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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11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에게 7
  2. 2011.09.16 도가니, 공지영 9
2011. 11. 11. 07:04






수능을 마친 고3은 말년병장, 방학한 초딩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잉여로운 존재에 속합니다.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후 몇 주, 혹은 몇 달간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이 족속들은 하루 24시간을 놀고먹는 데 투자합니다. 수능 보기 전에는 불안해하면서 놀았지만 이제는 그 최소한의 불안마저도 털어버리고 펑펑 놉니다. 수능을 잘 본 학생이든 못 본 학생이든 맘놓고 놀아제끼는 점에서는 요플레를 먹을 때는 부자든 가난한 자든 뚜껑부터 핥는다는 만인평등사상이 떠오릅니다.





어찌 보면 그들은 수능에만 올인하고 그 외에는 신경을 꺼버리는 개탄스러운 한국 교육 현실의 주인공이자 피해자들입니다. 수능이 끝나도 고등학교 교육은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끝이 아니지만, 수능을 마친 고3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대다수의 학교가 단축수업을 실시하며 그마저도 수업을 안 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무단 결석생이나 무단 조퇴생이 대거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 고3들의 잉여스러움에 대한 지적이 여러 분야에서 터져나오면서 학교 차원에서 문화탐방을 하거나 영화관람을 하는 등의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뻘짓이나 시간 때우기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듯 수능이 끝났다고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수능 이후에도 적성검사, 논술, 면접 등 각종 '시험'들이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수험생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학교의 수많은 아해들을 포함한 70만 수험생들은 그딴 건 나중에나 신경 쓸 문제라며 일단은 노는 것이 지상과제인 양 행동을 합니다.






거센 바람을 등지고 인생의 또 다른 출발선 앞에 선 고3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혹시 지금 수능 채점지를 손에 쥐고 울고 있나요? 앞으로의 일들은 나 몰라라 뒤로하고 잠시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나요? 그대들에게 고합니다. 훌훌 털고 당장 떠날 것을요. 지금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상을 탈출할 기회는 남은 일생 동안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곧 있을 점수발표에 연연해 반 답답함과 반 홀가분함으로 어영부영 날짜를 세고 있기엔, 피시방이나 당구장, 노래방에 갇혀 소비적인 문화에 집착하며 또 다른 쳇바퀴를 돌고 있기엔, 고3의 피 끓는 청춘과 두 달 남짓 남은 학창시절의 추억거리가 아깝지 않은가요.







 

물론 일상을 탈출한 뒤에 즐기는 시간들이 일상에서의 그것과 똑같다면 곤란합니다. 그동안 묶여있고 매여 있었던 이 도시를 떠나 넓은 대자연을 앞에 두고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골똘히, 수능 공부할 때보다 더 치열하게,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이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삶의 지향점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곧 어른입니다. 지금까지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받던 보호는 끝났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할 결정들은 온전히 여러분의 몫입니다. 부모님, 선생님 혹은 다른 사람들의 조언은 듣되, 자신의 생각과 그분들의 생각이 다르거든 자신의 생각대로 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어른들 말씀 들어 나쁠 건 없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어른들의 말씀대로만 행동할 것은 아니지 않나요. 이미 여러분들은 20년 가까이 말 잘 듣고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고 기대에 맞춰드렸으니 이제부터는 그들의 기대를 조금씩 거부해보길 권합니다. 그렇게 한다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면서 스스로 자라는 것입니다. 곧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진 자기가 원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어른들이 바라는 것이었다는 것을요. 이제부터는 자신만의 욕망을 욕망할 것을 권합니다.




 






독립은 자신이 가장 빠르게, 확실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독립하길 권합니다. 20년 동안 부모님 아래에서 먹고 자고 다 했지만 이제부터는 스스로 해나가야 합니다.  등록금 천만원 시대에 그 돈을 전부 벌 수는 없지만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나가기를 바랍니다. 기숙사비든, 하숙비든, 자기만의 공간은 자기 돈으로 시작해 채워나갈 것을 권합니다. 과외도 좋고 알바도 좋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꾸리게 되면 정신적으로도 독립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것입니다.





 

꿈을 가질 것을 권합니다. 어떤 직업을 가져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토익점수를 높이고 어학연수를 가고 스펙을 쌓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꿈이 아니라 목표입니다. 여러분 말고도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똑같은 목표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개미 무리의 병정개미 같은 사람이 되지는 않기를 희망합니다. 제가 말하는 꿈은, 정말 대책 없어 보일 만큼 낭만적인 그런 꿈입니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사람들 행복의 총량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 '차별 없고 부조리 없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이런 것처럼 한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하면 아주 조금 움직일 수도 있는 그런 초대형의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오노 요코가 말했습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요. 이루어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가슴에 간직하고 끊임없이 꿈꾸는 것, 그리고 그것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저는 우리 소중한 고3 학생들이 꿈꾸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년 동안 대단히 수고 많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세상입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16. 22:49
도가니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공지영 (창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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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진실과 마주하지 않고는 어른이 될 수 없다
* My story is...
언젠가부터 책은 인터넷을 통해 구입했다. 세일 폭이 넓기도 하고 복작복작한 서점을 피해 여유롭게 고를 수 있는 데다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리뷰나 추천평을 참고할 수도 있어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대신 잡지를 사러가거나 기대되는 신간을 직접 보거나 만지고(?) 싶을 때는 한적한 동네서점으로 향했다.

2009년 여름, 나는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정류장에서 내려 바로 서점으로 들어가 신간코너에 섰다. 그리고 공지영,이란 작가의 이름만 보고 책을 집어들었다. 어떤 사전정보도 없이 너무나 충동적으로 책을 구입했던, 참으로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만약 대충이라도 줄거리를 알았다면, 어쩌면 난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학대당하는 이야기는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처음부터 책장을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모른 채, '도가니'의 첫 장을 넘겼고..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읽는 동안은 분노와 두려움에 휩싸였고 읽은 후에는 정말 실화인지 검색을 해봤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덕분에 아주아주 오랫동안, 불쾌한 기분은 지속됐다.


* What's the story
이야기의 배경은 무진에 있는 청각장애인 학교인 '자애학원'이다. 주인공 강인호는 이곳의 기간제교사로 근무하게 되는데, 아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그는 부임 첫 날 듣게 된 비명소리를 계기로 자애학원의 아이들을 옥죄고 있는 거대한 폭력의 실체에 가까워져 간다. 폭력성을 내재한 권력, 그것은 온전히 '가진 자'들의 것이었고, 현실은 안개가 자욱한 무진처럼 진실을 가리고 지운다.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도가니, 165p)




강인호는 대학선배, 무진인권운동센터의 간사인 서유진을 비롯해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자애학원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폭력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교육청과 경찰서는 물론이고 교회, 시청까지 온갖 기득권 계층에 의해 다시 한 번 짓밟히고 만다. 자애학원의 이야기는 숨막히는 무진의 안개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만 있는 도가니 같다. 아이들은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채 시들어간다.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에너지의 두 배라고 한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를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거짓말의 합창은 그러니까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어서 맑은 하늘에 천둥과 번개를 부를 정도의 힘을 충분히 가진 것이었다. (도가니, 246p)

 


공고한 기득권 층에 의해 묶이고 파묻힌 진실, 피흘리는 사람들.. 2010년에 개봉된 영화이자 웹툰(원작)이기도 했던 '이끼'가 떠오르기도 했다. 가진 자들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가지고자 한다. 자애학원이란 작은 공간은 결국 우리네 사회의 축소판인 것이다.

맨 처음 이 소설이 영화화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큰 충격이기도 했다. 실제 사건의 피해자들, 또 그들을 연기할 아이들도 염려됐고, 상업적인 시각으로 그려진 작품이 될까봐 걱정이 앞섰다. 2년만에 다시 마주할 진실, 내 자신은 부끄럽기만 해서..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도가니' 개봉은 이번달 22일. 내 걱정은 과한 노파심에,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다고 비웃기라도 하듯이- 용감한 영화로 와주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진실을 향해 자욱한 안개를 헤치고 걸어나오는, 그들의 용기를 만나고 싶다. 어른이 되고 싶다.

(영화 '도가니' 예고편)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