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2. 08:30

동물을먹는다는것에대하여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지은이 조너선 사프란 포어 (민음사,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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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조나단 사프란 포어란 이름이 익숙한 분들 계시겠죠?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란 제목의, 9.11 사건을 다룬 그의 두 번째 소설이 큰 주목을 받는 동시에 영화화되며 조나단 사프란 포어 또한 화제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재작년에 지식채널e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 화제의 소설이랍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해드릴 책,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는 그의 첫번째 논픽션입니다.


채소들 사이에 있는 사진이 마음에 들어 구글링을 통해 그를 모시고 왔습니다. 생각보다 젊죠? 이런 책을 썼으니 당연히 베지테리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니예니예, 맞습니다! 흐흐흐.. 그동안 다양한 미디어에서 '육식'에 대해 많은 화두를 던졌습니다. 저도 제 코너를 통해 살짝씩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죠! 이효리 씨나 이하늬 씨처럼 채식주의자로 커밍아웃(?)을 하신 분들도 많아지는 추세고, 지상파 방송에서도 육식이 지니는 다양한 문제점, 그 안에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경제적 담론들을 폭로하는 다큐멘터리가 종종 방영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동물을 미친듯이 사랑한다기에는 모자란 사람입니다. 소가죽 구두도 신고 소가죽 가방도 들고 바삭바삭 꼬숩꼬숩 치킨이라면 사족을 못 씁니다. 환경을 미친듯이 사랑한다기에도 모자라고, 건강 염려증이 심하지만 고기를 끊는 것보다는 건강식품을 먹는 쪽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지식이 부족했습니다. 그 과정이 무척이나 폭력적이고 정치적이라는 것을 알고나자, 그 어떤 이유보다 강렬하게 반감이 들더군요.

저자는 아홉살때, 베이비시터를 통해 처음으로 채식주의를 접합니다. 물론 자신의 삶 속에서도 나름의 고민이 있었지만, 아이를 갖게 되면서 앞으로 아이가 먹을 음식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고 그 즈음에 이 책에 대한 집필의지를 다졌을 것 같습니다. (* 아래 사진은 '자이미의 베드스토리'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포어 씨는 광범위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동물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힘쓰는 운동가들부터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죠. 홍보문구인 '막대한 조사에 기반한 팩트'가 더없이 어울립니다. 한편 저자가 가장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은 바로 공장식 축산업입니다. 이는 저비용으로 고수익을 내기 위해 동물들을 식품재료로 사육하는 시스템을 뜻하죠. 동물들은 이 시스템 내에서 식재료 정도의 취급을 받으며 그 정도로 보관, 사육됩니다.

■ 동물을 먹기 전에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들 (미국 통계 기준)

* 우리가 먹는 동물의 99% 이상이 공장식 축산에서 나온다.
* 계란 생산용 닭은 이 책을 양쪽으로 펼쳤을 때 나오는 지면보다도 작은 공간에서 평생을 살고, 알을 낳지 못하는 산란계 수평아리 2억 5000여만 마리는 매해 산 채로 폐기된다.
* 트롤망 어업은 전체 어획물에서 2% 이하밖에 차지하지 않는 목표 어획물을 얻기 위해 100여 종의 다른 어종을 함께 죽인 후 바다에 버린다.
* 닭고기의 80% 이상이 캄필로박터균이나 살모넬라균에 감염된 채 판매된다.
* 해마다 인간에게 쓰는 항생제는 1300톤이지만, 가축에게 투여하는 항생제는 1만 1000톤이며 이 때문에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병원균이 늘어 간다.
* 농장 동물들은 초당 40톤의 배설물을 만들어 내는데, 이는 도시 하수보다 160배나 더 환경을 오염시키고, 우리의 건강을 위협한다.
* 농장 동물들은 자동차 등을 비롯한 운송 수단보다 약 40퍼센트나 더 많은 온실 가스를 배출한다.
* 육지의 3분의 1에 가까운 면적을 가축들이 차지한다.


그저 식육되기 위해 사육된 가축들에게 권리란 없습니다. '고효율'이란 명목 하에 좁디 좁게 구획된 한평 남짓한 공간에 갇힌 채, 고단백 사료와 항생제에 길들여져 갑니다. 소의 주 사료인 옥수수, 그것을 위해 밀림의 면적은 줄어들고 지구 반대편 사람들은 식량난에 허덕입니다. 항생제가 든 고기는 고스란히 그것을 먹은 인간의 몸 속으로 흡수됩니다. 그렇게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지요. 가장 문제인 것은 그들이 사육되는 방식이 너무나 폭력적이며, 거대자본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업'이라는 점입니다.


보통씨와 나탈리양까지, 많은 호평을 받았죠? 저자는 우리가 그토록 즐겨먹는 고기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식탁으로 왔는지 알게 되었을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지 묻습니다. 뭔가 죄책감을 느끼게 하며 채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하기에 쉽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아, 물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반려동물에 엄청난 비용을 지출하는 문화와 그런 동물들을 먹는 문화, 보호종과 식용종을 나누는 차별, 공장식 축산업을 옹호하는 입장까지 다양합니다.

사실 오늘도 저는 돼지목살김치찌개를 2끼나 먹었어요.. 네,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ㅋㅋㅋ 그래도 이번달부터는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싶어요. 육식을 딱 끊기는 힘들겠지만, 윤리적인 사육과 소비가 가능하도록 조금씩 노력해보려구요. 마음이 약해질때마다 요런 책들을 읽으며 참아볼까 합니다. 관심있으신 분들, 고민하시는 분들, 궁금하신 분들 모두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대로 가면 아쉬워서 'Eating Animals' 티져 영상? 짧은 인터뷰? 편집영상을 첨부합니다. 영어실력도 키우실 겸ㅋ 한번 봐주세요! 감사해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20. 09:11


 이름 : 션! (한국이름 노승환)
나이 : 1972년 10월 10일생
직업 : YG 지누션의 멤버, 힙합 가수!
만남 : 동네 교회 2층 예배당

여러분이 꿈꾸는 배우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나만을 사랑해주는 사람,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꾸려나갈 책임감이 강하고 유능한 사람, 늘 도전적인 모험가,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줄 자상하고 사려깊은 사람… 각자 다른 이상형을 꿈꾸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동안 나름대로 여러 생각을 해봤는데요. 얼마 전, 새로운 롤모델을 한 분 만났습니다. 바로 기부천사, 행복전도사, 그리고 국민남편(?)이라 불리는 입니다.


아마 션의 특강을 들어보신 분들도 제법 계실 것 같아요. (빡빡한 스케줄!) 하지만 저는 이번이 첫번째 강연이었기 때문에 무척 감명받고 많이 배웠어요. 동네 교회에서 준비한 특별한 강연, 션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이래저래 크리스챤을 창피하게 만드는 일부 목사들과는 달리,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분이죠? (하아..) 강연에서 션 씨는 연애, 결혼, 출산, 육아까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함께 나누고픈 이야기들을 소개해드릴게요!

1. 사랑해, 축복해


션 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이들을 향해 두 마디를 건넵니다. "하음아! 사랑해, 축복해!" "하랑아! 사랑해, 축복해!" 그냥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맘을 다해 사랑을 표현한다고 해요. 강연을 듣는 사람들에게도 곁에 앉은 이들을 향해 그 두마디를 전해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매일매일 사랑과 축복을 전하던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하음이가 급하게 동생 하랑이의 방으로 뛰어가 옹알옹알 동생에게 말해줬대요. "사앙해, 추보캐!" 션 씨는 그 모습을 보면서 진심을 담은 마음이 어떻게 커져가는지, 이어지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해요. 저도 처음 보는 옆자리 아주머니께 그 말씀을 하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언젠가 제가 엄마가 된다면 꼭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일이에요.

2. 돌잡이로 무엇을 잡았나요?


첫째 하음이가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 1살이 되자 돌잔치에 대한 고민에 빠진 션-정혜영 부부. 즐겁고 행복한 돌잔치이긴 하지만, 막상 주인공인 아이와 엄마는 너무 힘들기도 하죠. 먹고 자고 놀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한참 낯을 가릴 아이에게 낯선 얼굴이 들이닥치고 무엇인가를 잡으라고 하고 하니까요. 아이를 달래는 엄마도 진이 빠지는 것은 마찬가지구요. 부부는 이런저런 생각 끝에, 아이의 돌잔치 비용과 도우미 아주머니를 모시는 데 드는 비용을 합쳐 어린이 병원에 하음이 이름으로 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음이의 이름으로 몸이 불편했던 아이들은 다시 희망을 얻었죠. 동생들도 같은 돌잔치를 했다고 해요. 엄마 입장에서는 솔직히 조금 서운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더 특별한 추억이자 더 좋은 교육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돌잡이로 잡은 것은, 이웃의 손이었습니다" 이 한 마디가 긴 여운을 주더군요.

3. 떠나고 싶지 않은 결혼식, 와 보셨나요?


션 씨는 어린 시절을 괌에서 보내서 미국문화에 익숙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청첩장에 꼭 누구누구의 장녀 누구, 누구누구의 차남 누구 식으로 부모님의 성함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와, 역시 동방예의지국답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난 후, 그보다는 하객들을 위한 배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해요. 결혼이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라고 보는 한국식 사고방식도 깨닫게 되구요. 외국에서는 '개인의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만큼 한국에서의 결혼은 복잡하죠. 특히 혼수, 예단, 그리고 축의금이 더더욱.

평생에 한번뿐인 결혼식인데, 진심어린 축하와 축복이 아니라 인사치레로 가득찬 식당처럼 변질되는 것이 걱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션 씨는 다소 충격적인(!) 결단을 내리는데요. 바로 축의금을 받지 않기로 한거예요. 하객도 단 200명만 초대했구요. 모든 준비는 기도가 함께 했고, 신랑과 신부가 나누어 직접 했다고 해요. 손님들을 정성껏 대접했고, 초대된 하객들 모두 진심을 다해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했습니다. "이렇게 떠나기 싫은 결혼식은 처음이었다"는 편지를 받기도 했다고 해요. 비행기에서 하는 결혼식, 수중웨딩 같은 각종 결혼식이 많지만 '떠나기 싫은 결혼식'이야말로 so special한 것 같습니다.

4. 나누기, 더하기, 곱하기!


행복한 결혼식을 마치고 션 씨는 정혜영 씨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행복한 만큼, 우리만 누리지 말고 이웃들에게 나누면서 살자" 그러면서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매일 만원씩, 조금씩 모아서 이웃들을 위해 쓰면 어떨까?" 그 날로 매일 만원씩 모아 결혼 기념일마다 무료급식소 '밥퍼'에 기부를 합니다. 그렇게 벌써 몇년째, 하루에 만원이던 돈이 천만원이 넘는 큰 돈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작지만 진심으로 모은 돈은 이웃의 행복을 배의 배로 키웠습니다.

5. 404명의 아빠가 되었어요.


하음이, 하랑이, 하율이, 하엘이. 천사같은 4남매의 아빠인 션 씨. 하지만 그에게는 더 많은 자녀가 있다는데! 컴패션을 통해 만난 필리핀과 아이티의 아이들 200명, 우리나라의 아이들 100명, 그리고 북한 어린이 100명까지. 정말 대단한 대가족이죠? 션 씨가 꿈꾸는 세상은 사랑이 가득한, 나눔의 공간입니다. 특히 북한 어린이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어요.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며 북녘의 어린이들을 양육하며, 후에 통일이 왔을 때에도 '사랑'이란 큰 틀 안에서 반갑게 만나고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 꿈이 가슴에 와 닿았거든요. 요즘 어린이들은 '통일'에 대해 잘 모르니 더더욱,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해요.

더 많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 정도면 여러분께 살짝 소개해드리는 정도면 괜찮겠죠? 두시간 동안 특유의 선한 미소를 만면에 띄운 채, 열정적으로 강의해준 션 씨에게도 감사를 전하면서- 여러분도 더 크고 따뜻한 행복을 꿈꾸시기를 감히 기도해봅니다. 그리고 저도 더 좋은 사람, 이웃의 손을 꼬옥 잡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봐요. 모두 행복해져요, 우리! 사랑해, 축복해! 

* 모든 사진의 출처는 션 님의 미니홈피 입니다. http://www.cyworld.com/sean101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12. 08:30
왜나는너를사랑하는가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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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사랑은 '하는' 것이지만, 가끔은 '생각'해도 좋아요

* What's the story?
드디어 알랭 드 보통 입니다. 사실 오늘 페북에서 훈석님의 '알랭 드 곱빼기' 드립에 껄껄 웃다가 이 리뷰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답니다. 사실 저는 보통씨의 big fan은 아닙니다. 이거슨 말 그대로 개취입니다. 애니웨이, 이 책은 그가 고작 스물세 살일 때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지요. 사실, 이 책의 주제 자체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전인류 제1의 관심사입니다. 바로 '사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는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 놀라운 기적으로부터 점차 시들해지는 과정, 그리고 이별까지, 남녀의 심리와 그 메커니즘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인문학적 지식, 철학적 사유, 통찰력이 빛나는 책이죠!


* My story is..
저는 자타공인 '연애주의자'입니다. 그게 꼭 남자친구 없으면 뒤진다는(수준이 낮은 표현 죄송합니다) 뜻은 아니고 (솔직히 그것도 사실입니다만..) 그게 연인이든 친구든 연예인이든 누군가를 굉장히 열렬하게 좋아하고 있어야 행복을 느낀다는.. 뭐 그리고 '연애' 자체를 무척이나 즐기기 때문이죠. 최선을 다해서 뒤끝이 없는 열정적인 인간입니당.

그래서 저는 연애에 대해서 논하는 글들은 잘 읽지 않는 편이에요. (화요일의 연애칼럼 '나영이'는 성실히 읽고 있어요!) 연애 행위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에 회의적이기도 하고, 케바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치만 고요하고도 독특한 일본 로맨스소설이나 달콤쌉싸름한 로코, 섹스앤더시티 같은 독한 연애사는 좋아하니, 이거슨 아이러니.. '연애시대'나 '내 이름은 김삼순'은 진짜 진리! 오늘은 기분도 센치한 것이.. 그냥 책 얘기는 쪼꼼만 하고 수다 좀 떨겠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일이 이렇게 빨리 일어나는 것은 아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 선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구가 해결책을 발명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출현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대개는 무의식적인] 요구, 사람의 출현에 선행하는 요구의 제 2 단계에 불과하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갈망이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을 빚어내며, 우리의 욕망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구체화된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24p)

제 주변에도 수많은 연애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자기는 아니라고 손사레를 치는 친구도 있고, 담담하게 인정하는 사람도 있죠. 각자의 이상형도 천차만별인데요. 친구 N양은 중학교 시절부터 '자신만의 철학이 있고 다정다감한 사람'이 좋다고 하더니 매번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 스타일에 빠지는 일관성을 보이는가 하면, H군은 소녀시대 태연양처럼 '애교많고도 털털한 스타일'을 이상형이라 하더니 진짜 고대로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갈망이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 즉 '이상형'을 빚어내긴 하지만 막상 그 외에도 수많은 우연들이 작용하죠. 사실 그렇잖아요. 100개의 조건 중 99개를 가지고 있어도 1개 때문에 안되는 인연이 있지만, 1개만 갖고도 99개를 잊게 하는 관계도 있고.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식이가 희진이 아닌 삼순에게 빠진 이유도 마찬가지겠죠. 드라마 아니냐구요? 주변에도 이해 안 가는 커플들 있지 않으신가요? 제 주변엔 많.. '뉴논스톱'에서 경림-인성 커플과 짱나라-구리구리 커플이 큰 인기를 끈 것도 판타지와 공감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무튼 제 생각에 그 선후관계는 늘 케바케인 것 같습니다. 어쩌다~ 이상형과 정반대인 연인과 사랑에 빠지다가 후에 그에게 '이상형'이 되도록 무언의 압박을 가하기도 하고 조련 아닌 조련을 하기도 하고. 어쨌든 연애는 수많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만큼은 불변의 진리겠죠! 그리고 연애란 행위, 관계는 무지 정치적입니다. (그 점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돼요!)

서양 사상에는 결국 사랑은 보답받을 수 없는, 일방적으로 사모하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작용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오래 되고 우울한 전통이 있다. 사랑이 보답받을수 없기 때문에 욕망은 더 커진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랑은 방향일 뿐 공간은 아니다. 목표를 성취하면, '침대에서건 어떤 식으로건'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면 소진되어버린다. 12세기 프로방스의 음유시인들의 시는 모두 성교를 미루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인은 되풀이하여 남자의 간절한 제안을 거절하는 여자에게 탄식을 늘어놓는다. 4백 년 뒤의 몽테뉴 역시 무엇이 사랑을 자라나게 하느냐에 대해서 그 시인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몽테뉴는 말했다 "사랑에는 우리를 피해서 달아나는 것을 미친 듯이 쫓아가는 욕망밖에 없다" 아나톨 프랑스 역시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을 사랑하는 것은 관례적이지 않다"는 말로 같은 입장을 보여주었다. 스탕달은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기초로 해서만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드니 드 루주몽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가장 넘기 힘든 장애를 가장 좋아한다. 그것이 정열을 강하게 물태우는 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는 욕망을 정의상 얻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으로 한정시켰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82p)

제가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입니다. 마르크스주의, 몽테뉴, 롤랑바르트가 등장했다고 해서 좀 당황스러우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별로 난해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가 무척 가깝게 느끼는 행위, '밀당'과 별 다르지 않은 이야기니까요. 사랑의 욕망을 소진하지 않기 위해서는 '목표'가 늘 존재해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사랑은 방향일 뿐 공간이 아니란 이야기가 참 재수없으면서도 일견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영원한 사랑'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냥 그래도, '우리 결혼했어요'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많은 시청자들은 각 커플에 자신들을 대입해보면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서인영 씨가..) 개인적으로 알신(알렉스-신애)커플에는 영 마음이 가지 않았는데, 그때는 제가 너무 어렸었나봐요. 그땐 알렉스가 너무 느끼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예쁜 노력이 많았던 것 같아요. 더 가까워지려고, 설렘을 잃지 않으려고. 물론 그런 노력이 남성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역시 '우결'이죠? 실제 커플인 황정음-김용준 커플입니다. 소녀시대 무대의상을 예쁘게 차려입고 엘리베이터의 매층마다 춤을 춰주는 정음씨! 제가 봐도 너무 예쁘더라구요. 남자 쪽이 확 빠질 수밖에 없는 이벤트 중 이벤트였어요. 이처럼 뻘쭘하고 영 어색한 커플 초기에도, 서로 집에 수저가 몇 갠지 빠삭하게 아는 오래된 커플 사이에도 노력은 늘 필요합니다. 그게 꼭 이벤트가 아니라도요.

그녀는 낭만적인 것을 비웃는 데다, 감상적인 것을 배격하는 데에, 사무적인 태도를 취하고 거리감을 보이는 데에 약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정반대였다. 이상주의적이고, 몽상적이고, 베풀려고 하고, 입으로는 질질 짜는 것이라고 배격하는 모든 것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71p)

그러고보니 온통 다른 이야기들을 했네요. 원래 제 얘길 좀 나누고 싶었는데! 그래서 알려드리는 저란 인간.. 바로 위 부분은'공감'의 부분입니다. 과거의 모습입니다만.. 간지러운 것은 피하려고 하고 그 '쿨함'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뭐 차도녀까지는 아니어도 그랬어요! (* 아래 그림은 네이버 웹툰 '삐뚤빼뚤해도 괜찮아'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어제 저녁에 '이상형 찾기' 어플을 갖고 놀다 남자친구랑 나눈 이야기인데요.. 사귀기 한참 전에 남자친구가 "애교가 짱이지~"라고 할 때마다 제가 "난 애교 한 개도 없는데?"라고 했거든요. 남자친구는 속으로 '어쩌라고'라고 했다지만.. (이 자식이?) 지금 저는 진짜 '토할 것 같은 애교의 대명사'에 다름없습니다. 남자친구도 상남자 st 인데 저보다 더 심해요.. 인생이 참 그렇더라구요 ㅋㅋㅋㅋ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이전과는 영 다른 모습으로, 혹은 자신도 모르는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민망돋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흥미롭고도 씬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헛소리만 지껄인 이번 포스팅이 민망해서 마지막은 보통씨의 인터뷰로 대신할게요.

한국이 보여줄 새로운 사랑의 방식은?

작가로서 나는 사랑이란 주제에 매력을 느낀다. 당연히 이것은 내가 한국의 지인들과 토론하고 싶었던 분야다.(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삶에 대한, 솔직하고 개방적인 통찰을 전해준다) 한국인들의 감성(heart)은 서구의 낭만주의(Romanticism)와 아시아의 유교적 전통 사이의 교차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태는 한국 문화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하곤 한다. 유교의 가르침은 가족을 개인적 성취보다 중히 여기고, 의무를 성적인 쾌락에 우선시하며, 시비를 가리기보다는 (연장자에 대한) 존경을 앞세우라고 한다. 낭만주의는 완전히 상이한 관점에서 출발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적·감정적 친밀함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서구인들은 (꽤 이른 나이부터) 자신의 천생연분(soul mate)을 만날 때까지 여러 사람과 사귀어보려 한다. 같은 맥락에서 만약 성적인 측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이혼이 해결책이 된다.

내 생각은 이렇다. 유교든 낭만주의든 제도 자체는 문제없이 작동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두 가지를 섞으려 할 때 생긴다. 낭만주의는 다음과 같은 전제를 필요로 한다. 개개인은 ‘성적인 실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훈련받아야 한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쉽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결혼관계를 끝낼 수 있어야 한다.

유교적 전제조건은 이렇다. 여성은 가정에 머물러야 한다. 남성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가장이며, 집안일을 도울 필요도 없다. 부부 사이에 감정적 거리가 있더라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이혼은 최후의 수단이다. 나는 내 한국인 친구들이 두 가지 가치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결과적으로 두 기준의 불합치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할 이유도 있다. 동과 서, 옛것과 새것 사이의 긴장으로부터 사랑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서구 세계는 사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것이 많다. 아마도 한국이 사랑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a new nuanced attitude)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 출처는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 입니다. 알랭 드 보통의 '내 사랑 한국인들에게'란 기고이구요. 위 글은 오늘의 주제와 어울려서 발췌한 부분이구요, 전문을 읽고 싶으신 분들은 요기 링크를 타세요! → http://news.donga.com/3/all/20111007/40929595/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5. 08:20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수요일 아침을 여는 사과모히토 입니다. 턱관절 장애와 만성피로 등등으로 고생고생 한 일주일이었어요. 오늘은 여고괴담 뉴버전을 꿈으로 꾸는 바람에 잠을 설쳤습니다. 흐엥 지금 정말 괴롭군요. 그래서 미뤄둔 포스팅을 꼭두새벽에 하고 있습니다. 그닥 센치한 시간대는 아니지만, 오늘 소개할 사람은 '시인'입니다. 당연히 소개드릴 책도 '시집'이 되겠죠?


오오, 훈남 스멜! 그의 이름은 심보선! 등단하신지 17년 되셨네요! 2008년 등단 14년 만에 묶어 낸 첫 시집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기 시작한 시인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동경하기도 하구요. 심보선 시인의 시들은 '생각할 거리', '느낄 거리'를 건네줍니다. '늘 긍정적인 자세로 삶에 임하라!'식의 훈계나 계몽이 아니라 '이런 삶이, 생각이, 느낌이 있었다'라고 말을 겁니다.

종종 자기계발서적이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결정지어진 의미를 그대로 흡수한다면, 소위 말하는 '밥을 입에 떠넣어 주는 식'에 그치고 말겠지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순수문학이 자기성찰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심보선 시인의 시집은 2권입니다. 모두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왔어요. 시를 좋아하시지 않으셔도 문학과 지성사 시집의 표지는 대부분 익숙해하시더군요. 2008년 출간된 첫 시집의 제목은 '슬픔이 없는 십오초'입니다. 지금부터는 자유롭게 감상하세요!

슬픔이없는십오초:심보선시집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지은이 심보선 (문학과지성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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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십오초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 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하다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시집과 동명의 제목을 가진 시였습니다. (제가 카모마일 티를 워낙 좋아해서 마치 시 속 '여자'가 된 듯한 기분도 들었고요 히히) 어려운 어휘가 따로 없지만 다소 난해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감상은 여러분의 몫!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이어집니다.

청춘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복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며 바로 놓았을 때
강 건너 모르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려보며 숱한 결심들을 남발했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즐겨 제발 욕해달라고 친구에게 빌었을 때
가장 자신 있는 정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완벽한 몸을 빚으려 했을 때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고딩때 시를 끼적이던 저에게 가장 좋은 주제는 '청춘'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재고 꾸며 시쳇말로 '허세'로 쓰여진 망작(ㅋㅋㅋ)이 대부분이죠. 심보선의 '청춘'은 어쩌면 나도 모르게 외면하고 싶었던 기억의 단편들, 현재의 삶들을 꺼내게 해주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읽고 펑펑 운 독자 1人! 찌질한 청춘의 대명사인 독자 1人!

눈앞에없는사람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지은이 심보선 (문학과지성사,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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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올해 8월에 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 '눈앞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기쁨과 슬픔의 빈 공간에 딱 들어맞는 단어 하나'를 만들겠노라고 말하며 '사랑'을 안고 돌아왔어요. 사랑이 가지는 일종의 역설성, 말로는 정확히 표현하기 힘들지만 누구나 공감하는 그 특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직접 만나보실래요?

나무로 된 고요함

나는 나무로 된 고요함 위에 손을 얹는다
그 부드러운 결을 따라
보고 듣고 말한다
그대 기쁨, 영원한 기쁨의 지저귐이
사물들의 원소 속에 숨어 있음을 깨닫는다
하느님은 여느 때처럼 말없이
황금 심장을 가슴 속에 품고 계신다
아, 거기서 떨어지는 황금 부스러기를
그 하나하나로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유리와 불과 돌 속에서
지워질 이름이란 없을 것이거늘
쓸모를 모르는 완구(玩具)처럼
하늘의 언저리를 굴러가는 태양 아래
인간은 오래되고 희미한 기쁨의 필적들을
주워 모으는 절박한 수집광
아, 우리가 불안을 조금만 더 견뎠더라면
그것을 하느님이
조금만 더 도와줄 수 있었더라면
유리와 불과 돌 속에서
사라지는 이름이란 없을 것이거늘
나는 양손을 가슴팍 위로 거두어 모은다
망각이 그 부드러운 결을
한층 더 부드럽게 지워가며
나무로 된 고요함 아래 죽음을 눕힌다
그때 기쁨, 죽음으로부터
우연히 건너온 기쁨 하나를 움켜잡으려
나는 다시금 그 위에 손을 얹는다

'오래되고 희미한 기쁨의 필적들을 주워 모으는 절박한 수집광'이란 말에서 숨이 탁 막혔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손'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 부분도 살짝 관심있게 지켜봐주시면 더 풍요로운 감상이 되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은 나의 약점

당신은 내게 어느 동성애 운동가의 시를 읽어준다
강렬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시를
내 언어가 결코 가닿지 못한 슬픔의 세계가
밤하늘의 성좌처럼 선명한게 펼쳐진 시를
나는 고통스럽다
반은 질투심에, 반은 감화되어
그러나 나는 다만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참으로 오랜만에
진실된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한 명의 유순한 독자가 되어

시를 읽고 난 후 당신은 내게 웃으며 말한다
당신이 동성애자였다면
이렇게 좋은 시를 쓸 수 있었을 텐데
나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당신의 유일한 약점이군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당신의 위트 섞인 선의 아래에는
아주 날카로운 메시지가 숨어 있다
내가 중산층 이성애자 시인이라는 사실
그것은 유일한 약점이 아니라
나의 본질적인 한계가 아닌가?

-후략-

'사랑'이 어딨어?'라고 하실 분들을 위해 이번 시집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 한 편('사랑은 나의 약점')까지 덧붙였어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게 되는 절절한 연시 계열이 아니죠? 일종의 성찰로 이어지는 전개가 자못 흥미롭습니다. 사실 시는 사시사철 다 어울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짧은 가을이 겨울옷을 입기 전에 시집 한 권 들고 산책하시는 것도 좋은 추억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만의 언어로 시를 쓰신다면 저도 꼭 읽게 해주세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5. 07:33

식후에 이별하다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했으니
이제 이별이다 그대여
고요한 풍경이 싫어졌다
아무리 휘저어도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를테면 수저 자국이 서서히 사라지는 흰죽 같은 것
그런 것들은 도무지 재미가 없다

거리는 식당 메뉴가 펼쳐졌다 접히듯 간결하게 낮밤을 바꾼다
나는 저기 번져오는 어둠 속으로 사라질테니
그대는 남아 있는 환함 쪽으로 등 돌리고
열까지 세라
열까지 세고 뒤돌아보면
나를 집어 삼킨 어둠의 잇몸
그대의 유순한 광대뼈에 물컹 만져지리라

착한 그대여
내가 그대 심장을 정확히 겨누어 쏜 총알을
잘 익은 밥알로 잘도 받아먹는 그대여
선한 천성의 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이를테면
내가 죽 한 그릇 뚝딱 비울 때까지 나를 바라보며
그대가 속으로 천천히 열까지 세는 소리
안 들려도 잘 들리는 소리
기어이 들리고야 마는 소리
단단한 이마를 뚫고 맘속의 독한 죽을 휘젓는 소리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먹다 만 흰죽이 밥이 되고 밥은 도로 쌀이 되어
하루하루가 풍년인데
일 년 내내 허기 가시지 않는
이상한 나라에 이상한 기근 같은 것이다
우리의 오랜 기담은 이제 여기서 끝이 난다

착한 그대여
착한 그대여
아직도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열을 셀 때까지도 기어이 환한가
천 만 억을 세어도 나의 폐허는 빛나지 않는데
그 질퍽한 어둠의 죽을 게워낼 줄 모르는데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28. 10:10
완득이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려령 (창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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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작은 하루가 모여 큰 하루가 된다 (완득이 曰)

* My story is...
나는 청소년 문학을 좋아한다. 다수의 한국 소설(성인소설이라고 하면 어감이 좀..)이 다소 건조한 맛이 있는데 청소년 문학은 그 나이에 맞는 온기, 열기가 있어 읽는이까지 힘이 솟게 만든다. 청소년소설 '완득이'는 베스트셀러다. 읽고나니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다는 점이 무지 맘에 들었다. 단지 재미만 있는 소설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문제를 차곡차곡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알고 있지만 깊이 생각해본적 없는 문제, 쉽게 볼 수 있지만 눈여겨 보지 않으려고 했던 문제.. '완득이'는 도시빈민, 이주노동자, 장애인까지 우리네 사회문제를, 너무 어렵고 어둡지 않게 그려내 기특하고 감사한 책이다. 


소설 '완득이'는 영화화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아인, 김윤석 주연이며 한참 시사회 중이다. 원작자인 김려령 작가는 "싱크로율 100%"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고 하는데, 더더욱 기대가 된다. 그러고보니 '도가니'에 이어 충무로가 사랑한 소설 시리즈가 되고 있는 기분이다. 충무로 사람들이 다 서점으로 갔나?ㅋ 영화화에 앞서 '완득이'는 연극으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얻었었다. 뭐, 연극은 연극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좋을 것 같아서 보고 싶다.


* What's the story
완득이는 난쟁이 아버지와 베트남 이주 노동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결핍, 그렇다고 기죽을 완득이가 아니다. 모든 일에 꾸밈이 없다는 점이 완득이의 매력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묵직한 진심이 느껴지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가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으로 그를 본다. 참 사랑스럽다.


완득이 주변 인물들도 하나같이 특별하다. 난쟁이라고 놀림당하면서 카바레에서 바람잡이로 춤추는 아버지, (친삼촌은 아니지만) 정신연령이 낮아 말을 더듬는 민구삼촌, 그리고 독자들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담임선생님 '똥주'! 학생들을 약올리고 괴롭히는 재미로 학교에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혹은 경험했던 담임선생님과는 거리가 안드로메다인 캐릭터다. 조폭담임이라니 말 다 했다. (위 사진의 시커먼 남정네들이 바로 그들이다. 캐스팅 한번 그레이트 하구먼!)

"삼촌 혼자가도 되겠어요?"
"혼자 있어봐야지."
"장에는 이제 혼자 가시겠네요."
"그래야지."
"민구 삼촌을 그렇게 보내면...... 멀쩡한 사람도 아닌 정신지체 장애...."
장애라는 말에 아버지 어깨가 잠시 흔들렸다.

사람한테는 죽을 때까지 적응안되는 말이 있다. 들을수록 더 듣기 싫고 미치도록 적응 안되는 말 말이다. 한두 번 들어본 말도 아닌데, 하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가슴을 치는 말은 한 번 두 번 세 번이 쌓여 뭉텅이로 가슴을 짓누른다.

"난쟁이다, 난쟁이!"

그냥 봐도 다 아는데 굳이 확인사살을 하는 사람들....  (완득이, 196p)
 
완득이의 가족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약자'다. 이 소설은 꾸미지 않고, 담백하게, 하지만 사랑을 담은 시선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연민도 죄송스러워지는 건강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 앞에 내 자신이 창피해진다.
 


성장소설에 달달한 관계가 빠지면 섭하다. 완득이의 짝은 바로 소위 '엄친딸' 캐릭터에 가까운, 즉 등수가 전교에서 놀고 좀 사는 집 딸인 '윤하'다. 윤하는 완득이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그렇게 두 아이들은 열일곱다운 첫사랑의 간질간질함을 나누게 된다. 어쩌면 이 관계는 많은 여자애들(정말 10대 소녀들을 의미)의 로망이 아닌가 싶다. (살짝 평강공주 컴플렉스인가?ㅋ) 

 
반항아라면 반항아인 완득이를 변화시킨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바로 킥복싱! 잘하는 것은 싸움밖에 없다던 완득이는 맞고 채이고 밟히면서 성장한다. 피하거나 쫄거나 하지 않고 툭툭 털며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왔다! 내 페인트 모션에 관장님이 주춤했다. 나는 디딤발이 흔들리지 않게 엄지발가락에 체중을 실었다. 무릎에 회전을 가해 복부에 쑤셔 넣기만 하면 게임 끝이다. 그런데 내 무릎이 회전하기도 전에 관장님이 회전했다. 내 킥은 허공을 걷어찻고 그 바람에 디딤 발이 휘청했다. 그리고 관장님의 로우 킥이 들어왔다. 360도 회전 로우 킥이다. 허벅지가 끊어질 것 같다. 나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서둘러 일어서려는데 다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허벅지를 맞고 숨통이 막히기는 처음이다. 그때, 내 얼굴 앞으로 하얀 수건이 덜어졌다. 정윤하다. 지가 왜 수건을 던지고 난리야.
"괜찮아?"
"놔!"
안 괜찮고 쪽팔리다. 그리고 열 받는다. 능구렁이 관장님은 도대체 언제 수련을 했기에 이렇게 강한 로우 킥이 가능한지. 나는 엎드린 채 이마를 바닥에 박았다.
"잘했어. 너 이긴 거야."
관장님이 글러브를 벗으며 말했다. 어이가 없다.
"지러 가는 시합이니까, 미리 지는 연습 한번 한 거야. 그러니까 넌 이긴 거고."
관장님은 껄껄 웃으면서 링 아래로 내려갔다.
똥주네 집인지 교회인지 가서 관장님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 곧 올 것 같다. 나는 이번 대회에서 반드시 이긴다. (164-165p)

완득이는 원래 싸움을 싫어한다.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놀리지만 않았다면 싸우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니까. "상대가 말로 내 가슴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렸고, 나도 똑같이 말로 건드릴 자신이 없어 손으로 발로 건드렸을 뿐이다. 상처가 아물면 상대는 다시 뛰어다녔지만 나는 가슴에 뜨거운 말이 쌓이고 쌓였다. 이긴다고 다 이기는 게 아니라고? 이겨야 이기는 거지."라고 말하는 그의 덤덤한 슬픔이 전해져 나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소설은 특별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시니컬한 유머를 툭툭 내뱉기도 하고, 일그러져 있지만 왠지 웃고 있는 것 같은 표정들. 책장을 넘기며 피식피식 웃다가 어느새 눈물이 툭 터져버리고 만다. 편하게만, 배우는대로만, 받은대로만 살아온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할, '세상에 넘어지고 부딪혀 얻어낸 희망'이 느껴져, 더더욱 값진 소설이다. 우리의 열일곱에게 이 소설을 추천해주고 싶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21. 17:30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말도 살찌고 나도 살찌고 에헤라디야
창문 살짝 열어놓고 선선한 바람 맞으며
독서(feat.주전부리)를 즐깁시다


넋두리 같은 서문으로 시작된 오늘의 포슷힝! 잇힝! 안녕하세요, 여러분! 수요일의 사과모히토입니다. 모히토랑 잘 어울리는 계절은 여름인데.. 그냥 어느 계절에나 잘 어울리는 '생맥주'를 필명으로 할 것 그랬나보군요. 젠장? 그동안 없는 척 있는 척 다 끌어모아서 감히 별점평을 매기는 글을 썼는데 오늘만큼은 제대로 된 가을을 맞이하야 가을바람 마냥 쏘쿨한 소개글을 써볼까 합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죠! (하하.. 제겐 추석, 생일, 기념일 연타석으로 있는 먹을 복 많은 계절일 뿐) 여러분도 올 가을에는 책 한 권 읽어보시는게 어떨까요? 이것저것 장르 가리지 않고 운명처럼 덜컥 만난 책도 좋지만, 가끔은 "오- 나랑 맞겠는데?"하며 고른 책도 좋잖아요! 마치 싸이나 페북을 통해 사전점검을 완료한 후의 소개팅 처럼 말이죠. 무튼 오늘은 제가 주선자입니다요. 자, 그럼 타입 별 9월 신간과의 소개팅 시작됩니당!

첫번째, 시크하고 쿨한 그녀 - 내가 제일 잘 나가! 하지만 멘토가 필요해!

버지니아울프와밤을새다인생의계단을오를때마다힘이되어준열명의그?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지은이 이화경 (웅진지식하우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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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많고 겁은 없던 문학소녀 시절, 밤을 새서 읽던 소설을 기억하시는 분! 에쿠니 가오리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목욕을 즐기고, 제인 오스틴 소설 속 여자마냥 책벌레가 되기도 하고 전혜린의 에세이를 읽다 통곡을 하기도 하고. 사실 우리 모두 무척이나 닮은 소녀기를 지니고 있을 겁니다. 그때 우리의 멘토들, 우리의 롤모델이면서 자매처럼 가까운 그녀들이 돌아왔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는 소설가 이화경이 제인 오스틴, 조르주 상드, 실비아 플라스, 프랑수아즈 사강, 버지니아 울프, 잉게보르크 바흐만, 로자 룩셈부르크,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시몬 드 보부아르와 함께 고민하고 교감하고 소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고민들, 끝없는 좌절과 고독을 나눌 멘토들을 만나보세요.

사랑과 일, 이상과 현실, 사랑과 결혼, 자유와 안정, 편견과 기대, 영원한 투쟁.. 그녀들은 마치 "넌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네요. 용감하게, 멋지게 살았던 큰 언니들에게 고민을 터놓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을 완전 강추드려요. 친구가, 언니가, 멘토가 필요한 어느 청춘의 밤,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두번째, 남다른 시각의 그! - 나만의 스타일은 이미 good, 나만의 철학이 필요해!

아이콘진중권의철학매뉴얼
카테고리 인문 > 철학
지은이 진중권 (씨네21북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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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분들에게도 멘토를 소개해드렸으니, 이번은 남성분들의 차례! '아이콘'의 저자는 무척 유명한 분이시죠? 네네네! 바로 진보논객으로 유명한 진중권 교수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논객으로서의 진중권 보다는 문화평론가로서의 진중권 교수를 좋아해서, 요런 철학책이나 미학책은 쌍수를 팍팍 들고 환영합니다. 이 책의 부제는 '진중권의 철학 매뉴얼'인데요, 지난해 4월부터 1년간 씨네21에 연재한 칼럼 '진중권의 아이콘'을 묶은 책이에요. 저의 완소잡지인 씨네21에서 야금야금 봐와서 아는데, 정말 재미있답니다. 


그 중 언론에서도 자주 발췌하는 부분만 살짝 맛보기로 보여드리자면, "그들은 허경영이 보여주는 것이 정치의 패러디라는 것을 안다. 그들은 허경영이 보통 정치인들과 너무나 달라서 열광하는 게 아니라, 그가 보통 정치인들과 너무나 똑같아서 열광하는 것이다. -중략- 젊은이들이 허경영에게 환호를 보낼 때, 그들은 실은 그로써 이 사회의 부조리에 야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아이콘, 32p)


이 책은 철학이란 운영체계 속 아이콘들의 용법을 다룬 매뉴얼입니다. 허경영을 비롯해 천안함, 트위터 등 사회적 이슈들을 분석할 때 철학의 개념을 어떻게 끌어올 수 있느냐,에 대한 답변이죠. 보다 큰 사유, 주체적인 인식을 돕는다는 점에서 중권님의 친절한 면모(ㅋㅋㅋ)가 엿보이기도 하네요. 그런 점에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한번쯤은 읽어도 좋을 재미있는 책입니다. 

세번째, 바쁜 일상에 지친 당신 - 따스한 위로가 필요해!

작은기도이해인시집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지은이 이해인 (열림원,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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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임과 과제, 혹은 야근과 회식에 쩔어 피곤한 일상을 보내고 계신 분들 많으시죠? 그럴 때는 스토리며 철학이며 복잡한 콘텐츠를 소화하기가 너무너무 힘들어요. 딱 체하고 말죠. 책에 체한 데에는 약도 없답니다. (읭?ㅋㅋㅋ) 그래서 이해인 수녀님을 모시고 왔어요. 가을햇살처럼 따스한 위로를 지니신 분이죠! 어마어마한 성공, 고액의 연봉, 고학점.. '대대대(大大大) 고고고(高高高)'에 질리신 분들, 올 가을에는 해인수녀님과 함께 '작은 것의 아름다움'과 만나보세요. 작게, 느리게 사는 기쁨을 느끼실 거예요!

알레프파울로코엘료장편소설
카테고리 소설 > 기타나라소설
지은이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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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이 표지가 아닌데, 티스토리에는 코엘료옹의 얼굴로 나오네요. '연금술사'가 국민소설이 되며 외국인이면서도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작가 중 늘 상위권에 랭크되는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이 나왔습니다. 이번 책은 '자신의 근본으로 회귀함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란 평을 듣고 있어요. 기대되시죠? 코엘료옹의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인간, 시간, 교감, 공간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알레프'란 히브리어와 아랍어, 아람어의 첫 글자이자 수학에서는 '모든 수를 포함하는 수'라고 하니- 느낌이 파바박 오시죠? 


이해인 수녀님과 코엘료옹의 조합, 어떠신가요?


네번째, 올 가을 찐한 연애를 기다리는 당신 - 로맨스가 필요해!

연애,하는날최인석장편소설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최인석 (문예중앙,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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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한번 직설적입니다 그려!ㅋ 언젠가부터 어여쁜 제목이 트렌드가 되어버린 소설들 사이에서 "내가 바로 연애소설이다" 내지는 "나는 연애소설이다" 정도의 느낌을 줍니다. 계간지 '문예중앙'에 1년간 연재되었던 최인석의 리얼리즘 소설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올레! 사실 연애소설은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온갖 유행가와 드라마에서 "존내 사랑해!"를 무지하게 외쳐대고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제가 연애를 해서? ㅋㅋㅋㅋㅋ 염장질 죄송합니다. 이러려고 시작한 포스팅이 아닌데.


무튼 너무 뻔한 주제일수록 낯선 접근이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연애, 하는 날'은 그래서 매력적이에요. 굉장히 냉정한 소설이거든요. 첫사랑을 시작하는 여자, 세상을 아는 남자, 그들의 관계와 욕망, 또 사랑. 사실 달달한 러브스토리를 기대하시는 분들은 "오오미 내게 이런 소설을 추천하다니!! 연애를 하라는거야 말라는거야!!"하고 분노하실 수도 있지만.. 서로를 상처입히고 스스로도 상처받는 장우와 수진의 관계를 통해 단단한 예방주사를 맞으시기를 바라는 저의 깊은 배려(ㅋㅋㅋ)를 알아주세요. 제바알!

오늘은 저도 모르게 스압을 초래하고 말았네요. 하지만 이게 다 여러분을 위한.. ㅋㅋㅋㅋ 여러분, 오셨으면 요밑에 숫자 혹은 손가락도 한번 지긋이 클릭해주시고 'ㅅㄱ'나 'ㄱㅅ'의 짧은 댓글이라도 달아주세요- 로그인 따위는 필요없습니당! 긴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16. 22:49
도가니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공지영 (창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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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진실과 마주하지 않고는 어른이 될 수 없다
* My story is...
언젠가부터 책은 인터넷을 통해 구입했다. 세일 폭이 넓기도 하고 복작복작한 서점을 피해 여유롭게 고를 수 있는 데다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리뷰나 추천평을 참고할 수도 있어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대신 잡지를 사러가거나 기대되는 신간을 직접 보거나 만지고(?) 싶을 때는 한적한 동네서점으로 향했다.

2009년 여름, 나는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정류장에서 내려 바로 서점으로 들어가 신간코너에 섰다. 그리고 공지영,이란 작가의 이름만 보고 책을 집어들었다. 어떤 사전정보도 없이 너무나 충동적으로 책을 구입했던, 참으로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만약 대충이라도 줄거리를 알았다면, 어쩌면 난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학대당하는 이야기는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처음부터 책장을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모른 채, '도가니'의 첫 장을 넘겼고..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읽는 동안은 분노와 두려움에 휩싸였고 읽은 후에는 정말 실화인지 검색을 해봤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덕분에 아주아주 오랫동안, 불쾌한 기분은 지속됐다.


* What's the story
이야기의 배경은 무진에 있는 청각장애인 학교인 '자애학원'이다. 주인공 강인호는 이곳의 기간제교사로 근무하게 되는데, 아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그는 부임 첫 날 듣게 된 비명소리를 계기로 자애학원의 아이들을 옥죄고 있는 거대한 폭력의 실체에 가까워져 간다. 폭력성을 내재한 권력, 그것은 온전히 '가진 자'들의 것이었고, 현실은 안개가 자욱한 무진처럼 진실을 가리고 지운다.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도가니, 165p)




강인호는 대학선배, 무진인권운동센터의 간사인 서유진을 비롯해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자애학원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폭력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교육청과 경찰서는 물론이고 교회, 시청까지 온갖 기득권 계층에 의해 다시 한 번 짓밟히고 만다. 자애학원의 이야기는 숨막히는 무진의 안개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만 있는 도가니 같다. 아이들은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채 시들어간다.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에너지의 두 배라고 한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를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거짓말의 합창은 그러니까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어서 맑은 하늘에 천둥과 번개를 부를 정도의 힘을 충분히 가진 것이었다. (도가니, 246p)

 


공고한 기득권 층에 의해 묶이고 파묻힌 진실, 피흘리는 사람들.. 2010년에 개봉된 영화이자 웹툰(원작)이기도 했던 '이끼'가 떠오르기도 했다. 가진 자들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가지고자 한다. 자애학원이란 작은 공간은 결국 우리네 사회의 축소판인 것이다.

맨 처음 이 소설이 영화화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큰 충격이기도 했다. 실제 사건의 피해자들, 또 그들을 연기할 아이들도 염려됐고, 상업적인 시각으로 그려진 작품이 될까봐 걱정이 앞섰다. 2년만에 다시 마주할 진실, 내 자신은 부끄럽기만 해서..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도가니' 개봉은 이번달 22일. 내 걱정은 과한 노파심에,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다고 비웃기라도 하듯이- 용감한 영화로 와주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진실을 향해 자욱한 안개를 헤치고 걸어나오는, 그들의 용기를 만나고 싶다. 어른이 되고 싶다.

(영화 '도가니' 예고편)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14. 14:35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영화처럼' 포스팅은 재밌게 읽으셨는지 모르겠어요! 얼마 전 김애란 작가의 신간 '두근두근 내 인생'을 소개드렸었죠? 바로 그 김애란 작가가 곧 결혼하신다고 하네요! 콩~그래~츄~레이션 앤 셀러브레이~숀♪ 완전 축하드립니다. 여러분도 알고 싶으실 것 같아서 관련 기사를 데리고 왔어요! 작가님의 남자친구분 이야기는 강연회, 북콘서트에서 살짝씩 들었었는데! 작가님, 축하드려요!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10월의 신부된다 (by 한국일보 이윤주 기자 2011년 9월 9일)

최근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소설가 김애란(31)씨가 10월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어서 겹경사를 맞게 됐다.

김씨의 신랑은 극작가 고재귀(37)씨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동기생. 두 사람은 대학시절부터 연인으로 지내온 터라 연극과 문학 판에서 이미 소문난 커플이다. 결혼식은 10월 29일 오후 5시 월드컵상암컨벤션 웨딩홀에서 열리며, 주례는 두 사람의 대학 은사인 황지우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맡는다.

고재귀씨는 2002년 국립극단ㆍ연극원 주최 제5회 신작희곡페스티벌에서 희곡 ‘역사(力士)’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희곡 ‘양철지붕’으로 올해 경기 창작희곡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실력파 작가로 ‘고요’, ‘사람이 사람에게’, ‘엄마, 여행갈래요?’(공저) 등을 썼다. 현재 희곡창작집단 ‘극단 독’에서 활동 중이다.

올해 6월 출간된 김애란씨의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은 3개월만에 13만부의 판매부수를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출판사 창비 관계자는 “20~30대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독자층이 늘고 있다”며 “8일 현재 13만 5,000부를 넘기고 26쇄 인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달려라 아비>(2005) <침이 고인다>(2007) 등 두 권의 소설집으로 작품성을 인정 받은 그는 첫 장편소설로 대중성의 날개도 단 모양새다. ‘문학동네’ ‘문예중앙’ ‘창작과비평’ 등 주요 문예지도 최근 펴낸 가을호에서 김애란씨를 집중조명하며 한국 문단의 새로운 블루칩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김씨 작품에 대한 영화계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김씨는 “출판사에 제안서를 보낸 것도 있고, 개인적으로 요청을 받은 것도 있다. 영화화 제안서를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 기사 출처 : 한국일보 http://j.mp/q4d84S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14. 08:30
영화처럼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지은이 가네시로 가즈키 (북폴리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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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개똥같은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지'


* What's the story
영화화되며 큰 인기를 끈 'Go'와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집필한 가네시로 가즈키의 2008년작'영화처럼'은 다섯 편의 영화를 계기로 펼쳐지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집이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 '정무문', '프랭키와 자니', '페일 라이더', '사랑의 샘'을 모티프로 한 에피소드는 각각 소소하면서도 특별한 매력을 발산한다.

첫번째 단편인 '태양은 가득히'의 경우, 국내작가의 작품마냥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하다. 영화를 통해 가까워진 두 소년이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어른으로 만나, 또 한번 영화로 재회하는 스토리로, (많은 이들이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국민소설이라 불릴 만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구조와도 유사하다. '용일'과 '영화' 등 캐릭터들도 한국인이며 유년기의 학교 또한 총련계로 그려진다. Anyway, 이외에도 각 영화는 적재적소에 배치돼,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형성하는 촉매제가 되거나 혹은 그들의 상징으로서 기능한다.

* My story is..
가끔 사전 정보나 지식이 없어도, 노래만 듣고 그 작곡가가 누군지 혹은 영화만 보고 그 감독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너무나도 명확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데, 결코 좋고 나쁨을 평가할만한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일본 최고 권위의 나오키상 수상자이자 인기작가인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이, 내게는 그랬다. 언제나처럼 그의 이름은 표지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고, '가네시로 가즈키가 돌아왔다!'란 제법 굵은 띠지까지 둘러져 있었지만. 읽을수록 금세 알 수 있는 그의 냄새(?)와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으니까. 사실 '경계인'으로서의 설정 자체 때문일지도?


그의 한국이름은 김성일, 가네시로 가즈키는 재일교포 3세다. 특히 나오키상의 영광을 안겨준 동시에, 동명의 영화로 각색되며 인기를 모은 'Go'(2001)는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은 마르크스 주의자이자 조총련 활동을 했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 조총련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왔는데- 국적은 한국 국적이며, 일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재일교포로서의 자아, 그 혼돈과 갈등에 대한 진솔한 고백은 특유의 스피디한 전개 속에 흥미롭게 그려졌고 그 결과,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서 사랑을 받았다. 그의 소설에서는 한국인 캐릭터도, 총련계 학교란 배경도 자주 등장한다.
작가의 삶이 텍스트 속에서 살아숨쉰다. 마치 그의 소설이 아닌, 그의 삶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등장인물의 모습을 상상해볼 때면, 익숙한 얼굴이 하나 팍! 하고 나타난다. 바로 '인민루니' 정대세다. 가네시로 가즈키처럼 재일교포 3세인 정대세는 일본인이자 한국인이자 북한인이다. 무척 복잡한 아이덴티티가 아닐 수 없다. 정대세는 나고야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모두 총련계 조선학교며 대학교 또한 총련계인 조선대학교다. 또 다른 축구스타 이충성과 유도 대표였던 추성훈처럼 그에겐 복수의 선택이 가능했고, 그가 선택한 것은 J리그 그리고 북한의 국가대표였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 근현대사의 산 증인 같다. 원더걸스를 좋아하고 불고기를 즐겨먹는 정대세도, 가네시로 가즈키 소설의 주인공처럼 격동의 사춘기를 보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극장의 어둠 속에서 우린 재일 조선인도, 재일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다른 인간이 될 수 있지. 그러니까, 음, 이런 거야. 불이 꺼지면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또 어떤 등장인물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기대감이 우리의 머리와 몸 속에서 점점 부풀잖아. 그러다 불이 완전히 꺼지면 '팡!' 하고 터져버리지. 그때 우리란 인간도 함께 터져서 없어지고, 어둠 그 자체가 되는 거야. 그 다음은 스크린에 비치는 빛에 동화되면 그만이지, 그럼 우린 스크린 속에서 움직이는 등장인물이 될 수 있어. 개똥 같은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거지. 그래서 극장의 어둠 속에 있을 때는 신나고 가슴이 설레는 것 아닐까? 어때, 네 생각은?" (태양은 가득히, 31p)

삼천포로 푹 빠져버렸지만.. 다시 돌아와서 소설은 여느 때와 같이 최고의 가독성을 산출해내는 빠른 전개와 이를 뒷받침하는 문체가 돋보이며, 특유의 묘사력 또한 녹슬지 않았다. 영화를 좋아하는 내게는 깨알같은 재미가 부록처럼 따라오기도 했지만, 첫번째 단편이었던 '태양은 가득히'가 제일 좋았기 때문에 페이지를 넘길수록 기대감은 하락했다. 영화란 하나의 모티프가 반복해 등장해서인지 살짝 지루함도 느껴지고. 그래도 읽기 좋고, 읽기 편한 장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타공인 영화 마니아로서 처음에는 이 소설에 '영화'가 얼마나 잘 녹아났는가가 궁금했다면, 책을 덮은 지금은 '추억'이 이 소설의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소설 속 영화는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계기, 마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향을 맡는 순간 잊고 지냈던 기억을 떠올린 것처럼, 잠시동안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하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 존재다.

마지막 단편인 '사랑의 샘'에는 이러한 느낌과 뜻이 잘 살아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위해 '로마의 휴일' 상영회를 직접 준비하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추억들과 맞닥뜨린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했던 생각으로 이 글의 마지막을 대신하고자 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추억이란 성역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나름의 각오가 필요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어중간한 관심과 공감과 이해로 사람의 마음을 헤집고 들어가는 것은 흙 묻은 신발로 타인의 집에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굳이 들어가려 한다면, 할머니의 마음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메울 수 있을 정도의 보물을 지니고 가야한다." (사랑의 샘, 350p)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