 저는 참 뻔하고 일관성이 있는 인간이네요. 흐흐 묘한 만족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제가 소개해드리고 싶은 책도 동화책입니다.


이 책의 제목은 아마 익숙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괴물들이 사는 나라', 동명의 제목 영화로도 나왔었죠? 이 책은 NHN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어요. 그림이 너무 예쁘고 신비로워서 저도 모르게 손이 간 책이었습니다. 어른이 무슨 동화책이냐? 하실 분들은 아마 없으시겠죠? 오히려 이 작은 책이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책들보다 더 짙은 진심을 전해드릴 수도 있으니까요.


주인공은 맥스란 소년입니다. 우리네 어린 시절과 많이 닮아있는 개구쟁이 소년이죠. 어느날 밤, 늑대옷을 입고 장난을 치던 맥스는 엄마에게 벌을 받게 됐습니다. 그런데 자기 방에서 벌을 받던 맥스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방이 밀림과 강으로 변했거든요. 

 
맥스는 배를 타고 괴물들의 나라로 떠납니다. 괴물들의 나라는 어떤 나라냐구요? 아마 누구든 한번쯤은 잠들기 전, 이불 속에서 상상해봄직한 그런 나라예요.


맥스는 이런 괴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곧 자신이 왕이라고 우기며 괴물들을 설득 내지는 제압하게 되죠.


귀여운 왕관까지 쓰니 그럴듯 하죠? 현실에서는 툭 하면 혼나고, 알게 모르게 컴플렉스나 스트레스가 있을지 모르는 맥스는, 그렇게 괴물들의 나라에서 강하고 씩씩한 왕이 됩니다.


아이들의 일탈이란 이렇게 스케일이 큽니다! 어른들은 고작 여행밖에 생각해내지 못하는데 말이죠! 괴물들과 노래하고 춤추며 재밌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맥스는 문득 쓸쓸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맥스를 사랑해주는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렇게 맥스는 아직 식지 않은 저녁밥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스틸컷은 크게 상관이 없지만ㅋ)


이 책의 저자인 모리스 센닥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책 작가 입니다. 1928년 브루클린에서 약한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혼자 종이에 뭔가 끼적거리기 좋아하는 섬세하고도 고독한 소년으로 성장했습니다. 현재의 모습은 굉장히 근엄해보이시지만.. 사실 어린이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또 여든이 넘어서도 여전히 동심을 간직한 분이세요!

 

학교신문에 풍자만화를 그리던 고등학생, 뉴욕의 아트스쿨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던 대학생은 1951년부터 어린이책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초기 작품은 대부분은 흑백이었다고 하네요! 그의 3부작이라고 불리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 '깊은 밤 부엌에서', '저너머 밖에서는'에 대해 센닥은 "아이들이 노여움, 지루함, 두려움, 분노, 질투와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어떻게 다스리고 그들의 실제 삶에서 어떻게 마주치게 되는가 하는 동일한 주제를 바탕으로 해서 변화를 준 것 뿐이다"라고 담담히 말하기도 했죠.


센닥은 어린이를 그냥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안에 여전히 살고 있는 어린이를 발견해내는데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작가라고 합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최고의 상, 칼데콧상을 수상한 그의 수상식 소감으로 끝인사를 대신할게요!

 "어린이의 갈등이나 고통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허식의 세계를 그린 책은 자신의 어릴 때의 경험을 생각해 낼 수 없는 사람들이 꾸며 내는 것이다. 그렇게 꾸민 이야기는 어린이의 생활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 이 동영상에는 동화책 장면과 원어(영어) 동화구연이 들어있어요! 필요하신 분들은 꼭 한번!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2. 14. 08:30
비틀즈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지은이 헌터 데이비스 (북스캔,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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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All about 비틀즈

종종 사람들의 음악적 취향은 환경적, 유전적 영향을 받습니다. 외식 갈 때마다 아빠차에서 들려오던 김현철의 '달의 몰락'이나 리알토의 'Monday Morning 5:19' 같은 곡들은 오늘날의 제게 무척이나 진한 향수를 느끼게 합니다. 막상 그 시절 그 세대의 젊은이가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딥퍼플, 비틀즈, 이글스에 열광하셨던 아빠의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저는 '우리 처음 만난 날' 코너에서도 여러번 말씀드렸듯이 Rock 음악을 사랑합니다.


그 첫 시작은 '비틀즈'였습니다. 이 잔망스런 오빠들, 레전드 중 레전드죠! 그만큼 비틀즈에 대한 서적도 무척이나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싶었던 것은 '전설'이나 '천재'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그들이었어요. 아마 히어로물은 이미 많이 접했기 때문이겠죠. 게다가 많은 책들은 그저 모두가 아는 정보를 짜깁기한 정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헌터 데이비스의 '비틀즈'는 달랐습니다.


1968년 초판이 나온 '더 비틀즈'는 '공인 비틀즈 평전'이라 불리는 작품입니다. 멤버들이 직접 공인했기 때문이죠. 두둥! 땡기시죠!

 

저자는 바로 이 분! 기자로 활동했던 헌터 데이비스는 18개월 동안 폴 매카트니, 존 레논,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와 함께 붙어다니며 그들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지인들을 인터뷰하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지난 2003년,  초판 발행 후 35년 만에 재판된 '비틀즈'에는 일부 내용이 추가되었습니다. 
 

비틀즈 멤버들은 모두 그 나이 또래 다른 수백만의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엘비스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그들 모두 학교의 모든 교실과 동네의 모든 거리마다 그룹들이 뛰쳐나와 노래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리버풀에서는 스키플 그룹이 줄ㅇ을 이어 나오는 밤샘 댄스 파티가 수백 개씩 열렸다. 처음으로 음악이 음악인만의 것이 아닌 시대, 그 누구든지 연주하고 노래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어다. 그것은 원숭이에게 그림붓을 쥐어준 것과 비슷했다. 그중에 누군가는 언젠가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도 있을 것이었다.

그 열광이 시작될 무렵, 존 레논에게는 기타 한 대도 없었다. 학교에서 친구에게 기타를 한 대 얻기는 했지만 칠 수가 없어서 그대로 돌려주었다. 문득 줄리아가 밴조를 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존은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녀는 존에게 10파운드짜리 중고 기타를 사주었다. ‘품질 보장, 갈라지지 않음’이라고 씌어 있는 물건이었다. 존은 여기저기 기타를 배우러 돌아다녔지만 제대로 배울 수가 없었다.

비틀즈 또한 엘비스로부터 큰 영향과 영감을 받았다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막상 모두가 알고 있는 정보는 아니니 반갑고도 신기한 이야기죠! 이렇듯 멤버들의 탄생부터 유년기, 성격과 관계, 결성과 해체까지 큼직큼직한 사건부터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방대한 양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비틀즈의 팬이라면 바이블처럼 아낄만한 책입니다.

 

요런 깜찍한 휴가 사진도 있어요! 뭔가 동네 노는 오빠들 포스를 팍팍 풍기지만.. 그리운 비틀즈 흐항흐항 보고싶어요!

투어를 중단한 비틀즈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1956년부터 1966년까지 10년 동안 그들은 단순히 공동체적 생활이 아닌, 완전히 서로 동일한 생활을 해왔다. 그들은 여전히 가장 친한 친구였고 함께 음반 작업을 했지만, 개인으로서 이제 각자의 일을 찾아야 할 시간이 왔음을 느끼고 있었다.

조지가 가장 먼저 자신만의 길을 찾았다. 투어를 중단한 다음달인 1966년 9월 조지는 아내와 함께 인도에 갔다. 그는 거기서 처음으로 비틀즈와 관계없는 자신만의 진지한 관심사를 찾았다. (중략)

조지의 종교적 열정은 점점 커졌지만 존은 오래지 않아 자신은 연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배우라는 사람들도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존과 폴은 결국 다시 탐색에 나섰다. 그들은 스물다섯 살의 백만장자로 아직 은퇴는 고려하지 않고 있었지만, 대학 같은 곳에서 받은 정형화된 교육이나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도무지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무엇을 배우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의 정신적?감정적인 나이는 벌써 백 살은 된 것 같았다. 결국 약물이 등장했다. 마약을 통해 그들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중략)

마약으로 그들의 음악 활동이 중단되지는 않았다. 이제 영화 등의 일이 흥미를 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비틀즈는 다시 모여 그들의 가장 야심찬 작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작품에는 약물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 반영될 것이었다. 이 작품이 바로 앨범 《페퍼 상사의 고독한 마음 클럽 밴드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였다.

비틀즈도 당시 마약에.. 사실 몇년전 매카트니가 직접 마약 복용사실을 인정하기도 했어요. 우리들에게는 '아이앰쌤'의 사랑스런 OST로 기억되는 'Lucy in the Sky with the Diamonds'도 대문자로 표시한 그대로 마약류인 LSD의 영향을 받은 곡이었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지만 사랑스럽고 몽실몽실한 곡 분위기가 약에 취해서.. 이 점이 늘 충격적이에요. (노래에 약 탔나? 했더니 진짜였어..) 무튼 마리화나, 헤로인까지 섭렵했던 그들은 심각한 중독은 아니었기에 금방 빠져나왔다고 해요. 멤버별로 차이도 있고.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저 옷부터가.. 영 ㅋㅋㅋㅋ 무튼 저는 격한 팬심에 눈 똥그랗게 뜨고 정독에 정독을 하거나 통곡을 하며 코를 팽팽 풀어대며 읽기도 했습니다만.. 그냥 비틀즈에 리를빗 관심이 있는 분이라도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으실만한 재미있는 평전입니다. 주옥같은 명곡들을 bgm 삼아 훌훌 읽어보세요! 압박스런 페이지수에 당황하셨던 초반과는 달리 너무 빨리 읽어버리실지도 몰라요!
 
그냥 가기 아쉬워서 제가 좋아하는 수많은 노래 중 2곡을 선정했습니다. 유툽 영상 클릭하기 망설이시는거 다 알아요! 하지만 한번 눌러보세요~ 이 오빠들이 아주 노래에 약을 타가지고 ㅋㅋㅋ 수십년이 지나도 유통기한이 끊기지가 않네요 ㅋㅋㅋ 좋습니다, 정말!



'Help!'에 이어지는 곡은 약빨고.. 아니 ㅋㅋㅋㅋ 약탄 곡!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입니다! 루씨야! 쌤아즈씨!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2. 7. 08:30
반짝반짝빛나는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지은이 에쿠니 가오리 (소담출판사, 2002년)
상세보기

별점평 : ★★★★☆
한줄평 : 열일곱의 내게는 별다섯개

일본소설에 문외한인 분이라도 '에쿠니 가오리'란 이름은 한번쯤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쪼오기 어떤 책이든 프로필 사진이 딱 박힌 띠지를 두르고 있어서 그녀의 서늘한 옆모습을 본 적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네요. 그것도 아니라면 '냉정과 열정사이' 원작소설가라고 하면 어떠신가요? 네, 옆모습에 자신있는듯한 저 여자의 이름이 '에쿠니 가오리'입니다.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일본이 자랑하는 3대 여성작가이기도 하구요.


에쿠니 가오리는 여성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여성작가입니다. 그녀는 수필가인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예민한 감수성과 특별한 일상을 잘 반죽해내는 솜씨를 가진 작가로 성장했죠. 사실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예민하고 사랑스러운 여성, 꼭 그녀를 닮았습니다. 특히 제가 사랑하는 주인공은 바로 이 작품, '반짝반짝 빛나는'의 쇼코입니다.

쇼코는 번역가로 일하며 알코올에 중독돼 있습니다. 그녀가 결혼한 남자, 무츠키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에겐 남자친구가 있죠. 이상하다구요?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그들의 세상은 온화하고 고요하게 흘러갑니다. 조금씩 결핍이 있는 그들이기에 오히려 더 서로를 잘 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들은 마법의 사자래. 무리를 떠나서 어디선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는 거지. 그리고 그들은 초식성이야. 그래서, 물론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단명한다는 거야. 원래 생명력이 약한 데다 별로 먹지도 않으니까, 다들 금방 죽어버린다나 봐. 추위나 더위, 그런 요인들 때문에. 사자들은 바위 위에 있는데, 바람에 휘날리는 갈기는 하얗다기보다는 마치 은색처럼 아름답다는 거야."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말투로, 쇼코는 그렇게 말했다. 추위와 더위 때문에 죽어가는 초식성 사자!?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우물쭈물거리고 있는데, 쇼코가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무츠키들은 은사자 같다고,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라고 말했다.


쇼코의 눈에, 무츠키와 그의 연인 곤은 남들과는 다르지만 아름답고 연약한 은사자처럼 보입니다.


이런 느낌일까요? 후후 무튼, 열일곱살에 이 부분을 읽으며 제가 느낀 것은 애매한 공감이라기보다는 위로였습니다. 부족하고 약하고 남들과 다른 존재라고 해도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기뻤던 것 같아요. 소수일지도 모를 다름을 바라보는 에쿠니 가오리의 따뜻한 시선이 은색으로 빛나는, 예쁜 부분입니다.

"아버지, 은사자라고 아세요? 색소가 희미한 사잔데 은색이랍니다. 다른 사자들과 달라 따돌림을 당한대요. 그래서 멀리서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한다는군요. 쇼코가 가르쳐 주었어요. 쇼코는 말이죠, 저나 곤을, 그 은사자 같다고 해요. 그 사자들은 초식성에, 몸이 약해서 빨리 죽는다는군요. 단명한 사자라니, 정말 유니크하죠, 쇼코의 발상은."

"너희들 일은 잘 모르겠다만. (…) 하지만 나한테는 며늘아기도 은사자처럼 보이는구나."라고 말하고, 또 조용히 웃었다.


왠지 웃음이 지어지는 부분이죠?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그리고 스무살까지 에쿠니 가오리의 이야기, 야자와 아이의 만화, 자우림 김윤아 씨의 노래들은 그야말로 저와 제 친구들의 멘토였습니다. (공감하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ㅋㅋㅋㅋ ) 그래서인지 그 수많은 자기개발서들에는 도통 손이 안 가고 소설책을 고집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제게는 이야기들이 더 큰 위로가 되어줘왔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한 결과죠.

이 책은 워낙 유명하고,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 제가 굳이 소개드리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AGAIN 2002, 열일곱의 제 자신을 그리워하며 추억 속에서 이 책을 꺼내왔습니다. 침대 맡에서, 혹은 쇼코처럼 목욕을 즐기면서 읽고 또 읽고 훌쩍거리기도 하고 실실 웃기도 하며,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시절을 함께 보내준, 응원해준 멘토를 여러분께도 소개드리고 싶어서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2. 1. 17:27
자기만의방(세계문학전집130)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버지니아 울프 (민음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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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나누고픈 이야기라 급 포스팅을 합니다.
당황스러우셨더라도 즐거이 반겨주세요.


바로 이 분의 목소리를 전해드리려고
급히 달려왔습니다.

내 숙모님 메리 비턴은 봄베이에서 바람을 쐬려고 말 타러 나갔다가 낙마하여 죽었습니다. 내가 유산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통과되던 당시의 어느 밤이었습니다. 한 변호사의 편지가 우편함에 떨어졌으며 그것을 열어보고 내게 매년 500파운드가 지급되도록 재산이 상속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지요. 둘 - 투표권과 돈 - 중에서 돈이 더 무한히 중요해 보였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지요. 그전까지 나는 신문사에 잡다한 일자리를 구걸하고 여기에다 원숭이 쇼를 기고하고 저기에다 결혼식 취재 기사를 쓰면서 생계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봉투에 주소를 쓰고 노부인들에게 철자법을 가르쳐줌으로써 몇 파운드를 벌었지요. 그러한 일이 1918년 이전의 여성들에게 개방된 주된 일거리였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런 일을 하는 여성들을 알 테니 그 일의 어려움을 상세히 묘사할 필요는 없겠지요. 또한 돈을 벌어 그 돈에만 의존해서 사는 어려움도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어쩌면 여러분도 애를 써보았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런 것보다 더한 고통이라고 지금도 여겨지는 것은 그 당시 내 마음 속에서 싹튼 두려움과 쓰라림의 독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원하지 않는 일을 늘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항상 부득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고 또 모험을 하기에는 너무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에 노예처럼 아부하고 아양을 떨며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면 죽는 것이나 다름없는 단 하나의 재능 - 작은 것이지만 소유자에게는 소중한 - 이 소멸하고 있으며 그와 함께 나 자신, 나의 영혼도 소멸하고 있다는 생각. 이 모든 것들이 나무의 생명을 고갈시키며 봄날의 개화를 잠식하는 녹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까 말했듯이 숙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10실링짜리 지폐를 바꿀 때마다 그 녹과 부식된 부분들은 조금씩 벗겨져 나가고 두려움과 쓰라림도 사라집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들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고정적인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그것은 가부장제의 억압, 자유와 평등, 해방 등의 패러다임을 가로지르는 현실적이고도 설득력있는 주장이었지요. 당시 여성들은 제한된 경험, 인습, 통제,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웠으니 말그대로 아웃사이더였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백년 정도 살게 되고 (우리가 개인으로 살아가는 각자의 짧은 인생이 아니라 진정한 삶이라 말할 수 있는 공동의 생활을 언급하는 겁니다.) 각자가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가 공동의 거실에서 조금 탈출하여 인간을 서로에 대한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리얼리티와 관련하여 본다면, 그리고 하늘이건 나무이건 그 밖의 무엇이건간에 사물을 그 자체로 보게 된다면, 아무도 시야를 가로막아서는 안 되므로 밀턴의 악귀를 넘어서서 볼 수 있다면, 매달릴 팔이 없으므로 홀로 나아가야 하고 남자와 여자의 세계만이 아니라 리얼리티의 세계와 관련을 맺고 있는 사실 - 그것이 사실이므로 - 을 직시한다면, 그때에 그 기회가 도래하고 셰익스피어의 누이였던 그 죽은 시인이 종종 스스로 내던졌던 육체를 걸칠 것입니다. 그녀의 오빠가 그러했듯이, 그녀는 선구자들이었던 무명 시인들의 삶에서 자기 생명을 이끌어내며 태어날 것입니다. 그러한 준비 작업 없이, 우리 편에서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녀가 다시 태어날 때 그녀가 살아갈 수 있고 자신의 시를 쓸 수 있다고 느끼게끔 만들겠다는 결단 없이, 그녀가 출현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그녀를 위해 일한다면 그녀가 출현하리라는 것과, 비록 가난한 무명인의 처지에서라도 그것을 위해 일하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라고 단언합니다.  

'자기만의 방'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참고로 본문 중에 나온 '셰익스피어의 누이'는 울프가 가공으로 만들어낸 인물로서 셰익스피어만큼이나 재능을 가졌으나 기회가 없었던 '여성'을 상징하는 캐릭터입니다. 지난 스릉님의 포스팅에서도, 또 제가 얼마 전에 소개드렸던 '엄마를 부탁해'에서도 비슷한 여성이 등장합니다. 단지 이름과 얼굴만 다를 뿐이죠. 지금, 이곳을 사는 우리들에게 울프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일까요? 여러분의 감상도 궁금하네요.

제게 큰 가르침과 용기를 주었던 이 글이 여러분에게도 큰 울림을 남기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30. 08:30
유홍준의국보순례
카테고리 역사/문화 > 문화일반
지은이 유홍준 (눌와,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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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설명집이 아니라 이야기 같아 좋아요!

여러분, 제가 부득이하게 휴재를 했었죠? 죄송해요! 정말 빡세게 열심히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잘 보듬어주시와요! 무튼 제가 야심차게 준비한 이번 주의 책, 바로 '유홍준의 국보순례'입니다. 유홍준이란 이름, 모두 친근하시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중고딩의 필독서인데다가 얼마 전에는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셔서 대단한 입담을 자랑하셨지요.

 

그가 왔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님께서 '여러분'에 등장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문화재에 대해서 습자지만큼이나 얄팍한 지식을 갖고 있어요. 유물 관련 국사 문제는 여지없이 틀려버리곤 했죠. '우와, 아름답다!'라거나 '이렇게 정교하다니, 대박!'이라며 입을 헤-벌리고 감상은 잘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딱딱한 설명이나 부담스런 참고사항이 아니라 조금 더 미학적인 관점에서 '문화재 그 자체'를 바라보는 '유홍준의 국보순례'가 술술 읽혔습니다. 무엇보다 너무너무 재밌었어요!

'유홍준의 국보순례'는 조선일보에서 연재한 칼럼들을 엮어낸 책이라 조선일보 사이트에서 검사하시면 바로 접하실 수 있어요. 제 기억에 남는 많은 유물들 중에 '백자 넥타이 술병'이 있는데, 조선일보에서 발췌한 부분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조선 백자에서 병(甁)은 기본적으로 술병이다. 제주병(祭酒甁)은 엄숙한 분위기를 위해 순백자를 사용했지만 연회용 술병에는 술맛을 돋우기 위해 갖가지 무늬를 그려 넣었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과 십장생 그림이 단연 많다. 그러나 아마도 사대부들이 사용했을 술병에는 매화나 난초가 품위 있게 그려져 있고, 청초한 가을 풀꽃(秋草紋)을 아주 운치 있게 그려 넣은 멋쟁이도 있다. 그림 대신 목숨 수(壽)자나 복 복(福)자를 써 넣기도 했는데 거두절미하고 술 주(酒)자 하나만 쓴 것도 있다.

그런 중 기발하게도 병목에 질끈 동여맨 끈을 무늬로 그려 넣은 '백자 끈 무늬 병'(보물 1060호)이 있다. 이는 옛날엔 술병을 사용할 때 병목에 끈을 동여매 걸어놓곤 했던 것을 무늬로 표현한 것이다. 경기도 광주 도마리에 있는 15세기 백자 가마터에서는 술잔 받침에 이태백의 '술을 기다리는데 오지 않네'(待酒不至)라는 오언절구가 쓰여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술병에 푸른 끈 동여매고/ 술 사러 가서는 왜 이리 늦기만 하나/ 산꽃이 나를 향해 피어 있으니/ 참으로 술 한 잔 들이켜기 좋은 때로다."

이 술잔 받침과 쌍을 이루면 딱 알맞을 술병이다. 특히 무늬를 갈색의 철화(鐵畵) 안료로 그려서 마치 노끈이 달린 것처럼 실감이 난다. 이런 발상이야말로 한국인 특유의 멋과 유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남대 교수 시절, 시험문제로 "한국미를 대표하는 도자기 한 점을 고르고 그 이유를 설명하시오"라고 출제했더니 인문대생은 달항아리를, 미대생은 이 끈무늬 병을 많이 골랐다. 그 중 한 학생은 유물명칭은 잘 모르겠다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샘(선생님), 저는 백자 넥타이 병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맞았다! 이 끈무늬가 갖는 조형효과는 바로 넥타이와 같은 것이다.

이 병은 안목 높은 수장가였던 고(故) 서재식 전 한국플라스틱 회장이 돌아가시기 전에 소장품 중 이 한 점만은 개인의 것이 될 수 없다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신 것이다. (출처: 조선일보 '유홍준 국보순례 칼럼' http://j.mp/vBy8kS )

 
굉장히 멋진 문화재죠! 사실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생각할 때 갓 쓰고 글 짓는 선비님들의 모습을 떠올리기 쉬운데, 멋과 낭만 그리고 위트를 아는 로맨티스트의 면모도 보여주니까요- 그래서 무척이나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유홍준 교수님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곁들여져서 더더욱 재미지게 읽었던 것 같아요.

저처럼 문화재 감상은 잘하지만 딱딱한 교양서엔 체하시는 분들, 스토리 텔링이 곁들여진 재미있는 책이 읽고 싶은 분들, 혹은 유홍준 교수님의 무릎팍 도사를 감명깊게 보신 분들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16. 08:30
엄마를부탁해(교보문고30주년기념특별도서양장본+친필사인)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신경숙 (창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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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엄마 말고 그녀


오늘 제가 소개드릴 책은.. 너무 유명하죠? 그래서 사실 쓸까말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소설이라면 오만상을 찌푸리는 동생녀석이 읽어보겠다고 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아 이렇게 오늘의 주인공으로 모시게 되었답니다. '엄마를 부탁해'란 제목부터 사실 제 취향은 아니었어요. 뭔가 가슴찡한 이야기는 웬만하면 좀 피하고 싶어하거든요. 그래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죠? 며칠 전 아마존 닷컴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문학, 픽션 부문 베스트10에 오르기도 하고! 무엇보다 신경숙 작가님도 무지 좋아해서.. 결국 책장을 펼쳤습니다. (그 전에 신경숙 님의 이야기를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살짝!)


올해 봄, 한 미국의 교수가 미국 라디오 방송에 나와 '엄마를 부탁해'를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죠. '김치냄새 나는 크리넥스 소설'이라며 엄마가 불행한 이유가 남편이나 자식들 탓이란 것은 미국 문화와 맞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비평보다는 비난에 가까워 저조차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요. 그 교수는 한국사회가 얼마나 많은 눈물과 희생 속에 세워져왔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나봅니다. 그래서 이런 소설이 더더욱 필요했던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으흐흐. 여러분께도 추천! 우리 모두 효도합시다! (급마무리ㅋ)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란 의미심장한 첫 구절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지하철 역에서 실종된 엄마를 찾는 과정에서 진짜 엄마의 삶과 욕망,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가족들의 여정을 그립니다. '엄마'는 언제부터 엄마의 이름 '박소녀'가 아닌 '엄마'로만 불리게 되었던 것일까요? 이 책은 무척이나 일관성있게, 꾸준하게 이 질문을 던집니다. 모든 슬픔과 아픔으로부터 우리를 감싸안는 엄마 말고 꿈도 있고 두근거리는 사랑도 있던 한 인간의 삶이 있었다고 말해줍니다.

나는 엄마처럼 못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딸인 내가 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고독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그런 부당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엄마를 부탁해' 262p)


아이들 챙기느라 꽃단장 한번 제대로 못 해보신 엄마도 예전에는 깔끔떨던 소녀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엄마의 삶을 조금씩 삼켜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 삶의 조각들을 자양분 삼아 성장해가는 것은 아닌지.. 사실, 무조건적으로 삶을 내어주고 희생을 불사하는 전통적인 어머니상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요즘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신세대 어머니들도 많으시니 '엄마는 부탁해'에 공감하는 세대는 생각보다 나이가 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점에서 더더욱 기억해야할 그분들의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너를 도시에 데려다주고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밤기차를 탔던 그때의 엄마의 나이가 지금의 네 나이와 같다는 것을 너는 아프게 깨달았다. 한 여자. 태어난 기쁨도 어린 시절도 소녀시절도 꿈도 잊은 채 초경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혼을 해 다섯 아이를 낳고 그 자식들이 성장하는 동안 점점 사라진 여인. 자식을 위해서는 그 무엇에 놀라지도 흔들리지도 않은 여인. 일생이 희생으로 점철되다 실종당한 여인. 너는 엄마와 너를 견주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한 세계 자체였다. 엄마라면 지금의 너처럼 두려움을 피해 이렇게 달아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 275p)


'일생이 희생으로 점철되다 실종당한 여인', 하지만 '한 세계 그 자체'였던 '엄마. 당신을 태초부터 품었던 그녀의 자궁, 그 동그란 세계에서 태어나 그녀의 삶을 딛고 성장한 우리의 삶. 이 소설의 의미 있는 이유는 너무나 당연해서 특별한 줄 몰랐던 '엄마'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더욱 유의미하고 고마운 책이었어요.

오늘의 우리들 뒤에 빈껍데기가 되어 서 있는 우리 어머니들이 이루어낸 것들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 가슴 아픈 사랑과 열정과 희생을 복원해보려고 애썼을 뿐이다. 이로 인해 묻혀 있는 어머니들의 인생이 어느 만큼이라도 사회적인 의미를 갖기를 바라는 것은 작가로서의 나의 소박한 희망이다. ('엄마를 부탁해' 작가의 말 중에서)


어떤 구절보다도 긴 여운을 남기는 '작가의 말'이죠? 단순히 어머니의 정을 이야기하고 우리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의 삶이 얼마나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이었는지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