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28. 10:10
완득이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려령 (창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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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작은 하루가 모여 큰 하루가 된다 (완득이 曰)

* My story is...
나는 청소년 문학을 좋아한다. 다수의 한국 소설(성인소설이라고 하면 어감이 좀..)이 다소 건조한 맛이 있는데 청소년 문학은 그 나이에 맞는 온기, 열기가 있어 읽는이까지 힘이 솟게 만든다. 청소년소설 '완득이'는 베스트셀러다. 읽고나니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다는 점이 무지 맘에 들었다. 단지 재미만 있는 소설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문제를 차곡차곡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알고 있지만 깊이 생각해본적 없는 문제, 쉽게 볼 수 있지만 눈여겨 보지 않으려고 했던 문제.. '완득이'는 도시빈민, 이주노동자, 장애인까지 우리네 사회문제를, 너무 어렵고 어둡지 않게 그려내 기특하고 감사한 책이다. 


소설 '완득이'는 영화화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아인, 김윤석 주연이며 한참 시사회 중이다. 원작자인 김려령 작가는 "싱크로율 100%"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고 하는데, 더더욱 기대가 된다. 그러고보니 '도가니'에 이어 충무로가 사랑한 소설 시리즈가 되고 있는 기분이다. 충무로 사람들이 다 서점으로 갔나?ㅋ 영화화에 앞서 '완득이'는 연극으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얻었었다. 뭐, 연극은 연극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좋을 것 같아서 보고 싶다.


* What's the story
완득이는 난쟁이 아버지와 베트남 이주 노동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결핍, 그렇다고 기죽을 완득이가 아니다. 모든 일에 꾸밈이 없다는 점이 완득이의 매력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묵직한 진심이 느껴지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가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으로 그를 본다. 참 사랑스럽다.


완득이 주변 인물들도 하나같이 특별하다. 난쟁이라고 놀림당하면서 카바레에서 바람잡이로 춤추는 아버지, (친삼촌은 아니지만) 정신연령이 낮아 말을 더듬는 민구삼촌, 그리고 독자들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담임선생님 '똥주'! 학생들을 약올리고 괴롭히는 재미로 학교에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혹은 경험했던 담임선생님과는 거리가 안드로메다인 캐릭터다. 조폭담임이라니 말 다 했다. (위 사진의 시커먼 남정네들이 바로 그들이다. 캐스팅 한번 그레이트 하구먼!)

"삼촌 혼자가도 되겠어요?"
"혼자 있어봐야지."
"장에는 이제 혼자 가시겠네요."
"그래야지."
"민구 삼촌을 그렇게 보내면...... 멀쩡한 사람도 아닌 정신지체 장애...."
장애라는 말에 아버지 어깨가 잠시 흔들렸다.

사람한테는 죽을 때까지 적응안되는 말이 있다. 들을수록 더 듣기 싫고 미치도록 적응 안되는 말 말이다. 한두 번 들어본 말도 아닌데, 하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가슴을 치는 말은 한 번 두 번 세 번이 쌓여 뭉텅이로 가슴을 짓누른다.

"난쟁이다, 난쟁이!"

그냥 봐도 다 아는데 굳이 확인사살을 하는 사람들....  (완득이, 196p)
 
완득이의 가족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약자'다. 이 소설은 꾸미지 않고, 담백하게, 하지만 사랑을 담은 시선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연민도 죄송스러워지는 건강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 앞에 내 자신이 창피해진다.
 


성장소설에 달달한 관계가 빠지면 섭하다. 완득이의 짝은 바로 소위 '엄친딸' 캐릭터에 가까운, 즉 등수가 전교에서 놀고 좀 사는 집 딸인 '윤하'다. 윤하는 완득이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그렇게 두 아이들은 열일곱다운 첫사랑의 간질간질함을 나누게 된다. 어쩌면 이 관계는 많은 여자애들(정말 10대 소녀들을 의미)의 로망이 아닌가 싶다. (살짝 평강공주 컴플렉스인가?ㅋ) 

 
반항아라면 반항아인 완득이를 변화시킨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바로 킥복싱! 잘하는 것은 싸움밖에 없다던 완득이는 맞고 채이고 밟히면서 성장한다. 피하거나 쫄거나 하지 않고 툭툭 털며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왔다! 내 페인트 모션에 관장님이 주춤했다. 나는 디딤발이 흔들리지 않게 엄지발가락에 체중을 실었다. 무릎에 회전을 가해 복부에 쑤셔 넣기만 하면 게임 끝이다. 그런데 내 무릎이 회전하기도 전에 관장님이 회전했다. 내 킥은 허공을 걷어찻고 그 바람에 디딤 발이 휘청했다. 그리고 관장님의 로우 킥이 들어왔다. 360도 회전 로우 킥이다. 허벅지가 끊어질 것 같다. 나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서둘러 일어서려는데 다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허벅지를 맞고 숨통이 막히기는 처음이다. 그때, 내 얼굴 앞으로 하얀 수건이 덜어졌다. 정윤하다. 지가 왜 수건을 던지고 난리야.
"괜찮아?"
"놔!"
안 괜찮고 쪽팔리다. 그리고 열 받는다. 능구렁이 관장님은 도대체 언제 수련을 했기에 이렇게 강한 로우 킥이 가능한지. 나는 엎드린 채 이마를 바닥에 박았다.
"잘했어. 너 이긴 거야."
관장님이 글러브를 벗으며 말했다. 어이가 없다.
"지러 가는 시합이니까, 미리 지는 연습 한번 한 거야. 그러니까 넌 이긴 거고."
관장님은 껄껄 웃으면서 링 아래로 내려갔다.
똥주네 집인지 교회인지 가서 관장님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 곧 올 것 같다. 나는 이번 대회에서 반드시 이긴다. (164-165p)

완득이는 원래 싸움을 싫어한다.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놀리지만 않았다면 싸우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니까. "상대가 말로 내 가슴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렸고, 나도 똑같이 말로 건드릴 자신이 없어 손으로 발로 건드렸을 뿐이다. 상처가 아물면 상대는 다시 뛰어다녔지만 나는 가슴에 뜨거운 말이 쌓이고 쌓였다. 이긴다고 다 이기는 게 아니라고? 이겨야 이기는 거지."라고 말하는 그의 덤덤한 슬픔이 전해져 나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소설은 특별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시니컬한 유머를 툭툭 내뱉기도 하고, 일그러져 있지만 왠지 웃고 있는 것 같은 표정들. 책장을 넘기며 피식피식 웃다가 어느새 눈물이 툭 터져버리고 만다. 편하게만, 배우는대로만, 받은대로만 살아온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할, '세상에 넘어지고 부딪혀 얻어낸 희망'이 느껴져, 더더욱 값진 소설이다. 우리의 열일곱에게 이 소설을 추천해주고 싶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