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릉님의 포스팅입니다. http://libertyanddiversity.tistory.com/entry/예비-대학생에게-당부하고-싶은-것
요기에 댓글을 열심히 달아주셨던 쥬빌리님께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쥬빌리님께 가장 드리고픈 말이지만, 다른 분들도 들어주시고 보충하거나 반박해주시면 더욱 좋겠기에 따로 포스팅을 해 봅니다.
댓글로 논의하기에는 불편한 부분도 있고, 또 댓글로 하면 너무 길어져 읽기 불편하실 것 같아서 이렇게 포스팅 올립니다. ㅎㅎ 그런데 사실 쥬빌리님이 말씀하고 싶어하시는 포인트를 지금 잘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아서 제가 옳게 답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ㅠ_ㅠ 괜히 제 입장만 또 반복하고 있는건 아닐지 걱정인데요; 일단 저는 우리가 인문학의 가치에 대해 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답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인문학을 신선놀음이라 생각하는 것은 사실도 아니며 위험하다는 것이 제가 해명하고픈 바이구요.
우선 인문학을 신선놀음이라고 표현하신 이유에 대해서는 잘 읽었습니다. 제가 파악하기로는 그게 생계유지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경제적 자살)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아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유복한 집안의 자제이거나 생계를 내팽개쳐야만 할 수 있다는 말에서는 제가 권한 내용에 대해 오해하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대로 깊이 전공을 하겠다면야 어렵겠지만, 모두가 전공자 수준으로 인문학을 공부할 필요는 사실 없거든요. 아마 "인문학을 한다"라는 말의 의미가 서로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제 말은 '생계를 팽개치고 인문학을 깊이 전공하라'는 뜻이 아니라 '무슨 일은 하든지 인문학적 마인드를 키우라'는 뜻이었어요. 사실 대학생 시절이 그러기에 가장 좋은 때고요.
또한 애초에 제가 경계하고 싶었던 부분은 '신선놀음'이라는 표현이 주는 부정적 뉘앙스였습니다. 신선놀음은 아무 근심걱정 없이 즐겁고 평안하게 지낸다는 뜻으로 필수적인 게 아니라 '유희'에 가까운 행동을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표현 아니겠습니까? 경제적으로 걱정 없는 사람이어야 하기 쉬운 학문이라고 해서, 그것 자체가 즐겁고 평안하게 지내는 일은 결코 아니라는 거지요. 단지 유희도 아니고요. 인간의 본질과 더 나은 인간과 현실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 필요한 사유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그러니까 현실에 없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뜻이지요. 인문학이 돈벌이로 직결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세상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하기 쉬운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걸 해야 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생각도 역시 위험하고요. 누구나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 모두가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이죠. 민주주의 사회에서 내 눈 앞의 이익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더 바람직한 것을 선택하려면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서는 힘듭니다.
물론 취업에 직결되지 않는 학문이라는 점은 사실이고, 많은 인문학도의 고민입니다. 열정이 있어도 마음놓고 그 공부를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은 안타깝지요.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 관련 진로를 기피한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으로서는 그렇게 선택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하지만 앞서 말한 이유 때문에 우리가 인문학 자체를 기피하게 되면 안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걸 선택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걸 해야한다는 생각도 안하는 건 옳지 않다는 뜻입니다. 저는 "행동하지 못할바엔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의미없다"고는 생각 안해요. 생각이라도 하고 있어야 아주 조금의 행동으로라도 이어지지 않겠어요?(물론 생각에 그치기 보다는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훨씬 더 좋지만요)
그리고 인문학이 이미 결정된 무언가를 그저 전달하려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본적인 공부들은 물론 정해져 있는 것들을 배우지만 제 생각에 그건 사유의 틀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감을 잡기 위해 배우는 기초공사지 인문학의 본질도 궁극적 목적도 아니에요. 만약 이미 결정된 것들을 전달하려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기존의 인문학자들이 부유했다는 점이 부정적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요. 현실적인 고통 없이 나온 생각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일테니까요.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도 한 가지 사유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는거구요.
그리고 제가 하는 말이 경험에서 나온 말인걸까 궁금하신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오해 없기를, 저도 직업 전선에 나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제가 저의 생계를 온전히 책임져 보았다는 뜻이지요. 그런 사람으로서 짧게나마 경험한 사회는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적정한 수입에 안정된 직장이 물론 중요했습니다. 직업 전선에 나가기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가 본 후에는 더욱 그게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에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픈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자기 앞가림을 하라는 말씀은 백번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죄다 철없는 짓이라는 말에는 전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은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가치를 존중하되,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 드린 것 기억하시죠? 생계 유지도 하고, 가치에 대한 고민도 해야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를 다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렇기에 더욱 만약 인문학은 그저 신선놀음,이라고 생각하면 그쪽에는 손이 가지 않을 것 아닙니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거나 그걸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그게 사실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을 안하시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또 답 주신 내용 중에서 고전을 읽는 것보다 현실적 삶에 집중하라고 권한다고 하셨지요? 저도 경험에서 얻는 깨달음이 얼마나 생생하고 힘을 가지는지 느꼈기 때문에 현실적 삶이 주는 교훈을 무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지만 고전을 읽는 것이 주는 교훈은 또 다른 차원의 것이지요. 인용하신 '지하로부터의 수기'같은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으려면 참 험난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계몽과 이성의 우상화, 이상화에 대한 고발을 고민하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질 수 있는 잔혹성에 대해 자각하는 것이 왜 나쁘지요? 그게 인간이라는 존재가 선하고 아름답다는 환상을 깨어서 충분히 가슴 아프고 괴로울 수는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은 엄연히 사실이고, 그 부분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게 인간 본질의 전부도 결코 아니지 않겠습니까? 거기서부터 또 새롭게 해야하는 고민과 과제가 주어지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우리를 더 좋은 인간이 되도록 단련시켜 줄 것입니다. 쥬빌리님이 찾고자 하는 절대적 진리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혹은 그것을 찾고 싶어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더 좋은 인간이 되고, 인간이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한 고민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인문학이 행동을 요청한다고 하신 말씀이 참 훌륭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행동을 하려고 계획하시는 건 더 훌륭하시고요. 사복을 전공해야겠다는 생각도 저는 정말 훌륭한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무엇을 향해 행동할지 모르고 행동하는 건 위험하다 생각합니다. 물론 쥬빌리님이 무엇을 향해 행동할지 모른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이 앞으로도 영원하진 않을 가능성은 꽤 높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고민의 과정이 수반되겠지요. 무엇을 행동할지 알기 위해서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걸 도와주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동의 의지를 가지신 쥬빌리님이 어떤 것을 향해 행동을 하면 좋을지도 반드시 고민하셨으면 좋겠다는 뜻이고요.
지난번 댓글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을 잘 전달 못한 것 같다보니 말이 길어졌네요. 무엇보다도 조금 더 나이많은 사람의 훈계처럼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제가 그럴 입장도 아니고요. 제 생각도 완성되지 않은 생각이고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옳은 말도 아닐 겁니다. 다만 쥬빌리님과 좀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서 말씀드렸고, 혹은 다르다고 오해한 부분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래도 만약 다른 생각이었던 게 사실이라면 그게 우리 서로에게 자기를 돌아볼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쥬빌리님의 댓글에 해명도 하고 의문도 던져보았습니다. 제 답에 대해 또 답을 해 주신다면 그것도 반가울 것이고, 읽고서 한번 생각만 더 해 주신대도 충분하겠습니다.
앞으로 쥬빌리님의 대학생활이 알차게 채워지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
'그렇고 그런 사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훈석, <Manhwa in the Gallery>에 다녀왔습니다. (4) | 2011.11.06 |
---|---|
첫사랑 이야기 (14) | 2011.11.01 |
대한민국의 모든 아마야구 선수들에게. (4) | 2011.10.31 |
"This song is a bassist's dream!" - 베이스 리프가 인상적인 노래들을 소개합니다. (5) | 2011.10.29 |
훈석, <2011 디자인코리아>에 다녀왔습니다. (6) | 2011.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