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22. 08:30


 SBS에서 만든 '짝' 이라는 프로그램 많이들 보십니까? 저는 그동안 지나가다 잠시 보는 것 말고 제대로 챙겨본 적은 없었는데요, 이번에 한번 찾아 보니 재미있더군요. 기본 포맷은 여러 명의 남녀가 서로를 탐색하고 데이트하고 최종결정을 하는 기본적인 짝짓기 프로그램의 포맷이지만, 일반인들이 등장하는 그야말로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점, 그냥 짧은 시간동안 설정된 데이트를 한다기보다 시간을 두고 합숙을 하며 서로를 알아간다는 점이 좀더 현실적인 느낌을 주어서 더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았어요. 게다가 이름을 밝히지 않고 남자 1호, 여자 1호라는 식으로 번호를 붙여서 부르는 것, '애정촌'이라거나 '짝'이라는 한글 이름을 붙인 것 등도 참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었습니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그런 익명성이나 상징성을 가진 이름을 붙임으로써 좀더 객관적이고 대표성이 있는 느낌을 주어 공감대를 넓히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 우리도 모두 한 사람의 남자와 여자일 뿐이지, 라는 느낌?)

 이번에 제가 찾아본 프로그램은 "애정촌 13기. 노총각·노처녀 특집 마지막회"였습니다. 굳이 노총각 노처녀 편을 찾아 본 이유는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고 함께할 사람을 찾는 과정에 더 오래 있었던 선배들에게서 무언가 느끼고 배울 점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느끼고 배운 점이 있었냐고 물으신다면, 물론 그렇습니다만 오늘 말하고 싶은 주제는 "와 선배들은 역시"라는 느낌의 내용과는 조금 다른 부분의 이야기입니다. 굳이 설명해보자면 "와, 나이가 많든 적든 사람은 역시" 라는 느낌의 내용이죠.

 뭐냐, 바로 여자 2호님과 관련된 러브라인이었습니다. 여자 2호님은 35살의 고등학교 교사이십니다. 이 분은 처음에 마음에 들어했던 남자 5호와 처음부터 여자 2호분을 마음에 들어했던 남자 7호님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계셨습니다. 
 


 예쁘시죠? 목소리도 좋으시더군요.


 


 남자 5호분도 역시 무척 매력적인 분입니다. 참가자 중 나이가 가장 많으셨지만 첫인상 선택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으실 정도의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계시고, 광고일을 하시는 분답게 예술적 재능도 있으시고 센스도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조금씩은 호감을 가졌던 여자 2호분과 남자 5호분이 완전히 서로에게서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던 대화가 여기에 등장합니다. 남자 5호님에겐 오토바이를 타는 취미가 있는데, 그분에게 그건 라이프스타일의 한 부분으로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젊지만은 않은 나이셨던 만큼, 그런 취미가 나쁘게 비칠까봐 고민도 하셨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여자 2호님이 남자 5호님에게 "오토바이는 위험해요"라고 말을 하신겁니다.

 결국 서로 호감은 느껴지는데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기 어려운, 감정적으로 애매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겁니다. 최종선택을 앞두고 서로의 마음을 잘 알기 어려웠던 두 분은 마지막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머 동영상이 막혔나요? 아.. 이거 영상으로 보셔야 하는데 ㅠ 아쉬운대로 캡쳐로 ㅠ_ㅠ


 
 요약하면 대화의 요는 "오토바이는 위험해요"라고 말한 이유는 그냥 자신이 느끼는 바에 대한 표현이었을 뿐 오토바이를 타기 싫다는 뜻도 아니고 남자 2호에게 호감이 있거나 없음을 표현하려는 의도도 없는 말이었다,는 것이 여자 2호님의 입장 변론이었습니다. 반면 남자 5호님은 그건 의도가 있어보이는 행동이다, 라고 말씀하셨고 아마 편집되어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는 그것을 납득시키려고 주장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왜 의도가 없는 사람이 의도가 있어보이는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자 5호분이 주장도 강하시고 말씀도 잘 하시는 편이었기 때문에 여자 2호분은 본인의 입장을 다 잘 설명못하신 채 결국 눈물을 보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분은 완전히 서로에 대한 호감을 거기서 끝내시게 되었던 거지요.

 보면서 저는 정말 오글오글 했습니다. 화끈화끈하기도 했고요. 별로 낯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두 분의 입장을 모두 너무 잘 알 것 같았고, 그래서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여러분은 저 대화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아무래도 대화를 주도해 나가면서 눈물을 보이는 여자 2호님에게 마지막까지 대표님 모드로 부하직원을 대하듯 자기 입장을 정리하신 남자 5호님이 잘못했다고 생각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그 분이 하신 말씀에는 틀린 게 하나 없지만 그건 자기 입장을 말하는 내용이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게 자기 입장만 말해서는 안되는 거였죠. 상대방이 하는 말을 인정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시지를 않습니다. 물론 믿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자 5호님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남자 5호님에게 여자 2호님의 행동이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 뿐이지 여자 2호님이 원래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아니지요. 그러니까 "네가 한 행동이 아무래도 나에겐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 네 말을 믿기가 힘들다" 혹은 "그렇게 행동하면 나한테는 의도가 있는 걸로 보인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행동은 누가봐도 의도가 있는거다" 라든지 "넌 그런 의도가 있었다, 그건 의도가 있는 행동이었다"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겁니다.

 너무 복잡하게 따지고 들었나요? 사실 대화라는 것은 파고들면 이렇게 복잡한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는 자기가 보는 관점에서밖엔 알 수 없어요. 그런데 그게 자기의 세계 인식이다보니,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하는 일이 생깁니다. 사실은 개인의 부분적 인식일 뿐인 내용을 그게 전부인 것처럼 일반화된 표현을 사용해서 말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보통 일일히 그걸 구별해서 말하진 않잖아요? 말하자면 표현은 실제만큼 정밀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괴리에서 오는 오해가 여러 싸움의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서로 잘못 없다고 하는, 사실은 서로 잘못한 싸움들이 벌어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여자 2호님도 '나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라는 말을 반복하시지만, '나는 그걸 잘 못받아들이겠다'라는 남자 5호님의 입장을 인정해주는 모습은 화면에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 모습은 남자 5호님에게 '나는 당신을 오해하게 만들만한 행동을 안했는데 당신이 오해한거다.'라고 말하는 느낌을 충분히 줄 수 있습니다. 남자 5호님 입장에서 본인은 오해를 했는데(즉, 본인이 봤을 때는 분명 의도가 있어 보였는데), 그 행동은 오해를 하게 만들지 않았다고(의도가 있어보인다고 생각할만한 행동이 아니라고) 한다면 답답하시겠지요. 

 이처럼 무엇보다 두 분의 대화에서 안타까웠던 점은 두 분 다 서로의 마음을 잘 못 읽어준다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상대방이 말하고 싶어하는 입장을 받아들여주고 그에 대해 리액션을 해 주는 것 말합니다. 인정이 중요한 것은 인정받지 못할 때 화가 나기 때문입니다. 리액션을 해 주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결국은 감정에 작용하기 위해서지요. 자기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느끼면 화가 납니다. 그러면 남의 말도 귀에 잘 안들어옵니다. 그러면 서로의 감정을 더욱 상하게 만들고 거기서 애초에 논리가 뭐였건 관계는 끝장이 나는 거지요.(보통은 대화가 안되므로 논리도 끝장이 납니다.) 두 분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먼저 상대방이 느끼는 바를 인정하고 "오해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혹은 "오해해서 미안하다"라고 했으면 좋았을텐데, 싶었던 거죠. 사실 서로가 의도한 바와 이해한 바가 달랐다면 그것은 오해이고, 거기에는 양쪽 다 크든 작든 책임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이 사례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주는 대화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를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여자 2호님은 상담 교육을 석사 전공하셨고 남자 5호님도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분야에서 종사하시며 언변도 좋으신 분입니다. 게다가 두 분 다 살아온 시간이 짧지는 않으시고 그렇다고 특별히 더 배려심이 부족한 모난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십니다. 이런 분들도 겪으시는 문제 상황이라면, 말 다했죠. 그렇지 않나요?

 그러니 우리가 특별히 자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필요하지요. 그러니 못한다고 기죽기보다는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두 가지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1. 내 입장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고 할 것
 2. 상대방의 '일반화'된 말을 표면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의 의미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


 여자 2호와 남자 5호가 대화를 마치고 돌아온 후, 여자 2호는 남자 7호를 찾아갔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있었던 얘기를 듣고서 셰프인 남자 7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자 7호 "그럼 안 풀었네."
여자 2호 "풀었어요, 우리는 안맞다."
남자 7호 "그게 푼거야? ㅎㅎ"
여자 2호 "서로가 원하는 관계가 아니다."




참으로, 내 마음을 케어한다는 느낌이 드는 반응 아닙니까? 
(아, 개인적으로 남자 7호 이분 참 볼매셨어요.)

역시 관계에서 논리의 옳고 그름은 그 자체로는 개미눈물만큼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게 감정의 작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필요할 수는 있겠지요. 인간에게 있어서, 단지 연애 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사실은 감정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을 더해갑니다. 


by 토끼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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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15. 08:30



사랑한다는 말 앞에는 항상 지금은, 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순간에 피었다 사라지는 꽃처럼 원래 그런 것이다.
오래 지속되는 사랑은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 아니라
어제 핀 꽃이 지고, 오늘 다시 새롭게 꽃이 피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 마음은 어제의 마음이 아니라, 오늘 새롭게 피어난 마음이다.
그러니 당신은 어제의 사랑이 오늘 피어나지 않았다고
지난 사랑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말았으면 한다.

비록 오늘은 꽃이 피지 않았고
앞으로 더 이상 그 꽃은 피지 않겠지만,
그래도 어제와 이전날에 피었던 꽃이
살아 숨쉬는 생명으로 진정성을 가졌던 일만은 사실이지 않은지.

사랑이 끝났다는 것은 무척 가슴아픈 일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우리의 사랑이 끝난 일 때문에,
우리의 지난 사랑을 의심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by 토끼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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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재 공고를 하며 올린 '새로운 시도'입니다. 그 동안의 글이 너무 분석, 설명 위주의 글이었던 것 같아서 조금은 감성적인 쪽으로 글을 써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 비슷한 내용을 건의해주시기도 했고요. 애초에 '칼럼'이 아니라 '에세이'로 이 코너를 소개한 것도 이런 분야의 글을 염두에 두었기도 했기 때문인데요, 출처가 없는 것은, 제가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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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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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스'를 보기 전까진 배트맨 시리즈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인정할게요. 더군다나 영화판 배트맨 시리즈는 제가 유치원생 꼬꼬마였을 시절에 유치한 설정 탓에 흥행에 한 번 크게 실패하고 더이상 제작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화판 역시 그다지 재미가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한 번 뿌리내린 선입견은 쉽게 바뀌기 힘든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게 웬걸... 4년 전에 갑자기 크리스찬 베일에게 잠깐 빠져 그의 출연작을 훑어보던 저는 (저는 이런 불순한 의도로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라고) 앞에서 말한 '배트맨 비긴스'를 보고 생각을 아주 고쳐먹게 되었어요. 그동안 배트맨을 어린애들 영화로만 생각해 온 제가 바보스럽게 느껴져, 누군가에게 사과라도 하고 싶어졌었죠. 근데 누구한테 사과를 해야하나..







   

-빨리 사과해!
-사..사과하겠습니다!
-필요없어!
-?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저는, 영화의 원작인 만화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과연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졌어요. 하지만 그 책의 제목이 뭔지, 우리나라에 나와있기는 한건지 알 수 없어 그저 궁금증만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작년에 서점에 들러 만화책 코너를 둘러보다 이 책을 발견했지 뭐예요. 수년동안 저를 애타게 했던 그 만화는 바로.. '배트맨 이어 원Batman year one'이었습니다.
 










미국의 유명 만화가 프랭크 밀러frank miller와 데이비드 마주켈리david mazzucchelli가 함께 그린
'배트맨: 이어 원'의 표지입니다. 1987년작이구요.
우리나라에는 민음사 산하의 '세미콜론'에서 2008년 말에 같은 제목과 표지로 출간되었습니다.
세미콜론에서 배트맨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속속 나오고 있으니 모아보아도 괜찮을 것 같군요!












 

작가 중 한 명인 프랭크 밀러의 사진입니다.
'300','씬시티','다크나이트 리턴즈' 등으로 유명한 작가죠.
'배트맨: 이어 원'은 1986년부터 시작된 그의 배트맨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사진 배경에서 알 수 있듯 최근에는 영화감독으로도 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스피릿spirit'라는 제목의 영화였는데..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고 합니다.




 

 

만화는 영화 '배트맨 비긴스'처럼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웨인그룹의 백만장자 아버지 밑에서 남부럽지 않게 성장해온 브루스는 부모와 함께 오페라를 보고 오던 길에 총을 든 강도의 손에 부모를 잃습니다. (영화에서는 저택 옆 동굴에서 날아든 박쥐 때문에 공포증이 생긴 어린 브루스가, 부모와 오페레타 '박쥐'를 보다가 두려움에 칭얼거려 함께 극장을 빠져나오다 강도를 만난 것으로 되어있죠.) 그 후 12년간 도시를 떠나 무예를 익히던 브루스가 고담시티로 돌아오면서 만화는 시작되지요.










부모를 잃었을 당시를 회상하는 브루스
브루스는 타락한 고담시티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그토록 두려워 했던 박쥐가 되기로 합니다.  







브루스는 부모가 살해당한 기억 때문인지 자신은 결코 살인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보여요. 그래서 배트맨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더라도 살인만은 피하려고 하죠. 또한 자신을 추적해온 경찰이 고양이를 쏘아 죽이려고 했다는 이유로 그를 손봐주는 등, 약간은 소년과 같은 모습도 보입니다. 브루스 웨인이 어렸을 적에 자기 탓으로 부모를 잃어버린 충격 때문에 정신적 성장이 소년시절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해석은 오래 전부터 나왔었죠. 그래서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로빈과 친구처럼 활약할 수 있는 것이라구요. 

아무튼 작품 속에서 배트맨은 초반의 어설픈 모습에서 벗어나 점점 더 치밀한 공작을 수행할 내공을 쌓아갑니다. 마침내는 고담시티의 부패한 경찰청장과 마피아 일당을 응징하게 되죠. 하지만 이건 혼자 이루어 낸 건 아닙니다. 때로는 간호사로, 때로는 정보원으로 그를 돕는 충직한 집사 알프레드, '생계형 히어로' 캣우먼으로 등장한셀리나 카일, 그리고 작품의 또다른 주인공인 고든의 협력이 없었다면 그런 성과는 불가능했을 거예요.    












불량 청년들에게 둘러싸여 힘겨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배트맨
발에 채이고 텔레비전으로 맞고.. 좀 안쓰럽습니다. 







작품이 영화와 다른 점 중 한 가지는, 영화에선 그 내적 갈등이 삭제되었던 고든 경감의 이야기가 꽤 비중있게 다뤄진다는 점입니다. 영화에서는 고담 시티의 무능한 경찰 시스템 안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고든의 모습만을 볼 수 있었지만, 만화에서는 그의 가정사와 인간적인(?) 갈등 역시 엿볼 수 있습니다. 만화는 브루스의 귀환과 고담 경찰청에 부임한 고든의 모습으로 시작되는데요, 시카고에서 막 고담으로 온 지 몇 시간도 안돼서 고든은 동료 경관의 나사빠진 언행에 질리고 맙니다. 이 멍청이 동료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고담 경찰은 사실 그 지역 마피아와 결탁하고 있어 이미 도시 치안을 다스릴 능력을 잃은 유명무실한 집단이에요. 고든은 이런 경찰 시스템을 개혁하고자 고군분투 하지만, 소위 '높으신 분들' 눈에는 이 고지식한 새내기 경관이 맘에 들 리가 없죠. 그래서 고든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고담 경찰로부터 갖가지 협박과 린치를 당합니다.

 고든의 사생활 역시 그들에게 고든을 협박할 빌미를 제공합니다. 작중에서 고든은 함께 일하던 미모의 여경사에게 잠깐 한 눈을 팔아 적잖이 마음고생을 합니다. 고든에겐 이미 임신한 부인, 바바라가 있거든요. 그런데도 고든은 직장에서 자신의 오른팔이 되어 주는 여경사 에센에게 마음을 주고, 또 그것을 윗선에 들키고 말죠. 경찰국 간부들은 이것을 빌미로 고든을 협박하지만, 그가 바바라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음으로써 갈등은 일단락 됩니다. 비록 고든은 아내와 함께 정신과 의사에게서 관계 개선 상담을 받아야 했지만요.   











동료 경관의 음모로 느닷없이 습격을 받은 고든 경감.
그는 나중에 이걸 똑같은 방식으로 갚아줍니다. 성깔 있어요, 이 아저씨.










불륜을 저질러 편치않은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고든. 바바라가 정말정말 너그럽게 봐 준 덕분에 그는 위기를 벗어납니다.
이 사람은 아내한테 정말 잘해야 해요.








 이렇듯 고든의 이야기가 이야기의 서브 플롯으로 자리함으로써 작품은 브루스 웨인의 원맨쑈에 그치지 않고 그 재미를 더합니다. 고든과 배트맨이 알게 모르게 힘을 합쳐 썩은 경찰청장을 응징하고 지역 마피아 두목을 처단하는 걸 보면 두 사람이 고담 시티를 지키는 히어로 콤비같아 흥미진진합니다. 처음에는 고든이 배트맨을 코스튬 입고 설치는 범죄자 정도로 여겨 수사를 시작하지만(이 수사과정에서 그는 에센이 가져다준 정보로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아닌지 의심합니다. 물론 브루스가 플레이보이 재벌 2세 코스프레를 해 정체가 탄로 날 위기를 넘기지만요.) 나중에는 그를 동료로 인정합니다. 만화는 청장으로 승진한 고든이 배트맨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막을 내리는데, 여기서 조커의 등장이 암시됩니다. 이건 영화에서도 그렇죠. 







 


여유로운 담배 한 모금.
고든은 승진도 하고 마피아도 때려잡고 가정도 지켰습니다.








작품의 제목은 '배트맨:이어 원'이지만, 어쩐지 배트맨보단 고든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워요. 사실상 이 이야기는 고담시티에서 새로이 등장한 두 영웅의 눈물겨운 생존기가 서로 얽힌 구조를 갖고 있어요. 배트맨뿐만 아니라 고든 역시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거죠. 프랭크 밀러와 데이비드 마주켈리는 길지 않은 분량 속에 그들의 성격, 과거, 몇몇 어설픈 면모들을 잘 나타내, 고담시티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황당무계한 가면 히어로 얘기의 배경이 아닌, 정말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구린내나는 도시의 모습으로 형상화시켰습니다. 물론 배트맨의 탄생 계기를 설득력 있게 묘사한 것도 큰 장점이고, 한국어 번역이 비교적 매끄러운 것도 작품의 재미를 떨어뜨리지 않은 요인이 됩니다.(브이 포 벤데타는.. 안그래도 어려운 글을 번역도 매끄럽지 못하게 해놓아서 거슬리는 부분이 좀 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큰 장점은 커버 디자인이 멋져서 책장에 꽂아놓으면 간지..가 납니다.ㅋㅋ 길지 않은 이야기니 일독을 권합니다! 
고든과 배트맨의 다정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포스팅을 마칠까 합니다. 그럼 다음 포스팅을 통해 또 만나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2. 08:30


















0.

특집이라고 제목을 다니 왠지 무한도전 같기도 하고 꽤 거창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만 사실 그냥 소개글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만화 리뷰 틈틈이 곤 사토시 감독의 대표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1.

 '퍼펙트 블루'는 '동경대부',''파프리카','천년여우'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곤 사토시今敏가 1998년에 발표한 첫 연출작입니다. 1963년에 태어난 곤 사토시 감독은 췌장암과 싸우다 2010년 8월 숨을 거두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작품 성향은 크게 다르지만, 일본 대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미야자키 감독의 뒤를 이을 인재로 주목받고 있던 그였기에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이가 많았다고 합니다.







곤 사토시 감독의 사진.
인터넷을 통해 그가 생전에 직접 쓴 투병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투병의 고통을 담담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은 그의 일기를 보면
이러한 위트와 재능이 훌륭한 작품으로 세상에 나올 기회를 잃은 것이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퍼펙트 블루'는 편안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남자분이든 여자분이든, 갖가지 형태로 여성의 신체를 소비하며 살고 있는 우리 모두라면 말이에요. 특히 여성분이라면 주인공 미마의 고통이 자신의 일처럼 생생히 느껴져서 영화를 보는내내 더 괴로우실 수 있습니다. 아이돌 가수에서 배우로 전업한 주인공이 겪는 원치 않은 고통과 울분..폭력.. 이런 것들이 시각화된 이 영화를 보고나면 우리 사회가 뜯어버린 비닐 포장지와 리본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장처럼 느껴지거나, 그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어쨌든 잔혹한 폭력 묘사때문에 데이트 영화로는 빵점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봐서도 안됩니다. 그냥 방에서 혼자 조용히 보세요. 공포감 증폭을 원하시면 불도 꺼놓고.







4. 

이야기는 여성 아이돌 그룹 '챰'의 공연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3인조 언더그라운드 아이돌(일본엔 아이돌도 이런 형태로 활동하나봐요)그룹인 '챰'에서 가장 인기 많은 멤버인 주인공 '미마'는 소속사의 결정으로 앞으로 아이돌 활동을 중단하고 배우로 데뷔하게 됩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대로 그룹 활동을 계속 하구요. 소속사의 명령도 있고, 배우를 꿈꾸어 시골에서 도쿄로 홀로 상경한 미마이기에, 그녀는 군말없이 그 결정을 따르기로 합니다.

배우로의 전업이 미마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만큼, 미마의 불안감은 물론이고 챰의 골수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됩니다. 하지만 배우 활동을 하는 것이 아이돌 활동보다 연예인으로서의 긴 수명을 보장받는 길이기 때문에 미마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역할부터 착실히 연기해갑니다.

추리 연속극 '더블 바운드'에서 범죄 피해자의 여동생 역할을 맡은 미마. 그런데 드라마 제작사 측은 미마의 소속사에 그녀가 성폭행 장면을 연기하길 바란다고 통보합니다. 게다가 소속사에서는 미마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높은 수위의 누드집을 발간하기로 하구요. 힘없는 신인 연기자일뿐인 미마는 촬영 관계자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억지로 이 두 가지 촬영을 소화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구요.
 
2인조 그룹으로 안정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나머지 멤버들을 보며 아이돌 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젖는 것도 잠시, 미마는 자신을 몰래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음을 감지합니다. '미마의 방'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마치 미마 자신인양 일기를 게재하고 있는 이름모를 이가 있음을 알아차린거죠. "아~ 오늘 촬영은 정말 하기 싫었어. 하지만 주변에 폐를 끼칠 순 없으니 할 수 없지" 홈페이지의 주인은 미마가 어떤 촬영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마치 머릿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생생하게 일기에 옮겨 놓았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있다는 공포감을 달랠 여유도 없이 이제 미마의 주변 사람이 하나하나 참혹하게 살해되기 시작합니다. 미마에게 싫은 일을 일방적으로 강요했던 소속사의 사장, 미마의 누드집에 실린 사진을 촬영한 (모델을 괴롭히며 촬영하기로 유명한) 유명 사진작가.. 그들이 수차례 흉기에 찔려 참혹하게 살해된 다음, 이제 미마 본인까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미마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이제 그녀의 생명을 위협하려는 그는 대체 누구일까요?












미마를 괴롭히는 건 그녀 자신이기도 합니다.









5. 

작품은 미마가 배우로 데뷔하고 나서 느꼈을 정체성의 혼란을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미마가 촬영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장면과 현실의 장면을 교차시켜 마치 미마의 인격이 여러갈래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수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송곳을 든 살인마의 모자가 벗겨지고 미마의 얼굴이 나타날 때에는 미마에게 자신도 모르는 다른 자아가 생겨 살인을 저지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으면 스토커가 미마인지 미마가 스토커인지.. 살인자인지 헛갈리게 되기 쉽지요. 영화 후반부의 반전을 보기 전까진 관객들은 미마가 새로운 생활에 따른 스트레스로 다중인격장애를 앓게 된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정말 그랬을수도 있죠. 어....? 하지만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음침한 생김새의 스토커는 이 영화의 트릭이 단순히 미마의 정신적 혼란으로 설명되지 않을 것이란 걸 관객들에게 넌지시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의 결말에 대해 쉽게 단정짓지 못하고 끝까지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지요. 마지막에 (스포일러 주의! 반전을 알고 싶은 분은 오른쪽을 드래그하세요.)미마의 매니저가 두 명의 스토커 중 한명이었다 라는 것이 명확해진 순간 관객들이 받은 충격은 상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도 입이 딱 벌어졌으니까요. 정체성의 혼란은 이 영화의 주된 주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러한 알쏭달쏭한 트릭은 이를 표현하기에 효과적인 것이 아니었나 합니다.  










   




무대에서 춤추는 미마를 보며 그녀를 자기 손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해보는 스토커.
이 사람은 항상 미마의 주변을 맴돌며 미마를 지켜봅니다. 









6.

이야기는 미마를 둘러싼 의문이 해소되고, 미마 역시 살인사건의 종결 이후 배우로서의 자신을 찾은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고 해서 그녀가 앞으로의 배우 생활에서 상품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에 혼란을 느끼고 갈등하는 일이 전혀 없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또 스포일러가!!)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인양 홈페이지를 꾸민 것이 그녀의 매니저였다는 것이 밝혀진 다음에 미마가 자기 자신을 '진짜'라고 간단하게 납득해 버리는 마무리는 좀 김새는 느낌이었어요. 그녀를 괴롭히는 이들이 사라졌다고 해도, 결국엔 미마 자신이 계속 그녀를 괴롭히게 되지 않을까요?








영화는 미마의 인격을 소재로 한참 관객들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다음
윙크와 함께 "난 진짜야"라며 거짓말 같이 일련의 충격들로부터 회복된 미마를 보여주며 막을 내립니다.
미마의 방황은 그걸로 정말 끝일까요? 




7.

곤 사토시는 이 영화에서 보여준 현실과 가상의 교차 시퀀스를 다른 작품에서도 선보입니다. 그 다음 연출작인 '천년여우'와 마지막 작품인 '파프리카'에서도 이러한 수법을 볼 수 있지요. 곤 감독은 주로 '다중적인 자아', '여러 가면을 쓰고 있는 현대인'과 같은 주제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천년여우'의 경우는 마찬가지로 여배우의 삶을 소재로 한 '퍼펙트 블루'보다 주인공 여배우가 보여주는 다양한 인격의 교차를 이야기 진행의 중요한 도구로 삼아요. (그래서 더 정신없습니다) 이러한 주제와 표현방식에 흥미를 느끼는 분이라면 곤 감독의 작품을 쭉 감상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대량소비사회의 여성의 성이 상품화 되는 풍조를 까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스스로 상품이 되길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현대인 모두의 운명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미마는 이야기내내 포장지로 예쁘게 꾸며진, '미마가 아닌 미마'를 팔면서 고통받으며,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이러한 인생을 사는 것은비단 그녀와 같은 여성 연예인들의 고통만은 아닐 거예요.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역시 남들이 그렇게 살길 원하는 인생을 살면서 평생을 '진정한 나'에 대한 의문으로 번민합니다. 이른바 '자기계발서'가 서점에서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 증후 중 하나라면 하나겠지요. 작품을 보고 나면, 미마가 '미마린'이라는 이름의 상품으로 소비된 것처럼 우리와 같은 현대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인격마저 상품으로 내놓아야 살아갈 수 있는 지경에 이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조직에 뼈를 묻을 수 있는 충성심을 갖춘 상품으로 꾸며진다고 하면 지나친 생각일까요.    







8.

다음에 소개할 곤 감독의 작품은 2001년에 발표된 '천년여우'입니다. 천년fox가 아니고 천년actress입니다ㅋㅋ 저는 '퍼펙트 블루'보다 이 작품을 더 좋아합니다. 왜냐면.....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29. 08:30











얼마 전, 미국의 록밴드 토킹 헤즈 Talking heads의 곡 중 하나를 접하게 되었어요. 이름만 어렴풋이 들어오던 밴드였는데, 장기하씨가 이 밴드를 무척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어떤 밴드인지 궁금해져서 노래를 찾아보게 되었지요. 제가 처음으로 들었던 토킹헤즈의 노래는 "Psycho Killer"라는 다소 무시무시한 제목의 곡이었는데, 유튜브에서 이 곡의 라이브 영상을 보다가 그 밑에 달린 한 리플이 눈에 들어왔어요.











"This song is a bassist's dream!"







이 리플 덕분에 이번 포스팅을 구상할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흔히 베이스 하면 밴드 음악에서 촐싹대는 기타와 드럼 뒤에서 조용히 연주의 주된 흐름을 잡아주고 연주의 무게감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이 곡처럼 개성있는 진행으로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는 경우도 많아요.






록 음악이 섹시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전자 베이스의 존재일 거예요.
한석규가 허밍하는 소리부터 표범이 그르릉대는 소리까지 음색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거든요.
그냥 그렇다구요..아 왠지 부끄럽네요.






이 곡에서의 베이스는 밴드의 다른 요소들보다 기억에 남아요. 이 노래를 듣고 또 이 리플을 보고 나서 이처럼 베이스가 연주하는 멜로디가 인상적인 곡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머리에 몇 곡 떠오르는 게 있어 이 포스팅을 통해 여러분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위에서 언급한 "Psycho Killer" 부터 들어보도록 하죠. :)










"Talking heads 77"이란 제목의 앨범에 수록된 곡입니다. 앨범 제목대로 1977년에 발표된 곡이에요.
여성 베이시스트의 절도있는 연주가 그리고 표정이 눈과 귀를 끄네요. 특히 후주의 급박한 베이스 솔로가 멋져요.
보컬인 데이빗 번은 왠지 빅뱅이론의 쉘든을 닮은 것 같아요..ㅋ








토킹 헤즈의 멤버들 입니다. 오른쪽부터 데이빗 번David Byrne, 크리스 프란츠Chris Frantz, 여성 베이시스트인 티나 웨이마우스Tina Weymouth, 제리 해리슨Jerry Harrison입니다.
70년대부터 90년대초까지 미국에서 활발히 활동했다고 하네요. 실험적인 음악으로 해체한 지금도 많은 골수팬들을 확보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 곡은 아마 여러분 모두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곡이에요. 그.. 케이블 채널인 오씨엔에서 영화 중간중간에 이 곡의 전주를 삽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말 유명한 곡이죠. 영국의 록밴드 퀸Queen과 역시 영국 출신의 록커 데이빗 보위David bowie가 함께 쓰고 부른 "Under Pressure "입니다.











'뚜두두두두두둔' 하고 반복되는 전주가 귀에 익죠? 영국 록음악계의 두 거물이 함께 한 곡이니만큼 여러 팬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은 곡입니다. 아쉬운 것은 이 곡이 발표되고 수년 후에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했기 때문에 퀸과 보위가 한 무대에서 이 곡을 라이브로 연주한 적은 없다는 사실이에요. 지금 유투브에 떠돌고 있는 두 사람의 듀엣 영상은 한 팬이 그러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합성한 영상입니다.
프레디 머큐리 추모 콘서트에선 데이빗 보위와 80년대 영국 팝 듀오였던 유리드믹스Eurythmics의 여성 보컬 애니 레녹스Annie Lennox가 함께 이 곡을 불렀어요. 곡 후반부에서 빠심이 폭발한(...) 애니 레녹스가 데이빗 보위를 끌어안고 부비적거리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프레디 머큐리 추모 콘서트에서 선보인 위 곡의 라이브 영상입니다.
떨어져 이 여자야!
  







세번째 곡은 비교적 최근의 곡이에요. 이 곡의 주된 흐름은 베이스와 기타 그리고 신디사이저의 멋진 조화로 만들어진 둔중한 음색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정확히 어떤 식으로 만들어진 사운드인지는 제 지식 부족으로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들어보세요. "Creep"으로 유명한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 Radiohead"Myxomatosis"입니다.




 










최근 공개된 "Live from the basement" 라이브 영상 중 하나 입니다. 톰 요크의 눈부신 댄스를 곡과 함께 감상하시죠ㅋㅋ
이 곡은 라디오헤드가 2003년에 발표한 "Hail to the Theif" 앨범에 수록된 곡입니다. 이 앨범의 제목과 곡의 메세지 등이 당시 이라크전을 벌였던 조시 부시 미국 대통령에 대한 조롱이 담겨 있다고 알려져 논란을 빚었죠. 어떤 미국 사람들은 이 앨범 때문에 라디오헤드가 싫어졌다고 한 모양이지만, 그러든가 말든가 이런 의견과는 상관없이 라디오헤드는 꿋꿋하게 자신들의 음악의 깊이를 더하는 작업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나온 새 앨범에선 아예 안드로메다로..
귀를 끊임없이 간지럽히는 베이스 연주가 곡 전체를 이끌고 있어요.


 





이상의 세 곡이 이번 포스팅을 통해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은 곡입니다. 사실 이 세 노래 말고도 베이스 리프가 멋진 곡들은 넘쳐 날 거예요. 하지만 제 능력 부족으로 이만큼밖에 소개해 드리지 못하여 저로서도 참 아쉬워요. 제가 포스팅한 곡들 즐겁게 들으시고, 여러분이 즐겨듣는 노래들 중에 위의 세 노래들처럼 멋진 베이스 리프가 들어있는 곡이 있다면 리플로 알려주세요! 많이 부족한 글이 되었네요. 이상 겁도 없이 아무거나 다 리뷰하려고 달려드는 유수였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26. 11:44



2001 디자인 코리아에 다녀왔습니다




사람들이 득시글 득시글 해서 사진을 많이 못찍었지만

재미난 디자인들이 많더군요!


자 그럼 꽤나 저렴한 화질의 사진들 들어갑니다!





(저 시커먼 그림자가 접니다만..)


심플한 아이디언데,
사용하는 사람은 엄청 편리하겠죠.






나무를 모티브로 한 자전거





태양열 충전이 가능한 친환경 넷북입니다.




이건 LED 캔들 라이트인데요.
무선이어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미래형 자동차 디자인들이구요.






가족폭력 관련 포스터입니다.






ICE-SCREAM

빙하가 녹고있어요!







둥지모양을 형상화한,
클립 저장용 도구.






자전거 락. 입니다.
간편하고 좋죠?






자전거 경사로는 이미 지하철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구요.





병 안에 엠보싱을 넣어서
맥주가 퐁팡퐁팡 안나오게 방지해주는거라네요.




나무 모양의 수도





줄이없는 줄넘기.
이럴바엔 그냥 콩콩 뛰는거랑 무슨 차이가...





아가용 욕조 받침대.






침대와 책상 세트입니다.





화질이 그지같아서 민망하군뇨.

일회용품의 화석.이구요.






아쌀한 아이디어의 공익포스터들.






귀여운 피자 커터기.





초등학생의 작품입니다.
어머니 애쓰셨네요.



















역시 학생작품입니다.




이 아이디어는 정말 괜찮은 것 같아요.
좀 더 심플하고 예쁘게 디자인 되면 충분히 상용화 가능?




이지 컷팅 테이프이구요.



이것도 좋죠?

나무모양을 형상화한 USB 허브





하이브리드 시대이군요!






도별 특산물 포장 디자인입니다.









그리고 제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태양이 뜬 위치로 시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신개념 시계!



Posted by 배태랑
2011. 10. 2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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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25. 05:17


 최근 화제가 되었던 한 결혼정보회사의 남녀 직업별 등급표 혹시 보셨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여성의 직업등급표가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는데요, 전체적으로 공부 잘 하는 여자는 얼굴 이쁜 여자 못 따라가고 얼굴 이쁜 여자는 팔자 좋은 여자 못 따라 간다는 말을 고대로 옮겨놓은 등급이더군요ㅎㅎ 반면엔 남성은 더 돈 잘 벌고 더 사회적으로 힘 있는 직업일수록 높은 비교적 단순(?)한 기준이더군요.

여자 1등급부터 3등급까지는 심지어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게 아닌 내용. 어이구 저런.

 
 하지만 특히 제 관심을 끈 부분은 "공무원 합격자" 등급 분류부분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같은 직업군이니까, 비교하기에 더 수월하기 때문인데요. 이 등급표에서 공무원 등급 분류는 크게 3~4가지로 되어 있는데 내용 별로 남녀의 등급 순서가 서로 다릅니다. 남성의 경우

7급공무원(검찰,국정원,국세청) 7급(지방직) 9급(법원,검찰,국세청,서울시) 9급 합격자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 여성의 경우


7급(지방직)  9급 공무원 7급(중앙직, 검찰,세무,국정원)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남자 1순위가 여자 3순위로 와 있는 것 보이시죠? 남성의 등급이 더 많은 재력과 권력에 따른 것이라고 했을 때, 여성은 그럼 어떤 순서를 따르고 있는 걸까요?


 저는 이렇게 추론했습니다. 7급 지방직이나 9급은 역할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같은 내용을 처리하는 직업군입니다. 그러므로 7급 지방직과 9급은 연봉 이외에 업무 환경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순위의 차이를 보이는 7급 중앙,검찰,세무,국정원직은 급수는 같아도 상대적으로 파급력이 커서 책임도 큰 업무, 말하자면 파워가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파워가 많은 직업은 일도 많지요. 그러니까 일 때문에 바쁜 아내는 싫다, 라는 것 아닐까요?
(물론 어디까지나 제 추론이므로, 근거가 정확하지 않다는 점을 밝힙니다. 잘 아시는 분이 있다면 보충,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확도를 보장할 수는 없지만 이 추론은 저를 상념에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결혼정보회사의 기준이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수요를 반영한 등급일테니 어느 정도는 사회의 수요를 보여주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제 추론이 틀렸다 하더라도 주변에서 "대기업 남편+7급지방직 혹은 9급공무원 아내"의 조합을 원하는 경우를 꽤나 보았기 때문이죠. 말하자면 이 추론은, 평소 보아왔던 그 선호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도화선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 조합이 선호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 저 조합이 가장 효율적으로 살림(+육아)과 생계유지를 해 나갈 수 있는 조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통적 혹은 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은 육아와 살림을 맡아서 '보살핌'을 담당하고 남성은 주수입을 책임져서 '현실적 기반'을 마련하는 역할 분담이지요. 게다가 현대사회는 직장을 다니면서 육아를 할 만큼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경쟁과 효율을 추구하는 사회이기 때문이지요. 효율은 '모아주기'할 때 특히 빠른 성과를 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자본이 대기업에 집중되듯이 노동자의 시간도 회사일에 '집중'되는 쪽이 좋지요. 결국 근대적인 성역할과 현대사회의 분위기가 합쳐져 도출된 결론이 바로 "대기업 남편+공무원아내"의 조합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복잡하게 추론하거나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 결론이 그닥 우리에게 새로운 내용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더라~라고 말로 듣는 것과 저렇게 등급표를 만들어서 눈으로 보는 것은 실감도가 다르더군요. 그래서 "새삼" 그 현실을 진지하게 인식해보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제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는 '왜 여자만 집안일을 해야되냐'라든지 '왜 남자만 돈 벌어와야 되냐'라는 건 아닙니다. 성 역할이 고정되는 것도 물론 문제지요. 하지만 저는 '분업'을 하는 것에 다소 불만이 있습니다. 왜 현실적 기반을 만드는 일과 보살핌을 하는 일을 나눠서 해야 하지요?

 물론 왜인지는 압니다. 현실에서 그게 효율적이라서 그렇지요. 분업은 효율적이라서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될까요? 도구적 이성만 사용하다 망한 게 현대사회의 폐해이지 않겠습니까. 말하자면 저 두 가지 역할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내용입니다. 또한 각각의 역할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험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성장시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물질적 기반이나 보살핌 둘 중에 한 가지만으로는 온전히 살아가거나 성장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살짝 과장해서 말해보자면 그 두 가지 능력을 모두 갖추었을 때 그 사람은 '온전한 주체'로 기능할 수 있는 독립된 인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전인적 인간'에 다가서는 것이지요.


 너무 과장하는 것 아니냐,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역할 분업을 하는 모든 부부가 한 쪽은 돈 버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한 쪽은 현실적 기반을 마련할 능력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분업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각자 맡은 내용이 다르기에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고 소중한 부분도 분명 있지요.

 그렇지만 밥 먹는 일을 내가 전담하고 공부하는 일은 네가 전담하면 너도 나도 배가 안 고프고 지식도 늘어나는 게 아니듯이, 한 주체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성장하는데 필수적인 내용을 나눠서 하는 것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게다가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얼 하고 살아가는지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데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하지요. 따라서 어떤 일만을 전담하게 되어있다면 그 쪽으로 편향된 인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그러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쉬운 것이 사회의 대세를 형성합니다. 그러면 결국 그런 사회가 되는 걸 테지요.


 현실에서 역할 분담으로 인해 이미 발생한 문제들을 보면 자녀들과 정서적 교류가 없는 아버지,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이혼하지 못하는 가정폭력 피해자 등 개별적 차원의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회가 갈 방향을 좌지우지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효율을 추구하여 경쟁에서 이긴, 보살핌보다는 돈 버는 일에만 집중한 남성(적 가치)들'이라면 결국 그 사회는 그런 남성의 가치관이 추구하는 방향의 형태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타인을 보살피는 것은 많은 부분이 개인적 차원의 책임으로 넘어간 것 같은' 지금의 사회 분위기는 이미 그 형태를 반영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제가 이것을 '단순한 선택과 취향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그저 제가 그것을 원한다면 저는 피를 쏟는 각오로 치열하게 일과 살림을 모두 해내는 기혼자가 되면 되는게 아니라는 거지요. 행복하고 인간다워지자고 하는 일인데 피를 쏟는 각오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부터가 뭔가 문제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소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남편도 아내도 그 두 가지를 다 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그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그러면 우리는 좀 덜 효율적이게 되고 좀 경쟁력이 떨어지고 좀 수준이 낮아질 수도 있겠지만, 대신에 좀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성장하게 되고, 전인적이게 될 것 같습니다.


 너무 욕심이 많은 걸까요 ㅎ 그럴 수도 있겠네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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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18. 08:30


 유명한 미드 "Sex and the City"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자신과 너무 잘 맞는 사람을 만나 연인이 되지만 다른 사람에 그 연인을 소개하는 것은 꺼리는 사람의 이야기지요. 그리고 연인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지 않는 이유는 남들에게 부러움을 살 만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어울리는 사람들에 비해 사회적으로 좀 초라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사람은 연인과의 관계는 유지하지만 끝끝내 사람들에게 소개시키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큰 그림에서는 자신과 맞지 않기 때문에 미래를 함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요. 결국 이 에피소드는 숨겨진 정부취급을 받던 이 사람의 연인이 자신을 당당히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이 사람과 헤어지면서(정작 이 사람은 그 때 연인과 공개된 관계를 가지려고 할 때였죠)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제가 궁금했던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 사람이 가진 것' 때문에 '그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 건 나쁜 일일까요? 더 나아가서 그런 사람과 '숨겨진 관계'를 갖는 것은 나쁜 일일까요?

 누구나 그런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조금씩은 고민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할 때 '내가 너무 속물인가?'라며 조심스럽게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보았습니다.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려면 '속물'이 뭔지부터 제대로 정의하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속물'을 '나쁜 것'으로 바꿔본다면 저는 "No"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연애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결혼의 목적"도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하고요.) 관계를 통해 얻고 싶은 것 중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다른 사람의 높은 평가'라면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되겠죠. (그게 연애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므로 '그 사람이 가진 것'이 나에게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면 '그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오히려 옳은 선택이지요. 그러니 그 사람의 외부조건 때문에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로 인해 관계를 포기하려는 자신을 속물이라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계가 이미 정해진(미래를 기약하지 않는) '숨겨진 관계'를 갖는 것도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관계에 참여하는 두 사람이 모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 관계로 인해 상처받을 사람이 없다면 말이지요.(하지만 그러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체로 권하지는 않고 싶습니다. 그게 '관계'라면 오래 지속될 수도 없고요.) 


                                              샬롯도 처음 해리를 만났을 때, '숨겨진 관계'를 원했지만
                                                       결국 두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보세요.
 

 하지만 그 '숨겨진 관계'의 정체를 한 쪽만 알고 있다면 그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예를 들어서 A는 B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B는 그건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A에게 말하지 않고 계속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그럴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단지 지금 당장은 문제가 안되고, A가 싫은 건 아니기 때문에 A가 미래가 있는 관계를 원하는 걸 알면서도 '숨겨진 관계'를 유지합니다. 이건 나쁩니다.  이 관계에서 A는 속았으니까요.

 물론 실제 상황에서는 여러 요소가 훨씬 애매할 거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A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B가 모를 수도 있고 그걸 지레짐작하는 것이 오버일 수도 있고요. A가 결혼하자고 말한 것도 아닌데, 너랑은 결혼 못할거 같아, 라면서 헤어지는 건 잘하는 건가?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고요. 지금은 아닌 것 같아도 혹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게다가 그럼 둘 다 괜찮다면 인간이 서로를 수단이나 도구처럼 이용하는 건 괜찮은가? 라는 윤리적인 논쟁의 문제가 있을수도 있고요.
 
 칸트라면 안된다고 하고 공리주의라면 된다고 할 만한 '정의란 무엇인가'식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떤 안 좋은 일을 당한다는 것은 무척 화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자신의 의지대로 할 기회가 있었는데, 누군가 사실을 알면서도 말해주지 않아서, 그런 기회를 빼앗겨버렸다면, 그래서 결과적으로 더 상처받게 되었다면 그건 나쁜 일이죠. 기회를 빼앗은 사람이 분명 잘못한 일입니다.

 그러니, 만약 제가 다소 '속물적'인가? 라고 고민할만한 이유로 누군가와 관계에서 미래를 기약하지 못하는데 그 생각이 확고하다면, 그 관계를 끝내는 것은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  미래를 함께할 기약은 앞으로도 계속 못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재를 놓치기 싫어서 그 관계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적어도 그 상황을 상대방에게 알리겠어요. (물론 저라면... 그러고 싶어도 차라리 헤어지는 걸 선택할테지만요) 그게 틀림없이 상대방에게 달가운 소식은 아니겠지만, 그 사람의 기회를 빼앗을 권리는 없는 거니까요.


 그리고 만약 제가 상대방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제 선택은 제 몫이겠지요.
 그렇지만 어떤 선택을 할 지는 꽤나 분명합니다.ㅎ 칸트적이면서 공리주의적인 이유지요.  
 저는 목적으로 대우하고 대우받는 것이 좋거든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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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5. 08:30










일주일간 잘 지내셨나요? 수요일마다(가끔 목요일에도..ㅠㅠ) 찾아뵈옵고 있는 유수입니다.

이제 바람에서 겨울 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감기 걸린 분들은 없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몸은 건강한데 마음 속이 복잡하군요!

'진작에 이것저것 배워놓을 걸..'하는 생각도 많이 들구요.







왜 인문계열 졸업생은 많이 안뽑는거야 왜왜왜왜왜왜 하하하하하흐핳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 제가 취업 시즌을 맞아 이리저리 자리를 알아보는 건 다 생존을 위한 일이겠지요?^^;

대학 4년 큰 돈 들여서 졸업하려는데 막상 저를 받아주겠단 곳은 얼마 없으니 제가 참 잔혹한 시대를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심정이 이렇고 하니... 오늘은 20세기 100년의 세월 중 가장 잔혹했던 시절을 살아간 어느 가장의 눈물겨운 생존기를 담은 작품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만화는 미국의 전위 만화가 아트 슈피겔만art spiegelman의 '쥐' 입니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쥐> 1,2권의 표지입니다.
미국에선 1986년에 1권이 발표되었구요.
퓰리처 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1권 표지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에도 번역판이 나와 있습니다.
교육적인 내용 덕분에 대학 도서관에도 있을 확률이 큽니다.

만화 포스팅 올릴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요..
만화책도 사서 봐주세요. 아니 만화책 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도요.
책을 사서 보면 어려운 출판사들을 도울 수 있을뿐더러
특히 만화책을 사서 볼 경우 '에이 만화책 같은 거 뭐하러 돈 주고 사서 봐'라고 생각하는 절대 다수의 범인들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없어도 그만인 장점)
 
서점에도 많이 있습니다. 7500원이네요. 인터넷으로 사면 더 싸구요.
커피 두 잔 정도 안마시면 살 수 있는 가격입니다.
어차피 요새 대여점도 다 망해서 못 빌려볼걸요.
다운받으면 된다고? 이런 ㅆ...







 




작가인 아트 슈피겔만의 사진입니다.
작품 속에 작가의 아버지이자 이야기의 주인공인 블라덱 슈피겔만의 사진이 한 장 나오는데요.
그 사진을 보고 나서 이 사진을 보면 아버지와 아들의 생김새가 참 많이 닮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김새는 비슷한 부자지간이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라 컴퓨터 게임과 만화 속에 파묻혀 산 아들과
20세기 초반 유럽 사회에서 인생의 전반기를 보낸 아버지 사이의 사고방식 차이에서 기인한 감정의 골이 깊었다고 하네요.
만화가인 아들이 그린 아버지의 생존 이야기인 이 작품의
제작 과정 자체가 두 사람이 화해해 가는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

 
 





 

작품의 주인공인 블라덱 슈피겔만은 작가인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입니다. 1906년에 폴란드의 유태인 가문에서 태어나 직물을 사고 파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던 청년이었죠. 벌이도 괜찮고 (블라덱 본인의 증언에 의하면) 외모도 괜찮은 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사촌누이의 소개로 유태인 재벌의 딸인 아냐 질버베르그와 결혼하여 첫 아들 리슈를 낳고 살던 중,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말로 다 못할 고생을 겪게 됩니다.

그 고생이 단순히 그가 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에 겪게 된 것이 아닐 거라는 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라면 이미 눈치채셨겠죠?  유태인인 블라덱과 그 가족들은 흔히 홀로코스트라 불리는(쇼아Shoah라 지칭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고 하네요.)나치의 유태인 박해의 피해자였습니다. 그의 가족과 친척들 대부분은 모두 그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 죽거나 그 전에 이런저런 일로 목숨을 잃었어요. 그의 아버지, 누나, 남동생, 장인장모.. 끝내는 첫 아들인 리슈까지두요. 작품의 1권은 블라덱과 그의 아내 아냐가 수용소행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숨죽여 도망다니는 이야기를, 2권은 끝내 게슈타포에 사로잡혀 수용소에 들어가게 된 블라덱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기록'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작가가 그의 아버지의 증언을 그대로 녹음하여, 이를 8년에 걸친 작업을 통해 시각화한 것이 이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작품에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니 이건 작품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하고 있는 짓을 생각하면 참 안타깝기 그지 없어요. 일단 이 포스팅에선 이 얘기는 잠깐 빼놓고 가기로 해요.





이야기의 주인공인 블라덱 슈피겔만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수용소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수용소 유니폼을 갖춰놓고 기념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이 있어 거기서 찍은 거라고 하네요.
어휴 저같으면 저 줄무늬 옷 꼴도 보기 싫을텐데.. 기념 사진을 찍다니 예사 사람이 아닙니다 참...










수용소에서 신체검사를 받던 일을 재연하고 있는 블라덱.
이 만화에서 유대인은 쥐의 모습으로, 독일인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적절한 비유지요?






아들인 아트 슈피겔만도 인정하듯, 블라덱 슈피겔만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것은 운이 대단히 잘 따라준 이유도 크지만, 그가 위기의 순간마다 대담하고도 약삭빠르게 그것을 피해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작품의 서두에 나오는 블라덱의 연애사에서나, 게토에서의 삶을 보면 그가 대단히 꼼꼼하고 두뇌가 유연한 사람임을 알 수 있고, 때로는 너무 계산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어 속물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렇게 살아남은 블라덱은 종전 이후 '살아 남은 자'로서의 죄책감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럼 블라덱 슈피겔만의 성격과 그가 겪은 고생들.. 그리고 놀라운 수완으로 위기를 벗어난 순간들을 그림과 함께 살펴보도록 하죠.









냉철한 사업가에서 수전노로- 블라덱 슈피겔만은 어떤 사람인가요?




블라덱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부터 살펴보도록 하죠.







위 장면은 블라덱이 처음으로 약혼녀 아냐의 집에 초대받은 날, 아냐의 벽장 속에서 약을 발견하고 이를 수상하게 여기는 장면입니다.
작품 전반에서 블라덱은 놀랍도록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데요, 그의 그런 성격은 결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는지 위의 장면처럼 약혼녀의 모든 것을 철저히 알아내려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사실 그에게는 아냐를 만나기 전부터 교제하고 있던 여인이 있었는데, 그 여자가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 지참금을 가져올 수 없자 냉정하게 차버린 것도 그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겠죠.








또한 블라덱은 뛰어난 장사 수완을 타고 난 인물이기도 합니다. 위 장면은 종전 후 스웨덴에 잠깐 머물렀을 때 무작정 유태인 소유의 백화점에 찾아가 거래를 튼 블라덱이 그려진 장면인데요, 젊었을 때 직물 거래로 먹고 산 이력이 있어서인지 아무도 팔지 못한 물건이라도 손쉽게 팔아치워버리는 솜씨를 보여주게 됩니다. 이러한 그의 장사 솜씨는 수용소에서 살아남는 데에도 큰 보탬이 되지요.





 



미국 생활을 시작한 그는 무엇이든 부족하고 결핍되어 있던 수용소 생활의 여파 때문인지 샛노란 구두쇠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위의 대화에서 아버지의 그러한 성격을 작가가 얼마나 지긋지긋해 하는지 알 수 있죠ㅋㅋ









블라덱은 아냐가 갱년기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폴란드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말라라는 여성과 재혼 합니다. 하지만 블라덱의 지나친 결벽과 인색함 때문에 불화가 끊이지 않죠. 생활비로 한달에 50달러라니..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 50달러면 지금 돈으론 얼마인가요? 아무리 높게 잡아봐야 한달 살림엔 턱없이 모자라겠네요...






이렇듯 나이가 들어선 남들과 함께 살기 불편한 성격이 되고 말았지만.. 젊은 시절 그의 명석함은 그와 아내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어요. 이제 수용소 안에서 그가 어떻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살아 남았는지 살펴볼까요?





 












"뭐든 할 줄 아는 게 좋은 거란다" - 블라덱 슈피겔만의 파란만장 생존기






 

 

 

 













제 2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되었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시작된 후부터 블라덱 슈피겔만의 고생길이 훤히 열리기 시작됩니다. 폴란드군으로 참전한 그는 교전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포로로 잡힌 그는 춥고 배고픈 포로수용소 생활을 견뎌내야하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머리 회전 빠른 블라덱답게 가만이 앉아서 구더기가 자기 살을 파먹는 것을 보고만 있진 않았어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집안 친구를 친척으로 위장시켜, 다른 포로들보다 손쉽게 귀향 티켓을 얻어냅니다. 폴란드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독일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폴란드인으로 위장하기도 하죠. 만화에선 쥐인 블라덱이 돼지(폴란드인을 돼지로 치환했네요)가면을 쓴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 게토를 하나하나 소개시켜 그 안에 갇혀살던 이들을 절멸 수용소로 보내기 시작하자, 블라덱은 집 지하실에 교묘한 비밀 벙커를 만들기도 합니다. 또 벙커에서 지내다 독일 경비병과 접촉한 이들이 그들과 계약을 맺어 돈을 주고 게토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게 했다는 솔깃한 소식을 들어도 쉽게 믿지 않습니다. 결국 끝까지 독일 경비병을 믿지 않았던 블라덱이 옳았죠. 이렇게 그는 자신의 신중함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집니다. 



















"뭐든 할 줄 아는 게 좋은거야" 이번 포스팅의 제목은 이 페이지의 대사에서 따왔습니다. 게토의 작업장에서 신발 수선법을 배워둔 블라덱은 아우슈비츠에서 그 기술을 긴요하게 써먹게 됩니다. 어릴 때 잠깐 배웠던 함석 제련 기술로 함석장이 일을 하던 블라덱은 신발 수선 역시 배워둔 덕에 위험한 작업장을 떠나 자신만의 수선실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덕에 아냐에게 몰래 건내줄 빵 따위를 모을 수도 있게 되죠.  





 



 


블라덱의 고난은 오히려 수용소를 떠나면서부터 시작되었어요.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나치는 수용소에 있던 유대인을 모두 독일 본토로 데려와 전부 죽여 자신들이 절멸수용소를 운영했던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고 하죠. 그들은 꼭 본토까지 데려가서 죽일 생각은 없었던지 유대인들을 가축 수송용 열차에 빽빽히 태워 독일까지 데려가는 과정에서 그들이 저절로 죽어가길 기다린 듯합니다. 열차 한 칸에 200명씩 들어찬 생지옥에서 블라덱은 담요를 갖고있던 덕에 죽음을 피해갈 수 있었어요. 














영어를 배워두었던 것도 포로 수용소에서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궁리를 해 체력을 유지했지만 블라덱은 곧 티푸스와 당뇨를 한꺼번에 앓으며 한동안 사경을 헤메게 됩니다. 결국 병이 낫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 아냐와 재회하여 행복하게 살았으니 정말 다행이에요..












죄의식의 대물림-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이었을까요?











"다 떠나고...결국 남은 건 사진 뿐이란다."




지금까지 블라덱의 수난기를 살펴보았는데요, 부디 이 글을 읽고 제가 블라덱과 같이 재주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을 칭찬하고 그렇지 못했던 사람들을 힐난하고 있다고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절대로! 그건 제가 이 포스팅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고, 또 이 작품의 작가 또한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거예요. 왜냐하면 작가인 아트 슈피겔만이 이 만화를 발표한 것은, 과거의 희생자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위함이 아니라, 생존자로서의 자신의 죄의식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기 위함이었다고 생각되거든요.

작품은 쇼아의 생존자이자 동시에 그 피해자인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이 생존자로서의 죄의식을 갖게 되었고, 그것을 '진짜 생존자'인 자신의 아들, 작가에게 대물림함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려 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블라덱 자신이 살아남은 것은 자신이 특별히 선해서가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그가 민족을 위한 어떤 사명을 띄고 살아남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저 그는 운이 억세게 좋았고, 살기위해 거짓말을 하고 뇌물을 바치고, 같은 동포의 비명을 무시하고 앞만 보고 달려나가며 살아왔기 때문에 목숨을 지킬 수 있었던 거라고, 블라덱은 생각했을 거예요. 이러한 생각을 하면 그는 동포들이 왜 그런 죽음을 맞아야 했는가에 대해 어떠한 대답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죄책감은 그의 아들인 작가에게 넘겨지고, 작가 역시 그 대답을 알지 못했을 것이구요. 작중에서 역시 쇼아의 생존자로 등장하는 그의 정신과 의사가 말하듯, '그저 깊은 슬픔을 느낄 뿐'이었겠지요.


그래서 이 만화는 블라덱의 과거사를 다룬 내용과 현재 그와 그의 아들의 불편한 관계를 묘사한 내용이 솜씨좋게 엮여나가는 구조의 플롯을 가지고 있어요. 이 작품이 발표와 동시에 엄청한 찬사를 들은 이유는 수용소의 희생자에 대한 내용을 재현할 뿐만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의 아픔을 밀도있게 그려냄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더욱 날카롭게 '현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차마 말로 다 못할 학살이 일어난지 반세기가 지난 20세기 말, 그 상처를 안은 채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그리고 어떤 행동을 보여줘야 할까요? 작품은 사무엘 베케트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이 던진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조금은 허무한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모든 말은 침묵과 무위에 묻은 불필요한 얼룩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