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2. 08:30


















0.

특집이라고 제목을 다니 왠지 무한도전 같기도 하고 꽤 거창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만 사실 그냥 소개글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만화 리뷰 틈틈이 곤 사토시 감독의 대표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1.

 '퍼펙트 블루'는 '동경대부',''파프리카','천년여우'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곤 사토시今敏가 1998년에 발표한 첫 연출작입니다. 1963년에 태어난 곤 사토시 감독은 췌장암과 싸우다 2010년 8월 숨을 거두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작품 성향은 크게 다르지만, 일본 대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미야자키 감독의 뒤를 이을 인재로 주목받고 있던 그였기에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이가 많았다고 합니다.







곤 사토시 감독의 사진.
인터넷을 통해 그가 생전에 직접 쓴 투병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투병의 고통을 담담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은 그의 일기를 보면
이러한 위트와 재능이 훌륭한 작품으로 세상에 나올 기회를 잃은 것이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퍼펙트 블루'는 편안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남자분이든 여자분이든, 갖가지 형태로 여성의 신체를 소비하며 살고 있는 우리 모두라면 말이에요. 특히 여성분이라면 주인공 미마의 고통이 자신의 일처럼 생생히 느껴져서 영화를 보는내내 더 괴로우실 수 있습니다. 아이돌 가수에서 배우로 전업한 주인공이 겪는 원치 않은 고통과 울분..폭력.. 이런 것들이 시각화된 이 영화를 보고나면 우리 사회가 뜯어버린 비닐 포장지와 리본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장처럼 느껴지거나, 그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어쨌든 잔혹한 폭력 묘사때문에 데이트 영화로는 빵점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봐서도 안됩니다. 그냥 방에서 혼자 조용히 보세요. 공포감 증폭을 원하시면 불도 꺼놓고.







4. 

이야기는 여성 아이돌 그룹 '챰'의 공연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3인조 언더그라운드 아이돌(일본엔 아이돌도 이런 형태로 활동하나봐요)그룹인 '챰'에서 가장 인기 많은 멤버인 주인공 '미마'는 소속사의 결정으로 앞으로 아이돌 활동을 중단하고 배우로 데뷔하게 됩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대로 그룹 활동을 계속 하구요. 소속사의 명령도 있고, 배우를 꿈꾸어 시골에서 도쿄로 홀로 상경한 미마이기에, 그녀는 군말없이 그 결정을 따르기로 합니다.

배우로의 전업이 미마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만큼, 미마의 불안감은 물론이고 챰의 골수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됩니다. 하지만 배우 활동을 하는 것이 아이돌 활동보다 연예인으로서의 긴 수명을 보장받는 길이기 때문에 미마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역할부터 착실히 연기해갑니다.

추리 연속극 '더블 바운드'에서 범죄 피해자의 여동생 역할을 맡은 미마. 그런데 드라마 제작사 측은 미마의 소속사에 그녀가 성폭행 장면을 연기하길 바란다고 통보합니다. 게다가 소속사에서는 미마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높은 수위의 누드집을 발간하기로 하구요. 힘없는 신인 연기자일뿐인 미마는 촬영 관계자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억지로 이 두 가지 촬영을 소화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구요.
 
2인조 그룹으로 안정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나머지 멤버들을 보며 아이돌 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젖는 것도 잠시, 미마는 자신을 몰래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음을 감지합니다. '미마의 방'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마치 미마 자신인양 일기를 게재하고 있는 이름모를 이가 있음을 알아차린거죠. "아~ 오늘 촬영은 정말 하기 싫었어. 하지만 주변에 폐를 끼칠 순 없으니 할 수 없지" 홈페이지의 주인은 미마가 어떤 촬영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마치 머릿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생생하게 일기에 옮겨 놓았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있다는 공포감을 달랠 여유도 없이 이제 미마의 주변 사람이 하나하나 참혹하게 살해되기 시작합니다. 미마에게 싫은 일을 일방적으로 강요했던 소속사의 사장, 미마의 누드집에 실린 사진을 촬영한 (모델을 괴롭히며 촬영하기로 유명한) 유명 사진작가.. 그들이 수차례 흉기에 찔려 참혹하게 살해된 다음, 이제 미마 본인까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미마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이제 그녀의 생명을 위협하려는 그는 대체 누구일까요?












미마를 괴롭히는 건 그녀 자신이기도 합니다.









5. 

작품은 미마가 배우로 데뷔하고 나서 느꼈을 정체성의 혼란을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미마가 촬영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장면과 현실의 장면을 교차시켜 마치 미마의 인격이 여러갈래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수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송곳을 든 살인마의 모자가 벗겨지고 미마의 얼굴이 나타날 때에는 미마에게 자신도 모르는 다른 자아가 생겨 살인을 저지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으면 스토커가 미마인지 미마가 스토커인지.. 살인자인지 헛갈리게 되기 쉽지요. 영화 후반부의 반전을 보기 전까진 관객들은 미마가 새로운 생활에 따른 스트레스로 다중인격장애를 앓게 된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정말 그랬을수도 있죠. 어....? 하지만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음침한 생김새의 스토커는 이 영화의 트릭이 단순히 미마의 정신적 혼란으로 설명되지 않을 것이란 걸 관객들에게 넌지시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의 결말에 대해 쉽게 단정짓지 못하고 끝까지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지요. 마지막에 (스포일러 주의! 반전을 알고 싶은 분은 오른쪽을 드래그하세요.)미마의 매니저가 두 명의 스토커 중 한명이었다 라는 것이 명확해진 순간 관객들이 받은 충격은 상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도 입이 딱 벌어졌으니까요. 정체성의 혼란은 이 영화의 주된 주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러한 알쏭달쏭한 트릭은 이를 표현하기에 효과적인 것이 아니었나 합니다.  










   




무대에서 춤추는 미마를 보며 그녀를 자기 손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해보는 스토커.
이 사람은 항상 미마의 주변을 맴돌며 미마를 지켜봅니다. 









6.

이야기는 미마를 둘러싼 의문이 해소되고, 미마 역시 살인사건의 종결 이후 배우로서의 자신을 찾은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고 해서 그녀가 앞으로의 배우 생활에서 상품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에 혼란을 느끼고 갈등하는 일이 전혀 없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또 스포일러가!!)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인양 홈페이지를 꾸민 것이 그녀의 매니저였다는 것이 밝혀진 다음에 미마가 자기 자신을 '진짜'라고 간단하게 납득해 버리는 마무리는 좀 김새는 느낌이었어요. 그녀를 괴롭히는 이들이 사라졌다고 해도, 결국엔 미마 자신이 계속 그녀를 괴롭히게 되지 않을까요?








영화는 미마의 인격을 소재로 한참 관객들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다음
윙크와 함께 "난 진짜야"라며 거짓말 같이 일련의 충격들로부터 회복된 미마를 보여주며 막을 내립니다.
미마의 방황은 그걸로 정말 끝일까요? 




7.

곤 사토시는 이 영화에서 보여준 현실과 가상의 교차 시퀀스를 다른 작품에서도 선보입니다. 그 다음 연출작인 '천년여우'와 마지막 작품인 '파프리카'에서도 이러한 수법을 볼 수 있지요. 곤 감독은 주로 '다중적인 자아', '여러 가면을 쓰고 있는 현대인'과 같은 주제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천년여우'의 경우는 마찬가지로 여배우의 삶을 소재로 한 '퍼펙트 블루'보다 주인공 여배우가 보여주는 다양한 인격의 교차를 이야기 진행의 중요한 도구로 삼아요. (그래서 더 정신없습니다) 이러한 주제와 표현방식에 흥미를 느끼는 분이라면 곤 감독의 작품을 쭉 감상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대량소비사회의 여성의 성이 상품화 되는 풍조를 까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스스로 상품이 되길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현대인 모두의 운명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미마는 이야기내내 포장지로 예쁘게 꾸며진, '미마가 아닌 미마'를 팔면서 고통받으며,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이러한 인생을 사는 것은비단 그녀와 같은 여성 연예인들의 고통만은 아닐 거예요.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역시 남들이 그렇게 살길 원하는 인생을 살면서 평생을 '진정한 나'에 대한 의문으로 번민합니다. 이른바 '자기계발서'가 서점에서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 증후 중 하나라면 하나겠지요. 작품을 보고 나면, 미마가 '미마린'이라는 이름의 상품으로 소비된 것처럼 우리와 같은 현대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인격마저 상품으로 내놓아야 살아갈 수 있는 지경에 이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조직에 뼈를 묻을 수 있는 충성심을 갖춘 상품으로 꾸며진다고 하면 지나친 생각일까요.    







8.

다음에 소개할 곤 감독의 작품은 2001년에 발표된 '천년여우'입니다. 천년fox가 아니고 천년actress입니다ㅋㅋ 저는 '퍼펙트 블루'보다 이 작품을 더 좋아합니다. 왜냐면.....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