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18. 08:30


 유명한 미드 "Sex and the City"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자신과 너무 잘 맞는 사람을 만나 연인이 되지만 다른 사람에 그 연인을 소개하는 것은 꺼리는 사람의 이야기지요. 그리고 연인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지 않는 이유는 남들에게 부러움을 살 만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어울리는 사람들에 비해 사회적으로 좀 초라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사람은 연인과의 관계는 유지하지만 끝끝내 사람들에게 소개시키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큰 그림에서는 자신과 맞지 않기 때문에 미래를 함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요. 결국 이 에피소드는 숨겨진 정부취급을 받던 이 사람의 연인이 자신을 당당히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이 사람과 헤어지면서(정작 이 사람은 그 때 연인과 공개된 관계를 가지려고 할 때였죠)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제가 궁금했던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 사람이 가진 것' 때문에 '그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 건 나쁜 일일까요? 더 나아가서 그런 사람과 '숨겨진 관계'를 갖는 것은 나쁜 일일까요?

 누구나 그런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조금씩은 고민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할 때 '내가 너무 속물인가?'라며 조심스럽게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보았습니다.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려면 '속물'이 뭔지부터 제대로 정의하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속물'을 '나쁜 것'으로 바꿔본다면 저는 "No"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연애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결혼의 목적"도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하고요.) 관계를 통해 얻고 싶은 것 중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다른 사람의 높은 평가'라면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되겠죠. (그게 연애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므로 '그 사람이 가진 것'이 나에게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면 '그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오히려 옳은 선택이지요. 그러니 그 사람의 외부조건 때문에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로 인해 관계를 포기하려는 자신을 속물이라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계가 이미 정해진(미래를 기약하지 않는) '숨겨진 관계'를 갖는 것도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관계에 참여하는 두 사람이 모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 관계로 인해 상처받을 사람이 없다면 말이지요.(하지만 그러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체로 권하지는 않고 싶습니다. 그게 '관계'라면 오래 지속될 수도 없고요.) 


                                              샬롯도 처음 해리를 만났을 때, '숨겨진 관계'를 원했지만
                                                       결국 두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보세요.
 

 하지만 그 '숨겨진 관계'의 정체를 한 쪽만 알고 있다면 그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예를 들어서 A는 B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B는 그건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A에게 말하지 않고 계속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그럴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단지 지금 당장은 문제가 안되고, A가 싫은 건 아니기 때문에 A가 미래가 있는 관계를 원하는 걸 알면서도 '숨겨진 관계'를 유지합니다. 이건 나쁩니다.  이 관계에서 A는 속았으니까요.

 물론 실제 상황에서는 여러 요소가 훨씬 애매할 거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A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B가 모를 수도 있고 그걸 지레짐작하는 것이 오버일 수도 있고요. A가 결혼하자고 말한 것도 아닌데, 너랑은 결혼 못할거 같아, 라면서 헤어지는 건 잘하는 건가?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고요. 지금은 아닌 것 같아도 혹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게다가 그럼 둘 다 괜찮다면 인간이 서로를 수단이나 도구처럼 이용하는 건 괜찮은가? 라는 윤리적인 논쟁의 문제가 있을수도 있고요.
 
 칸트라면 안된다고 하고 공리주의라면 된다고 할 만한 '정의란 무엇인가'식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떤 안 좋은 일을 당한다는 것은 무척 화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자신의 의지대로 할 기회가 있었는데, 누군가 사실을 알면서도 말해주지 않아서, 그런 기회를 빼앗겨버렸다면, 그래서 결과적으로 더 상처받게 되었다면 그건 나쁜 일이죠. 기회를 빼앗은 사람이 분명 잘못한 일입니다.

 그러니, 만약 제가 다소 '속물적'인가? 라고 고민할만한 이유로 누군가와 관계에서 미래를 기약하지 못하는데 그 생각이 확고하다면, 그 관계를 끝내는 것은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  미래를 함께할 기약은 앞으로도 계속 못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재를 놓치기 싫어서 그 관계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적어도 그 상황을 상대방에게 알리겠어요. (물론 저라면... 그러고 싶어도 차라리 헤어지는 걸 선택할테지만요) 그게 틀림없이 상대방에게 달가운 소식은 아니겠지만, 그 사람의 기회를 빼앗을 권리는 없는 거니까요.


 그리고 만약 제가 상대방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제 선택은 제 몫이겠지요.
 그렇지만 어떤 선택을 할 지는 꽤나 분명합니다.ㅎ 칸트적이면서 공리주의적인 이유지요.  
 저는 목적으로 대우하고 대우받는 것이 좋거든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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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