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26. 08:30


 새벽 한시 반. 저는 결국 백기를 든 상태입니다. 
 '온라인'과 관련된 문제들이 발생할 때마다 저는 인류가 어디까지 사이버 세계에 의존해도 좋은가 의문을 가져보곤 합니다. 뭐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어쨌든 제 넷북에서는 티스토리에 글이 안 써집니다. 다른 컴퓨터를 빌려쓰다가 그 집에서 쫓겨나고, 그래서 찾아온 피시방에는 한글이 깔려있지 않습니다. 원고를 옮길수가 없군요. 결국 원래의 원고는 뒤로 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이런 시간이 되니 왠지 진실 게임이나 비밀 이야기 하나씩 고백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네요. 

 얼마전에 지하철에서 한 커플을 보았는데요, 남자는 여자친구가 예뻐서 견딜수가 없었는지 아기에게 하듯 말 한마디가 끝날때마다 여자친구에게 뽀뽀를 하더군요. 공중도덕과 미풍양속에 대한 의식이 있는 동방예의지국의 성인이라면 조금 눈살을 찌푸릴만도 한 상황인 것 같긴 했는데 저 조건 중에 저한테 뭔가 결핍이 있는지 그냥 매우 예뻐보였어요. 부러웠던 것일까요?... 아니면 분명 저보다 어려보이는 무척 앳된 얼굴의 남녀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젊다는 것은 그래서 참 부러워요. 많은 부분이 용서가 되니까요. (물론 저도 아직 젊긴 한데 솔직히 말하면 좀 애매해서요.) 며칠 동안 내내 머릿속에 잔상이 남던 그 커플은 저의 20대 초반을 돌이켜보게 했습니다.

 제가 연애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런 것을 생각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20대 초반의 연애는 무척 불안정하고 문제가 많았어요.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큰 이유 중 하나는 저 자신이 불안정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고백하건데, 20대 초반의 저는 무척이나 발랄하지 못했어요. 물론 일상에서 즐거운 일도 많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 기저에는 언제나 고민이 많았어요. 가끔 그 당시의 연애를 돌이켜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 적지 않아요. 지금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일들이 무척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그 때 그러지 않았을까?' 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겁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의 저라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왜냐면 그때의 저는 아직 그런 실수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부족하긴 했어도 연애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거든요. 지금 보면 너무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그때는 그게 제 세계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 안에서는 당연히 그런 실수들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결국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미리 귀뜸해 줬다고 해도, 지금의 제가 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을거란 생각입니다. '아는 것'에도 여러 차원이 있으니까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그 때는 그러는 게 맞는 거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지금 또 그러지 않는 수 밖에요.

 그런 의미에서 젊은 인디 밴드는 청년다운 치열한 고뇌와 약간은 철없는 불평불만을 좀 말해도 좋은 것 같습니다. '내 서랍속의 바다'를 부르다가도 언젠가 '다행이다'를 부르게 될 테니까요. "몰라, 다 몰라, 나한테만 왜이래, 외로워 징징"하다가도 "감사하다, 고맙다, 다행이다"하게 될 거란 말이지요. 연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감정만 보다가 다른 것들도 보게되는 거죠. '연애레벨'이라는 게 있다면 '레벨 업'하는 겁니다. 

 지나고 보니 20대 초반은 저에게 상황보다는 감정이 버거운 시기였습니다. 버거워할 상황이 아닌데도 넘치는 감정에 버거워하던 저 자신에게 죄책감이 들어서 '차라리 불행했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철딱서니 없는 생각입니까.) 하지만 죄책감 가질 일이 전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상황이 감정을 만들 수는 있지만 결국 힘들게 하는 건 상황이 아니라 감정이거든요. 내 그릇에 넘치는 파토스로 버둥대는 것. 어쩌면 청춘이란 게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버둥대다가 그 주체 안되는 파토스를 좀 가라앉히고 나면, 해결책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감정이 너무 코 앞에 있을 때는 그런 생각조차 안되잖아요. 그리고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해결해 나가면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내 문제가 영원한 게 아니라는 믿음을 얻게 되면, 그때부터 조금 더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말하자면 레벨 업이죠. 그치만 레벨 업하려면 믿음을 가져야하고, 그러려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러려면 감정이 가라 앉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감정에 버둥대야죠. 어릴수록 보통 파토스가 넘치니 하는 일마다 아마 엉성해지겠지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게 다 단계니까요. 저도 아직 그 단계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너무 오래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은 어쨌든 번외로 접어두고요...

 아직은 뭐든 좀 엉성한 시기. 제가 아주 어리고 젊었을 때는 (물론 지금도 젊습니다만) 그런 엉성함이 무척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좀 엉성해도 매우 예뻐보입니다. 언제까지나 엉성하지 않을거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요? 엉성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나 혹은 자신이 엉성한지 모르는 무지도 사랑스럽습니다. 둘 다 결국 시도하게 만들테니까요. 그러니까 어떤 연애든 저는 많이 연애하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사람이든 세상이든 말입니다.

 아직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못한 상태였을 때, 나와 같은 처지의 남자 동기와 함께 '우리는 과연 연애를 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나누었던 손발이 오그라드는 시기가 생각나네요. 아, 그 친구도 저도 처음 연애를 시작한 이후로 꾸준히 잘 만나오고 있습니다. '언젠가 여기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는 날이 올까'라고 생각한 몸까지 배배 꼬이는 시간들도 생각나네요.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때의 나에게 물론 그렇다고 말해줄겁니다. 그 얘길 들었을 때 지금 저만큼 그 의미를 알지는 못할테지만요.

그 다음 단계로 나가지 못할까봐 항상 두려웠지만,
이렇게 모두, 느리든 빠르든 각자, 다음 단계로 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어우. 밤에 써서 그런지 다시 읽어보니 내일 아침에 지우고 싶을 거 같지만 그래도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이런 거 해보겠어, 라는 생각으로 포스팅을 마치려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레벨업을 응원합니다.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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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