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7. 08:30
갈팡질팡하다가내이럴줄알았지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이기호 (문학동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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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나쁜 소설이지만, 갈팡질팡 하지말고 어서 읽으세요!


 * What's the story?
이기호란 흥미로운 작가가 풀어놓는 여덟편의 짧은 이야기가 수록돼있다. 최면에 걸린 청자가 여관방에서 콜걸에게 소설을 읽어준다는 독특한 설정의 '나쁜 소설 - 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로 시작해, 흙을 먹는 이가 소개해주는 친절한 레시피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을 지나,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로 폐허가 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교보문고를 뒤덮은 시멘트 벽을 곡괭이로 뚫어나가는 작가의 이야기인 '수인'까지 참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들, 이기호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기이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 My story is..
가끔 전적으로 작가를 보고 책을 고를 때가 있다. 이기호는 그런 면에서 무척이나 믿음직스런(?) 작가다. (출간일과는 무관한 순서로) '최순덕 성령충만기'와 '사과는 잘해요'를 먼저 읽은 나는 어느새 검색 키워드로 '이기호'를 타이핑하고 있었다.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만한 스타일이지만, 어쨌든 나는 '호호호호호호'니까 좋다! 무엇보다도 책읽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도 쉽게 쉽게, 술술 넘어갈 책이라서 더욱 좋다.


이 책의 저자, 이기호! 72년생이며 강원도 원주 출신이다. 와우! (난 지역감정과는 무관한 사람이지만, 강원도 사람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척 좋아한다) 1999년 단편소설 '버니'로 데뷔, 2004년 첫번째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2006년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2009년 '사과는 잘해요'를 출간했다. 특유의 문체와 독특한 설정으로 인해 종종 박민규, 성석제와 비교된다. 두 작가와 마찬가지로 이기호도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이야기 자체에 몰입하게 만드는 마성의 작가다.

표제작인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는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을, 저 제목은 바로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허구헌 날 린치를 당하는 찌질한 소년이 주인공인데, 선배고 깡패고 동네북처럼 맞지만 그래도 쎄-보이고 싶은 참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캐릭터다. 소년은 얻어터지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쩐지 그 상관관계가 우습고도 슬프고도 재미있다.

 "쓰다보면 간간이 얼굴이 홧홧해기도 했지만, 지난번처럼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이건 그래도 무언가 내 의지라는 것이, 비록 조금은 갈팡질팡했지만, 조금은 숨어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쓰는 것 자체도 계속 갈팡질팡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우연은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글이라는 것이 원래 그러니.... 하고 내 마음을 다독거리기까지 했다. 순전히 내 좋을 대로, 내 맘대로."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p.294)

어디까지가 fact고 어디까지가 fiction인지 모호하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그것은 이 단편집 전체를 아우르는 매력이기도 하고. 이 단편에서 나는 '글쓰기'란 행위를 하는 행위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됐다.

나는 꽤 오랫동안 글을 읽고 써왔던 사람이자 불량 국문학도로서 '글쓰기'란 것에 대한 복잡미묘한 애증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과연 계속 써야할까, 제대로 쓰고 있는 것인가, 잘 쓰고 있나 같은 생각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뇌리를 스쳤고, 그러다가도 다시 글로 돌아오는 이상한 '밀땅'을 즐겨왔다. 그래서인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수인'이다.

앞서 설명한 바 있지만, '수인'은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고 난 후 아수라장이 된 세상이 그 배경이다. 지금 다시 읽으면, 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가 떠오르며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픽션이라고 생각했던 설정이, 지금은 너무도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편 주인공은 소설가다. 그가 교보문고를 뒤덮은 25m 두께의 시멘트를 향해 곡괭이질을 하는 이유는 그 자신이 소설가임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신경을 오직 시멘트벽에 집중하려 애썼다. 또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는 곡괭이를 내리칠 땐 오직 곡괭이 생각만 했다. 그 자신이 마치 곡괭이의 날이 되고, 곡괭이의 자루가 된 것처럼, 곡괭이와 한 몸을 이뤄, 온몸으로 벽에 부딪쳤다. 예상보다 더 큰 시멘트 조각이 벽에서 떨어져나왔을 때,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 순가 그에겐 나라가 망했다는 사실도, 자신이 소설가였다는 생각도, 모두 의미 없는 것들로 다가왔다. 그는 때때로 자신이 왜 벽을 파내려가고 있는지, 자신이 왜 여기 서 있는지조차, 스스로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모두 곡괭이와 벽에 내준 것이었다. 그렇게 그 시간을 견딘 것이었다." (수인 p.220)


작가는 끊임없이 '의지'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글쓰기란 행위는 전적으로 '의지'에 의지하고 있다. 그것이 선명하든 희미하든, 의지란 것이 존재하는 한 말이다. 작은 곡괭이 하나로 두터운 시멘트 벽을 뚫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가 될까? 그 두꺼운 벽이 지닌 함의는 독자의 의지에 따라 수백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넘기 힘든 등단의 벽이 될 수도 있고, 자유로운 글쓰기를 막아버리는 온갖 구질구질한 현실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이 괴상한 단편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하는 독자의 고충을 형상화한 것일 가능성도 있겠다.

이기호의 소설은 유쾌하고 위트있는 문체로 슬프고 씁쓸하며 외로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무명의 소설가라든가 찌질한 소년 같은 루저 이미지의 캐릭터, 혹은 정말 평범한 우리네 이웃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말이다. 그대신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동시에 고약한 스릴을 불러일으키는 악당은..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더더욱 정감이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단편집에는 작가로서 이기호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어, '아, 이 사람이 이런 작가구나'란 깨달음도 간간히 얻게 된다. (특히 첫번째 소설에는 머리를 망치로 가격당한 것 마냥 ''띵-'하는, 낚인 느낌마저 들지만, 그는 독자와 무척 가까운 작가임에 틀림없다)
 
갈팡질팡하다가 거의 망친 리뷰를 마치며, 이 멋진 책을 집필해낸 작가의 말로 피날레를 장식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망삘(?)이 강한 이 리뷰도 제법 괜찮은 엔딩을 맞이하겠지? 아무래도 그쪽이 더 좋은 엔딩일 것 같다.

미안합니다.
이번엔 작정하고 '내' 이야기들을 좀 써보았습니다.
다음부턴 그러지 않겠습니다.

소설이 잘 써지지 않을 때마다
내가 중얼거리는 말이 있습니다.

겁 많은 두 눈아, 겁내지 마라.
부지런한 네 두 손이 다 알아서 해줄 테니.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이 말이,
당신에게는 미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곧 인류평화를 위해 장가를 갑니다.
인류평화를 위해 기꺼이 한 몸 희생해준 여자친구에게,
전(全) 인류를 대신해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평화로워진 지구에서, 또 만납시다.

- 이기호, 소설가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