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27. 08:00


(오늘 포스팅은 매우 주관적인 내용입니다)


 

 '가치관'이란 "가치에 대한 관점. 인간이 자신을 포함한 세계나 그 속의 사상에 대하여 가지는 평가의 근본적 태도"라고 합니다.(from daum 국어사전) 그렇습니다. 가치관이란 세계에 대한 평가기준이자, 관점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으므로 그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는 상당부분이 가치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가치관은 곧 그 사람 정체성의 일부이자 삶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가치관들이 존재하며,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전의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린 일 있지만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상대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가치는 존중받아야 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의견차이로 대화를 나누다가 ‘그건 너와 나의 가치관의 차이야’라며 더 이상 이야기를 전개시키지 않기도 합니다. 종교나 정치문제로는 싸우는 게 아니라고들 하는데 그것은 결국 그것이 가치관의 문제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가치관의 문제’가 ‘함께 살아가는 문제’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현실세계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자연히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서로 다른 ‘가치관의 문제’가 ‘함께 살아가는 일’에 문제를 발생시킬 경우, ‘그건 가치관의 문제야’라는 일종의 판단보류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 것일까요?


 

 제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연애’라는 ‘관계’가 ‘함께 살아가는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연애에서 가치관의 차이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너무나 많습니다. 연애를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사람은 가치관이 한 인간에게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이며 이미 형성된 각자의 가치관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서로를 힘들게 할 수 있는지도 느끼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바꿀 필요 없이 처음부터 '나와 잘 맞는'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생각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람은 자기 한계만큼 타인과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맞춰가기 위해 써야하는 에너지가 적게 들수록 관계를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에 도달할 가능성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만나다가 그런 가치관의 차이에 부딪쳤을 때 ‘이건 가치관의 문제’라며 그냥 관계를 정리해버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관계라는 것이, 이미 나에게 잘 맞도록 정해진 것을 찾는 것이 전부라면, 관계가 힘들어지면 그냥 그만두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자기의 한계를 넘는 힘든 관계를 질질 끌면서 고통 받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자기 마음의 한계를 무시하고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자기 한계만큼 사랑하게 되어있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분명히 우리가 해야 하는 ‘노력’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노력’이 ‘관계’ 그 자체라고까지도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가치관의 차이 문제에서 필요한 노력은 어떤 것일까요? 서로 다른 가치는 존중되어야 하므로 한 쪽의 가치를 다른 쪽의 가치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가치관을 결코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바뀔 수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만 보통 잘 바뀌지 않으니까요.) 제 생각에 그 노력은 우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치관의 차이는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져볼 수’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그런 의미에서는 ‘더 이상 대화할 게 없는 문제’이겠으나 그래서 모든 대화가 중단된다면, 간과하고 있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문제’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살아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관계에서 해야 하는 노력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는 오히려 많은 대화와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대화는 서로의 가치관을 바꾸거나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힘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 함께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가치관의 문제’역시 바뀌기 어려운 것이나, 바뀌지 않는 것도, 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도 아니므로(내가 현재 지닌 가치관이 완전무결한 것은 아닐 테니까요) 대화(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무언가를 토론의 대상으로 삼을 때 목적은 성찰이지 이기고 지는 맹목적인 설득이 아닙니다.)


 

  결국 ‘가치관의 문제’는 판단 보류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함께 살아가는 문제’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요지입니다.  이건 우리 생각이 서로 다른거니까, 어떻게 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평생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는 어울려 살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는 말은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가치관의 문제는 해결이 어려우니까요. 그런 노력 후에도 결국 함께하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이 날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꽤나 높습니다. '양보할 수 없는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도, 계란으로 바위를 쳐야 할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그런 때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지프스가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바위처럼 다시 떨어질 줄 알아도 밀고 올라가는, 결코 효율적이지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잘 되지 않을 줄 알아도 끝까지 잘 되도록 노력해주는 마음. 사랑이 뭔지 말하기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결과에 관계없이 그런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닐까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가장 보통의 존재 > 화요일, 나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 트위터 특집  (2) 2011.10.11
휴재 공고  (13) 2011.10.04
#10. 대답1  (6) 2011.09.20
#9. 질문 1  (20) 2011.09.13
#8. 외모는 예선전  (11) 2011.09.0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