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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1.15 유혹하는 여성, 처벌받으리라 1
2012. 1. 15. 17:43

안녕하세요 :) '학교를 안 갔어' 코너를 맡고 있는 스릉입니다. 먼저 포스팅이 늦어진 데 대한 심심한 사과의 말씀부터 올리겠습니다 ㅠㅠ 오늘이 일요일인줄 몰랐어요....... 요즘 방학하고 잉여롭게 살다보니 날짜 감각이 없어요 헝헝. 오늘은 학교에서는 조금 벗어난,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재미없어도 재미나게 봐주시면 캄사하겠습니다!





남자들끼리 대화를 하다 보면 심심찮게 나오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값)싸 보이는 여자', '꼬리치는 여자'에 관한 것인데요, 흔히 남성들은 '여자가 먼저 유혹해서 벌어지는 불륜이나 성행위, 만남은 전적으로 여자의 책임이다' 라는 이상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남성들이 다음과 같은 대화를 합니다. 


"그 년이 딴 새끼한테 꼬리쳐서 바람피웠다."

"야한 옷 입은 거 자체가 자기 꼬셔달라고 광고하는 것 같았다."
"여자들은 어쩔 수 없어. 감성적이고 즉흥적이기 때문에, 잠시만 혼자 놔둬도 바람 피워"
"지가 원해서 매춘하는데, 왜 남자들만 성매매 하면 죽일 놈 취급하지?"


남자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음담패설은 단골메뉴이고, 그 음담패설이 대부분 여성의 바람끼(밝힘증이라고도 표현한다)나, 여성에 대한 은유로 채워져 있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현실을 살펴보면 곧 물음표가 생깁니다. 나이 들어서 자신의 딸과 비슷한 나이의 여자와 원조교제를 하고, 술집에서 어린 여자들을 찾는 것은 남자가 아닌가요? 여자가 성욕을 표시하거나, 감정을 표현하면서 유혹하면 누구보다 환영하는 것은 남자가 아닌가요? 남자들이 여러 여자들을 사귀거나 같이 잠자리를 하면 '능력 있다' 라는 평을 듣는데, 왜 여자들이 그러면 '걸레' 라는 모욕적인 욕이 나올까요?


한국과 같이 보수적인 나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서양의 야사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섹스와 성에 있어서 여성들은 불리한 위치에 존재합니다. 아담을 유혹해서 선악과를 먹게 한 죄로 인류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해 평생 노동을 해야 하는 형벌에 처해졌다는 성경의 내용, 그리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판도라가 상자를 열어서 인류는 죄악에 노출되었다는 신화의 내용, 또 트로이 전쟁도 헬레네를 쟁취하기 위한 거대한 치정극이 아니었던가요. 여기서 문제되는 점은 남성들의 양가감정입니다. 


여성의 미에 현혹되고, 여성들이 한없이 아름답기만을 바라면서 동시에 그런 여자들을 온갖 신화와 회화, 담론을 통해 저급화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쾌락은 즐기되 책임은 회피하려는 저열함에 기인합니다. 


아리스토렐레스 같은 위대한 학자도, 신화 속의 영웅들도 모두 여성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남성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 때문에, 자신들도 그 저급한 여성들과 같은 부류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기꺼이 미를 취하면서도 그것을 깍아내리는 이중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요. 요부가 유혹을 해서 '어쩔 수 없이' 넘어갔다는 남성들의 초라한 자기위안이야말로 팜므파탈로 상징되는 왜곡된 여성성의 진실이고, 팜므파탈이라는 코드를 만들고, 유포하며 즐기는 동시에 비판하는 양가성의 원인입니다. 


대학생 때의 일입니다. 과에 아주 예쁜 여학생이 들어왔습니다. 남자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꿀을 얻으려는 벌떼들과 같이 많은 선배·동기들이 그 여학생에게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몇몇은 술에 취해서 서로 주먹질을 하는 등 그야말로 난리법석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여학생은 그런 남자들에게 관심이 없었고, 얌전히 공부만 했습니다. 1년이 흘렀습니다. 더러 몇몇은 그 여학생에게 직접 고백했다가 퇴짜를 맞고, 몇몇 동기는 연정을 삭힌 채 군대에 갔습니다. 그리고 고백은 못하고 주위를 맴도는 이도 남아 있었습니다. 술 취한 동기의 넋두리를 들어주며 흥미롭게 그 사태(?)를 관찰했습니다. 결과가 기대되기도 했지만 그 치사한 경쟁의 근본적인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그 1년 동안 그 여학생이 자신도 모르게 '팜므파탈'로 둔갑해 있었다는 사실이니다. 물론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해서지요. 학교 남학생들에게 관심이 없는 이유는 돈 많은 유부남과 사귀기 때문이다, 방학 때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더라, 여름에 야하게 입고 화장한 것을 봤는데 영락없는 '나가요 걸' 이더라, 은근히 남자들이 자신에게 접근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남자 여럿 잡아먹을 여자다.......(술 취해서 그 여학생을 사이에 두고 싸우던 인간들이 나중에 소문이 퍼지자 서로 일치 단결하여 그 여학생을 성토하는 것을 보고 느낀 황당함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고백했다 실패한 누군가가 앙심을 품고 퍼뜨린 것인지, 한을 품고 군대에 간 누군가가 퍼뜨린 것인지, 아니면 그 소문 중 몇 개는 사실인지, 진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평범한 한 여학생이 순식간에 팜므파탈로 변신한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신화나 고전 회화, 그리고 역사가 위험한 것은 그것의 존재와 내용에 대해서 저항을 갖는 이가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뱀을 두른 클레오파트라나 이브의 그림을 보고, 상자를 여는 판도라를 보고, 나폴레옹을 매혹시킨 조세핀의 일화와 그림을 보고, 사람들은(남자들 뿐 아니라 여자들도) 그들을 요부로 각인시켜 버립니다. 그러면서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편견이 뿌리깊게 박히고, 여성들은 자신은 그들과 같은 요부가 아님을 다행으로 알면서 안도합니다. 


성매매 여성이 미군에게 찔러서 죽은 사건은 무심코 넘어가면서, 여중생이 죽으면 수십만명이 촛불을 들고 정의로운 자가 되는 현상도, 성매매 여성들은 요부들이고 값싼 여자들이라는 인식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은 지금-여기에서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팜므파탈로 만들어 버립니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비교하면서 안심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일탈과 맹목적인 몰두를 변명하기 위해서.


넬슨 제독의 애인 해밀턴 부인과 19세기 프랑스 사교계를 휘어잡았던 레카미에 부인에 대한 일화를 보면 04년에 출간된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정이현)이 떠오릅니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돋보이는 학벌도 부유함도 소유하지 못한 평범한 여성. 그렇다고 온갖 아부와 먹이사슬이 횡행하는 학문에 몰두할 뜻도 없으나 소박하고 가난하게 살기는 싫은 소비세대 여성. 그 여성이 택한 것은 남자를 통한 성공이었습니다. 만나되 잠을 자지는 않으며, 좋다고 말하되 사랑한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탐색합니다. 그러다가 안정적인 남자를 만나서 순결을 바치고 결혼합니다. 그러나, 과연?


이 소설은 많은 논쟁을 낳았습니다. 그 논쟁도 팜므파탈을 보는 시선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주체적인 사회인식을 포기하고 낭만을 허울 삼아 벌이는 색녀의 이야기가 어떻게 소설이 될 수 있느냐라는 반문부터 문체나 구성에 대한 기본적인 논쟁까지. 하지만 이 소설에 관한 논쟁 중에서 현저히 결여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누가 평범한 여성을 이렇게 만들었느냐는 근본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렇게 탐색하다가 안정을 발견하면 몸을 던지는 조신(?)하고 깨끗한(?) 여성들을 갈구하는 남자들, 그리고 욕을 하면서도 자신도 그렇게 조신한 이미지로 부와 명예를 갖춘 남자를 만나길 바라는 여자들, 그들이 존재하는 한 그런 여성들은 수없이 생겨날 것이고, 이 현실적이지만 수준미달인 소설에 대한 논쟁도 계속될 것입니다.


'람보'의 강인한 근육과 엄청난 능력은 문제가 아니지만, 그 환타지를 이용해 자신들이 벌인 더러운 전쟁의 패배를 영상으로 복수하는 것은 문제적입니다. 여성의 미를 원하면서 그 미를 순식간에 더러움과 요설로 격하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양분되어 있지 않으며, 한 인간에게 그 특징들이 혼재합니다. 


모든 구분들은 이해관계의 산물이 아닐까요. 성경이라는 경전과 신화의 견고한 이미지를 통해 남성들은 변명과 위안을 얻었고, 여성들은 자신들은 정숙하다는 면죄부를 얻으려 했습니다. 이러한 암묵적인 동의와 비열한 계산은 '구분'을 양산하고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곁에 잔존합니다. 일상의 대화로, 영상 이미지와 소비의 형태로, 그리고 예술로.



팜므파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만들어질 뿐입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