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7. 08:30
 











여러분은 '라이벌'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누구를 떠올리시나요?

중국집과 치킨집?
토마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오세훈과 투표율 아 이건 좀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이 두 젊은 여인들은 한-일간 라이벌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2010년 2월이 오기 전까진.






문학작품 속에서나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같은 목표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한편 상대의 노력과 성과를 인정하며 우애를 다져나가는 라이벌들의 이야기는
언제 봐도 흥미진진 하지요!



그렇다면 만화 속에 등장하는 라이벌 중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지독한(?) 라이벌은 누구일까요?
저는 기타지마 마야히메가와 아유미가 바로 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걔네가 누구냐구요?
이미 알고계신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사람은 오늘 소개해 드릴 만화 '유리가면'의 두 주인공이랍니다.







주요인물 중심의 일러스트.

만화계의 바이블
마약
제1권을 펴는 순간 당신의 시간은 5차원 세계로..
필자는 중학교 시절 이 만화에 빠졌다가
고등학교 첫 모의고사 수리영역 점수 30점을 기록한 날카로운 추억이 있다.

더 위험한 건 이 책장마다 독약마약을 발라놓은 듯한 이 이야기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유리가면은 1976년 연재를 시작한 이래 수차례 휴재와 연재재개를 반복하여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작가인 미우치 스즈에. 마약 제조업자
이 작품을 위해 '자연계를 주관하는 여신'인 홍천녀의 이야기를 구상하다가
생각이 너무 깊어졌는지 직접 신흥 종교의 교주가 되었다.
'유리가면'은 작가가 모시는 우주신(?)에게서 영감을 받을 때에만 그린다고 한다...는 건 아무래도 믿기지 않고
죽기 전에 다 완결을 내려고 요즘 연재가 꾸준한 것 같다.








불꽃 튀는 라이벌리!
경쟁의 치열함도 치열함이지만 1976년 연재 시작 이후 근 35년째 싸우고 있으니 지독하다 할 만하다.







'유리가면'의 이야기는 연극과 연기에 대한 일반론을 골자로 삼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 없는, 보잘 것 없고 평범한 줄만 알았던 중학생 소녀 기타지마 마야가 은퇴한 여배우인 스승의 지도로 연기를 시작하여, 스승님의 주연작이었던 연극 '홍천녀'의 주인공 역을 얻기 위해 피나는 수련을 거듭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한 작품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단행본 45권이 넘는 이야기가 전부 연극 얘기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 작품은 독자층이 다양하기로도 유명한데요, 마야와 아유미의 연기 대결 과 마야를 둘러싼 러브라인♥이 촘촘히 엮여 긴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해주기 때문에 소녀 독자는 물론 남성 독자들의 마음까지 사로 잡고 있답니다. 여동생이, 혹은 아내가 보길래 옆에서 같이 보다가 어느새 중독되어 다음 편을 읽지 못하면 손이 덜덜 떨린다는 남성 독자들이 한 두 명이 아닌 모양입니다! 그러니 순정만화는 여학생들만 본다는 편견은 일단 버리시고 편한 마음으로 읽어보세요!(그 뒤는 책임 못 져요)







                                                                                   다음 권!!
                                                                              다음 권을 내놔!!










그럼 길고도 긴 '유리가면'의 이야기를

마야와 아유미의 연기대결을 한 축으로,

또 마야에게 엮여 있는 러브라인을 다른 한 축으로 삼아

인물 소개의 형식을 빌려 소개하도록 하죠!






 



불우한 천재소녀- 기타지마 마야









일본 만화가들은 천재 얘길 참 좋아하나봅니다. 물론 마야는 누가 안 가르쳐줘도 알아서 척척 깨우치는 비현실적이고도 조금 유치한 천재 캐릭터는 아니지만요. 처음 등장할 때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고 있는 평범한 중학생이었어요. 공부도 못하고 어머니가 일하는 중화요리집의 잔심부름도 제대로 못해 구박받지만 TV 드라마와 영화를 볼 때엔 이상할 정도로 몰입하는 아이였습니다.






오페라 '춘희'의 티켓을 건 내기에서 이기려고
혼자 하루 치의 배달을 다 해치우는 마야.
나중엔 티켓이 겨울 바닷물에 빠져버리자 그걸 건지려고 뛰어든다.
보통 독한 아이가 아니다.








메소드 연기의 달인 마야.
처음 연기를 시작한 중학교 학예회 무대에서
왕자에게 버림받는 거지소녀역에 완벽하게 몰입해
무대를 발라버린다.




위의 이미지에서 보시다시피, 마야는 표현력은 떨어지지만 본능에서 비롯된 연기를 하는 천재 캐릭터입니다. 동네 아이들에게 연속극을 재연해주던 마야를 본 왕년의 대여배우 츠기카게 치구사(메인 일러스트 오른쪽의 검은 머리 치렁치렁 아주머니)가 그 재능을 알아보고 연극계로 이끌죠.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순간부터 스승으로부터 '홍천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어렴풋이나마 언젠가 홍천녀를 연기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됩니다.

많은 고난을 겪는 인물입니다. 스승의 손에 이끌려 엄마 곁을 떠난 후 여러 배역을 거쳐 나중엔 TV 대하 드라마에까지 등장하여 스타가 되는 듯 싶더니.. 곧 음모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고 연기를 그만두려 하는 등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아갑니다. (아직 스무살도 안된 아이가..) 결국엔 재기하여 아유미와 홍천녀를 두고 대결할 자격을 얻지만요. 아직 홍천녀로 결정되기까지는 한참 남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연극제에서 연기대상을 받는 등 어느정도 인정받는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외모'라고 작중에는 수차례 묘사되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게... 언제나 남자 캐릭터와의 썸씽(?)이 있습니다. 공연한 상대배우에서부터 하이틴 스타, 그리고 중학생 나이에 일찌감치 대형 연예기획사의 젊은 사장(이 사람이 누군지는 뒤에서 얘기하죠)의 마음을 빼앗은 요상한 매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러면서도 늘 자기는 못생겼네 재능이 없네 징징거리죠. 농약같은 가시나.. 얄미운 가시나.. 부럽다?






노력파 엄친딸- 히메가와 아유미 








고데기로 정성스럽게 만 머리 스타일에서부터 귀하게 자란 아가씨라는 게 짐작됩니다. 마야와는 홍천녀를 두고 경쟁하는 라이벌이자 유명한 영화감독과 여배우 사이에서 태어난 '연극계의 순수혈통'(일어판에선 '연극계의 서러브레드';;), 엄친딸 아가씨입니다. 어려서부터 여러 연극과 영화, TV연속극에 출연해 자타공인 천재소녀로 통하고 있었지만.. 중학생 시절 우연히 마야의 연기를 보고 충격에 빠집니다. 자신에겐 없는 연기 본능을 갖춘 아이를 만난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자신이 진짜 천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야를 경계하게 됩니다.

아유미에게 '홍천녀'는 부모의 후광에서부터 벗어날 유일한 길입니다. 작중에서 아유미는 마야와는 상반되는 지독한 노력파 테크니션으로 묘사되고 있는데요, 피나는 노력을 통해 훌륭한 연기를 선보여도 부모의 그늘에 가려 그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는 일이 없자, 부모의 명성과는 상관없는 여배우로서의 자기 정체성 확립을 위해 '홍천녀'에 집착하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발레와 고전무용으로 다져온 표현력을 자랑으로 하고 있는데, 이에 비해 캐릭터의 마음을 고려하는 면이 부족해 영혼이 없는 연기라는 소리도 자주 듣습니다. 근데 이게 '마야에 비하면' 그렇다는 것이지.. 솔직히 저는 아유미가 하는 것 만큼만 배역 연구 해도 충분히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해요. 뒤에서도 얘기하겠지만 이 만화에서 추구하는 '완벽한 연기'는 거의 접신상태에 가깝습니다. 그게 뭐야..

최근 연재분에서는 홍천녀의 시연 연습 중에 당한 사고로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ㅠㅠ 눈 앞이 점점 캄캄해지는 와중에도 연기를 포기하지 않고 '눈이 보이는'연기를 익히고 있죠. 아유미의 노력을 보면 정말 무서워질 지경입니다. 나도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데..







주연을 맡은 일인극 '줄리엣'에서 의자에 앉는 마임을 선보이는 아유미.
아유미는 연기의 '기술'을 일찍 몸에 익힌 인재 중의 인재라 할 수 있다.
아유미는 이 연극을 통해 예술대상을 받고 연예계에서 퇴출당한 상태였던 마야와의 격차를 넓힌다.






 




천재로 인정받는 중에도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성장하고 있는 마야를 부러워하는 아유미.
아유미의 이런 마음이 '홍천녀'에 대한 집착을 더 강하게 한다.







 두 소녀의 대결- 본능의 마야냐 표현력의 아유미냐




위의 인물소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야와 아유미는 서로 상반되는 연기 스타일을 갖고 있습니다. 배역의 본질을 누구보다 정확히 집어내는 재능을 가졌지만 그걸 몸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마야, 그리고 연기의 기술은 완벽에 가깝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에 치중하여 배역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아유미. 이 두 사람의 7년에 걸친 대결이 기나긴 이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합니다. 


 



(좌우반전된 이미지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야 함.)

마야와 아유미의 두 번째 대결!
두 사람이 극단의 연구생이던 시절
'예' '아니오'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네 문장만을 이용하여 연기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 기회를 이용해 마야를 테스트해보는 아유미.
하지만 마야의 순발력에 오히려 당황하고 만다.







헬렌 켈러의 어린시절을 소재로 삼은 연극 '기적의 사람'에서
헬렌 켈러 역에 더블 캐스팅 된 두 사람.(위가 마야 아래가 아유미)
헬렌 켈러가 '물'을 인식하는 장면을 각자 다르게 해석하여 연기한다.
마야는 아유미의 정석에 가까운 연기와는 다른 '신선한 헬렌'을 연기해
아유미를 누르고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다.
많이 컸네.. 마야..








 
Howard Wolowitz: OH MY GOD~!!! GIRL FIGHT!!!
홍천녀를 목전에 두곤 이런 형태(?)로도 대결합니다.










마야의 숨은 조력자 -하야미 마스미





70년대 댄디즘의 끝을 보는 기분...



 
지금까지 마야와 아유미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니, 이제 마야의 애정사(?)를 알아볼까요.
마야에게 낚인 남자 캐릭터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하야미 마스미 가 마야의 인생에서 가지는 의미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어요.  
가진 것도, 배경도 없던 마야가 아유미와 대결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이 사람의 영향력이 엄청났습니다. 대형 연예 기획사인 다이토 기획의 젊은 사장으로, 같은 기업의 회장인 의붓 아버지에 대한 원한으로 '홍천녀'의 상연권을 손에 넣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인물입니다. 어머니를 잃은 중학생 시절부터 경영자 수업을 받아 하루하루를 기계처럼 살던 사람이죠. 10년 가까이 일만 생각하는 일벌레 냉혈한 인생을 살다가.. 홍천녀 상연권의 현 소유자인 마야의 스승님을 조사하던 차에 마야의 연기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 감명받아 익명으로 보라색 장미를 선물하죠.







여배우에게 꽃을 보내는 건 처음인 마스미.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라워한다.




처음엔 장미와 카드뿐이었던 것이.. 세월이 지날수록 옷이나 가방같은 선물을 보내는 수준을 지나 마야의 고등학교 학비까지 책임지는 수준에 이릅니다. 처음엔 그도 자신의 마음을 어린 배우에 대한 측은함 정도라고 생각해왔지만 결국엔 자신이 마야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마야가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리려던 계획도 잠시.. 의도치 않게 마야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이 되어 마야의 미움을 사면서부터 그의 마음 고생이 시작됩니다. 거기다 덤으로 그에게 집착하는 무시무시한 약혼녀까지..아이고.. 
    






익명으로 마야에게 보라색 장미를 보내기 시작한 이후
선물의 스케일이 점점 커진다.
연기 연습에 필요한 별장까지 빌려주는 마스미.
역시 돈이 최곤가...





마스미가 마야를 좋아하게 된 건 일에 묻혀 잃어버린 그의 어린시절에 대한 보상심리일지도 모르겠어요. 아니면 페도필리아겠지
마스미가 마야에 대해 회상할 때 가장 경이롭게 여긴 것이 연기에 대한 마야의 열정이었거든요. 그건 분명이 그의 청소년기엔 없었던 것이지요. 

마야와 마스미의 인연은 마야가 연기를 계속할 재정적 지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사랑 이야기인 연극'홍천녀'를 연기하는 데 필요한 감정의 학습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이야기에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장치입니다. 처음엔 그의 정체를 모르고 마스미를 미워하기만 하던 마야는, 우연한 실수로 마스미가 보라색 장미의 사람임을 알게 된 후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홍천녀의 연기에 투영하여 많은 발전을 이루죠. 마야가 마스미와 맺어지든 그렇지 않든, 마야의 성장에 마스미는 없어선 안 될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최근 연재분에서는 연재 35년만에 드디어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해 그들이 서로를 사랑함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 장애물이 많아 그리 희망적인 결말을 기대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작가인 미우치 스즈에는 최근 인터뷰에서, 마야가 마스미와 홍천녀 두 가지 모두를 얻을 순 없을 거라고 했다고 해요. 저는 '홍천녀'의 결말이나 지금까지의 전개를 보았을 때 왠지 마야가 홍천녀의 배역을 얻는 대신 마스미와는 이어지지 못할 것만 같아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홍천녀는 '운 좋은 천재' 마야의 것이 될까요? 아니면 '노력파 여신' 아유미의 것이 될까요?









작은 의구심- 마야의 연기만이 '진짜' 연기일까




비록 '유리가면'이 수십 수백만의 중독자를 양산할 정도로 인기를 끈 작품이라고 해도, 그 속에 그려진 이상적 연기의 묘사는 약간 납득하기가 힘듭니다. 작품은 얼핏 보면 아유미의 실력을 따라잡으려는 마야의 성장 과정으로 보이지만, 기저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워요. 앞서 말했듯, 작가는 마야의 '접신'상태에 가까운 신들린 연기를 이상적인 연기로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아유미가 실명을 하게 된다는 설정 역시 그녀가 마야의 연기 스타일과 같이 홍천녀의 영혼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작가의 종교 활동에 따른 여파인 건지.. 홍천녀를 연기하는 마야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메소드 연기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은 심령 현상처럼 묘사될 때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런 것들..
'누가누가 더 또라인가'를 겨루자는 건가



연기와 같은 예술활동에 어느정도의 '끼'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유미의 노력과 같이 연기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선천적으로 타고 난 끼보다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위에서 제가 홍천녀는 마야의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주인공에 대해 가지는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지(그리고 마스미와는 영 이어질 것 같지 않으니까ㅠㅠ), 아유미가 홍천녀를 연기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아니었어요. 마야가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홍천녀는 아유미의 것이 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유미에게도 충분히 연기에 '마음'을 담아낼 능력이 있으니까요. 


아무튼.. 저는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되든 '유리가면'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신비주의적인 내용으로 치닫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저런 황당한 묘사 때문에 35년에 걸친 두 사람의 연기 대결이 막판에 우스운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 말고도 여러 독자들이 그런 지적을 한 모양인지, 요즘 들어선 마야가 배역을 머리로 이해하는 장면도 자주 나오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부디 앞으로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있는 전개가 이어져 10년 안엔 깔끔한 완결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신기생뎐'같은 묘사는 싫어요.ㅠㅠ  끝없는 징검다리 위를 걷는 듯한 만화, '유리가면'이었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24. 08:30


일주일동안 안녕하셨나요? 유수입니다.
날씨가 많이 시원해졌군요. 이제 따가운 햇살만 좀 기운을 잃으면 정말 가을이 왔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음....







뭐야 만화는 없고 이상한 게 또... 




"어...8월 24일에 4화로 만나자며...왜 또 그림은 없고 글만 있지?"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실 여러분의 머릿속엔 분명 이러한 의문이 떠올라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 4화는... 완성을 못했습니다.


그래요! 펑크입니다! 예고도 없이 원고 펑크냈어요, 제가!



참 잘했어요~
조커만도 못한 인간아




연달아 2주 휴재입니다! 여러분이 오냐오냐 해주시니까 배가 불렀네요!ㅜㅜ
4화를 기다리고 계셨을 분들께 정말 죄송스런 마음 뿐입니다.. 다음 주 수요일엔 꼭! 4~5화 같은 4화를 꼭 보여드릴게요!
은규 잊어버리지 말아주세요 ㅠㅠ



만화가 없는 대신 이번 주에도 역시! 만화 관련글을 여러분께 보여드리려 합니다.

 


지난 주에 프랑스 만화 및 세계 여러나라의 만화를 볼 수 있는 블로그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이번엔 블로그가 아닌 '만화'를 소개 하려고 합니다.
제목에서 이미 알아채셨을 것으로 압니다. 네, 이번에 소개해 드릴 만화는...일본의 만화가 이케다 리요코 1975년부터 1981년까지 연재한 「올훼스의 창입니다.






주인공 유리우스의 일러스트
그리고 저 창이.. 네 그 올훼스의 창입니다.






그림이 정말 전형적인 70년대 일본 순정만화 같지요?
그런데.. 어떤 만화랑 그림이 좀 비슷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시나요.

네, '올훼스의 창'은 사실...정말 유명한 만화, 어렸을 때 KBS에서 애니메이션 판으로 봤었던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작가의 또 다른 작품입니다.






비슷하지요? 90년대에 나온 애장판 표지입니다. 외갓집 오래된 책장에서 뽑아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인 이케다 리요코. 1947년 오사카 출생으로, 67년부터 만화가로 활동했습니다.
아아.. 미인이십니다. 정말. 그래서 그림도 그렇게 예쁜 걸까요.
그럼 내 그림도 예뻐야 하는데..
잘못했어요.



80년대부터 해적판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던 작품이긴 하지만.. 당시 검열로 인해 만화의 배경이 러시아 혁명에서 핀란드 독립운동(;;;)으로 바뀌는 등 심각한 왜곡이 있었습니다. 위의 90년대에 나온 애장판에선 러시아 혁명으로 고쳐져 나왔지만 인물의 이름이 멋대로 축약되어 있는 등 이것도 문제가 많습니다. 제대로 된 번역으로 읽고 싶은 분은 2001년에 대원씨아이에서 나온 단행본을 읽어셔야 하실 거예요. (근데 이 판본에는 비문이 많습니다.. 번역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건지..)





들어가며- 배경소개



널리 알려진대로 '베르사이유의 장미'가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면, 그 다음 작품인 '올훼스의 창' 은 1911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다만 1,2부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주인공인 유리우스가 러시아로 밀입국한 3부부터는 러시아 혁명의 진행 과정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집안의 유산 상속 문제로 여자임을 숨기고 남자 행세를 하며 음악학교로 전학 온 유리우스, 불우한 천재 소년 피아니스트 이자크, 그리고 러시아에서 독일로 망명하여 고국으로 돌아갈 때를 기다리며 바이올린과 학생으로 신분을 감추고 지내는 클라우스, 이 세 사람이 독일 레겐스부르크의 성 세바스찬 음악 학교에서 만나 서로 사랑하고, 자신들을 둘러싼 비밀을 풀어나가며 상처받고,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이 세 명이라는 점이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비슷하지요?

제목이 되는 '올훼스의 창'은 세바스찬 음악학교 구석에 있는 오래된 탑의 창으로, 그 창을 통해 서로를 만난 남녀는 반드시 사랑에 빠지지만..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올훼스'는 오르페우스의 옛 표기로 보입니다.)와 에우리디케가 서로 영영 이별하게 되었듯이 반드시 비극적인 결말을 맞고 만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창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커플 중 중심이 되는 인물은 모두 이 창에서 만납니다. (가톨릭 학교에 왜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 주인공인 유리우스-이자크-클라우스도 이 창에서 만나지요. 
이자크는 유리우스를, 유리우스는 클라우스를. 그리하여 유리우스와 클라우스는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이자크는 유리우스를 짝사랑하게 됩니다. 아.. 연애물의 케케묵은 클리셰, 삼각관계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삼각관계는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구요.





                                                        유리우스와 이자크가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본 고딩시절 과외 선생님이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이거 BL이야?"
                                                                           아니예요 선생님....-_-







                                                              같은 창에서 클라우스를 만난 유리우스.
                                   만나기는 이자크를 먼저 만났는데, 왜 유리우스는 클라우스를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이렇게 비밀 많은 선후배간의 사랑이 싹트고..






배경 설명은 이쯤 해두고...
인물 소개를 중심으로 내용을 알아볼까요?

세 주인공의 소개만 하죠. 이 만화가.. 등장인물이 50명이 넘거든요...ㅠ
 






주인공 1. 유리우스


 

 
 

이 작품의 히로인입니다. 레겐스부르크의 거상巨商 아렌스마이야씨의 숨겨둔 자식으로, 아버지의 본처가 죽자 첩이었던 어머니와 함께 아렌스마이야 가로 입적합니다. 유리우스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유산을 다 빼앗기게 생긴 배다른 두 누나 마리아와 아네로테와는 당연히 웬수지간이구요.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배워왔기 때문에 성 세바스찬 음악학교로 편입하게 됩니다. 이자크와는 동급생으로 15살, 5학년 입니다. 피아노의 천재인 이자크와 바이올린 천재인 클라우스 사이에 끼여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피아노 실력은 그저 그랬던 모양입니다. 작품 속에서 교수에게 혼나는 장면도 나오구요. 앞서 말했듯 올훼스의 창에서 이자크와 클라우스를 만나 그들과 연인으로 엮이게 됩니다.

아렌스마이야 가의 유산을 노린 어머니의 계획으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자아이처럼 길러져왔습니다. 그 때문에 얼굴은 곱상하지만 행동은 아주... 거칠지요. 툭하면 시비를 거는 라이벌 상회의 아들놈과 주먹다짐은 예사요, 후처로 들어온 어머니를 비웃는 다른 어른들을 집에서 내쫓기도 합니다. 16살이 넘어가면서 다른 남자애들이 자신보다 힘이 세져 싸움질은 곧 그만두게 되지만요.

첫 등장에는 이렇게 당차고 거칠었던 여인이었는데.. 집안의 비밀을 알게되고,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던 한 사람인 주치의 얀 선생을 죽여 살인자가 된 후, 소중한 이를 하나하나 잃어가면서 결국 사랑에 목숨거는 전형적인 히로인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어 저는 약간 실망이었어요.
1부 마지막엔 가문의 비밀 중 한 축이 되었던 아네로테 누나를 죽이고, 자신을 버리고 혁명을 위해 러시아로 돌아간 연인 클라우스를 따라가 그곳에 10년이 넘은 세월을 살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혁명의 난리통 속에 남편이 된 클라우스를 잃고 결국 실성한 상태로 고향으로 돌아오지요. 작품의 마지막에서 제정신을 되찾긴 하지만 집안의 오랜 원한관계로 엮인 이의 손에 결국 목숨을 잃고 맙니다. 남자 하나 잘못 만나(?) 너무도 기구한 인생을 산 인물이어서 보고 있자니 마음이 대단히 아팠습니다. 하아.. 좀 답답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작품의 중심축이 되는 인물이니 그만큼 그 인생에서 큰 울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울림이란 게 탄식과 슬픔이라 그렇지...아무튼 어머니의 욕심으로 일찍 인생이 뒤틀려버린 인물입니다.




주인공 2. 이자크






유리우스와 같은 날에 세바스찬 학교에 편입해온 학생입니다. 피아노 연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구요, 베토벤의 작품을 주로 연주합니다. 약간은 고지식하고 순진한 면이 있어 주변 사람들이 답답해 하기도 합니다. 일찍 부모를 잃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여동생과 살고 있었지만, 라이벌 학생의 음모로 장학금이 끊겨 술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생활비를 번 적도 있습니다. 

편입 첫날에 올훼스의 창에서 유리우스를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유리우스가 클라우스 역시 그 창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 고생을 하지요. 유리우스가 러시아로 떠난 후 그녀 때문에 미뤄왔던 오스트리아 유학을 떠나 자신의 연주에 대한 심각한 고민으로 번민하고, 처음으로 사귀게 된 교수의 딸에게 어장관리를 당하는 등(흑흑) 갖은 고생을 겪은 후 결국 피아니스트로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전 18권 중 8권에서 10권까지의 분량인 2부는 이자크의 유학생활과 귀향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어요. 

유럽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던 것도 잠시..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유증으로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되어 결국 명예와 돈, 아내를 모두 잃은 후 어린 아들과 함께 고향인 레겐스부르크로 돌아오게 됩니다. 사실 전 '올훼스의 창'의 이야기가 결국 이자크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세 인물은 공통적으로 작품의 어느 시점에서 고향을 떠나게 되는데요,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 다른 인물의 인생, 이야기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된 건 이자크가 유일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제가 예술가의 삶을 다룬 작품에 흥미를 느끼기 쉬운 인간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향인 레겐스부르크로 돌아온 이자크.
제가 참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주인공 3. 클라우스







그림 속 의상에서 알 수 있듯, 사실 러시아 사람입니다. 배다른 형이 공산주의 혁명 준비에 가담했다가 처형당한 후, 형의 약혼녀와 함께 독일로 망명하여 '클라우스'란 가짜 이름으로 신분을 감추고 살고 있어요. 진짜 이름은 '알렉세이'입니다. 망명 생활 중 학교에서 만난 후배 유리우스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혁명의 때가 오자 그녀를 버리고 러시아로 떠납니다. 아버지와 형으로부터 바이올린 연주의 재능을 물려받아 학교에서 천재 소리를 듣던 인재였는데.. 혁명에 몸을 던지며 그 재능을 포기하고 투사로서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정부군과의 교전 중에 사로잡혀 6-7년의 옥고를 견디다 탈옥한 후, 러시아까지 쫓아온 유리우스와 우여곡절 끝에 재회하여 짧게나마 그녀와 가정을 꾸리고 살게 됩니다. 결국은 혁명이 이루어지기 직전 유리우스의 실수로 암살 당하고 마는데, 그 과정이 꼭 저승의 입구에서 실수로 뒤를 돌아보아 에우리디케를 영영 잃게 된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와 흡사 합니다. 올훼스의 창에서 만난 연인다운 비극적인 결말이지요. 유리우스와 마찬가지로 참 기구한 인생이기도 하구요.

투사로서의 그의 삶은 11권에서 17권에 이르는 3부에서 주로 다뤄집니다. 첫 등장에서 불량소년과 같은 모습을 보여운 클라우..아니 알렉세이가 강한 의지와 행동력을 갖춘 혁명투사로 거듭나는 과정은 자못 감동적입니다. 그의 최후는 치열했던 생전의 삶에 비해 너무도 허무하지요.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러한 허무한 끝마침이 전설의 힘에 따라 인물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작품의 설정이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한 문장을 다 쓰고 끝에 호기롭게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이 딱 완결된 인생은 그리 흔하지 않다는 걸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잖아요? 별안간 떨어진 꽃망울과 같이 져버리는 인생이 흔하디 흔하지요. 알렉세이의 삶이 그러했고, 러시아 혁명으로 세워진 소련 역시 수십년 후 허무한 결말을 맞은 것과 같이 말이죠.  




 


나가며- "이 만화엔 인생이 있어요."








작품은 유리우스의 최후에 이어지는 이자크의 평화로운 일상으로 끝을 맺습니다. 위의 이미지가 마지막 페이지입니다. 서른이 넘은 이자크가 음악학교의 어린 학생들을 보며 자신의 청춘을, 인생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요. 이 만화엔 인생이 있어요.

이케다 리요코는 단행본으로 18권에 이르는 작품을 통해 20세기 초의 독일과 러시아의 정세, 50명이 넘는 등장인물들 각각의 이야기, 그리고 그 중심이 되는 세 주인공의 인생을 치밀하게 구현해냈습니다. 감수성은 예민하지만 아는 건 별로 없었던 중학생의 저는 이 작품을 다 읽고 나서 가슴이 뛰어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만드는 거야' '작품에 인생을 담아 낸다는 것은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일거야' 막연히 글 짓는 일을 하고 싶다고만 생각해왔던 중학생의 저에게, 이 작품은 거대한 충격이자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지금 이 글을 포스팅하면서 그 순간을 떠올리니 왠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후우..!


여러분은 이 작품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저는 이제 막 만화가가 될 준비를 시작한 애송이에 불과하지만, 언젠간 이 작품처럼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기엔 분명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만...여러분도 분명 '올훼스의 창'을 읽고나면 세 주인공의 삶 때문에 마음 속이 온통 흐트러져 버리는 경험을 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정말이에요. 도도히 흐르는 강을 보는 듯한 느낌의 만화 '올훼스의 창'이었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