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17. 08:30



이름 : 필립 라이더(기타) & 보디 존스(보컬)
나이 : 정확히 알 수 없음, 대신 결성일은 2006년 11월 15일
직업 : 어쿠스틱 듀오, 길거리 뮤지션, 프로 뮤지션 등등
만남 : Robson st. & Burrad st. Vancouver BC Canada


오늘의 주인공은 두 남자, 남자친구가 살짝 질투할지도 모르지만 한때 내게 큰 위로가 되주던 사람들이다. 말이나 글이 아니라 소리로 만난 사이라 감각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생김새보다는 그들이 만들어낸 공간과 시간, 그 안에서 만들어진 미세한 진동, 서늘한 기온과 같은 것들이 각인돼 머리도 마음도 아닌 신체의 감각들로 기억되는 것만 같다.   

고리타분한 비유이긴 하지만, 내게는 두 번째 홈타운이 있다. 바로 캐나다의 밴쿠버! 나는 그곳에서 1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눈치빠른 분들은 이미 "앗!"하셨겠지만 에디터 중 한 분 또한 그곳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정신없이 흘러갔던 한국에서의 삶과 달리 밴쿠버에서의 시간은 느릿느릿, 천-천히 흘러갔다. 덕분에 급하고 격했던 내 성격도 많이 여유로워졌다. 회색보다는 초록색, 파란색과 친해졌고, 소주보다는 맥주를 좋아하게 됐다.



무엇보다 난생처음 바닷가 근처에서 살게 됐다는 점에 매료됐다. 가장 좋아하는 해변은 다운타운에 위치한 English Bay 였는데, 무엇인가 마음에 동요가 일 때면 멍-하니 다운타운行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반짝이는 푸른색, 번져나가는 붉은색과 금색, 가끔은 어두운 검은색 바닷물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바다는 무척 가까웠다. 홈스테이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서 그랜빌 스트릿 사탕가게 앞에서 내리면, 가장 번화한 동네가 펼쳐진다. 물론 명동이나 가로수길, 홍대가 더 반짝거리지만 밴쿠버의 다운타운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습관처럼 찾던 곳, 후회하지 않으려고 자주 찾았지만 더 못 가본 것이 못내 아쉬운 곳. 어쩌면 내 기억 속의 그곳은 실제보다 더 아름다울지도 모르겠다. 늘 낯선 위로를 건네던 그 곳, 그 날도 아마 위로가 필요했던 날이었으리라.

분명 무엇인가 이유가 있었을텐데, 좋지 않은 일은 의식적으로 잊으려고 노력하는 탓에 기억이 흐릿하다. 아마도 홈스테이 룸메이트였던 태국 여자가 또 쌀쌀맞게 굴면서 떽떽댔겠지? "전화통화 할 때 좀 조용히 하면 안돼?" "아, 유치해! 한국 드라마는 다 이런 식이야?" "넌 아직도 teenager 같아" 어학연수 초기라 영어랑은 데면데면한 사이, 영어를 쓰면 과묵해지는 새로운 정체성을.. 아무튼 그랬던 시기라 나는 대꾸할 가치, 아니 능력이 없어서 또 무작정 버스를 탔다. 한국인이 유독 많은 이민자의 천국 밴쿠버라지만.. 외로움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어쩌면 나는 그때, 온전히 혼자라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온갖 사람들로 북적이는 다운타운,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 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Sears란 이름의 백화점 정문 앞은 무척 붐볐다.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나오고 들어가고- 그 정신없던 공간에서 딱 그 부분, 두 남자가 연주하고 노래하던 그 좁고 작은 네모난 공간에서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었다. 뭔가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형언할 수 없는 류의 그런 감정이었다. 다소 마른 체격의 두 백인 남자는 자신들을 '어쿠스틱 듀오'라고 소개했다. 이름은 '라이더 존스' 두 사람 앞에, 마치 입을 쫘-악 벌린듯 펼쳐진 채로 놓여진 기타 케이스에는 직접 녹음하고 앨범재킷까지 손수 만들었다는 CD가 가득했다. 10달러 정도였던가? 나는 그들의 공연이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보이는 공간에 쪼그리고 앉았다. 열명이 채 안되는 구경꾼들이 스쳐지나가고 오고를 반복하는 동안, 난 계속 거기에 있었다. 달팽이관 속을 빙글빙글 맴돌던 그의 목소리는 나의 조그만 몸 속에서 그만큼 조그마한 파동을 만들며 퍼져나갔다. 혼자 노래를 듣다가 우는건 꽤나 창피한 일이지만, 길거리에서라니- 찌질하기 그지없는 행동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도리가 없었던, 몇 안되는 순간 중 하나다. 


(Rider Jones - Short @YouTube)


그렇다고 그들에게 '찌질한 동양인 여자애'로 기억되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두 남자의 시선이 채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긴 했지만, 혼자 감내해야할 창피함의 무게가 너무도 컸기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내 쪽에서 애가 탔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할까, 자연스럽고 쿨하게, 그런데 한국어도 아닌 영어로? 난 애초에 쿨하고 대범한 사람이 못 되는데 대체 어떻게? 고민을 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기타리스트만 남아서 줄을 감고 다시 풀고, 조율을 하고 있었다.

"Hi" 그래, 가장 무난하다. "음, 보디 방금 화장실에 갔는데?" 그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대꾸했다. 아마도 보컬을 따르는 팬들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질투가 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뾰루퉁한 것도 아니고 심드렁했던 건 더더욱 아니다. 그냥 굉장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말투였으니까. "아니, 난 그냥 노래가 너무 좋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그제야 시선을 맞춘다. "오, 내가 더 고마워. 난 라이더야"라며 악수를 청한다. "근데 넌 어느 나라 사람이야? 맞추기 어렵다" 다짜고짜 출신을 묻는다. 동양인들끼리는 척 하면 척인데 외국인들은 구분이 안 되는가 보다. "난 한국인이야" "북쪽?" 갑자기 엄청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한다. 북한 개그라니, 서정적인 기타 리프와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웃기긴 웃겼다. 낄낄대고 있을 때, 후련한 표정으로 보컬이 돌아왔다. "어느 나라 사람이게, 맞춰봐" 라이더는 두서없이 말하기를 좋아하는 듯 했다. "일본?" 보컬인 보디의 양손에는 반지만 5개, 팔찌가 세개. "난 은지고, 한국인이야" 보디가 "hopefully.. 북쪽은 아니지?"라니까 겨우 웃음을 참은 라이더가 끄-윽끄-윽 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끼리끼리 노는 것 같네. "남한이고.. 앨범 하나 사도 되지?" "Sure!" 그렇게 그들과 만나고, 길거리 뮤지션의 길거리 팬이 되었다.


(Rider Jones - Wilde Awake @YouTube)

두 남자는 내가 앨범을 사갈 때마다 속지에 직접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고 나도 답례를 했다. 그림 속에 드러난 동양인이 본 서양인과 서양인이 본 동양인은 오히려 '그려진' 사람보다 '그린' 사람을 닮아 재미있었다. "이게 나라고? 옆집 사는 캐나다 여자겠지" 내가 빈정거릴 수 있을 만큼 영어실력이 향상됐을 때, 그들은 어린 여동생 대하듯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지 가까웠던 사이는 결코 아니었다. 나는 가끔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음표로 가득찬 그들의 머릿속에서 내 이름을 끄집어내려 노력해야 했고, 그들은 북한개그로 상징되는 나와의 첫 만남만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노래만 듣다가 자리를 떴고, 가끔씩만 용기를 내 소소한 대화를 나누었다. 
 


연수 기간 동안 나는 대학교에 소속된 어학당에 다녔다. 읽기, 쓰기, 말하기 수업이 따로 있었고 그 중 Lana 선생님의 말하기 수업이 무척 유쾌해 가장 좋아했다. 그 중에서 실질적으로 자주 쓰는 관용어구를 배우는 시간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자기가 잘 듣고 있다는 것을 "I'm all ears!"로 표현한다거나 favorite 스카이 라운지 이름인 "cloud 9"이 행복의 절정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습득하는 행위는 흥미롭고 행복했다. 여러 관용어구 중 제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shoulder to cry on", 말 그대로 "울고 싶을 때는 내가 어깨를 빌려줄게"의 그 어깨 말이다. 그리고 그 어깨가 두 남자의 노래 속에도 있었다. 실제로 그들의 노래 가사 속에 저 문구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라나의 통통한 입술 사이로 흘러나와 내 귓 속에 들어온 그 말이, 동그랗고 부드러운 리듬과 멜로디를 타고 다시 내게로 왔다.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때의 나에게 있어서는 왠지 운명처럼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Rider Jones - This is Goodbye @YouTube)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점점 밴쿠버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 가면서 그들과의 만남도 점차 줄어들어갔다. 많은 친구들이 생겼고 나는 그다지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됐다. 'shoulder to cry on'이란 문구에서 느꼈던 절박함이 사라진 만큼, '라이더 존스'란 이름의 넓이와 부피도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난 한국으로 돌아와있었다. 귀국 후 한동안은 큰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그 괴상한 외로움과 향수 속에 떠오른 단어가 바로 '라이더 존스'였다. 그리고 나는 마이스페이스나 유투브 등의 커뮤니티를 통해 다시 그들을 만났고, 또 한 번 위로를 얻었다.

그래서 오늘의 주인공이 그들이라는 것, 그들을 기억해냈다는 것은 과장을 좀 보태 의미심장한 일이다. 과도한 감상에 사로잡힐 상황에 놓였다는 경고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인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내 곁에는 'shoulder to cry on'이 무척 많다는 사실! 그때의 그 감정과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혹시 여러분 중에서, 고개를 내미는 조그마한 고독감이 영 거슬리는 분이 있다면 새롭고 낯선 노래가 듣고 싶다면 서툰 위로 대신 그들의 노래를 전하고 싶다. 거기에 내 추억까지 보태- 외로움이 혼자만의 몫이 아니란 사실이 더 큰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