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29. 08:40



  오늘은 저의 긴 말 없이. 청춘 종합 선물세트같은 명작, 많은 분들이 잘 아시는 만화 <허니와 클로버>의 마지막 장면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만화로 된 작품이라 글로만 전해드리면 원작의 감동을 충분히 살리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글로만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읽지 않은 분도 마음껏 상상하실 수 있기를 바라면서. (혹 기회가 되는 분은 꼭 한번 원작으로 보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거에요.)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도쿄로 상경한 성실한 미대생 다케모토는, 작고 갸냘픈 동급생 하구미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집니다. 하구미는 요정 같이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지만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대작들을 서슴없이 만들어내는 천재 소녀입니다. 만들어 내는 작품의 크기 만큼 요리 솜씨도 대범해서 재료는 통으로 쓰고, 맛은 먹기 힘들만큼 달콤한 요리들을 만들어 내곤 했지요. (그레이트 후르츠 밥이라던지, 사과에 벌꿀을 주르르 얹은 통사과 카레찜이라던지 하는...) 냄새만으로도 속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그 음식들은 매번 다케모토를 비롯한 남자 선배, 동기들을 고생시키곤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보낸 많은 시간 동안, 다케모토는 하구미에게 아주 소중한 친구가 되지만 결국 그녀에게 사랑받거나, 선택받지는 못합니다. 여러가지 사건을 뒤로 하고, 미대를 졸업한 다케모토가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꽃잎이 그야말로 굉장한 기세로, 종이 꽃가루처럼 흩날려 꿈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도쿄에서의 지난 5년 전부가, 꿈 속에 있는 듯한 나날이었다. 3평 플러스 부엌 1.5평. 욕실 없음. 대학까지 걸어서 10분. 지은 지 28년, 집세 3만 4천엔. 아침 햇살이 눈부신, 동향. 나는 오늘 이곳을 나간다.

  역으로 향하는 강변 길에서 그녀를 보았다. 이젠 단골이 된 그 빵 가게에서, 평소처럼 빵을 사 가지고, 그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고 재활치료를 하고 캔버스를 마주하고. 이 거리에서 그녀의 일상은 계속된다.
  작별 인사는 어젯밤 다 했으니, 이젠 말을 걸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말을 걸면 안 돼. 그래서 그저 묵묵히 보고 있었다. 틀림없이 지금 말을 걸었다간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말거야. 널 곤란하게 만들고 말거야.

 눈에 익은 강가 풍경과 너와, 모든 것이 봄볕에 물들어 핀으로 꽂은 그리운 사진처럼, 그저 그저 한 없이 아름다웠다.


 그렇게 하구미를 그대로 지나쳐 보낸 다케모토는 혼자 열차에 올라 앉아 있다가, 차창 밖에서 자신을 찾으며 달려오는 하구미를 보게 됩니다. 황급히 열차 밖으로 나간 다케모토는 만나서 다행이라며 울먹이는 하구미가 내민 무언가를 받아 듭니다. 그리고 열차의 출발을 알리는 알람소리가 울리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를 꼭 한번 안아 주고는 기차의 안과 밖으로 헤어집니다. 

 그리고 기차에서 더 이상 그녀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쯤, 다케모토는 하구미가 준 보따리를 풀어 봅니다. 그러자 거기에는 식빵 한 봉지를 통채로 쌓아 만든 샌드위치가 들어 있었습니다. 너무나 그녀답다고 생각하며, 도대체 이건 뭘로 만든 거야? 라고 속 안을 들여다 보았을 때,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클로버들이 꿀과 함께 발라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클로버의 꽃말처럼. 세상 모든, 세상 모든 행복을 당신에게. 그리고 드디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의미에 대한 다케모토의 독백이 시작됩니다.


 처음엔, 첫눈에 반한데서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강인함이, 연약함이, 모든 것이, 내게 끊임없이 질문을 해 왔다. 당신은 누구?(나는 누구지?)하고. 필사적으로 뭔가를 찾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 여자 아이.

 - 나는 내내 생각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의미는 있을까 하고.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인가 하고. 이제는 알겠다. 의미는 있다.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하구미, 난, 널 좋아하길 잘 했어.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추억이 되는 날은 반드시 온다. 하지만, 네가 있고, 네가 있고, 우리가 있고, 단 하나의 뭔가를 찾던 그 기적같은 나날은, 언제까지고 달콤한 아픔과 함께 가슴 속의 먼 곳에서 영원히 그립게 빙글빙글 돌 것이다.



 저는 가슴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여러분 듣기엔 어떠세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