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25. 05:17


 최근 화제가 되었던 한 결혼정보회사의 남녀 직업별 등급표 혹시 보셨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여성의 직업등급표가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는데요, 전체적으로 공부 잘 하는 여자는 얼굴 이쁜 여자 못 따라가고 얼굴 이쁜 여자는 팔자 좋은 여자 못 따라 간다는 말을 고대로 옮겨놓은 등급이더군요ㅎㅎ 반면엔 남성은 더 돈 잘 벌고 더 사회적으로 힘 있는 직업일수록 높은 비교적 단순(?)한 기준이더군요.

여자 1등급부터 3등급까지는 심지어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게 아닌 내용. 어이구 저런.

 
 하지만 특히 제 관심을 끈 부분은 "공무원 합격자" 등급 분류부분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같은 직업군이니까, 비교하기에 더 수월하기 때문인데요. 이 등급표에서 공무원 등급 분류는 크게 3~4가지로 되어 있는데 내용 별로 남녀의 등급 순서가 서로 다릅니다. 남성의 경우

7급공무원(검찰,국정원,국세청) 7급(지방직) 9급(법원,검찰,국세청,서울시) 9급 합격자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 여성의 경우


7급(지방직)  9급 공무원 7급(중앙직, 검찰,세무,국정원)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남자 1순위가 여자 3순위로 와 있는 것 보이시죠? 남성의 등급이 더 많은 재력과 권력에 따른 것이라고 했을 때, 여성은 그럼 어떤 순서를 따르고 있는 걸까요?


 저는 이렇게 추론했습니다. 7급 지방직이나 9급은 역할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같은 내용을 처리하는 직업군입니다. 그러므로 7급 지방직과 9급은 연봉 이외에 업무 환경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순위의 차이를 보이는 7급 중앙,검찰,세무,국정원직은 급수는 같아도 상대적으로 파급력이 커서 책임도 큰 업무, 말하자면 파워가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파워가 많은 직업은 일도 많지요. 그러니까 일 때문에 바쁜 아내는 싫다, 라는 것 아닐까요?
(물론 어디까지나 제 추론이므로, 근거가 정확하지 않다는 점을 밝힙니다. 잘 아시는 분이 있다면 보충,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확도를 보장할 수는 없지만 이 추론은 저를 상념에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결혼정보회사의 기준이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수요를 반영한 등급일테니 어느 정도는 사회의 수요를 보여주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제 추론이 틀렸다 하더라도 주변에서 "대기업 남편+7급지방직 혹은 9급공무원 아내"의 조합을 원하는 경우를 꽤나 보았기 때문이죠. 말하자면 이 추론은, 평소 보아왔던 그 선호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도화선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 조합이 선호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 저 조합이 가장 효율적으로 살림(+육아)과 생계유지를 해 나갈 수 있는 조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통적 혹은 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은 육아와 살림을 맡아서 '보살핌'을 담당하고 남성은 주수입을 책임져서 '현실적 기반'을 마련하는 역할 분담이지요. 게다가 현대사회는 직장을 다니면서 육아를 할 만큼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경쟁과 효율을 추구하는 사회이기 때문이지요. 효율은 '모아주기'할 때 특히 빠른 성과를 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자본이 대기업에 집중되듯이 노동자의 시간도 회사일에 '집중'되는 쪽이 좋지요. 결국 근대적인 성역할과 현대사회의 분위기가 합쳐져 도출된 결론이 바로 "대기업 남편+공무원아내"의 조합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복잡하게 추론하거나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 결론이 그닥 우리에게 새로운 내용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더라~라고 말로 듣는 것과 저렇게 등급표를 만들어서 눈으로 보는 것은 실감도가 다르더군요. 그래서 "새삼" 그 현실을 진지하게 인식해보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제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는 '왜 여자만 집안일을 해야되냐'라든지 '왜 남자만 돈 벌어와야 되냐'라는 건 아닙니다. 성 역할이 고정되는 것도 물론 문제지요. 하지만 저는 '분업'을 하는 것에 다소 불만이 있습니다. 왜 현실적 기반을 만드는 일과 보살핌을 하는 일을 나눠서 해야 하지요?

 물론 왜인지는 압니다. 현실에서 그게 효율적이라서 그렇지요. 분업은 효율적이라서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될까요? 도구적 이성만 사용하다 망한 게 현대사회의 폐해이지 않겠습니까. 말하자면 저 두 가지 역할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내용입니다. 또한 각각의 역할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험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성장시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물질적 기반이나 보살핌 둘 중에 한 가지만으로는 온전히 살아가거나 성장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살짝 과장해서 말해보자면 그 두 가지 능력을 모두 갖추었을 때 그 사람은 '온전한 주체'로 기능할 수 있는 독립된 인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전인적 인간'에 다가서는 것이지요.


 너무 과장하는 것 아니냐,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역할 분업을 하는 모든 부부가 한 쪽은 돈 버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한 쪽은 현실적 기반을 마련할 능력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분업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각자 맡은 내용이 다르기에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고 소중한 부분도 분명 있지요.

 그렇지만 밥 먹는 일을 내가 전담하고 공부하는 일은 네가 전담하면 너도 나도 배가 안 고프고 지식도 늘어나는 게 아니듯이, 한 주체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성장하는데 필수적인 내용을 나눠서 하는 것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게다가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얼 하고 살아가는지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데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하지요. 따라서 어떤 일만을 전담하게 되어있다면 그 쪽으로 편향된 인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그러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쉬운 것이 사회의 대세를 형성합니다. 그러면 결국 그런 사회가 되는 걸 테지요.


 현실에서 역할 분담으로 인해 이미 발생한 문제들을 보면 자녀들과 정서적 교류가 없는 아버지,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이혼하지 못하는 가정폭력 피해자 등 개별적 차원의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회가 갈 방향을 좌지우지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효율을 추구하여 경쟁에서 이긴, 보살핌보다는 돈 버는 일에만 집중한 남성(적 가치)들'이라면 결국 그 사회는 그런 남성의 가치관이 추구하는 방향의 형태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타인을 보살피는 것은 많은 부분이 개인적 차원의 책임으로 넘어간 것 같은' 지금의 사회 분위기는 이미 그 형태를 반영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제가 이것을 '단순한 선택과 취향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그저 제가 그것을 원한다면 저는 피를 쏟는 각오로 치열하게 일과 살림을 모두 해내는 기혼자가 되면 되는게 아니라는 거지요. 행복하고 인간다워지자고 하는 일인데 피를 쏟는 각오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부터가 뭔가 문제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소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남편도 아내도 그 두 가지를 다 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그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그러면 우리는 좀 덜 효율적이게 되고 좀 경쟁력이 떨어지고 좀 수준이 낮아질 수도 있겠지만, 대신에 좀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성장하게 되고, 전인적이게 될 것 같습니다.


 너무 욕심이 많은 걸까요 ㅎ 그럴 수도 있겠네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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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