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11.22 #17. 마음을 읽어주기 19
  2. 2011.10.23 고딩들아, 연애해라. 11
  3. 2011.08.23 #6. 온전히 의도된 상처는 없다 2
2011. 11. 22. 08:30


 SBS에서 만든 '짝' 이라는 프로그램 많이들 보십니까? 저는 그동안 지나가다 잠시 보는 것 말고 제대로 챙겨본 적은 없었는데요, 이번에 한번 찾아 보니 재미있더군요. 기본 포맷은 여러 명의 남녀가 서로를 탐색하고 데이트하고 최종결정을 하는 기본적인 짝짓기 프로그램의 포맷이지만, 일반인들이 등장하는 그야말로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점, 그냥 짧은 시간동안 설정된 데이트를 한다기보다 시간을 두고 합숙을 하며 서로를 알아간다는 점이 좀더 현실적인 느낌을 주어서 더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았어요. 게다가 이름을 밝히지 않고 남자 1호, 여자 1호라는 식으로 번호를 붙여서 부르는 것, '애정촌'이라거나 '짝'이라는 한글 이름을 붙인 것 등도 참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었습니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그런 익명성이나 상징성을 가진 이름을 붙임으로써 좀더 객관적이고 대표성이 있는 느낌을 주어 공감대를 넓히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 우리도 모두 한 사람의 남자와 여자일 뿐이지, 라는 느낌?)

 이번에 제가 찾아본 프로그램은 "애정촌 13기. 노총각·노처녀 특집 마지막회"였습니다. 굳이 노총각 노처녀 편을 찾아 본 이유는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고 함께할 사람을 찾는 과정에 더 오래 있었던 선배들에게서 무언가 느끼고 배울 점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느끼고 배운 점이 있었냐고 물으신다면, 물론 그렇습니다만 오늘 말하고 싶은 주제는 "와 선배들은 역시"라는 느낌의 내용과는 조금 다른 부분의 이야기입니다. 굳이 설명해보자면 "와, 나이가 많든 적든 사람은 역시" 라는 느낌의 내용이죠.

 뭐냐, 바로 여자 2호님과 관련된 러브라인이었습니다. 여자 2호님은 35살의 고등학교 교사이십니다. 이 분은 처음에 마음에 들어했던 남자 5호와 처음부터 여자 2호분을 마음에 들어했던 남자 7호님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계셨습니다. 
 


 예쁘시죠? 목소리도 좋으시더군요.


 


 남자 5호분도 역시 무척 매력적인 분입니다. 참가자 중 나이가 가장 많으셨지만 첫인상 선택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으실 정도의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계시고, 광고일을 하시는 분답게 예술적 재능도 있으시고 센스도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조금씩은 호감을 가졌던 여자 2호분과 남자 5호분이 완전히 서로에게서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던 대화가 여기에 등장합니다. 남자 5호님에겐 오토바이를 타는 취미가 있는데, 그분에게 그건 라이프스타일의 한 부분으로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젊지만은 않은 나이셨던 만큼, 그런 취미가 나쁘게 비칠까봐 고민도 하셨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여자 2호님이 남자 5호님에게 "오토바이는 위험해요"라고 말을 하신겁니다.

 결국 서로 호감은 느껴지는데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기 어려운, 감정적으로 애매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겁니다. 최종선택을 앞두고 서로의 마음을 잘 알기 어려웠던 두 분은 마지막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머 동영상이 막혔나요? 아.. 이거 영상으로 보셔야 하는데 ㅠ 아쉬운대로 캡쳐로 ㅠ_ㅠ


 
 요약하면 대화의 요는 "오토바이는 위험해요"라고 말한 이유는 그냥 자신이 느끼는 바에 대한 표현이었을 뿐 오토바이를 타기 싫다는 뜻도 아니고 남자 2호에게 호감이 있거나 없음을 표현하려는 의도도 없는 말이었다,는 것이 여자 2호님의 입장 변론이었습니다. 반면 남자 5호님은 그건 의도가 있어보이는 행동이다, 라고 말씀하셨고 아마 편집되어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는 그것을 납득시키려고 주장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왜 의도가 없는 사람이 의도가 있어보이는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자 5호분이 주장도 강하시고 말씀도 잘 하시는 편이었기 때문에 여자 2호분은 본인의 입장을 다 잘 설명못하신 채 결국 눈물을 보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분은 완전히 서로에 대한 호감을 거기서 끝내시게 되었던 거지요.

 보면서 저는 정말 오글오글 했습니다. 화끈화끈하기도 했고요. 별로 낯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두 분의 입장을 모두 너무 잘 알 것 같았고, 그래서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여러분은 저 대화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아무래도 대화를 주도해 나가면서 눈물을 보이는 여자 2호님에게 마지막까지 대표님 모드로 부하직원을 대하듯 자기 입장을 정리하신 남자 5호님이 잘못했다고 생각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그 분이 하신 말씀에는 틀린 게 하나 없지만 그건 자기 입장을 말하는 내용이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게 자기 입장만 말해서는 안되는 거였죠. 상대방이 하는 말을 인정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시지를 않습니다. 물론 믿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자 5호님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남자 5호님에게 여자 2호님의 행동이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 뿐이지 여자 2호님이 원래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아니지요. 그러니까 "네가 한 행동이 아무래도 나에겐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 네 말을 믿기가 힘들다" 혹은 "그렇게 행동하면 나한테는 의도가 있는 걸로 보인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행동은 누가봐도 의도가 있는거다" 라든지 "넌 그런 의도가 있었다, 그건 의도가 있는 행동이었다"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겁니다.

 너무 복잡하게 따지고 들었나요? 사실 대화라는 것은 파고들면 이렇게 복잡한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는 자기가 보는 관점에서밖엔 알 수 없어요. 그런데 그게 자기의 세계 인식이다보니,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하는 일이 생깁니다. 사실은 개인의 부분적 인식일 뿐인 내용을 그게 전부인 것처럼 일반화된 표현을 사용해서 말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보통 일일히 그걸 구별해서 말하진 않잖아요? 말하자면 표현은 실제만큼 정밀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괴리에서 오는 오해가 여러 싸움의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서로 잘못 없다고 하는, 사실은 서로 잘못한 싸움들이 벌어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여자 2호님도 '나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라는 말을 반복하시지만, '나는 그걸 잘 못받아들이겠다'라는 남자 5호님의 입장을 인정해주는 모습은 화면에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 모습은 남자 5호님에게 '나는 당신을 오해하게 만들만한 행동을 안했는데 당신이 오해한거다.'라고 말하는 느낌을 충분히 줄 수 있습니다. 남자 5호님 입장에서 본인은 오해를 했는데(즉, 본인이 봤을 때는 분명 의도가 있어 보였는데), 그 행동은 오해를 하게 만들지 않았다고(의도가 있어보인다고 생각할만한 행동이 아니라고) 한다면 답답하시겠지요. 

 이처럼 무엇보다 두 분의 대화에서 안타까웠던 점은 두 분 다 서로의 마음을 잘 못 읽어준다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상대방이 말하고 싶어하는 입장을 받아들여주고 그에 대해 리액션을 해 주는 것 말합니다. 인정이 중요한 것은 인정받지 못할 때 화가 나기 때문입니다. 리액션을 해 주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결국은 감정에 작용하기 위해서지요. 자기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느끼면 화가 납니다. 그러면 남의 말도 귀에 잘 안들어옵니다. 그러면 서로의 감정을 더욱 상하게 만들고 거기서 애초에 논리가 뭐였건 관계는 끝장이 나는 거지요.(보통은 대화가 안되므로 논리도 끝장이 납니다.) 두 분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먼저 상대방이 느끼는 바를 인정하고 "오해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혹은 "오해해서 미안하다"라고 했으면 좋았을텐데, 싶었던 거죠. 사실 서로가 의도한 바와 이해한 바가 달랐다면 그것은 오해이고, 거기에는 양쪽 다 크든 작든 책임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이 사례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주는 대화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를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여자 2호님은 상담 교육을 석사 전공하셨고 남자 5호님도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분야에서 종사하시며 언변도 좋으신 분입니다. 게다가 두 분 다 살아온 시간이 짧지는 않으시고 그렇다고 특별히 더 배려심이 부족한 모난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십니다. 이런 분들도 겪으시는 문제 상황이라면, 말 다했죠. 그렇지 않나요?

 그러니 우리가 특별히 자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필요하지요. 그러니 못한다고 기죽기보다는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두 가지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1. 내 입장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고 할 것
 2. 상대방의 '일반화'된 말을 표면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의 의미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


 여자 2호와 남자 5호가 대화를 마치고 돌아온 후, 여자 2호는 남자 7호를 찾아갔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있었던 얘기를 듣고서 셰프인 남자 7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자 7호 "그럼 안 풀었네."
여자 2호 "풀었어요, 우리는 안맞다."
남자 7호 "그게 푼거야? ㅎㅎ"
여자 2호 "서로가 원하는 관계가 아니다."




참으로, 내 마음을 케어한다는 느낌이 드는 반응 아닙니까? 
(아, 개인적으로 남자 7호 이분 참 볼매셨어요.)

역시 관계에서 논리의 옳고 그름은 그 자체로는 개미눈물만큼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게 감정의 작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필요할 수는 있겠지요. 인간에게 있어서, 단지 연애 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사실은 감정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을 더해갑니다.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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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23. 10:00




수능을 앞두고 학교가 자습 체제로 들어선 덕에 수업도 절반으로 줄었고, 학교에서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데 몸은 훨씬 더 피로합니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만 있어서 그럴까요. 요즘 매일 생활기록부와 에듀팟을 보고 살았더니 이젠 글자만 봐도 머리가 아플 지경입니다. 잠시 머리를 식히려 인터넷 창을 띄우고 이것저것을 뒤적이다보니 흥미로운 기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성교제 하다가 걸리면 퇴학'이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한 시민단체에서 전국 주요 지역에 있는 354개의 공학고등학교를 조사해보니, 81%에 달하는 286개 학교가 이성교제를 금지하는 교칙을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는 이성교제로 세 번 적발될 경우에는 퇴학을 당한다는 규정이 있어 최근 남학생은 전학을 하고 여학생은 자퇴를 한 데에서 발단된 기사였습니다.

 

사회가 워낙에 많은 19금을 강요해서 그럴까요. 청소년들의 연애를 금기시하는 문화는 어디에서부터 나온 지 궁금합니다. 꼬장꼬장한 어르신들이 청소년의 연애를 금지하는 것이라면, 16세에 잠자리를 같이 한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사랑이라 부르는 그분들의 생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요즘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여소(여자소개)'를 통해 이성친구를 만나고, 금세 쌍무적 계약관계를 맺습니다. 같은 재단 산하에 있는 운동장 건너편 **여고에 가장 많은 여친님들이 계신 것 같고, **실고에도 꽤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근처에 있는 **여고과 **여고에도 상당수의 형수님과 제수씨들이 있는 듯합니다. 아, 공학인 **사대부고는 자급자족이 가능한지 우리 학교 아이들과는 별다른 계약 관계를 맺지 않는다고 하네요.

 

거리에서 종종 청소년 커플을 만납니다. 교복을 입고 손을 잡은 채 그들은 친구나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선생님을 마주쳐도 손을 놓지 않고, 더 밝게 방긋 웃으며 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제 여자친구예요. 예쁘죠?

 

그래 안녕 ^^ (마..망할 것들)

 

 

저는 청소년 때 이성교제의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청소년 커플들을 만나면 부러운 생각부터 듭니다. 중학교 때는 흔히 말하는 ‘찌질이’였던 탓에 연락하는 여학생이 딱히 없었고, 그 후에는 남고를 다녔기에 주위에 이성이 없었습니다. 물론 여고의 축제에 가본 적도 있고, 학원에서 여학생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저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없는 편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청소년들이 연애를 한다는 것은 생소한 문화였던 것 같습니다.

 

청소년 커플들을 만나면서 부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제게 그런 경험이 없었고, 또 지금 솔로여서기도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순수하고, 맑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차서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 갈수록 계산은 늘어가기 마련입니다. 고등학생 때는 교복 색깔이 이성친구를 만나는 데 큰 장애요소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학생만 되어도 학교를 따지고, 사회인이 되면 직장을 따지고, 연봉을 따지고, 집안을 따지게 됩니다. 사랑은 증발하고 온갖 계산만 남는 무미건조한 관계가 됩니다. 이 사람을 가장 사랑해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기에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적령기에 이 사람이 내 옆에 있고 나랑 조건이 맞으니 상호 필요에 의해 결혼하는, 일종의 계약관계로 결혼을 하는 것이 2011년의 결혼문화입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청소년들의 사랑은 얼마나 순수한가요. 그들은 다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은 채 서로에게 온전히 빠져들어 아끼고, 사랑합니다. 이보다 맑고 순수한 사랑이 있을까요. 오히려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근데 어른들은 왜 청소년들이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할까요? 이것은 일선 학교에 만연한 엄격한 두발규제와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저희 **고등학교는 학생인권에 있어서 굉장히 민주적인 학교입니다. (학생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요) 두발이나 복장에 대해 학생들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허용하는 학교는 전국에도 몇 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시절에는 학생부 선생님들과 학생회 지도부가 아침마다 교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은 학생회 지도부 네 명이 짜고 있는 박스 안을 통과해야 했으며, 복장이 조금이라도 어긋나거나, 명찰이나 뱃지가 없거나,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어 손가락 위로 삐져나오는 것이 있으면 가차 없이 삭발을 당했습니다. 그 당시에 학생부장이셨던 선생님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학생들은 머리가 길면 딴 생각을 해요.

 

근데 머리가 짧아도 딴 생각은 언제나 듭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청소년의 사랑이 학생의 본분을 벗어나는 행동이라 여겨질 것입니다. 청소년을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기계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청소년기의 공부가 평생을 좌우한다는 인식, 즉 학력과 학벌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여기서 더욱 들어가면 세상은 전쟁터이고, 다른 모두와 경쟁을 해야 한다는 명제가 나올 것입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의 진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하나로 세상을 고착시키고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비루하고 단촐한 사고인가요.

 

대학 교직과정에서 배웠던 교육과정의 종류 중에는 잠재적 교육과정(latent curriculum)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교육기관에서 교육 대상자에게 의도적이고 공식적으로 전달하려는 공식적 교육과정과는 달리, 잠재적 교육과정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대상자들이 습득하게 되는 교육과정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자면 선생님의 체벌을 통해 배우는 폭력 같은 것을 잠재적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공식적 교육과정 못지않게, 혹은 더욱 교육의 대상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이 잠재적 교육과정입니다. 지금의 제게 고등학교 때 분명히 배웠던 수열이나 극한에 대한 수학 문제를 가져온다면 전혀 풀 수가 없지만, 당시 선생님들의 모범적인, 혹은 실망스러운 행동들에 대해서는 줄줄이 읊을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사랑은 그들에게 강하게 작용하는 잠재적 교육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십시오. 누군가를 사랑할 때보다 삶의 동기가, 생의 에너지가 충만한 때가 있는 지를요. 사랑에 빠진 사람은 모든 것이 즐겁고, 행복하며,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샘솟습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떨리는 학생은 수업시간에 잠시 딴 생각은 할지언정 꾸벅꾸벅 졸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생의 에너지가 공부에 이어진다면 꼰대들이 보기에도 그것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 '남녀 간의 거리' 등을 설정한 교칙을 만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몰라서 그런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오히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와 같은 교칙을 만든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그들은 청소년이 '학생'이라는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 머물기를 바랍니다. 한국사회 특유의 사회적 요소들을 이유로 말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영달을 위한, 망할 성과주의도 빼먹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학교는 세상과 단절된 채 세상을 설명하려는 오류를 벌이고 있습니다. 사랑은 통제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왜 통제권한이 있는 위치에 앉은 사람들은 정작 그들이 통제해야 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통제권한 밖에 있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교육자'라면 어떻게 청소년들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그들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를 통제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는 어른들보단 낫잖아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23. 08:30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 허수경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中 





 사람이 뭔가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면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양미숙씨가 그랬어요.(영화 <미스 홍당무>에서요)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 '진짜 이상한' 사람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미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뿐, 누구나 자기 행동에는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있을 거구요. 본인이 그 이유가 뭔지 알든 모르든 말입니다. 자기 행동에 이유가 있다는 말이 그러므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된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거기에도 바람직한 이유와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들이 존재하겠지만 그걸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요.

  요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행동에 대한 이유를 가지고 있고, 적어도 그 당시 그 사람의 판단 하에서는, 그렇게 행동할 만한 이유가 있는 행동을 한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자기의 이유와 판단에 따라 한 행동이 생각이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의외로 사람들은 서로 교류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개와 고양이의 제스쳐가 서로 다르듯이 거기서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상대에 대한 기대도 다들 제각각이기 때문이겠지요. 어쨌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는데 그것을 의도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게 왜 그랬는가'라는 질문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가'라는 원망의 의미라면 
 원망스러운 심정이야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책임소재를 묻는 대상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래야 했으니까'라는 대답이 남지 않을까요. (그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한 것이라면 대답이 좀 달라져야겠지만요. 저는 진심으로 그런 걸 궁금해 하는 사람인데, 저 같은 사람을 잘 못봤거든요.)

 앞서 말했듯, 자기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해서 그 행동이 다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혹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또한 상처가 될지 전혀 몰랐다 하더라도, 상처를 준 것은 응당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렇지만 그것이 응당 미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제 생각일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다만 제가 하고픈 말은 온전히 의도된 상처는 없다는 것입니다. 

 혹 관계에서 상처를 받으셨다면, 
 상대가 결코 '나에게 상처를 주려고'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적의의 대상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오는 '2차 피해'적인 상처에서는 벗어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 그게 여러분에게 상처가 될 줄 알았다면, 혹은 상처가 되지 않을 다른 행동이 뭔지 알았다면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또 한편으로, 의도하지 않아도 상처줄 수 있다는 사실은 의도보다 더 조심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상처주는 사람이 된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의도되지 않아도 상처는 아프지요. 그런 점에서 행동의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저 개인적으로는 사람을 좀 더 잘 알아서, 좀 더 인간으로서 역량을 키워서, 타인을 상처주지 않을 수 있는 행동을 한다면, 그것이 어떤 행동을 더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일 것 같습니다.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을 수 있는 더 큰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상처받아도 결국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구요.


 갈길이 멀겠네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