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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열일곱의 내게는 별다섯개
일본소설에 문외한인 분이라도 '에쿠니 가오리'란 이름은 한번쯤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쪼오기 어떤 책이든 프로필 사진이 딱 박힌 띠지를 두르고 있어서 그녀의 서늘한 옆모습을 본 적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네요. 그것도 아니라면 '냉정과 열정사이' 원작소설가라고 하면 어떠신가요? 네, 옆모습에 자신있는듯한 저 여자의 이름이 '에쿠니 가오리'입니다.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일본이 자랑하는 3대 여성작가이기도 하구요.
에쿠니 가오리는 여성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여성작가입니다. 그녀는 수필가인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예민한 감수성과 특별한 일상을 잘 반죽해내는 솜씨를 가진 작가로 성장했죠. 사실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예민하고 사랑스러운 여성, 꼭 그녀를 닮았습니다. 특히 제가 사랑하는 주인공은 바로 이 작품, '반짝반짝 빛나는'의 쇼코입니다.
쇼코는 번역가로 일하며 알코올에 중독돼 있습니다. 그녀가 결혼한 남자, 무츠키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에겐 남자친구가 있죠. 이상하다구요?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그들의 세상은 온화하고 고요하게 흘러갑니다. 조금씩 결핍이 있는 그들이기에 오히려 더 서로를 잘 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말투로, 쇼코는 그렇게 말했다. 추위와 더위 때문에 죽어가는 초식성 사자!?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우물쭈물거리고 있는데, 쇼코가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무츠키들은 은사자 같다고,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라고 말했다.
쇼코의 눈에, 무츠키와 그의 연인 곤은 남들과는 다르지만 아름답고 연약한 은사자처럼 보입니다.
이런 느낌일까요? 후후 무튼, 열일곱살에 이 부분을 읽으며 제가 느낀 것은 애매한 공감이라기보다는 위로였습니다. 부족하고 약하고 남들과 다른 존재라고 해도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기뻤던 것 같아요. 소수일지도 모를 다름을 바라보는 에쿠니 가오리의 따뜻한 시선이 은색으로 빛나는, 예쁜 부분입니다.
"너희들 일은 잘 모르겠다만. (…) 하지만 나한테는 며늘아기도 은사자처럼 보이는구나."라고 말하고, 또 조용히 웃었다.
왠지 웃음이 지어지는 부분이죠?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그리고 스무살까지 에쿠니 가오리의 이야기, 야자와 아이의 만화, 자우림 김윤아 씨의 노래들은 그야말로 저와 제 친구들의 멘토였습니다. (공감하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ㅋㅋㅋㅋ ) 그래서인지 그 수많은 자기개발서들에는 도통 손이 안 가고 소설책을 고집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제게는 이야기들이 더 큰 위로가 되어줘왔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한 결과죠.
이 책은 워낙 유명하고,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 제가 굳이 소개드리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AGAIN 2002, 열일곱의 제 자신을 그리워하며 추억 속에서 이 책을 꺼내왔습니다. 침대 맡에서, 혹은 쇼코처럼 목욕을 즐기면서 읽고 또 읽고 훌쩍거리기도 하고 실실 웃기도 하며,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시절을 함께 보내준, 응원해준 멘토를 여러분께도 소개드리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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