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16. 10:03

나의 사랑, 8반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하세요. 사랑하는 8반 친구들. 여러분과 함께 한 학기를 보낸 담임선생님입니다. 반갑죠? 벌써 7월 16일입니다. 2012년이 절반 이상이 흘러갔네요. 반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그날을 기억하나요? 천안 국립 청소년 수련원으로 가기 전 학교에서 모였던 오리엔테이션 날 아침, 떨리는 마음으로 심호흡을 크게 하고 8반 교실의 문을 열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여러분처럼 우수한 학생을 만나는 것도 처음이었고, 더군다나 여학생을 맡아본 적은 더더욱 없었기에 더 많이 긴장을 했던 것 같습니다. 

 

떨리기는 피차 마찬가지였겠지요? 우리 반에는 근처에 사는 친구가 거의 없습니다. 명문고라고 하여 멀리까지 유학 아닌 유학을 왔는데, 이상한 놈팽이가 담임이 되면 어떡하나, 같은 반 친구들과 잘 지내니 못하면 어떡하나, 학교생활에 적응은 잘할 수 있을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성적이 안 나오면 어쩔지, 어쩌면 저보다 여러분이 더 많이 걱정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2월 말부터 시작된 우리의 여정이 3,4,5,6월을 거쳐 이제 방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일주일간의 기말고사가 끝나면 고등학생으로서의 첫 방학을 맞이하겠지요. 열흘 이상 여러분을 못 볼 생각을 하니 퍽 섭섭합니다. 다들 같은 마음이겠지요? 

 

정신없이 흘러간 한 학기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생전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 쉬지 않고 어려운 말을 쏟아내는 선생님들. 숙제는 왜 그렇게 많은지. 수행평가는 뭐가 그렇게 복잡한지. 모의고사보다 어려운 내신 시험 덕에 멘붕도 겪었을 테고, 아침저녁으로 버스를 타고 다니느라 체력도 많이 소진했을 것입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굉장한 혹사를 당했던 2012년 1학기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방학이 되면, 부디 푹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반어적 표현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많이 쉬고, 많이 놀고, 그러는 와중에 많은 고민과 명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더 성장한 모습으로 2학기에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것보다,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다녀와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무엇을 잘하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6월 7일에 봤던 모의고사에서 우리 1학년 8반은 1학년 반 중 꼴찌를 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그것 때문에 결코 여러분에게 실망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공부를 조금 더 잘하는 어떤 반 학생들보다, 밝고 명랑한 우리 8반 학생들이 좋습니다. 교실을 조금 더 깨끗하게 쓰는 어떤 반 학생들보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임하는 우리 8반 학생들이 좋습니다. 규칙과 규율을 잘 준수해 착하다고 소문난 어떤 반 학생들보다, 조금 비뚤어보일지언정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내세울 줄 아는 우리 8반 학생들이 좋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8반 학생들의 광팬입니다. 한 반 학생 모두가 똑같이 예쁘다는 어느 선생님의 말씀. 전에는 믿지도 않았고 뻔한 대외용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38명의 학생이 똑같이 예쁠 수가 있구나. 누가 더 예쁘지도 않고, 덜 예쁘지도 않게 한결같이 사랑스러운 것이 가능하구나. 이런 것들을 몸소 느끼게 되자 그런 감동을 준 여러분이 한없이 존경스러워졌고, 그런 것을 느끼게 된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진지모드로) 하지만 때로는 여러분이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여러 학생들은(이미 전국적으로 매우 우수한 성적이지만) 자신의 인생이 실패할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전혀 그럴 필요가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됩니다. 시험에서의 '성공'과 '실패'는 결코 인생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삶을 가지고 '성공‘이니 '실패'니 하고 평가하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다른 걸 다 접어두고 위의 명제만 가지고 봤을 때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도 나쁘지 않은 학교를 나왔고, 27세라는 어린 나이에 교직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걸 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저보고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것은 제 인생에서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지만, 그걸 이루었다고 해서 제가 꿈꾸던 삶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제 미래를 설계하고, 그 길을 걸어나가기 위해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많이 좁아지기는 했지만, 저는 아직도 다양한 꿈과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사가 되어야겠다, 연봉 얼마를 받아야겠다, 결혼은 언제하고 애는 언제 낳아야겠다. 등등. 이런 것들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세상에 불만이 많습니다. 가진 자의 논리대로 돌아가고, 약자가 보호 받지 못하고, 부조리와 불합리가 판치는 이 세상이 싫습니다. 제 꿈은, 제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것입니다. 용기도 많이 사라지고, 많이 비겁해지긴 했지만, 대학에 입학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저는 달라진 거 하나도 없는 '제 자신'일 뿐입니다. 저는 이런 제가 좋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잘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학생들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든지, 그렇지 않든지 또한 어떠한 악조건이 있든지 간에 학생 자신은 변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언제나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자신의 실력에 미치지 못한 점수를 받은 것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은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도 탓할 것은 아닙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보는 우리 8반의 모든 학생들은 정말 피땀을 흘리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저는 다만, 여러분들이 결코 대학 입시와 같은 지엽적인 것들을 인생의 전부라고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승자의 여유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지금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거나, 미취업자로 산다고 해도 낙심한다거나 자신을 원망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만약 제가 그랬다면, 전 이미 인생을 포기했어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보다 더한 시련들을 많이 겪었기 때문입니다.  

 

몇 번 말한 적이 있지만 저는 틱 장애 때문에 굉장히 불우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학교에서는 소위 말하는 ‘왕따’였습니다. 가족들도 저를 부끄러워했습니다. 9층 난간에도 두 번 올라갔지만, 한 번은 용기가 없어서, 한 번은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서 뛰어내리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자주 저를 나무랐지만, 부모님을 원망하기보다는 부모님을 창피하게 해드린 것 같아 너무나 죄송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주눅 들거나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의 이런 처지를 알게 된 친구들이 제가 그렇게 힘든 상황이었는지 몰랐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오히려 그런 경험들이 제가 정말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보다 더 힘든 시기를 보낸 학생들도 얼마든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학생이 그럴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돈이 없다고, 원하는 대로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은 분명 아니니까요. '자신만 보면 미치겠다', '나는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쁜지 모르겠다' 등등은 저에게 질문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하는 푸념들입니다. 왜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지, 자신의 존재를 왜 그렇게 하찮게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성공하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금은 대학이 취업학원화 되었지만, 이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청년실업률이 60%를 넘는다고 하지만, 대학 본연의 목적은 학문 탐구와 진리 추구에 있어야 합니다. 저는 언제나 용기 있게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학생들의 패기와 열의를 적극 지지합니다. 공부, 성적, 대학, 간판. 그런 것들은 언젠가 무의미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언젠가는 계급장을 다 떼고, 인간 누구누구로 평가받는 날들이 올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직함, 포장 등은 어디까지나 사회생활의 출발점에서만 도움을 줄 뿐입니다. 그 이후에 헤쳐 나갈 수많은 고난과 풍파들을 이겨낼 능력과, 용기와, 굳센 의지와, 그리고 따뜻하고 예쁜 심성들은 학교의 간판으로는 길러지지 않습니다.

 

궁극적인 제 꿈은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교직에 몸담든, 다른 어떤 일을 하든지 저는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공부해온 것들, 아이들을 가르쳤던 내용들은 그런 삶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만약에 제가 다른 전공을 했거나, 아니면 대학에 다니지 않았을 지라도 저는 그런 삶을 꿈꿨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을 찾기 위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무슨 대학 무슨 학과가 목표라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큰 꿈을 가질 수 있는 10대들이 그런 하찮은 목표에 얽매이는 게 보기 좋지는 않습니다. 대학에 너무 얽매이지 마시고, 좀 더 고귀한 인생의 목표를 가졌으면 합니다. 대학은 그러한 인생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과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대학이냐 가 아니라, 대학에 입학해서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대학에 입학을 하든, 재수를 하든, 아니면 사회에 나가 일을 하든 그 순간순간의 삶에 만족하시고, 자신의 인생 목표를 향해 자신을 좀 더 가꾸는 학생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욕심을 부릴 만한 것에는 욕심을 내면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다만, 우월감에 빠져서 자만하거나 열등감에 빠져서 자학하거나 남들을 질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고요.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자신을 사랑하고, 그 삶에 만족하기만 하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매우 쉬운 일인데도 사람들은 '성공주의'과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서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기쁨을 느끼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야 행복할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그렇게 되면, 만족을 못 느끼고 더 많은 욕심을 부리죠. 저는 학생들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잘 살펴보고 그것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그 선택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며, 모두 다 같이 축하해줄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그런 세상을 위해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진심을 다해 응원합니다.  

 

오노 요코가 말했습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요. 이루어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가슴에 간직하고 끊임없이 꿈꾸는 것, 그리고 그것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그것이 꿈입니다. 저는 우리 소중한 1학년 8반 학생들이 꿈꾸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기말 시험 후회 없이 치르고, 즐거운 여름 방학 보내세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