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서 개인적으로 이별이 아픈 이유를 크게 네 가지로 말해보았습니다. 그 네 가지란,
하나는 사랑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것,
두 번째는 내가 가장 가까이 지낸 사람과 쌓은 우정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이별의 과정에서 생긴 일들로 인해 지난 사랑의 시간까지 의심하게 되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상처로 인해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는 것이었어요.
(지난 포스팅이 보고 싶으시면 여기 →http://libertyanddiversity.tistory.com/entry/20-이별이-힘든-네-가지-이유-1부 )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슬프지만 대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견딜만한 일이었는데요.
좀 더 견디기 힘든 것은 혼자서 회복해야만 하는 세 번째와 네 번째의 이유입니다.
먼저 네 번째의 이유는 연애가 끝나면서 받은 상처가 자신이 가치 없기 때문에 그만한 대우를 받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어서 느끼는 감정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자존감에 상처를 입게 된 경우를 말하는 건데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라는 생각이 들면 자연히 ‘내가 문제인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고, 세상 일은 그럴 만 하니까 그렇게 일어난다는 생각이 우리 무의식에 존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 그것은 하기 쉬운 오해로, 내가 가치가 없어서 그런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게 아니어도 그런 일을 당하기도 하는 것이 세상일이 일어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죠. 다만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어떤 패턴의 행동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유도했을 수는 있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원치 않는 반응을 하기 쉽게 내가 상대에게 잘못 행동한 것뿐이지 자신이 가치가 없어서 그런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그 행동을 수정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가치를 의심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상황이 극단적일수록 겪기 쉬운 아픔인 것 같습니다. 가령 모르고 한동안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자기가 양다리 중 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결혼은 나 말고 다른 쪽 사람과 하더라는 사례가 있다고 해 보아요. (일전에 소개해드린 블로그에서만 보아도 의외로 많더라구요) 그러면 충격과 공포 속에서 ‘나는 선택할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우선 들 것이고, 사귀는 내내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던 건, 내가 그런 식으로 함부로 다뤄져도 좋은 사람이라서 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거기다가 결혼한 후에도 ‘그냥 만나자’며 전화가 온다면?? ‘나는 가볍게 그냥 만나도 되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겠죠. 사실 잘못은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가해자의 잘못이 무척 큰 건데도, 상황에서 피해자였던 사람이 가치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참 억울한 아픔입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그런 행동들을 계속 받아주거나 했다면 나를 함부로 대하도록 허락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내가 잘못 행동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앞서 말했듯 잘못 행동한 거지 내 자신이 그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요. 없는 것처럼 행동한 걸 수는 있지만요.
혹은 이 정도까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도 상처는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랑했는데 결국 잘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사랑했는데도 결국 끝까지 관계를 유지하게 못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보게 되겠지요. 거기에는 분명 원인이 있겠으나, 그 원인이 전부 자신 의 잘못인 것은 아닙니다. 혹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해도 그게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근거가 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기까지 생각이 오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긴 하겠지요.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힘들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이 부분도 친한 친구들이 조금 도와줄 수 있습니다. 여자 친구들이 특히 잘하는 것인데요, 무조건적인 위로가 필요할 때 네가 아까웠네, 넌 아주 매력 있는 여자네, 그 남자는 너를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했네, 세상의 반은 남자네 등등의 위로를 퍼부어주는 것이죠. 그렇다고 없는 얘기를 지어내는 건 아니지만 이때는 좀 더 과장해서 말하기도 합니다. 왜냐면 이 때 중요한 건 사실을 인식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거든요. (사실 인식은 나중에 친구 마음이 회복되고 난 다음에 해도 되니까요.) 그러면 친구들의 말이 혹 과장되거나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도 그것을 과장하고 거짓말하는 마음이 고마워서 자존감을 되찾게 됩니다. 아, 이렇게까지 해 주는 친구들이 있으니 난 사랑받을만한 사람이구나. 이런 거죠.
(근데 재밌는 건 남자들은 영 다르더군요? 물론 모든 남자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요... 여자들은 칭찬을 해주는데 남자들은 욕을 하더라구요. 병신 니가 그렇지. 꼴 좋다. 마시고 죽어. 뭐 이런? 그건 도대체 왜 그러는 거에요? 혹시 그래서 남자들은 실연의 상처를 잘 회복 못하는 겁니까??)
부가적인 얘기가 길어졌지만 어쨌든 네 번째 이유도, 그것은 자신이 그만한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혼자서 생각하기 어려우면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자, 그리고 나니까 이제 남은 것은 세 번째 이유였습니다.
이별이 아픈 세 번째 이유는 지난 사랑의 시간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연애를 했지만 상대가 나를 과연 사랑했는지 의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을 말합니다. 나를 사랑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 혹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지요. 오글거리며 표현해보자면 “정말 날 사랑하긴 했니?”의 아픔이랄까요?
이런 아픔은 이별의 과정에서 지난 시간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들 만한 일이 있었을때나(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폭언을 한다든가 무성의해지는 등 갑자기 바뀐 언행이나 태도로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일 때, 알고 보니 그 동안 나를 속인 점이 있다 등), 혹은 연애의 과정에서 상대방에게서 충분히 애정을 느끼기가 힘들었던 경우 등에서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더 이상(혹은 마지막까지)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느끼는 아픔 입니다. 그 사람을 믿을 수 없는 게 괴로운 이유는 함께 했던 시간을 통째로 부정당해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변해버렸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난 시간은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내가 극복해야 할 것이 되어 버리는 거지요. 이 와중에 네 번째 이유인 자존감에 상처입는 아픔이 섞여 들어가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네 번째 이유에서 들었던 양다리의 사례는 세 번째 이유를 겪게 되는 상황도 될 수 있겠습니다. 혹은 상대방이 이별을 막으려는 노력에 너무 소극적이라던가 하는 경우에도 이런 아픔을 가지게 될 수 있고요. 하지만 사례를 얘기하면서도 같은 경우라도 이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쉽게 믿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아픔을 느끼기 쉬울 테니까요.
그래서 이게 여러분의 공감을 살 수 있는 이야기인지는 자신이 없습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이 아픔이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괴로움이었습니다. 차라리 사랑이 끝났다는 것은 견딜 수 있었지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행복하다는 느낌을 끝내 받지 못하거나 행복하다고 믿었던 기억이 통째로 속은 기억으로 바뀌어버린 채 관계가 끝나는 것은, 그것을 바꾸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에서 더욱 힘들었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그 인식이 바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믿을 수 있어야 하는데 헤어진 후 그를 믿을 수 있게 되기가 쉬운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보통은 각자의 아픔 때문에 더 이상 교류가 없기 마련이라서요.
그래서 이별 후에 지난 시간에 대한 기억은 오직 자신만의 일이 되는 것이라 그 아픔을 극복하는 것은 오로지 내 마음에 달린 일이었습니다. 다른 누가 아니라, 내가 혼자 내 마음과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헤어진 후 너를 정말 사랑했노라는 고백도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선 사람의 마음보다 믿기 어려운 걸 보면 이 아픔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내가 납득할 때만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으로, 그렇기에 아무 도움 없이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이 아픔일 수도 있다고요. 그 기억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오직 나밖에 없다면 그 순간에는 조금이라도 진심이 있었다고 믿어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하고요. 그것이 다소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더라도, 다시 관계를 시작하려는 게 아닌 한 그 사실을 오해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으니까요. 게다가 나이가 들면서 좀 무뎌져서 그런지 진심으로 좋아했던 게 아니면 또 어떤가 라는 생각도 시간을 좀 가지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다고, 마음은 좀 아프지만,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아직까지는 앞으로 더 이상 볼일이 없을 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전제를 두고는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과 우정을 쌓을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그래놓고 보니 좋은 이별이란 사랑이 다 할 때까지 사랑하고, 헤어진 후에도 우정을 유지하려고 시도해 보며, 비록 헤어졌지만 나도 상대방도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며 지난 시간동안은 분명 사랑받았다고 믿을 수 있는 연애의 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지난 이별은 이 조건에 상당히 많이 부합하는 이별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잘 맞지 않는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게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에서의 차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끝까지 함께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구요. 하지만 워낙 서로를 마음 아프게 하거나 잘못한 일이 별로 없었던 사이였던 데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한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게 해 주었던 사이어서, 혹시 그 차이가 좁혀지지는 않을까 하고 꽤 시간을 가지고 노력해보았지만 그러는 중에 사랑의 감정이 다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결국은 더는 노력할 여력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헤어지는 때에는 최대한 상대방이 자존감에 상처받지 않도록 서로를 배려하며 이별의 말을 하였습니다. 게다가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어요. 정말 좋은 사람이라서 아까웠거든요. 그 사람 역시 다시는 저 만한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아쉽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진심으로 서로의 행복을 빌었지요.
이별 후 결국 친구로 남았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사람을 만나셨기에 오래 우정을 쌓을 시간은 주어지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귀기 전에 새로 만난 사람에 대해 저에게 이야기 해 주었고 결국 사귀게 되었을 때는 제가 진심으로 잘됐다고 축하해주었어요. 그 분은 자신의 여자 친구를 불안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는 분이고, 저도 그분의 여자 친구가 싫어할 만한 행동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축하 이후로 서로 굳이 연락은 더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연락이 오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 짧은 와중에도 충분히 우정을 느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것은 이분과의 이별에서 아픔이 적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아프면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거나 배려하기가 더 힘들어지니까요.
너무 아픈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는 노랫말은 그래서인가 봅니다. 그래서 공지영 작가는 딸에게 좋은 이별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연애하라고 했는가보아요. 좋은 이별을 할 수 있는 연애를 하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연애는 언제 다시 하게 될까요? ...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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