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16. 22:49
도가니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공지영 (창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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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진실과 마주하지 않고는 어른이 될 수 없다
* My story is...
언젠가부터 책은 인터넷을 통해 구입했다. 세일 폭이 넓기도 하고 복작복작한 서점을 피해 여유롭게 고를 수 있는 데다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리뷰나 추천평을 참고할 수도 있어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대신 잡지를 사러가거나 기대되는 신간을 직접 보거나 만지고(?) 싶을 때는 한적한 동네서점으로 향했다.

2009년 여름, 나는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정류장에서 내려 바로 서점으로 들어가 신간코너에 섰다. 그리고 공지영,이란 작가의 이름만 보고 책을 집어들었다. 어떤 사전정보도 없이 너무나 충동적으로 책을 구입했던, 참으로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만약 대충이라도 줄거리를 알았다면, 어쩌면 난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학대당하는 이야기는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처음부터 책장을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모른 채, '도가니'의 첫 장을 넘겼고..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읽는 동안은 분노와 두려움에 휩싸였고 읽은 후에는 정말 실화인지 검색을 해봤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덕분에 아주아주 오랫동안, 불쾌한 기분은 지속됐다.


* What's the story
이야기의 배경은 무진에 있는 청각장애인 학교인 '자애학원'이다. 주인공 강인호는 이곳의 기간제교사로 근무하게 되는데, 아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그는 부임 첫 날 듣게 된 비명소리를 계기로 자애학원의 아이들을 옥죄고 있는 거대한 폭력의 실체에 가까워져 간다. 폭력성을 내재한 권력, 그것은 온전히 '가진 자'들의 것이었고, 현실은 안개가 자욱한 무진처럼 진실을 가리고 지운다.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도가니, 165p)




강인호는 대학선배, 무진인권운동센터의 간사인 서유진을 비롯해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자애학원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폭력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교육청과 경찰서는 물론이고 교회, 시청까지 온갖 기득권 계층에 의해 다시 한 번 짓밟히고 만다. 자애학원의 이야기는 숨막히는 무진의 안개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만 있는 도가니 같다. 아이들은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채 시들어간다.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에너지의 두 배라고 한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를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거짓말의 합창은 그러니까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어서 맑은 하늘에 천둥과 번개를 부를 정도의 힘을 충분히 가진 것이었다. (도가니, 246p)

 


공고한 기득권 층에 의해 묶이고 파묻힌 진실, 피흘리는 사람들.. 2010년에 개봉된 영화이자 웹툰(원작)이기도 했던 '이끼'가 떠오르기도 했다. 가진 자들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가지고자 한다. 자애학원이란 작은 공간은 결국 우리네 사회의 축소판인 것이다.

맨 처음 이 소설이 영화화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큰 충격이기도 했다. 실제 사건의 피해자들, 또 그들을 연기할 아이들도 염려됐고, 상업적인 시각으로 그려진 작품이 될까봐 걱정이 앞섰다. 2년만에 다시 마주할 진실, 내 자신은 부끄럽기만 해서..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도가니' 개봉은 이번달 22일. 내 걱정은 과한 노파심에,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다고 비웃기라도 하듯이- 용감한 영화로 와주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진실을 향해 자욱한 안개를 헤치고 걸어나오는, 그들의 용기를 만나고 싶다. 어른이 되고 싶다.

(영화 '도가니' 예고편)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