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12. 08:30
왜나는너를사랑하는가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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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사랑은 '하는' 것이지만, 가끔은 '생각'해도 좋아요

* What's the story?
드디어 알랭 드 보통 입니다. 사실 오늘 페북에서 훈석님의 '알랭 드 곱빼기' 드립에 껄껄 웃다가 이 리뷰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답니다. 사실 저는 보통씨의 big fan은 아닙니다. 이거슨 말 그대로 개취입니다. 애니웨이, 이 책은 그가 고작 스물세 살일 때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지요. 사실, 이 책의 주제 자체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전인류 제1의 관심사입니다. 바로 '사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는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 놀라운 기적으로부터 점차 시들해지는 과정, 그리고 이별까지, 남녀의 심리와 그 메커니즘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인문학적 지식, 철학적 사유, 통찰력이 빛나는 책이죠!


* My story is..
저는 자타공인 '연애주의자'입니다. 그게 꼭 남자친구 없으면 뒤진다는(수준이 낮은 표현 죄송합니다) 뜻은 아니고 (솔직히 그것도 사실입니다만..) 그게 연인이든 친구든 연예인이든 누군가를 굉장히 열렬하게 좋아하고 있어야 행복을 느낀다는.. 뭐 그리고 '연애' 자체를 무척이나 즐기기 때문이죠. 최선을 다해서 뒤끝이 없는 열정적인 인간입니당.

그래서 저는 연애에 대해서 논하는 글들은 잘 읽지 않는 편이에요. (화요일의 연애칼럼 '나영이'는 성실히 읽고 있어요!) 연애 행위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에 회의적이기도 하고, 케바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치만 고요하고도 독특한 일본 로맨스소설이나 달콤쌉싸름한 로코, 섹스앤더시티 같은 독한 연애사는 좋아하니, 이거슨 아이러니.. '연애시대'나 '내 이름은 김삼순'은 진짜 진리! 오늘은 기분도 센치한 것이.. 그냥 책 얘기는 쪼꼼만 하고 수다 좀 떨겠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일이 이렇게 빨리 일어나는 것은 아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 선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구가 해결책을 발명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출현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대개는 무의식적인] 요구, 사람의 출현에 선행하는 요구의 제 2 단계에 불과하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갈망이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을 빚어내며, 우리의 욕망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구체화된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24p)

제 주변에도 수많은 연애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자기는 아니라고 손사레를 치는 친구도 있고, 담담하게 인정하는 사람도 있죠. 각자의 이상형도 천차만별인데요. 친구 N양은 중학교 시절부터 '자신만의 철학이 있고 다정다감한 사람'이 좋다고 하더니 매번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 스타일에 빠지는 일관성을 보이는가 하면, H군은 소녀시대 태연양처럼 '애교많고도 털털한 스타일'을 이상형이라 하더니 진짜 고대로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갈망이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 즉 '이상형'을 빚어내긴 하지만 막상 그 외에도 수많은 우연들이 작용하죠. 사실 그렇잖아요. 100개의 조건 중 99개를 가지고 있어도 1개 때문에 안되는 인연이 있지만, 1개만 갖고도 99개를 잊게 하는 관계도 있고.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식이가 희진이 아닌 삼순에게 빠진 이유도 마찬가지겠죠. 드라마 아니냐구요? 주변에도 이해 안 가는 커플들 있지 않으신가요? 제 주변엔 많.. '뉴논스톱'에서 경림-인성 커플과 짱나라-구리구리 커플이 큰 인기를 끈 것도 판타지와 공감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무튼 제 생각에 그 선후관계는 늘 케바케인 것 같습니다. 어쩌다~ 이상형과 정반대인 연인과 사랑에 빠지다가 후에 그에게 '이상형'이 되도록 무언의 압박을 가하기도 하고 조련 아닌 조련을 하기도 하고. 어쨌든 연애는 수많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만큼은 불변의 진리겠죠! 그리고 연애란 행위, 관계는 무지 정치적입니다. (그 점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돼요!)

서양 사상에는 결국 사랑은 보답받을 수 없는, 일방적으로 사모하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작용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오래 되고 우울한 전통이 있다. 사랑이 보답받을수 없기 때문에 욕망은 더 커진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랑은 방향일 뿐 공간은 아니다. 목표를 성취하면, '침대에서건 어떤 식으로건'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면 소진되어버린다. 12세기 프로방스의 음유시인들의 시는 모두 성교를 미루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인은 되풀이하여 남자의 간절한 제안을 거절하는 여자에게 탄식을 늘어놓는다. 4백 년 뒤의 몽테뉴 역시 무엇이 사랑을 자라나게 하느냐에 대해서 그 시인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몽테뉴는 말했다 "사랑에는 우리를 피해서 달아나는 것을 미친 듯이 쫓아가는 욕망밖에 없다" 아나톨 프랑스 역시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을 사랑하는 것은 관례적이지 않다"는 말로 같은 입장을 보여주었다. 스탕달은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기초로 해서만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드니 드 루주몽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가장 넘기 힘든 장애를 가장 좋아한다. 그것이 정열을 강하게 물태우는 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는 욕망을 정의상 얻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으로 한정시켰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82p)

제가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입니다. 마르크스주의, 몽테뉴, 롤랑바르트가 등장했다고 해서 좀 당황스러우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별로 난해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가 무척 가깝게 느끼는 행위, '밀당'과 별 다르지 않은 이야기니까요. 사랑의 욕망을 소진하지 않기 위해서는 '목표'가 늘 존재해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사랑은 방향일 뿐 공간이 아니란 이야기가 참 재수없으면서도 일견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영원한 사랑'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냥 그래도, '우리 결혼했어요'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많은 시청자들은 각 커플에 자신들을 대입해보면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서인영 씨가..) 개인적으로 알신(알렉스-신애)커플에는 영 마음이 가지 않았는데, 그때는 제가 너무 어렸었나봐요. 그땐 알렉스가 너무 느끼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예쁜 노력이 많았던 것 같아요. 더 가까워지려고, 설렘을 잃지 않으려고. 물론 그런 노력이 남성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역시 '우결'이죠? 실제 커플인 황정음-김용준 커플입니다. 소녀시대 무대의상을 예쁘게 차려입고 엘리베이터의 매층마다 춤을 춰주는 정음씨! 제가 봐도 너무 예쁘더라구요. 남자 쪽이 확 빠질 수밖에 없는 이벤트 중 이벤트였어요. 이처럼 뻘쭘하고 영 어색한 커플 초기에도, 서로 집에 수저가 몇 갠지 빠삭하게 아는 오래된 커플 사이에도 노력은 늘 필요합니다. 그게 꼭 이벤트가 아니라도요.

그녀는 낭만적인 것을 비웃는 데다, 감상적인 것을 배격하는 데에, 사무적인 태도를 취하고 거리감을 보이는 데에 약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정반대였다. 이상주의적이고, 몽상적이고, 베풀려고 하고, 입으로는 질질 짜는 것이라고 배격하는 모든 것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71p)

그러고보니 온통 다른 이야기들을 했네요. 원래 제 얘길 좀 나누고 싶었는데! 그래서 알려드리는 저란 인간.. 바로 위 부분은'공감'의 부분입니다. 과거의 모습입니다만.. 간지러운 것은 피하려고 하고 그 '쿨함'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뭐 차도녀까지는 아니어도 그랬어요! (* 아래 그림은 네이버 웹툰 '삐뚤빼뚤해도 괜찮아'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어제 저녁에 '이상형 찾기' 어플을 갖고 놀다 남자친구랑 나눈 이야기인데요.. 사귀기 한참 전에 남자친구가 "애교가 짱이지~"라고 할 때마다 제가 "난 애교 한 개도 없는데?"라고 했거든요. 남자친구는 속으로 '어쩌라고'라고 했다지만.. (이 자식이?) 지금 저는 진짜 '토할 것 같은 애교의 대명사'에 다름없습니다. 남자친구도 상남자 st 인데 저보다 더 심해요.. 인생이 참 그렇더라구요 ㅋㅋㅋㅋ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이전과는 영 다른 모습으로, 혹은 자신도 모르는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민망돋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흥미롭고도 씬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헛소리만 지껄인 이번 포스팅이 민망해서 마지막은 보통씨의 인터뷰로 대신할게요.

한국이 보여줄 새로운 사랑의 방식은?

작가로서 나는 사랑이란 주제에 매력을 느낀다. 당연히 이것은 내가 한국의 지인들과 토론하고 싶었던 분야다.(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삶에 대한, 솔직하고 개방적인 통찰을 전해준다) 한국인들의 감성(heart)은 서구의 낭만주의(Romanticism)와 아시아의 유교적 전통 사이의 교차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태는 한국 문화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하곤 한다. 유교의 가르침은 가족을 개인적 성취보다 중히 여기고, 의무를 성적인 쾌락에 우선시하며, 시비를 가리기보다는 (연장자에 대한) 존경을 앞세우라고 한다. 낭만주의는 완전히 상이한 관점에서 출발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적·감정적 친밀함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서구인들은 (꽤 이른 나이부터) 자신의 천생연분(soul mate)을 만날 때까지 여러 사람과 사귀어보려 한다. 같은 맥락에서 만약 성적인 측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이혼이 해결책이 된다.

내 생각은 이렇다. 유교든 낭만주의든 제도 자체는 문제없이 작동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두 가지를 섞으려 할 때 생긴다. 낭만주의는 다음과 같은 전제를 필요로 한다. 개개인은 ‘성적인 실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훈련받아야 한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쉽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결혼관계를 끝낼 수 있어야 한다.

유교적 전제조건은 이렇다. 여성은 가정에 머물러야 한다. 남성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가장이며, 집안일을 도울 필요도 없다. 부부 사이에 감정적 거리가 있더라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이혼은 최후의 수단이다. 나는 내 한국인 친구들이 두 가지 가치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결과적으로 두 기준의 불합치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할 이유도 있다. 동과 서, 옛것과 새것 사이의 긴장으로부터 사랑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서구 세계는 사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것이 많다. 아마도 한국이 사랑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a new nuanced attitude)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 출처는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 입니다. 알랭 드 보통의 '내 사랑 한국인들에게'란 기고이구요. 위 글은 오늘의 주제와 어울려서 발췌한 부분이구요, 전문을 읽고 싶으신 분들은 요기 링크를 타세요! → http://news.donga.com/3/all/20111007/40929595/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