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타우로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1.22 강릉 좌파 2
2012. 1. 22. 19:31

1.

 

오랜만에 서점에 들렀습니다. 베스트 셀러 코너에 있는 책 한 권의 이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강남좌파'.

 

기존의 좌파들이 주로 서민과 노동자 계층에 속하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했다면, 최근에 등장하는 좌파들 중 일부는 강남에서 풍족한 생활을 하며 8학군에서 공부했다는 특징을 지닌다고 합니다. 이들을 강준만 교수는 '강남좌파'라 명명했습니다.

 

이들은 경제개발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은 계층임에도 정치와 문화적인 측면에서 기존의 권력을 비판합니다. 또한 노동자와 소수자들, 여성의 인권에 큰 관심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기존의 좌파들에 비해서 경제적인 결핍이나 소외를 그다지 느끼지 않고 성장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점을 지닙니다.

 

 

 

 2.

 

저는 강남이 아닌 강릉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생각 없이, 그저 학교에서 배우는 거나 열심히 받아적다가 강릉을 떠난 저는, 대학에 들어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었습니다. 

 

여러 좋은 선배들의 영향을 받으며, 농활을 가고,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마르크스 계열의 사회학책과 문학이론서들을 접하면서, 문학과 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저는 당연하게 여겼던 지난 세월의 생각들과 심한 괴리감을 느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시고. 어머니는 보험설계사이십니다. 집이 부자인 것은 아니지만, 잘 나갈 때에는 억대 연봉을 받았던 슈퍼 우먼 어머니의 덕으로 저는 풍족한 대학생활을 누렸습니다. 전산실 근무, 입학처 알바처럼 용돈 벌이에나 신경을 썼을 뿐, 등록금 걱정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수 있었고, 책 살 돈을 걱정하지도 않았으며, 사고 싶은 물건들은 거의 다 살 수 있었습니다. 

 

 

 

3.

 

고3 시절, 저는 당연히 좋은 대학에 가야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스카이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 시기가 잠시나마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강대학교에 와서 만난 선배들과 동기, 후배들, 그리고 책들은 제 시각에 상당한 드라이브 효과로 작동했습니다. 

 

돈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타인의 시선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보고 겪고 배운 것과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저는 상당히 많은 부분에 대해 속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4.

 

대학에서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같은 강의실에서 매일 마주하는 친구들 중에서도 하루하루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교사 월급으로는 평생을 한푼도 안 쓰고 모아도 못 사는 아파트에는 사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도 저도 아니었던 저는 늘 흔들렸습니다. 

 

혼란스러웠던 1학년 시절에는 사람을 만나면 둘 중 하나를 경험했습니다.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거나. 저는 누구를 만나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예스맨이 되었습니다.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들의 말에 절반쯤은 수긍했습니다.

 

 

 

5.

 

서울, 그 중에서도 강남에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풍요롭게 살아온 친구들에게, 저는 강원도에서 올라온 시골뜨기였습니다. 강릉에서 우리 집은 중산층 이상에 속했지만, 서울의 친구들이 보기에 저는 서민 중의 서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선생님이고 어머니가 보험을 하시면 살기가 힘들지 않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습니다.

 

한편, 정말로 반대의 환경, 이를테면 시골에서 자라고 홀로 상경하여 낯선 서울에서 등록금과 용돈을 벌려고 아득바득하는 친구들에게는 제가 도리어 부르주아로 비춰지곤 했습니다.

 

내일의 걱정이 당면한 문제가 아닌 점, 먹고 싶은 음식은 다 먹고 사는 것, 일주일도 거르지 않고 당구를 치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도서관에서 빌리지 않고 거의 다 사는 것 등등, 그들의 눈에 저는 영락없는 부르주아였습니다.

 

 

 

6.

 

언젠가 술 취한 후배가 울면서 제게 했던 말은 한동안 큰 상처로 머물렀습니다.

 

"형은 먹고 살 걱정 안 하잖아요. 아르바이트도 안 하잖아요. 형이 야학을 하거나 농활을 가고 진보적인 잡지나 글을 읽는다고 뿌리가 바뀔 것 같나요? 배고파본 적 있어요? 저는 형처럼 야학을 하거나 책을 사서 보지 못해요. 야학할 시간에는 돈 벌어야 되고, 형이 밥먹듯이 사는 소설책 값은 내 한달 밥값이에요."

 

그 때, 저는 속으로 많은 울음을 삼켰습니다. 그 후배에게 제가 어떻게 보였는지에 관하여, 그리고 내 나름의 고민을 말하지 못하고 삭혀야 되는 것에서, '나보고 어쩌라고?'하는 당황함과, 좀 더 치열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동시에 밀려오는 기분은,

 

지금도 회상할수록 마음 한 쪽이 아려오기만 합니다. 그 얘기를 또 다른 강남부르주아 친구들에게 하면, 그들은 신경 끄라는 충고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 얘기 듣고 상처 받으면 죽어야 된다고.

 

가슴 아픈 건, "신경 끄라"는 친구들의 말에도 열 받고, 그렇게 절반 쯤의 오해를 받는 스스로에게도 화가 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부르주아도 아니고, 정말 어려운 사람도 아니라는 사실. 나 자신은 어디에도 완전히 공감할 수 없다는 사실.

 

 

 

7.

 

부유하거나, 없이 지내거나, 그 중간이거나와 무관하게, 세상에 진보적인 시선으로 응시해야 할 가치들은 많습니다. 이를테면 부당한 권력과 언론, 온갖 왜곡과 곡해, 차별들. 그것들과 싸우거나 바꾸는데 있어서 계층이 꼭 문제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8.

 

대기업에 다니거나, 외국에 유학을 가거나, 법조인이 되거나 의사가 된 친구들에게는 좌파로 비춰지고, 대학에서 만난 몇몇 이들에게는 부르주아로 비춰지는 이중의 시선에서 늘 당황스럽습니다.

 

서울에서 만난 강남 출신 친구들의 보수성향, 성공강박증에 걸린 아줌마들, 그리고 그 배 튀어나온 욕심쟁이 아줌마들의 자식들, 철없이 소비에 몰두하는 된장녀들을 가차없이 비판하면서도 그들의 문화에 일정부분 익숙한 것. 차별받는 소수들의 시선과 '자유'라는 문학의 기본정신에 깊이 동감하면서도 그것을 내 삶의 전체로는 확대하지 못하는 것.

 

 그 사이에서, 늘, 흔들립니다.

 

 

 

9.

 

스무살 초반에 인문학을 택하지 않고 경영학과에 갔다면 지금쯤 저는 스스로를 자학하거나 당혹감을 느끼지 않고 조금은 가뿐하고 자유로워졌을까요. 그랬다면 약간의 권태를 고급문화로 소비하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을까요.

 

 

 

10.

 

그렇다면, 지금의 저는 무엇일까요. 계층도, 입장도, 관념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머리와 몸통이 따로 노는 켄타우로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