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16. 08:30
엄마를부탁해(교보문고30주년기념특별도서양장본+친필사인)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신경숙 (창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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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엄마 말고 그녀


오늘 제가 소개드릴 책은.. 너무 유명하죠? 그래서 사실 쓸까말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소설이라면 오만상을 찌푸리는 동생녀석이 읽어보겠다고 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아 이렇게 오늘의 주인공으로 모시게 되었답니다. '엄마를 부탁해'란 제목부터 사실 제 취향은 아니었어요. 뭔가 가슴찡한 이야기는 웬만하면 좀 피하고 싶어하거든요. 그래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죠? 며칠 전 아마존 닷컴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문학, 픽션 부문 베스트10에 오르기도 하고! 무엇보다 신경숙 작가님도 무지 좋아해서.. 결국 책장을 펼쳤습니다. (그 전에 신경숙 님의 이야기를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살짝!)


올해 봄, 한 미국의 교수가 미국 라디오 방송에 나와 '엄마를 부탁해'를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죠. '김치냄새 나는 크리넥스 소설'이라며 엄마가 불행한 이유가 남편이나 자식들 탓이란 것은 미국 문화와 맞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비평보다는 비난에 가까워 저조차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요. 그 교수는 한국사회가 얼마나 많은 눈물과 희생 속에 세워져왔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나봅니다. 그래서 이런 소설이 더더욱 필요했던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으흐흐. 여러분께도 추천! 우리 모두 효도합시다! (급마무리ㅋ)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란 의미심장한 첫 구절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지하철 역에서 실종된 엄마를 찾는 과정에서 진짜 엄마의 삶과 욕망,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가족들의 여정을 그립니다. '엄마'는 언제부터 엄마의 이름 '박소녀'가 아닌 '엄마'로만 불리게 되었던 것일까요? 이 책은 무척이나 일관성있게, 꾸준하게 이 질문을 던집니다. 모든 슬픔과 아픔으로부터 우리를 감싸안는 엄마 말고 꿈도 있고 두근거리는 사랑도 있던 한 인간의 삶이 있었다고 말해줍니다.

나는 엄마처럼 못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딸인 내가 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고독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그런 부당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엄마를 부탁해' 262p)


아이들 챙기느라 꽃단장 한번 제대로 못 해보신 엄마도 예전에는 깔끔떨던 소녀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엄마의 삶을 조금씩 삼켜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 삶의 조각들을 자양분 삼아 성장해가는 것은 아닌지.. 사실, 무조건적으로 삶을 내어주고 희생을 불사하는 전통적인 어머니상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요즘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신세대 어머니들도 많으시니 '엄마는 부탁해'에 공감하는 세대는 생각보다 나이가 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점에서 더더욱 기억해야할 그분들의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너를 도시에 데려다주고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밤기차를 탔던 그때의 엄마의 나이가 지금의 네 나이와 같다는 것을 너는 아프게 깨달았다. 한 여자. 태어난 기쁨도 어린 시절도 소녀시절도 꿈도 잊은 채 초경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혼을 해 다섯 아이를 낳고 그 자식들이 성장하는 동안 점점 사라진 여인. 자식을 위해서는 그 무엇에 놀라지도 흔들리지도 않은 여인. 일생이 희생으로 점철되다 실종당한 여인. 너는 엄마와 너를 견주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한 세계 자체였다. 엄마라면 지금의 너처럼 두려움을 피해 이렇게 달아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 275p)


'일생이 희생으로 점철되다 실종당한 여인', 하지만 '한 세계 그 자체'였던 '엄마. 당신을 태초부터 품었던 그녀의 자궁, 그 동그란 세계에서 태어나 그녀의 삶을 딛고 성장한 우리의 삶. 이 소설의 의미 있는 이유는 너무나 당연해서 특별한 줄 몰랐던 '엄마'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더욱 유의미하고 고마운 책이었어요.

오늘의 우리들 뒤에 빈껍데기가 되어 서 있는 우리 어머니들이 이루어낸 것들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 가슴 아픈 사랑과 열정과 희생을 복원해보려고 애썼을 뿐이다. 이로 인해 묻혀 있는 어머니들의 인생이 어느 만큼이라도 사회적인 의미를 갖기를 바라는 것은 작가로서의 나의 소박한 희망이다. ('엄마를 부탁해' 작가의 말 중에서)


어떤 구절보다도 긴 여운을 남기는 '작가의 말'이죠? 단순히 어머니의 정을 이야기하고 우리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의 삶이 얼마나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이었는지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