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30. 18:12





양성평등 분야에서 한국은 아직 후진국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여자친구들의 얘기를 들을 때면, 남자로 태어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제 어떤 친구는, 부서 회식이 있을 때마다 부장님 옆에 앉을 것을 강요당한다고 합니다. 그것도 "너는 부장님 옆에 앉아"라고 여자 선배가 지시한답니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회사입니다.

 

맙소사. 지금은 2012년이고, 22세기가 100년도 남지 않았고, 스마트폰으로 열차좌석 예약도 되고 심지어 극장 좌석을 선택까지 해서 예매할 수 있는 시대인데. 술자리 좌석도 마음대로 못 정하다니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시위 때 예비역 남성들이 전투복을 입고 나올 때부터 불길했습니다. 전투복은 전투를 할 때 입는 옷인데, 집회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국가의 심장부에 벌어진 평화시위에 왜 전투복을 입고 나와야 하는지 그때도 지금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건 공익 출신인 제 전투복에 작대기 네 개가 없음을 슬퍼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명의 퇴보가 명확합니다. 연약한 암컷들을 강인한 수컷들이 지키겠다는 말이었겠지요. 지금이 선사시대인가요. 석기시대인가요. 물론 가장 큰 책임은 폭력적 과잉진압으로 맞선 이명박 정권에 있습니다. 시위대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자위권 행사에 나서는 수단으로 전투복을 동원하게끔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더 발랄하고 아름다운 수단을 상상해야 합니다.

 

나꼼수의 마초주의가 구설에 올랐습니다. 정봉주 전 의원이 구치소에서 성욕감퇴제를 먹고 있다는 소식에 어느 여성 지지자가 비키니를 입고 응원하는 사진을 올렸습니다. 공지영 작가는 이에 대해 "가슴 인증샷을 옹호하는 마초들의 불쾌한 성희롱적 멘션들과 스스로 살신성인적 희생이라고 하는 여성들의 멘션까지 나오게 된 것은 경악할 만한 일이다"라고 개탄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나꼼수에 대한 정치적 지지는 여전하지만, 이 사안에 대해서는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습니다. 공지영의 문제제기는 옳습니다.

 

공지영을 지지합니다.

 

정권교체를 향한 싸움이 너무 우악스러워졌습니다. 세밀하고 첨예한 맥락들이 생략되고 삭제되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우리가 이룩한 문명에 걸맞게 우아하고 세련되게 싸울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세상의 투쟁은 아직도 테스토스테론만을 고집합니다. 정치적 마초들은 여성이나 소수자들을 희생시키고서라도 변화를 이끌어내려 합니다. 그 희생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희생 없이도 변화는 충분히 이룩할 수 있습니다.

 

여성의 권리 중에 '벗을 권리'란 없으며,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많은 권리들이 남성들과 동등하게 보장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진보성은 여성인권과 소수자인권에 대한 존중의 정도로 측정될 수 있다고 봅니다. 경제적 민주화, 정치적 민주화에 비해 인권 민주화는 아직 멀었습니다다. 마이너리티의 경우는 특히 더합니다. 한국은 아직 민주화 후진국입니다.

 

변화를 시작해야 할 사람들이 앞장서 과거 회귀를 주장해서는 곤란합니다. 변화를 부르짖는 사람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 좌파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라면, 달라야 합니다. 앞으로는 나꼼수가 좀 더 세련된 감각과 문제의식을 갖추고 접근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보통의 존재 > 일요일, 학교에 안갔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학을 앞둔 우리 아이들에게  (1) 2012.07.16
착한 남자를 위한 변론  (1) 2012.02.04
강릉 좌파  (2) 2012.01.22
유혹하는 여성, 처벌받으리라  (1) 2012.01.15
좋은 선배  (3) 2012.01.1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 5. 08:32






신입생 합격자가 발표되었고, 2012
년이 되었습니다. 시무식도 했고, 19일부터는 보충수업이 시작됩니다. 3월이 되면 입학식도 할 테고, 또 다른 일 년이 시작될 것입니다. 담임교사에게 가장 바쁜 시기는 3월입니다. 이것저것 조사할 것, 준비할 것은 왜 그렇게 많은지. 아이들 이름 외우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입니다.

 

급식비 감면 대상자 파악 작업 역시 매년 3월이면 하는 일입니다. 요즘 어디 밥 굶는 아이가 있겠냐고 속 편히 생각하기 쉽지만, 2012년의 대한민국에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이 존재합니다. 전국의 초중고 학생이 745만 명 쯤 된다고 하는데, 2011년에 점심값을 지원받은 학생은 97만 명에 달했습니다. 35명이 한 반이라면 한 반에 4~5명씩은 꼭 있는 꼴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그만 무감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새해 예산안에 대해 개거품을 물고 화내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며 예산부족을 이유로 복지예산을 크게 삭감했고, 그 과정에서 초중고생의 급식지원비가 0원으로 책정된 것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었습니다. 그 이후로 서울시 전면무상급식과 오세훈의 자폭, 곽 교육감에 대한 권력층의 보복 등 여러 사건들을 지나왔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여전히 초중고 무상급식과 관련해서 말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논의의 층위가 한 단계 높아져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를 들먹이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선별적 복지라는 것이 좀 이상해 보입니다. 그 자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이를 주장하는 이들이 주장의 출발점을 자신들의 논점이 아닌 보편적 복지라는 논점의 반대편에서 출발하는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 등에서는 "부잣집 아이들이나 재벌 자녀들에게도 무상급식을 해야 하느냐"고 따져 묻습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복지혜택을 주자는 논리를 펼치면 될 것을 굳이 보편적 복지의 반대점에서 반박을 하려니 이런 무리한 주장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쉽게 생각해서 우리나라 초중고에 부잣집 아이들, 특히나 재벌 자녀들이 몇이나 될까요. 그 아이들이 무상급식의 혜택을 받는다고 해서 그걸 '혈세'라고 표현할 것까지 있을까요. 무상급식을 시행하면 1년에 2조원인가 하는 돈이 추가로 든다고 합니다. 큰 돈입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재벌 자녀들이 공짜로 먹는 밥으로 인해 추가되는 돈은 얼마나 될까요? 재벌이라는 계층이 몇 %나 될까요? 이걸 논의한다는 자체가 우습습니다차라리 재벌들이 자녀들에게 부를 상속하는 과정에서 부리는 갖은 편법과 불법 수단을 제대로 적발해 납세 의무를 정직히 수행하게만 해도 그 자녀들에게 공짜 밥 주는 것 이상의 재원은 나올 텐데 말입니다.


저도 2010년부터 근로소득세를 내고 있습니다. 는 제가 낸 세금이 우리 아이들의 밥값으로, 교육비로 지출되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일 년에 수십 억 이상의 돈이 청계천 광장 유지비로 나가고 있고, 오세훈이 깔아놓은 시청 앞 잔디 관리비로도 그만큼의 돈이 나가고 있습니다. 매년 연말이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다 뜯어내고 새로 까는 데 쓰는 돈, 기업을 경영한다는 핑계로 자기들 배 채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가 경제위기 닥치면 받아가는 공적자금, 이런 저런 특수활동비라는 명목으로 고위층 인사들이 개념 없이 써 대고 있는 돈, 그런 걸 바로 '혈세'라고 하는 것입니다. 굳이 22조 이상의 돈이 들어가게 될 4대강 사업을 말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전 그런 돈이 훨씬 더 아깝습니다
.

 

사실 아이들이 먹는 밥, 그거 공짜 아닙니다. 왜 그걸 공짜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땅의 미래는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없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그려집니까? 연말에 새로 까는 보도블록, 쓰잘 데 없이 파헤쳐지는 4대강이 우리의 미래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우리의 아이들입니다. 그런 아이들이 선별적 무상급식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받는다면, 그건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비참한 일입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아이들이 받을 마음의 상처를 걱정해 무상급식을 신청하지 않는 부모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는 관용과 배포가 배부른 그대들에게는 없습니다.

 

청계천과 4대강 사업을 불도저식으로 추진한 토목 대통령께서는 자주 이런 말을 합니다. "과거 우리가 남들에게 도움을 받았듯,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한다. 그것이 국격을 향상시키는 길이다."

 

좋습니다. 그것이 진정 국가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이 혼자 가오 잡기 위해 그런 것인지는 따지지 않겠습니다. 진정 우리가 선진국이 되었다면, 그래서 이제는 남을 도와도 될 수준이 되었다면 쪼잔하게 아이들 '''마음'을 가지고 왈가왈부 하지 맙시다.

 

이번 정부에서 전국적 무상급식을 지원해줄 예산을 확보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면, 저는 생애 처음으로 명박이를 이명박 대통령 각하라고 불러줄 의향이 있습니다.

 

'가장 보통의 존재 > 일요일, 학교에 안갔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혹하는 여성, 처벌받으리라  (1) 2012.01.15
좋은 선배  (3) 2012.01.11
안 아파도 청춘이다  (0) 2012.01.01
전교조를 위한 변명  (0) 2011.12.25
담임이 없는 학교  (3) 2011.12.1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