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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04 착한 남자를 위한 변론 1
2012. 2. 4. 16:00

수업이 없는 시간, 주차장에서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창 재밌게 수다를 떨고 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성수고 최고의 그레이트 티처이신 B선생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제가 롤 모델로 삼고 있는 B선생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도 은근 주변에 여자가 많은 것 같애. 근데 실속이 없지? 너무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다 잘해주지마. 그리고 처음에는 좀 차갑게 굴어봐. 그러다 잘해줘야지. 하긴 이렇게 기술적으로 사람을 대하다보면 한계가 오지. 잘해봐.


나쁜 남자의 시대입니다. 내게 항상 웃어주고, 어떤 부탁을 해도 다 들어주고, 언제나 나만을 바라봐주는 착하지만 따분한 남자의 시대는 갔습니다. 요즘은 시니컬한 매력이 있는 나쁜 남자가 대세입니다.




훈훈한 외모,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능력, 완벽주의적인 성향까지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그 남자. 물론 이기적이고, 독선적인데다, 까칠하기 그지없어 일견 싸가지까지 없어 보이는 그지만, 천천히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면 순수한 매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매력적인 다른 여자가 자기에게 다가와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차가운 그지만, 오직 '내 여자'에게만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을 보이는 남자, 겉으론 강한 척해도 속마음은 한없이 여린 남자,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라도 내 여자를 지켜주려고 하는 든든한 그 남자. 그 어떤 여자가 그런 나쁜 남자의 치명적인 매력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예전에는 ‘그 남자는 나쁜 남자입니다. 무조건 피하세요.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요즘에는 드라마에서도, 소설에서도, 심지어 연애 매뉴얼에서도, '나쁜 남자는 충분히 길들일 수 있다.'는 제법 솔깃한 이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드라마 속의 나쁜 남자 길들이기, 참 쉽습니다. 




오늘 회사에 갓 출근한 키 크고 잘생기고 능력 있고 무려 회장 아들이기까지 한 나쁜 남자에게 다가가 따귀를 올려칩니다. 그러면 그 남자는 부어오른 뺨을 움켜쥔 채 당신에게 다가와 치명적인 나쁜 매력을 뽐내며 이렇게 속삭입니다.

"날 이렇게 막 대한 건 니가 처음이야. 그런 니 마음을 빼앗고 싶어졌어"

그렇게 둘은 연인이 되고, 나쁜 남자인 그 남자는 그 여자에게만큼은 따뜻한 나쁜 남자가 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내 여자에게만 길들여지는 나쁜 남자보다, 내 여자에게 역시 나쁘단 몹쓸 남자들 투성이요, 그런 남자들에게 속아서 우는 여자들 천지입니다. 뭐하러 눈보라 휘몰아치는 험준한 에베레스트에 어떻게 오를 수 있나를 고민하나요? 힘들지 않게, 그래서 즐겁게 올라갈 수 있는 가까운 산을 타는 즐거움을 느껴보면 안 되나요?




나쁜 남자도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할까요?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란, 능력있고, 차가운 매력을 가진 남자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대체로 여자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고, 오는 여자 안 붙잡고, 가는 여자 안 붙잡는다지만, 어쩌다 마음을 준 '내 여자'에게만은 소년 같은 순수함을 보여주는 특성을 보입니다.

나쁜 남자의 마음은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그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고, 그 누구도 쉽게 열 수 없는. 그래서 그런 그의 마음을 연다는 것은 무척이나 특별한 일로 여겨지게 됩니다. 나에게만 열린 난공불락의 요새. 그 어찌 매력적이지 않겠습니까? 진입 장벽이 높은 만큼 자기가 한번 공략(?)하고 나면 남들은 절대 공략 못할 것 같다는 느낌. 그래서 당신은 상대가 나쁜 남자란 걸 알면서도 그에게 끌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하겠지요.


차가운 도시 남자,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 나쁜 남자? 결국 여자하기 나름이라구요!




하지만 그건 마치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를 먹고 싶은데 차갑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야식을 먹고 싶은데 살은 안 쪘으면 좋겠어요.’‘금연하고 싶은데 담배는 피웠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핑크빛 구름처럼 샤방샤방한 형상은 있지만 일단 논리라는 것으로 접근하면 한방에 훅 날아가 버리는 그런 환상입니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처럼 나쁜 남자 중에서도 나만 바라봐주는 그런 남자도 있지 않을까요?

이래서 TV가 애들을 망친다는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여자에게만 따뜻한 나쁜 남자는 없습니다. 당신만을 바라봐주면서도 매력적이고 능력 있고 남자라면, 그건 이미 나쁜 남자가 아니라 착한남자입니다. 나쁨과 한 여자만 바라보는 건 애초에 공존 불가능한 스토리입니다. 콜라의 톡 쏘는 맛은 원하면서도 이빨은 썩지 않길 바란다면? 콜라를 원한다면 이가 녹고 뼈가 상하는 걸 감수해야하고, 불량식품을 먹으면 배탈이 날 걸 감수해야 합니다. 애초에 번지수를 잘못 짚었단 소리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제 경우만은 다를 거예요. 제 사랑만큼은 다를 거예요. 진심은 하늘에도 닿는다는데 그 사람 마음에 언젠가는 닿을 거예요."

그래요, 백번 양보해서 당신 사랑만은 다르다고 칩시다. 죽을 만큼 노력하면 언젠가 될지도 모른다고 칩시다. 근데 하늘에 닿을랑말랑 죽을동살동 노력해야하는 나쁜 남자를 만나는 것보다 애초에 착한 남자를 만나는 게 훨씬 낫지 않나요? 왜 당신은 애초에 잘 닦인 8차선도로를 놔두고 왜 굳이 울퉁불퉁하고 물웅덩이까지 고여 있는 오프로드로 기어들어가려 하나요?

보이는 길밖에도 길은 있다지만 왜 몇 배의 노력과 몇 배의 시간과 몇 배의 마음고생을 해가면서 심지어 종착지가 없을지도 모르는 샛길로 빠져들어 가냐는 말입니다. 물론 그들도 처음에는 당신의 정성에 감동하고 변하려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결코 쉽사리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착한 남자는 매력도 없고, 능력도 없고, 재미도 없어요. 그럼 안정적인 사랑을 원한다면 그런 치명적인 매력은 포기해야하나요?

잘못 짚었습니다. 당신은 완전히 잘못 짚었습니다. 착한 남자는 착한 남자고 재미없는 남자는 재미없는 남자일 뿐입니다. 나쁜 남자는 매력이 있고, 착한 남자는 지루하단 공식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요. 그거는 그거고 이거는 이건데 말입니다. 지금 당신이 만나고 있는 남자가 나쁜 남자입니까? 그렇다면 나쁜 남자를 길들이는데 들이는 노력보다, 차라리 착하면서도 멋있고 매력적인 남자를 만나는 게 훨씬 쉬울 것이라는 사고의 전환을 해보길 권합니다.




굳이 어려운 길을 찾지 마십시오. 아무리 힘들어도 당신에겐 늘 미소를 보이는 그 남자, 바보 같게도 당신 부탁이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는 시늉을 하는 남자, 당신이 잘못한 건데도 오히려 자신이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 남자. 너무 쉬워보여도,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조금 매력이 부족해 보여도, 결국 당신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남자는. 나쁜 남자가 아니라 착한 남자입니다.

내 여자에게만 (그것도 가끔씩만) 따뜻한 나쁜 남자보다 내 여자에게는 언제까지나 따뜻한 착한 남자. 훨씬 매력 있지 않나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