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16. 10:25

 

 지난 주 저는 친구와 친구의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그런 종류의 자리였는데, 보통 어색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 되지만,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친구의 남자친구 덕분에 모처럼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과적으로 ‘좋은 사람’ 같다는 평가를 받은 친구의 남자친구는 장난기가 무척 많은 사람 같았습니다. 게다가 미리 친구에게 들은 바대로 ‘흠을 잡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인 것 같더군요.

 

  그 분이 끊임없이 장난을 치는 내용은 제 친구의 행동이나 말에 대해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라는 태클들이었습니다. 그런 장난을 제 친구가 기분나빠하지 않았고, 또 거기서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분의 말이 나쁘게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그 일련의 내용들은 무척 익숙하면서도 불편한 느낌을 주는 패턴이기는 했습니다.

 

  다시 말해 싸움이 일어나는 전형적인 패턴이었다는 뜻입니다.

 

  “싸움”이 일어나는 전형적인 상황 중 하나는 각자가 각자의 입장을 가지고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내가 “옳은데” 상대방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이런 패턴은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상대방을 판단한다는 점입니다. 평가한다고 해야 할까요.

 

  자유주의 혹은 개인주의가 굉장히 보편화되어 있어서 그런지 이미 미국에서는 그런 상황을 뜻하는 전형적인 표현이 자주 쓰이기도 하지요. 바로 Don't judge me.의 상황입니다. 그리고 대개 그 다음의 반응은 말문이 막히거나 I didn't judge you!라는 반박이 이어지지요. 아마 누군가를 judge한다는 말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의미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는 서구만큼 오래지 않은 '자유' 혹은 '개인주의'의 역사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의 가치관이나 호불호나 행동에 대해서도 옳고 그른 것을 따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꼭 국적에 국한된 문제라기 보다는 문화적인 경향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지요. 그러다보니 무의식중에 '무엇도' 옳고 그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도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다’는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이거보세요. 벗어날 수가 없군요.) 혹은 그것을 따질 수 있는 문제인지를 떠나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조금 위험한 데가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불필요하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칫하면 편가르기를 하는 것에 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옳고 그름이 존재한다고 전제할 때, 내 의견이 옳은 것이라고 믿어버리게 되면 상대방의 의견은 그른 것 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겁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가리려 생각할 때는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흑백논리는 버려야 하는 거지요. 잘잘못에서 누가 ‘더’를 따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승패 두 가지의 흑백논리로 가를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요. '반드시 둘 다 잘못이 있다’고만 생각하면 그게 가장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각자 자기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는 게 맞겠지요. 그리고 사실 싸움이 일어났는데 어느 한 사람이 온전히 옳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므로 그게 가장 사실에 가까운 진술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사랑하는 마음'에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옳기 때문에’ 내 말을 들어 달라는 것은 사실 사랑하는 사이에서 통용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옳고 그름’의 감정이 아니니까요. 우리는 우리가 이런저런 속상한 일들을 털어놓으면 ‘그 사람이 진짜 잘못했네’, ‘연인이라면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라며 맞장구를 쳐주는 친구들에게 위로를 얻습니다. 하지만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의 마음은 고맙게 받되,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에서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생각이겠지요.

 

  다시 말하면, 연인 사이에 원하는 게 맞지 않아 싸운 경우, 내가 옳기 때문에 어떤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는 단지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를 바랄 수 있을 뿐이고, 상대가 요구하는 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단지 상대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들어줄 수 있는 것뿐이라는 거지요.

 

  이 말은 우리가 상대에게 무언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요구를 내 힘이 닿는 한 들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때문이죠. 그게 옳기 때문은 아닙니다.

 

어떤 차이가 있냐구요?

‘옳기 때문’은 마땅히 해야 할 것이므로, 하지 않았을 때 물을 책임과 의무만이 남지만

‘사랑하기 때문’은 어떤 순간에도 내가 받아서 고마운 것이므로, 더 많은 다음 단계를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리고 '옳은 것'에 대해서는 이행하지 않았을 때 비난할 수 있지만,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할 수 있을까요? 슬프지만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의무라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슬프게 만들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슬프게 만들지 않으려면 사랑을 표현하고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는 것 뿐입니다. 
 슬프게 만들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사람들은 종종, 그러지 않으려면 표현해야한다는 걸 잊을 뿐이구요.
 그러니 비난보다는 다만 그걸 일깨워 주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래서, 사랑의 감정에 자꾸만 이유와 당위를 붙이려는 것이 아닐까요? 원하는 대로 받지 못한 사랑은 어디에도 물을 길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만큼 상처가 되고 두려운 일도 없겠지요. 그래서 마치 그것이 의무인 것처럼 상대방을 몰아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겠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바람을 피우고 뭐 이런 도덕의 범위를 벗어나는 건 말구요)' 말과 행동을 하는 연인을 가진 여러분. 이해는 사랑을 돕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몰라도' 사랑하니까 해 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걸 해 주지 않았다고 당신을 비난하는 연인을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아주세요. 원하는 대로 받지 못한 사랑이 꽤나 아프고 두려웠던 걸 지도 모르지요.)
 


  결국 사랑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요?

  아마 그래서 마더 테레사 수녀님도 “판단하면 사랑할 수 없다.”고 하시지 않았을까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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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