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9. 20:20
















 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스'를 보기 전까진 배트맨 시리즈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인정할게요. 더군다나 영화판 배트맨 시리즈는 제가 유치원생 꼬꼬마였을 시절에 유치한 설정 탓에 흥행에 한 번 크게 실패하고 더이상 제작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화판 역시 그다지 재미가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한 번 뿌리내린 선입견은 쉽게 바뀌기 힘든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게 웬걸... 4년 전에 갑자기 크리스찬 베일에게 잠깐 빠져 그의 출연작을 훑어보던 저는 (저는 이런 불순한 의도로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라고) 앞에서 말한 '배트맨 비긴스'를 보고 생각을 아주 고쳐먹게 되었어요. 그동안 배트맨을 어린애들 영화로만 생각해 온 제가 바보스럽게 느껴져, 누군가에게 사과라도 하고 싶어졌었죠. 근데 누구한테 사과를 해야하나..







   

-빨리 사과해!
-사..사과하겠습니다!
-필요없어!
-?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저는, 영화의 원작인 만화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과연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졌어요. 하지만 그 책의 제목이 뭔지, 우리나라에 나와있기는 한건지 알 수 없어 그저 궁금증만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작년에 서점에 들러 만화책 코너를 둘러보다 이 책을 발견했지 뭐예요. 수년동안 저를 애타게 했던 그 만화는 바로.. '배트맨 이어 원Batman year one'이었습니다.
 










미국의 유명 만화가 프랭크 밀러frank miller와 데이비드 마주켈리david mazzucchelli가 함께 그린
'배트맨: 이어 원'의 표지입니다. 1987년작이구요.
우리나라에는 민음사 산하의 '세미콜론'에서 2008년 말에 같은 제목과 표지로 출간되었습니다.
세미콜론에서 배트맨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속속 나오고 있으니 모아보아도 괜찮을 것 같군요!












 

작가 중 한 명인 프랭크 밀러의 사진입니다.
'300','씬시티','다크나이트 리턴즈' 등으로 유명한 작가죠.
'배트맨: 이어 원'은 1986년부터 시작된 그의 배트맨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사진 배경에서 알 수 있듯 최근에는 영화감독으로도 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스피릿spirit'라는 제목의 영화였는데..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고 합니다.




 

 

만화는 영화 '배트맨 비긴스'처럼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웨인그룹의 백만장자 아버지 밑에서 남부럽지 않게 성장해온 브루스는 부모와 함께 오페라를 보고 오던 길에 총을 든 강도의 손에 부모를 잃습니다. (영화에서는 저택 옆 동굴에서 날아든 박쥐 때문에 공포증이 생긴 어린 브루스가, 부모와 오페레타 '박쥐'를 보다가 두려움에 칭얼거려 함께 극장을 빠져나오다 강도를 만난 것으로 되어있죠.) 그 후 12년간 도시를 떠나 무예를 익히던 브루스가 고담시티로 돌아오면서 만화는 시작되지요.










부모를 잃었을 당시를 회상하는 브루스
브루스는 타락한 고담시티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그토록 두려워 했던 박쥐가 되기로 합니다.  







브루스는 부모가 살해당한 기억 때문인지 자신은 결코 살인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보여요. 그래서 배트맨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더라도 살인만은 피하려고 하죠. 또한 자신을 추적해온 경찰이 고양이를 쏘아 죽이려고 했다는 이유로 그를 손봐주는 등, 약간은 소년과 같은 모습도 보입니다. 브루스 웨인이 어렸을 적에 자기 탓으로 부모를 잃어버린 충격 때문에 정신적 성장이 소년시절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해석은 오래 전부터 나왔었죠. 그래서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로빈과 친구처럼 활약할 수 있는 것이라구요. 

아무튼 작품 속에서 배트맨은 초반의 어설픈 모습에서 벗어나 점점 더 치밀한 공작을 수행할 내공을 쌓아갑니다. 마침내는 고담시티의 부패한 경찰청장과 마피아 일당을 응징하게 되죠. 하지만 이건 혼자 이루어 낸 건 아닙니다. 때로는 간호사로, 때로는 정보원으로 그를 돕는 충직한 집사 알프레드, '생계형 히어로' 캣우먼으로 등장한셀리나 카일, 그리고 작품의 또다른 주인공인 고든의 협력이 없었다면 그런 성과는 불가능했을 거예요.    












불량 청년들에게 둘러싸여 힘겨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배트맨
발에 채이고 텔레비전으로 맞고.. 좀 안쓰럽습니다. 







작품이 영화와 다른 점 중 한 가지는, 영화에선 그 내적 갈등이 삭제되었던 고든 경감의 이야기가 꽤 비중있게 다뤄진다는 점입니다. 영화에서는 고담 시티의 무능한 경찰 시스템 안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고든의 모습만을 볼 수 있었지만, 만화에서는 그의 가정사와 인간적인(?) 갈등 역시 엿볼 수 있습니다. 만화는 브루스의 귀환과 고담 경찰청에 부임한 고든의 모습으로 시작되는데요, 시카고에서 막 고담으로 온 지 몇 시간도 안돼서 고든은 동료 경관의 나사빠진 언행에 질리고 맙니다. 이 멍청이 동료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고담 경찰은 사실 그 지역 마피아와 결탁하고 있어 이미 도시 치안을 다스릴 능력을 잃은 유명무실한 집단이에요. 고든은 이런 경찰 시스템을 개혁하고자 고군분투 하지만, 소위 '높으신 분들' 눈에는 이 고지식한 새내기 경관이 맘에 들 리가 없죠. 그래서 고든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고담 경찰로부터 갖가지 협박과 린치를 당합니다.

 고든의 사생활 역시 그들에게 고든을 협박할 빌미를 제공합니다. 작중에서 고든은 함께 일하던 미모의 여경사에게 잠깐 한 눈을 팔아 적잖이 마음고생을 합니다. 고든에겐 이미 임신한 부인, 바바라가 있거든요. 그런데도 고든은 직장에서 자신의 오른팔이 되어 주는 여경사 에센에게 마음을 주고, 또 그것을 윗선에 들키고 말죠. 경찰국 간부들은 이것을 빌미로 고든을 협박하지만, 그가 바바라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음으로써 갈등은 일단락 됩니다. 비록 고든은 아내와 함께 정신과 의사에게서 관계 개선 상담을 받아야 했지만요.   











동료 경관의 음모로 느닷없이 습격을 받은 고든 경감.
그는 나중에 이걸 똑같은 방식으로 갚아줍니다. 성깔 있어요, 이 아저씨.










불륜을 저질러 편치않은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고든. 바바라가 정말정말 너그럽게 봐 준 덕분에 그는 위기를 벗어납니다.
이 사람은 아내한테 정말 잘해야 해요.








 이렇듯 고든의 이야기가 이야기의 서브 플롯으로 자리함으로써 작품은 브루스 웨인의 원맨쑈에 그치지 않고 그 재미를 더합니다. 고든과 배트맨이 알게 모르게 힘을 합쳐 썩은 경찰청장을 응징하고 지역 마피아 두목을 처단하는 걸 보면 두 사람이 고담 시티를 지키는 히어로 콤비같아 흥미진진합니다. 처음에는 고든이 배트맨을 코스튬 입고 설치는 범죄자 정도로 여겨 수사를 시작하지만(이 수사과정에서 그는 에센이 가져다준 정보로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아닌지 의심합니다. 물론 브루스가 플레이보이 재벌 2세 코스프레를 해 정체가 탄로 날 위기를 넘기지만요.) 나중에는 그를 동료로 인정합니다. 만화는 청장으로 승진한 고든이 배트맨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막을 내리는데, 여기서 조커의 등장이 암시됩니다. 이건 영화에서도 그렇죠. 







 


여유로운 담배 한 모금.
고든은 승진도 하고 마피아도 때려잡고 가정도 지켰습니다.








작품의 제목은 '배트맨:이어 원'이지만, 어쩐지 배트맨보단 고든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워요. 사실상 이 이야기는 고담시티에서 새로이 등장한 두 영웅의 눈물겨운 생존기가 서로 얽힌 구조를 갖고 있어요. 배트맨뿐만 아니라 고든 역시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거죠. 프랭크 밀러와 데이비드 마주켈리는 길지 않은 분량 속에 그들의 성격, 과거, 몇몇 어설픈 면모들을 잘 나타내, 고담시티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황당무계한 가면 히어로 얘기의 배경이 아닌, 정말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구린내나는 도시의 모습으로 형상화시켰습니다. 물론 배트맨의 탄생 계기를 설득력 있게 묘사한 것도 큰 장점이고, 한국어 번역이 비교적 매끄러운 것도 작품의 재미를 떨어뜨리지 않은 요인이 됩니다.(브이 포 벤데타는.. 안그래도 어려운 글을 번역도 매끄럽지 못하게 해놓아서 거슬리는 부분이 좀 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큰 장점은 커버 디자인이 멋져서 책장에 꽂아놓으면 간지..가 납니다.ㅋㅋ 길지 않은 이야기니 일독을 권합니다! 
고든과 배트맨의 다정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포스팅을 마칠까 합니다. 그럼 다음 포스팅을 통해 또 만나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2. 08:30


















0.

특집이라고 제목을 다니 왠지 무한도전 같기도 하고 꽤 거창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만 사실 그냥 소개글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만화 리뷰 틈틈이 곤 사토시 감독의 대표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1.

 '퍼펙트 블루'는 '동경대부',''파프리카','천년여우'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곤 사토시今敏가 1998년에 발표한 첫 연출작입니다. 1963년에 태어난 곤 사토시 감독은 췌장암과 싸우다 2010년 8월 숨을 거두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작품 성향은 크게 다르지만, 일본 대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미야자키 감독의 뒤를 이을 인재로 주목받고 있던 그였기에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이가 많았다고 합니다.







곤 사토시 감독의 사진.
인터넷을 통해 그가 생전에 직접 쓴 투병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투병의 고통을 담담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은 그의 일기를 보면
이러한 위트와 재능이 훌륭한 작품으로 세상에 나올 기회를 잃은 것이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퍼펙트 블루'는 편안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남자분이든 여자분이든, 갖가지 형태로 여성의 신체를 소비하며 살고 있는 우리 모두라면 말이에요. 특히 여성분이라면 주인공 미마의 고통이 자신의 일처럼 생생히 느껴져서 영화를 보는내내 더 괴로우실 수 있습니다. 아이돌 가수에서 배우로 전업한 주인공이 겪는 원치 않은 고통과 울분..폭력.. 이런 것들이 시각화된 이 영화를 보고나면 우리 사회가 뜯어버린 비닐 포장지와 리본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장처럼 느껴지거나, 그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어쨌든 잔혹한 폭력 묘사때문에 데이트 영화로는 빵점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봐서도 안됩니다. 그냥 방에서 혼자 조용히 보세요. 공포감 증폭을 원하시면 불도 꺼놓고.







4. 

이야기는 여성 아이돌 그룹 '챰'의 공연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3인조 언더그라운드 아이돌(일본엔 아이돌도 이런 형태로 활동하나봐요)그룹인 '챰'에서 가장 인기 많은 멤버인 주인공 '미마'는 소속사의 결정으로 앞으로 아이돌 활동을 중단하고 배우로 데뷔하게 됩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대로 그룹 활동을 계속 하구요. 소속사의 명령도 있고, 배우를 꿈꾸어 시골에서 도쿄로 홀로 상경한 미마이기에, 그녀는 군말없이 그 결정을 따르기로 합니다.

배우로의 전업이 미마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만큼, 미마의 불안감은 물론이고 챰의 골수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됩니다. 하지만 배우 활동을 하는 것이 아이돌 활동보다 연예인으로서의 긴 수명을 보장받는 길이기 때문에 미마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역할부터 착실히 연기해갑니다.

추리 연속극 '더블 바운드'에서 범죄 피해자의 여동생 역할을 맡은 미마. 그런데 드라마 제작사 측은 미마의 소속사에 그녀가 성폭행 장면을 연기하길 바란다고 통보합니다. 게다가 소속사에서는 미마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높은 수위의 누드집을 발간하기로 하구요. 힘없는 신인 연기자일뿐인 미마는 촬영 관계자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억지로 이 두 가지 촬영을 소화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구요.
 
2인조 그룹으로 안정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나머지 멤버들을 보며 아이돌 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젖는 것도 잠시, 미마는 자신을 몰래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음을 감지합니다. '미마의 방'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마치 미마 자신인양 일기를 게재하고 있는 이름모를 이가 있음을 알아차린거죠. "아~ 오늘 촬영은 정말 하기 싫었어. 하지만 주변에 폐를 끼칠 순 없으니 할 수 없지" 홈페이지의 주인은 미마가 어떤 촬영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마치 머릿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생생하게 일기에 옮겨 놓았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있다는 공포감을 달랠 여유도 없이 이제 미마의 주변 사람이 하나하나 참혹하게 살해되기 시작합니다. 미마에게 싫은 일을 일방적으로 강요했던 소속사의 사장, 미마의 누드집에 실린 사진을 촬영한 (모델을 괴롭히며 촬영하기로 유명한) 유명 사진작가.. 그들이 수차례 흉기에 찔려 참혹하게 살해된 다음, 이제 미마 본인까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미마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이제 그녀의 생명을 위협하려는 그는 대체 누구일까요?












미마를 괴롭히는 건 그녀 자신이기도 합니다.









5. 

작품은 미마가 배우로 데뷔하고 나서 느꼈을 정체성의 혼란을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미마가 촬영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장면과 현실의 장면을 교차시켜 마치 미마의 인격이 여러갈래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수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송곳을 든 살인마의 모자가 벗겨지고 미마의 얼굴이 나타날 때에는 미마에게 자신도 모르는 다른 자아가 생겨 살인을 저지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으면 스토커가 미마인지 미마가 스토커인지.. 살인자인지 헛갈리게 되기 쉽지요. 영화 후반부의 반전을 보기 전까진 관객들은 미마가 새로운 생활에 따른 스트레스로 다중인격장애를 앓게 된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정말 그랬을수도 있죠. 어....? 하지만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음침한 생김새의 스토커는 이 영화의 트릭이 단순히 미마의 정신적 혼란으로 설명되지 않을 것이란 걸 관객들에게 넌지시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의 결말에 대해 쉽게 단정짓지 못하고 끝까지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지요. 마지막에 (스포일러 주의! 반전을 알고 싶은 분은 오른쪽을 드래그하세요.)미마의 매니저가 두 명의 스토커 중 한명이었다 라는 것이 명확해진 순간 관객들이 받은 충격은 상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도 입이 딱 벌어졌으니까요. 정체성의 혼란은 이 영화의 주된 주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러한 알쏭달쏭한 트릭은 이를 표현하기에 효과적인 것이 아니었나 합니다.  










   




무대에서 춤추는 미마를 보며 그녀를 자기 손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해보는 스토커.
이 사람은 항상 미마의 주변을 맴돌며 미마를 지켜봅니다. 









6.

이야기는 미마를 둘러싼 의문이 해소되고, 미마 역시 살인사건의 종결 이후 배우로서의 자신을 찾은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고 해서 그녀가 앞으로의 배우 생활에서 상품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에 혼란을 느끼고 갈등하는 일이 전혀 없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또 스포일러가!!)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인양 홈페이지를 꾸민 것이 그녀의 매니저였다는 것이 밝혀진 다음에 미마가 자기 자신을 '진짜'라고 간단하게 납득해 버리는 마무리는 좀 김새는 느낌이었어요. 그녀를 괴롭히는 이들이 사라졌다고 해도, 결국엔 미마 자신이 계속 그녀를 괴롭히게 되지 않을까요?








영화는 미마의 인격을 소재로 한참 관객들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다음
윙크와 함께 "난 진짜야"라며 거짓말 같이 일련의 충격들로부터 회복된 미마를 보여주며 막을 내립니다.
미마의 방황은 그걸로 정말 끝일까요? 




7.

곤 사토시는 이 영화에서 보여준 현실과 가상의 교차 시퀀스를 다른 작품에서도 선보입니다. 그 다음 연출작인 '천년여우'와 마지막 작품인 '파프리카'에서도 이러한 수법을 볼 수 있지요. 곤 감독은 주로 '다중적인 자아', '여러 가면을 쓰고 있는 현대인'과 같은 주제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천년여우'의 경우는 마찬가지로 여배우의 삶을 소재로 한 '퍼펙트 블루'보다 주인공 여배우가 보여주는 다양한 인격의 교차를 이야기 진행의 중요한 도구로 삼아요. (그래서 더 정신없습니다) 이러한 주제와 표현방식에 흥미를 느끼는 분이라면 곤 감독의 작품을 쭉 감상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대량소비사회의 여성의 성이 상품화 되는 풍조를 까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스스로 상품이 되길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현대인 모두의 운명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미마는 이야기내내 포장지로 예쁘게 꾸며진, '미마가 아닌 미마'를 팔면서 고통받으며,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이러한 인생을 사는 것은비단 그녀와 같은 여성 연예인들의 고통만은 아닐 거예요.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역시 남들이 그렇게 살길 원하는 인생을 살면서 평생을 '진정한 나'에 대한 의문으로 번민합니다. 이른바 '자기계발서'가 서점에서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 증후 중 하나라면 하나겠지요. 작품을 보고 나면, 미마가 '미마린'이라는 이름의 상품으로 소비된 것처럼 우리와 같은 현대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인격마저 상품으로 내놓아야 살아갈 수 있는 지경에 이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조직에 뼈를 묻을 수 있는 충성심을 갖춘 상품으로 꾸며진다고 하면 지나친 생각일까요.    







8.

다음에 소개할 곤 감독의 작품은 2001년에 발표된 '천년여우'입니다. 천년fox가 아니고 천년actress입니다ㅋㅋ 저는 '퍼펙트 블루'보다 이 작품을 더 좋아합니다. 왜냐면.....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2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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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19. 08:30



















0. 이 리뷰엔 영화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스포일러가 왕창듬뿍 들어있습니다. 경고 했어요.ㅋㅋ






1. 일단 감독의 전작인 '게드전기'보단 재밌게 보았습니다.






2. 이야기는 크게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묘한 인연으로 서로를 알아가게 되는 열여섯 소녀 우미와 그녀의 1년 선배인 슌의 사랑이야기, 또다른 하나는 그들이 재학중인 고등학교의 오래된 동아리 건물, '까르티에 라탱'의 철거를 막으려는 학생들의 노력이지요. 두 이야기 모두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 혹은 영화로 무뎌진 우리나라 관객들의 마음을 자극하기엔 참으로 미지근하고 무난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작품 속 슌의 대사를 통해서도 말하고 있듯이 우미와 슌 사이의 핵심적인 갈등 요소인(갈등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게.. 얘네는 이것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진 않아요.) '알고보니 남매' 떡밥은 통속적 멜로드라마에서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소재라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이런 낡은 떡밥이 들어있는 작품을 원작으로 삼아 영화를 제작한 것은, 지나치게 20대 취향에만 맞춰져 있는 최근의 일본 영화나 드라마의 이야기에 대한 반작용이 아닐까 합니다. 영화는 원작에는 없는 까르티에 라탱의 이야기를 집어넣어 '과거의 낭만을 되찾자'라는 메세지를 강화하고 있는데, 이러한 작품분위기와 남매 떡밥은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일 것입니다. 흑흑 우리가 남매였다니, 그럴 리가 없어!!












자신들이 형제일지도 모른다는 슌의 이야기에 놀란 우미.
생김새도 참 많이 닮은 두 사람이지만.. 사실은..






3. 우미와 슌의 사랑 이야기는 결국 그들의 부모 세대 사람들의 관계를 되짚어 자신들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내는 '뿌리찾기'와 같습니다. 까르티에 라탱 보존운동도 결국 학교문화 기저에 깔려있는 인문학적 뿌리를 지키려는 움직임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서사구조는 일본사회 전체의 사상적 회복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일본에는 분명 동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서구 과학 특히 인문·사회과학을 받아들였다는 자부심과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제국주의의 광풍이 전국을 뒤덮어 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 간 경험이 있으니, 19-20세기의 일본에서 꽃피었던 인본주의적 분위기를 회복하고 자국의 자존심을 다시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열망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60년대 초반에는 순수한 정신문화 부흥의 의지로 받아들여 질 수 있으나, 우경화 일로를 걷고 있는 최근의 일본에서 이러한 작품이 다시 나왔다는 것은 작품에 그것 외의 의도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어쩌면 이 작품이 올해 3월에 발생했던 동일본 대지진으로 흐트러진 이른바 '일본정신'을 재건하고 일본인들의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하려는 의도로 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일본정신'이라는 것이 건강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우리는 뻔히 알고 있습니다.








4. 이 영화를 마냥 르네상스에 대한 동경으로만 볼 수 없게 하는 것이 우미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일 것입니다. 외할머니가 운영하는 하숙집 일을 거들며 학교에 다니고 있는 우미는, 매일 아침마다 죽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안전한 항해를 기원합니다'라는 메세지가 담긴 깃발을 올립니다. 항해 어쩌고 하는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우미의 아버지는 선원이었어요. 우미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터였던 한국으로 가는 물자수송선에 탔다가 그 배가 기뢰를 맞아 침몰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고 하지요.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우미 아버지 세대의 옛 이야기를 보았을 때 우미의 아버지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해군 출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허나 작품에서 묘사되는 그는 그 전쟁의 가해자가 아니라 또 다른 전쟁에서 희생된 피해자일 뿐이지요.
   작품이 이야기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방식은 얄팍하디 얄팍합니다. 우미 아버지의 죽음은 주인공의 안타까운 처지와 그들 사이의 사랑에 약간의 미스터리를 제공하는 밑밥일 뿐, 그 자체가 이야기에 중요한 축이 되진 않아요. 재밌는 것은 이러한 얄팍함 덕분에(?) 이 작품을 우파적 메세지를 담은 작품이 아닌, 일본의 우파 정부를 비판하는 메세지를 담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야자키 고로는 그들이 회복하고자 하는 '과거'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작품을 둘러싼 여러 정치적 해석과 그에 따른 갈등에서부터 적당히 발을 빼려고 한 모양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의 '깊이 없음'은 의도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5.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할지 솔직히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아요. 다만 확실한 것은 '코쿠리코 언덕에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일본의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자는 것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 공동체 정신의 구심점이 되는 것이 인본주의적 가치인지.. 전체주의로의 회귀인지는 일부러 깊이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주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감독으로서의 첫 작품을 시원스레 말아먹었던 미야자키 고로의 입장에서는 관객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게 안전하다고 판단했겠지요. 비록 이 조심성 때문에 얄팍한 작품이 나왔지만 말입니다. 








감독인 미야자키 고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입니다.
왠지 기운 없어 보이는 미소네요. 아버지 등쌀 때문에









6. 이 영화에 대한 글들을 찾아 읽다가 누군가가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 중에는 왠지 노동하는 미성년자가 등장하는 경우 많은 것 같다고 지적한 글을 읽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는 아예 1년간 혼자 벌어먹고 살아야하는 임무를 띤 꼬마마녀가 주인공이었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는 영문도 모른채 고된 목욕탕 일을 해야 했죠. 이 작품의 주인공인 우미 역시 하숙집 식구들의 식사 준비를 혼자 도맡아 합니다. 아직 열여섯밖에 안된 학생인데 식칼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요..우미가 부엌일을 도맡아하는 설정 덕분에 아기자기한 그릇들을 구경하고 음식이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아, 이건 제 개인적인 감상인데.. 저는 지브리 작품에 나오는 계란 후라이가 그렇게 먹음직스럽게 보일 수가 없어요ㅋㅋ 노른자가 반짝반짝 탱탱한 게..인물들이 그걸 한 젓가락에 집어서 후르륵 삼키죠. 아유 어쩜 그렇게 맛나게 먹을까요? 응?ㅋㅋㅋ








저 각 잡힌 상차림을 보라. 여기가 하숙집이야 군대야
아아 저 계란 후라이 아아








   
7. 아무튼 별 생각없이 우미와 슌의 풋풋하다 못해 밍숭밍숭한 사랑 이야기를 듣고 싶은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 어느정도 만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홍보 팜플렛에는 이 작품이 '스튜디오 지브리가 선사하는 첫번째 사랑 이야기'라고 하는데, 사실 첫번째는 아니지 않나요? 그 전부터 이 정도 수준의 순수한 러브 스토리는 조금씩 선보여왔다고 생각했는데.. 만약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거듭할 때마다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강조해나간다면, 언젠가는 '폭풍의 언덕' 같은 격정적인 치정극을 내놓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지브리와 치정극이라.. 정말 안어울리는 두 단어네요.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12. 04:35












(제가 그린 건 아니어요;;)





유수입니다. 오늘 7화를 올리지 못할 것 같아 이렇게 휴재 공고를 올립니다..
말이 좋아 휴재지 펑크..입니다.ㅠㅠ

다음 주엔 꼭 7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살려주세요..ㅠㅠ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5. 08:30










일주일간 잘 지내셨나요? 수요일마다(가끔 목요일에도..ㅠㅠ) 찾아뵈옵고 있는 유수입니다.

이제 바람에서 겨울 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감기 걸린 분들은 없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몸은 건강한데 마음 속이 복잡하군요!

'진작에 이것저것 배워놓을 걸..'하는 생각도 많이 들구요.







왜 인문계열 졸업생은 많이 안뽑는거야 왜왜왜왜왜왜 하하하하하흐핳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 제가 취업 시즌을 맞아 이리저리 자리를 알아보는 건 다 생존을 위한 일이겠지요?^^;

대학 4년 큰 돈 들여서 졸업하려는데 막상 저를 받아주겠단 곳은 얼마 없으니 제가 참 잔혹한 시대를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심정이 이렇고 하니... 오늘은 20세기 100년의 세월 중 가장 잔혹했던 시절을 살아간 어느 가장의 눈물겨운 생존기를 담은 작품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만화는 미국의 전위 만화가 아트 슈피겔만art spiegelman의 '쥐' 입니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쥐> 1,2권의 표지입니다.
미국에선 1986년에 1권이 발표되었구요.
퓰리처 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1권 표지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에도 번역판이 나와 있습니다.
교육적인 내용 덕분에 대학 도서관에도 있을 확률이 큽니다.

만화 포스팅 올릴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요..
만화책도 사서 봐주세요. 아니 만화책 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도요.
책을 사서 보면 어려운 출판사들을 도울 수 있을뿐더러
특히 만화책을 사서 볼 경우 '에이 만화책 같은 거 뭐하러 돈 주고 사서 봐'라고 생각하는 절대 다수의 범인들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없어도 그만인 장점)
 
서점에도 많이 있습니다. 7500원이네요. 인터넷으로 사면 더 싸구요.
커피 두 잔 정도 안마시면 살 수 있는 가격입니다.
어차피 요새 대여점도 다 망해서 못 빌려볼걸요.
다운받으면 된다고? 이런 ㅆ...







 




작가인 아트 슈피겔만의 사진입니다.
작품 속에 작가의 아버지이자 이야기의 주인공인 블라덱 슈피겔만의 사진이 한 장 나오는데요.
그 사진을 보고 나서 이 사진을 보면 아버지와 아들의 생김새가 참 많이 닮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김새는 비슷한 부자지간이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라 컴퓨터 게임과 만화 속에 파묻혀 산 아들과
20세기 초반 유럽 사회에서 인생의 전반기를 보낸 아버지 사이의 사고방식 차이에서 기인한 감정의 골이 깊었다고 하네요.
만화가인 아들이 그린 아버지의 생존 이야기인 이 작품의
제작 과정 자체가 두 사람이 화해해 가는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

 
 





 

작품의 주인공인 블라덱 슈피겔만은 작가인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입니다. 1906년에 폴란드의 유태인 가문에서 태어나 직물을 사고 파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던 청년이었죠. 벌이도 괜찮고 (블라덱 본인의 증언에 의하면) 외모도 괜찮은 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사촌누이의 소개로 유태인 재벌의 딸인 아냐 질버베르그와 결혼하여 첫 아들 리슈를 낳고 살던 중,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말로 다 못할 고생을 겪게 됩니다.

그 고생이 단순히 그가 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에 겪게 된 것이 아닐 거라는 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라면 이미 눈치채셨겠죠?  유태인인 블라덱과 그 가족들은 흔히 홀로코스트라 불리는(쇼아Shoah라 지칭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고 하네요.)나치의 유태인 박해의 피해자였습니다. 그의 가족과 친척들 대부분은 모두 그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 죽거나 그 전에 이런저런 일로 목숨을 잃었어요. 그의 아버지, 누나, 남동생, 장인장모.. 끝내는 첫 아들인 리슈까지두요. 작품의 1권은 블라덱과 그의 아내 아냐가 수용소행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숨죽여 도망다니는 이야기를, 2권은 끝내 게슈타포에 사로잡혀 수용소에 들어가게 된 블라덱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기록'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작가가 그의 아버지의 증언을 그대로 녹음하여, 이를 8년에 걸친 작업을 통해 시각화한 것이 이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작품에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니 이건 작품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하고 있는 짓을 생각하면 참 안타깝기 그지 없어요. 일단 이 포스팅에선 이 얘기는 잠깐 빼놓고 가기로 해요.





이야기의 주인공인 블라덱 슈피겔만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수용소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수용소 유니폼을 갖춰놓고 기념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이 있어 거기서 찍은 거라고 하네요.
어휴 저같으면 저 줄무늬 옷 꼴도 보기 싫을텐데.. 기념 사진을 찍다니 예사 사람이 아닙니다 참...










수용소에서 신체검사를 받던 일을 재연하고 있는 블라덱.
이 만화에서 유대인은 쥐의 모습으로, 독일인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적절한 비유지요?






아들인 아트 슈피겔만도 인정하듯, 블라덱 슈피겔만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것은 운이 대단히 잘 따라준 이유도 크지만, 그가 위기의 순간마다 대담하고도 약삭빠르게 그것을 피해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작품의 서두에 나오는 블라덱의 연애사에서나, 게토에서의 삶을 보면 그가 대단히 꼼꼼하고 두뇌가 유연한 사람임을 알 수 있고, 때로는 너무 계산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어 속물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렇게 살아남은 블라덱은 종전 이후 '살아 남은 자'로서의 죄책감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럼 블라덱 슈피겔만의 성격과 그가 겪은 고생들.. 그리고 놀라운 수완으로 위기를 벗어난 순간들을 그림과 함께 살펴보도록 하죠.









냉철한 사업가에서 수전노로- 블라덱 슈피겔만은 어떤 사람인가요?




블라덱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부터 살펴보도록 하죠.







위 장면은 블라덱이 처음으로 약혼녀 아냐의 집에 초대받은 날, 아냐의 벽장 속에서 약을 발견하고 이를 수상하게 여기는 장면입니다.
작품 전반에서 블라덱은 놀랍도록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데요, 그의 그런 성격은 결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는지 위의 장면처럼 약혼녀의 모든 것을 철저히 알아내려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사실 그에게는 아냐를 만나기 전부터 교제하고 있던 여인이 있었는데, 그 여자가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 지참금을 가져올 수 없자 냉정하게 차버린 것도 그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겠죠.








또한 블라덱은 뛰어난 장사 수완을 타고 난 인물이기도 합니다. 위 장면은 종전 후 스웨덴에 잠깐 머물렀을 때 무작정 유태인 소유의 백화점에 찾아가 거래를 튼 블라덱이 그려진 장면인데요, 젊었을 때 직물 거래로 먹고 산 이력이 있어서인지 아무도 팔지 못한 물건이라도 손쉽게 팔아치워버리는 솜씨를 보여주게 됩니다. 이러한 그의 장사 솜씨는 수용소에서 살아남는 데에도 큰 보탬이 되지요.





 



미국 생활을 시작한 그는 무엇이든 부족하고 결핍되어 있던 수용소 생활의 여파 때문인지 샛노란 구두쇠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위의 대화에서 아버지의 그러한 성격을 작가가 얼마나 지긋지긋해 하는지 알 수 있죠ㅋㅋ









블라덱은 아냐가 갱년기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폴란드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말라라는 여성과 재혼 합니다. 하지만 블라덱의 지나친 결벽과 인색함 때문에 불화가 끊이지 않죠. 생활비로 한달에 50달러라니..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 50달러면 지금 돈으론 얼마인가요? 아무리 높게 잡아봐야 한달 살림엔 턱없이 모자라겠네요...






이렇듯 나이가 들어선 남들과 함께 살기 불편한 성격이 되고 말았지만.. 젊은 시절 그의 명석함은 그와 아내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어요. 이제 수용소 안에서 그가 어떻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살아 남았는지 살펴볼까요?





 












"뭐든 할 줄 아는 게 좋은 거란다" - 블라덱 슈피겔만의 파란만장 생존기






 

 

 

 













제 2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되었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시작된 후부터 블라덱 슈피겔만의 고생길이 훤히 열리기 시작됩니다. 폴란드군으로 참전한 그는 교전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포로로 잡힌 그는 춥고 배고픈 포로수용소 생활을 견뎌내야하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머리 회전 빠른 블라덱답게 가만이 앉아서 구더기가 자기 살을 파먹는 것을 보고만 있진 않았어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집안 친구를 친척으로 위장시켜, 다른 포로들보다 손쉽게 귀향 티켓을 얻어냅니다. 폴란드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독일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폴란드인으로 위장하기도 하죠. 만화에선 쥐인 블라덱이 돼지(폴란드인을 돼지로 치환했네요)가면을 쓴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 게토를 하나하나 소개시켜 그 안에 갇혀살던 이들을 절멸 수용소로 보내기 시작하자, 블라덱은 집 지하실에 교묘한 비밀 벙커를 만들기도 합니다. 또 벙커에서 지내다 독일 경비병과 접촉한 이들이 그들과 계약을 맺어 돈을 주고 게토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게 했다는 솔깃한 소식을 들어도 쉽게 믿지 않습니다. 결국 끝까지 독일 경비병을 믿지 않았던 블라덱이 옳았죠. 이렇게 그는 자신의 신중함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집니다. 



















"뭐든 할 줄 아는 게 좋은거야" 이번 포스팅의 제목은 이 페이지의 대사에서 따왔습니다. 게토의 작업장에서 신발 수선법을 배워둔 블라덱은 아우슈비츠에서 그 기술을 긴요하게 써먹게 됩니다. 어릴 때 잠깐 배웠던 함석 제련 기술로 함석장이 일을 하던 블라덱은 신발 수선 역시 배워둔 덕에 위험한 작업장을 떠나 자신만의 수선실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덕에 아냐에게 몰래 건내줄 빵 따위를 모을 수도 있게 되죠.  





 



 


블라덱의 고난은 오히려 수용소를 떠나면서부터 시작되었어요.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나치는 수용소에 있던 유대인을 모두 독일 본토로 데려와 전부 죽여 자신들이 절멸수용소를 운영했던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고 하죠. 그들은 꼭 본토까지 데려가서 죽일 생각은 없었던지 유대인들을 가축 수송용 열차에 빽빽히 태워 독일까지 데려가는 과정에서 그들이 저절로 죽어가길 기다린 듯합니다. 열차 한 칸에 200명씩 들어찬 생지옥에서 블라덱은 담요를 갖고있던 덕에 죽음을 피해갈 수 있었어요. 














영어를 배워두었던 것도 포로 수용소에서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궁리를 해 체력을 유지했지만 블라덱은 곧 티푸스와 당뇨를 한꺼번에 앓으며 한동안 사경을 헤메게 됩니다. 결국 병이 낫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 아냐와 재회하여 행복하게 살았으니 정말 다행이에요..












죄의식의 대물림-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이었을까요?











"다 떠나고...결국 남은 건 사진 뿐이란다."




지금까지 블라덱의 수난기를 살펴보았는데요, 부디 이 글을 읽고 제가 블라덱과 같이 재주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을 칭찬하고 그렇지 못했던 사람들을 힐난하고 있다고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절대로! 그건 제가 이 포스팅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고, 또 이 작품의 작가 또한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거예요. 왜냐하면 작가인 아트 슈피겔만이 이 만화를 발표한 것은, 과거의 희생자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위함이 아니라, 생존자로서의 자신의 죄의식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기 위함이었다고 생각되거든요.

작품은 쇼아의 생존자이자 동시에 그 피해자인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이 생존자로서의 죄의식을 갖게 되었고, 그것을 '진짜 생존자'인 자신의 아들, 작가에게 대물림함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려 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블라덱 자신이 살아남은 것은 자신이 특별히 선해서가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그가 민족을 위한 어떤 사명을 띄고 살아남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저 그는 운이 억세게 좋았고, 살기위해 거짓말을 하고 뇌물을 바치고, 같은 동포의 비명을 무시하고 앞만 보고 달려나가며 살아왔기 때문에 목숨을 지킬 수 있었던 거라고, 블라덱은 생각했을 거예요. 이러한 생각을 하면 그는 동포들이 왜 그런 죽음을 맞아야 했는가에 대해 어떠한 대답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죄책감은 그의 아들인 작가에게 넘겨지고, 작가 역시 그 대답을 알지 못했을 것이구요. 작중에서 역시 쇼아의 생존자로 등장하는 그의 정신과 의사가 말하듯, '그저 깊은 슬픔을 느낄 뿐'이었겠지요.


그래서 이 만화는 블라덱의 과거사를 다룬 내용과 현재 그와 그의 아들의 불편한 관계를 묘사한 내용이 솜씨좋게 엮여나가는 구조의 플롯을 가지고 있어요. 이 작품이 발표와 동시에 엄청한 찬사를 들은 이유는 수용소의 희생자에 대한 내용을 재현할 뿐만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의 아픔을 밀도있게 그려냄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더욱 날카롭게 '현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차마 말로 다 못할 학살이 일어난지 반세기가 지난 20세기 말, 그 상처를 안은 채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그리고 어떤 행동을 보여줘야 할까요? 작품은 사무엘 베케트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이 던진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조금은 허무한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모든 말은 침묵과 무위에 묻은 불필요한 얼룩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29.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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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21. 08:30











안녕하세요! 유수입니다.

갑자기 날이 추워졌네요. 다들 도톰한 옷들 준비하셨나요? 저는 옷보다 옆에 끼고(?) 다닐 사람 생각이 간절하네요.

여기다 넋두리 해봐야 생기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





갑자기 다가온 가을을 맞아, 가을날씨처럼 서늘한 만화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인공 소개가 되겠지만요.

오늘 소개해 드릴 만화는..두구두구두구두구

앨런 무어가 이야기를 쓰고, 데이빗 로이드가 그림을 그린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입니다.










 

2008년 말에 시공사에서 나온 한국어판의 표지입니다. 아직 절판되지 않았으니 서점에서 사실 수 있어요.
무정부주의 냄새가 펄펄 나는 이런 만화가 다른 곳도 아니고 시공사에서 나왔다는 게 참 신기해요.
음...그냥 그렇다구요. 




이야기를 쓴 앨런 무어Alan Moore의 사진입니다. 절대 나무 할아버지 그런 게 아니고
영국 출신의 만화 스토리 작가이자 소설가로, 이 작품 말고도 "왓치맨" "프롬 헬" 등의 작품을 집필했다고 하네요.
"브이 포 벤데타"는 작가의 출신지인 80년대 영국의 우파정권을 비판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2006년에 개봉하기도 했죠. 워쇼스키 형제 제작이었습니다.
앨런 무어는 처음부터 작품의 영화화를 반대했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 결과물에 대해서도 크게 실망하여 결국 영화화를 허락한 판권 소유사인 DC코믹스와의 연을 끊고 맙니다.
브이 포 벤데타의 이야기를 미국 관객 취향의 싸구려 수퍼 히어로 이야기로 전락시켰다고 말이죠. 
영화가 어떤지는 아래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 하겠습니다.








주인공 브이 역은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으로 유명한 배우 휴고 위빙이,
우연히 그의 복수극에 말려든 여인 이비 해몬드 역은 나탈리 포트만이 맡았습니다.
저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휴고 위빙의 멋진 목소리입니다.
역시 여자는 청각에 약한가봐요...













브이의 목소리를 감상하시죠.
잘 들어보시면 브이의 대사가 알파벳 V로 시작하는 단어를 엮어 만들어진 문장이라는 걸 아실 수 있을거예요. 
브이가 호기롭게 '부알라!'라고 외치는 부분부터..
이 대사 속에 쓰인 단어 중 몇몇은 만화 원작의 각 챕터 제목에 쓰인 단어이기도 합니다.

 
Voilà! In view, a humble vaudevillian veteran cast vicariously as both victim and villain by the vicissitudes of Fate. This visage, no mere veneer of vanity, is a vestige of the vox populi, now vacant, vanished. However, this valorous visitation of a bygone vexation stands vivified and has vowed to vanquish these venal and virulent vermin vanguarding vice and vouchsafing the violently vicious and voracious violation of volition! The only verdict is vengeance; a vendetta held as a votive, not in vain, for the value and veracity of such shall one day vindicate the vigilant and the virtuous. Verily, this vichyssoise of verbiage veers most verbose, so let me simply add that it's my very good honour to meet you and you may call me "V".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는 제 3차 세계대전을 겪은 가상의 90년대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1982년에서 1988년까지 연재되었습니다.
2006년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지요.
이 영화는(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원작과는 이야기의 흐름부터 몇몇 인물의 성격 따위가 많이 다릅니다. 특히 브이의 성격과 이비와의 관계가 많은 변화를 겪었어요. 사실 이 포스팅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까고 싶어서 올리는 글입니다. 왜냐하면 원작이 가지는 아련한 여운을 다 잘라먹고 브이란 캐릭터가 가지는 깊이를 얄팍하디 얄팍하게 깎아먹었기 때문이죠. 가장 짜증나는 부분은 브이와 이비의 관계를 지나치게 로맨틱하게 설정해둔 점입니다. 원작에서의 두 사람 사이에 성적 긴장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의 관계는 연인사이라기보다는 사제지간이나 부녀지간이라 하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거예요.   


그럼 지금부터 영화 "브이 포 벤데타"와 원작만화의 차이점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할게요.










영화와 만화 속 브이는 복수에 미쳐있다는 등의 공통점도 있지만 영화 속의 모습이 더.. 유치합니다.^^;






1. 나의 브이는 이렇지 않아! ;ㅁ;- 브이의 성격 변화



브이가 활약하는 만화 속 배경은 총통 아담 수잔의 독재 정권 발 아래에서 신음하는 암울한 영국 사회입니다. 이 정권은 제 3차 대전 직후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동성애자, 유색인종, 공산주의자 등 우파 독재 정권 수립에 방해가 될만한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다 라크힐 수용소에 집어넣습니다. 그 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주도했던 델리아 서리지 박사의 기록에 따르면 브이 역시 그 수용소에 갇혔던 사람 중 한 명으로, 실험을 겪는 과정에서 '적잖이 미쳐' 있었다고 합니다. 

브이 포 벤데타의 이야기는 이 수용소에 불을 지르고 탈출한 브이가, 수용소의 요직을 맡았던 인물들을 죽이는 것을 시작으로 최종적으로는 아담 수잔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복수를 완성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복수를 천천히 이루어나가는 브이의 용의주도함은 역시 이 사람이 제정신은 아니라는 걸 짐작하게 하죠. 혼자 힘으로 런던의 지하 어딘가에 은신처인 섀도우 갤러리를 짓고, 그 안을 정부에 의해 금지된 예술 작품들로 채우고.. 정부의 전반적인 행정을 주관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해킹할 기술을 익히는 등 보통 사람의 집념으로는 갖추기 힘든 능력을 브이는 갖고 있습니다. 제가 정신병증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연극적인 행동을 좋아하고 V로 압운을 맞춰 말하는 데에 집착하는 등의 행동을 보았을 때, 브이는 일종의 편집증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요. 
요컨데 이 사람은 약간 미친 사람일 뿐, 스파이더맨이나 엑스맨류의 초능력자라고는 할 수 없을 거예요.  


  



"Remember, remember, the fifth of november.."
위 장면에서 알 수 있듯 브이는 라임 맞추기를 참 좋아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대사를 인용하거나 토마스 핀천의 소설 'V'의 한 대목을 낭송하는 등
연극적인 행동을 좋아하지요.
위 장면은 작품의 첫 챕터에서 브이가 영국의 국회 의사당을 폭파시키는 장면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이야기의 맨 마지막에 브이의 시체를 실은 열차가 이 건물이 폭파하죠.



그랬던 것이.. 작품이 영화화 되는 과정에서 브이의 복수 준비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삭제되어, 그가 어떻게 경찰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는지 도통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브이가 자신을 체포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을 귀신같이 알아내고, 또 방송국에 침입하는 등 신출귀몰한 활약을 보이는 게 가능했던 것은 그가 정부의 네트워크 시스템인 '운명'을 해킹했기 때문인데요, 영화에서는 이 '운명'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탓에 브이가 마치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적의 움직임을 훤히 꿰뚫고 있는 초능력자처럼 보이게 되었어요. 그 대신 만화에는 나오지 않는 브이의 현란한 칼부림 솜씨-_-;;를 영화 속에선 마음껏 볼 수 있어요. (이때문에 영화를 보고나서 만화를 본 독자들 사이에서 원작의 브이가 너무 약해빠졌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고 해요) 개연성 따위는 개나 주고 슈퍼 히어로로서의 브이가 보여주는 액션에만 공을 들인 거죠. 이해는 합니다. 영화사도 영화 흥행시켜서 먹고 살아야지요.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운명'을 통해 정부 각 기관에서 브이에 대한 보고를 듣는 아담 수잔 총통.






브이가 '운명'을 해킹하여 총통을 놀라게 합니다. 까꿍!





이야기의 개연성에 관련된 설정뿐만 아니라, 브이의 사상에도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습니다. 원작의 브이는 골수 무정부주의자입니다. 브이가 원한 것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부 그런 게 아니라 영국 사회를 극심한 혼돈에 빠뜨려 정부의 통제능력에 빅엿을 먹이는 것일 뿐이죠. 하지만 영화에서의 브이는 대단히 얌전해졌어요. "국민이 정부를 무서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무서워 해야 한다" 브이의 이 대사에서 알 수 있듯 2006년에 재탄생한 브이는 잔혹한 또라이 아나키스트가 아닌 굳은 의지의 민주 투사로 그려져 있습니다. 원작의 브이가 가지는 급진적 사상이 영화 제작국인 미국의 정서와는 그다지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영화의 브이는 초능력 내 친구♪ 민주열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 속 브이는 앞치마 두르고 요리도 합니다. 이 장면 덕분에 원작의 브이보다 더 귀여워 보입니다ㅋㅋ







요런 걸 만들어 팔아먹으려고 브이를 그렇게 만들었군요.
그래도 영화가 브이 캐릭터의 상품성을 높여 준 덕분에 피규어 제작업체 같은 중소기업이 먹고 삽니다.(?)








2. 이비 해몬드와의 관계








비밀 경찰들로부터 이비를 구출하여 자신의 거처로 데려 온 브이.
이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도 모르게 브이의 후계자로 키워집니다.





 

브이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목격한 이비.
브이에게 살인의 부당함을 역설하다 결국 브이에게 실망하고 맙니다.
브이는 이 시점부터 이비를 2대 V로 키울 마음을 먹은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부조리한 사회를 보는 이비의 눈을 뜨이게 하기 위해 가짜 감옥을 꾸민 후 이비를 고문한 브이.
브이가 준비한 연극 덕분에 이비는 브이와 같은 혁명의 의지를 마음에 싹틔우게 됩니다.
이비 역시 정부에 의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일이 있지만, 브이와 같이 강한 복수심을 갖지는 않습니다.
'깨우친' 후에도 살인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구요.
이 점이 브이가 이비를 자신의 뒤를 이어 혼돈 이후의 영국 사회를 이끌 재목으로 삼은 이유인 듯 합니다.






원작에서 브이와 이비의 관계는 사제지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의사적 부녀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지요. 브이는 이비의 교육을 위해 위의 사진 설명에 써두었듯이 가짜 감옥을 꾸미는 등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작품 말미에선 그 교육이 대단히 유효했는지, 이비가 마침내 자신을 훈육한 브이의 의도를 깨닫고 그가 죽은 후 그의 가면을 쓰고 두번째 브이가 되지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비가 브이의 후계자라는 암시가 그다지 강하지 못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브이의 마지막 폭파 작품(?)을 바라보는 이비가 그의 삶을 기억하는 마지막 인물이 될 것이라는 막연하고도 진부한 묘사가 보일 뿐이지.. 이비가 적극적으로 브이의 계획을 이어 수행한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그럼 브이는 왜 이비를 고문하기까지 하면서 그녀를 일깨우려고 노력한 것일까요? 그냥 마음 속 연인과 같은 사상을 공유하기 위해서? 영화 속의 이비는 수퍼 히어로의 가슴아픈 로맨스를 장식해 줄 장치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속 브이와 이비의 댄스 장면
스승님이랑 무드 잡고 그러는 거 아니야~

퍼온 건 재생이 안되네요. '유튜브에서 보기'를 클릭하세요..ㅜ







만화 속의 같은 장면입니다.
섀도우 갤러리에서 함께 춤을 추는 이비와 브이. (섀도우 갤러리엔 반주 깔아 줄 주크박스에 미러볼까지 없는 게 없어요ㅋㅋ)

비장해보이기까지 한 만화 속 댄스 장면에 비해 영화 속 같은 장면은 참 분위기가 달달합니다.



   




3. 조연 캐릭터의 삭제


만화 브이 포 벤데타에는 정부 요직에 앉아 있는 여러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브이의 복수담과 맞물려 이어집니다. 그 중에서도 로즈마리 아몬드는 의도치 않게 브이를 도와 총통인 아담 수잔을 살해하는 중요한 캐릭터죠.






정부 요직에서 일하고 있는 데릭 아몬드를 남편으로 둔 로즈마리.
이 두 사람은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한 부부였습니다.







델리아 서리지 박사를 죽이고 나오는 브이와 맞닥뜨린 데릭 아몬드는
마누라 겁주느라 총에 총알을 넣는 것을 깜박하여 그만 브이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데릭을 죽임으로써 브이는 의도치 않게 자신의 계획을 도와 줄 아군 하나를 얻습니다.
그게 누군가 하면...



브이에게 남편을 잃은 로즈마리는 그 후 정부를 비롯한 그 누구도 자신의 처지를 돌봐주지 않는 것에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낍니다. 자신의 남편이 정부를 위해 일하다 죽었는데 말이죠. 퇴폐 클럽의 댄서로 전락한 로즈마리는 결국 총을 구해 총통 아담 수잔을 살해합니다. 브이의 계획에 없던 살인이 결국 그의 복수를 돕는 결과를 낳은 것이죠. 
영화에서 정부 관련 인물들이 이야기의 진행에서 가지는 비중은 그야말로 공기에 가깝습니다. 로저 다스콤이나 데릭 아몬드는 그야말로 첫 등장이 마지막 등장이 된 수준이고, 로즈마리는 그나마 등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영화는 수퍼 히어로 브이의 원맨쇼를 풀어내려고 로즈마리 아몬드의 암살 결행과 같은 멋진 장치를 다 버렸습니다. 정말 아쉽고 또 아쉬운 결정이예요..





나가며- 만화의 진짜 주인공은 브이가 아닌 '혁명' 아닐까




미국 관객 취향 수퍼 히어로의 칼부림과 허세로 도배된 영화와 달리 원작 만화 'V for vendetta'는 브이의 이야기만을 작품 전면에 내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브이가 비밀스레 끌어나가는 혁명의 흐름을 조용히 관망하고 있을 뿐이지요. 작품은 복수심에 눈이 먼 브이의 인간적인 면모와 이비의 성장, 영국 정부의 몰락 과정을 과장없이 묘사함으로서 브이의 무정부주의 사상을 유치하지 않고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 제시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이 정도면 마가렛 대처가 이끌던 80년대 영국 정부를 까고자 했던 앨런 무어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지금까지의 고찰에서 미루어 보건데..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브이도 이비도 아닌 혁명 그 자체가 아닌가 합니다. 브이는 히어로가 되기에는 성격면에 있어서나 능력에 있어서나 결함이 많고 이비 역시 2대 브이 역할을 안심하고 맡기기엔 아직 좀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결국 이 이야기는 어떤 미친 사람의 절절한 복수극이자 파시스트 정권에 희생된 다른 이들의 삶을 다룬 비극입니다. 이 만화를 읽은 독자는 '우와~ 브이 멋있다 피규어 사야지'와 같은 감정이 아니라 마지막 장면 뒤에 이어질 영국 사회에 대한 걱정과 브이의 덧없는 삶에 마음 한켠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될 거예요. 이런 건 브이의 화려한 액션에만 공을 들인 얄팍하디 얄팍한 영화에선 느낄 수 없는 것이지요. 

여러번 반복해서 읽기를 권유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내용뿐만 아니라 데이빗 로이드의 작화 역시 멋있어서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꺼내서 들춰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운 만화랍니다. 마지막으로 만화의 여러 일러스트를 보여드리며 글을 마치고 싶군요. 다음 주에 만나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14. 08:30









































































































이상한 아저씨가 나왔네요.


이번 화에는 페이지 어딘가에 제가 숨어 있습니다 ㅋㅋ


어디에 있을까요. 찾아보세요.:-P 쉬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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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7. 08:30
 











여러분은 '라이벌'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누구를 떠올리시나요?

중국집과 치킨집?
토마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오세훈과 투표율 아 이건 좀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이 두 젊은 여인들은 한-일간 라이벌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2010년 2월이 오기 전까진.






문학작품 속에서나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같은 목표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한편 상대의 노력과 성과를 인정하며 우애를 다져나가는 라이벌들의 이야기는
언제 봐도 흥미진진 하지요!



그렇다면 만화 속에 등장하는 라이벌 중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지독한(?) 라이벌은 누구일까요?
저는 기타지마 마야히메가와 아유미가 바로 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걔네가 누구냐구요?
이미 알고계신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사람은 오늘 소개해 드릴 만화 '유리가면'의 두 주인공이랍니다.







주요인물 중심의 일러스트.

만화계의 바이블
마약
제1권을 펴는 순간 당신의 시간은 5차원 세계로..
필자는 중학교 시절 이 만화에 빠졌다가
고등학교 첫 모의고사 수리영역 점수 30점을 기록한 날카로운 추억이 있다.

더 위험한 건 이 책장마다 독약마약을 발라놓은 듯한 이 이야기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유리가면은 1976년 연재를 시작한 이래 수차례 휴재와 연재재개를 반복하여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작가인 미우치 스즈에. 마약 제조업자
이 작품을 위해 '자연계를 주관하는 여신'인 홍천녀의 이야기를 구상하다가
생각이 너무 깊어졌는지 직접 신흥 종교의 교주가 되었다.
'유리가면'은 작가가 모시는 우주신(?)에게서 영감을 받을 때에만 그린다고 한다...는 건 아무래도 믿기지 않고
죽기 전에 다 완결을 내려고 요즘 연재가 꾸준한 것 같다.








불꽃 튀는 라이벌리!
경쟁의 치열함도 치열함이지만 1976년 연재 시작 이후 근 35년째 싸우고 있으니 지독하다 할 만하다.







'유리가면'의 이야기는 연극과 연기에 대한 일반론을 골자로 삼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 없는, 보잘 것 없고 평범한 줄만 알았던 중학생 소녀 기타지마 마야가 은퇴한 여배우인 스승의 지도로 연기를 시작하여, 스승님의 주연작이었던 연극 '홍천녀'의 주인공 역을 얻기 위해 피나는 수련을 거듭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한 작품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단행본 45권이 넘는 이야기가 전부 연극 얘기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 작품은 독자층이 다양하기로도 유명한데요, 마야와 아유미의 연기 대결 과 마야를 둘러싼 러브라인♥이 촘촘히 엮여 긴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해주기 때문에 소녀 독자는 물론 남성 독자들의 마음까지 사로 잡고 있답니다. 여동생이, 혹은 아내가 보길래 옆에서 같이 보다가 어느새 중독되어 다음 편을 읽지 못하면 손이 덜덜 떨린다는 남성 독자들이 한 두 명이 아닌 모양입니다! 그러니 순정만화는 여학생들만 본다는 편견은 일단 버리시고 편한 마음으로 읽어보세요!(그 뒤는 책임 못 져요)







                                                                                   다음 권!!
                                                                              다음 권을 내놔!!










그럼 길고도 긴 '유리가면'의 이야기를

마야와 아유미의 연기대결을 한 축으로,

또 마야에게 엮여 있는 러브라인을 다른 한 축으로 삼아

인물 소개의 형식을 빌려 소개하도록 하죠!






 



불우한 천재소녀- 기타지마 마야









일본 만화가들은 천재 얘길 참 좋아하나봅니다. 물론 마야는 누가 안 가르쳐줘도 알아서 척척 깨우치는 비현실적이고도 조금 유치한 천재 캐릭터는 아니지만요. 처음 등장할 때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고 있는 평범한 중학생이었어요. 공부도 못하고 어머니가 일하는 중화요리집의 잔심부름도 제대로 못해 구박받지만 TV 드라마와 영화를 볼 때엔 이상할 정도로 몰입하는 아이였습니다.






오페라 '춘희'의 티켓을 건 내기에서 이기려고
혼자 하루 치의 배달을 다 해치우는 마야.
나중엔 티켓이 겨울 바닷물에 빠져버리자 그걸 건지려고 뛰어든다.
보통 독한 아이가 아니다.








메소드 연기의 달인 마야.
처음 연기를 시작한 중학교 학예회 무대에서
왕자에게 버림받는 거지소녀역에 완벽하게 몰입해
무대를 발라버린다.




위의 이미지에서 보시다시피, 마야는 표현력은 떨어지지만 본능에서 비롯된 연기를 하는 천재 캐릭터입니다. 동네 아이들에게 연속극을 재연해주던 마야를 본 왕년의 대여배우 츠기카게 치구사(메인 일러스트 오른쪽의 검은 머리 치렁치렁 아주머니)가 그 재능을 알아보고 연극계로 이끌죠.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순간부터 스승으로부터 '홍천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어렴풋이나마 언젠가 홍천녀를 연기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됩니다.

많은 고난을 겪는 인물입니다. 스승의 손에 이끌려 엄마 곁을 떠난 후 여러 배역을 거쳐 나중엔 TV 대하 드라마에까지 등장하여 스타가 되는 듯 싶더니.. 곧 음모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고 연기를 그만두려 하는 등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아갑니다. (아직 스무살도 안된 아이가..) 결국엔 재기하여 아유미와 홍천녀를 두고 대결할 자격을 얻지만요. 아직 홍천녀로 결정되기까지는 한참 남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연극제에서 연기대상을 받는 등 어느정도 인정받는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외모'라고 작중에는 수차례 묘사되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게... 언제나 남자 캐릭터와의 썸씽(?)이 있습니다. 공연한 상대배우에서부터 하이틴 스타, 그리고 중학생 나이에 일찌감치 대형 연예기획사의 젊은 사장(이 사람이 누군지는 뒤에서 얘기하죠)의 마음을 빼앗은 요상한 매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러면서도 늘 자기는 못생겼네 재능이 없네 징징거리죠. 농약같은 가시나.. 얄미운 가시나.. 부럽다?






노력파 엄친딸- 히메가와 아유미 








고데기로 정성스럽게 만 머리 스타일에서부터 귀하게 자란 아가씨라는 게 짐작됩니다. 마야와는 홍천녀를 두고 경쟁하는 라이벌이자 유명한 영화감독과 여배우 사이에서 태어난 '연극계의 순수혈통'(일어판에선 '연극계의 서러브레드';;), 엄친딸 아가씨입니다. 어려서부터 여러 연극과 영화, TV연속극에 출연해 자타공인 천재소녀로 통하고 있었지만.. 중학생 시절 우연히 마야의 연기를 보고 충격에 빠집니다. 자신에겐 없는 연기 본능을 갖춘 아이를 만난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자신이 진짜 천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야를 경계하게 됩니다.

아유미에게 '홍천녀'는 부모의 후광에서부터 벗어날 유일한 길입니다. 작중에서 아유미는 마야와는 상반되는 지독한 노력파 테크니션으로 묘사되고 있는데요, 피나는 노력을 통해 훌륭한 연기를 선보여도 부모의 그늘에 가려 그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는 일이 없자, 부모의 명성과는 상관없는 여배우로서의 자기 정체성 확립을 위해 '홍천녀'에 집착하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발레와 고전무용으로 다져온 표현력을 자랑으로 하고 있는데, 이에 비해 캐릭터의 마음을 고려하는 면이 부족해 영혼이 없는 연기라는 소리도 자주 듣습니다. 근데 이게 '마야에 비하면' 그렇다는 것이지.. 솔직히 저는 아유미가 하는 것 만큼만 배역 연구 해도 충분히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해요. 뒤에서도 얘기하겠지만 이 만화에서 추구하는 '완벽한 연기'는 거의 접신상태에 가깝습니다. 그게 뭐야..

최근 연재분에서는 홍천녀의 시연 연습 중에 당한 사고로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ㅠㅠ 눈 앞이 점점 캄캄해지는 와중에도 연기를 포기하지 않고 '눈이 보이는'연기를 익히고 있죠. 아유미의 노력을 보면 정말 무서워질 지경입니다. 나도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데..







주연을 맡은 일인극 '줄리엣'에서 의자에 앉는 마임을 선보이는 아유미.
아유미는 연기의 '기술'을 일찍 몸에 익힌 인재 중의 인재라 할 수 있다.
아유미는 이 연극을 통해 예술대상을 받고 연예계에서 퇴출당한 상태였던 마야와의 격차를 넓힌다.






 




천재로 인정받는 중에도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성장하고 있는 마야를 부러워하는 아유미.
아유미의 이런 마음이 '홍천녀'에 대한 집착을 더 강하게 한다.







 두 소녀의 대결- 본능의 마야냐 표현력의 아유미냐




위의 인물소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야와 아유미는 서로 상반되는 연기 스타일을 갖고 있습니다. 배역의 본질을 누구보다 정확히 집어내는 재능을 가졌지만 그걸 몸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마야, 그리고 연기의 기술은 완벽에 가깝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에 치중하여 배역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아유미. 이 두 사람의 7년에 걸친 대결이 기나긴 이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합니다. 


 



(좌우반전된 이미지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야 함.)

마야와 아유미의 두 번째 대결!
두 사람이 극단의 연구생이던 시절
'예' '아니오'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네 문장만을 이용하여 연기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 기회를 이용해 마야를 테스트해보는 아유미.
하지만 마야의 순발력에 오히려 당황하고 만다.







헬렌 켈러의 어린시절을 소재로 삼은 연극 '기적의 사람'에서
헬렌 켈러 역에 더블 캐스팅 된 두 사람.(위가 마야 아래가 아유미)
헬렌 켈러가 '물'을 인식하는 장면을 각자 다르게 해석하여 연기한다.
마야는 아유미의 정석에 가까운 연기와는 다른 '신선한 헬렌'을 연기해
아유미를 누르고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다.
많이 컸네.. 마야..








 
Howard Wolowitz: OH MY GOD~!!! GIRL FIGHT!!!
홍천녀를 목전에 두곤 이런 형태(?)로도 대결합니다.










마야의 숨은 조력자 -하야미 마스미





70년대 댄디즘의 끝을 보는 기분...



 
지금까지 마야와 아유미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니, 이제 마야의 애정사(?)를 알아볼까요.
마야에게 낚인 남자 캐릭터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하야미 마스미 가 마야의 인생에서 가지는 의미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어요.  
가진 것도, 배경도 없던 마야가 아유미와 대결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이 사람의 영향력이 엄청났습니다. 대형 연예 기획사인 다이토 기획의 젊은 사장으로, 같은 기업의 회장인 의붓 아버지에 대한 원한으로 '홍천녀'의 상연권을 손에 넣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인물입니다. 어머니를 잃은 중학생 시절부터 경영자 수업을 받아 하루하루를 기계처럼 살던 사람이죠. 10년 가까이 일만 생각하는 일벌레 냉혈한 인생을 살다가.. 홍천녀 상연권의 현 소유자인 마야의 스승님을 조사하던 차에 마야의 연기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 감명받아 익명으로 보라색 장미를 선물하죠.







여배우에게 꽃을 보내는 건 처음인 마스미.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라워한다.




처음엔 장미와 카드뿐이었던 것이.. 세월이 지날수록 옷이나 가방같은 선물을 보내는 수준을 지나 마야의 고등학교 학비까지 책임지는 수준에 이릅니다. 처음엔 그도 자신의 마음을 어린 배우에 대한 측은함 정도라고 생각해왔지만 결국엔 자신이 마야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마야가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리려던 계획도 잠시.. 의도치 않게 마야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이 되어 마야의 미움을 사면서부터 그의 마음 고생이 시작됩니다. 거기다 덤으로 그에게 집착하는 무시무시한 약혼녀까지..아이고.. 
    






익명으로 마야에게 보라색 장미를 보내기 시작한 이후
선물의 스케일이 점점 커진다.
연기 연습에 필요한 별장까지 빌려주는 마스미.
역시 돈이 최곤가...





마스미가 마야를 좋아하게 된 건 일에 묻혀 잃어버린 그의 어린시절에 대한 보상심리일지도 모르겠어요. 아니면 페도필리아겠지
마스미가 마야에 대해 회상할 때 가장 경이롭게 여긴 것이 연기에 대한 마야의 열정이었거든요. 그건 분명이 그의 청소년기엔 없었던 것이지요. 

마야와 마스미의 인연은 마야가 연기를 계속할 재정적 지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사랑 이야기인 연극'홍천녀'를 연기하는 데 필요한 감정의 학습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이야기에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장치입니다. 처음엔 그의 정체를 모르고 마스미를 미워하기만 하던 마야는, 우연한 실수로 마스미가 보라색 장미의 사람임을 알게 된 후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홍천녀의 연기에 투영하여 많은 발전을 이루죠. 마야가 마스미와 맺어지든 그렇지 않든, 마야의 성장에 마스미는 없어선 안 될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최근 연재분에서는 연재 35년만에 드디어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해 그들이 서로를 사랑함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 장애물이 많아 그리 희망적인 결말을 기대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작가인 미우치 스즈에는 최근 인터뷰에서, 마야가 마스미와 홍천녀 두 가지 모두를 얻을 순 없을 거라고 했다고 해요. 저는 '홍천녀'의 결말이나 지금까지의 전개를 보았을 때 왠지 마야가 홍천녀의 배역을 얻는 대신 마스미와는 이어지지 못할 것만 같아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홍천녀는 '운 좋은 천재' 마야의 것이 될까요? 아니면 '노력파 여신' 아유미의 것이 될까요?









작은 의구심- 마야의 연기만이 '진짜' 연기일까




비록 '유리가면'이 수십 수백만의 중독자를 양산할 정도로 인기를 끈 작품이라고 해도, 그 속에 그려진 이상적 연기의 묘사는 약간 납득하기가 힘듭니다. 작품은 얼핏 보면 아유미의 실력을 따라잡으려는 마야의 성장 과정으로 보이지만, 기저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워요. 앞서 말했듯, 작가는 마야의 '접신'상태에 가까운 신들린 연기를 이상적인 연기로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아유미가 실명을 하게 된다는 설정 역시 그녀가 마야의 연기 스타일과 같이 홍천녀의 영혼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작가의 종교 활동에 따른 여파인 건지.. 홍천녀를 연기하는 마야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메소드 연기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은 심령 현상처럼 묘사될 때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런 것들..
'누가누가 더 또라인가'를 겨루자는 건가



연기와 같은 예술활동에 어느정도의 '끼'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유미의 노력과 같이 연기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선천적으로 타고 난 끼보다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위에서 제가 홍천녀는 마야의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주인공에 대해 가지는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지(그리고 마스미와는 영 이어질 것 같지 않으니까ㅠㅠ), 아유미가 홍천녀를 연기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아니었어요. 마야가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홍천녀는 아유미의 것이 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유미에게도 충분히 연기에 '마음'을 담아낼 능력이 있으니까요. 


아무튼.. 저는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되든 '유리가면'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신비주의적인 내용으로 치닫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저런 황당한 묘사 때문에 35년에 걸친 두 사람의 연기 대결이 막판에 우스운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 말고도 여러 독자들이 그런 지적을 한 모양인지, 요즘 들어선 마야가 배역을 머리로 이해하는 장면도 자주 나오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부디 앞으로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있는 전개가 이어져 10년 안엔 깔끔한 완결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신기생뎐'같은 묘사는 싫어요.ㅠㅠ  끝없는 징검다리 위를 걷는 듯한 만화, '유리가면'이었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