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10. 08:30


 

플라멩고 투우 빠에야와 치즈와 당도가 높은 과일, 한 입에 들어오는 바게트, 그리고 건축가 가우디 - 
스페인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Volver' 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로, 나쁜 교육, 그녀에게, 나 없는 내 인생, 브로큰 임브레이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그리고 2011년 최신작 The skin I live in 내가 사는 피부 까지 강렬하고 흥미진진한 연출과 소재로 언제나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감독의 명성에 걸맞게 한 번 보자마자 그야말로 푹 빠져서 네 번 , 다섯 번을 보고 처음으로 구매한 DVD이기도 해요.


스페인 특유의 강렬한 색채의 조합, 배우들,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 까지 -
하나 하나 뚜렷하게 다가온 영화여서 
제 머리속의 스페인 구역(?)에는 Volver가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여성의 시선에서 영화를 만들 줄 아는 사람 이라고 불리우는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특히 이 영화는 주인공이 모두 여성, 엄마와 딸, 이모 그리고 외할머니와 옆집에 사는 이웃 모두 여자를 초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 Volver의 뜻은 귀향 입니다. 여성들이 여성으로 귀향하는 영화다- 라고 해석한 분들도 있더라구요.  
 페넬로페 크루즈의 매력이 그야말로 제대로! 발산했던 부분은 식당을 하는 라이문다 - 페넬로페 크루즈- 가 손님들의 파티 중에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에 제가 봤던 페넬로페 크루즈의 작품은 (귀향 이전의 작품은 다 보지 못해서 다소 의견이 편파적일수도 있습니다) 오픈 유어 아이즈, 바닐라 스카이, 블로우와 빨간 구두였는데 예쁘고 작은 스페인 여자 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생을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한숨을 쉬며 소소한 거래를 하고, 해야 할 일을 하고, 빠르고 시끄럽게 스페인어를 말하면서 딸을 끌고 하루 하루를 버텨나가는 여자- 감독의 지시로 일부러 가슴과 엉덩이에 패드를 넣었다고도 하는데, 굳 잡 페드로 감독님... 이 아니라 그런 여자의 모습이 작은 체구에 가는 목을 가지고 있지만 강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페넬로페 크루즈의 모습에 딱 맞아 떨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다음 장면이 더욱 빛을 발했던 것 같아요.   
 






페넬로페 크루즈가 실제로 부른 건 아니지만, 연기와 립싱크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페넬로페 크루즈가 불렀다고 생각하게 만든 이 장면은 플라멩고 가수 Estrella Morente 가 불렀다고 해요.



Yo adivino el parpadeo
나는 상상하네
de las luces que a lo lejos,
먼 곳으로부터 내 귀향을 반기는
van marcando mi retorno.
빛들의 명멸을


Son las mismas que alumbraron,
고통의 시간 깊숙한 곳에서
con sus palidos reflejos,
그 빛들은 여전히 빛나네
hondas horas de dolor.
주변을 창백하게 비추며


Y aunque no quise el regreso,
나는 귀향을 원치 않았지만
siempre se vuelve al primer amor.
너는 항상 그 첫번째 사랑을 반기지


La quieta calle donde el eco dijo:
메아리가 말하는 고요한 거리
"Tuya es su vida, tuyo es su querer",
"너가 가진 것은 그녀의 삶이고 사랑이야"
bajo el burlon mirar de las estrellas
별들의 조롱 섞인 응시 아래에서
que con indiferencia hoy me ven volver.
무관심과 함께 오늘 나는 돌아온다


Volver,
돌아가네
con la frente marchita,
활기없는 표정을 한 채로
las nieves del tiempo
시간의 폭설은 나의 그 신전을
platearon mi sien.
하얗게만 만들었네


Sentir, que es un soplo la vida,
인생이란 바람이 한 번 부는 것이라고,
que veinte anos no es nada,
20년이란 세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que febril la mirada
그림자 속에서 방황하는
errante en las sombras
그 흥분한 눈길이 널 찾고
te busca y te nombra.
너를 부른다는 것을 느끼네
Vivir,
살기 위해,
con el alma aferrada
날 다시 눈물짓게 만드는
a un dulce recuerdo,
내 달콤한 기억속에 살고 있는
que lloro otra vez.
그 영혼과 더불어 살기 위해.


Tengo miedo del encuentro
내 인생과 맞서기 위해
con el pasado que vuelve
되돌아 오는 과거와의 조우를
a enfrentarse con mi vida.
나는 두려워 하네


Tengo miedo de las noches
내 꿈에 족쇄를 채우는
que, pobladas de recuerdos,
기억들로 가득 찬 그 밤들을
encadenan mi sonar.
나는 두려워 하네


Pero el viajero que huye,
머지않아 도망가는 그 여행자는
tarde o temprano detiene su andar.
그의 발걸음을 멈추네


Y aunque el olvido que todo destruye,
모든 것을 파괴하는 망각이 나의
haya matado mi vieja ilusion,
오랜 꿈들조차 부쉈을지라도
guarda escondida una esperanza humilde,
나는 내 가슴 속에 유일하게 남겨둔
que es toda la fortuna de mi corazon.
초라한 희망을 영원히 숨겨놓을 거야


Volver,
돌아가네
con la frente marchita,
활기없는 표정을 한 채로
las nieves del tiempo
시간의 폭설은 나의 그 신전을

platearon mi sien.
하얗게만 만들었네


Sentir, que es un soplo la vida,
인생이란 바람이 한 번 부는 것이라고,
que veinte anos no es nada,
20년이란 세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que febril la mirada
그림자 속에서 방황하는
errante en las sombras
그 흥분한 눈길이 널 찾고
te busca y te nombra.
너를 부른다는 것을 느끼네
Vivir,
살기 위해,
con el alma aferrada
날 다시 눈물짓게 만드는
a un dulce recuerdo,
내 달콤한 기억속에 살고 있는
que lloro otra vez.
그 영혼과 더불어 살기 위해.

(번역 출처 : Attila Marcel )



귀향, 돌아온 그 곳- 에 대한 이야기,
여자들의 이야기, 삶과 죽음의 이야기,
그리고 곳곳에 잔잔히 배어있는 순수한 유머의 이야기가 있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귀향, Vovler
스페인의 노래였습니다.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8. 08:30

아무것도 묻지말고 그냥 클릭하세요.
고작 1분이에요.



짜릿하지 않으신가요?
3명의 남자가 2대의 카메라를 가지고 44일동안 18번의 비행기를 타고 11개국을 돌아다니며 찍은 영상입니다.

누구나 이런 여행을 꿈꾸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살면서 한번쯤은..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않나요?

이 동영상을 보고 문득 훌쩍 떠나고싶은 마음이 생기신 분들이라면 아래의 나머지 두개도 클릭.






오늘은 여행의 짜릿함을 이렇게나마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miss톡이었습니다 :)
동영상의 등장인물이 훈남이라서 그런건 아니에요! ㅋㅋ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6. 10:14
야구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위한 포스팅이다. 
참고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혹시나 틀린것이 있으면 가리지않고 거칠게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나도 뉴비이기 때문에..

누가 뭐라해도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은 투수다.
모든 플레이는 투수로부터 시작된다. 투구가 타석을 향해 공을 던지면,
심판으로부터 안타, 스트라잌, 볼, 파울 이 넷 중 하나의 판결이 떨어진다.
투수의 제1 목표는 공을 던져 스트라이크를 판정받는것이다.

1. 스트라이크

투수는 일단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을 던진다.
스트라이크 존이란 타자가 공을 칠 수 있는 범위를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 홈 플레이트의 폭, 타석에 들어선 타자의 무릎부터 바지상단과 어깨의 중간부분 까지의 높이의 구역이다.
이해하기 쉽게 사진을 첨부한다. 



저 공간을 통과해 포수의 미트에 공이 들어갔을 때, 그때 스트라이크가 선언된다.
일반적으로 '좋은 투수'란 스트라이크 존에서 가장 타자가 공을 치기 어려운 자리인
스트라이크 존 선위에 공을 집어넣을수 있는 제구력(공을 의도한 위치에 정확하게 넣는 능력)과
빠른 구속을 동시에 지닌 선수를 뜻한다.
스트라이크 존의 구석구석에 공을 꽂아 놓았을 경우, 그만큼 타자가 공을 깨끗하게 쳐낼 확률이 적어진다.
그러면 헛스윙을 하거나 공을 쳐 내도 수비수에게 잡히기 쉬운코스의 타격이 나온다는 것이다.
투수가 공을 던졌을 때,스트라이크가 들어왔고 심판이 그 공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한다면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나타내는 일정한 모션을 취한다.
공이 포수미트에 들어갔을때 심판이 무언가 모션을 취한다면, 그공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게된다.
한타자가 스트라이크를 세번 판정받게 된다면, 그 타자는 아웃된다.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세번 얻어내면, 타자는 타석에서 아웃된다.
이것이 '삼진아웃'이며 투수에겐 최고의 순간이 되는것이다.



한국 최고의 투수 류현진의 한경기 최다삼진 영상을 첨부한다.

 
2. 볼

 볼은 투수가 스트라이크 존 바깥의 공간으로 공을 던지고, 던진 공을 타자가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을 경우 
심판이 내리는 판정이다. 일반적으로 타자가 칠 수 없거나, 치기어려운 공이기 때문에 스트라이크가 아니다.
볼을 네번 판정받게 되면, 타자는 골짜로 1루에 갈수있는 권리를 얻게된다.
투수가 던진공이 볼 판정을 받게 됐을때는 심판이 아무런 모션을 취하지않는다.
투수가 공을 던지고 그 공이 포수의 미트로 들어갔을때 심판이 아무런 모션을 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볼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볼은 던지면 안되는가? 그렇지 않다.
볼과 스트라이크의 적절한 배합으로 볼을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타자가 헛스윙을 하게만들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처음 공이 향하는 방향은 스트라이크 존이지만, 공의 궤적이 변해 타자를 속이는 볼이 나올수도 있다.
좋은 볼이 던져졌을때 타자는 그 공에 속아 헛스윙을 하게된다.
스트라이크와 볼의 적절한 배합이 좋은투수의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좋은 '볼'의 예인 동영상을 첨부한다.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가다 바닥으로 뚝 떨어져 타자가 속아 헛스윙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볼'은 타자에게 좋은 것일수도 있지만 투수에게도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5. 08:20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수요일 아침을 여는 사과모히토 입니다. 턱관절 장애와 만성피로 등등으로 고생고생 한 일주일이었어요. 오늘은 여고괴담 뉴버전을 꿈으로 꾸는 바람에 잠을 설쳤습니다. 흐엥 지금 정말 괴롭군요. 그래서 미뤄둔 포스팅을 꼭두새벽에 하고 있습니다. 그닥 센치한 시간대는 아니지만, 오늘 소개할 사람은 '시인'입니다. 당연히 소개드릴 책도 '시집'이 되겠죠?


오오, 훈남 스멜! 그의 이름은 심보선! 등단하신지 17년 되셨네요! 2008년 등단 14년 만에 묶어 낸 첫 시집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기 시작한 시인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동경하기도 하구요. 심보선 시인의 시들은 '생각할 거리', '느낄 거리'를 건네줍니다. '늘 긍정적인 자세로 삶에 임하라!'식의 훈계나 계몽이 아니라 '이런 삶이, 생각이, 느낌이 있었다'라고 말을 겁니다.

종종 자기계발서적이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결정지어진 의미를 그대로 흡수한다면, 소위 말하는 '밥을 입에 떠넣어 주는 식'에 그치고 말겠지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순수문학이 자기성찰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심보선 시인의 시집은 2권입니다. 모두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왔어요. 시를 좋아하시지 않으셔도 문학과 지성사 시집의 표지는 대부분 익숙해하시더군요. 2008년 출간된 첫 시집의 제목은 '슬픔이 없는 십오초'입니다. 지금부터는 자유롭게 감상하세요!

슬픔이없는십오초:심보선시집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지은이 심보선 (문학과지성사, 2008년)
상세보기

슬픔이 없는 십오초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 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하다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시집과 동명의 제목을 가진 시였습니다. (제가 카모마일 티를 워낙 좋아해서 마치 시 속 '여자'가 된 듯한 기분도 들었고요 히히) 어려운 어휘가 따로 없지만 다소 난해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감상은 여러분의 몫!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이어집니다.

청춘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복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며 바로 놓았을 때
강 건너 모르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려보며 숱한 결심들을 남발했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즐겨 제발 욕해달라고 친구에게 빌었을 때
가장 자신 있는 정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완벽한 몸을 빚으려 했을 때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고딩때 시를 끼적이던 저에게 가장 좋은 주제는 '청춘'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재고 꾸며 시쳇말로 '허세'로 쓰여진 망작(ㅋㅋㅋ)이 대부분이죠. 심보선의 '청춘'은 어쩌면 나도 모르게 외면하고 싶었던 기억의 단편들, 현재의 삶들을 꺼내게 해주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읽고 펑펑 운 독자 1人! 찌질한 청춘의 대명사인 독자 1人!

눈앞에없는사람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지은이 심보선 (문학과지성사, 2011년)
상세보기

그리고 올해 8월에 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 '눈앞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기쁨과 슬픔의 빈 공간에 딱 들어맞는 단어 하나'를 만들겠노라고 말하며 '사랑'을 안고 돌아왔어요. 사랑이 가지는 일종의 역설성, 말로는 정확히 표현하기 힘들지만 누구나 공감하는 그 특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직접 만나보실래요?

나무로 된 고요함

나는 나무로 된 고요함 위에 손을 얹는다
그 부드러운 결을 따라
보고 듣고 말한다
그대 기쁨, 영원한 기쁨의 지저귐이
사물들의 원소 속에 숨어 있음을 깨닫는다
하느님은 여느 때처럼 말없이
황금 심장을 가슴 속에 품고 계신다
아, 거기서 떨어지는 황금 부스러기를
그 하나하나로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유리와 불과 돌 속에서
지워질 이름이란 없을 것이거늘
쓸모를 모르는 완구(玩具)처럼
하늘의 언저리를 굴러가는 태양 아래
인간은 오래되고 희미한 기쁨의 필적들을
주워 모으는 절박한 수집광
아, 우리가 불안을 조금만 더 견뎠더라면
그것을 하느님이
조금만 더 도와줄 수 있었더라면
유리와 불과 돌 속에서
사라지는 이름이란 없을 것이거늘
나는 양손을 가슴팍 위로 거두어 모은다
망각이 그 부드러운 결을
한층 더 부드럽게 지워가며
나무로 된 고요함 아래 죽음을 눕힌다
그때 기쁨, 죽음으로부터
우연히 건너온 기쁨 하나를 움켜잡으려
나는 다시금 그 위에 손을 얹는다

'오래되고 희미한 기쁨의 필적들을 주워 모으는 절박한 수집광'이란 말에서 숨이 탁 막혔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손'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 부분도 살짝 관심있게 지켜봐주시면 더 풍요로운 감상이 되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은 나의 약점

당신은 내게 어느 동성애 운동가의 시를 읽어준다
강렬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시를
내 언어가 결코 가닿지 못한 슬픔의 세계가
밤하늘의 성좌처럼 선명한게 펼쳐진 시를
나는 고통스럽다
반은 질투심에, 반은 감화되어
그러나 나는 다만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참으로 오랜만에
진실된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한 명의 유순한 독자가 되어

시를 읽고 난 후 당신은 내게 웃으며 말한다
당신이 동성애자였다면
이렇게 좋은 시를 쓸 수 있었을 텐데
나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당신의 유일한 약점이군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당신의 위트 섞인 선의 아래에는
아주 날카로운 메시지가 숨어 있다
내가 중산층 이성애자 시인이라는 사실
그것은 유일한 약점이 아니라
나의 본질적인 한계가 아닌가?

-후략-

'사랑'이 어딨어?'라고 하실 분들을 위해 이번 시집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 한 편('사랑은 나의 약점')까지 덧붙였어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게 되는 절절한 연시 계열이 아니죠? 일종의 성찰로 이어지는 전개가 자못 흥미롭습니다. 사실 시는 사시사철 다 어울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짧은 가을이 겨울옷을 입기 전에 시집 한 권 들고 산책하시는 것도 좋은 추억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만의 언어로 시를 쓰신다면 저도 꼭 읽게 해주세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5. 07:33

식후에 이별하다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했으니
이제 이별이다 그대여
고요한 풍경이 싫어졌다
아무리 휘저어도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를테면 수저 자국이 서서히 사라지는 흰죽 같은 것
그런 것들은 도무지 재미가 없다

거리는 식당 메뉴가 펼쳐졌다 접히듯 간결하게 낮밤을 바꾼다
나는 저기 번져오는 어둠 속으로 사라질테니
그대는 남아 있는 환함 쪽으로 등 돌리고
열까지 세라
열까지 세고 뒤돌아보면
나를 집어 삼킨 어둠의 잇몸
그대의 유순한 광대뼈에 물컹 만져지리라

착한 그대여
내가 그대 심장을 정확히 겨누어 쏜 총알을
잘 익은 밥알로 잘도 받아먹는 그대여
선한 천성의 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이를테면
내가 죽 한 그릇 뚝딱 비울 때까지 나를 바라보며
그대가 속으로 천천히 열까지 세는 소리
안 들려도 잘 들리는 소리
기어이 들리고야 마는 소리
단단한 이마를 뚫고 맘속의 독한 죽을 휘젓는 소리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먹다 만 흰죽이 밥이 되고 밥은 도로 쌀이 되어
하루하루가 풍년인데
일 년 내내 허기 가시지 않는
이상한 나라에 이상한 기근 같은 것이다
우리의 오랜 기담은 이제 여기서 끝이 난다

착한 그대여
착한 그대여
아직도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열을 셀 때까지도 기어이 환한가
천 만 억을 세어도 나의 폐허는 빛나지 않는데
그 질퍽한 어둠의 죽을 게워낼 줄 모르는데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4. 08:30


이번주 '나영이'는 휴재입니다. 

죄송합니다.

다음주에는 꼭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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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3. 08:30


 

안녕하세요, 월요일의 H입니다.

오늘은 음악 이야기 대신에
좋아하는 사이트를 가지고 왔어요.

기분 따라 음악을 추천해 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뮤지션을 알아 볼 수 있는 사이트,






www.stereomood.com
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이트는 많지만 유료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난처 (?)했었는데
스테레오 무드 사이트는 아직 무료입니다.








 


기분 따라, 아니면 좋아하는 단어를 클릭하면
리스트가 나오구요.


 


아이폰 앱은 0.99$입니다. 
단어를 태그 해놓으면 알람 노래가 랜덤으로 나오는 것 같아요.



요즘은 같은 음악만 듣고 있어서 이야기 대신
무료 음악 사이트를 가지고 와봤습니다.
다음 주 전까지 좋은 노래가 마음에 들어와야 할텐데!

월요일 아침, 기분좋게 시작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29. 07:00

지난번 선수별명 맛보기에 이어 본편에 들어간다.
조회수가 20도 안되는 처참함에 많은 실망을 했다..
아..의욕을 꺾는 조회수..
아무튼 연이어 별명기획 달려보겠다.
단 한화이글스 선수로만 달리겠다.
타팀은 저도 잘 몰라염...



1. 2루수 한상훈

한상훈은 2루수다. 내야진에서 2루수는 유격수만큼 수비시에 엄청나게 중요한 포지션이다.
수비 진짜 너무 잘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한화에서 내가 몹시도 아낀다.
진짜 적시에 적절한 수비로 항상 팀위 위기를 막아주는 고마운 선수다.
타격에 있어서도 팀내 2번타순에 위치해서 적시에 적절한 번트를 대주는 작전수행형 선수이기도 하다.
한상훈은 2011 리그내 전체 희생번트 1위를 달리고 있다.
칭찬은 이정도면 족하다. 그의 별명은 무엇일까?

저 위의 사진을 보라. 누군가 닮지 않았는가?
바로 짱구의 아버님이다.


이 그림을 그려준 자문위원 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짱구의 아버님과 놀랍게도 닮았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짱구애비다.
그리고 또하나의 별명. 한상훈은 독실한 기독교신자라고 전해진다.
그래서 경기가 아슬하게 이겼을 경우 경기장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그래서 그의 또다른 별명은 한개독이다.
기독교 신자에 대해 별 감정은 없다.
그냥 한상훈 별명이 한개독이라 알려드린것 뿐이다. 애정어린 별명이니 이해 해주시길 빈다.
그리고 올해 이전 시즌에는 한상훈의 타격이 조금 많이 침체돼 있었기 때문에
한삼푼(0.030) 3%의 타격 확률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으나, 올해의 활약으로 그 별명은 쏙 들어갔다.
이처럼 별명은 선수하기 나름인 것이다.


                                                                    


                                                                     2. 우익수 카림 가르시아

2011시즌 중반에 한화에 영입된 가르시아는 멕시코출신 용병이다.
그는 분명한 홈런타자다. 시즌 중반에 영입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홈런순위 7위를 달리고 있다.
시즌 초반부터 있었다면 어찌됐을지 모르는 일이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 프로야구 짭밥도 꽤나 먹었다.
그래서 한국프로야구에는 굳이 적응이랄것도 필요없이 한국사람 다됐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삼겹살이고, 그와 함께하는 백세주를 가장 즐긴다.




게다가 부황도 즐길줄 아는 거의 한국인이다.
홈런타자에 한국적응이 걱정없는 용병이라는 장점이 있는만큼 약점 또한 명확하다.
무슨공이 오든 빵빵 휘두르고 본다. 아주 빠따 돌리는게 시원하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멕시코산 갈풍기(가르시아+선풍기)다.
시원하게 삼진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아 그놈 풍기질 한번 시원하네!!"
하고 너털웃음 지으면 된다.
홈런은 빵빵 때리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약점은 수비 이동이다.
타자가 높은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공을 쳐서 좌,우,중간 어디든 공을 보낼수 있는 교타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가르시아가 타석에 서서 공을 때리면, 그 공은 십중팔구 오른쪽 방향을 향해 간다.
타 팀 수비수들도 바보가 아니라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가르시아가 타석에 들어서면 수비하는 수비수들은 오른쪽으로 옮겨간다.
그러면 가르시아는 공을 오륵쪽으로 치고, 당연히 아웃된다.
가르시아가 공을 때리면 홈런아니면 아웃이다.
이러한 점은 분명히 타자에겐 커다란 약점이다. 이런 약점을 지니고 있는 타자를
내년에 또 쓰기에도 뭐하고, 그렇다고 안쓰기에는 홈런을 너무 빵빵 때려주고..
그래서 생긴 별명이 계륵시아다.
이걸 쓰기도 그렇고, 안쓰기엔 또 너무 아까우니'계륵' 정말 걸맞는 별명이 아닐 수 없다.
그의 거취를 지켜보는것도 즐거움 되겠다.



                                                                         3. 선발투수 김혁민

김혁민은 작년까지만 해도 흔한 그저그런 투수였다.
마운드에 올라와서 불을 질러서 팬 염장에도 불을지르던 그가, 올해에는 달라졌다.
위력있는 직구를 빵빵 뿌리며 7이닝 동안 12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는 등,
성장의 징후를 뚜렷히 보이며 선발의 한 축을 담당해냈다.
그의 별명은 순전히 외모때문이다.
'괴뢰군', '북괴' 등등 온통 북한군과 관련된 별명 뿐이다.
진짜 인민군복 입혀놓으면 바로 신고당할 그런 외모긴 하다.
올해의 호투로 팬들의 관심을 사자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북한관련 별명은 싫어요."
라고 징징 댄 후 별명 공모를 신청하기도 했으나..
개뿔... 괴뢰군은 그대로 괴뢰군이었다.
공모는 하였으나 그의 별명은 바뀌지 않았다.



                                                                       
                                                                            4. 선발투수 안승민

안승민은 2년차 선발투수다. 한화는 지금 '팀 다시만들기' 중이다. 작년 제작년, 8위를 경험하고
올해부터 팀을 다시만들겠다는 선언을 했다.
투수진 다시만들기의 한 축을 담당하고있는 선수가 바로 이선수, 신인 안승민이다.
신인답지않은 대담한 투구로 4볼로 타자를 내보내는 일이 거의 없다.
자신의 목표가 4볼 주지않기라고 공언할 정도이다.
그래서일까, 피홈런은 리그 1위다. 4볼 안주려다 홈런 미친듯이 퍼맞는 스타일의 투수란 소리다.
그러나 아직 신인임을 감안해 볼때, 그의 성장은 정말로 기대된다.

 
안승민의 별명은 '안과장'이다. 왜 안과장이냐? 저 얼굴을 보라.
저 선수가 21살이라면 믿겠는가? 놀랍게도 21살이 맞다.
무려 91년생이다. 세상에..
액면가에 맞는 직급이 과장이기 때문에 '안과장'이다.
그가 연이어 호투하는 성적을 보이자 팬들은 그를 '안부장'으로 승진시켜줬다.
그의 배짱이 돋보이는 투구는 신인의 패기가 넘치는 투구라고 불리지 않는다.
'팀내 최고참의 관록이 넘치는 투구'로 불린다.
그리고 이름있는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낼때마다 팬들은
'너따위 10년은 더 있다가 덤벼라' 며 안승민의 노안을 놀린다.
진짜 노안은 노안이다. 


                                                                         


                                                                         5. 중계투수 박정진

박정진은 나이가 많다. 나이에 비해 많은 기용이 못됐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그의 잠재된 실력이 터졌다.
그는 1976년생이다. 올해로 36살이다. 그런 그가 올해 상반기 한화의 불펜을 혼자서 짊어졌었다.
물론 지금은 바티스타라는 걸출한 마무리 용병이 영입되어서 그 짐은 많이 덜어졌다.
한창 박정진이 혼자 불펜을 짊어질 때 그의 별명은 박-정-진이었다.
보통 경기의 투수 운용은 선발투수-중계투수-중계투수-마무리투수 이어지게 마련인데
박정진의 경우,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 중계투수와 마무리 투수를 혼자 도맡아 했어야 했기때문에
박-정-진 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만큼 한화의 투수층은 얇다.
그리고 올해 실력이 터져나오기 전까지는 '노망날때까지 안터지는 유망주'라는 이유로
'노망주'라고 불렸었는데, 올해 그의 실력이 터져나오자 그의 별명은 '로망주'로 바뀌었다.
실력이 별명을 바꾼경우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그는 위의 안승민과 정반대로 엄청난 동안으로 유명하다.


                                                                          박정진(36세) 투수
정말 위의 안승민과 비교되는 용모임에는 분명하다.



특별히 설명이 필요한 한화이글스 선수들의 별명은 이정도다.
나머지 선수들의 별명은 이름에서 유래하는 정도이다.
특별히 더 원하시면 추가하도록 하겠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28. 10:10
완득이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려령 (창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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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 : ★★★★☆
한줄평 : 작은 하루가 모여 큰 하루가 된다 (완득이 曰)

* My story is...
나는 청소년 문학을 좋아한다. 다수의 한국 소설(성인소설이라고 하면 어감이 좀..)이 다소 건조한 맛이 있는데 청소년 문학은 그 나이에 맞는 온기, 열기가 있어 읽는이까지 힘이 솟게 만든다. 청소년소설 '완득이'는 베스트셀러다. 읽고나니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다는 점이 무지 맘에 들었다. 단지 재미만 있는 소설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문제를 차곡차곡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알고 있지만 깊이 생각해본적 없는 문제, 쉽게 볼 수 있지만 눈여겨 보지 않으려고 했던 문제.. '완득이'는 도시빈민, 이주노동자, 장애인까지 우리네 사회문제를, 너무 어렵고 어둡지 않게 그려내 기특하고 감사한 책이다. 


소설 '완득이'는 영화화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아인, 김윤석 주연이며 한참 시사회 중이다. 원작자인 김려령 작가는 "싱크로율 100%"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고 하는데, 더더욱 기대가 된다. 그러고보니 '도가니'에 이어 충무로가 사랑한 소설 시리즈가 되고 있는 기분이다. 충무로 사람들이 다 서점으로 갔나?ㅋ 영화화에 앞서 '완득이'는 연극으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얻었었다. 뭐, 연극은 연극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좋을 것 같아서 보고 싶다.


* What's the story
완득이는 난쟁이 아버지와 베트남 이주 노동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결핍, 그렇다고 기죽을 완득이가 아니다. 모든 일에 꾸밈이 없다는 점이 완득이의 매력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묵직한 진심이 느껴지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가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으로 그를 본다. 참 사랑스럽다.


완득이 주변 인물들도 하나같이 특별하다. 난쟁이라고 놀림당하면서 카바레에서 바람잡이로 춤추는 아버지, (친삼촌은 아니지만) 정신연령이 낮아 말을 더듬는 민구삼촌, 그리고 독자들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담임선생님 '똥주'! 학생들을 약올리고 괴롭히는 재미로 학교에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혹은 경험했던 담임선생님과는 거리가 안드로메다인 캐릭터다. 조폭담임이라니 말 다 했다. (위 사진의 시커먼 남정네들이 바로 그들이다. 캐스팅 한번 그레이트 하구먼!)

"삼촌 혼자가도 되겠어요?"
"혼자 있어봐야지."
"장에는 이제 혼자 가시겠네요."
"그래야지."
"민구 삼촌을 그렇게 보내면...... 멀쩡한 사람도 아닌 정신지체 장애...."
장애라는 말에 아버지 어깨가 잠시 흔들렸다.

사람한테는 죽을 때까지 적응안되는 말이 있다. 들을수록 더 듣기 싫고 미치도록 적응 안되는 말 말이다. 한두 번 들어본 말도 아닌데, 하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가슴을 치는 말은 한 번 두 번 세 번이 쌓여 뭉텅이로 가슴을 짓누른다.

"난쟁이다, 난쟁이!"

그냥 봐도 다 아는데 굳이 확인사살을 하는 사람들....  (완득이, 196p)
 
완득이의 가족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약자'다. 이 소설은 꾸미지 않고, 담백하게, 하지만 사랑을 담은 시선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연민도 죄송스러워지는 건강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 앞에 내 자신이 창피해진다.
 


성장소설에 달달한 관계가 빠지면 섭하다. 완득이의 짝은 바로 소위 '엄친딸' 캐릭터에 가까운, 즉 등수가 전교에서 놀고 좀 사는 집 딸인 '윤하'다. 윤하는 완득이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그렇게 두 아이들은 열일곱다운 첫사랑의 간질간질함을 나누게 된다. 어쩌면 이 관계는 많은 여자애들(정말 10대 소녀들을 의미)의 로망이 아닌가 싶다. (살짝 평강공주 컴플렉스인가?ㅋ) 

 
반항아라면 반항아인 완득이를 변화시킨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바로 킥복싱! 잘하는 것은 싸움밖에 없다던 완득이는 맞고 채이고 밟히면서 성장한다. 피하거나 쫄거나 하지 않고 툭툭 털며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왔다! 내 페인트 모션에 관장님이 주춤했다. 나는 디딤발이 흔들리지 않게 엄지발가락에 체중을 실었다. 무릎에 회전을 가해 복부에 쑤셔 넣기만 하면 게임 끝이다. 그런데 내 무릎이 회전하기도 전에 관장님이 회전했다. 내 킥은 허공을 걷어찻고 그 바람에 디딤 발이 휘청했다. 그리고 관장님의 로우 킥이 들어왔다. 360도 회전 로우 킥이다. 허벅지가 끊어질 것 같다. 나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서둘러 일어서려는데 다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허벅지를 맞고 숨통이 막히기는 처음이다. 그때, 내 얼굴 앞으로 하얀 수건이 덜어졌다. 정윤하다. 지가 왜 수건을 던지고 난리야.
"괜찮아?"
"놔!"
안 괜찮고 쪽팔리다. 그리고 열 받는다. 능구렁이 관장님은 도대체 언제 수련을 했기에 이렇게 강한 로우 킥이 가능한지. 나는 엎드린 채 이마를 바닥에 박았다.
"잘했어. 너 이긴 거야."
관장님이 글러브를 벗으며 말했다. 어이가 없다.
"지러 가는 시합이니까, 미리 지는 연습 한번 한 거야. 그러니까 넌 이긴 거고."
관장님은 껄껄 웃으면서 링 아래로 내려갔다.
똥주네 집인지 교회인지 가서 관장님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 곧 올 것 같다. 나는 이번 대회에서 반드시 이긴다. (164-165p)

완득이는 원래 싸움을 싫어한다.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놀리지만 않았다면 싸우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니까. "상대가 말로 내 가슴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렸고, 나도 똑같이 말로 건드릴 자신이 없어 손으로 발로 건드렸을 뿐이다. 상처가 아물면 상대는 다시 뛰어다녔지만 나는 가슴에 뜨거운 말이 쌓이고 쌓였다. 이긴다고 다 이기는 게 아니라고? 이겨야 이기는 거지."라고 말하는 그의 덤덤한 슬픔이 전해져 나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소설은 특별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시니컬한 유머를 툭툭 내뱉기도 하고, 일그러져 있지만 왠지 웃고 있는 것 같은 표정들. 책장을 넘기며 피식피식 웃다가 어느새 눈물이 툭 터져버리고 만다. 편하게만, 배우는대로만, 받은대로만 살아온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할, '세상에 넘어지고 부딪혀 얻어낸 희망'이 느껴져, 더더욱 값진 소설이다. 우리의 열일곱에게 이 소설을 추천해주고 싶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27. 08:00


(오늘 포스팅은 매우 주관적인 내용입니다)


 

 '가치관'이란 "가치에 대한 관점. 인간이 자신을 포함한 세계나 그 속의 사상에 대하여 가지는 평가의 근본적 태도"라고 합니다.(from daum 국어사전) 그렇습니다. 가치관이란 세계에 대한 평가기준이자, 관점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으므로 그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는 상당부분이 가치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가치관은 곧 그 사람 정체성의 일부이자 삶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가치관들이 존재하며,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전의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린 일 있지만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상대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가치는 존중받아야 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의견차이로 대화를 나누다가 ‘그건 너와 나의 가치관의 차이야’라며 더 이상 이야기를 전개시키지 않기도 합니다. 종교나 정치문제로는 싸우는 게 아니라고들 하는데 그것은 결국 그것이 가치관의 문제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가치관의 문제’가 ‘함께 살아가는 문제’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현실세계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자연히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서로 다른 ‘가치관의 문제’가 ‘함께 살아가는 일’에 문제를 발생시킬 경우, ‘그건 가치관의 문제야’라는 일종의 판단보류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 것일까요?


 

 제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연애’라는 ‘관계’가 ‘함께 살아가는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연애에서 가치관의 차이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너무나 많습니다. 연애를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사람은 가치관이 한 인간에게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이며 이미 형성된 각자의 가치관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서로를 힘들게 할 수 있는지도 느끼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바꿀 필요 없이 처음부터 '나와 잘 맞는'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생각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람은 자기 한계만큼 타인과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맞춰가기 위해 써야하는 에너지가 적게 들수록 관계를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에 도달할 가능성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만나다가 그런 가치관의 차이에 부딪쳤을 때 ‘이건 가치관의 문제’라며 그냥 관계를 정리해버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관계라는 것이, 이미 나에게 잘 맞도록 정해진 것을 찾는 것이 전부라면, 관계가 힘들어지면 그냥 그만두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자기의 한계를 넘는 힘든 관계를 질질 끌면서 고통 받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자기 마음의 한계를 무시하고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자기 한계만큼 사랑하게 되어있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분명히 우리가 해야 하는 ‘노력’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노력’이 ‘관계’ 그 자체라고까지도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가치관의 차이 문제에서 필요한 노력은 어떤 것일까요? 서로 다른 가치는 존중되어야 하므로 한 쪽의 가치를 다른 쪽의 가치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가치관을 결코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바뀔 수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만 보통 잘 바뀌지 않으니까요.) 제 생각에 그 노력은 우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치관의 차이는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져볼 수’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그런 의미에서는 ‘더 이상 대화할 게 없는 문제’이겠으나 그래서 모든 대화가 중단된다면, 간과하고 있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문제’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살아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관계에서 해야 하는 노력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는 오히려 많은 대화와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대화는 서로의 가치관을 바꾸거나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힘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 함께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가치관의 문제’역시 바뀌기 어려운 것이나, 바뀌지 않는 것도, 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도 아니므로(내가 현재 지닌 가치관이 완전무결한 것은 아닐 테니까요) 대화(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무언가를 토론의 대상으로 삼을 때 목적은 성찰이지 이기고 지는 맹목적인 설득이 아닙니다.)


 

  결국 ‘가치관의 문제’는 판단 보류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함께 살아가는 문제’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요지입니다.  이건 우리 생각이 서로 다른거니까, 어떻게 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평생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는 어울려 살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는 말은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가치관의 문제는 해결이 어려우니까요. 그런 노력 후에도 결국 함께하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이 날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꽤나 높습니다. '양보할 수 없는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도, 계란으로 바위를 쳐야 할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그런 때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지프스가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바위처럼 다시 떨어질 줄 알아도 밀고 올라가는, 결코 효율적이지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잘 되지 않을 줄 알아도 끝까지 잘 되도록 노력해주는 마음. 사랑이 뭔지 말하기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결과에 관계없이 그런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닐까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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