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31. 18:00




그냥 속상해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안정이 안 돼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면 눈물이 나고.

그동안 너무 고생한 아들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초등 3학년부터 대학 4학년까지

자유 시간도 맘껏 가져보지 못하고

오직 한길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제 어쩌지

엄마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하나

무슨 말을 어떻게 해줘야 하나

아들에게 무슨 말로 위로해 주지

엄마는 아들에게 사랑 한다는 말 밖에는 해줄 말이 없네

 

- 프로야구 2차 신인지명이 있던 날 대학야구선수 아들을 둔 어머니가 쓴 글.



 

2011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한창입니다. 제가 응원하는 삼성라이온즈가 현재 SK와이번스를 시리즈 스코어 3:1로 앞서고 있어서 저 역시 한껏 신이 나 있습니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빛나는 조명 아래 수만 관중의 응원을 받으며 그라운드를 누빕니다. 그들을 바라보면 일견 야구선수라는 직업이 화려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그들이 서 있는 야구장은 피가 마르는 전쟁터입니다.

 

오늘은 공주시에서 열리는 박찬호기 초등학교 야구대회가 끝나는 날입니다. 오늘로서 2011년의 모든 아마야구대회가 끝이 납니다. 한국시리즈라는 큰 축제에 가려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꼬맹이들이 뛰는 그 그라운드에도 냉혹한 경쟁과 처절한 승부가 있습니다. 제가 노량진 고시원에서 살던 시절, 저희 고시원 앞 초등학교에는 야구부가 있었습니다. 아직 몸도 마음도 덜 자란 그 아이들은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방과 후마다 어두워질 때까지 연습을 했습니다. 저렇게 야구를 하면 야구가 싫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혹독하게 훈련을 하더니, 얼마 뒤에는 서울시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는 현수막이 교문에 걸리더군요. 어린 나이부터 선수들을 그렇게 몰아붙인 덕에 고교야구 팀이 60개가 채 되지 않는 한국 대표팀이 4천개의 고교야구부를 가지고 있는 일본 대표팀과 비등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를테면 엘리트 체육 시스템 덕분이겠지요.



 







지난 8월 25일은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고교 졸업생과 대학 졸업생, 군 제대 선수와 기타 선수를 모두 합쳐 총 770여명이 드래프트 참가 신청서를 냈는데, 그 중 프로구단의 선택을 받은 선수는 단 91명뿐이었습니다. 너무 적은 것이 아닌가 싶지만 사실 이조차도 NC다이노스가 신생구단으로 참여하며 타 팀에 비해 많은 선수들을 지명해 간 것을 포함한 숫자입니다. 지난 해에도 800명에 가까운 선수들이 프로의 문을 두드렸지만, 프로팀의 유니폼을 입은 선수는 단 65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나머지 선수들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요. 지난 3년 간 준수한 성적을 거둔 고교팀의 졸업생은 대학팀에 들어가 4년 후를 노릴 수 있으니 그나마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지역예선에서 고배를 마신 약체 고교팀의 선수나, 더 이상 진학할 학교가 없는 대학팀의 선수나, 군대마저 다녀온 20대 중반이 훌쩍 넘은 나이에 배트와 글러브를 놓아야 하는 선수는 이제 무엇을 하며 살아야할까요.

 

 

지난 십여 년간 그들에게 야구는 인생의 모든 것이었을 것입니다. 잠 편히 못 자며,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지 못하고, 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모두 참으며, 때로는 구타를 당하면서까지 놓지 않았던 배트와 글러브인데, 그들의 인생에서 야구를 빼앗아버린다면 무엇이 남게 될까요. 오로지 야구만을 위해, 단 하나의 길을 향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매진해 온 그 선수들은 이제 어떤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할까요. 진로를 찾지 못한 많은 야구선수들이 어둠의 세계에 몸담게 되는 것을 우리는 그저 바라만 보며 혀를 끌끌 차야만 하는 것일까요.

 

국가대표 야구대표팀이 일본과 미국, 쿠바를 꺾는 것을 보고 환호와 탄성을 보내는 것에만 그친다면, 십년 안에 한국 야구는 대만이나 중국만도 못한 수준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올해 NC다이노스가 창설되어 야구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처럼, 프로구단은 반드시 증설되어야 합니다. 선수수급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매년 프로 입단을 희망하는 선수 중 10% 밖에 프로팀의 유니폼을 입지 못하는 레드오션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요. 더 많은 프로팀이 창단되어야만 선수들의 목표의식이 뚜렷해져 전반적인 야구의 저변 확대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조급증 없이 운동을 하게 되면 당장 성적을 내는 것에 급급하지 않고 기본기부터 착실하게 가르칠 수 있어 빠른 기량 향상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선수의 수요와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야구 꿈나무들뿐만 아니라 여가로서 야구를 즐기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프로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는 선수는 정말 극소수이고, 그 중에서 성공하는 선수는 더욱 적습니다. 프로야구 선수 하나만을 보고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하는 선수들은 정말 딱한 존재입니다. 선택 받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는 제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앞서 말한 프로팀의 증설이 장기적인 대안이라면, 당장 시급한 것은 아마야구가 활성화되어 많은 실업팀이 생기는 것입니다. 프로야구에 하위리그를 신설하거나 실업야구를 부활시키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안이지만 KBO나 MLB를 보고 눈이 높아진 야구팬들에게 아마야구는 성에 차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년 고시엔이 열릴 때면 지역예선부터 만원관중이 들어차는 일본이 정말 부럽습니다.

 








지난 2011년 8월 25일은 누군가에게는 기쁜 날이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영영 야구와 이별을 해야 하는 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야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대학야구 선수를 사촌동생으로 둔 형으로서 이날은 기쁨보다 슬픔, 설렘보다 아쉬움이 더 큰 날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 십년 넘게 그라운드에서 흘려온 그동안의 땀과 눈물을 보상 받아 프로팀의 유니폼을 입게 되지만, 다른 누군가는 프로팀의 선택을 받지 못해 상급학교 진학이나 연습생에 한 가닥 희망을 걸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한 학년을 더 유급하면서까지 야구를 하게 될 테고, 가장 많은 누군가는 그동안 삶 전체와도 같았던 야구를 포기하고 그라운드를 떠날 준비를 할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 생각에 죄송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고, 그렇게 많이 고생하고 훈련했음에도 좀 더 잘하지 못한 그 시간들에 후회가 밀려오고, 주변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어 연락을 끊고 죽을 만큼 술을 퍼마실지도 모를 그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대들은 모두 최고였다고.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잃으면서까지 야구에 전념한 그대들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야구라는 힘든 삶을 견뎌온 강한 사람들이니만큼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어떤 것에 도전을 하든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어려운 야구도 해왔는데 세상에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냐는 마음으로, 겁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에 당당히 맞서길 바란다고.

 

웃음과, 울음과, 행복과, 감동을 준 그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It ain't over 'til its over
-전 뉴욕 양키즈 포수 요기베라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