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30. 08:30
유홍준의국보순례
카테고리 역사/문화 > 문화일반
지은이 유홍준 (눌와,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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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설명집이 아니라 이야기 같아 좋아요!

여러분, 제가 부득이하게 휴재를 했었죠? 죄송해요! 정말 빡세게 열심히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잘 보듬어주시와요! 무튼 제가 야심차게 준비한 이번 주의 책, 바로 '유홍준의 국보순례'입니다. 유홍준이란 이름, 모두 친근하시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중고딩의 필독서인데다가 얼마 전에는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셔서 대단한 입담을 자랑하셨지요.

 

그가 왔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님께서 '여러분'에 등장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문화재에 대해서 습자지만큼이나 얄팍한 지식을 갖고 있어요. 유물 관련 국사 문제는 여지없이 틀려버리곤 했죠. '우와, 아름답다!'라거나 '이렇게 정교하다니, 대박!'이라며 입을 헤-벌리고 감상은 잘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딱딱한 설명이나 부담스런 참고사항이 아니라 조금 더 미학적인 관점에서 '문화재 그 자체'를 바라보는 '유홍준의 국보순례'가 술술 읽혔습니다. 무엇보다 너무너무 재밌었어요!

'유홍준의 국보순례'는 조선일보에서 연재한 칼럼들을 엮어낸 책이라 조선일보 사이트에서 검사하시면 바로 접하실 수 있어요. 제 기억에 남는 많은 유물들 중에 '백자 넥타이 술병'이 있는데, 조선일보에서 발췌한 부분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조선 백자에서 병(甁)은 기본적으로 술병이다. 제주병(祭酒甁)은 엄숙한 분위기를 위해 순백자를 사용했지만 연회용 술병에는 술맛을 돋우기 위해 갖가지 무늬를 그려 넣었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과 십장생 그림이 단연 많다. 그러나 아마도 사대부들이 사용했을 술병에는 매화나 난초가 품위 있게 그려져 있고, 청초한 가을 풀꽃(秋草紋)을 아주 운치 있게 그려 넣은 멋쟁이도 있다. 그림 대신 목숨 수(壽)자나 복 복(福)자를 써 넣기도 했는데 거두절미하고 술 주(酒)자 하나만 쓴 것도 있다.

그런 중 기발하게도 병목에 질끈 동여맨 끈을 무늬로 그려 넣은 '백자 끈 무늬 병'(보물 1060호)이 있다. 이는 옛날엔 술병을 사용할 때 병목에 끈을 동여매 걸어놓곤 했던 것을 무늬로 표현한 것이다. 경기도 광주 도마리에 있는 15세기 백자 가마터에서는 술잔 받침에 이태백의 '술을 기다리는데 오지 않네'(待酒不至)라는 오언절구가 쓰여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술병에 푸른 끈 동여매고/ 술 사러 가서는 왜 이리 늦기만 하나/ 산꽃이 나를 향해 피어 있으니/ 참으로 술 한 잔 들이켜기 좋은 때로다."

이 술잔 받침과 쌍을 이루면 딱 알맞을 술병이다. 특히 무늬를 갈색의 철화(鐵畵) 안료로 그려서 마치 노끈이 달린 것처럼 실감이 난다. 이런 발상이야말로 한국인 특유의 멋과 유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남대 교수 시절, 시험문제로 "한국미를 대표하는 도자기 한 점을 고르고 그 이유를 설명하시오"라고 출제했더니 인문대생은 달항아리를, 미대생은 이 끈무늬 병을 많이 골랐다. 그 중 한 학생은 유물명칭은 잘 모르겠다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샘(선생님), 저는 백자 넥타이 병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맞았다! 이 끈무늬가 갖는 조형효과는 바로 넥타이와 같은 것이다.

이 병은 안목 높은 수장가였던 고(故) 서재식 전 한국플라스틱 회장이 돌아가시기 전에 소장품 중 이 한 점만은 개인의 것이 될 수 없다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신 것이다. (출처: 조선일보 '유홍준 국보순례 칼럼' http://j.mp/vBy8kS )

 
굉장히 멋진 문화재죠! 사실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생각할 때 갓 쓰고 글 짓는 선비님들의 모습을 떠올리기 쉬운데, 멋과 낭만 그리고 위트를 아는 로맨티스트의 면모도 보여주니까요- 그래서 무척이나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유홍준 교수님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곁들여져서 더더욱 재미지게 읽었던 것 같아요.

저처럼 문화재 감상은 잘하지만 딱딱한 교양서엔 체하시는 분들, 스토리 텔링이 곁들여진 재미있는 책이 읽고 싶은 분들, 혹은 유홍준 교수님의 무릎팍 도사를 감명깊게 보신 분들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