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5. 08:20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수요일 아침을 여는 사과모히토 입니다. 턱관절 장애와 만성피로 등등으로 고생고생 한 일주일이었어요. 오늘은 여고괴담 뉴버전을 꿈으로 꾸는 바람에 잠을 설쳤습니다. 흐엥 지금 정말 괴롭군요. 그래서 미뤄둔 포스팅을 꼭두새벽에 하고 있습니다. 그닥 센치한 시간대는 아니지만, 오늘 소개할 사람은 '시인'입니다. 당연히 소개드릴 책도 '시집'이 되겠죠?


오오, 훈남 스멜! 그의 이름은 심보선! 등단하신지 17년 되셨네요! 2008년 등단 14년 만에 묶어 낸 첫 시집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기 시작한 시인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동경하기도 하구요. 심보선 시인의 시들은 '생각할 거리', '느낄 거리'를 건네줍니다. '늘 긍정적인 자세로 삶에 임하라!'식의 훈계나 계몽이 아니라 '이런 삶이, 생각이, 느낌이 있었다'라고 말을 겁니다.

종종 자기계발서적이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결정지어진 의미를 그대로 흡수한다면, 소위 말하는 '밥을 입에 떠넣어 주는 식'에 그치고 말겠지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순수문학이 자기성찰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심보선 시인의 시집은 2권입니다. 모두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왔어요. 시를 좋아하시지 않으셔도 문학과 지성사 시집의 표지는 대부분 익숙해하시더군요. 2008년 출간된 첫 시집의 제목은 '슬픔이 없는 십오초'입니다. 지금부터는 자유롭게 감상하세요!

슬픔이없는십오초:심보선시집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지은이 심보선 (문학과지성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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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십오초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 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하다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시집과 동명의 제목을 가진 시였습니다. (제가 카모마일 티를 워낙 좋아해서 마치 시 속 '여자'가 된 듯한 기분도 들었고요 히히) 어려운 어휘가 따로 없지만 다소 난해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감상은 여러분의 몫!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이어집니다.

청춘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복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며 바로 놓았을 때
강 건너 모르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려보며 숱한 결심들을 남발했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즐겨 제발 욕해달라고 친구에게 빌었을 때
가장 자신 있는 정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완벽한 몸을 빚으려 했을 때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고딩때 시를 끼적이던 저에게 가장 좋은 주제는 '청춘'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재고 꾸며 시쳇말로 '허세'로 쓰여진 망작(ㅋㅋㅋ)이 대부분이죠. 심보선의 '청춘'은 어쩌면 나도 모르게 외면하고 싶었던 기억의 단편들, 현재의 삶들을 꺼내게 해주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읽고 펑펑 운 독자 1人! 찌질한 청춘의 대명사인 독자 1人!

눈앞에없는사람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지은이 심보선 (문학과지성사,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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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올해 8월에 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 '눈앞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기쁨과 슬픔의 빈 공간에 딱 들어맞는 단어 하나'를 만들겠노라고 말하며 '사랑'을 안고 돌아왔어요. 사랑이 가지는 일종의 역설성, 말로는 정확히 표현하기 힘들지만 누구나 공감하는 그 특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직접 만나보실래요?

나무로 된 고요함

나는 나무로 된 고요함 위에 손을 얹는다
그 부드러운 결을 따라
보고 듣고 말한다
그대 기쁨, 영원한 기쁨의 지저귐이
사물들의 원소 속에 숨어 있음을 깨닫는다
하느님은 여느 때처럼 말없이
황금 심장을 가슴 속에 품고 계신다
아, 거기서 떨어지는 황금 부스러기를
그 하나하나로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유리와 불과 돌 속에서
지워질 이름이란 없을 것이거늘
쓸모를 모르는 완구(玩具)처럼
하늘의 언저리를 굴러가는 태양 아래
인간은 오래되고 희미한 기쁨의 필적들을
주워 모으는 절박한 수집광
아, 우리가 불안을 조금만 더 견뎠더라면
그것을 하느님이
조금만 더 도와줄 수 있었더라면
유리와 불과 돌 속에서
사라지는 이름이란 없을 것이거늘
나는 양손을 가슴팍 위로 거두어 모은다
망각이 그 부드러운 결을
한층 더 부드럽게 지워가며
나무로 된 고요함 아래 죽음을 눕힌다
그때 기쁨, 죽음으로부터
우연히 건너온 기쁨 하나를 움켜잡으려
나는 다시금 그 위에 손을 얹는다

'오래되고 희미한 기쁨의 필적들을 주워 모으는 절박한 수집광'이란 말에서 숨이 탁 막혔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손'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 부분도 살짝 관심있게 지켜봐주시면 더 풍요로운 감상이 되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은 나의 약점

당신은 내게 어느 동성애 운동가의 시를 읽어준다
강렬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시를
내 언어가 결코 가닿지 못한 슬픔의 세계가
밤하늘의 성좌처럼 선명한게 펼쳐진 시를
나는 고통스럽다
반은 질투심에, 반은 감화되어
그러나 나는 다만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참으로 오랜만에
진실된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한 명의 유순한 독자가 되어

시를 읽고 난 후 당신은 내게 웃으며 말한다
당신이 동성애자였다면
이렇게 좋은 시를 쓸 수 있었을 텐데
나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당신의 유일한 약점이군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당신의 위트 섞인 선의 아래에는
아주 날카로운 메시지가 숨어 있다
내가 중산층 이성애자 시인이라는 사실
그것은 유일한 약점이 아니라
나의 본질적인 한계가 아닌가?

-후략-

'사랑'이 어딨어?'라고 하실 분들을 위해 이번 시집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 한 편('사랑은 나의 약점')까지 덧붙였어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게 되는 절절한 연시 계열이 아니죠? 일종의 성찰로 이어지는 전개가 자못 흥미롭습니다. 사실 시는 사시사철 다 어울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짧은 가을이 겨울옷을 입기 전에 시집 한 권 들고 산책하시는 것도 좋은 추억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만의 언어로 시를 쓰신다면 저도 꼭 읽게 해주세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5. 07:33

식후에 이별하다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했으니
이제 이별이다 그대여
고요한 풍경이 싫어졌다
아무리 휘저어도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를테면 수저 자국이 서서히 사라지는 흰죽 같은 것
그런 것들은 도무지 재미가 없다

거리는 식당 메뉴가 펼쳐졌다 접히듯 간결하게 낮밤을 바꾼다
나는 저기 번져오는 어둠 속으로 사라질테니
그대는 남아 있는 환함 쪽으로 등 돌리고
열까지 세라
열까지 세고 뒤돌아보면
나를 집어 삼킨 어둠의 잇몸
그대의 유순한 광대뼈에 물컹 만져지리라

착한 그대여
내가 그대 심장을 정확히 겨누어 쏜 총알을
잘 익은 밥알로 잘도 받아먹는 그대여
선한 천성의 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이를테면
내가 죽 한 그릇 뚝딱 비울 때까지 나를 바라보며
그대가 속으로 천천히 열까지 세는 소리
안 들려도 잘 들리는 소리
기어이 들리고야 마는 소리
단단한 이마를 뚫고 맘속의 독한 죽을 휘젓는 소리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먹다 만 흰죽이 밥이 되고 밥은 도로 쌀이 되어
하루하루가 풍년인데
일 년 내내 허기 가시지 않는
이상한 나라에 이상한 기근 같은 것이다
우리의 오랜 기담은 이제 여기서 끝이 난다

착한 그대여
착한 그대여
아직도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열을 셀 때까지도 기어이 환한가
천 만 억을 세어도 나의 폐허는 빛나지 않는데
그 질퍽한 어둠의 죽을 게워낼 줄 모르는데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29.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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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27. 08:00


(오늘 포스팅은 매우 주관적인 내용입니다)


 

 '가치관'이란 "가치에 대한 관점. 인간이 자신을 포함한 세계나 그 속의 사상에 대하여 가지는 평가의 근본적 태도"라고 합니다.(from daum 국어사전) 그렇습니다. 가치관이란 세계에 대한 평가기준이자, 관점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으므로 그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는 상당부분이 가치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가치관은 곧 그 사람 정체성의 일부이자 삶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가치관들이 존재하며,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전의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린 일 있지만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상대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가치는 존중받아야 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의견차이로 대화를 나누다가 ‘그건 너와 나의 가치관의 차이야’라며 더 이상 이야기를 전개시키지 않기도 합니다. 종교나 정치문제로는 싸우는 게 아니라고들 하는데 그것은 결국 그것이 가치관의 문제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가치관의 문제’가 ‘함께 살아가는 문제’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현실세계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자연히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서로 다른 ‘가치관의 문제’가 ‘함께 살아가는 일’에 문제를 발생시킬 경우, ‘그건 가치관의 문제야’라는 일종의 판단보류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 것일까요?


 

 제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연애’라는 ‘관계’가 ‘함께 살아가는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연애에서 가치관의 차이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너무나 많습니다. 연애를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사람은 가치관이 한 인간에게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이며 이미 형성된 각자의 가치관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서로를 힘들게 할 수 있는지도 느끼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바꿀 필요 없이 처음부터 '나와 잘 맞는'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생각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람은 자기 한계만큼 타인과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맞춰가기 위해 써야하는 에너지가 적게 들수록 관계를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에 도달할 가능성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만나다가 그런 가치관의 차이에 부딪쳤을 때 ‘이건 가치관의 문제’라며 그냥 관계를 정리해버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관계라는 것이, 이미 나에게 잘 맞도록 정해진 것을 찾는 것이 전부라면, 관계가 힘들어지면 그냥 그만두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자기의 한계를 넘는 힘든 관계를 질질 끌면서 고통 받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자기 마음의 한계를 무시하고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자기 한계만큼 사랑하게 되어있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분명히 우리가 해야 하는 ‘노력’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노력’이 ‘관계’ 그 자체라고까지도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가치관의 차이 문제에서 필요한 노력은 어떤 것일까요? 서로 다른 가치는 존중되어야 하므로 한 쪽의 가치를 다른 쪽의 가치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가치관을 결코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바뀔 수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만 보통 잘 바뀌지 않으니까요.) 제 생각에 그 노력은 우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치관의 차이는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져볼 수’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그런 의미에서는 ‘더 이상 대화할 게 없는 문제’이겠으나 그래서 모든 대화가 중단된다면, 간과하고 있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문제’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살아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관계에서 해야 하는 노력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는 오히려 많은 대화와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대화는 서로의 가치관을 바꾸거나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힘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 함께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가치관의 문제’역시 바뀌기 어려운 것이나, 바뀌지 않는 것도, 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도 아니므로(내가 현재 지닌 가치관이 완전무결한 것은 아닐 테니까요) 대화(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무언가를 토론의 대상으로 삼을 때 목적은 성찰이지 이기고 지는 맹목적인 설득이 아닙니다.)


 

  결국 ‘가치관의 문제’는 판단 보류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함께 살아가는 문제’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요지입니다.  이건 우리 생각이 서로 다른거니까, 어떻게 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평생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는 어울려 살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는 말은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가치관의 문제는 해결이 어려우니까요. 그런 노력 후에도 결국 함께하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이 날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꽤나 높습니다. '양보할 수 없는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도, 계란으로 바위를 쳐야 할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그런 때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지프스가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바위처럼 다시 떨어질 줄 알아도 밀고 올라가는, 결코 효율적이지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잘 되지 않을 줄 알아도 끝까지 잘 되도록 노력해주는 마음. 사랑이 뭔지 말하기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결과에 관계없이 그런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닐까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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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21. 08:30











안녕하세요! 유수입니다.

갑자기 날이 추워졌네요. 다들 도톰한 옷들 준비하셨나요? 저는 옷보다 옆에 끼고(?) 다닐 사람 생각이 간절하네요.

여기다 넋두리 해봐야 생기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





갑자기 다가온 가을을 맞아, 가을날씨처럼 서늘한 만화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인공 소개가 되겠지만요.

오늘 소개해 드릴 만화는..두구두구두구두구

앨런 무어가 이야기를 쓰고, 데이빗 로이드가 그림을 그린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입니다.










 

2008년 말에 시공사에서 나온 한국어판의 표지입니다. 아직 절판되지 않았으니 서점에서 사실 수 있어요.
무정부주의 냄새가 펄펄 나는 이런 만화가 다른 곳도 아니고 시공사에서 나왔다는 게 참 신기해요.
음...그냥 그렇다구요. 




이야기를 쓴 앨런 무어Alan Moore의 사진입니다. 절대 나무 할아버지 그런 게 아니고
영국 출신의 만화 스토리 작가이자 소설가로, 이 작품 말고도 "왓치맨" "프롬 헬" 등의 작품을 집필했다고 하네요.
"브이 포 벤데타"는 작가의 출신지인 80년대 영국의 우파정권을 비판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2006년에 개봉하기도 했죠. 워쇼스키 형제 제작이었습니다.
앨런 무어는 처음부터 작품의 영화화를 반대했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 결과물에 대해서도 크게 실망하여 결국 영화화를 허락한 판권 소유사인 DC코믹스와의 연을 끊고 맙니다.
브이 포 벤데타의 이야기를 미국 관객 취향의 싸구려 수퍼 히어로 이야기로 전락시켰다고 말이죠. 
영화가 어떤지는 아래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 하겠습니다.








주인공 브이 역은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으로 유명한 배우 휴고 위빙이,
우연히 그의 복수극에 말려든 여인 이비 해몬드 역은 나탈리 포트만이 맡았습니다.
저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휴고 위빙의 멋진 목소리입니다.
역시 여자는 청각에 약한가봐요...













브이의 목소리를 감상하시죠.
잘 들어보시면 브이의 대사가 알파벳 V로 시작하는 단어를 엮어 만들어진 문장이라는 걸 아실 수 있을거예요. 
브이가 호기롭게 '부알라!'라고 외치는 부분부터..
이 대사 속에 쓰인 단어 중 몇몇은 만화 원작의 각 챕터 제목에 쓰인 단어이기도 합니다.

 
Voilà! In view, a humble vaudevillian veteran cast vicariously as both victim and villain by the vicissitudes of Fate. This visage, no mere veneer of vanity, is a vestige of the vox populi, now vacant, vanished. However, this valorous visitation of a bygone vexation stands vivified and has vowed to vanquish these venal and virulent vermin vanguarding vice and vouchsafing the violently vicious and voracious violation of volition! The only verdict is vengeance; a vendetta held as a votive, not in vain, for the value and veracity of such shall one day vindicate the vigilant and the virtuous. Verily, this vichyssoise of verbiage veers most verbose, so let me simply add that it's my very good honour to meet you and you may call me "V".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는 제 3차 세계대전을 겪은 가상의 90년대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1982년에서 1988년까지 연재되었습니다.
2006년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지요.
이 영화는(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원작과는 이야기의 흐름부터 몇몇 인물의 성격 따위가 많이 다릅니다. 특히 브이의 성격과 이비와의 관계가 많은 변화를 겪었어요. 사실 이 포스팅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까고 싶어서 올리는 글입니다. 왜냐하면 원작이 가지는 아련한 여운을 다 잘라먹고 브이란 캐릭터가 가지는 깊이를 얄팍하디 얄팍하게 깎아먹었기 때문이죠. 가장 짜증나는 부분은 브이와 이비의 관계를 지나치게 로맨틱하게 설정해둔 점입니다. 원작에서의 두 사람 사이에 성적 긴장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의 관계는 연인사이라기보다는 사제지간이나 부녀지간이라 하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거예요.   


그럼 지금부터 영화 "브이 포 벤데타"와 원작만화의 차이점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할게요.










영화와 만화 속 브이는 복수에 미쳐있다는 등의 공통점도 있지만 영화 속의 모습이 더.. 유치합니다.^^;






1. 나의 브이는 이렇지 않아! ;ㅁ;- 브이의 성격 변화



브이가 활약하는 만화 속 배경은 총통 아담 수잔의 독재 정권 발 아래에서 신음하는 암울한 영국 사회입니다. 이 정권은 제 3차 대전 직후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동성애자, 유색인종, 공산주의자 등 우파 독재 정권 수립에 방해가 될만한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다 라크힐 수용소에 집어넣습니다. 그 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주도했던 델리아 서리지 박사의 기록에 따르면 브이 역시 그 수용소에 갇혔던 사람 중 한 명으로, 실험을 겪는 과정에서 '적잖이 미쳐' 있었다고 합니다. 

브이 포 벤데타의 이야기는 이 수용소에 불을 지르고 탈출한 브이가, 수용소의 요직을 맡았던 인물들을 죽이는 것을 시작으로 최종적으로는 아담 수잔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복수를 완성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복수를 천천히 이루어나가는 브이의 용의주도함은 역시 이 사람이 제정신은 아니라는 걸 짐작하게 하죠. 혼자 힘으로 런던의 지하 어딘가에 은신처인 섀도우 갤러리를 짓고, 그 안을 정부에 의해 금지된 예술 작품들로 채우고.. 정부의 전반적인 행정을 주관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해킹할 기술을 익히는 등 보통 사람의 집념으로는 갖추기 힘든 능력을 브이는 갖고 있습니다. 제가 정신병증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연극적인 행동을 좋아하고 V로 압운을 맞춰 말하는 데에 집착하는 등의 행동을 보았을 때, 브이는 일종의 편집증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요. 
요컨데 이 사람은 약간 미친 사람일 뿐, 스파이더맨이나 엑스맨류의 초능력자라고는 할 수 없을 거예요.  


  



"Remember, remember, the fifth of november.."
위 장면에서 알 수 있듯 브이는 라임 맞추기를 참 좋아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대사를 인용하거나 토마스 핀천의 소설 'V'의 한 대목을 낭송하는 등
연극적인 행동을 좋아하지요.
위 장면은 작품의 첫 챕터에서 브이가 영국의 국회 의사당을 폭파시키는 장면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이야기의 맨 마지막에 브이의 시체를 실은 열차가 이 건물이 폭파하죠.



그랬던 것이.. 작품이 영화화 되는 과정에서 브이의 복수 준비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삭제되어, 그가 어떻게 경찰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는지 도통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브이가 자신을 체포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을 귀신같이 알아내고, 또 방송국에 침입하는 등 신출귀몰한 활약을 보이는 게 가능했던 것은 그가 정부의 네트워크 시스템인 '운명'을 해킹했기 때문인데요, 영화에서는 이 '운명'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탓에 브이가 마치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적의 움직임을 훤히 꿰뚫고 있는 초능력자처럼 보이게 되었어요. 그 대신 만화에는 나오지 않는 브이의 현란한 칼부림 솜씨-_-;;를 영화 속에선 마음껏 볼 수 있어요. (이때문에 영화를 보고나서 만화를 본 독자들 사이에서 원작의 브이가 너무 약해빠졌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고 해요) 개연성 따위는 개나 주고 슈퍼 히어로로서의 브이가 보여주는 액션에만 공을 들인 거죠. 이해는 합니다. 영화사도 영화 흥행시켜서 먹고 살아야지요.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운명'을 통해 정부 각 기관에서 브이에 대한 보고를 듣는 아담 수잔 총통.






브이가 '운명'을 해킹하여 총통을 놀라게 합니다. 까꿍!





이야기의 개연성에 관련된 설정뿐만 아니라, 브이의 사상에도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습니다. 원작의 브이는 골수 무정부주의자입니다. 브이가 원한 것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부 그런 게 아니라 영국 사회를 극심한 혼돈에 빠뜨려 정부의 통제능력에 빅엿을 먹이는 것일 뿐이죠. 하지만 영화에서의 브이는 대단히 얌전해졌어요. "국민이 정부를 무서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무서워 해야 한다" 브이의 이 대사에서 알 수 있듯 2006년에 재탄생한 브이는 잔혹한 또라이 아나키스트가 아닌 굳은 의지의 민주 투사로 그려져 있습니다. 원작의 브이가 가지는 급진적 사상이 영화 제작국인 미국의 정서와는 그다지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영화의 브이는 초능력 내 친구♪ 민주열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 속 브이는 앞치마 두르고 요리도 합니다. 이 장면 덕분에 원작의 브이보다 더 귀여워 보입니다ㅋㅋ







요런 걸 만들어 팔아먹으려고 브이를 그렇게 만들었군요.
그래도 영화가 브이 캐릭터의 상품성을 높여 준 덕분에 피규어 제작업체 같은 중소기업이 먹고 삽니다.(?)








2. 이비 해몬드와의 관계








비밀 경찰들로부터 이비를 구출하여 자신의 거처로 데려 온 브이.
이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도 모르게 브이의 후계자로 키워집니다.





 

브이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목격한 이비.
브이에게 살인의 부당함을 역설하다 결국 브이에게 실망하고 맙니다.
브이는 이 시점부터 이비를 2대 V로 키울 마음을 먹은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부조리한 사회를 보는 이비의 눈을 뜨이게 하기 위해 가짜 감옥을 꾸민 후 이비를 고문한 브이.
브이가 준비한 연극 덕분에 이비는 브이와 같은 혁명의 의지를 마음에 싹틔우게 됩니다.
이비 역시 정부에 의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일이 있지만, 브이와 같이 강한 복수심을 갖지는 않습니다.
'깨우친' 후에도 살인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구요.
이 점이 브이가 이비를 자신의 뒤를 이어 혼돈 이후의 영국 사회를 이끌 재목으로 삼은 이유인 듯 합니다.






원작에서 브이와 이비의 관계는 사제지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의사적 부녀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지요. 브이는 이비의 교육을 위해 위의 사진 설명에 써두었듯이 가짜 감옥을 꾸미는 등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작품 말미에선 그 교육이 대단히 유효했는지, 이비가 마침내 자신을 훈육한 브이의 의도를 깨닫고 그가 죽은 후 그의 가면을 쓰고 두번째 브이가 되지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비가 브이의 후계자라는 암시가 그다지 강하지 못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브이의 마지막 폭파 작품(?)을 바라보는 이비가 그의 삶을 기억하는 마지막 인물이 될 것이라는 막연하고도 진부한 묘사가 보일 뿐이지.. 이비가 적극적으로 브이의 계획을 이어 수행한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그럼 브이는 왜 이비를 고문하기까지 하면서 그녀를 일깨우려고 노력한 것일까요? 그냥 마음 속 연인과 같은 사상을 공유하기 위해서? 영화 속의 이비는 수퍼 히어로의 가슴아픈 로맨스를 장식해 줄 장치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속 브이와 이비의 댄스 장면
스승님이랑 무드 잡고 그러는 거 아니야~

퍼온 건 재생이 안되네요. '유튜브에서 보기'를 클릭하세요..ㅜ







만화 속의 같은 장면입니다.
섀도우 갤러리에서 함께 춤을 추는 이비와 브이. (섀도우 갤러리엔 반주 깔아 줄 주크박스에 미러볼까지 없는 게 없어요ㅋㅋ)

비장해보이기까지 한 만화 속 댄스 장면에 비해 영화 속 같은 장면은 참 분위기가 달달합니다.



   




3. 조연 캐릭터의 삭제


만화 브이 포 벤데타에는 정부 요직에 앉아 있는 여러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브이의 복수담과 맞물려 이어집니다. 그 중에서도 로즈마리 아몬드는 의도치 않게 브이를 도와 총통인 아담 수잔을 살해하는 중요한 캐릭터죠.






정부 요직에서 일하고 있는 데릭 아몬드를 남편으로 둔 로즈마리.
이 두 사람은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한 부부였습니다.







델리아 서리지 박사를 죽이고 나오는 브이와 맞닥뜨린 데릭 아몬드는
마누라 겁주느라 총에 총알을 넣는 것을 깜박하여 그만 브이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데릭을 죽임으로써 브이는 의도치 않게 자신의 계획을 도와 줄 아군 하나를 얻습니다.
그게 누군가 하면...



브이에게 남편을 잃은 로즈마리는 그 후 정부를 비롯한 그 누구도 자신의 처지를 돌봐주지 않는 것에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낍니다. 자신의 남편이 정부를 위해 일하다 죽었는데 말이죠. 퇴폐 클럽의 댄서로 전락한 로즈마리는 결국 총을 구해 총통 아담 수잔을 살해합니다. 브이의 계획에 없던 살인이 결국 그의 복수를 돕는 결과를 낳은 것이죠. 
영화에서 정부 관련 인물들이 이야기의 진행에서 가지는 비중은 그야말로 공기에 가깝습니다. 로저 다스콤이나 데릭 아몬드는 그야말로 첫 등장이 마지막 등장이 된 수준이고, 로즈마리는 그나마 등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영화는 수퍼 히어로 브이의 원맨쇼를 풀어내려고 로즈마리 아몬드의 암살 결행과 같은 멋진 장치를 다 버렸습니다. 정말 아쉽고 또 아쉬운 결정이예요..





나가며- 만화의 진짜 주인공은 브이가 아닌 '혁명' 아닐까




미국 관객 취향 수퍼 히어로의 칼부림과 허세로 도배된 영화와 달리 원작 만화 'V for vendetta'는 브이의 이야기만을 작품 전면에 내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브이가 비밀스레 끌어나가는 혁명의 흐름을 조용히 관망하고 있을 뿐이지요. 작품은 복수심에 눈이 먼 브이의 인간적인 면모와 이비의 성장, 영국 정부의 몰락 과정을 과장없이 묘사함으로서 브이의 무정부주의 사상을 유치하지 않고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 제시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이 정도면 마가렛 대처가 이끌던 80년대 영국 정부를 까고자 했던 앨런 무어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지금까지의 고찰에서 미루어 보건데..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브이도 이비도 아닌 혁명 그 자체가 아닌가 합니다. 브이는 히어로가 되기에는 성격면에 있어서나 능력에 있어서나 결함이 많고 이비 역시 2대 브이 역할을 안심하고 맡기기엔 아직 좀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결국 이 이야기는 어떤 미친 사람의 절절한 복수극이자 파시스트 정권에 희생된 다른 이들의 삶을 다룬 비극입니다. 이 만화를 읽은 독자는 '우와~ 브이 멋있다 피규어 사야지'와 같은 감정이 아니라 마지막 장면 뒤에 이어질 영국 사회에 대한 걱정과 브이의 덧없는 삶에 마음 한켠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될 거예요. 이런 건 브이의 화려한 액션에만 공을 들인 얄팍하디 얄팍한 영화에선 느낄 수 없는 것이지요. 

여러번 반복해서 읽기를 권유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내용뿐만 아니라 데이빗 로이드의 작화 역시 멋있어서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꺼내서 들춰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운 만화랍니다. 마지막으로 만화의 여러 일러스트를 보여드리며 글을 마치고 싶군요. 다음 주에 만나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20. 08:30



 지난 번 '질문1' 포스팅에 여러 분들이 답을 해 주셨습니다 ㅎㅎ 무척 감사드려요. 댓글을 통해 이런저런 의견을 듣고 또 묻고 또 대답을 들으면서 매우 즐거웠습니다. 제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생각하게 되고 하나의 상황에 대해 사람이 판단을 내리는 포인트가 얼마나 다양한지 또다시 실감하게 되기도 했고, 문제의 본질을 좀 더 파악할 수 있게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번 포스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 vs 나를 좋아하는 사람, 당신의 선택은?' 정도가 되겠는데요, 댓글에 나온 내용들과 제 생각을 여기서 한번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애초에 제가 이것이 궁금했던 이유 중 하나는, "결혼은 후자 같은 사람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얘기에 따르면 특히 여자들은 그러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결혼은 그 사람이 많이 좋지 않아도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과 해야하나? 라는 것이 궁금해졌어요.

 faker님이 말씀하셨듯이 현실에서는 양 쪽의 요소가 모두 필요하며, 양쪽을 둘 다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고 행복한 연애상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미난 것은 다른 분들도 본인들이 선택하신 입장에 대한 이유를 다른 쪽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시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ex- 전자에 해당하는 사과모히토님 "조련이 가능하다", 후자에 해당하는 갑툭튀인님 "누구나 매력은 있으므로 시간이 지나면 나도 좋아하게 될 수 있다") 이는 양쪽이 모두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다들 전제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요 양쪽을 모두 갖추는 경우가 은근히 쉽지 않다는 것도 꽤 공공연한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만약 양자 택일을 한다면, 어느 쪽에 더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까를 한번 생각해봅니다.  저의 입장은 전자 쪽에 가까운데요, 일단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잘해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좋아지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가 '좋아야' 연애가 시작되는데, 저한테 아무리 잘해줘도 그 사실만으로는 그 사람이 '연애하고 싶을 만큼' 좋아지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트위터를 통해 제게 답을 해 주신 어떤 분의 대답처럼 그 만큼 그 사람이 좋아지지 않으면 그 사람을 이용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마음도 꺼림찍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에게는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불가피한 문제에 가깝습니다. 후자에 해당하는 입장을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며 피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ㅠ_ㅠ


 하지만 후자를 선택하신 분들은 제가 '좋아할 수 없다'라고 생각한 부분에 대해 '좋아하게 될 수 있다'라는 의견을 많이 내 주셨습니다.(절미절미님 등등) 여러분들의 생각을 듣고 또 생각해보니까 아마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도 그 사람의 캐릭터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내가 어떤 수혜를 받아서라기보다는 그런 걸 할 줄 아는 그 사람 자체가 마음에 들 수도 있다는 거죠. '타인의 대한 태도'를 보는 것이 '내가 느끼는 매력'을 보는 것보다 그 사람을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것 같다(유수님)고 말씀해 주시기도 했는데 이처럼 '타인에 대한 태도'를 중요한 매력 포인트로 두시는 분들은 확실히 후자쪽이 어필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결국 '내 것이 될 수 있는 매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유로 말씀해주시기도 했는데요.(직업현자님) 아아, 만약 그렇다면 확실히 후자,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앞으로도 생각해볼만한 문제이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해 중간 결론을 내려본다면 제 결론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이것은 '그 사람 자체'와 '그 사람이 하는 행동' 중 어느 것에 더 매력을 느끼느냐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죠. 개성을 중시하느냐 관계를 중시하느냐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역시나 맞고 틀리고의 문제라기 보다는 취향의 문제라는 것이죠. 그러나 '그 사람 자체'를 판단하는 기준이 '그 사람의 행동'이 될 수도 있고 '그 사람의 행동'이 반드시 '그 사람 자체'를 말해주지는 않기도 한다는 점에서 여기에는 여전히 생각할 거리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혹자는 사랑하고 싶으냐 사랑받고 싶으냐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하던데요, 그럴수도 있을까요?)


 그리고 두 번째는 취향도 팔짜다, 라는 것입니다.
 양쪽이 다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은 결국 자기 이유대로 행동하는 것이 자기에게 행복하겠다는 얘기이지 않나 싶어서요. 생긴대로 살아야지 뭐 어쩌겠어...라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의 심정일까요.


 그러니 전자에 해당하는 분은 후자를 보완할 방법을
 후자에 해당하는 분은 전자를 보완하는 방법을 찾으시는 것이 맞는 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계속계속 생각해 볼 생각입니만,
 어쨌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ㅎㅎ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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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17. 08:30




오랜만이에요, 다들 메리추석 보내셨나요?

저는 시드니에서 돌아오자마자 여행 사진 정리도 뒷전인채 게임 중독자가 되었어요. 
뒤늦게 스머프 빌리지탭주(Tap zoo)에 빠져서 아이패드와 혼연일체가 된지 어연 삼일째에요.
이 게임들을 시작함과 동시에 제 삶은 그야말로 잉 to the 여..
아침에 눈뜨자마자 스머프 빌리지에 가서 당근을 재배하고, 동물원에 가서 청소하느라 정신없답니다.
16살짜리 동생이 옆에서 혀를 끌끌 차지만 멈출 수가 없어요 ㅋㅋㅋ

아무튼 오늘은 탭주와 더불어 시드니에서 보고온 예쁜 동물원인 타롱가주(Taronga zoo) 이야기를 함께 해보려구요 :)




첫화면만 봐도 무슨 게임인지 대충 짐작이 가시죠?
탭주는 동물원을 직접 꾸려나가는 게임이에요.




이건 9월16일 현재까지 제가 일궈낸(?) 제 동물원이에요.
아직까지는 좀 두서가 없지만 나름대로 다양한 동물들을 채워넣었고, 피자가게랑 자판기도 있다구요.
동물원 사장(나) 취향대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사자를 놓았어요.
돈이 좀 모이면 제가 좋아하는 호랑이 사서 바꿔 놓을거에요.
동물원은 역시 난폭한 놈들이 최고.




동물원의 등급도 이렇게 확인할 수 있어요.
흥, 동물만 조금 더 채워넣으면 A도 문제없다구요.




어제까지만 해도 제 동물원은 땅이 좁아서 이렇게 포화상태였어요 ㅠㅠ
포스팅을 위해 과감하게 25,000코인을 투자해서 땅을 넓혔어요.
그치만 아직도 갈길이 멀어요.


 


코인으로만 살 수 있는 아이템이 있고, 별로만 살 수 있는 아이템이 있어요. 
코인은 게임을 통해 모을 수 있고, 별은 따로 결재하는 거에요.
어지간하면 결재 안하고 그냥 하려고 했는데 사람 욕심이 그게 안되더라구요 ㅠㅠ
결국 오천원어치 결재하셨습니다 -_-




아무튼 코인과 별을 적절히 사용해서 동물도 살 수 있구요,




레스토랑, 벤치, 나무 등 다양한 시설도 구비할 수 있구요,




포유류건 조류건 무조건 다 알에서 깨어나는(뭔가요 이런 시스템은) 아기동물도 만들 수 있어요.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아직은 레벨도 낮고 동물원 비쥬얼도 미미하지만,
한달 안에 엄청난 동물원을 만들어보겠어요! 

이렇게 씐나게 탭주를 하다보니 문득 떠오르는 곳이 바로 얼마전에 다녀온 시드니의 <타롱가주> 였습니다.
왜냐구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탭주를 보면서 저런 동물원에 가면 동물도 동물이지만 경치가 너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시드니의 타롱가주는 실제로 탭주처럼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던 최고의 뷰를 자랑하는 동물원이었어요.




타롱가주는 오페라하우스가 위치한 써큘러키 와프에서 페리를 타고 약 15분가량 가면 위치해있는 곳이에요.
동물원 전체가 하나의 섬은 아니지만,
섬의 끝자락에 위치해있는 산 하나를 통째로 동물원으로 만든 곳이기에 바다와 바로 맞닿아있어요.




선착장에 내리면 케이블카 혹은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동물원 입구로 올라갈 수 있어요.
저는 시드니 시티에 있는 한인여행사에서 입장권&케이블카 콤보티켓을 27AUD에 저렴하게 구입했어요.
현장에서 직접 구입하시면 43AUD로 한화로는 무려 5만원 가까이 하는 금액이니 꼭 할인티켓을 이용하시길!

제법 경사진 산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데 우와 소리가 절로 나더군요.
남태평양 바다와 시드니 시티가 한눈에 들어와요.




동물원에 왔으니 펠리컨도 보고♩




꺅 귀여워 ♥_♥
복실복실 코알라도 보고♪ (야 좀 일어나)




캥거루도 보고♬




캥거루인줄 알았으나 알고보니 왈라비라는 희한한 놈이랑 대화도 시도하고♪

사실 동물원 자체는 크게 기대하시면 안되요.
에버랜드의 10분의 1밖에 안되는 크기에 동물쇼도 몇 개 없어요.
그치만 그 모든걸 감안하고도 타롱가주에 꼭 가보아야 하는 이유는?
역시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동물원이라는 점이겠죠.




새쇼를 보러갔어요.
새쇼라고는 하지만 에버랜드의 현란한 동물쇼에 비교하면 이건 그냥 먹이주면서 설명하는 '새와의 대화' 수준.
그치만 뒤로 보이는 경치가 정말 끝내주지 않나요?
이런 배경에서 진행하는 동물쇼는 이 세상에 단 한 군데밖에 없을 거에요.




오페라 하우스, 하버브릿지, 시드니타워가 한 눈에 들어오는 환상적인 경치. 
이 곳 타롱가주에서는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답니다. 




탭주가 현실이라면 이런 느낌일까요? 내 동물원에도 기린 있는데..

타롱가주는 비록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인위적인 느낌 없이 예쁘게 꾸며진 공원에 자연스럽게 동물들이 섞여져 있는 것 같아서 더 좋았어요. 

시드니 다녀와서 첫 포스팅이 달랑 외곽에 있는 동물원이라니 ㅋㅋㅋㅋ
제가 게임에 빠져서 여행 정리를 못해서 그런건 절대 아니에요 ㅋㅋㅋㅋ

다음주에는 진짜 시드니 이야기를 들고 돌아올게요.
miss톡은 이만 총총.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14. 08:30









































































































이상한 아저씨가 나왔네요.


이번 화에는 페이지 어딘가에 제가 숨어 있습니다 ㅋㅋ


어디에 있을까요. 찾아보세요.:-P 쉬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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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14. 08:30
영화처럼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지은이 가네시로 가즈키 (북폴리오, 2008년)
상세보기

별점평 : ★★★☆☆
한줄평 : '개똥같은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지'


* What's the story
영화화되며 큰 인기를 끈 'Go'와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집필한 가네시로 가즈키의 2008년작'영화처럼'은 다섯 편의 영화를 계기로 펼쳐지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집이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 '정무문', '프랭키와 자니', '페일 라이더', '사랑의 샘'을 모티프로 한 에피소드는 각각 소소하면서도 특별한 매력을 발산한다.

첫번째 단편인 '태양은 가득히'의 경우, 국내작가의 작품마냥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하다. 영화를 통해 가까워진 두 소년이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어른으로 만나, 또 한번 영화로 재회하는 스토리로, (많은 이들이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국민소설이라 불릴 만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구조와도 유사하다. '용일'과 '영화' 등 캐릭터들도 한국인이며 유년기의 학교 또한 총련계로 그려진다. Anyway, 이외에도 각 영화는 적재적소에 배치돼,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형성하는 촉매제가 되거나 혹은 그들의 상징으로서 기능한다.

* My story is..
가끔 사전 정보나 지식이 없어도, 노래만 듣고 그 작곡가가 누군지 혹은 영화만 보고 그 감독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너무나도 명확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데, 결코 좋고 나쁨을 평가할만한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일본 최고 권위의 나오키상 수상자이자 인기작가인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이, 내게는 그랬다. 언제나처럼 그의 이름은 표지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고, '가네시로 가즈키가 돌아왔다!'란 제법 굵은 띠지까지 둘러져 있었지만. 읽을수록 금세 알 수 있는 그의 냄새(?)와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으니까. 사실 '경계인'으로서의 설정 자체 때문일지도?


그의 한국이름은 김성일, 가네시로 가즈키는 재일교포 3세다. 특히 나오키상의 영광을 안겨준 동시에, 동명의 영화로 각색되며 인기를 모은 'Go'(2001)는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은 마르크스 주의자이자 조총련 활동을 했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 조총련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왔는데- 국적은 한국 국적이며, 일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재일교포로서의 자아, 그 혼돈과 갈등에 대한 진솔한 고백은 특유의 스피디한 전개 속에 흥미롭게 그려졌고 그 결과,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서 사랑을 받았다. 그의 소설에서는 한국인 캐릭터도, 총련계 학교란 배경도 자주 등장한다.
작가의 삶이 텍스트 속에서 살아숨쉰다. 마치 그의 소설이 아닌, 그의 삶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등장인물의 모습을 상상해볼 때면, 익숙한 얼굴이 하나 팍! 하고 나타난다. 바로 '인민루니' 정대세다. 가네시로 가즈키처럼 재일교포 3세인 정대세는 일본인이자 한국인이자 북한인이다. 무척 복잡한 아이덴티티가 아닐 수 없다. 정대세는 나고야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모두 총련계 조선학교며 대학교 또한 총련계인 조선대학교다. 또 다른 축구스타 이충성과 유도 대표였던 추성훈처럼 그에겐 복수의 선택이 가능했고, 그가 선택한 것은 J리그 그리고 북한의 국가대표였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 근현대사의 산 증인 같다. 원더걸스를 좋아하고 불고기를 즐겨먹는 정대세도, 가네시로 가즈키 소설의 주인공처럼 격동의 사춘기를 보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극장의 어둠 속에서 우린 재일 조선인도, 재일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다른 인간이 될 수 있지. 그러니까, 음, 이런 거야. 불이 꺼지면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또 어떤 등장인물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기대감이 우리의 머리와 몸 속에서 점점 부풀잖아. 그러다 불이 완전히 꺼지면 '팡!' 하고 터져버리지. 그때 우리란 인간도 함께 터져서 없어지고, 어둠 그 자체가 되는 거야. 그 다음은 스크린에 비치는 빛에 동화되면 그만이지, 그럼 우린 스크린 속에서 움직이는 등장인물이 될 수 있어. 개똥 같은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거지. 그래서 극장의 어둠 속에 있을 때는 신나고 가슴이 설레는 것 아닐까? 어때, 네 생각은?" (태양은 가득히, 31p)

삼천포로 푹 빠져버렸지만.. 다시 돌아와서 소설은 여느 때와 같이 최고의 가독성을 산출해내는 빠른 전개와 이를 뒷받침하는 문체가 돋보이며, 특유의 묘사력 또한 녹슬지 않았다. 영화를 좋아하는 내게는 깨알같은 재미가 부록처럼 따라오기도 했지만, 첫번째 단편이었던 '태양은 가득히'가 제일 좋았기 때문에 페이지를 넘길수록 기대감은 하락했다. 영화란 하나의 모티프가 반복해 등장해서인지 살짝 지루함도 느껴지고. 그래도 읽기 좋고, 읽기 편한 장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타공인 영화 마니아로서 처음에는 이 소설에 '영화'가 얼마나 잘 녹아났는가가 궁금했다면, 책을 덮은 지금은 '추억'이 이 소설의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소설 속 영화는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계기, 마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향을 맡는 순간 잊고 지냈던 기억을 떠올린 것처럼, 잠시동안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하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 존재다.

마지막 단편인 '사랑의 샘'에는 이러한 느낌과 뜻이 잘 살아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위해 '로마의 휴일' 상영회를 직접 준비하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추억들과 맞닥뜨린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했던 생각으로 이 글의 마지막을 대신하고자 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추억이란 성역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나름의 각오가 필요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어중간한 관심과 공감과 이해로 사람의 마음을 헤집고 들어가는 것은 흙 묻은 신발로 타인의 집에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굳이 들어가려 한다면, 할머니의 마음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메울 수 있을 정도의 보물을 지니고 가야한다." (사랑의 샘, 350p)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10. 15:16













안녕하세요? 유수입니다.

요즘 자주 만나뵙는군요!^^

제가 요즘 포스팅을 자주 올리는 이유는... 취업시즌을 맞아 미칠듯한 현실도피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어어..눙물이...ㅠㅠ




오늘 제가 또 충동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평소 좋아하던 곡이 동화책으로 제작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꼬꼬면 리뷰로 실추된 제 이미지와 이 블로그의 품격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그 곡은.. 영국의 전설적인 록커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첫 앨범 첫 트랙인 "Space Oddity" 입니다.









 


David Bowie (1947~)
2002년에 만 55세를 맞은 할아부지의 수트맵시를 보라..
위 사진은 필자가 '섹시함'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이기도 하다.ㅋㅋ









보위 옹이 22살이었던 1969년에 발표한 1집 <Space Oddity>의 커버 이미지.
이 앨범으로 그는 데뷔 후 처음으로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현재로선 위의 앨범의 보위의 공식적인 첫 앨범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사실 저 앨범을 내기 전, 스무살이었던 1967년에 발표한 앨범이 하나 더 있었답니다.
자신의 이름을 앨범 타이틀로 내건 아래의 앨범이지요.
이 앨범이 보위의 첫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잊혀진 이유는.. 그 스스로가 이걸 망한 작품이라고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앨범이 나온 1967년은 
비틀즈의 걸작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발표된 해이기도 하다.
머리 위에는 비틀즈가 날아다니고, 옆을 둘러보면 신생 하드록 개망나니 밴드들이 기타를 때려부수던 시절에
이런 말랑말랑한 포크 송 앨범을 들고 나왔으니 외면받는 게 당연하다...ㅠ




수록곡인 "Love you till tuesday"의 뮤직비디오.
귀엽다.. 일단 귀엽긴 한데, 뭔가 심심&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느낌이 그.. 소위 '망삘'이라고 하는 건가 보다..
 










첫 앨범의 실패로 한동안 암담한 시절을 보낸 그는,
이듬해 개봉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Space Odyssey>를 보고 크게 감명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앨범에 수록될 곡을 쓰는 데에 그 영화를 본 자신의 느낌을 담아내려고 하죠.

그 결과 탄생한 곡이.. 공식 1집 앨범의 타이틀이기도 한 "Space oddity"입니다.








가사를 잘 들어보세요!



Ground Control to Major Tom
Ground Control to Major Tom
Take your protein pills and put your helmet on

Ground Control to Major Tom
Commencing countdown, engines on
Check ignition and may God's love be with you

Ten, Nine, Eight, Seven, Six, Five,
Four, Three, Two, One, Liftoff

This is Ground Control to Major Tom
You've really made the grade
And the papers want to know whose shirts you wear
Now it's time to leave the capsule if you dare

This is Major Tom to Ground Control
I'm stepping through the door
And I'm floating in a most peculiar way
And the stars look very different today

For here
Am I sitting in a tin can
Far above the world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Though I'm past one hundred thousand miles
I'm feeling very still
And I think my spaceship knows which way to go
Tell me wife I love her very much... she knows

Ground Control to Major Tom
Your circuit's dead, there's something wrong
Can you hear me, Major Tom?
Can you hear me, Major Tom?
Can you hear me, Major Tom?
Can you....

Here am I floating round my tin can
Far above the Moon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이 곡의 가사는 우주탐사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떠나는 비행사 Major Tom과 관제센터의 교신 내용이랍니다.

기타의 느릿느릿 서늘한 코드반주 다음으로 이어지는 카운트다운이 탐사선의 발사를 암시하고 있지요.

발사 후 우주 공간을 유영하며 별을 관찰하던 것도 잠시, 톰이 탄 탐사선에 문제가 감지되고

아무런 대책없이 우주에 내던져진 톰은 그대로 우주 미아가 되어 사라집니다.


혹자는 이 가사를 두고 Major Tom이 우주의 아름다움에 반한 나머지

일부러 관제센터와의 교신을 끊고 지구를 영영 떠나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가사에 대한 여러 해석 중 한 가지가 최근 동화책의 이야기로 각색되어 발표되었답니다!

일러스트레이터인 Andrew Kolb가 그린 아래의 작품을 감상하시죠!

물론 위의 음악을 들으면서 가사에 맞춰 천천히 내려보시면 더 좋답니다.












 

귀여운 그림 속에 담긴 가슴아픈 이야기를 과연 아이들이 좋아 할진 모르겠지만^^;

저와 같은 팬의 입장에선 그저 뿌듯하고 사랑스런 작품으로 보인답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옛 노래 중에도 이렇게 시각화할만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진 곡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곡이 있을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과 같이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이렇게 끝맺기가 왠지 허전하군요.

그래서 데이빗 보위의 최근 라이브(그래봐야 2002년이지만..ㅠㅠ) 영상을 하나 실어두고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02년 <Heathen> 투어 중 베를린 공연 영상이에요.
곡명은 "Heroes". 상승감이 기가 막힌 곡입니다.
이 곡을 듣고 다들 힘내서 각자의 인생에서 영웅이 되었으면 합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