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25. 11:43

야구를 즐기기 위한 첫번째 스텝은 나를 열불터지게할 팀을 고르는 것이다.
응원팀을 정하는데 있어서는 복잡한 수치따윈 필요없다.
일단 나를 매력적으로 꼬드기는 팀만 정해진다면, 그 이후의 단계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동진행되기 마련이다.
사람마다 그 팀을 응원하게 된 이유는 가지 각색이다.
그 팀의 한 선수가 잘생겨서 라든지, 마스코트가 귀여워서, 혹은 우연히 따라간 직관에서 홀딱 반한 경우도 있다.
또 나처럼 WBC(야구판 월드컵)나 올림픽때 우연히 야구를 보고 빠져드는 경우도 있다.

가장 많은사람들이 택하고 있고, 가장 쉬운 응원팀 선정은 출신 지역에 따른 응원팀 선정이다.



출신지역에 따라 야구를 보고자 하는 분들은 이 그림을 보고 선택하시면 된다.


출신지역에서 태어나 출신지역에서 계속 생활하시는 분들께는 이 방법을 권한다.
동네에서 함께 살아온 친구들이 다들 같은 팀의 팬일 확률이 크고, 그 지역은 대체로 그 팀을 응원하는 분위기 덕에
매일매일 홈 경기장 주변은 한일월드컵 못지않은 응원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일례로, 대전 시내버스에서 한화이글스의 경기를 라디오로 들으며 귀가하던 대전시민들이
한화 이글스의 승리가 결정되자 승객 모두가 (운전기사 아저씨를 비롯하여) 운행중에 두손을 들고 만세를 부르는
국가대항전 아니면 보기힘든 장면을 충분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홈 구장이 자신이 사는 지역내에 있으므로 언제든 삘꽂히면 직접관람을 하러 야구장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 되겠다.

이렇게 실리와 분위기를 따져서 응원팀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분들은 그냥 느낌이 시키는대로 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저 위의 구단 분포도를 보면 이유없이 그냥 땡기는 팀이 있을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주황색이 좋으니 유니폼이 주황색인 한화이글스가 땡기네" 라든지,
"나는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가 좋으니 한화이글스가 땡기네" 하는 경우말이다.
사실 이것저것 따져가면서 작위적으로 정할 필요는 없다. 그냥 왠지 땡기면, 보면서 알아가면 된다.
아니다 싶으면 수렁에 빠지기 전에 다른팀을 찾아보면 그만이다.

만약 당신이 짝사랑하는 이성이 야구를 좋아한다면, 그 이성이 좋아하는 팀으로 시작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권한다.
야구도 보고, 그(혹은 그녀)의 호감도 사고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여자 야구팬은 내가 여자가 아니라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건
남자 야구팬은 자기랑 같은팀을 응원하는 여자 야구팬에게 진짜 엄청난 호감을 느낀다는건
검증은 안됐다만 사실일게 뻔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야구를 시작하게 됐다면,
첨에는 그저 야구라는게 호감사기용 미끼밖에 안되지만 세월이 지나면 어느새
남자(여자)고 나발이고 일단 야구를 보자는 골수 야구빠가 되어있을지도 모를일이다.


-글쓴이의 추천팀

자 이제 노골적인 시간이 왔다.
은근한 권유는 안한다. 노골적으로 한번 권해 보겠다.
내가 권하는 팀은 한화 이글스다. 장점과 단점을 차례로 열거해 당신의 마음을 움직여 보련다.
전혀 논리적인 글은 아닐것이다. 감정적인 호소글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원래 야구란게 그렇다. 논리적인 사람들이 난동을 부리고 버스를 불태울일은 없다.
야구팬들은 으레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이기 마련이다.



감정에 호소하는 한화이글스 추천사진1
참고로 추승우는 2군이라 도루를 못하고, 이범호 김태균은 다른팀 갔다.


한화이글스의 장점

1. 롸끈하다.
한화 야구는 롸끈하다. 이길때도 롸끈하게 이기고, 질때도 롸끈하게 진다.
질때는 쪼잔하게 1,2점차로 안진다. 56점을넘어서 10점차 패배도 꽤나 있다.
현재 2011시즌 퇴다실점패배팀 1위는 한화다. 2위도 한화다. 그리고 3위도 한화다.
18점 내주고 지고, 17점 내주고 지고, 14점 내주고 진다. 이 얼마나 화끈한가..
질때 뿐 아니라 이길때도 롸끈하다. 7위팀 주제에 역전도 잘한다.
경기를 끝내는 안타, 홈런도 엄청 많이 나왔다.
그래서 질때는 크게 스트레스 받는 일 없고 이길때는 스트레스 팍팍 풀린다.

2. 하위권이다.
하위권인게 어찌 장점이 될 수 있겠나?
뭐, 단기적으로 본다면 결코 하위권 팀이라는건 장점이 아니다.
하지만 야구는 평생보는 스포츠다. 그러니 단기적으로 봐선 안된다.
한화는 86년 창단이래 대체적으로 강팀이었다. 화끈한 타선을 중심으로 거의 매해 4강에 진출했었다.
하지만 저번 WBC(야구 월드컵)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중심타자들이 일본으로 팔려갔다.
그리고 주축선수들이 군대를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팀의 하락세는 어쩔수 없는것이었다.
그래, 지금 한화의 부진은 일시적인것이다.
지금 야구판에 한화로 진입한다면 팀이 바닥에서 위로 치고나가는 성장세를 몸소 지켜볼수 있다.
일본갔던 김태균도 돌아올 예정이고, 군대갔던 선수들도 하나 둘 돌아온다.
주식에서 가장 큰 수익을 얻는 방법이 무엇인가?
바닥에서 사서 꼭대기에서 파는것이 아니던가?
지금 한화주식을 사라. 지금 한화는 바닥이다.



감정에 호소하는 한화이글스 추천사진2
한화이글스 최고의 얼굴로 평가받는 투수 허유강. 잘 생기긴 진짜 잘생겼는데 야구는 못한다. 야구를 못해서 지금은 2군이다. 


한화이글스의 단점

1. 야구를 못한다.
진짜 야구 더럽게 못한다. 주축 선수들이 빠져서 진짜 못한다.
야구만 잘하면 최고의 팀이 될텐데 야구를 못한다.
한화이글스의 단점은 이것 뿐이다. 야구를 못하는 거.



한화이글스의 덕아웃에 붙어있는 글. 사랑스럽지 않은가..

노골적인 추천글이었다. 한화 이글스의 선수층이 어떻고, 공격시 뭐가 좋고 수비시 뭐가 좋고 하는말은
보는 당신도 골치아프고, 쓰는 나도 끝없이 써제낄수 있으니 그런말은 일부러 적지 않았다.
감정적이고 주관적으로 쓸 수밖에 없다보니 내가 응원하는 팀이 아닌 다른팀은 선뜻 쓰기가 어렵다.
혹시나 원하는 팀이 있으면 댓글에 건의해주시길 바란다. 그러면 흔쾌히 써드리겠다.
하지만 주관적으로 쓸 수 밖에 없으니 양해바란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24. 08:30


일주일동안 안녕하셨나요? 유수입니다.
날씨가 많이 시원해졌군요. 이제 따가운 햇살만 좀 기운을 잃으면 정말 가을이 왔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음....







뭐야 만화는 없고 이상한 게 또... 




"어...8월 24일에 4화로 만나자며...왜 또 그림은 없고 글만 있지?"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실 여러분의 머릿속엔 분명 이러한 의문이 떠올라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 4화는... 완성을 못했습니다.


그래요! 펑크입니다! 예고도 없이 원고 펑크냈어요, 제가!



참 잘했어요~
조커만도 못한 인간아




연달아 2주 휴재입니다! 여러분이 오냐오냐 해주시니까 배가 불렀네요!ㅜㅜ
4화를 기다리고 계셨을 분들께 정말 죄송스런 마음 뿐입니다.. 다음 주 수요일엔 꼭! 4~5화 같은 4화를 꼭 보여드릴게요!
은규 잊어버리지 말아주세요 ㅠㅠ



만화가 없는 대신 이번 주에도 역시! 만화 관련글을 여러분께 보여드리려 합니다.

 


지난 주에 프랑스 만화 및 세계 여러나라의 만화를 볼 수 있는 블로그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이번엔 블로그가 아닌 '만화'를 소개 하려고 합니다.
제목에서 이미 알아채셨을 것으로 압니다. 네, 이번에 소개해 드릴 만화는...일본의 만화가 이케다 리요코 1975년부터 1981년까지 연재한 「올훼스의 창입니다.






주인공 유리우스의 일러스트
그리고 저 창이.. 네 그 올훼스의 창입니다.






그림이 정말 전형적인 70년대 일본 순정만화 같지요?
그런데.. 어떤 만화랑 그림이 좀 비슷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시나요.

네, '올훼스의 창'은 사실...정말 유명한 만화, 어렸을 때 KBS에서 애니메이션 판으로 봤었던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작가의 또 다른 작품입니다.






비슷하지요? 90년대에 나온 애장판 표지입니다. 외갓집 오래된 책장에서 뽑아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인 이케다 리요코. 1947년 오사카 출생으로, 67년부터 만화가로 활동했습니다.
아아.. 미인이십니다. 정말. 그래서 그림도 그렇게 예쁜 걸까요.
그럼 내 그림도 예뻐야 하는데..
잘못했어요.



80년대부터 해적판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던 작품이긴 하지만.. 당시 검열로 인해 만화의 배경이 러시아 혁명에서 핀란드 독립운동(;;;)으로 바뀌는 등 심각한 왜곡이 있었습니다. 위의 90년대에 나온 애장판에선 러시아 혁명으로 고쳐져 나왔지만 인물의 이름이 멋대로 축약되어 있는 등 이것도 문제가 많습니다. 제대로 된 번역으로 읽고 싶은 분은 2001년에 대원씨아이에서 나온 단행본을 읽어셔야 하실 거예요. (근데 이 판본에는 비문이 많습니다.. 번역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건지..)





들어가며- 배경소개



널리 알려진대로 '베르사이유의 장미'가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면, 그 다음 작품인 '올훼스의 창' 은 1911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다만 1,2부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주인공인 유리우스가 러시아로 밀입국한 3부부터는 러시아 혁명의 진행 과정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집안의 유산 상속 문제로 여자임을 숨기고 남자 행세를 하며 음악학교로 전학 온 유리우스, 불우한 천재 소년 피아니스트 이자크, 그리고 러시아에서 독일로 망명하여 고국으로 돌아갈 때를 기다리며 바이올린과 학생으로 신분을 감추고 지내는 클라우스, 이 세 사람이 독일 레겐스부르크의 성 세바스찬 음악 학교에서 만나 서로 사랑하고, 자신들을 둘러싼 비밀을 풀어나가며 상처받고,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이 세 명이라는 점이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비슷하지요?

제목이 되는 '올훼스의 창'은 세바스찬 음악학교 구석에 있는 오래된 탑의 창으로, 그 창을 통해 서로를 만난 남녀는 반드시 사랑에 빠지지만..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올훼스'는 오르페우스의 옛 표기로 보입니다.)와 에우리디케가 서로 영영 이별하게 되었듯이 반드시 비극적인 결말을 맞고 만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창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커플 중 중심이 되는 인물은 모두 이 창에서 만납니다. (가톨릭 학교에 왜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 주인공인 유리우스-이자크-클라우스도 이 창에서 만나지요. 
이자크는 유리우스를, 유리우스는 클라우스를. 그리하여 유리우스와 클라우스는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이자크는 유리우스를 짝사랑하게 됩니다. 아.. 연애물의 케케묵은 클리셰, 삼각관계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삼각관계는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구요.





                                                        유리우스와 이자크가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본 고딩시절 과외 선생님이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이거 BL이야?"
                                                                           아니예요 선생님....-_-







                                                              같은 창에서 클라우스를 만난 유리우스.
                                   만나기는 이자크를 먼저 만났는데, 왜 유리우스는 클라우스를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이렇게 비밀 많은 선후배간의 사랑이 싹트고..






배경 설명은 이쯤 해두고...
인물 소개를 중심으로 내용을 알아볼까요?

세 주인공의 소개만 하죠. 이 만화가.. 등장인물이 50명이 넘거든요...ㅠ
 






주인공 1. 유리우스


 

 
 

이 작품의 히로인입니다. 레겐스부르크의 거상巨商 아렌스마이야씨의 숨겨둔 자식으로, 아버지의 본처가 죽자 첩이었던 어머니와 함께 아렌스마이야 가로 입적합니다. 유리우스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유산을 다 빼앗기게 생긴 배다른 두 누나 마리아와 아네로테와는 당연히 웬수지간이구요.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배워왔기 때문에 성 세바스찬 음악학교로 편입하게 됩니다. 이자크와는 동급생으로 15살, 5학년 입니다. 피아노의 천재인 이자크와 바이올린 천재인 클라우스 사이에 끼여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피아노 실력은 그저 그랬던 모양입니다. 작품 속에서 교수에게 혼나는 장면도 나오구요. 앞서 말했듯 올훼스의 창에서 이자크와 클라우스를 만나 그들과 연인으로 엮이게 됩니다.

아렌스마이야 가의 유산을 노린 어머니의 계획으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자아이처럼 길러져왔습니다. 그 때문에 얼굴은 곱상하지만 행동은 아주... 거칠지요. 툭하면 시비를 거는 라이벌 상회의 아들놈과 주먹다짐은 예사요, 후처로 들어온 어머니를 비웃는 다른 어른들을 집에서 내쫓기도 합니다. 16살이 넘어가면서 다른 남자애들이 자신보다 힘이 세져 싸움질은 곧 그만두게 되지만요.

첫 등장에는 이렇게 당차고 거칠었던 여인이었는데.. 집안의 비밀을 알게되고,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던 한 사람인 주치의 얀 선생을 죽여 살인자가 된 후, 소중한 이를 하나하나 잃어가면서 결국 사랑에 목숨거는 전형적인 히로인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어 저는 약간 실망이었어요.
1부 마지막엔 가문의 비밀 중 한 축이 되었던 아네로테 누나를 죽이고, 자신을 버리고 혁명을 위해 러시아로 돌아간 연인 클라우스를 따라가 그곳에 10년이 넘은 세월을 살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혁명의 난리통 속에 남편이 된 클라우스를 잃고 결국 실성한 상태로 고향으로 돌아오지요. 작품의 마지막에서 제정신을 되찾긴 하지만 집안의 오랜 원한관계로 엮인 이의 손에 결국 목숨을 잃고 맙니다. 남자 하나 잘못 만나(?) 너무도 기구한 인생을 산 인물이어서 보고 있자니 마음이 대단히 아팠습니다. 하아.. 좀 답답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작품의 중심축이 되는 인물이니 그만큼 그 인생에서 큰 울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울림이란 게 탄식과 슬픔이라 그렇지...아무튼 어머니의 욕심으로 일찍 인생이 뒤틀려버린 인물입니다.




주인공 2. 이자크






유리우스와 같은 날에 세바스찬 학교에 편입해온 학생입니다. 피아노 연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구요, 베토벤의 작품을 주로 연주합니다. 약간은 고지식하고 순진한 면이 있어 주변 사람들이 답답해 하기도 합니다. 일찍 부모를 잃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여동생과 살고 있었지만, 라이벌 학생의 음모로 장학금이 끊겨 술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생활비를 번 적도 있습니다. 

편입 첫날에 올훼스의 창에서 유리우스를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유리우스가 클라우스 역시 그 창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 고생을 하지요. 유리우스가 러시아로 떠난 후 그녀 때문에 미뤄왔던 오스트리아 유학을 떠나 자신의 연주에 대한 심각한 고민으로 번민하고, 처음으로 사귀게 된 교수의 딸에게 어장관리를 당하는 등(흑흑) 갖은 고생을 겪은 후 결국 피아니스트로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전 18권 중 8권에서 10권까지의 분량인 2부는 이자크의 유학생활과 귀향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어요. 

유럽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던 것도 잠시..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유증으로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되어 결국 명예와 돈, 아내를 모두 잃은 후 어린 아들과 함께 고향인 레겐스부르크로 돌아오게 됩니다. 사실 전 '올훼스의 창'의 이야기가 결국 이자크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세 인물은 공통적으로 작품의 어느 시점에서 고향을 떠나게 되는데요,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 다른 인물의 인생, 이야기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된 건 이자크가 유일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제가 예술가의 삶을 다룬 작품에 흥미를 느끼기 쉬운 인간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향인 레겐스부르크로 돌아온 이자크.
제가 참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주인공 3. 클라우스







그림 속 의상에서 알 수 있듯, 사실 러시아 사람입니다. 배다른 형이 공산주의 혁명 준비에 가담했다가 처형당한 후, 형의 약혼녀와 함께 독일로 망명하여 '클라우스'란 가짜 이름으로 신분을 감추고 살고 있어요. 진짜 이름은 '알렉세이'입니다. 망명 생활 중 학교에서 만난 후배 유리우스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혁명의 때가 오자 그녀를 버리고 러시아로 떠납니다. 아버지와 형으로부터 바이올린 연주의 재능을 물려받아 학교에서 천재 소리를 듣던 인재였는데.. 혁명에 몸을 던지며 그 재능을 포기하고 투사로서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정부군과의 교전 중에 사로잡혀 6-7년의 옥고를 견디다 탈옥한 후, 러시아까지 쫓아온 유리우스와 우여곡절 끝에 재회하여 짧게나마 그녀와 가정을 꾸리고 살게 됩니다. 결국은 혁명이 이루어지기 직전 유리우스의 실수로 암살 당하고 마는데, 그 과정이 꼭 저승의 입구에서 실수로 뒤를 돌아보아 에우리디케를 영영 잃게 된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와 흡사 합니다. 올훼스의 창에서 만난 연인다운 비극적인 결말이지요. 유리우스와 마찬가지로 참 기구한 인생이기도 하구요.

투사로서의 그의 삶은 11권에서 17권에 이르는 3부에서 주로 다뤄집니다. 첫 등장에서 불량소년과 같은 모습을 보여운 클라우..아니 알렉세이가 강한 의지와 행동력을 갖춘 혁명투사로 거듭나는 과정은 자못 감동적입니다. 그의 최후는 치열했던 생전의 삶에 비해 너무도 허무하지요.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러한 허무한 끝마침이 전설의 힘에 따라 인물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작품의 설정이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한 문장을 다 쓰고 끝에 호기롭게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이 딱 완결된 인생은 그리 흔하지 않다는 걸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잖아요? 별안간 떨어진 꽃망울과 같이 져버리는 인생이 흔하디 흔하지요. 알렉세이의 삶이 그러했고, 러시아 혁명으로 세워진 소련 역시 수십년 후 허무한 결말을 맞은 것과 같이 말이죠.  




 


나가며- "이 만화엔 인생이 있어요."








작품은 유리우스의 최후에 이어지는 이자크의 평화로운 일상으로 끝을 맺습니다. 위의 이미지가 마지막 페이지입니다. 서른이 넘은 이자크가 음악학교의 어린 학생들을 보며 자신의 청춘을, 인생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요. 이 만화엔 인생이 있어요.

이케다 리요코는 단행본으로 18권에 이르는 작품을 통해 20세기 초의 독일과 러시아의 정세, 50명이 넘는 등장인물들 각각의 이야기, 그리고 그 중심이 되는 세 주인공의 인생을 치밀하게 구현해냈습니다. 감수성은 예민하지만 아는 건 별로 없었던 중학생의 저는 이 작품을 다 읽고 나서 가슴이 뛰어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만드는 거야' '작품에 인생을 담아 낸다는 것은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일거야' 막연히 글 짓는 일을 하고 싶다고만 생각해왔던 중학생의 저에게, 이 작품은 거대한 충격이자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지금 이 글을 포스팅하면서 그 순간을 떠올리니 왠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후우..!


여러분은 이 작품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저는 이제 막 만화가가 될 준비를 시작한 애송이에 불과하지만, 언젠간 이 작품처럼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기엔 분명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만...여러분도 분명 '올훼스의 창'을 읽고나면 세 주인공의 삶 때문에 마음 속이 온통 흐트러져 버리는 경험을 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정말이에요. 도도히 흐르는 강을 보는 듯한 느낌의 만화 '올훼스의 창'이었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24. 08:30

 


이름
: Nari, the great
나이 : 동갑 as me
직업 : 대기업 1년차 신입사원!
만남 : 열일곱, 1학년 9반


안녕하세요, 여러분! 굉장히 오래간만에 쓰는 글 같네요. 저번 주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감상에 푹 빠져 글까지 살짝 우울한 분위기에 문체까지 바뀌는 바람에 당황하시진 않으셨나요? 저도 다시 읽어보니 살짝 오글거리긴 하지만, 그런 문체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모험 아닌 모험을 해보았습니다. 그나저나 지난 주부터 환절기라 그런지 컨디션이 영 좋지 않네요. 일교차도 엄청나고 감기기운도 있어서 늘 따뜻하게 입고 다니고 잠도 푹 자려고 노력 중이랍니다. 여러분도 늘 건강부터 챙기시길 바랄게요! 역시 안부인사가 좀 길어졌네요. 각설하고! 오늘의 주인공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바로 Best of Best Friend인데요, 진짜 인물은 인물이랍니다.

나리랑 저는 열일곱살에 처음 만났어요. 랜덤으로 고등학교가 배정되는 첫 번째 해였기 때문에 다들 얼떨떨한 분위기였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그 고등학교는 이름밖에 모르던 낯선 곳이었거든요. 그냥 남은 칸을 다 채워넣으려고 12번째에 썼던 학교에 덜컥! 처음에는 집이랑 너무 멀고 원하던 학교가 아니라 성도 내고 징징대기도 했답니다. 거리도 거리지만 가장 충격적인 건.. 동네에서 하나뿐인 여고라는 점! 불타는 10대의 마지막을 여자애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보내자니 억울했던 것일지도? 입이 댓발 나와가지고 울며 겨자먹기로 갔던 입학식, 저만큼이나 맘 상한 여자애들을 많이 만났고 그 중 한 명이 바로 이 친구였던거죠.



그건 그렇고, 친한 친구라고 해서 꼭 닮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리랑 저는 완전히 반대거든요. 짓궂고 부정적이고 거칠면서도 유머를 중시하는 게 제 쪽이라면, 나리는 밝고 긍정적이고 바른 말만 쓰는데다가 고지식하면서도 어리버리한 편입니다. 그래서 하이킥 보면서 엄청 웃었었어요. 맨날 승질부리는 해리는 저같고, 착하고 순한데도 뭔가 쎄고 얄밉기도(제 입장에서만)하고 잘 먹는(!!) 신애는 나리 같아서요. 으하하ㅋ 굳이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도- 단순히'성격이 반대'라 하면 될 것 같네요. 그래서 무슨 사건이 나면 리액션도, 의견 차이도 어마어마합니다. 무지 많이 싸우기도 했죠. 그런데 어떻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됐냐구요? 성격은 정반대지만, 취향은 완전 딱! 일치했기 때문이에요. 물론.. 나리가 저를 좀 좋아해서 친해지고 싶다고 먼저 추파아닌 추파(ㅋㅋㅋ)를 던져오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워낙 둘 사이의 역사가 깊어서 그런지, 서론이 무지 기네요. 어쨌든! 둘 사이가 깊어지게(?) 된 것은 다 음악 탓이었습니다. 겉으로 봤을 때는 그럭저럭 평범한 여고생 둘이었을지 몰라도, 불타오르는 Rock Spirit이 심장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거든요. 저는 아빠와 작은아빠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비틀즈, 딥퍼플, 메탈리카, 너바나의 목소리에 자주 노출돼있었는데, 초딩 시절에는 같은 비틀즈빠인 박박사(애칭)가 있어서 악기도 같이 배우고 사전을 찾아가며 가사도 번역해보고.. 유니텔 비틀즈 동호회의 최연소 회원으로 영상회 준비 스태프까지 참여했었습니다. 실제로 영국문화원에서 영상회도 열렸었죠! 박씨랑은 Rage Against The Machine의 콘서트에도 함께 갔었어요. 각자 어머님을 모시고(지금 생각하면 헐-) 헤드뱅잉을 하던 열다섯살의 소녀들.. 참 겁이 없었네요. 


                                                               (너바나, 비틀즈, Rage Against The Machine - 필자의 유년기를 책임지신 횽님들) 

전학 후 박씨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지던 16살, 저는 국민그룹 god에 빠져 one of 하늘색 친구들로 활동했고 육아일기부터 CF까지 온갖 영상은 모조리 다 녹화하는 열혈 빠순이가 되었습니다. 종종 연락하던 박씨는 변절자라며 상욕을 아끼지 않았죠. 그러던 와중에 약 5년 만에 다시 만난 Rock Spirit이 바로 나리였던겁니다. 나리와 제가 함께 열광했던 뮤지션은 바로 Linkin Park 였습니다. 한참 인기있었던 밴드였는데, 폭발하는 에너지와 촘촘한 사운드가 대단했었습니다. 특히 턴테이블을 돌리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조셉 한이 한국계 미국인이라 유명세를 타기도 했죠. 보컬이자 랩을 맡았던 마이크 시노다는 일본계니까.. 지금 보니 린킨파크는 무지 글로벌한 밴드였네요. 여기서 잠깐, 린킨파크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네이버 프로필을 투ㅋ척ㅋ




꽤 연차가 있는 뮤지션이죠? 예전에 지식인에 "린킨파크 VS 비스트" 같은 질문이 올라오기도 했는데.. 무튼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트랜스포머 OST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나리와 제가 한참 폴인럽 중이었던 2000년대 초반에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여전히 저력을 보여주고 있어요. 쪼-기 수상내역 보이시죠? 2010년 MTV 유럽뮤직어워드 최우수 라이브상 수상! 솔직히 린킨파크도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긴 해요. 클래식한 락 스타일과는 좀 거리가 있거든요. 앞서 얼굴을 빼꼼 내미신 형님(?)들이랑은 다르게 현란한 랩핑, 디제잉, 일렉트로닉이 몇 스푼씩 가미돼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림프비즈킷과 유사한 Pimp Rock 계열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하이브리드 메탈이라고 하기도 하구요. 힙합 냄새도 많이 나는 터라 올드락빠들로부터 외면받기도 했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무지 낯설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다들 이 노래는 좋아하시더군요. 바로 'In the end' 간만에 반가운 마음으로 감상해보시죠!

 
                          


Rock의 매력은 저항정신과 자유로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사의 의미나 정치적 의의를 차치하고서라도.. 뭔가 에너지를 200% 분출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비록 린킨파크가 상업성도 짙고 다소 대중적이어서 욕도 많이 먹지만, 적어도 그 시절 나리와 저에게는 잠시나마 일탈을 꿈꾸게 하는 락스피릿을 나누어준 은인같은 밴드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한-참 공부해야 할 열여덟의 소녀들은 야금야금 용돈을 모아 거금을 투자해서 학원이고 뭐고 다 빼먹고 린킨파크의 첫 내한 공연이 열렸던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으로 향했습니다. 아! 그리고 다음달인 9월 8일 같은 장소에서 세번째 내한공연이 예정돼있어요! (급 홍보ㅋ)
 



2003년에 쓰던 휴대폰으로 찍은 탓에 화질은 저질이지만, 직접 다녀온 관객으로서는 그날의 흥분과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져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저때의 젊음이 그립네요. 하아.. 저때만 해도 팔팔해서 스탠딩은 껌이었는데 말입니다. 이 날, 나리와 저는 온몸을 관통하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뭔가 펄떡펄떡 살아숨쉬는 느낌! 강력한 sisterhood를 공유하게 되었던 날이죠. 그리고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꼭 함께 밴드를 하자"며 손을 맞잡았습니다. 실제로 나리는 대입과 함께 밴드부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어요. 제가 동네 음악교실에서 드럼을 배우며 선생님과 친분 쌓기에 열중할 때, 공연까지 하다니.. 역시 저는 입만 살았나봅니다.

거기서 끝났다면 포스팅을 하기에도 민망했겠죠? 하지만 그 이후에도 쭉- 계속됐습니다. 제가 음습하고 쿰쿰한 홍대 클럽에서 인디밴드들을 쫓아다닐 무렵, 나리는 쌈싸페와 펜타포트를 누볐죠. 둘이 다시 제대로 의기투합했던 것은 아마.. 첫번째 지산락페였습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한 지산락페! 개인적으로 2009년 1회의 라인업이 최고였다고 봅니다. 폴아웃보이, 스타세일러, 위저, 패티스미스, 그리고 오아시스! 진짜 Rock心으로 대동단결할만한, 이름만 보아도 침이 질질 흐르는 라인업이었죠.


(제 1회 지산밸리락페스티벌, tvN '택시' 촬영에 나리가 얼쩡대서 찾으러 갔다가 찍혔어요. 제가 더 크게 나왔다고 욕먹었죠. 하아..)

누구보다 빠르게 조기예매로 3일권을 득ㅋ템ㅋ 나리와 나리 친구 미나, 에디터 유수님까지 네 명의 여자들이 뒤집어놓고 왔습니다. 올해도 잊지 않고 함께 했었구요. 그래도 역시 2009년이 甲이었네요. 한달 동안 가사를 외우고 줄넘기를 하며 체력을 기르기까지 했으니! 잉여력 폭ㅋ발ㅋ 무엇보다 오아시스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쇼킹할 정도! 나리는 워낙에 골수팬이어서 내한이란 내한은 다 찾았지만 저는 초면이었거든요. 오아시스는 그야말로 레전드니까요! 갤러거 브라더스의 투닥투닥이나 막말드립은 그들이 오아시스가 아니었다면 쿨해보이지 않았겠지만.. 그들의 주옥같은 뮤직으로 인해 더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서로를 미친듯이 까대고 팬들에겐 티셔츠나 사라고 하고 비틀즈에겐 니네나 우리나 기타치고 머리카락 있는건 똑같다고 하는 노엘과 리암... 어록까지 있을 정도로 워낙 유명해서 다들 이미 보셨겠지만, 잠시나마 그들의 명언들을 감상하세요-



그놈의 티셔츠 강매 ㅋㅋㅋㅋ 욕 좀 작작하지! 그래도 이거슨 매력? 리암은 늘 취객같아 보여서 그렇다치고 노엘은 진짜 착하게 생기지 않았나요? 내 눈에만 그런가? 처진 눈이라 그런가? 뭐.. 진짜 이 형제는 답이 없습니다. 그냥 닥치고 음악에나 집중해야지ㅋ


영국인의 미국까기ㅋ 67년생인 노엘.. 올해로 몇살인가요? 이름도 무지허게 거룩하구먼 입은 정말 오지게 걸어요. 그래도 뭔가 화끈하고 속시원한 느낌도 확실히 있죠? 그렇다고 해주세요.. 돈이 없어서 공연을 보지 못하는 팬으로서 미국을 탓하려구요 ㅋㅋㅋㅋㅋ


라는 데에 대해 가만 있을 리암이 아니겠죠? 더 했으면 더 했지.. 지금은 결국 갈라섰네요. 서로의 기타를 부쉈다는 마지막 싸움의 결과인데 팬 입장에서는 "오오미 세상에!"류의 사건이 아니라 "결국.."이긴 했습니다. 학대로 점철된 유년기를 공유하고, 또 극복해낸 끈끈한 형제애도 물론 있겠지만 똥고집과 쩌는 자존심 등등등등의.. 그래도 갤러거 형제가 언젠가는 다시 합치기만을 바랍니다.


앗! 그러고 보니 리암의 새 밴드 '비디 아이'가 다음달에 내한공연! 국카스텐이 오프닝을 맡은 것 같던데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리암의 취객포스를 즐기러 한번 가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일시는 9월 3일이네요. 그리고 노엘의 따끈따끈한 싱글 'The death of you and me'가 8월 21일 똻! 솔로 정규앨범도 10월 17일 발매된다고 하네요.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노엘의 기자회견 영상을!

                       
                           


참.. 좋아보이죠? 아아 그런데 이렇게 개그짤만 잔뜩이니 왠지 갤러거 형제에게 미안하네요. 당시 지산을 쩌렁쩌렁 울렸던, 가득 메웠던 Oasis의 대표곡! 떼창의 레전드 'Don't Look Back In Anger'를 빼먹으면 아쉽죠! 꼭 한 번 들어주세요! 나리와 함께 목이 찢어지도록 불러댔던 노래라서 더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그나저나 쓰다보니 오아시스 팬심이 넘쳐흐르네요.. 나리야, 미안! 근데 너라도 이랬을거야하하하하하.. 그치?

                           
                       


Rock 하나로 전쟁같은 우정史를 버텨왔다면 거짓말이고ㅋ 그 외에도 둘이 쿵짝이 잘 맞는 구석은 몇몇 있습니다. 못말리는 식도락, 여행가적 기질, TV addict, 축빠 정도? 같이 축구 경기 관람하러 가서 목 터져라 응원한 결과, 서포터즈에게 스카우트(?) 당하기도 했고 고딩 여름방학 시절에는 맨날 나리네 집에 널부러져서 동아TV의 '러브 서바이벌'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나 '퀴어애즈포크' 같은 퀴어물 등 당시 대중적이지 않던 프로에 심취하기도 했었죠. 몇년 전에는 함께 도쿄로 여행가서 맛집만 찾아다녔다는 후문이.. 치고박고 싸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너무너무 잘 지내서 다시 봤던 기억도 있고. 참으로 흥미로운 관계입니다.


('해외식신원정단'으로 변모한 우리의 일본여행! 특히 골드러쉬 햄버거 스테이크가 甲이었어요. 지금은 ㅂㅅㄴ때문에 못먹겠지만..)


여전히 투닥대지만 서로의 연애사는 물론이고 가정사까지 줄줄 꿰고 있는 둘도 없는 친구사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의도치 않게 방구를 트기도 했고.. (주어가 없으니 별 상관없겠죠?ㅋ) 서로의 옷차림을 자주 빈정대고, 둘이 있으면 치킨 2마리도 먹을 수 있는 무적의 씨스타입니다. 대기업에서 용케 똘끼를 숨기고 있는 친구에게 경의를 표하며, 앞으로 더 많이 싸우고 부딪히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 놀고 일하고 여행가고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네요.




아! 그리고 지금은 어려울지 몰라도, 언젠가 전업주부가 된다면 꼭 밴드 결성의 꿈을 이루자는 부탁도 함께 말입니다. 우리도 오아시스처럼 머리카락 있고 팔도 있고.. 그치?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23. 08:30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 허수경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中 





 사람이 뭔가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면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양미숙씨가 그랬어요.(영화 <미스 홍당무>에서요)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 '진짜 이상한' 사람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미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뿐, 누구나 자기 행동에는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있을 거구요. 본인이 그 이유가 뭔지 알든 모르든 말입니다. 자기 행동에 이유가 있다는 말이 그러므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된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거기에도 바람직한 이유와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들이 존재하겠지만 그걸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요.

  요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행동에 대한 이유를 가지고 있고, 적어도 그 당시 그 사람의 판단 하에서는, 그렇게 행동할 만한 이유가 있는 행동을 한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자기의 이유와 판단에 따라 한 행동이 생각이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의외로 사람들은 서로 교류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개와 고양이의 제스쳐가 서로 다르듯이 거기서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상대에 대한 기대도 다들 제각각이기 때문이겠지요. 어쨌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는데 그것을 의도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게 왜 그랬는가'라는 질문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가'라는 원망의 의미라면 
 원망스러운 심정이야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책임소재를 묻는 대상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래야 했으니까'라는 대답이 남지 않을까요. (그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한 것이라면 대답이 좀 달라져야겠지만요. 저는 진심으로 그런 걸 궁금해 하는 사람인데, 저 같은 사람을 잘 못봤거든요.)

 앞서 말했듯, 자기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해서 그 행동이 다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혹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또한 상처가 될지 전혀 몰랐다 하더라도, 상처를 준 것은 응당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렇지만 그것이 응당 미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제 생각일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다만 제가 하고픈 말은 온전히 의도된 상처는 없다는 것입니다. 

 혹 관계에서 상처를 받으셨다면, 
 상대가 결코 '나에게 상처를 주려고'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적의의 대상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오는 '2차 피해'적인 상처에서는 벗어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 그게 여러분에게 상처가 될 줄 알았다면, 혹은 상처가 되지 않을 다른 행동이 뭔지 알았다면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또 한편으로, 의도하지 않아도 상처줄 수 있다는 사실은 의도보다 더 조심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상처주는 사람이 된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의도되지 않아도 상처는 아프지요. 그런 점에서 행동의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저 개인적으로는 사람을 좀 더 잘 알아서, 좀 더 인간으로서 역량을 키워서, 타인을 상처주지 않을 수 있는 행동을 한다면, 그것이 어떤 행동을 더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일 것 같습니다.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을 수 있는 더 큰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상처받아도 결국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구요.


 갈길이 멀겠네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17. 08:30



이름 : 필립 라이더(기타) & 보디 존스(보컬)
나이 : 정확히 알 수 없음, 대신 결성일은 2006년 11월 15일
직업 : 어쿠스틱 듀오, 길거리 뮤지션, 프로 뮤지션 등등
만남 : Robson st. & Burrad st. Vancouver BC Canada


오늘의 주인공은 두 남자, 남자친구가 살짝 질투할지도 모르지만 한때 내게 큰 위로가 되주던 사람들이다. 말이나 글이 아니라 소리로 만난 사이라 감각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생김새보다는 그들이 만들어낸 공간과 시간, 그 안에서 만들어진 미세한 진동, 서늘한 기온과 같은 것들이 각인돼 머리도 마음도 아닌 신체의 감각들로 기억되는 것만 같다.   

고리타분한 비유이긴 하지만, 내게는 두 번째 홈타운이 있다. 바로 캐나다의 밴쿠버! 나는 그곳에서 1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눈치빠른 분들은 이미 "앗!"하셨겠지만 에디터 중 한 분 또한 그곳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정신없이 흘러갔던 한국에서의 삶과 달리 밴쿠버에서의 시간은 느릿느릿, 천-천히 흘러갔다. 덕분에 급하고 격했던 내 성격도 많이 여유로워졌다. 회색보다는 초록색, 파란색과 친해졌고, 소주보다는 맥주를 좋아하게 됐다.



무엇보다 난생처음 바닷가 근처에서 살게 됐다는 점에 매료됐다. 가장 좋아하는 해변은 다운타운에 위치한 English Bay 였는데, 무엇인가 마음에 동요가 일 때면 멍-하니 다운타운行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반짝이는 푸른색, 번져나가는 붉은색과 금색, 가끔은 어두운 검은색 바닷물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바다는 무척 가까웠다. 홈스테이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서 그랜빌 스트릿 사탕가게 앞에서 내리면, 가장 번화한 동네가 펼쳐진다. 물론 명동이나 가로수길, 홍대가 더 반짝거리지만 밴쿠버의 다운타운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습관처럼 찾던 곳, 후회하지 않으려고 자주 찾았지만 더 못 가본 것이 못내 아쉬운 곳. 어쩌면 내 기억 속의 그곳은 실제보다 더 아름다울지도 모르겠다. 늘 낯선 위로를 건네던 그 곳, 그 날도 아마 위로가 필요했던 날이었으리라.

분명 무엇인가 이유가 있었을텐데, 좋지 않은 일은 의식적으로 잊으려고 노력하는 탓에 기억이 흐릿하다. 아마도 홈스테이 룸메이트였던 태국 여자가 또 쌀쌀맞게 굴면서 떽떽댔겠지? "전화통화 할 때 좀 조용히 하면 안돼?" "아, 유치해! 한국 드라마는 다 이런 식이야?" "넌 아직도 teenager 같아" 어학연수 초기라 영어랑은 데면데면한 사이, 영어를 쓰면 과묵해지는 새로운 정체성을.. 아무튼 그랬던 시기라 나는 대꾸할 가치, 아니 능력이 없어서 또 무작정 버스를 탔다. 한국인이 유독 많은 이민자의 천국 밴쿠버라지만.. 외로움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어쩌면 나는 그때, 온전히 혼자라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온갖 사람들로 북적이는 다운타운,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 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Sears란 이름의 백화점 정문 앞은 무척 붐볐다.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나오고 들어가고- 그 정신없던 공간에서 딱 그 부분, 두 남자가 연주하고 노래하던 그 좁고 작은 네모난 공간에서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었다. 뭔가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형언할 수 없는 류의 그런 감정이었다. 다소 마른 체격의 두 백인 남자는 자신들을 '어쿠스틱 듀오'라고 소개했다. 이름은 '라이더 존스' 두 사람 앞에, 마치 입을 쫘-악 벌린듯 펼쳐진 채로 놓여진 기타 케이스에는 직접 녹음하고 앨범재킷까지 손수 만들었다는 CD가 가득했다. 10달러 정도였던가? 나는 그들의 공연이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보이는 공간에 쪼그리고 앉았다. 열명이 채 안되는 구경꾼들이 스쳐지나가고 오고를 반복하는 동안, 난 계속 거기에 있었다. 달팽이관 속을 빙글빙글 맴돌던 그의 목소리는 나의 조그만 몸 속에서 그만큼 조그마한 파동을 만들며 퍼져나갔다. 혼자 노래를 듣다가 우는건 꽤나 창피한 일이지만, 길거리에서라니- 찌질하기 그지없는 행동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도리가 없었던, 몇 안되는 순간 중 하나다. 


(Rider Jones - Short @YouTube)


그렇다고 그들에게 '찌질한 동양인 여자애'로 기억되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두 남자의 시선이 채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긴 했지만, 혼자 감내해야할 창피함의 무게가 너무도 컸기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내 쪽에서 애가 탔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할까, 자연스럽고 쿨하게, 그런데 한국어도 아닌 영어로? 난 애초에 쿨하고 대범한 사람이 못 되는데 대체 어떻게? 고민을 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기타리스트만 남아서 줄을 감고 다시 풀고, 조율을 하고 있었다.

"Hi" 그래, 가장 무난하다. "음, 보디 방금 화장실에 갔는데?" 그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대꾸했다. 아마도 보컬을 따르는 팬들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질투가 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뾰루퉁한 것도 아니고 심드렁했던 건 더더욱 아니다. 그냥 굉장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말투였으니까. "아니, 난 그냥 노래가 너무 좋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그제야 시선을 맞춘다. "오, 내가 더 고마워. 난 라이더야"라며 악수를 청한다. "근데 넌 어느 나라 사람이야? 맞추기 어렵다" 다짜고짜 출신을 묻는다. 동양인들끼리는 척 하면 척인데 외국인들은 구분이 안 되는가 보다. "난 한국인이야" "북쪽?" 갑자기 엄청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한다. 북한 개그라니, 서정적인 기타 리프와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웃기긴 웃겼다. 낄낄대고 있을 때, 후련한 표정으로 보컬이 돌아왔다. "어느 나라 사람이게, 맞춰봐" 라이더는 두서없이 말하기를 좋아하는 듯 했다. "일본?" 보컬인 보디의 양손에는 반지만 5개, 팔찌가 세개. "난 은지고, 한국인이야" 보디가 "hopefully.. 북쪽은 아니지?"라니까 겨우 웃음을 참은 라이더가 끄-윽끄-윽 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끼리끼리 노는 것 같네. "남한이고.. 앨범 하나 사도 되지?" "Sure!" 그렇게 그들과 만나고, 길거리 뮤지션의 길거리 팬이 되었다.


(Rider Jones - Wilde Awake @YouTube)

두 남자는 내가 앨범을 사갈 때마다 속지에 직접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고 나도 답례를 했다. 그림 속에 드러난 동양인이 본 서양인과 서양인이 본 동양인은 오히려 '그려진' 사람보다 '그린' 사람을 닮아 재미있었다. "이게 나라고? 옆집 사는 캐나다 여자겠지" 내가 빈정거릴 수 있을 만큼 영어실력이 향상됐을 때, 그들은 어린 여동생 대하듯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지 가까웠던 사이는 결코 아니었다. 나는 가끔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음표로 가득찬 그들의 머릿속에서 내 이름을 끄집어내려 노력해야 했고, 그들은 북한개그로 상징되는 나와의 첫 만남만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노래만 듣다가 자리를 떴고, 가끔씩만 용기를 내 소소한 대화를 나누었다. 
 


연수 기간 동안 나는 대학교에 소속된 어학당에 다녔다. 읽기, 쓰기, 말하기 수업이 따로 있었고 그 중 Lana 선생님의 말하기 수업이 무척 유쾌해 가장 좋아했다. 그 중에서 실질적으로 자주 쓰는 관용어구를 배우는 시간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자기가 잘 듣고 있다는 것을 "I'm all ears!"로 표현한다거나 favorite 스카이 라운지 이름인 "cloud 9"이 행복의 절정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습득하는 행위는 흥미롭고 행복했다. 여러 관용어구 중 제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shoulder to cry on", 말 그대로 "울고 싶을 때는 내가 어깨를 빌려줄게"의 그 어깨 말이다. 그리고 그 어깨가 두 남자의 노래 속에도 있었다. 실제로 그들의 노래 가사 속에 저 문구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라나의 통통한 입술 사이로 흘러나와 내 귓 속에 들어온 그 말이, 동그랗고 부드러운 리듬과 멜로디를 타고 다시 내게로 왔다.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때의 나에게 있어서는 왠지 운명처럼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Rider Jones - This is Goodbye @YouTube)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점점 밴쿠버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 가면서 그들과의 만남도 점차 줄어들어갔다. 많은 친구들이 생겼고 나는 그다지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됐다. 'shoulder to cry on'이란 문구에서 느꼈던 절박함이 사라진 만큼, '라이더 존스'란 이름의 넓이와 부피도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난 한국으로 돌아와있었다. 귀국 후 한동안은 큰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그 괴상한 외로움과 향수 속에 떠오른 단어가 바로 '라이더 존스'였다. 그리고 나는 마이스페이스나 유투브 등의 커뮤니티를 통해 다시 그들을 만났고, 또 한 번 위로를 얻었다.

그래서 오늘의 주인공이 그들이라는 것, 그들을 기억해냈다는 것은 과장을 좀 보태 의미심장한 일이다. 과도한 감상에 사로잡힐 상황에 놓였다는 경고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인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내 곁에는 'shoulder to cry on'이 무척 많다는 사실! 그때의 그 감정과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혹시 여러분 중에서, 고개를 내미는 조그마한 고독감이 영 거슬리는 분이 있다면 새롭고 낯선 노래가 듣고 싶다면 서툰 위로 대신 그들의 노래를 전하고 싶다. 거기에 내 추억까지 보태- 외로움이 혼자만의 몫이 아니란 사실이 더 큰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13. 08:30



세계여행이 부루마블 같은거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사위를 던지기만 하면 스페인도 가고, 브라질도 가고, 아프리카도 가잖아요.
어디 그뿐인가요, 운이 좋으면 공짜 항공권을 얻어서 가고싶은데 아무데나 가기도 하죠.

아 맞다, 더 주절주절 떠들기 전에 제 소개부터 해야겠어요.
안녕하세요 :)
토요일 코너 '즐거운 나의 하루'를 맡게된 miss톡 입니다. 

저는 이 코너를 통해서 여러분들과 여행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현실에서는 시간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생각보다 준비할게 많아서 부루마블처럼 쉽지는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그 어떤 날보다 '즐거운 나의 하루'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여행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단순히 여행 리뷰를 올리려는 것은 아니에요.
여행 리뷰에 관해서는 저보다 훨씬 풍부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블로그와 책들이 충분히 많을테니까요.
제가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랍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만약 내가 여기에 태어난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것을 생각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만약 나였다면...' 그런 시점으로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풍경이 나에게 가까워진다.>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여행책 <LOVE&FREE - 자기를 찾아 떠나는 젊음의 세계방랑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맞아요, 여행은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정말 달라지거든요.
저 역시 적지않은 여행을 다니다보니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의 입장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그래서 저는 파리에 가서 에펠탑에 올라가 보고, 베르사이유 궁전을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세느강 옆에서 샌드위치 한 입 베어물면서 좋아하는 책을 읽는것 같은 이런 아무렇지 않은 행동들도 여행이거든요
.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마치 내가 파리지엥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
그래서 그 순간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길 수 있는 것-
이런 것들이 더 소중한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리 사진 속에 유명한 관광지가 남아있더라도, 그때의 그 느낌이 내 기억속에 없다면 그건 소용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가 다녀온 나라와 도시에 대해서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여행방법을 소개해보려고 해요.
꼭 했으면 좋을 법한, 놓쳐서는 아까운 그런 일들에 대해서 말이에요. 
아무튼 힘닿는데까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저를 따라서 '즐거운 나의 하루'를 함께하시겠어요?

물론 최종 목표는.. 블로그의 편집장 사과모히토 양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강력한 실세로 자리잡는 거에요. 호호 ^0^


+ 블로그에 있는 많은 필진들과 이미 두터운 친분관계를 자랑(?)하는 절미양께서 축전을 써주셨습니다.
  (무려) 공기업 취업 너무 축하하구요, 연수 전날이라 정신없었을텐데도 축전 전달해준 절미 고마와!
  참고로 '쵸딩'은 miss톡의 대학시절 별명입니다. 이제 졸업할때도 되었는데 말이죠.. 이러다 40살까지 초딩으로 불릴 기세 -_-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10. 08:42








































 

 














































 

 










은규의 등록금이 어쩌다 전혀 모르는 사람의 계좌로 들어갔을까요?


다음 주 수요일은 휴재합니다.


8월 24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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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8. 08:30

여러분 안녕하세요! 월요일에 돌아온 H 입니다. 일주일 밖에 안됬는데 오랫만에 글을 쓰는 기분이 드네요.  
오늘은 주말동안 오랫만에 앨범 정리를 하다가 고른 밴드,  No doubt 의 노래를 소개해 드릴려고 합니다.  

 

No doubt은 고등학교 때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노래도 좋았지만
이 앨범커버가 기억에 유독 남았어요.


 


다소 빈티지한 느낌과 빨간색과 파란색의 조화, 깡마른 나무와 맛있어 보이는 쿠키의 사진 그리고 발견했을 때 깜짝 놀랐던 파리 세 마리 (트래직 킹덤의 의미가 저 파리에 있는 걸까요..쿠키가 열리는 나무지만 방심하지 말라는 걸까)  등
커버가 맘에 들어서 가방에 씨디 플레이어와 앨범을 함께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나요.

 
그때는 씨디 플레이어를 들고 다녔던 때라, 씨디를 굽지 않는 이상 한 씨디를 사면 계속 듣게 되었는데 유독 이 앨범을 좋아해서 그냥 자연스럽게 오랫동안 들었던 기억이 나요. 지금도 노 다웃 하면
 Tragic Kingdom 앨범이 생각 나구요. 
 
당시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왜 교복을 고쳐 입으면 안되는지 왜 학생은 머리를 귀 밑 삼센치로 잘라야 하는지 등이 궁금했고 학생은 원래 그래야 하고 단정하게 해야만 한다는 답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저는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모범생의 표본ㅋㅋㅋㅋ 저는 착한 아이 였나봐요...) 빨간 립스틱을 바른 보컬 그웬 스테파니 의 스포틱한 패션에도 끌렸습니다. 역시 옷은 편해야 해. 교복 치마보다 체육복 바지가 더 좋음..    



 

다양한 장르를 복합적으로 선보이고 있지만, 노 다웃의 주 장르인 스카팝 레게 음악의 하위 개념 으로 전체적으로 레게 음악과 비슷하지만 좀 더 구분하기 쉬운 리듬 파트가 돋보이는 음악 장르입니다. 스카 펑크 음악으로 유명한 밴드이구도 하고요. 저는 기존에 듣던 펑크 음악에서 트럼펫, 트롬본 이 가미되어 뭔가 동네 축제 느낌도 나서 좋더라구요. 특히 그웬 스테파니만의 창법 이 남달라서 한번 노다웃의 노래를 들으면 누구나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거에요. 목소리가 높고 콧소리인가 싶은데 그렇지 않고, 자유 자재로 노래를 부르는 그웬 스테파니 만의 개성이 노 다웃이라는 밴드가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 이지 않을까 하구요.  

 

음도 신나지만 그 당시 이 앨범을 들을 때 저는 무엇 보다도 가사가 좋아서,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면서 영어에 재미를 느끼다가도 학교에서 다이얼로그 원 리슨 캘풀리 토마스가 하는 말이 뭔지 아래에서 골라봐 하는 테잎을 듣고 있다 보면 영어가 싫어지고... 선생님 노다웃의 노래를 들으면 안됩니까?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ㅋㅋㅋㅋ  

 

 저는 개인적으로 Tragic Kingdom에서 Spiderwebs, Excuse me Mr, Just a Girl, Happy now, Different Peoplem The Climb, Sunday Morning, Don't Speak, Tragic kingdom (거의 전곡 인 것 같습니동ㅋㅋㅋ) 를 즐겨 들었는데 그 중에 특히 좋았던 몇 곡을 올려 볼게요.  




 

Excuse Me Mr 을 듣다 보면 짝사랑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ㅋㅋㅋ  I need a little of your time 프리즈

 

 

 

 

 

Just a girl 은 왠지 핑크 리본을 머리에 달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나 핑크리본 안어울리는데 어떡하지 ㅋㅋㅋ I'm just a girl ㅋㅋㅋ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왔지만 따라 부르면서 라임이 재밌었던 Different People. 다양한 사람들의 다른 생각들이 충돌하는 넓고 큰 세상에 대해 노래해서 뭔가 즐거워 져요. 세상은 좁기도 하지만 참 넓구나아 저 밖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에 빠지면서 시험 공부는 또 다시 저멀리로..... 

 

 

 

Happy Now ; 도무지 전체적인 이야기가 매끄럽게 해석되지 않아서 결국 코러스 부분의 해피 나우만 이해했던 ㅋㅋㅋ 그웬 스테파니의 밀고 당기는 보컬 실력이 귀에 착착 들어오는 노래 중 하나에요. 

 





이 3집 앨범에는 노다웃의 대표곡 중
대표곡! Don’t speak도 수록되어 있어요. 2000년 내한 라이브 때 불렀던 Don't speak 입니다. 아 저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나ㅠㅠ 내한 또 와주면 좋을텐데 말이에요ㅠㅠㅠㅠ 나 떼창 진짜 자신 있는데 아 캔 두 에브리띵 칸 국제 영화제도 좋지만 라이브 공연 오시면 내가 이것 저것 잘해드릴텐데 ㅠㅠ ㅋㅋㅋㅋ 우쥬프리즈 컴투 코리아
 

노다웃은 캘리포니아 출신 밴드라서 그런지 대부분 노래가 활기차고 스카 펑크의 경쾌한 느낌이 살아 있어서 좋습니다. 요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노래라도 즐겁고 경쾌한 노래를 들어야지 안그러면 하울처럼 녹아버릴 것 같아서ㅋㅋㅋ 마음 같아선 출근 길에 거리 밴드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저는 지각을 밥먹듯이 하겠죠...... 이제 후배들도 많아 졌는데...... 안되지 안돼......

 



* 보나스... 라기 보다 개인적인 욕망에 충실한ㅋㅋㅋㅋ사진 모음 입니다. 
 그웬 스테파니의 아들 킹스턴이에요. 모히칸 머리가 잘 어울리는 귀요미입니다. 엄마 아빠가 패셔니스타 커플로 불리워서인지 남다른 패션 감각을 보여주는 파파라치 사진이 많아요. 잘 어울려 귀여워....  


                                            그웬도 예쁘고 킹돌이의 멍한 표정도 귀엽고

                                            락커인 아빠와 함께. 그대로만 자라다우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