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4. 08:30


 



다음 주부터 기말고사가 시작됩니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방학을 할 테고, 얼마 지나지 않아 3학년들이 학교를 떠날 것이며, 그 빈자리는 새로운 1학년들이 채우게 될 것입니다.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방학식, 졸업식, 입학식 행사도 이어지겠지요. 


저는 이런 의식들이 싫습니다. 이런 행사는 언제나 국민의례라는 충성의 서약으로 시작을 합니다. 행사가 시작하면 저는 슬그머니 대열의 맨 뒤로 빠집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제가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조국’과 ‘민족’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에 저는 어설픈 ‘불복종’을 감행합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저는 강의석 씨처럼 국군의 날에 알몸 시위를 할 배짱도, 총 대신 감옥을 택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결연한 용기도 없습니다. 소박하게 말하자면, 저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무언가를 응시해야 하는 의식이 사무치게 싫습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부끄럽기만 한, 이제는 수치와 모멸의 감정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내 조국의 상징 태극기 앞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노라는 맹세의 주문을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국가인권위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것을 권고하는 커다란 변화를 겪으면서도, 정작 학교 현장에서 전체조회는 사라지지 않으며, 국민의례와 같은 폭력적인 의식에 대해서는 왜 아직도 문제 제기조차 할 수 없을까요. 왜 우리 아이들은 적지 않은 교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애인을 ‘애자’라고 부르고, 동성애자를 ‘변태’로 느끼며, 독도 문제와 같은 이슈에는 어른 세대 이상으로 폭발하면서 ‘잠재적인 우익’으로, ‘잠재적인 마초’로 성장해가고 있는 것일까요.


국가주의, 남성주의, 그리고 그것들이 뭉친 ‘전체주의’는 이데올로기로 이 사회의 표면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삶의 양식’으로 이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았습니다. 전체주의가 ‘삶의 양식’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모두는 ‘안락에 대한 희구’와 ‘그 안락을 박탈당했을 때의 공포’로 꽁꽁 묶여버립니다. 따라서 아주 작은 일탈도 자신의 전 존재를 걸어야 하는 모험이 되고, 모두의 앞에는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뻔한 길’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은 ‘안락한 삶’을 향해 나 있는 반복된 루트를, 이를테면 학교와 학원, 텔레비전과 판타지 소설과 컴퓨터 게임을 짓무르도록 답습합니다.







우리 시대의 아이들은 그 나이에서만 겪을 수 있는 ‘구체적 경험의 세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불쌍한 우리 아이들은 부모 세대의 욕망이 구축한 시스템의 상자 안에 갇혀버렸습니다. 그들은 세상과 진정한 교섭을 이룰 수 없었고, 부모 세대가 욕망하는 것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며 자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학교 교육과 어른 세대가 가르치려는 가치,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본능적인 회의의 대상이 됩니다. ‘경험’이 없는데 어찌 그 '경험의 가치'가 자리 잡을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에게 남은 것은 가치의 니힐리즘,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의 존재감 확인, 그것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정말 불쌍합니다. 엎드려 자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삶과 세계에 대한 그들 나름의 ‘절망’이 느껴집니다. 자유와 일탈의 모든 가능성을 거세당한 채, 희망도 없이, 오로지 ‘안락한 삶’만을 위해 학원에서 학원으로, 입시에서 입시로, 감시와 처벌, 통제과 규율 속에서 이리저리 떠밀리면서 한 살 두 살 나이만 키워온 아이들의 황폐한 내면이 느껴집니다. 그들은 존재감을 갈구하는, 불안하고 가련한 어린 짐승입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타자에 대한 관용과 힘없는 것들에 대한 연민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그야말로 ‘모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감으로 육박해오는 것들에 열광합니다. 학교에서 하는 전체 조회는 그토록 지겨워하고, 국민의례의 태극기에는 무덤덤한 아이들이 월드컵 공간에서는 붉은 악마가 되어 ‘대~한민국’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독도를 제 땅이라 우기는 ‘쪽발이’들과는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국가주의, 남성주의를 피부로 느끼고, 점점 ‘애국주의’에 열광하는 아이들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되돌리기 원하는 지성이 있다면, 그 노력은 단연코 이데올로기 차원의 투쟁이 아니라 아이들을 ‘자연’으로, ‘경험’의 세계로 돌려보내기 위한 투쟁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청산에 살고 싶다 말하며, 홍진에 묻힌 분네들을 조롱했으니까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