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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25 전교조를 위한 변명
2011. 12. 25. 08:30
 

존경하는 전교조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 선생님은 자주 눈물을 흘리십니다. 전교조가 사사건건 매도당해서, 선생님들의 진심을 이 사회가 몰라주는 게 억울해서가 아닙니다. 십수년간을 온몸으로 버텨왔건만, 우리 교육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아서, 아이들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져서, 그래서 그동안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아서 선생님은 우십니다.

 

선생님께서는 오후 수업을 위해 교실에 들어갔을 때 피로를 이기지 못해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밤 열두시가 넘은 시각에 학원에서 우르르 몰려나오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프다고 하십니다. 저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께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전교조를 한답시고 날마다 동분서주하는 것은 저 아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얼마나 덜어줄 수 있을지, 12년간의 학교 교육이 실은 12년간의 집단 아동 학대인 나라에서, 교육을 둘러싼 지옥 같은 경쟁이 이제 꼭대기까지 차오른 나라에서, 이 모든 것은 다 부질없는 노릇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다고 하십니다.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전교조. 1989년에 설립된 이 노동조합은 교직원의 권리를 수호하고, 교육 민주화를 이끌어내고, 참교육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탄생한 단체입니다. 수구꼴통 일색인 우경국가 대한민국에서 여느 노동조합이 그렇듯, 탄생 초기부터 지금까지 숱한 고난, 비난, 힐난을 당해오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전교조가 하는 일이라면 우르르 달려들어 몰매를 놓으려는 세력이 생겨났습니다. 조중동은 원래 그랬지만, 학사모라는 이상한 학부모 단체에다 더해 자유교원노조라는 더 이상한 교원단체까지 생겼습니다. 이들은 아예 안티 전교조를 표방하고 나섰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전교조를 미워할까요.

 

전교조가 제 밥그릇 지키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들 하는데, 교사가 밥그릇 지키면서 편안하게 사는 확실한 길은 전교조 활동을 안 하는 것입니다. 요모조모 준비해 승진에 필요한 점수 따고, 안팎으로 둥글게 처신하는 게 최선입니다.

 

전교조는 조합원 수가 9만 명이나 되는 거대 조직이고, 그 속에는 다양한 성향들이 뒤섞여 있습니1다. 교사의 기득권에 안주하는 중산층 의식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전교조 운동에서 교사 집단의 기득권 수호 의식 따위가 중심에 서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학벌대 많이 보내는 학교를 찾아 비싼 집값을 무릅쓰고 이사하기를 마다 않는 맹모들의 나라에서 전교조는 늘 외롭고 힘에 부쳤습니다. 정권은 시도 때도 없이 반교육적인 정책들로 불을 질렀고, 전교조는 그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불을 꺼야 했습니다. 그래서 전교조의 투쟁은 늘 격한 구호로 채워졌고, 또한 언제나 중과부적이었습니다.

 

덕분에 전교조는 여기저기서 미운 오리 새끼 신세입니다. MB정권에서는 학교별 조합원 수를 공개하게 법령을 만든다고 난리더니, 반국가 불법행위 고발센터를 만들어 이적단체로 고발하겠다고 나서기도 합니다. 교육감 후보 선거자금을 지원했다며 수사를 의뢰하자, 검찰은 즉시 수사로 화답합니다. 한나라당은 교원노조 교섭권을 더 제한하는 법률로 확인사살을 하겠다고 하고, 교육기술과학부는 6년 전 체결한 단체협약이 이미 상실되었다고 통보해 쐐기를 박아주시며, 교육청은 단체협약 해지로 사무실을 비우라, 마무리 한 방을 날립니다. 교원평가 여론전에서 밀려 전교조가 왜 교원평가를 반대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조차 교사만 평가를 안 받을 수 있냐는 핀잔이고, 학교 현장에서 인심을 잃는 조합원도 많은 듯하며, 조합원이 줄기 시작한 지 몇 년입니다.

 

이 나라는 모든 것이 힘 있는 자의 논리대로 돌아갑니다. 교원노조법은 애초부터 교원의 교섭단 구성을 원천봉쇄합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도 무시해 집회를 하려고 하면 아이들을 두고 어디 나가냐고 합니다. 근로 조건 문제를 들고 나가면 밥그릇이나 챙긴다고 하고, 교육정책을 말하면 정책은 교섭 사항이 아니라고 합니다. 교사의 일터가 바로 교육의 현장이고, 해야 하는 일은 교육하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헌법에 보장돼 있다는 것은 안전에도 없습니다.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집니다>는 구호를 내세우는 사람이 서울시교육감으로 있었으니,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인정조차 없는 셈입니다. 반칙도 이런 반칙이 없습니다. 전교조는 결코 절대적이거나 유일한 교원노조가 아니며 흠이 없는 조직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싸워 척결할 대상은 더더욱 아닙니다.

 

다른 목소리가 없는 세상은 갈등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가능성이 없는 사회입니다. 전교조가 아니라면 누구도 교육현장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을 일렬로 세우고 학교를 서열화하는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이들도 없어질 것입니다. 아이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만드는 0교시 수업에 반대하는 선생님들도 사라질 것이고, 학교 안, 교육 현장에서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선생님들도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고 하지만, 미꾸라지가 살지 못하는 물은 이미 썩어서 아무도 살 수 없는 물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전교조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