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21. 08:30











안녕하세요! 유수입니다.

갑자기 날이 추워졌네요. 다들 도톰한 옷들 준비하셨나요? 저는 옷보다 옆에 끼고(?) 다닐 사람 생각이 간절하네요.

여기다 넋두리 해봐야 생기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





갑자기 다가온 가을을 맞아, 가을날씨처럼 서늘한 만화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인공 소개가 되겠지만요.

오늘 소개해 드릴 만화는..두구두구두구두구

앨런 무어가 이야기를 쓰고, 데이빗 로이드가 그림을 그린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입니다.










 

2008년 말에 시공사에서 나온 한국어판의 표지입니다. 아직 절판되지 않았으니 서점에서 사실 수 있어요.
무정부주의 냄새가 펄펄 나는 이런 만화가 다른 곳도 아니고 시공사에서 나왔다는 게 참 신기해요.
음...그냥 그렇다구요. 




이야기를 쓴 앨런 무어Alan Moore의 사진입니다. 절대 나무 할아버지 그런 게 아니고
영국 출신의 만화 스토리 작가이자 소설가로, 이 작품 말고도 "왓치맨" "프롬 헬" 등의 작품을 집필했다고 하네요.
"브이 포 벤데타"는 작가의 출신지인 80년대 영국의 우파정권을 비판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2006년에 개봉하기도 했죠. 워쇼스키 형제 제작이었습니다.
앨런 무어는 처음부터 작품의 영화화를 반대했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 결과물에 대해서도 크게 실망하여 결국 영화화를 허락한 판권 소유사인 DC코믹스와의 연을 끊고 맙니다.
브이 포 벤데타의 이야기를 미국 관객 취향의 싸구려 수퍼 히어로 이야기로 전락시켰다고 말이죠. 
영화가 어떤지는 아래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 하겠습니다.








주인공 브이 역은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으로 유명한 배우 휴고 위빙이,
우연히 그의 복수극에 말려든 여인 이비 해몬드 역은 나탈리 포트만이 맡았습니다.
저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휴고 위빙의 멋진 목소리입니다.
역시 여자는 청각에 약한가봐요...













브이의 목소리를 감상하시죠.
잘 들어보시면 브이의 대사가 알파벳 V로 시작하는 단어를 엮어 만들어진 문장이라는 걸 아실 수 있을거예요. 
브이가 호기롭게 '부알라!'라고 외치는 부분부터..
이 대사 속에 쓰인 단어 중 몇몇은 만화 원작의 각 챕터 제목에 쓰인 단어이기도 합니다.

 
Voilà! In view, a humble vaudevillian veteran cast vicariously as both victim and villain by the vicissitudes of Fate. This visage, no mere veneer of vanity, is a vestige of the vox populi, now vacant, vanished. However, this valorous visitation of a bygone vexation stands vivified and has vowed to vanquish these venal and virulent vermin vanguarding vice and vouchsafing the violently vicious and voracious violation of volition! The only verdict is vengeance; a vendetta held as a votive, not in vain, for the value and veracity of such shall one day vindicate the vigilant and the virtuous. Verily, this vichyssoise of verbiage veers most verbose, so let me simply add that it's my very good honour to meet you and you may call me "V".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는 제 3차 세계대전을 겪은 가상의 90년대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1982년에서 1988년까지 연재되었습니다.
2006년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지요.
이 영화는(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원작과는 이야기의 흐름부터 몇몇 인물의 성격 따위가 많이 다릅니다. 특히 브이의 성격과 이비와의 관계가 많은 변화를 겪었어요. 사실 이 포스팅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까고 싶어서 올리는 글입니다. 왜냐하면 원작이 가지는 아련한 여운을 다 잘라먹고 브이란 캐릭터가 가지는 깊이를 얄팍하디 얄팍하게 깎아먹었기 때문이죠. 가장 짜증나는 부분은 브이와 이비의 관계를 지나치게 로맨틱하게 설정해둔 점입니다. 원작에서의 두 사람 사이에 성적 긴장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의 관계는 연인사이라기보다는 사제지간이나 부녀지간이라 하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거예요.   


그럼 지금부터 영화 "브이 포 벤데타"와 원작만화의 차이점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할게요.










영화와 만화 속 브이는 복수에 미쳐있다는 등의 공통점도 있지만 영화 속의 모습이 더.. 유치합니다.^^;






1. 나의 브이는 이렇지 않아! ;ㅁ;- 브이의 성격 변화



브이가 활약하는 만화 속 배경은 총통 아담 수잔의 독재 정권 발 아래에서 신음하는 암울한 영국 사회입니다. 이 정권은 제 3차 대전 직후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동성애자, 유색인종, 공산주의자 등 우파 독재 정권 수립에 방해가 될만한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다 라크힐 수용소에 집어넣습니다. 그 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주도했던 델리아 서리지 박사의 기록에 따르면 브이 역시 그 수용소에 갇혔던 사람 중 한 명으로, 실험을 겪는 과정에서 '적잖이 미쳐' 있었다고 합니다. 

브이 포 벤데타의 이야기는 이 수용소에 불을 지르고 탈출한 브이가, 수용소의 요직을 맡았던 인물들을 죽이는 것을 시작으로 최종적으로는 아담 수잔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복수를 완성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복수를 천천히 이루어나가는 브이의 용의주도함은 역시 이 사람이 제정신은 아니라는 걸 짐작하게 하죠. 혼자 힘으로 런던의 지하 어딘가에 은신처인 섀도우 갤러리를 짓고, 그 안을 정부에 의해 금지된 예술 작품들로 채우고.. 정부의 전반적인 행정을 주관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해킹할 기술을 익히는 등 보통 사람의 집념으로는 갖추기 힘든 능력을 브이는 갖고 있습니다. 제가 정신병증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연극적인 행동을 좋아하고 V로 압운을 맞춰 말하는 데에 집착하는 등의 행동을 보았을 때, 브이는 일종의 편집증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요. 
요컨데 이 사람은 약간 미친 사람일 뿐, 스파이더맨이나 엑스맨류의 초능력자라고는 할 수 없을 거예요.  


  



"Remember, remember, the fifth of november.."
위 장면에서 알 수 있듯 브이는 라임 맞추기를 참 좋아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대사를 인용하거나 토마스 핀천의 소설 'V'의 한 대목을 낭송하는 등
연극적인 행동을 좋아하지요.
위 장면은 작품의 첫 챕터에서 브이가 영국의 국회 의사당을 폭파시키는 장면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이야기의 맨 마지막에 브이의 시체를 실은 열차가 이 건물이 폭파하죠.



그랬던 것이.. 작품이 영화화 되는 과정에서 브이의 복수 준비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삭제되어, 그가 어떻게 경찰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는지 도통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브이가 자신을 체포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을 귀신같이 알아내고, 또 방송국에 침입하는 등 신출귀몰한 활약을 보이는 게 가능했던 것은 그가 정부의 네트워크 시스템인 '운명'을 해킹했기 때문인데요, 영화에서는 이 '운명'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탓에 브이가 마치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적의 움직임을 훤히 꿰뚫고 있는 초능력자처럼 보이게 되었어요. 그 대신 만화에는 나오지 않는 브이의 현란한 칼부림 솜씨-_-;;를 영화 속에선 마음껏 볼 수 있어요. (이때문에 영화를 보고나서 만화를 본 독자들 사이에서 원작의 브이가 너무 약해빠졌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고 해요) 개연성 따위는 개나 주고 슈퍼 히어로로서의 브이가 보여주는 액션에만 공을 들인 거죠. 이해는 합니다. 영화사도 영화 흥행시켜서 먹고 살아야지요.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운명'을 통해 정부 각 기관에서 브이에 대한 보고를 듣는 아담 수잔 총통.






브이가 '운명'을 해킹하여 총통을 놀라게 합니다. 까꿍!





이야기의 개연성에 관련된 설정뿐만 아니라, 브이의 사상에도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습니다. 원작의 브이는 골수 무정부주의자입니다. 브이가 원한 것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부 그런 게 아니라 영국 사회를 극심한 혼돈에 빠뜨려 정부의 통제능력에 빅엿을 먹이는 것일 뿐이죠. 하지만 영화에서의 브이는 대단히 얌전해졌어요. "국민이 정부를 무서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무서워 해야 한다" 브이의 이 대사에서 알 수 있듯 2006년에 재탄생한 브이는 잔혹한 또라이 아나키스트가 아닌 굳은 의지의 민주 투사로 그려져 있습니다. 원작의 브이가 가지는 급진적 사상이 영화 제작국인 미국의 정서와는 그다지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영화의 브이는 초능력 내 친구♪ 민주열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 속 브이는 앞치마 두르고 요리도 합니다. 이 장면 덕분에 원작의 브이보다 더 귀여워 보입니다ㅋㅋ







요런 걸 만들어 팔아먹으려고 브이를 그렇게 만들었군요.
그래도 영화가 브이 캐릭터의 상품성을 높여 준 덕분에 피규어 제작업체 같은 중소기업이 먹고 삽니다.(?)








2. 이비 해몬드와의 관계








비밀 경찰들로부터 이비를 구출하여 자신의 거처로 데려 온 브이.
이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도 모르게 브이의 후계자로 키워집니다.





 

브이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목격한 이비.
브이에게 살인의 부당함을 역설하다 결국 브이에게 실망하고 맙니다.
브이는 이 시점부터 이비를 2대 V로 키울 마음을 먹은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부조리한 사회를 보는 이비의 눈을 뜨이게 하기 위해 가짜 감옥을 꾸민 후 이비를 고문한 브이.
브이가 준비한 연극 덕분에 이비는 브이와 같은 혁명의 의지를 마음에 싹틔우게 됩니다.
이비 역시 정부에 의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일이 있지만, 브이와 같이 강한 복수심을 갖지는 않습니다.
'깨우친' 후에도 살인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구요.
이 점이 브이가 이비를 자신의 뒤를 이어 혼돈 이후의 영국 사회를 이끌 재목으로 삼은 이유인 듯 합니다.






원작에서 브이와 이비의 관계는 사제지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의사적 부녀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지요. 브이는 이비의 교육을 위해 위의 사진 설명에 써두었듯이 가짜 감옥을 꾸미는 등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작품 말미에선 그 교육이 대단히 유효했는지, 이비가 마침내 자신을 훈육한 브이의 의도를 깨닫고 그가 죽은 후 그의 가면을 쓰고 두번째 브이가 되지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비가 브이의 후계자라는 암시가 그다지 강하지 못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브이의 마지막 폭파 작품(?)을 바라보는 이비가 그의 삶을 기억하는 마지막 인물이 될 것이라는 막연하고도 진부한 묘사가 보일 뿐이지.. 이비가 적극적으로 브이의 계획을 이어 수행한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그럼 브이는 왜 이비를 고문하기까지 하면서 그녀를 일깨우려고 노력한 것일까요? 그냥 마음 속 연인과 같은 사상을 공유하기 위해서? 영화 속의 이비는 수퍼 히어로의 가슴아픈 로맨스를 장식해 줄 장치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속 브이와 이비의 댄스 장면
스승님이랑 무드 잡고 그러는 거 아니야~

퍼온 건 재생이 안되네요. '유튜브에서 보기'를 클릭하세요..ㅜ







만화 속의 같은 장면입니다.
섀도우 갤러리에서 함께 춤을 추는 이비와 브이. (섀도우 갤러리엔 반주 깔아 줄 주크박스에 미러볼까지 없는 게 없어요ㅋㅋ)

비장해보이기까지 한 만화 속 댄스 장면에 비해 영화 속 같은 장면은 참 분위기가 달달합니다.



   




3. 조연 캐릭터의 삭제


만화 브이 포 벤데타에는 정부 요직에 앉아 있는 여러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브이의 복수담과 맞물려 이어집니다. 그 중에서도 로즈마리 아몬드는 의도치 않게 브이를 도와 총통인 아담 수잔을 살해하는 중요한 캐릭터죠.






정부 요직에서 일하고 있는 데릭 아몬드를 남편으로 둔 로즈마리.
이 두 사람은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한 부부였습니다.







델리아 서리지 박사를 죽이고 나오는 브이와 맞닥뜨린 데릭 아몬드는
마누라 겁주느라 총에 총알을 넣는 것을 깜박하여 그만 브이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데릭을 죽임으로써 브이는 의도치 않게 자신의 계획을 도와 줄 아군 하나를 얻습니다.
그게 누군가 하면...



브이에게 남편을 잃은 로즈마리는 그 후 정부를 비롯한 그 누구도 자신의 처지를 돌봐주지 않는 것에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낍니다. 자신의 남편이 정부를 위해 일하다 죽었는데 말이죠. 퇴폐 클럽의 댄서로 전락한 로즈마리는 결국 총을 구해 총통 아담 수잔을 살해합니다. 브이의 계획에 없던 살인이 결국 그의 복수를 돕는 결과를 낳은 것이죠. 
영화에서 정부 관련 인물들이 이야기의 진행에서 가지는 비중은 그야말로 공기에 가깝습니다. 로저 다스콤이나 데릭 아몬드는 그야말로 첫 등장이 마지막 등장이 된 수준이고, 로즈마리는 그나마 등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영화는 수퍼 히어로 브이의 원맨쇼를 풀어내려고 로즈마리 아몬드의 암살 결행과 같은 멋진 장치를 다 버렸습니다. 정말 아쉽고 또 아쉬운 결정이예요..





나가며- 만화의 진짜 주인공은 브이가 아닌 '혁명' 아닐까




미국 관객 취향 수퍼 히어로의 칼부림과 허세로 도배된 영화와 달리 원작 만화 'V for vendetta'는 브이의 이야기만을 작품 전면에 내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브이가 비밀스레 끌어나가는 혁명의 흐름을 조용히 관망하고 있을 뿐이지요. 작품은 복수심에 눈이 먼 브이의 인간적인 면모와 이비의 성장, 영국 정부의 몰락 과정을 과장없이 묘사함으로서 브이의 무정부주의 사상을 유치하지 않고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 제시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이 정도면 마가렛 대처가 이끌던 80년대 영국 정부를 까고자 했던 앨런 무어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지금까지의 고찰에서 미루어 보건데..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브이도 이비도 아닌 혁명 그 자체가 아닌가 합니다. 브이는 히어로가 되기에는 성격면에 있어서나 능력에 있어서나 결함이 많고 이비 역시 2대 브이 역할을 안심하고 맡기기엔 아직 좀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결국 이 이야기는 어떤 미친 사람의 절절한 복수극이자 파시스트 정권에 희생된 다른 이들의 삶을 다룬 비극입니다. 이 만화를 읽은 독자는 '우와~ 브이 멋있다 피규어 사야지'와 같은 감정이 아니라 마지막 장면 뒤에 이어질 영국 사회에 대한 걱정과 브이의 덧없는 삶에 마음 한켠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될 거예요. 이런 건 브이의 화려한 액션에만 공을 들인 얄팍하디 얄팍한 영화에선 느낄 수 없는 것이지요. 

여러번 반복해서 읽기를 권유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내용뿐만 아니라 데이빗 로이드의 작화 역시 멋있어서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꺼내서 들춰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운 만화랍니다. 마지막으로 만화의 여러 일러스트를 보여드리며 글을 마치고 싶군요. 다음 주에 만나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