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17. 08:30

 여러분 혹시 영화 <러브레터>(1995)를 기억하십니까?

 질문을 던질 때만 해도, '기억 못하실리가!' 라는 생각으로 한 말인데 벌써 17년 전 영화군요? 모르는 분들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기억하는 분이 틀림없이 더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혹 영
화를 보지 않은 분들도 이 영화의 '오겡끼데스까'의 장면만은 알고 계실 거에요. 그 장면은 영화보더 더 유명하고 인기를 끈 장면이면서, 영화 내에서는 한 명의 히로인인 히로코의 감정 클라이막스 장면이기도 한 중요한 씬입니다만,  사실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연정'의 주인공은 또 다른 히로인인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아닌가 합니다. 


                                                             봐요, 히로코도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요.

 이 영화의 묘미는 여기서 보여주는 "매우 뜸들이는 연정"에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마지막 씬에 도달하기 전까지 여자 이츠키 그녀는 남자 이츠키 그가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알지 못합니다. 주변의 추궁에서 '그런 거 아니야'라고 일관하죠. 중학생 때 반 아이들의 짖궂은 놀림에 그녀가 울자 그가 클라스메이트를 때렸을 때부터 우리는 다 알겠든데... 

 그렇지만 그녀만 탓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왜냐면 자신의 감정을 그녀보단 분명히 알고는 있었던 그도 도대체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를 않습니다. 사실 요즘의 우리들이라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어!'라고 말할만한 행동들 뿐이거든요. 이를테면 이런 거죠.



 새학기 첫날, 출석을 부르는 시간에 처음 서로를 의식하게 되는 성과 이름이 같은 두 어린 남녀. 이름이 같은 사람을 쉽게 잊을 수는 없죠. 이때부터 필연적으로 둘은 서로를 의식하게 됩니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쓰기 때문에 혈연이 아닌 남녀가 이름이 같다면 놀림당하기 십상입니다. 게다가 저 때는 가장 철없다는 중학생 시절 아니겠습니까?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두 남녀는 결국 아이들의 장난으로 도서위원일을 함께 맡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는 거의 일을 하지 않기 일쑤. 그리고 이상한 장난을 치곤 합니다.




 그러자 나중에, 그녀는 히로코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이건 우리도 미처 몰랐겠다! 싶은 강도의 어필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은 요즘 우리가 말하는 대로 그가 그녀를 충분히 많이 좋아하지 않아서였을까요? 놀랍게도 아닙니다. 왜냐면 그녀와 닮은 히로코를 본 순간, 여자에게 쑥맥인 그가 첫눈에 반했다,며 고백을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이라는 환상이 가진 힘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진실하고 강력한 감정이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던 거죠.

 그러나 계속 그 정도 범위에서 그는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그녀에게 약간은 심술을 부리지만, 뭘 더 어쩌지는 않습니다. 그냥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뿐. 신경을 쓰고 있을 뿐, 뭔가 잘해준다거나 사귀자고 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저 좋아할 뿐이죠. 감정이 표현될 때 해소되는 것이라면, 이 감정은 끝끝내 해소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지연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더는 그가 그녀를 볼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오자, 그는 그녀에게 러브레터를 전하지만, 그녀는 그게 러브레터인지 알지 못한 채 또 수 년이 흐르고 맙니다. 그 러브레터란 것도 걸작인 것이 그녀의 이름을 적은 독서카드 뒤에 그린 그녀의 초상화이거든요. 우회와 지연을 더하고 더한 엄청난 지연이죠.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뜸을 들인 그 마음은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야 드디어 수신인에게 도착합니다. 온 러닝타임동안, 그와 그녀가 처음 만난 이후부터 그는 죽고 그녀만 남아 살아가고 있을 때까지의 시간 동안, 뜸들이며 무르익은 그 감정은, 어린 사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무척이나 큰 감흥으로 터지게 됩니다.

 만약 그 마음이 더 일찍 그녀에게 전해졌다면? 
 그녀가 그의 편지를 받았을 때 발견을 했거나, 혹은 아예 그가 더 단도직입적으로 마음을 고백했다면?
 과연 영화는 지금 같은 여운을 남길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묘미는 바로 그 "뜸들임"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본 그 영화가 담고 있는 그 순수한 사랑의 감정에 무척 매료되면서도 꽤나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것만으로 족했던, 뭔가를 더 바라지도 않거나, 감히 바라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안으로만 담아둔 마음을 오래오래 유지했던 '순정어린' 때는 언제가 마지막이였는지 기억하고 계시나요? 만약 이게 현재의 우리들에게 들려진 얘기라면  아마 그가 친구를 때린 그 포인트에서 이미 '요거는 사랑이구만'이라며 잽싸게 그 포인트를 찍어내서 그 감정들을 모두 해부해 드러내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너 나 좋아하니?'라고 도발적으로 말한다던가, 키스부터 했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는 나랑 사귀자, 느니 하면서 말이죠. 

 우리가 더 이상 그런 순정어린 사랑을 하지 않게 된 건 우리가 더 이상 중학생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17년 전과 지금의 사회분위기 자체가 많이 달라진 탓이 있지 않을까요? 빨리 빨리, 어서 결론을 내자, 라는 느낌으로 말입니다. 혹은 이제는 무언가를 진득하니 안고 가기보다는 욕망을 즉각적으로 드러내어 빨리빨리 해소해 버려야 하는 문화가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뭔가를 오래 안고 있기에는 해야 할 게 너무 많잖아요? 원인을 찾자면 이것저것이 될 수 있겠지만 요는 문화 자체가 즉각적이고 빠른 방향으로 변화했고 연애 문화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중학생도 저런 순정어린 사랑을 잘 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요.

 그런 변화를 두고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런 순정어린 사랑이 반드시 더 좋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요. 무조건 회귀하자는 것은 대체로 위험한 생각일 수 있죠.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간다"는 사실은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해야하는 합당하고 현명한 이유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그렇다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천천히, 은은히, 뜸들이는' 사랑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 위상 혹은 유의미한 지점이 무엇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소개팅이나 선처럼 애초에 어떤 목적을 가진(조건이 맞으면 함께 한다는 식의) 만남을 주로 하고 있는 요즈음이라 그런지, 조금은 저 순수한 사랑이 그립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것으로 족했던, 오래오래 그 감정을 가슴 속에서 숙성시켰던 그런 때가. 그래서 쉽게 변하지 않았던 마음이라는 것이. 사랑이 소모품처럼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순수한 연모의 정으로 남을 수 있었던 그런 때가. 감정도 비교적 빨리 타오르고 빨리 식는 지금의 문화에서
오랜 시간 뜸을 들였을 때 감정이 더 깊어진다는 것은 예전의 사랑이 주는 교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조금 더 천천히 진득하게 사랑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조금은 욕망을 절제해 가면서 말이죠.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S.


더딘 사랑

 

                                           이정록

돌부처는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말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2. 20. 08:30


 지난 포스팅에서 개인적으로 이별이 아픈 이유를 크게 네 가지로 말해보았습니다. 그 네 가지란,

하나는 사랑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것,

두 번째는 내가 가장 가까이 지낸 사람과 쌓은 우정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이별의 과정에서 생긴 일들로 인해 지난 사랑의 시간까지 의심하게 되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상처로 인해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는 것이었어요.

(지난 포스팅이 보고 싶으시면 여기 →http://libertyanddiversity.tistory.com/entry/20-이별이-힘든-네-가지-이유-1부 )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슬프지만 대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견딜만한 일이었는데요.

 좀 더 견디기 힘든 것은 혼자서 회복해야만 하는 세 번째와 네 번째의 이유입니다.
먼저 네 번째의 이유는 연애가 끝나면서 받은 상처가 자신이 가치 없기 때문에 그만한 대우를 받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어서 느끼는 감정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자존감에 상처를 입게 된 경우를 말하는 건데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라는 생각이 들면 자연히 ‘내가 문제인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고, 세상 일은 그럴 만 하니까 그렇게 일어난다는 생각이 우리 무의식에 존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 그것은 하기 쉬운 오해로, 내가 가치가 없어서 그런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게 아니어도 그런 일을 당하기도 하는 것이 세상일이 일어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죠. 다만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어떤 패턴의 행동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유도했을 수는 있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원치 않는 반응을 하기 쉽게 내가 상대에게
잘못 행동한 것뿐이지 자신이 가치가 없어서 그런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그 행동을 수정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가치를 의심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상황이 극단적일수록 겪기 쉬운 아픔인 것 같습니다. 가령 모르고 한동안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자기가 양다리 중 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결혼은 나 말고 다른 쪽 사람과 하더라는 사례가 있다고 해 보아요. (일전에 소개해드린 블로그에서만 보아도 의외로 많더라구요) 그러면 충격과 공포 속에서 ‘나는 선택할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우선 들 것이고, 사귀는 내내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던 건, 내가 그런 식으로 함부로 다뤄져도 좋은 사람이라서 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거기다가 결혼한 후에도 ‘그냥 만나자’며 전화가 온다면?? ‘나는 가볍게 그냥 만나도 되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겠죠. 사실 잘못은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가해자의 잘못이 무척 큰 건데도, 상황에서 피해자였던 사람이 가치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참 억울한 아픔입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그런 행동들을 계속 받아주거나 했다면 나를 함부로 대하도록 허락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내가 잘못 행동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앞서 말했듯 잘못 행동한 거지 내 자신이 그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요. 없는 것처럼 행동한 걸 수는 있지만요.

 

 혹은 이 정도까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도 상처는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랑했는데 결국 잘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사랑했는데도 결국 끝까지 관계를 유지하게 못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보게 되겠지요. 거기에는 분명 원인이 있겠으나, 그 원인이 전부 자신 의 잘못인 것은 아닙니다. 혹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해도 그게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근거가 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기까지 생각이 오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긴 하겠지요.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힘들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이 부분도 친한 친구들이 조금 도와줄 수 있습니다. 여자 친구들이 특히 잘하는 것인데요, 무조건적인 위로가 필요할 때 네가 아까웠네, 넌 아주 매력 있는 여자네, 그 남자는 너를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했네, 세상의 반은 남자네 등등의 위로를 퍼부어주는 것이죠. 그렇다고 없는 얘기를 지어내는 건 아니지만 이때는 좀 더 과장해서 말하기도 합니다. 왜냐면 이 때 중요한 건 사실을 인식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거든요. (사실 인식은 나중에 친구 마음이 회복되고 난 다음에 해도 되니까요.) 그러면 친구들의 말이 혹 과장되거나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도 그것을 과장하고 거짓말하는 마음이 고마워서 자존감을 되찾게 됩니다. 아, 이렇게까지 해 주는 친구들이 있으니 난 사랑받을만한 사람이구나. 이런 거죠.
(근데 재밌는 건 남자들은 영 다르더군요? 물론 모든 남자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요... 여자들은 칭찬을 해주는데 남자들은 욕을 하더라구요. 병신 니가 그렇지. 꼴 좋다. 마시고 죽어. 뭐 이런? 그건 도대체 왜 그러는 거에요? 혹시 그래서 남자들은 실연의 상처를 잘 회복 못하는 겁니까??)

 

 부가적인 얘기가 길어졌지만 어쨌든 네 번째 이유도, 그것은 자신이 그만한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혼자서 생각하기 어려우면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자, 그리고 나니까 이제 남은 것은 세 번째 이유였습니다.

 

 이별이 아픈 세 번째 이유는 지난 사랑의 시간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연애를 했지만 상대가 나를 과연 사랑했는지 의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을 말합니다. 나를 사랑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 혹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지요. 오글거리며 표현해보자면 “정말 날 사랑하긴 했니?”의 아픔이랄까요?

 

 이런 아픔은 이별의 과정에서 지난 시간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들 만한 일이 있었을때나(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폭언을 한다든가 무성의해지는 등 갑자기 바뀐 언행이나 태도로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일 때, 알고 보니 그 동안 나를 속인 점이 있다 등), 혹은 연애의 과정에서 상대방에게서 충분히 애정을 느끼기가 힘들었던 경우 등에서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더 이상(혹은 마지막까지)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느끼는 아픔 입니다. 그 사람을 믿을 수 없는 게 괴로운 이유는 함께 했던 시간을 통째로 부정당해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변해버렸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난 시간은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내가 극복해야 할 것이 되어 버리는 거지요. 이 와중에 네 번째 이유인 자존감에 상처입는 아픔이 섞여 들어가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네 번째 이유에서 들었던 양다리의 사례는 세 번째 이유를 겪게 되는 상황도 될 수 있겠습니다. 혹은 상대방이 이별을 막으려는 노력에 너무 소극적이라던가 하는 경우에도 이런 아픔을 가지게 될 수 있고요. 하지만 사례를 얘기하면서도 같은 경우라도 이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쉽게 믿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아픔을 느끼기 쉬울 테니까요.

 

  그래서 이게 여러분의 공감을 살 수 있는 이야기인지는 자신이 없습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이 아픔이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괴로움이었습니다. 차라리 사랑이 끝났다는 것은 견딜 수 있었지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행복하다는 느낌을 끝내 받지 못하거나 행복하다고 믿었던 기억이 통째로 속은 기억으로 바뀌어버린 채 관계가 끝나는 것은, 그것을 바꾸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에서 더욱 힘들었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그 인식이 바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믿을 수 있어야 하는데 헤어진 후 그를 믿을 수 있게 되기가 쉬운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보통은 각자의 아픔 때문에 더 이상 교류가 없기 마련이라서요.

 

 그래서 이별 후에 지난 시간에 대한 기억은 오직 자신만의 일이 되는 것이라 그 아픔을 극복하는 것은 오로지 내 마음에 달린 일이었습니다. 다른 누가 아니라, 내가 혼자 내 마음과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헤어진 후 너를 정말 사랑했노라는 고백도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선 사람의 마음보다 믿기 어려운 걸 보면 이 아픔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내가 납득할 때만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으로, 그렇기에 아무 도움 없이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이 아픔일 수도 있다고요. 그 기억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오직 나밖에 없다면 그 순간에는 조금이라도 진심이 있었다고 믿어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하고요. 그것이 다소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더라도, 다시 관계를 시작하려는 게 아닌 한 그 사실을 오해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으니까요. 게다가 나이가 들면서 좀 무뎌져서 그런지 진심으로 좋아했던 게 아니면 또 어떤가 라는 생각도 시간을 좀 가지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다고, 마음은 좀 아프지만,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아직까지는 앞으로 더 이상 볼일이 없을 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전제를 두고는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과 우정을 쌓을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그래놓고 보니 좋은 이별이란 사랑이 다 할 때까지 사랑하고, 헤어진 후에도 우정을 유지하려고 시도해 보며, 비록 헤어졌지만 나도 상대방도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며 지난 시간동안은 분명 사랑받았다고 믿을 수 있는 연애의 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지난 이별은 이 조건에 상당히 많이 부합하는 이별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잘 맞지 않는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게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에서의 차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끝까지 함께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구요. 하지만 워낙 서로를 마음 아프게 하거나 잘못한 일이 별로 없었던 사이였던 데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한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게 해 주었던 사이어서, 혹시 그 차이가 좁혀지지는 않을까 하고 꽤 시간을 가지고 노력해보았지만 그러는 중에 사랑의 감정이 다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결국은 더는 노력할 여력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헤어지는 때에는 최대한 상대방이 자존감에 상처받지 않도록 서로를 배려하며 이별의 말을 하였습니다. 게다가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어요. 정말 좋은 사람이라서 아까웠거든요. 그 사람 역시 다시는 저 만한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아쉽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진심으로 서로의 행복을 빌었지요.

 

 이별 후 결국 친구로 남았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사람을 만나셨기에 오래 우정을 쌓을 시간은 주어지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귀기 전에 새로 만난 사람에 대해 저에게 이야기 해 주었고 결국 사귀게 되었을 때는 제가 진심으로 잘됐다고 축하해주었어요. 그 분은 자신의 여자 친구를 불안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는 분이고, 저도 그분의 여자 친구가 싫어할 만한 행동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축하 이후로 서로 굳이 연락은 더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연락이 오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 짧은 와중에도 충분히 우정을 느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것은 이분과의 이별에서 아픔이 적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아프면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거나 배려하기가 더 힘들어지니까요.

 

 너무 아픈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는 노랫말은 그래서인가 봅니다. 그래서 공지영 작가는 딸에게 좋은 이별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연애하라고 했는가보아요. 좋은 이별을 할 수 있는 연애를 하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연애는 언제 다시 하게 될까요? ...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2. 13. 08:30

 여러분은 첫 break-up의 감정을 기억하십니까? 반드시 그게 처음 해본 연애는 아닐지라도, 자신이 처음으로 온 마음을 쏟아 형성했던 관계가 깨졌을 때, 그 아픔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을 것입니다. 사랑이 깨진 것도 힘든 일인데,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막막함이 더해질 테니까요. 그래서 가장 힘든 이별은 첫 이별인 것 같아요.

 그런데 몇 번의 이별을 경험해 보고 난 후, 모든 이별이 다 똑같이 아픈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의 이별은 잘 몰라서 그랬다고 쳐도, 그러면 연애를 거듭할수록 점점 아픈 게 덜해지느냐 하면 또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고요. 그러다보니 이별 후 슬픔이라는 감정은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가 궁금하더군요. 어떤 원리로 아프게 되는 것이고 왜 매번 다르게 될까?

 “이별의 슬픔”이라는 아주 감성적인 소재에다가 분석을 틀을 들이대는 것은 사실 무척 산통 깨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별의 슬픔이라는 감정은 여러 가지 원인을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슬픔이면서 그것 자체가 실체라서요. 그렇기에 그 감정은 주로 문학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설명이 장황해지기 십상일 텐데, 그러다 보면 그 본질을 잃어버리게 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별의 슬픔을 본질에 가깝게 담기 위해서는 차라리 문학적인 언어들을 그릇으로 사용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결정을 하나 하나 떼어내서 구성요소가 무엇인지 한번 분석해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때로 분석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어떤 실용적인 목적? 그야 그 아픔에서 조금 더 잘 벗어나 보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지요. 여러모로 life must go on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뜬금없이 왜 이별을 극복할까? 라고 의문을 가지는 예리한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네, 그렇습니다. 드디어 고백하는데 사실 저는 몇달 전 남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그 이후 <나영이>의 원고 진도가 잘 나가지 않을때는, 연애 에세이를 쓰겠다면서 연애를 중단하다니, 갓대밋.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지, 라며 머리를 쥐어뜯어보기도 하지만
 그건 급박한 상황에서 뭐라도 붙잡고 탓해보고픈 '그냥 하는 말'일 뿐 사실 그 연애가 끝난 것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가 없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연애 중 가장 잘 헤어진 연애였거든요. 헤어지는 게 옳은 결정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잘못한 것은 특별히 많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 적은 처음이었어요. 혹 다음에 이별하게 된대도 이 이별처럼 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제까지와는 다른 이별을 경험하고 나니 지금까지 경험했던 이별과 이번에 경험한 이별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그래서,
이것은 일반적인 차원의 얘기는 아닙니다. 저 개인적으로 느끼고 생각했던 것에 해당하는 내용이에요. 보통 이런 것을 자세히 생각하는 사람은 제 주변에 많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데이터를 사용하려면 이런 저런 감정들을 캐 물어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그 때 너의 감정이 정확히 어떤 것이니, 이런 것이니 저런 것이니? 어떤 요소들로 이루어진 것이니?'라고 묻는 것은 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위험이 있는 것 같아요. 게다가 그런 걸 물을만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는 오래된 친구들은 그나마 '일반적인' 연애 패턴을 가진 사람이 없어요. -_- 제가 제일 일반적이에요. 아마 개성 강한 친구들을 좋아하다 보니 이렇게 됐나봐요...(아, 아니 막상 친구들은 생각이 다를지도?!)

 
아, 사설이 너무 길었어요. 아무튼 개인적으로 이별이 아픈 이유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사랑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것,
 두 번째는 내가 가장 가까이 지낸 사람과 쌓은 우정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이별의 과정에서 생긴 일들로 인해 지난 사랑의 시간까지 의심하게 되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상처로 인해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누구나 공감하기 쉬우시리라 생각합니다. 저것은 꽤 포괄적인 상황을 의미할 수 있는 표현인 것 같아요. 그 중에 가장 힘든 경우는 사랑이 남았으나 지속할 수 없는 경우 같습니다. 그것은 한 쪽의 사랑이 끝났기 때문일수도 있고 양 쪽의 사랑이 다 남아있으나 도저히 관계를 지속하기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 여기에 자신이 잘못한 일이 눈에 들어오는 시기가 더해지면 더 사랑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더욱 안타까워 지는 것 같아요. 혹은 타인이 잘못한 일이 들어와서 원망이 더해지는 경우도 있겠네요. 그리고 사랑을 주는 것 뿐만 아니라 받는 것을 더 못한다는 것에서 오는 괴로움도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은 사랑은 쌍방이 다 하였으나 사랑하던 감정을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것에서 느끼는 아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런 모든 상황을 통칭하여 사랑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 주는 아픔을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실연의 아픔에 해당하는 요소들이지요. 

 사실 사랑이 끝났다는 것에 의아해 하실 분은 잘 없겠지만, 남자친구와의 ‘우정’에 의아해 하시는 분들 있으실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연애를 할 때, 남자친구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어서, 일상을 함께하는 연애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구속하는 유형은 결코 아닙니다만) 그게 아니라도, 남자친구는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여도 솔직하게 많은 얘기들을 털어놓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금방(다른 ‘친구’들에 비해) 마음을 열고 믿게 된다는 뜻인데요, 그렇게 형성된 우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삶의 중요하거나 소소한 순간들에 항상 함께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별을 맞았을 때 저는 사랑이 끝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우정까지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헤어지고 나서도 친구로 지내기를 무수히 시도하곤 했는데, 그건 참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겠더군요.

 

                   상기의 이유 때문입니다. 젤 친한 친구였잖아요 ㅠ_ㅠ 마음이 정리되면 못할 것도 없지 않나요? 


 어쨌든 몇 번의 연애 끝에,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슬프지만 견딜만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새로운 우정을 쌓아가면 그 자리는 또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잃어버린다는 것 자체는 어떻게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이라 그 아픔은 어쩔 수 없지만 언젠가 그것이 끝난다고 하면, 한결 견디기 쉬운 법이니까요. 게다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훨씬 회복하기가 쉽고요.

 

 그리고 이제 좀 더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 번째와 네 번째의 이유입니다.
 내용이 많이 길어지니 이건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 설명할께요. :)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22. 08:30


 SBS에서 만든 '짝' 이라는 프로그램 많이들 보십니까? 저는 그동안 지나가다 잠시 보는 것 말고 제대로 챙겨본 적은 없었는데요, 이번에 한번 찾아 보니 재미있더군요. 기본 포맷은 여러 명의 남녀가 서로를 탐색하고 데이트하고 최종결정을 하는 기본적인 짝짓기 프로그램의 포맷이지만, 일반인들이 등장하는 그야말로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점, 그냥 짧은 시간동안 설정된 데이트를 한다기보다 시간을 두고 합숙을 하며 서로를 알아간다는 점이 좀더 현실적인 느낌을 주어서 더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았어요. 게다가 이름을 밝히지 않고 남자 1호, 여자 1호라는 식으로 번호를 붙여서 부르는 것, '애정촌'이라거나 '짝'이라는 한글 이름을 붙인 것 등도 참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었습니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그런 익명성이나 상징성을 가진 이름을 붙임으로써 좀더 객관적이고 대표성이 있는 느낌을 주어 공감대를 넓히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 우리도 모두 한 사람의 남자와 여자일 뿐이지, 라는 느낌?)

 이번에 제가 찾아본 프로그램은 "애정촌 13기. 노총각·노처녀 특집 마지막회"였습니다. 굳이 노총각 노처녀 편을 찾아 본 이유는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고 함께할 사람을 찾는 과정에 더 오래 있었던 선배들에게서 무언가 느끼고 배울 점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느끼고 배운 점이 있었냐고 물으신다면, 물론 그렇습니다만 오늘 말하고 싶은 주제는 "와 선배들은 역시"라는 느낌의 내용과는 조금 다른 부분의 이야기입니다. 굳이 설명해보자면 "와, 나이가 많든 적든 사람은 역시" 라는 느낌의 내용이죠.

 뭐냐, 바로 여자 2호님과 관련된 러브라인이었습니다. 여자 2호님은 35살의 고등학교 교사이십니다. 이 분은 처음에 마음에 들어했던 남자 5호와 처음부터 여자 2호분을 마음에 들어했던 남자 7호님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계셨습니다. 
 


 예쁘시죠? 목소리도 좋으시더군요.


 


 남자 5호분도 역시 무척 매력적인 분입니다. 참가자 중 나이가 가장 많으셨지만 첫인상 선택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으실 정도의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계시고, 광고일을 하시는 분답게 예술적 재능도 있으시고 센스도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조금씩은 호감을 가졌던 여자 2호분과 남자 5호분이 완전히 서로에게서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던 대화가 여기에 등장합니다. 남자 5호님에겐 오토바이를 타는 취미가 있는데, 그분에게 그건 라이프스타일의 한 부분으로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젊지만은 않은 나이셨던 만큼, 그런 취미가 나쁘게 비칠까봐 고민도 하셨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여자 2호님이 남자 5호님에게 "오토바이는 위험해요"라고 말을 하신겁니다.

 결국 서로 호감은 느껴지는데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기 어려운, 감정적으로 애매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겁니다. 최종선택을 앞두고 서로의 마음을 잘 알기 어려웠던 두 분은 마지막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머 동영상이 막혔나요? 아.. 이거 영상으로 보셔야 하는데 ㅠ 아쉬운대로 캡쳐로 ㅠ_ㅠ


 
 요약하면 대화의 요는 "오토바이는 위험해요"라고 말한 이유는 그냥 자신이 느끼는 바에 대한 표현이었을 뿐 오토바이를 타기 싫다는 뜻도 아니고 남자 2호에게 호감이 있거나 없음을 표현하려는 의도도 없는 말이었다,는 것이 여자 2호님의 입장 변론이었습니다. 반면 남자 5호님은 그건 의도가 있어보이는 행동이다, 라고 말씀하셨고 아마 편집되어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는 그것을 납득시키려고 주장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왜 의도가 없는 사람이 의도가 있어보이는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자 5호분이 주장도 강하시고 말씀도 잘 하시는 편이었기 때문에 여자 2호분은 본인의 입장을 다 잘 설명못하신 채 결국 눈물을 보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분은 완전히 서로에 대한 호감을 거기서 끝내시게 되었던 거지요.

 보면서 저는 정말 오글오글 했습니다. 화끈화끈하기도 했고요. 별로 낯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두 분의 입장을 모두 너무 잘 알 것 같았고, 그래서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여러분은 저 대화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아무래도 대화를 주도해 나가면서 눈물을 보이는 여자 2호님에게 마지막까지 대표님 모드로 부하직원을 대하듯 자기 입장을 정리하신 남자 5호님이 잘못했다고 생각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그 분이 하신 말씀에는 틀린 게 하나 없지만 그건 자기 입장을 말하는 내용이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게 자기 입장만 말해서는 안되는 거였죠. 상대방이 하는 말을 인정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시지를 않습니다. 물론 믿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자 5호님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남자 5호님에게 여자 2호님의 행동이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 뿐이지 여자 2호님이 원래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아니지요. 그러니까 "네가 한 행동이 아무래도 나에겐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 네 말을 믿기가 힘들다" 혹은 "그렇게 행동하면 나한테는 의도가 있는 걸로 보인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행동은 누가봐도 의도가 있는거다" 라든지 "넌 그런 의도가 있었다, 그건 의도가 있는 행동이었다"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겁니다.

 너무 복잡하게 따지고 들었나요? 사실 대화라는 것은 파고들면 이렇게 복잡한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는 자기가 보는 관점에서밖엔 알 수 없어요. 그런데 그게 자기의 세계 인식이다보니,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하는 일이 생깁니다. 사실은 개인의 부분적 인식일 뿐인 내용을 그게 전부인 것처럼 일반화된 표현을 사용해서 말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보통 일일히 그걸 구별해서 말하진 않잖아요? 말하자면 표현은 실제만큼 정밀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괴리에서 오는 오해가 여러 싸움의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서로 잘못 없다고 하는, 사실은 서로 잘못한 싸움들이 벌어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여자 2호님도 '나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라는 말을 반복하시지만, '나는 그걸 잘 못받아들이겠다'라는 남자 5호님의 입장을 인정해주는 모습은 화면에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 모습은 남자 5호님에게 '나는 당신을 오해하게 만들만한 행동을 안했는데 당신이 오해한거다.'라고 말하는 느낌을 충분히 줄 수 있습니다. 남자 5호님 입장에서 본인은 오해를 했는데(즉, 본인이 봤을 때는 분명 의도가 있어 보였는데), 그 행동은 오해를 하게 만들지 않았다고(의도가 있어보인다고 생각할만한 행동이 아니라고) 한다면 답답하시겠지요. 

 이처럼 무엇보다 두 분의 대화에서 안타까웠던 점은 두 분 다 서로의 마음을 잘 못 읽어준다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상대방이 말하고 싶어하는 입장을 받아들여주고 그에 대해 리액션을 해 주는 것 말합니다. 인정이 중요한 것은 인정받지 못할 때 화가 나기 때문입니다. 리액션을 해 주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결국은 감정에 작용하기 위해서지요. 자기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느끼면 화가 납니다. 그러면 남의 말도 귀에 잘 안들어옵니다. 그러면 서로의 감정을 더욱 상하게 만들고 거기서 애초에 논리가 뭐였건 관계는 끝장이 나는 거지요.(보통은 대화가 안되므로 논리도 끝장이 납니다.) 두 분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먼저 상대방이 느끼는 바를 인정하고 "오해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혹은 "오해해서 미안하다"라고 했으면 좋았을텐데, 싶었던 거죠. 사실 서로가 의도한 바와 이해한 바가 달랐다면 그것은 오해이고, 거기에는 양쪽 다 크든 작든 책임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이 사례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주는 대화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를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여자 2호님은 상담 교육을 석사 전공하셨고 남자 5호님도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분야에서 종사하시며 언변도 좋으신 분입니다. 게다가 두 분 다 살아온 시간이 짧지는 않으시고 그렇다고 특별히 더 배려심이 부족한 모난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십니다. 이런 분들도 겪으시는 문제 상황이라면, 말 다했죠. 그렇지 않나요?

 그러니 우리가 특별히 자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필요하지요. 그러니 못한다고 기죽기보다는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두 가지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1. 내 입장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고 할 것
 2. 상대방의 '일반화'된 말을 표면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의 의미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


 여자 2호와 남자 5호가 대화를 마치고 돌아온 후, 여자 2호는 남자 7호를 찾아갔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있었던 얘기를 듣고서 셰프인 남자 7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자 7호 "그럼 안 풀었네."
여자 2호 "풀었어요, 우리는 안맞다."
남자 7호 "그게 푼거야? ㅎㅎ"
여자 2호 "서로가 원하는 관계가 아니다."




참으로, 내 마음을 케어한다는 느낌이 드는 반응 아닙니까? 
(아, 개인적으로 남자 7호 이분 참 볼매셨어요.)

역시 관계에서 논리의 옳고 그름은 그 자체로는 개미눈물만큼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게 감정의 작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필요할 수는 있겠지요. 인간에게 있어서, 단지 연애 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사실은 감정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을 더해갑니다. 


by 토끼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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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25. 05:17


 최근 화제가 되었던 한 결혼정보회사의 남녀 직업별 등급표 혹시 보셨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여성의 직업등급표가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는데요, 전체적으로 공부 잘 하는 여자는 얼굴 이쁜 여자 못 따라가고 얼굴 이쁜 여자는 팔자 좋은 여자 못 따라 간다는 말을 고대로 옮겨놓은 등급이더군요ㅎㅎ 반면엔 남성은 더 돈 잘 벌고 더 사회적으로 힘 있는 직업일수록 높은 비교적 단순(?)한 기준이더군요.

여자 1등급부터 3등급까지는 심지어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게 아닌 내용. 어이구 저런.

 
 하지만 특히 제 관심을 끈 부분은 "공무원 합격자" 등급 분류부분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같은 직업군이니까, 비교하기에 더 수월하기 때문인데요. 이 등급표에서 공무원 등급 분류는 크게 3~4가지로 되어 있는데 내용 별로 남녀의 등급 순서가 서로 다릅니다. 남성의 경우

7급공무원(검찰,국정원,국세청) 7급(지방직) 9급(법원,검찰,국세청,서울시) 9급 합격자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 여성의 경우


7급(지방직)  9급 공무원 7급(중앙직, 검찰,세무,국정원)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남자 1순위가 여자 3순위로 와 있는 것 보이시죠? 남성의 등급이 더 많은 재력과 권력에 따른 것이라고 했을 때, 여성은 그럼 어떤 순서를 따르고 있는 걸까요?


 저는 이렇게 추론했습니다. 7급 지방직이나 9급은 역할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같은 내용을 처리하는 직업군입니다. 그러므로 7급 지방직과 9급은 연봉 이외에 업무 환경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순위의 차이를 보이는 7급 중앙,검찰,세무,국정원직은 급수는 같아도 상대적으로 파급력이 커서 책임도 큰 업무, 말하자면 파워가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파워가 많은 직업은 일도 많지요. 그러니까 일 때문에 바쁜 아내는 싫다, 라는 것 아닐까요?
(물론 어디까지나 제 추론이므로, 근거가 정확하지 않다는 점을 밝힙니다. 잘 아시는 분이 있다면 보충,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확도를 보장할 수는 없지만 이 추론은 저를 상념에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결혼정보회사의 기준이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수요를 반영한 등급일테니 어느 정도는 사회의 수요를 보여주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제 추론이 틀렸다 하더라도 주변에서 "대기업 남편+7급지방직 혹은 9급공무원 아내"의 조합을 원하는 경우를 꽤나 보았기 때문이죠. 말하자면 이 추론은, 평소 보아왔던 그 선호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도화선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 조합이 선호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 저 조합이 가장 효율적으로 살림(+육아)과 생계유지를 해 나갈 수 있는 조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통적 혹은 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은 육아와 살림을 맡아서 '보살핌'을 담당하고 남성은 주수입을 책임져서 '현실적 기반'을 마련하는 역할 분담이지요. 게다가 현대사회는 직장을 다니면서 육아를 할 만큼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경쟁과 효율을 추구하는 사회이기 때문이지요. 효율은 '모아주기'할 때 특히 빠른 성과를 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자본이 대기업에 집중되듯이 노동자의 시간도 회사일에 '집중'되는 쪽이 좋지요. 결국 근대적인 성역할과 현대사회의 분위기가 합쳐져 도출된 결론이 바로 "대기업 남편+공무원아내"의 조합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복잡하게 추론하거나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 결론이 그닥 우리에게 새로운 내용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더라~라고 말로 듣는 것과 저렇게 등급표를 만들어서 눈으로 보는 것은 실감도가 다르더군요. 그래서 "새삼" 그 현실을 진지하게 인식해보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제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는 '왜 여자만 집안일을 해야되냐'라든지 '왜 남자만 돈 벌어와야 되냐'라는 건 아닙니다. 성 역할이 고정되는 것도 물론 문제지요. 하지만 저는 '분업'을 하는 것에 다소 불만이 있습니다. 왜 현실적 기반을 만드는 일과 보살핌을 하는 일을 나눠서 해야 하지요?

 물론 왜인지는 압니다. 현실에서 그게 효율적이라서 그렇지요. 분업은 효율적이라서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될까요? 도구적 이성만 사용하다 망한 게 현대사회의 폐해이지 않겠습니까. 말하자면 저 두 가지 역할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내용입니다. 또한 각각의 역할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험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성장시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물질적 기반이나 보살핌 둘 중에 한 가지만으로는 온전히 살아가거나 성장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살짝 과장해서 말해보자면 그 두 가지 능력을 모두 갖추었을 때 그 사람은 '온전한 주체'로 기능할 수 있는 독립된 인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전인적 인간'에 다가서는 것이지요.


 너무 과장하는 것 아니냐,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역할 분업을 하는 모든 부부가 한 쪽은 돈 버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한 쪽은 현실적 기반을 마련할 능력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분업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각자 맡은 내용이 다르기에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고 소중한 부분도 분명 있지요.

 그렇지만 밥 먹는 일을 내가 전담하고 공부하는 일은 네가 전담하면 너도 나도 배가 안 고프고 지식도 늘어나는 게 아니듯이, 한 주체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성장하는데 필수적인 내용을 나눠서 하는 것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게다가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얼 하고 살아가는지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데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하지요. 따라서 어떤 일만을 전담하게 되어있다면 그 쪽으로 편향된 인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그러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쉬운 것이 사회의 대세를 형성합니다. 그러면 결국 그런 사회가 되는 걸 테지요.


 현실에서 역할 분담으로 인해 이미 발생한 문제들을 보면 자녀들과 정서적 교류가 없는 아버지,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이혼하지 못하는 가정폭력 피해자 등 개별적 차원의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회가 갈 방향을 좌지우지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효율을 추구하여 경쟁에서 이긴, 보살핌보다는 돈 버는 일에만 집중한 남성(적 가치)들'이라면 결국 그 사회는 그런 남성의 가치관이 추구하는 방향의 형태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타인을 보살피는 것은 많은 부분이 개인적 차원의 책임으로 넘어간 것 같은' 지금의 사회 분위기는 이미 그 형태를 반영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제가 이것을 '단순한 선택과 취향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그저 제가 그것을 원한다면 저는 피를 쏟는 각오로 치열하게 일과 살림을 모두 해내는 기혼자가 되면 되는게 아니라는 거지요. 행복하고 인간다워지자고 하는 일인데 피를 쏟는 각오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부터가 뭔가 문제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소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남편도 아내도 그 두 가지를 다 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그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그러면 우리는 좀 덜 효율적이게 되고 좀 경쟁력이 떨어지고 좀 수준이 낮아질 수도 있겠지만, 대신에 좀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성장하게 되고, 전인적이게 될 것 같습니다.


 너무 욕심이 많은 걸까요 ㅎ 그럴 수도 있겠네요.


 
by 토끼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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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18. 08:30


 유명한 미드 "Sex and the City"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자신과 너무 잘 맞는 사람을 만나 연인이 되지만 다른 사람에 그 연인을 소개하는 것은 꺼리는 사람의 이야기지요. 그리고 연인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지 않는 이유는 남들에게 부러움을 살 만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어울리는 사람들에 비해 사회적으로 좀 초라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사람은 연인과의 관계는 유지하지만 끝끝내 사람들에게 소개시키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큰 그림에서는 자신과 맞지 않기 때문에 미래를 함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요. 결국 이 에피소드는 숨겨진 정부취급을 받던 이 사람의 연인이 자신을 당당히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이 사람과 헤어지면서(정작 이 사람은 그 때 연인과 공개된 관계를 가지려고 할 때였죠)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제가 궁금했던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 사람이 가진 것' 때문에 '그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 건 나쁜 일일까요? 더 나아가서 그런 사람과 '숨겨진 관계'를 갖는 것은 나쁜 일일까요?

 누구나 그런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조금씩은 고민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할 때 '내가 너무 속물인가?'라며 조심스럽게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보았습니다.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려면 '속물'이 뭔지부터 제대로 정의하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속물'을 '나쁜 것'으로 바꿔본다면 저는 "No"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연애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결혼의 목적"도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하고요.) 관계를 통해 얻고 싶은 것 중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다른 사람의 높은 평가'라면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되겠죠. (그게 연애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므로 '그 사람이 가진 것'이 나에게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면 '그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오히려 옳은 선택이지요. 그러니 그 사람의 외부조건 때문에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로 인해 관계를 포기하려는 자신을 속물이라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계가 이미 정해진(미래를 기약하지 않는) '숨겨진 관계'를 갖는 것도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관계에 참여하는 두 사람이 모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 관계로 인해 상처받을 사람이 없다면 말이지요.(하지만 그러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체로 권하지는 않고 싶습니다. 그게 '관계'라면 오래 지속될 수도 없고요.) 


                                              샬롯도 처음 해리를 만났을 때, '숨겨진 관계'를 원했지만
                                                       결국 두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보세요.
 

 하지만 그 '숨겨진 관계'의 정체를 한 쪽만 알고 있다면 그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예를 들어서 A는 B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B는 그건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A에게 말하지 않고 계속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그럴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단지 지금 당장은 문제가 안되고, A가 싫은 건 아니기 때문에 A가 미래가 있는 관계를 원하는 걸 알면서도 '숨겨진 관계'를 유지합니다. 이건 나쁩니다.  이 관계에서 A는 속았으니까요.

 물론 실제 상황에서는 여러 요소가 훨씬 애매할 거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A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B가 모를 수도 있고 그걸 지레짐작하는 것이 오버일 수도 있고요. A가 결혼하자고 말한 것도 아닌데, 너랑은 결혼 못할거 같아, 라면서 헤어지는 건 잘하는 건가?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고요. 지금은 아닌 것 같아도 혹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게다가 그럼 둘 다 괜찮다면 인간이 서로를 수단이나 도구처럼 이용하는 건 괜찮은가? 라는 윤리적인 논쟁의 문제가 있을수도 있고요.
 
 칸트라면 안된다고 하고 공리주의라면 된다고 할 만한 '정의란 무엇인가'식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떤 안 좋은 일을 당한다는 것은 무척 화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자신의 의지대로 할 기회가 있었는데, 누군가 사실을 알면서도 말해주지 않아서, 그런 기회를 빼앗겨버렸다면, 그래서 결과적으로 더 상처받게 되었다면 그건 나쁜 일이죠. 기회를 빼앗은 사람이 분명 잘못한 일입니다.

 그러니, 만약 제가 다소 '속물적'인가? 라고 고민할만한 이유로 누군가와 관계에서 미래를 기약하지 못하는데 그 생각이 확고하다면, 그 관계를 끝내는 것은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  미래를 함께할 기약은 앞으로도 계속 못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재를 놓치기 싫어서 그 관계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적어도 그 상황을 상대방에게 알리겠어요. (물론 저라면... 그러고 싶어도 차라리 헤어지는 걸 선택할테지만요) 그게 틀림없이 상대방에게 달가운 소식은 아니겠지만, 그 사람의 기회를 빼앗을 권리는 없는 거니까요.


 그리고 만약 제가 상대방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제 선택은 제 몫이겠지요.
 그렇지만 어떤 선택을 할 지는 꽤나 분명합니다.ㅎ 칸트적이면서 공리주의적인 이유지요.  
 저는 목적으로 대우하고 대우받는 것이 좋거든요.



by 토끼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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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11. 09:45


 안녕하세요? 토실토실 살쪄가는 토끼고양이입니다.
 지난 주 포스팅은 휴재 공고였는데요, 앞으로의 포스팅을 주저하게 만드는 추천수에 반성해 보았답니다. 포스팅 방향에 대해 추천 건의해주신 직업현자님과 사과모히토님 감사드려요. (그런데 소설을 쓰는 건 너무 제 역량 밖의 일이라... 저에게 소설은 제 의지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ㅠ_ㅠ 그래도 언젠가 시도해보겠습니다.) '독자에게 여지를 주세요'라는 의견에 힘 입어

 오늘은 트위터 특집입니다. 

 저는 트위터라는 공간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저에게 트위터는 '생각'의 '조각'들이 마구마구 쏟아지는 이미지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것도 좋고, 게다가 길지 않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을 담게 되어 있으면서, 쓰여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생각의 여지를 많이 주기 때문입니다.

 제가 팔로잉하고 있는 분들의 트윗 중에서 연애 혹은 관계와 관련해서 저를 느끼고 생각하게 했던 트윗들을 모아서 여러분께 몇 개 선보이려 합니다. 물론 리트윗을 허용한 트윗의 내용에 한해서 내용을 옮겼구요. 순서는 무작위적이며 선정도 무작위 적입니다. 모쪼록 여러분도 보시고 느껴보시고 생각해보시고 무엇보다도 부담없이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어때 보노보노 내가 갑자기 우니까 곤란하지? 곤혹스럽지? 내가 갑자기 잠들면 곤란하지? 그렇지? 다시 말해 자기의 감정대로만 행동하면 상대방은 곤혹스럽고 상처를 입기도 한다는 거야." @bonobono_bot

 사랑은 식습니다. 오해말기를. 사랑이 사라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침착해지고 차분해진다는 뜻이지요. <내 입에 들어온 설탕같은 키스들> @kimsunwoo_bot

 스킨십이 심히 부족해지면 신체적으로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이 든다. 영양소 중 하나를 오랫동안 못 섭취한 느낌이라고 할까. @amil_frosti

 모든 부부는 사랑의 기술을 배우듯 싸움의 기술도 배워야 합니다. 좋은 싸움은 객관적이고 정직하며 절대 사악하거나 잔인하지 않아요. 좋은 싸움은 건강하고 건설적이며, 결혼 생활에 평등한 파트너 관계라는 원칙을 세워 줍니다. <앤 랜더스> @Medtronic_Korea

 인간 관계는 아무리 친한 관계라도 그 사이에 놓여 있는 서로의 벽을 순간순간 사랑의 힘으로 잘 넘기려는 노력이 있어야 오래도록 바르게 유지된다._헤르만 헤세 @lampcafe

{언니의 독설}중.. 남자는 원래 감정표현 잘 못해. 얼마나 보고 싶은지, 얼마나 섭섭한지...그러니까 늘 뜬금없이 "날씨가 참좋네" 이따위 기상캐스터 같은 문자나 보내지.. 근데...부디 사랑표현 부족하다고 괜찮은 남자 걷어차지마!

결혼은 연애랑 달라. 남편은 나와 피와 살을 섞고 온갖 인생역경을 헤쳐나가는 사람이라고. 자그만치 60년이란 세월동안.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함께 잘해보자고 말하는 그런남자, 밭 일궈서 열매를 수확하는 부지런한 농부같은 남자가 너한테는 필요해.
@artspeech

"여자는 무조건적 사랑에 약하고,  남자는 무조건적 존경에 약하다." @way_Tao

 남자와 여자가 사이좋게 살아가려면
 가. 그녀가 옳다
 나. 그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 정말로-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78>>중에서_ 나는 이 책을 정기적으로 한번씩 읽는다. 웃기고 유쾌하다. ^^ @healing_editor
 
 사랑을 받기만 하는 인생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고 위험하다. 될 수 있으면 자신을 극복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리아 라이너 릴케 @shs1177




by 토끼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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