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14. 08:30
영화처럼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지은이 가네시로 가즈키 (북폴리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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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개똥같은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지'


* What's the story
영화화되며 큰 인기를 끈 'Go'와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집필한 가네시로 가즈키의 2008년작'영화처럼'은 다섯 편의 영화를 계기로 펼쳐지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집이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 '정무문', '프랭키와 자니', '페일 라이더', '사랑의 샘'을 모티프로 한 에피소드는 각각 소소하면서도 특별한 매력을 발산한다.

첫번째 단편인 '태양은 가득히'의 경우, 국내작가의 작품마냥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하다. 영화를 통해 가까워진 두 소년이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어른으로 만나, 또 한번 영화로 재회하는 스토리로, (많은 이들이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국민소설이라 불릴 만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구조와도 유사하다. '용일'과 '영화' 등 캐릭터들도 한국인이며 유년기의 학교 또한 총련계로 그려진다. Anyway, 이외에도 각 영화는 적재적소에 배치돼,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형성하는 촉매제가 되거나 혹은 그들의 상징으로서 기능한다.

* My story is..
가끔 사전 정보나 지식이 없어도, 노래만 듣고 그 작곡가가 누군지 혹은 영화만 보고 그 감독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너무나도 명확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데, 결코 좋고 나쁨을 평가할만한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일본 최고 권위의 나오키상 수상자이자 인기작가인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이, 내게는 그랬다. 언제나처럼 그의 이름은 표지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고, '가네시로 가즈키가 돌아왔다!'란 제법 굵은 띠지까지 둘러져 있었지만. 읽을수록 금세 알 수 있는 그의 냄새(?)와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으니까. 사실 '경계인'으로서의 설정 자체 때문일지도?


그의 한국이름은 김성일, 가네시로 가즈키는 재일교포 3세다. 특히 나오키상의 영광을 안겨준 동시에, 동명의 영화로 각색되며 인기를 모은 'Go'(2001)는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은 마르크스 주의자이자 조총련 활동을 했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 조총련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왔는데- 국적은 한국 국적이며, 일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재일교포로서의 자아, 그 혼돈과 갈등에 대한 진솔한 고백은 특유의 스피디한 전개 속에 흥미롭게 그려졌고 그 결과,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서 사랑을 받았다. 그의 소설에서는 한국인 캐릭터도, 총련계 학교란 배경도 자주 등장한다.
작가의 삶이 텍스트 속에서 살아숨쉰다. 마치 그의 소설이 아닌, 그의 삶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등장인물의 모습을 상상해볼 때면, 익숙한 얼굴이 하나 팍! 하고 나타난다. 바로 '인민루니' 정대세다. 가네시로 가즈키처럼 재일교포 3세인 정대세는 일본인이자 한국인이자 북한인이다. 무척 복잡한 아이덴티티가 아닐 수 없다. 정대세는 나고야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모두 총련계 조선학교며 대학교 또한 총련계인 조선대학교다. 또 다른 축구스타 이충성과 유도 대표였던 추성훈처럼 그에겐 복수의 선택이 가능했고, 그가 선택한 것은 J리그 그리고 북한의 국가대표였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 근현대사의 산 증인 같다. 원더걸스를 좋아하고 불고기를 즐겨먹는 정대세도, 가네시로 가즈키 소설의 주인공처럼 격동의 사춘기를 보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극장의 어둠 속에서 우린 재일 조선인도, 재일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다른 인간이 될 수 있지. 그러니까, 음, 이런 거야. 불이 꺼지면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또 어떤 등장인물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기대감이 우리의 머리와 몸 속에서 점점 부풀잖아. 그러다 불이 완전히 꺼지면 '팡!' 하고 터져버리지. 그때 우리란 인간도 함께 터져서 없어지고, 어둠 그 자체가 되는 거야. 그 다음은 스크린에 비치는 빛에 동화되면 그만이지, 그럼 우린 스크린 속에서 움직이는 등장인물이 될 수 있어. 개똥 같은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거지. 그래서 극장의 어둠 속에 있을 때는 신나고 가슴이 설레는 것 아닐까? 어때, 네 생각은?" (태양은 가득히, 31p)

삼천포로 푹 빠져버렸지만.. 다시 돌아와서 소설은 여느 때와 같이 최고의 가독성을 산출해내는 빠른 전개와 이를 뒷받침하는 문체가 돋보이며, 특유의 묘사력 또한 녹슬지 않았다. 영화를 좋아하는 내게는 깨알같은 재미가 부록처럼 따라오기도 했지만, 첫번째 단편이었던 '태양은 가득히'가 제일 좋았기 때문에 페이지를 넘길수록 기대감은 하락했다. 영화란 하나의 모티프가 반복해 등장해서인지 살짝 지루함도 느껴지고. 그래도 읽기 좋고, 읽기 편한 장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타공인 영화 마니아로서 처음에는 이 소설에 '영화'가 얼마나 잘 녹아났는가가 궁금했다면, 책을 덮은 지금은 '추억'이 이 소설의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소설 속 영화는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계기, 마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향을 맡는 순간 잊고 지냈던 기억을 떠올린 것처럼, 잠시동안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하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 존재다.

마지막 단편인 '사랑의 샘'에는 이러한 느낌과 뜻이 잘 살아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위해 '로마의 휴일' 상영회를 직접 준비하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추억들과 맞닥뜨린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했던 생각으로 이 글의 마지막을 대신하고자 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추억이란 성역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나름의 각오가 필요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어중간한 관심과 공감과 이해로 사람의 마음을 헤집고 들어가는 것은 흙 묻은 신발로 타인의 집에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굳이 들어가려 한다면, 할머니의 마음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메울 수 있을 정도의 보물을 지니고 가야한다." (사랑의 샘, 350p)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7. 08:30
갈팡질팡하다가내이럴줄알았지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이기호 (문학동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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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나쁜 소설이지만, 갈팡질팡 하지말고 어서 읽으세요!


 * What's the story?
이기호란 흥미로운 작가가 풀어놓는 여덟편의 짧은 이야기가 수록돼있다. 최면에 걸린 청자가 여관방에서 콜걸에게 소설을 읽어준다는 독특한 설정의 '나쁜 소설 - 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로 시작해, 흙을 먹는 이가 소개해주는 친절한 레시피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을 지나,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로 폐허가 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교보문고를 뒤덮은 시멘트 벽을 곡괭이로 뚫어나가는 작가의 이야기인 '수인'까지 참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들, 이기호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기이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 My story is..
가끔 전적으로 작가를 보고 책을 고를 때가 있다. 이기호는 그런 면에서 무척이나 믿음직스런(?) 작가다. (출간일과는 무관한 순서로) '최순덕 성령충만기'와 '사과는 잘해요'를 먼저 읽은 나는 어느새 검색 키워드로 '이기호'를 타이핑하고 있었다.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만한 스타일이지만, 어쨌든 나는 '호호호호호호'니까 좋다! 무엇보다도 책읽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도 쉽게 쉽게, 술술 넘어갈 책이라서 더욱 좋다.


이 책의 저자, 이기호! 72년생이며 강원도 원주 출신이다. 와우! (난 지역감정과는 무관한 사람이지만, 강원도 사람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척 좋아한다) 1999년 단편소설 '버니'로 데뷔, 2004년 첫번째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2006년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2009년 '사과는 잘해요'를 출간했다. 특유의 문체와 독특한 설정으로 인해 종종 박민규, 성석제와 비교된다. 두 작가와 마찬가지로 이기호도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이야기 자체에 몰입하게 만드는 마성의 작가다.

표제작인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는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을, 저 제목은 바로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허구헌 날 린치를 당하는 찌질한 소년이 주인공인데, 선배고 깡패고 동네북처럼 맞지만 그래도 쎄-보이고 싶은 참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캐릭터다. 소년은 얻어터지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쩐지 그 상관관계가 우습고도 슬프고도 재미있다.

 "쓰다보면 간간이 얼굴이 홧홧해기도 했지만, 지난번처럼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이건 그래도 무언가 내 의지라는 것이, 비록 조금은 갈팡질팡했지만, 조금은 숨어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쓰는 것 자체도 계속 갈팡질팡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우연은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글이라는 것이 원래 그러니.... 하고 내 마음을 다독거리기까지 했다. 순전히 내 좋을 대로, 내 맘대로."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p.294)

어디까지가 fact고 어디까지가 fiction인지 모호하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그것은 이 단편집 전체를 아우르는 매력이기도 하고. 이 단편에서 나는 '글쓰기'란 행위를 하는 행위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됐다.

나는 꽤 오랫동안 글을 읽고 써왔던 사람이자 불량 국문학도로서 '글쓰기'란 것에 대한 복잡미묘한 애증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과연 계속 써야할까, 제대로 쓰고 있는 것인가, 잘 쓰고 있나 같은 생각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뇌리를 스쳤고, 그러다가도 다시 글로 돌아오는 이상한 '밀땅'을 즐겨왔다. 그래서인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수인'이다.

앞서 설명한 바 있지만, '수인'은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고 난 후 아수라장이 된 세상이 그 배경이다. 지금 다시 읽으면, 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가 떠오르며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픽션이라고 생각했던 설정이, 지금은 너무도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편 주인공은 소설가다. 그가 교보문고를 뒤덮은 25m 두께의 시멘트를 향해 곡괭이질을 하는 이유는 그 자신이 소설가임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신경을 오직 시멘트벽에 집중하려 애썼다. 또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는 곡괭이를 내리칠 땐 오직 곡괭이 생각만 했다. 그 자신이 마치 곡괭이의 날이 되고, 곡괭이의 자루가 된 것처럼, 곡괭이와 한 몸을 이뤄, 온몸으로 벽에 부딪쳤다. 예상보다 더 큰 시멘트 조각이 벽에서 떨어져나왔을 때,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 순가 그에겐 나라가 망했다는 사실도, 자신이 소설가였다는 생각도, 모두 의미 없는 것들로 다가왔다. 그는 때때로 자신이 왜 벽을 파내려가고 있는지, 자신이 왜 여기 서 있는지조차, 스스로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모두 곡괭이와 벽에 내준 것이었다. 그렇게 그 시간을 견딘 것이었다." (수인 p.220)


작가는 끊임없이 '의지'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글쓰기란 행위는 전적으로 '의지'에 의지하고 있다. 그것이 선명하든 희미하든, 의지란 것이 존재하는 한 말이다. 작은 곡괭이 하나로 두터운 시멘트 벽을 뚫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가 될까? 그 두꺼운 벽이 지닌 함의는 독자의 의지에 따라 수백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넘기 힘든 등단의 벽이 될 수도 있고, 자유로운 글쓰기를 막아버리는 온갖 구질구질한 현실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이 괴상한 단편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하는 독자의 고충을 형상화한 것일 가능성도 있겠다.

이기호의 소설은 유쾌하고 위트있는 문체로 슬프고 씁쓸하며 외로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무명의 소설가라든가 찌질한 소년 같은 루저 이미지의 캐릭터, 혹은 정말 평범한 우리네 이웃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말이다. 그대신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동시에 고약한 스릴을 불러일으키는 악당은..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더더욱 정감이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단편집에는 작가로서 이기호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어, '아, 이 사람이 이런 작가구나'란 깨달음도 간간히 얻게 된다. (특히 첫번째 소설에는 머리를 망치로 가격당한 것 마냥 ''띵-'하는, 낚인 느낌마저 들지만, 그는 독자와 무척 가까운 작가임에 틀림없다)
 
갈팡질팡하다가 거의 망친 리뷰를 마치며, 이 멋진 책을 집필해낸 작가의 말로 피날레를 장식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망삘(?)이 강한 이 리뷰도 제법 괜찮은 엔딩을 맞이하겠지? 아무래도 그쪽이 더 좋은 엔딩일 것 같다.

미안합니다.
이번엔 작정하고 '내' 이야기들을 좀 써보았습니다.
다음부턴 그러지 않겠습니다.

소설이 잘 써지지 않을 때마다
내가 중얼거리는 말이 있습니다.

겁 많은 두 눈아, 겁내지 마라.
부지런한 네 두 손이 다 알아서 해줄 테니.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이 말이,
당신에게는 미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곧 인류평화를 위해 장가를 갑니다.
인류평화를 위해 기꺼이 한 몸 희생해준 여자친구에게,
전(全) 인류를 대신해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평화로워진 지구에서, 또 만납시다.

- 이기호, 소설가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5. 08:30


휴재를 하신 H님을 대신해서, 요즈음 이래저래 자주 마주치고 있는 '검정치마'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며칠전에도 H님과 함께 한 미술관 관람에서 우연치않게 만나 라이브도 듣게 되고, 소탈한 입담에 우리 모두 "매력 쩌네"를 연발했더랬죠. 그래서 H님의 스피릿을 이어받은 포스팅으로는 나름 의미있을 것 같아서 주저않고 선정한 오늘의 주인공이랍니다. 우선 사진 포스가 후덜덜하네요.


'검정치마'
를 이끄는 청년 항해사, 그의 이름은 바로 조휴일입니다. 일요일에 태어나서 휴일이라고 하네요. 휴일군(이라고 하지만 저보다 나이가 많네요.. 기뻐요!!)은 82년생, 서른? 올해 나이 서른! 충격적이죠? 무지하게 동안이군요. 12월 5일 서울 출생이라고 하는데,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갔다고 합니다. 재미교포란 아이덴티티는 그의 음악적 색채에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휴일군은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웠다고 하는데요, 띄어쓰기도 못 하지만 그래도 주옥같은 가사를 보면 저보다 나은 듯.. (씁쓸한 현실을 뒤로 하고) 1960~70년대 금지곡들부터 노브레인의 '청년폭도맹진가'를 들은 후 한국에서의 펑크를 꿈꾸기로 했답니다. (매일경제 인터뷰 중)

음악적 뿌리를 한국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적인 느낌이 다른 한국 아티스트에 비해 많이 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음악이 제 정체성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아요. 미국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 한국사람도 아니고, 중간에서 갈팡질팡하기도 하고 그 어디에도 확실히 소속되지 못하지만 중간 지점에서 양쪽의 양분을 다 먹은 음악이라고 할 수도 있고 이쪽(한국)도 저쪽(미국)도 아닌 음악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딱 중간 즈음에 있는 것 같아요. (2011.8.31 노컷뉴스 인터뷰 중)



이거슨 휴일군의 마음을 움직인 문제의 곡! 노브레인의 '청년폭도맹진가'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거 안 보고 계시죠? 흐엉흐엉 그래도 현재의 '검정치마'를 있게 한 곡이니 클릭 한 번 해주세염ㅋ 어익후.. 무튼 휴일군은 미 대륙 횡단여행 중 1집 '102'를 녹음했고.. 인디록음반으로서는 굉장한 인기를 얻게 되죠. 얼마 전에 제가 소개해드렸던 'Antifreeze(안티프리즈)'란 곡도 1집 수록곡입니다. 이 데뷔음반은 한국대중음반상 5개 부문 최다후보! 최우수 모던록 음반상 수상의 쾌거를 올립니다!


그리고 3년 만에 2집 발ㅋ매ㅋ (사실 '검정치마'가 결성된건 2004년 뉴욕이었고, 3인조 아마추어 펑크록밴드로 시작했는데- 2006년 조휴일군의 1인 프로젝트 밴드로 변했다는 히스토리가 있답니다!) 이번 앨범은 더더욱 빈티지한 사운드가 돋보입니다. 쿰쿰한 지하실에서 녹음하는 휴일군의 모습이 그려져요. 어쿠스틱 사운드, 다소 단순한 코드 진행, 담백한 노랫말.. 말그대로 storytelling!

이번 앨범 수록곡들 사운드가 빈티지하다고? 그래, 잘 들었네. 전적으로 의도한 거야. 무조건 깔끔하고 대중 친화적인 사운드를 좇기보다는 깨끗하지는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음역대를 가고 싶었어. 대표적으로 '인터내셔널 러브 송'은 오래된 교회를 스튜디오로 바꾼 곳에서 녹음했어. 마이크도 1920년대 것을 사용했고 피아노도 오래됐지. 아주 특별한 작업이었어. 그 외 나머지 곡들은 1집처럼 미국의 집 지하실에서 레코딩했지. (2011.7.18 뉴시스 인터뷰 중)

이번 앨범 이름은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이죠? 그 제목에 얽힌 이야기나 의미 같은 게 있긴 있습니다. 휴일군이 요즘 즐겨 쓰는 마도로스(아니 이런 노티나는 어휘선정..) 모자가 힌트! 그의 이야기를 직접 한 번 들어보지용!

'돈트 유 워리 베이비', 앨범 타이틀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걱정하지 말아라'야. 부가적으로 붙는 '아임 온리 스위밍'은 항해를 뜻하고. 나는 검정치마라는 배의 유일한 선원이자 유일한 캡틴이거든. 내가 그간 음악 활동을 하고 생을 살아오면서 느낀 것들을 적은 일종의 항해일지. 어떻게 보면 이번 앨범 수록곡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만든 것들이야. 기존의 소속사에서 나온 뒤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에 나온 곡들이지. (2011.7.18 뉴시스 인터뷰 중)


2집 앨범 수록곡 중 맘에 드는 'Internationl love song'입니다. 이런저런 일들은 겪은 터라 2집의 노랫말들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휴일군은 자신을 치유하는 이야기라고도 하더군요. 사실 그는 '검정치마'란 밴드에서 작사, 작곡, 연주까지 커버하고 있죠. 물론 드럼, 건반, 베이스, 기타 등 밴드의 구성은 갖추고 있지만, 원맨 밴드를 중심으로 하는 구성이죠. 밴드 연주자들은 공고를 낸 뒤 선착순으로 모집한다고 해요. 좀 특이하죠?ㅋ 앞으로도 정확한 팀을 구성할 계획은 없다고 합니당. 예전에 함께 연주했던 야광토끼 임유진 씨랑도 다시 뭉칠 생각은 (아직은) 없다고 하구요.


야광토끼란 이름으로 활동중인 임유진 씨는 과거 '검정치마' 프로젝트 밴드의 키보드를 맡고 있었죠. 개인적으로 무척 맘에 드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랍니다. 휴일군이 "네 음악을 해보는 게 어때?"라고 권유했던 것도 솔로 데뷔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보통 인연은 아니죠?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 사이라고 합니다. '검정치마' 전부터, 미국에서부터, 함께 음악을 했다고 해요.


걱정말라는 그의 말에 고갤 끄덕이며, 무덤덤하게 읊조리는 듯한 노랫말에 귀를 기울이는 밤입니다. (앗! 글을 작성하는 지금은 새벽 1시 36분이에요!) 이것저것 재지 않고도,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찾으신다면 검정치마를 찾아주세요. 물 속을, 하늘을 유영하는 듯한 여유롭고 시원한 느낌을 만끽하실 수 있을겁니다. 마지막은 휴일군의 이상한 인터뷰로 대신할게요. 총총!

Q. 내 인생의 BGM이 있다면? (2009.5.22 텐아시아 인터뷰 중)
A. 스매싱 펌킨스의 '1979'. 그건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많지만 부동의 1위인 것 같다. 그 곡에 대한 센티멘탈 밸류가 정말 크다.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와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닿아 있다.

Q. 스타일 면에서 굉장히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2009. 맵스 매거진 인터뷰 중)
A. 워낙 패션에 신경을 잘 안쓴다. 소속사에서도 처음에는 신경을 썼으나, 포기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거기에 모순이 있는 것 같다. 음악은 팝을 추구하고 만들었는데, 외적인 면은 솔직히 많이 무시를 했던 것 같아서 앞으로는 노력할 생각이다.

Q. 검정치마에 어떻게 입는 게 가장 예쁠까?
A. 위에는 회색 판쵸를, 그리고 검정치마는 길수록 좋다. 신발은 치마에 가려서 안보일테고.

Q. 누가 이 옷을 입었으면 좋겠나.
A. 치아 교정하기 전의 강혜정.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1. 07:00
두근두근내인생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애란 (창비,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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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뻐, 아름아.


안녕하세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긴 하지만 어디에선가 가을냄새가 나는 것도 같네요. 사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달은 9월이에요. 제가 태어난 달이기도 하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달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여름과 가을이 맞닿아 있다는 점이 맘에 듭니다. 오늘,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책은 독서의 계절이란 가을의 문을 열기에 딱! 김애란의 신간, '두근두근 내 인생'입니다. 기대되시죠?

'두근두근 내 인생'은 6월 15일 태어났습니다. 나름 신간 축에 끼는 것 맞죠? 그동안 김애란 작가가 발표한 책은 '달려라 아비' 그리고 '침이 고인다' 단편집 두 권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그녀의 긴 호흡을 느낄 수 있는 첫 장편소설입니다. 창비 계간지에 4회에 걸쳐 연재됐으며, 그때부터 큰 사랑을 받았죠.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그리고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기 때문에 리뷰를 쓰기 전부터 너무 긴장타게 됩니다. '두근두근 내 리뷰'네요. 여러분을 위해 서문만 살짝, 데려와 봤습니다. 혹시 스포일러라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과감히 '뒤로'를 눌러주세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열일곱에 나를 가졌다.
올해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내가 열여덟이 될지, 열아홉이 될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 건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뿐이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그리고 나는 무럭무럭 늙는다.
내겐 누군가의 한 시간이 하루와 같고
다른 이의 한 달이 일년쯤 된다.
이제 나는 아버지보다 늙어버렸다.

아버지는 자기가 여든살이 됐을 때의 얼굴을 내게서 본다.
나는 내가 서른넷이 됐을 때의 얼굴을 아버지에게서 본다.
오지 않은 미래와 겪지 못한 과거가 마주본다.
그리고 서로에게 묻는다.
열일곱은 부모가 되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서른넷은 자식을 잃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으시나요? 연애만 놓고 봤을때, 저는 좀 아닌 편인 것 같은데요. 이야기의 첫 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서문을 읽고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뭉글뭉글 올라오더군요. 여하튼 서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두근두근 내 인생'조로증에 걸린 17살 소년 아름이와 아름이의 부모가 주인공입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의 시점은 철저히 아름이의 시선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아름이가 전해들은 것으로 설정돼있긴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젊은시절 이야기가 무척이나 세세하게 묘사되기 때문이죠. 노래를 부르고픈 꿈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고민하는 소녀 엄마, 운동이고 뭐고 다 관두고 싶었던 태권도 소년 아빠의 마음과 생각을, 아름이네 부모님의 생동하는 유년기를 만날 수 있어요. 그렇게 그 나이에 맞는 고민들을 껴안은 소년소녀들은 서로를 껴안게 되고, 아름이가 태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아름'이란 주인공의 이름도 그렇게 포옹의 느낌이 묻어나서 좋았어요. 김애란 작가도 "제일 먼저 생각한 건 누군가 두 팔 벌려 나무를 안고 있는 이미지였어요. 사람이 양팔로 큰 나무를 안을 때 그 '품'을 이르는 단어? 포옹의 단위? (웃음) 같은 거. '아름답다'의 '아름'도 될 수 있지만 제겐 그 나무 이미지가 컸어요" (출처: 알라딘과의 인터뷰) 라고 답하셔서 혼자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찌찌뽕?ㅋ)


주인공 아름이는 17살, 하지만 몸은 여든살 노인과 같습니다. 상황이 좀 다르긴 하지만..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빵오빠나 코폴라 감독 作 '잭'의 로빈 윌리엄스가 떠오르기도 하죠. 이야기는 아름이가 엄마, 아빠를 위한 연애소설을 쓰고자 하면서 시작됩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돌보고, 아픔을 나누었던 부모님께 잃어버린 청춘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참 예쁩니다. 소설을 쓰는 동안 많은 사건이 아름이의 곁을 스쳐지나갑니다. '인간극장'이나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고, 첫 사랑 소녀와 이메일을 주고 받기도 하고, 병원과 집을 오가며 시간을 마주하고 성장해나갑니다. 

주인공 아름이만큼이나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은데요.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이 들었던 아름이네 아빠, 엄마도 그렇고 아름이의 멘토이자 친구인 장씨 할아버지도 무척이나 사랑스럽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바로 장씨 할아버지인데요. 아름이의 이웃입니다. 장씨 할아버지는 60대의 어르신이시지만, 여전히 소년스러운 분이에요. 철부지 같기도 하고 장난꾸러기 같기도 하고, 그치만 어느새 연륜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건네주시기도 하죠. 본문 중에서 장씨 할아버지의 매력이 잔뜩 묻어나는, 제가 좋아하는 부분을 살짝 데려올테니 함께 읽어보아요. 

(성금프로그램 촬영 중인 아름이네 집에 불쑥 들어와서 방송국 사람들에게 말하는 장씨 할아버지)

"아름이 쟤는 아주 나쁜 아이입니다."
"네?"
우리는 한 번 더 장씨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왜요?"
"쟤는 저를 무슨 동네 형 대하듯 하거든요. 집에서 아주 버릇없게 키운 게 틀림없습니다.
지가 무슨 진짜 내 또래인 줄 알아요."
작가누나가 예의상, 진짜 예의상 한 번 더 물었다. 대충 받아주고 어서 끝내려는 것 같았다.
"아름이가 정말 할아버지를 형처럼 대하나요?"
할아버지가 어이없고 기가 막힌 표정으로 답했다.
"네."
"그럼 할아버지는 아름이를 뭐라고 생각하시는데요?"
그러자 장씨 할아버지는 새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쑥스러워하면서 한 마디 했다.
"친구요..."
 
정말 (이렇게 말씀드리면 외람되지만) 귀여우신 분이시죠. 김애란 작가는 한없이 슬퍼질 수 있는 이 이야기의 요소요소에 특유의 유머감각을 십분 발휘해 독자의 감정이 강약중간약,하며 좋은 리듬을 타도록 돕습니다.


또 하나, 김애란 작가의 장점인 풍부한 어휘과 그를 바탕으로 한 생생한 묘사, 그 생기를 살리는 리듬감이 이 소설에서는 무척이나 돋보입니다. 그녀는 소설 언어가 지니는 리듬감, 호흡에 대한 질문에 자신이 "실패한 시인"이라서 더욱 말의 리듬에 애착을 갖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답니다.   


아, 그러고 보니 17살의 아름이가 과거 엄마, 아빠가 아름이를 낳았을 때랑 동갑인 것처럼 저도 지금 저를 낳으셨을 때 엄마 나이와 동갑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모의 마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름이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이유를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라고 하더군요. 잊어버린 그때의 기억을 아이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라구요. 제 심장과 연결돼 쿵,짝,쿵,짝 박자를 맞추어갈 작은 심장을 가진 아기라니! 새삼 신비롭습니다.

음.. 찬란한 슬픔,이란 표현 다들 아시죠?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역설'이란 수사법을 배울 때 자주 언급되는 예시인데요. '두근두근 내 인생' 속 아름이를 만나며 제가 느꼈던 감정도 '찬란한 슬픔'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이 수없이 교차되는 과정 가운데서 아름이의 두근거림에 제 두근거림이 나란히 포개어졌던- 아프면서도 기쁘고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이토록 특별한 아이, 아름이의 소설은 어떻게 됐을까요? 또 첫사랑 소녀와의 로맨스는 어땠을까요? 무수한 궁금증들은 꼭, 책 속에서 아름이에게 직접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두근두근, 설레고 떨리는 여정이시기를 기도할게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31. 08:30
마왕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지은이 이사카 고타로 (웅진지식하우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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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생각, 생각을 하자!

마왕, 무척이나 친숙한 제목이다. 제법 유명한 드라마에, 영화까지 다들 '원작소설인가?'란 생각을 해봄직하다. 초능력자인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 소설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야기와 독자의 상상력, 그것은 시각을 뛰어넘는다.

작가인 이사카 코타로는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작가다. '젊은 천재'라 불릴 정도인데 제법 끄덕여질 정도. 게다가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어서 그의 작품은 드라마, 연극,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재생산되고 있다. 일본 영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지도 모를, 귀염둥이 에이타군과 서정적 매력이 돋보이는 마츠다 류헤이가 주연한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또한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이 원작이다.
                                      



1971년 일본 치바 현에서 태어나 도호쿠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이사카 코타로는 단순히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를 넘어, 인간과 사회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해부하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재구조화하는 스토리텔러에 가깝다. 일본 최고 권위의 나오키상에 다섯번이나 노미네이트 됐으며, 두터운 팬층도 확보하고 있는 인기 최고의 작가로, '러시 라이프', '사신 치바' 등의 유명한 전작이 있고 이 '마왕'이란 소설로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이끌어냈다. 법학도답게 헌법이나 전체주의에 대한 통찰력에는 깊이가 있고, 유능한 작가답게 어려운 아젠다를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여담이지만, 네이버 작가소개를 보면 센다이시에 거주하며 집필활동 중이라던데, 이번 지진으로 피해가 가장 심한 곳이라 괜찮을지 걱정이 된다. 아! 쓰다보니 또 서론이 너무 길었다. 워낙 좋아하는 작가라서, 사족일지도 모르는 이야기가 자꾸 길어진다.

이제 소설을 제대로 살펴보자. 우선 주인공! 주인공은 평범해 보이지만, 절대로 평범해질 수 없는 형제. 주인공이 둘인 만큼, 이야기도 형 안도의 이야기인 '마왕''호흡'이란 제목의 동생 준야의 이야기로 나뉜다. 사실 말이 '초'능력이지 사실, 두 형제의 초능력은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슈퍼맨 같은 영웅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형 안도는 30보 정도의 거리를 두면 복화술이 가능하고, 동생 준야는 10분의 1 확률이 넘지 않으면 1로 만들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쓸모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어느날, 안도는 TV에서 이누카이란 정치인을 보게 된다. 이누카이는 "5년 안에 세상을 바꾸지 못하면, 내 목을 날려도 좋소!"라고 하고 사람들은 그의 묘한 자신감, 매력에 빠져든다. 그리고 안도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잃어갔기 때문이다. 위험을 감지한 안도는 이누카이를 막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몇 년 후, 이누카이는 파격적인 개혁을 시행하고, 그의 힘도 점점 커져간다. 그야말로 '마왕'이 되가고 있는 것이다.그 즈음, 동생 준야는 자신이 가진 초능력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싸움이 시작된다. 과연 '마왕'이란 무엇일까? 모든 것을 점령하려는 야욕의 정치가? 초능력자? 아니면 생각을 잃어가게 만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기운일까? 이데올로기, 파시즘, 군중심리 모든 것이 거대한 회오리 속에 엉켜버리고 만다.

하지만 이사카 코타로는 맺음글에서 "파시즘이나 헌법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것들은 주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품이나 장식품도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현대사회에 민주주의가 보편화되어있다는 착각 속에 여전히 잔존하는, 아니 어쩌면 기생적으로 발전했을지 모르는 파시즘이란 '생명체'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 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운, 명확한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엉터리라도 좋으니까 자신의 생각을 믿고 대결해 나간다면 세상은 바뀐다"란 책 속의 한 마디가 큰 여운을, 익숙하고도 새로운 깨달음을 남긴다. 나서서 행동하지 않더라도, 실천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잃지도 잊지도 말자. 그것이 마지막 남은 희망이고 민주주의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17. 08:30



이름 : 필립 라이더(기타) & 보디 존스(보컬)
나이 : 정확히 알 수 없음, 대신 결성일은 2006년 11월 15일
직업 : 어쿠스틱 듀오, 길거리 뮤지션, 프로 뮤지션 등등
만남 : Robson st. & Burrad st. Vancouver BC Canada


오늘의 주인공은 두 남자, 남자친구가 살짝 질투할지도 모르지만 한때 내게 큰 위로가 되주던 사람들이다. 말이나 글이 아니라 소리로 만난 사이라 감각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생김새보다는 그들이 만들어낸 공간과 시간, 그 안에서 만들어진 미세한 진동, 서늘한 기온과 같은 것들이 각인돼 머리도 마음도 아닌 신체의 감각들로 기억되는 것만 같다.   

고리타분한 비유이긴 하지만, 내게는 두 번째 홈타운이 있다. 바로 캐나다의 밴쿠버! 나는 그곳에서 1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눈치빠른 분들은 이미 "앗!"하셨겠지만 에디터 중 한 분 또한 그곳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정신없이 흘러갔던 한국에서의 삶과 달리 밴쿠버에서의 시간은 느릿느릿, 천-천히 흘러갔다. 덕분에 급하고 격했던 내 성격도 많이 여유로워졌다. 회색보다는 초록색, 파란색과 친해졌고, 소주보다는 맥주를 좋아하게 됐다.



무엇보다 난생처음 바닷가 근처에서 살게 됐다는 점에 매료됐다. 가장 좋아하는 해변은 다운타운에 위치한 English Bay 였는데, 무엇인가 마음에 동요가 일 때면 멍-하니 다운타운行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반짝이는 푸른색, 번져나가는 붉은색과 금색, 가끔은 어두운 검은색 바닷물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바다는 무척 가까웠다. 홈스테이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서 그랜빌 스트릿 사탕가게 앞에서 내리면, 가장 번화한 동네가 펼쳐진다. 물론 명동이나 가로수길, 홍대가 더 반짝거리지만 밴쿠버의 다운타운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습관처럼 찾던 곳, 후회하지 않으려고 자주 찾았지만 더 못 가본 것이 못내 아쉬운 곳. 어쩌면 내 기억 속의 그곳은 실제보다 더 아름다울지도 모르겠다. 늘 낯선 위로를 건네던 그 곳, 그 날도 아마 위로가 필요했던 날이었으리라.

분명 무엇인가 이유가 있었을텐데, 좋지 않은 일은 의식적으로 잊으려고 노력하는 탓에 기억이 흐릿하다. 아마도 홈스테이 룸메이트였던 태국 여자가 또 쌀쌀맞게 굴면서 떽떽댔겠지? "전화통화 할 때 좀 조용히 하면 안돼?" "아, 유치해! 한국 드라마는 다 이런 식이야?" "넌 아직도 teenager 같아" 어학연수 초기라 영어랑은 데면데면한 사이, 영어를 쓰면 과묵해지는 새로운 정체성을.. 아무튼 그랬던 시기라 나는 대꾸할 가치, 아니 능력이 없어서 또 무작정 버스를 탔다. 한국인이 유독 많은 이민자의 천국 밴쿠버라지만.. 외로움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어쩌면 나는 그때, 온전히 혼자라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온갖 사람들로 북적이는 다운타운,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 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Sears란 이름의 백화점 정문 앞은 무척 붐볐다.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나오고 들어가고- 그 정신없던 공간에서 딱 그 부분, 두 남자가 연주하고 노래하던 그 좁고 작은 네모난 공간에서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었다. 뭔가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형언할 수 없는 류의 그런 감정이었다. 다소 마른 체격의 두 백인 남자는 자신들을 '어쿠스틱 듀오'라고 소개했다. 이름은 '라이더 존스' 두 사람 앞에, 마치 입을 쫘-악 벌린듯 펼쳐진 채로 놓여진 기타 케이스에는 직접 녹음하고 앨범재킷까지 손수 만들었다는 CD가 가득했다. 10달러 정도였던가? 나는 그들의 공연이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보이는 공간에 쪼그리고 앉았다. 열명이 채 안되는 구경꾼들이 스쳐지나가고 오고를 반복하는 동안, 난 계속 거기에 있었다. 달팽이관 속을 빙글빙글 맴돌던 그의 목소리는 나의 조그만 몸 속에서 그만큼 조그마한 파동을 만들며 퍼져나갔다. 혼자 노래를 듣다가 우는건 꽤나 창피한 일이지만, 길거리에서라니- 찌질하기 그지없는 행동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도리가 없었던, 몇 안되는 순간 중 하나다. 


(Rider Jones - Short @YouTube)


그렇다고 그들에게 '찌질한 동양인 여자애'로 기억되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두 남자의 시선이 채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긴 했지만, 혼자 감내해야할 창피함의 무게가 너무도 컸기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내 쪽에서 애가 탔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할까, 자연스럽고 쿨하게, 그런데 한국어도 아닌 영어로? 난 애초에 쿨하고 대범한 사람이 못 되는데 대체 어떻게? 고민을 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기타리스트만 남아서 줄을 감고 다시 풀고, 조율을 하고 있었다.

"Hi" 그래, 가장 무난하다. "음, 보디 방금 화장실에 갔는데?" 그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대꾸했다. 아마도 보컬을 따르는 팬들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질투가 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뾰루퉁한 것도 아니고 심드렁했던 건 더더욱 아니다. 그냥 굉장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말투였으니까. "아니, 난 그냥 노래가 너무 좋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그제야 시선을 맞춘다. "오, 내가 더 고마워. 난 라이더야"라며 악수를 청한다. "근데 넌 어느 나라 사람이야? 맞추기 어렵다" 다짜고짜 출신을 묻는다. 동양인들끼리는 척 하면 척인데 외국인들은 구분이 안 되는가 보다. "난 한국인이야" "북쪽?" 갑자기 엄청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한다. 북한 개그라니, 서정적인 기타 리프와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웃기긴 웃겼다. 낄낄대고 있을 때, 후련한 표정으로 보컬이 돌아왔다. "어느 나라 사람이게, 맞춰봐" 라이더는 두서없이 말하기를 좋아하는 듯 했다. "일본?" 보컬인 보디의 양손에는 반지만 5개, 팔찌가 세개. "난 은지고, 한국인이야" 보디가 "hopefully.. 북쪽은 아니지?"라니까 겨우 웃음을 참은 라이더가 끄-윽끄-윽 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끼리끼리 노는 것 같네. "남한이고.. 앨범 하나 사도 되지?" "Sure!" 그렇게 그들과 만나고, 길거리 뮤지션의 길거리 팬이 되었다.


(Rider Jones - Wilde Awake @YouTube)

두 남자는 내가 앨범을 사갈 때마다 속지에 직접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고 나도 답례를 했다. 그림 속에 드러난 동양인이 본 서양인과 서양인이 본 동양인은 오히려 '그려진' 사람보다 '그린' 사람을 닮아 재미있었다. "이게 나라고? 옆집 사는 캐나다 여자겠지" 내가 빈정거릴 수 있을 만큼 영어실력이 향상됐을 때, 그들은 어린 여동생 대하듯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지 가까웠던 사이는 결코 아니었다. 나는 가끔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음표로 가득찬 그들의 머릿속에서 내 이름을 끄집어내려 노력해야 했고, 그들은 북한개그로 상징되는 나와의 첫 만남만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노래만 듣다가 자리를 떴고, 가끔씩만 용기를 내 소소한 대화를 나누었다. 
 


연수 기간 동안 나는 대학교에 소속된 어학당에 다녔다. 읽기, 쓰기, 말하기 수업이 따로 있었고 그 중 Lana 선생님의 말하기 수업이 무척 유쾌해 가장 좋아했다. 그 중에서 실질적으로 자주 쓰는 관용어구를 배우는 시간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자기가 잘 듣고 있다는 것을 "I'm all ears!"로 표현한다거나 favorite 스카이 라운지 이름인 "cloud 9"이 행복의 절정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습득하는 행위는 흥미롭고 행복했다. 여러 관용어구 중 제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shoulder to cry on", 말 그대로 "울고 싶을 때는 내가 어깨를 빌려줄게"의 그 어깨 말이다. 그리고 그 어깨가 두 남자의 노래 속에도 있었다. 실제로 그들의 노래 가사 속에 저 문구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라나의 통통한 입술 사이로 흘러나와 내 귓 속에 들어온 그 말이, 동그랗고 부드러운 리듬과 멜로디를 타고 다시 내게로 왔다.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때의 나에게 있어서는 왠지 운명처럼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Rider Jones - This is Goodbye @YouTube)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점점 밴쿠버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 가면서 그들과의 만남도 점차 줄어들어갔다. 많은 친구들이 생겼고 나는 그다지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됐다. 'shoulder to cry on'이란 문구에서 느꼈던 절박함이 사라진 만큼, '라이더 존스'란 이름의 넓이와 부피도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난 한국으로 돌아와있었다. 귀국 후 한동안은 큰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그 괴상한 외로움과 향수 속에 떠오른 단어가 바로 '라이더 존스'였다. 그리고 나는 마이스페이스나 유투브 등의 커뮤니티를 통해 다시 그들을 만났고, 또 한 번 위로를 얻었다.

그래서 오늘의 주인공이 그들이라는 것, 그들을 기억해냈다는 것은 과장을 좀 보태 의미심장한 일이다. 과도한 감상에 사로잡힐 상황에 놓였다는 경고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인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내 곁에는 'shoulder to cry on'이 무척 많다는 사실! 그때의 그 감정과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혹시 여러분 중에서, 고개를 내미는 조그마한 고독감이 영 거슬리는 분이 있다면 새롭고 낯선 노래가 듣고 싶다면 서툰 위로 대신 그들의 노래를 전하고 싶다. 거기에 내 추억까지 보태- 외로움이 혼자만의 몫이 아니란 사실이 더 큰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