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16. 10:00

 




바람조차 숨을 멈춘 고요한 밤

붉은 벽돌상자에서 쏟아지는 학생들
꿈과 희망으로 가득해야 할 그들의 어깨
무거운 책가방에 짓눌린다

지치고 가엾은 어린 영혼들
입시라는 벽에 부딪히고
푹 숙인 고개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숨과 눈물 뿐이다


자유를 찾아 떠난 아이들
낙오자로 지탄받고
친구를 짓밟고 올라서는 자
모범생으로 칭찬받는다


오늘도 칠판 한 귀퉁이에서
자꾸만 줄어드는 숫자를 보며
대학이라는 포장지가
우릴 멋지게 싸주기만을 기다린다



詩라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위의 글은,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야간자율학습을 하다 감정에 북받쳐 쓴 것입니다. 저렇게 공부를 싫어하고, 학교 교육을 불신했던 제가 지금은 강원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실의 풍경은 비슷합니다.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은 몇 되지 않고, 그 학생들조차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라는 답을 들은 뒤에, 그럼 왜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지 질문을 던지면 멈칫합니다.
 


몇 년 전 수능시험에서의 부정행위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현재의 시스템에서 대학 진학은 생존에 직결된 문제고, 학생들의 신분을 결정합니다. 어느 대학을 나오느냐 하는 것은 인생이 걸린 일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이 경쟁에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의 본래 의미인 자아실현과 자기계발은 사라지고 1점이라도 더 얻기 위한 경쟁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정행위가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인간의 능력은 무수히 다양합니다. 교육이 정상화된다는 것은 각자가 가진 다양한 소질을 다양하게 계발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은 한 가지 방식으로 줄을 세우고 모든 학생들이 시험 선수가 되길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교육의 부조리와 경쟁력 저하의 원인입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시험선수가 돼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대학서열화, 고교등급제, 본고사부활, 기여입학제 등을 주장하는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에서 경쟁을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십 년간 지나온 역사를 볼 때, 시장에서 나오는 결과란 다양성이 아닌 독점이었습니다. 교육기회의 독점이고, 사교육의 독점이고, 학벌의 독점이고, 그것이 곧 부의 독점이 되며 신분의 독점이 되어왔습니다. 경쟁이란 모두가 대등한 상황에서, 독점이 없는 상황에서 서로가 다양성과 역동성을 갖고 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학교들은 서열화되어 있지만, 서울대학교와 강원대학교 사이에는 아무런 경쟁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경쟁을 통해서 교육의 효율성을 창출한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처럼 많은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처럼 대학수학능력이 부족한 학생들도 없습니다. 그것은 경쟁이 없어서가 아니라 경쟁이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다양한 경쟁이 아닌, 획일적인 시험 경쟁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은, 부모님들은, 어른들은, 주어진 사회가 요구하는 자질과 태도를 갖춘 기능적인 사람,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 중에서도 상위 그룹에 속하는 사람이 될 것을 주문하십니다. 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서열화 기준을 그대로 내면화하여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를 향하여 매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진정한 내면'을 배울 기회를 놓칩니다. '자아 발견' 내지 '자아 재발견'에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점수가 높아 사회적으로 성과를 인정받거나 부모님의 칭찬을 받는 순간 우리는 '아 내가 잘하고 있구나. 역시 나는 위대해!'하고 자위하며 '가짜 자아'를 확인합니다. 그러나 갈수록 내면은 공허해집니다. 자기가 살아가는 모습은 부모나 가족, 회사가 원하는 모습이지 결코 진정으로 내면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어릴 적부터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내면이 말하는 대로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자율적이며 책임성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을 올바로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고 모두를 존중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돈이나 지위, 명예나 권력이라는 외적 잣대는 부차적인 것일 뿐이기에 그 기준을 잣대로 하는 차별은 생길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다양한 개성과 소질들이 더불어 존재하며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그 출발점은 '자아 발견'일 것입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를 교육의 3주체라고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은 세 주체 중 누구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합니다. 다들 울상이고, 죽을 맛이라고 말합니다. 교실 안에서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은, 교문을 나가는 순간 표정이 밝아집니다. 가끔은 제가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학교가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학교에 안 가도 되는 날을 기다립니다. 생활 그 자체가 교육이 될 수 있는 마을 공동체 속의 삶을 소망합니다. 아이들의 생활공간이, 교육이, 학교 안으로 한정되지 않고, 살아가는 터전 전체로 이루어지는 날들을 그려 보기도 합니다.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혀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대로 살며 그때그때 행복한 삶을 희망합니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 더 나은 교육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