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9. 10:44

 

 

 

 

수능이 끝났습니다. 수험생 여러분 정말 고생하셨고, 당분간은 푹 쉬면서 여유도 만끽하길 바랍니다. 어영부영 시간을 흘려보내진 마시고, 가치 있게 잘 쓰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아버지 시절 쯤 얘기일까요. 대입 시험 전국 수석이 불문과와 물리학과에 진학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이것은 곧 법학과와 의예과로 바뀌었고, 현재에는 경영학과와 의예과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학문과 현실의 괴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쓸만한 인재가 없다는 기업의 투덜거림도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취업난이 시작되었고,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등록금은 연 천만원을 호가하고, 빚을 지는 대학생들이 늘어났습니다. 인문학과에 진학하는 것은 자살행위라 말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경영학과가 최고 인기 학과가 되었습니다.

 

대학은 이제 사실상 취업전문기술학교로 변했습니다. 새내기 때부터 '공부'가 아닌 '학점관리'를 하며, '영어'가 아닌 '토익'을 공부합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공모전에 참가하고, 자비를 들여 해외로 봉사활동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스펙이 있는 자가 승리하는 시대기 때문입니다. 돈을 잘 버는 삶이 '성공'한 삶이라 평가받고, 취업을 못하면 사회의 낙오자 취급을 받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생각되지만, 대학이 취업학원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런 모습을 띠는데 일조하게 된 개인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닙니다. 대신 밥벌이를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특화된 분야(의학, 법학, 공학 등)가 아닌 이상 인문계열과 사회과학계열의 학생들이 전공을 살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입사 원서 기준에 상경계열이 버젓이 적혀 있는 경영불패의 현실, 토익점수로 당락이 결정되는 영어광풍의 현실, 남을 짓밟지 않으면 내가 일어설 수 없는 무한경쟁의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한 개인이 자신의 대학생활을 취업을 위해 바친다고 해서 그 개인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흐름을 역행할 수 없는 개개인을 탓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가 없고 바람직하며 우리가 그것에 대해 눈감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의 물질욕과 소비욕을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길은 대학 말고도 많습니다. 인생 선배로 살아온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보고,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을 들여다 봐도 몇십 년 후에 돈 많이 벌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군집은 출신 대학과는 큰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의 착하고 선량한 많은 학생들은 대학에 가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 나는 양 알고 있습니다.

 

물론 바로 사회에 뛰어드는 것에 비해 대학에 가게 되면 유예기간이 연장되고, 학내 분위기에 맞춰가다 보면 고졸 취업자에 비해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수월하기도 합니다. 명문대에 들어간다면 앞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혜택을 보기도 합니다. 적당히 놀 수 있는 기간도 늘어나며, 선택할 수 있는 길의 범위를 어느 정도 한정해 주기 때문에 안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4개월 뒤면 여러분도 대학생이 될 것입니다. 그럼 이제 본인에게 질문을 던질 차례입니다. 대학이란 대체 무엇인가? 난 대학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고요.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대학을 기업의 지상명령을 받들어 모시는 곳,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전초과정을 밟는 곳으로 착각합니다. 학문이 현실과 유리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이 기업의 입맛에 맞추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기업들은 창의적인 인재, 능동적인 인재, 발전 가능성이 무궁한 인재를 찾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보통의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대학생 인재란 대부분 인력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찌보면 일회용품에 비견될 지 모르는 이 인력을 키우는 것을 자랑스럽게 표방하는 학교들이 많다는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느 기업에 얼마나 취업했는가가 대학의 성적표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실 저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가 어떤 인재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기업의 이익을 공부하는 대표적인 학문인 경영학 전공에 토익 만점을 받는 것 말고는요.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대학은 학문의 장입니다. 그것도 넓디 넓은 광장입니다. 만약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끝없는 심연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인간에게 있어서 대학은 끊임없이 심연을 채우고, 그 위에 튼튼한 토대를 세우는 곳이어야 합니다. 끝없는 심연만큼이나, 인간의 관심은 전방위적이고 그 깊이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안정적인 토대는 사실 대학이라는 곳이 유일합니다. 그런데 이런 곳을 단지 실용이란 명목 하에 기업 군대의 이병 양성소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학문이 공허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용적 자세가 중요하겠지만, 그것은 학문탐구에 있어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덕목 중 하나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여러분은 닭장과도 같은 좁디 좁은 교실에서 12년간 갇혀 살았습니다. 욕망을 거세당한 채,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하며, 오로지 대학만을 바라보며 꼭두각시처럼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대학에 오면 갑자기 탄성한계를 넘어버린 용수철 마냥 맥이 탁 풀려버립니다. 대학에서는 어느 누구도 일정한 학습형태를 강요하지도 않고, 일정한 학문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선택의 다양함이라는 자유의 본질적인 특성이 구현됩니다. 그러나 선택에는 판단이 필요하고, 그 판단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12년 동안, 더 정확히 말하자면 19년 동안 선택과 판단, 그리고  책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대학이라는 곳은 일단 매우 난감하게 느껴지는 곳임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주체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면, 처음으로 접하는 판타스틱한 상황들을 누려보지 못하고 다시 시류에 휩쓸려버리게 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이제서야 닥쳤는데, 해보지도 못하고 자기 자신을 그 거룩한 기업이 원하는 인력으로 만들어 버리면 너무 억울한 거 아닐까요. 대학을 가는 이유가 좋은 직장, 더 정확히 말하면 돈을 많이 주는 직장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면 너무 허무한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대학에 왔으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종합대학 같은 경우에는 정말 수많은 교수들이 있고, 학과가 있고, 강의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이 끌리는 수업을 찾아가서 들으면 됩니다. 그리고 학습하면 됩니다. 하지만 대학에는 수학의 정석 같은 바이블이 없습니다. 배울 것도 전방위적이지만, 배우는 방법도 전방위적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기본은 언제나 책과 씨름을 하며, 자신의 생각과 씨름을 하며, 끊임없이 교수들과 피드백을 갖고, 그것을 현실에 비추어 보기도 하면서 하나하나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사실 공부하는 데 있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론을 취해야 하는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중고딩 때 참고서를 외우듯이 대학에서도 공부하는 것을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이 점점 고도화되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학부생 수준으로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학 공부에서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좀더 근본적인 문제들입니다. 물론 이 말이 학과공부를 포기하라는 얘기가 아님은 다들 이해해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학과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 굳이 말하지도 않겠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란 다음과 같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휩쓸리지 않고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즉 자신의 그릇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대학에서 필히 획득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기본이 확실하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창조적이고 자발적인 인간은 지식을 많이 얻는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사고하느냐는 태도에서 나옵니다. 간단하게 표현했지만 이 말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선택 상황에서 판단을 하려면 사고가 깊어야 하고, 사고가 깊으려면 몸과 머리로 많이 섭취하고 소화를 시켜야 합니다. 또한 주체적으로 판단을 하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하며, 시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사회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합니다.

 

사고를 어떻게 하면 깊게 하고, 자신이 자신을 정확히 파악하고 따위의 문제는 부단히 의심하고 생각하며, 많은 경험을 해보라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보다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 사회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라는 말입니다. 왜 우리는 부모님의 말을 따라 대학이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아야 했으며, 기껏 와서 한다는 것이 고작 기업 군대의 이병이 되는 것이며, 피튀기는 경쟁에서 살아남아 좋은 기업 군대의 이병 되었더니 상병 꺾이기도 전에 강제 전역을 당해야 하며, 강제 전역을 당하면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리는 삶이 되어야 할까요. 그리고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기업의 이병이 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선택권이 없을까요.

 

이것은 절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며 개인으로 환원해서 생각한다고 해결책이 찾아지는 문제도 아닙니다. 결국 우리가 제대로 된 선택을 하고,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주하는 모든 것들에 끊임없이 의문을 가질 것을 요구합니다. 어떤 것을 당연하고, 고정된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사고가 깊어지는 것이며, 자신에 대한 파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의문을 던지는 자세, 이것이야말로 대학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갚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끊임없는 생성과 변화의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이 생성과 변화의 과정에서 자신이 주체가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자신한테 달려있습니다. 자신이 자기 삶의 주체가 되고 싶다면, 대학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달라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이야기 하고, 많이 듣는 것, 무엇보다 많이 생각하는 것이 대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열린 자세로 세상을 대하되, 자신의 주관과 소신을 확고히 하는 태도를 지닐 수 있다면, 감히 성공한 대학생활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한한 자유와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자, 대학생이 될 여러분을 축하합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1. 5. 12:24

 

 

수능이 4일 남았다. 이쯤 되면 공부와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멘탈과의 싸움이다. 4층 3학년 교실의 분위기는 자칫 비장하기까지 하다. 전운이 감돈다고나 할까.


목요일 이후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즐거워진다. 족쇄가 풀린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이 기대된다. 체육관은 얼마나 시끌벅적할지, 주변 PC방은 또 얼마나 북적거릴지...


수능이 끝난 고3은 말년병장, 방학한 초딩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잉여로운 존재에 속한다.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후 몇 달간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이 잉여족들은 하루 24시간을 놀고먹는 데 투자한다. 수능 보기 전에는 불안해하면서 놀았지만 이제는 그 최소한의 불안마저도 털어버리고 펑펑 논다. 수능을 잘 본 학생이든 못 본 학생이든 맘놓고 놀아제끼는 점에서는 마치 요플레를 먹을 때는 누구든지 뚜껑부터 핥는다는 만인평등사상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어찌 보면 그들은 수능에만 올인하고 그 외에는 신경을 꺼버리는 개탄스러운 한국 교육 현실의 주인공이자 피해자들이다. 수능이 끝나도 고등학교 교육은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끝이 아니지만, 수능 끝난 고3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대다수의 학교가 단축수업을 실시하며 그마저도 수업을 안 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무단 결석생이나 무단 조퇴생이 대거 발생하기도 한다.


이 고3들의 잉여스러움에 대한 지적이 여러 분야에서 터져나오면서 학교 차원에서 문화탐방을 하거나 영화관람을 하는 등의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뻘짓이나 시간 때우기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듯 수능이 끝났다고 인생이 끝난 게 아니다. 수능 이후에도 원서 제출, 논술, 면접, 적성검사 등 각종 '시험'들이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수험생들을 지켜보고 있다.

 

 

 


거센 바람을 등지고 인생의 또 다른 출발선 앞에 서게 될 고3들에게 묻고 싶다. 수능 시험지를 손에 쥐고 울고 있는가? 나 몰라라 뒤로하고 잠시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가? 그대들에게 고하고 싶다. 훌훌 털고 당장 떠나라고.


이 시기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상을 탈출할 기회는 남은 일생 동안 그리 많지 않다. 곧 있을 점수발표와 대학접수에 연연해 반 답답함과 반 홀가분함으로 어영부영 날짜를 세고 있기엔, 피시방이나 당구장, 노래방에 갇혀 소비적인 문화에 집착하며 또 다른 쳇바퀴를 돌고 있기엔, 고3의 피 끓는 청춘과 두 달 남짓 남은 학창시절의 추억거리가 아깝지 않은가.


물론 일상을 탈출한 뒤에 즐기는 시간들이 일상에서의 그것과 똑같다면 곤란하다. 그동안 묶여있고, 매여 있었던 도시를 떠나 넓은 대자연을 앞에 두고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한다. 그리고 골똘히, 수능 공부할 때보다 더 치열하게,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이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삶의 지향점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여러분은 이제 곧 어른이다. 지금까지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받던 보호는 끝났다. 앞으로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할 결정들은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다. 부모님, 선생님 혹은 다른 사람들의 조언은 듣되, 자신의 생각과 그분들의 생각이 다르거든 자신의 생각대로 할 것을 권하고 싶다. 어른들 말씀 들어 나쁠 건 없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어른들의 말씀대로만 행동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미 여러분들은 20년 가까이 말 잘 듣고 허튼 짓 안 하고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고 기대에 맞춰드렸으니 이제부터는 기성세대의 기대를 조금씩 거부해보길 권한다. 그런다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그러면서 스스로 자라는 것이다. 곧 느끼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자기가 원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어른들이 바라는 것이었다는 것을. 이제부터는 자신만의 욕망을 욕망할 것을 권한다.


독립은 가장 빠르게, 확실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독립하기를 권한다. 20년 동안 부모님 아래에서 먹고 자고 싸고 다 했지만 이제부터는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 등록금 천만원 시대에 그 돈을 전부 벌 수는 없지만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나가기를 바란다. 기숙사비든, 하숙비든, 자기만의 공간은 자기 돈으로 시작해 채워나갈 것을 권한다. 과외도 좋고 알바도 좋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꾸리게 되면 정신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것이다.

 

 

 


꿈을 가질 것을 권한다. 어떤 직업을 가져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그런 거 말고. 그래서 토익점수 높이고 어학연수 가고 스펙을 쌓는다는 그런 거 말고. 그런 건 꿈이 아니라 그냥 목표다. 그건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똑같은 목표란 말이다. 나는 여러분이 개미 무리의 병정개미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내가 말하는 꿈은, 정말 대책 없어 보일 만큼 낭만적인 그런 꿈이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들 행복의 총량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 '차별 없고 부조리 없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이런 것처럼 한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하면 아주 조금 움직일 수도 있는 그런 초대형의 것을 권하고 싶다.


오노 요코가 말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이루어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가슴에 간직하고 끊임없이 꿈꾸는 것, 그리고 그것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그게 꿈이다. 나는 우리 소중한 고3 학생들이 꿈꾸는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7. 29. 07:01

1. 사격에서 진종오가 금메달을 땄고, 수영에서 박태환이 은메달을 땄고, 남자 양궁 단체는 동메달을 땄다. 그래서 메달이 세 개다. 종합 순위 4위란다. 종합 순위 4위? 재밌는 말이다. 그 순위라는 걸 어떻게 매기는가 보면 더 재밌다. 은메달이 100개가 있어도, 금메달 1개보다 못한 것이 지금의 순위 산정 방법이다. 정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순위를 매기는가 싶어 국제 올림픽 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는데, 위와 같은 방식으로 순위를 매기기는커녕 홈페이지 어디에서도 국가별 메달 갯수를 가지고 순위를 매기는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2. 올림픽 정신이라는 게 무엇인가. 스포츠를 통해 지구촌의 대화합을 이끌어낸다는 것이 본래의 목표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꼭 메달의 갯수를 가지고 1등부터 꼴등까지 국가별로 서열화를 시켜야 하는 걸까. 그냥 있는 그대로 승부를 즐기고, 승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패자에게는 위로의 박수를 보내주면 안 되는 걸까. <은메달에 그쳤습니다>라는 말은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분야에서 전 세계를 통틀어 두 번째로 짱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할 말이 아니다. 꼭 1등을 해야만 하는가. 금메달만이 최고인가.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삼성 그룹의 광고카피와, 그들의 불법 재산 승계가 함께 스쳐지나가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3. 남자 축구 어떻게 됐어? 라는 물음에 상대방은 우리가 졌어, 라고 답한다. 왜 <우리>가 졌다고 말하는가. 한국 축구 대표팀이 진 것이고, 박태환이 우승한 것이다. 우리가 이기거나 우리가 진 것이 아니다. 집단과 개인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국가와 시민 간의 관계는 특히나 더 그러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우리>는 누구를 일컫는 말일까? 한국경제를 손에 쥐고 있는 소수의 재벌? 아니면 그 재벌이 소유한 기업으로부터 해고되어 거리를 전전하는 실업자인가? 같은 일을 하고도 남성의 절반밖에 임금을 받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인가? 아니면 학벌주의의 제물이 되어 학교에서 학원으로, 그리고 학원에서 다시 학교로 내몰리는 청소년들을 지칭하는 것인가? <우리>라는 말은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하나의 공동 운명체속에 뒤섞어 놓음으로써 양자간의 갈등을 희석시키고 은폐하는 대단히 이데올로기적인 기호다.

 

4. 올림픽 열기에 편승해 한 몫을 챙기려는 대기업들의 얄팍한 상술은 이젠 신물이 난다. KB는 매번 올림픽 때마다 스포츠 스타를 내세워 브랜드 이미지 향상을 꾀하는 기업인데, 하계 올림픽에는 박태환, 동계 올림픽에는 김연아라는 카드를 칼같이 쓰고 있다. 그런데 그 KB는 몇 년 전 프로축구의 2부리그 격인 내셔널리그에서 국민은행 축구단이 우승해 K리그로 승격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자 구단 운영자금을 감당할 수 없다는 변명으로 K리그 승격을 거부했던 기업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은행이 자금이 없다는 이유로 프로스포츠팀을 만드는 것을 거부했는데, 이번에는 스포츠 스타를 앞세워 돈벌이를 하려고 하다니. 재밌지 않은가? 과거 요미우리의 이승엽과 주니치의 이병규를 중계하느라 국내 프로야구를 외면했던 SBS 스포츠는, 지난 베이징 올림픽 때 야구대표팀이 쿠바와 평가전을 갖게 되자 SBS 공중파 채널을 할애하면서까지 그 경기를 중계했다. 그놈의 애국심이 뭐길래, 국가대표팀이 뭐길래, 민족주의가 뭐길래 말이다.

 

5. 스포츠는 그냥 스포츠 자체로 즐기는 데서 끝나야 한다.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말인 <건전한 여가선용>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딱 좋다. 스포츠에 어떤 목적의식이 가미되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축구 국가대표를 칭할 때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태극전사라는 말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서슬이 퍼렇다. 꼭 국가대항전이 아니더라도 스포츠에서 흔히 쓰이는 평정, 원정, 개선, 출격, 용병 등 수많은 용어는 전쟁에서나 쓰이던 것들이었다. 스포츠 캐스터는 후지산을 무너뜨리고, 만리장성을 넘고, 유럽을 평정하고, 한국으로 개선한다고 한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에서 일그러진 군사주의가 떠오른다.

 

6. 박태환에게 실격 판정을 내린 심판이 중국인이라는 말에, 누리꾼들은 짱깨니, 떼놈이니, 중국놈이니, 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중국인 심판이 아니라 미국인 심판이었단다.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국가간의 대항전은 민족감정으로 번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맹목적인 애국심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그것은 곧 타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적개심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가당치도 않은 순위 집계 시스템 하에 대한민국이 종합 순위 2등을 했다고 해서, 내가 200여국이 넘는 세계의 나라 중에 2등 국가의 시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7. 오늘은 축구 대표팀의 경기가 있다고 한다. 또다시 거리에 붉은 물결이 펼쳐질듯 싶다. 혹자는 이 붉은 물결에서 화합된 대한민국의 단결력을 보고, 혹자는 국가주의적 광기를 보고, 혹자는 축구를 빙자한 축제의 마당을 본다. 몇십만명의 거대한 인파가 경찰의 저지선 안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모습을 통해 혹자는 우리 사회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경배하고, 혹자는 일탈의 욕구가 권력이 허용하는 선 안에서 길들여질 위험성을 지적한다. 월드컵에서 발견되는 우리 사회의 잠재적 에너지를 사회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자는 주장과 신명나는 놀이판에서 겪었던 해방과 긍정의 경험을 그 자체로 인정하자는 반론도 있다. 월드컵도 그렇고, 재미있는 것은 거리로 나오는 응원인파 중 여성과 청소년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흔히 축구팬 하면 청장년층의 남성들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거리에 나온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거리 응원에서 분출되는 열정과 환희가 억눌리고 곤고한 일상에서의 해방의 뜻이라면, 하늘을 찌르는 여성과 청소년의 함성은 억눌린 그들의 꿈과 욕구가 터져나오는 비명 소리는 아닐까.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여성과 청소년의 꿈과 욕구를 억누르고 있으며, 또 이를 분출할 수 있는 합법적 공간을 제약하였는지를 잘 드러낸다. 그런 뜻에서 사실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일상을 떨치고 날아올라 공동체적인 환희를 경험할 수 있는 계기라면, 여성과 청소년에게 그것은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아닌 무엇이라도 좋았다. 이미 관광버스 아줌마와 오빠부대에서 그 단초를 보았다. 축제가 끝난 후, 꿈에서 깨어보니 다시 삭막한 무한경쟁의 장에 외로이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하는 수험생들이 겪을 후유증이 사실 난 제일 두렵다.

 

8. 올림픽과 같은 단기적이고 폭발적인 이벤트에서 얻는 쾌락 말고,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나 여유, 문화활동을 우리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생겼으면 좋겠다. 타인과 공감하고, 소통하고,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는 데서 삶의 기쁨과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콩나물 시루 같은 좁은 교실에 아이들을 가두고 병든 닭처럼 길러내는 대신에, 자유롭게 뛰놀 수 있도록, 자신의 꿈과 미래를 능동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교육헌장에 나와있는 그런 전인교육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7. 16. 10:03

나의 사랑, 8반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하세요. 사랑하는 8반 친구들. 여러분과 함께 한 학기를 보낸 담임선생님입니다. 반갑죠? 벌써 7월 16일입니다. 2012년이 절반 이상이 흘러갔네요. 반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그날을 기억하나요? 천안 국립 청소년 수련원으로 가기 전 학교에서 모였던 오리엔테이션 날 아침, 떨리는 마음으로 심호흡을 크게 하고 8반 교실의 문을 열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여러분처럼 우수한 학생을 만나는 것도 처음이었고, 더군다나 여학생을 맡아본 적은 더더욱 없었기에 더 많이 긴장을 했던 것 같습니다. 

 

떨리기는 피차 마찬가지였겠지요? 우리 반에는 근처에 사는 친구가 거의 없습니다. 명문고라고 하여 멀리까지 유학 아닌 유학을 왔는데, 이상한 놈팽이가 담임이 되면 어떡하나, 같은 반 친구들과 잘 지내니 못하면 어떡하나, 학교생활에 적응은 잘할 수 있을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성적이 안 나오면 어쩔지, 어쩌면 저보다 여러분이 더 많이 걱정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2월 말부터 시작된 우리의 여정이 3,4,5,6월을 거쳐 이제 방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일주일간의 기말고사가 끝나면 고등학생으로서의 첫 방학을 맞이하겠지요. 열흘 이상 여러분을 못 볼 생각을 하니 퍽 섭섭합니다. 다들 같은 마음이겠지요? 

 

정신없이 흘러간 한 학기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생전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 쉬지 않고 어려운 말을 쏟아내는 선생님들. 숙제는 왜 그렇게 많은지. 수행평가는 뭐가 그렇게 복잡한지. 모의고사보다 어려운 내신 시험 덕에 멘붕도 겪었을 테고, 아침저녁으로 버스를 타고 다니느라 체력도 많이 소진했을 것입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굉장한 혹사를 당했던 2012년 1학기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방학이 되면, 부디 푹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반어적 표현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많이 쉬고, 많이 놀고, 그러는 와중에 많은 고민과 명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더 성장한 모습으로 2학기에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것보다,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다녀와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무엇을 잘하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6월 7일에 봤던 모의고사에서 우리 1학년 8반은 1학년 반 중 꼴찌를 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그것 때문에 결코 여러분에게 실망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공부를 조금 더 잘하는 어떤 반 학생들보다, 밝고 명랑한 우리 8반 학생들이 좋습니다. 교실을 조금 더 깨끗하게 쓰는 어떤 반 학생들보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임하는 우리 8반 학생들이 좋습니다. 규칙과 규율을 잘 준수해 착하다고 소문난 어떤 반 학생들보다, 조금 비뚤어보일지언정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내세울 줄 아는 우리 8반 학생들이 좋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8반 학생들의 광팬입니다. 한 반 학생 모두가 똑같이 예쁘다는 어느 선생님의 말씀. 전에는 믿지도 않았고 뻔한 대외용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38명의 학생이 똑같이 예쁠 수가 있구나. 누가 더 예쁘지도 않고, 덜 예쁘지도 않게 한결같이 사랑스러운 것이 가능하구나. 이런 것들을 몸소 느끼게 되자 그런 감동을 준 여러분이 한없이 존경스러워졌고, 그런 것을 느끼게 된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진지모드로) 하지만 때로는 여러분이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여러 학생들은(이미 전국적으로 매우 우수한 성적이지만) 자신의 인생이 실패할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전혀 그럴 필요가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됩니다. 시험에서의 '성공'과 '실패'는 결코 인생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삶을 가지고 '성공‘이니 '실패'니 하고 평가하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다른 걸 다 접어두고 위의 명제만 가지고 봤을 때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도 나쁘지 않은 학교를 나왔고, 27세라는 어린 나이에 교직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걸 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저보고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것은 제 인생에서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지만, 그걸 이루었다고 해서 제가 꿈꾸던 삶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제 미래를 설계하고, 그 길을 걸어나가기 위해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많이 좁아지기는 했지만, 저는 아직도 다양한 꿈과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사가 되어야겠다, 연봉 얼마를 받아야겠다, 결혼은 언제하고 애는 언제 낳아야겠다. 등등. 이런 것들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세상에 불만이 많습니다. 가진 자의 논리대로 돌아가고, 약자가 보호 받지 못하고, 부조리와 불합리가 판치는 이 세상이 싫습니다. 제 꿈은, 제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것입니다. 용기도 많이 사라지고, 많이 비겁해지긴 했지만, 대학에 입학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저는 달라진 거 하나도 없는 '제 자신'일 뿐입니다. 저는 이런 제가 좋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잘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학생들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든지, 그렇지 않든지 또한 어떠한 악조건이 있든지 간에 학생 자신은 변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언제나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자신의 실력에 미치지 못한 점수를 받은 것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은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도 탓할 것은 아닙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보는 우리 8반의 모든 학생들은 정말 피땀을 흘리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저는 다만, 여러분들이 결코 대학 입시와 같은 지엽적인 것들을 인생의 전부라고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승자의 여유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지금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거나, 미취업자로 산다고 해도 낙심한다거나 자신을 원망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만약 제가 그랬다면, 전 이미 인생을 포기했어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보다 더한 시련들을 많이 겪었기 때문입니다.  

 

몇 번 말한 적이 있지만 저는 틱 장애 때문에 굉장히 불우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학교에서는 소위 말하는 ‘왕따’였습니다. 가족들도 저를 부끄러워했습니다. 9층 난간에도 두 번 올라갔지만, 한 번은 용기가 없어서, 한 번은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서 뛰어내리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자주 저를 나무랐지만, 부모님을 원망하기보다는 부모님을 창피하게 해드린 것 같아 너무나 죄송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주눅 들거나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의 이런 처지를 알게 된 친구들이 제가 그렇게 힘든 상황이었는지 몰랐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오히려 그런 경험들이 제가 정말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보다 더 힘든 시기를 보낸 학생들도 얼마든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학생이 그럴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돈이 없다고, 원하는 대로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은 분명 아니니까요. '자신만 보면 미치겠다', '나는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쁜지 모르겠다' 등등은 저에게 질문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하는 푸념들입니다. 왜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지, 자신의 존재를 왜 그렇게 하찮게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성공하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금은 대학이 취업학원화 되었지만, 이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청년실업률이 60%를 넘는다고 하지만, 대학 본연의 목적은 학문 탐구와 진리 추구에 있어야 합니다. 저는 언제나 용기 있게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학생들의 패기와 열의를 적극 지지합니다. 공부, 성적, 대학, 간판. 그런 것들은 언젠가 무의미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언젠가는 계급장을 다 떼고, 인간 누구누구로 평가받는 날들이 올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직함, 포장 등은 어디까지나 사회생활의 출발점에서만 도움을 줄 뿐입니다. 그 이후에 헤쳐 나갈 수많은 고난과 풍파들을 이겨낼 능력과, 용기와, 굳센 의지와, 그리고 따뜻하고 예쁜 심성들은 학교의 간판으로는 길러지지 않습니다.

 

궁극적인 제 꿈은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교직에 몸담든, 다른 어떤 일을 하든지 저는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공부해온 것들, 아이들을 가르쳤던 내용들은 그런 삶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만약에 제가 다른 전공을 했거나, 아니면 대학에 다니지 않았을 지라도 저는 그런 삶을 꿈꿨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을 찾기 위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무슨 대학 무슨 학과가 목표라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큰 꿈을 가질 수 있는 10대들이 그런 하찮은 목표에 얽매이는 게 보기 좋지는 않습니다. 대학에 너무 얽매이지 마시고, 좀 더 고귀한 인생의 목표를 가졌으면 합니다. 대학은 그러한 인생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과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대학이냐 가 아니라, 대학에 입학해서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대학에 입학을 하든, 재수를 하든, 아니면 사회에 나가 일을 하든 그 순간순간의 삶에 만족하시고, 자신의 인생 목표를 향해 자신을 좀 더 가꾸는 학생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욕심을 부릴 만한 것에는 욕심을 내면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다만, 우월감에 빠져서 자만하거나 열등감에 빠져서 자학하거나 남들을 질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고요.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자신을 사랑하고, 그 삶에 만족하기만 하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매우 쉬운 일인데도 사람들은 '성공주의'과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서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기쁨을 느끼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야 행복할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그렇게 되면, 만족을 못 느끼고 더 많은 욕심을 부리죠. 저는 학생들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잘 살펴보고 그것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그 선택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며, 모두 다 같이 축하해줄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그런 세상을 위해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진심을 다해 응원합니다.  

 

오노 요코가 말했습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요. 이루어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가슴에 간직하고 끊임없이 꿈꾸는 것, 그리고 그것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그것이 꿈입니다. 저는 우리 소중한 1학년 8반 학생들이 꿈꾸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기말 시험 후회 없이 치르고, 즐거운 여름 방학 보내세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27. 08:30


영화 An education 을 오랫만에 다시 봤습니다.
(스포 조오금 있어요)

언에듀케이션은 순수한 얼굴의 캐리 멀리건과 조역으로 자주 볼 수 있는 피터 사스가드가 나오는 성장기 영화인데요,

요즘 사운드트랙을 듣다가 노래가 좋아서 영화를 다시 보다 보니
대체로 사운드 트랙이 그 장면이나 여주인공의 마음에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더라구요.

특히 영화의 마지막 엔딩 장면에 Duffy의 Smoke without Fire 대신에
Beth Rowley의 이 노래가 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운드 트랙 중 Beth Rowley의 "you've got me wrapped around your little finger" 를 가져와 봤어요. 
이 노래는 원래 캐리 멀리건이 말 그대로 피터 사스가드에게 푹 빠져 있을 때 나오는 노래 입니다.


 



Duffy- Smoke without fire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더피의 목소리와 가사가 나오는데
뭔가 그렇고 그런 신파성 멜로영화의 엔딩으로 끝나는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시대적 배경도 있으니까 저런 풍의 재즈가 들어가는 것도 좋고 더피의 목소리도 어울리지만 
그러기엔 캐리 멀리건이 너무 어리고 귀엽고 순수하단말이오...
저 귀엽고 순수한 캐리 멀리건 여주인공이 쭈욱 스크린에 나오다가 마지막에 더피의 목소리가 나오면 
뭔가 너무 "그래! 나 아픔을 겪고 폭풍성장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동.
사람이 그렇게 빨리 성장할리가 있습니꺼...

그보다는 Beth의 목소리와 저 노래로 아이러니하게 끝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엔딩 장면에 캐리 멀리건이 성장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 보여지는 만큼 
오히려 순수했기에 그만큼 의심없이 무언가에 푹 빠질 수 있었던 노래를 배경으로 해도 좋을 것 같더라구요. 

 

 언에듀케이션은 사운드 트랙이 대부분 7-80년대의 재즈여서
재즈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영화 줄거리 도중에 파리에 가있는 장면도 있어서
불어로 된 재즈도 있다는!

그럼,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좋은 한 주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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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14. 08:30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고 계십니까? '진짜 나를 아는' 사람을 얼마나, 혹은 단 한명이라도 가지고 계시나요? 자신의 보여준다는 것은 연애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할까요? 오늘은 참고가 될 만한 사회심리학 연구를 짤막하게 살펴볼까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야 연애가 깊어진다

 연애 단계를 다룬 연구 중에는 루이스(R. A. Lewis)의 6단계가 있습니다. 이는 첫 만남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6단계로 나눈 것인데요,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있으며 도움될 만한 것은 무엇인지 한번 살펴 보려 합니다.

1단계는 유사성의 인지 입니다. 이는 가치관, 지위, 흥미, 관심 등에서 서로 공통점이 많다고 느끼면서 그것을 확인해 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관심, 흥미, 의견이며 이 단계에서 사람들이 본래 성격을 드러내는 일은 잘 없기 때문에 이때 성격은 그리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단계는 '자기 제시(self-presentation)'가 이루어집니다. '자기 제시'란 다른 사람으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나 물질적인 보수 등의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전달하는 행위다. 사람들은 대게 거짓된 자기를 보여주기보다는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은 감추는 식으로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조정합니다. 즉 이 단계에서는 굳이 자신의 본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으므로 두 사람은 서로 바람직한 성격을 가졌으리라 생각하며 상대의 언행에서 진짜 성격을 짐작하는 데 그치게 됩니다.

2단계는 좋은 관계의 구축입니다. 1단계에서 공통점을 발견한 두 사람이 바람직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인데요, 보통 첫 만남이 있는 후 두 번째 데이트 신청을 상대가 허락하는 순간부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시작되지만 아직 헌신하는 사이는 아닌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3단계는 자기 개시의 단계입니다. 2단계의 만남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기 개시(self-disclosure)'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보통 자신에 관계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자기 개시'라고 합니다. 이는 자기 제시처럼 인상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소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의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상대방과 좀 더 친밀한 관계로 진전시켜가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의 속마음을 열고 보여준다는 뜻이지요.

친밀한 관계로 진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개시가 필요합니다. 자기개시가 없으면 형식적인 관계에서 발전하기 힘듭니다. 연애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단계에서는 자신의 약점이나 결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물론 정색을 하고 노골적으로 이야기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나가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혹은 행동으로 은근슬쩍 내비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주의할 점은 솔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처음부터 모두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개시란 교제가 어느 정도 진전된 상태에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4단계는 역할취득 단계입니다. 이 단계가 되면 두 사람은 서로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에 충실하게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서로 맡은 역할에 충실해지다 보니 모르는 사람에게는 두 사람 사이에 전혀 유사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끼리는 서로 유사성을 인지 한 후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별로 문제될 일이 없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여기서 역할 분담을 잘못하면 결혼 후 괴로워진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결혼 전에 기선제압을 해야 한다는 말은 이 단계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는 의미와 동일합니다.

5단계는 역할 적합 입니다. 두 사람간에 암묵적으로 역할 분담이 결정되면 그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는 군요. 분담된 역할에 대해 서로 동의하면 연애는 다음 단계로 진전됩니다.

6단계는 결정 입니다. 이제 두 사람은 하나의 단위로 행동하는 단계에 이르러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결혼하게 되는 거죠. 물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군요.


reference. (일전에도 본 일 있는) 이철우 <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


 루이스의 연애 6단계에 따르면 '형식적인' 관계와 '깊은' 관계를 가르는 경계가 바로 '자기 개시'의 유무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이 내용에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3단계의 요지는 평소 저의 생각과 비슷한 것 같았어요. 제가 초창기 포스팅에서 '연애'가 좋은 이유는 '진짜 나'가 드러나서 자기를 인식하고 다듬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씀 드린 적 있죠? 사회심리학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연애는 '자기 개시'가 이루어져서 자기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좋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좋은 것만을 보여주어 즐겁기만 한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깊고 진한' 연애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린 것 역시 '자기 개시'를 통해 어느 정도 진전된 단계에 이른 연애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요. ㅎㅎ 

 '친밀한 관계' 중 특수한 형태인 것이 연애가 아닐까 합니다. 이 말인즉, 연애관계에 해당되는 어떤 원칙들은 다른 친밀한 관계에도 공유, 적용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자기 개시' 역시 그런 개념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우정 관계의 깊이도 자기개시의 유무와 관계가 있었던 것 같거든요.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추가적인 의문은 남아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의문은 이 원칙이 반드시 유효할까? 라는 것입니다.
 자기 개시 없이도 깊은 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가능할까요? 만약 누구에게도 자기 개시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자기 개시가 너무나 괴로운 일인 사람이라면 어떨까?
 만약 자기 개시 없이도 깊은 관계가 성립한다면, 그건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나요?



 추가적인 의문이 남아있지만, 우선은 Happy Valentine입니다. :D
 오늘 하루 설레는 계획 있으신가요?
 혼자이든 함께이든 오늘 하루는 우리 두근두근한 일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13. 08:30


 

빌리 홀리데이, 사라 브라이트만, 헤더 노바, 시네이드 오코너, 비요크, 국내 가수로는 자우림과 이소라.

글루미 선데이 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작곡가 레조 세레스가 만든 곡으로,
이 한 곡만으로 무명 작곡가는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첫 날엔 다섯 명, 8주 후 187명, 더 불어 200여명에 가까운 자살자와 노래를 부른 수많은 가수들 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노래, Gloomy sunday는 발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이 노래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여 일명 글루미 선데이 이론 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여 정부에서 원곡을 삭제해버렸다고 하지만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보니
70년이 넘게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악보와 원곡을 찾아 헤메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글루미 선데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로 노래에 대해 많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지금 Gloomy sunday 노래 원본 파일을 찾아보려고 하면 주로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 앨범이 나올 것 같아요.

글루미 선데이를 처음 보았던 날,
검은 피아노와 검은 옷을 입은 피아니스트, 처음 독일어를 듣게 되었던 그 날  - 

 이 노래에 대해서는 오케스트라 버젼과 여러 가수들의 리메이크 버젼이 있지만 오늘은 영화의 여주인공 Erika marozsan 의 목소리를 가져 왔습니다.





Trauriger Sonntag,
dein Abend ist nicht mehr weit
(우울한 일요일, 저녁이 찾아드는 이 시간)
Mit schwarzen Schatten teil ich
meine Einsamkeit
(나는 내 외로움을 어둠과 함께 나누고 있네)
Schliess ich die Augen,
dann seh ich sie hundertfach
(눈감으면 떠오르는 수많은 당신의 추억)
Ich kann nicht schlafen, und sie werden
nie mehr wach "spiel fuer mich"
(난 잠들지 못하고 당신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리)
Ich seh' Gestalten ziehn im
Zigarettenrauch
(담배 연기 속에 그려보는 당신모습)
Lasst mich nicht hier, sagt den
Engeln ich komme auch
(날 여기 길 잃은 천사처럼 홀로 두지 마오
나도 그대를 따라 가리니)
Trauriger Sonntag
(우울한 일요일)
Einsame Sonntage hab ich
zuviel verbracht
(그토록 수많았던 고독한 일요일들)
Heut mach ich mich auf den
Weg in die lange Nacht
(오늘 나는 긴 밤 속으로 먼길을 떠나리)
Bald brennen Kerzen und
Rauch macht die Augen feucht
(촛불은 타오르고 담배연기는
내 눈을 젖게 하네)
Weint doch nicht,Freunde,
denn endlich fuehl ich mich leicht
(사랑하는 벗들이여 눈물은 흘리지 말아주오)
Der letzte Atemzug bringt
mich fuer immer heim
(이 마지막 숨결이 나를
영원히 고향으로 인도하리)
Im Reich der Schatten werd' ich
geborgen sein
(그 어둠의 나라에서 완전한 안식을 누리리니)
Trauriger Sonntag
(우울한 일요일)




그럼 다음 주에 또, 좋은 음악 들고 올게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8. 08:30
안녕하세요, 사과모히토입니다.

오늘 제가 데리고 온 이야기는 책도, 인물도 아니고 우울하기 그지없는 이별에 대한 이야기인데 다들 마음이 준비를 단단히 하셨나요? 영하 10도를 밑도는 출근길에 줄창 슬픈 노래만 듣다보니 제 머리가 어떻게 되버렸을지도. 블로그에 잠깐 넘버링 바람이 분 적이 있었는데, 저도 늦게나마 참여해보겠습니다.

1. Sing for me

연애할 때든 실연 후든 모든 유행가 가사가 본인의 이야기인 것 같이 들리는 시기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제 경우에는 친구마다, 연애마다 그 사람이나 관계, 추억 같은 걸 떠오르게 하는 BGM이 하나씩 있는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일례로 나리를 생각하면 린킨 파크의 In the end나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가 흐르고, 조대기를 생각하면 god의 하늘색 풍선(팬미팅에서 처음 만났거든요, 하..)이 들리는 듯 합니다.



그래도 언제든 듣게 되는 노래가 있는데, 바로 브라운아이드소울의 시계입니다. 강군의 추천으로 듣게 된 곡인데 들을 때마다 도입부부터 마음이 잔잔해집니다. 딱히 누군가가 떠오르지는 않더라도.. 헤어지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경험했을법한 그 마음이 전해지곤 합니다.



하나 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이소라님의 감성은 대체.. 들을 때마다 뭉클해지는 노래죠. 원래도 유명했지만 더더욱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곡입니다. 가사가 정말 예술인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구석 하나없이 가슴에 와서 박힙니다.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아, 정말.. 뭐라 감히 표현하기도 힘드네요. 시계가 사운드, 목소리로 가슴을 울린다면 바람이 분다는 가사를 하나하나 귀기울여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2. 후유증 

간혹 몇 명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별의 상태를 즐긴다고도 말합니다. 농반진반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개인적인 소견으로도 사람은 참 슬픈 존재인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이전에 친한 선배와 이상한 심리테스트를 한 적이 있는데요. 입에 나는 하얀 상처 아시죠? 왜 알보칠을 부르는 그 곪은 것 말이에요. 그게 생겼을 때 당신의 선택은? 이 바로 질문이었습니다. 보기는 대충

1. 자꾸 건드려본다.
2. 그냥 냅두고 까먹는다.
3. 오렌지주스를 마신다. (살짝 가학적인 ㅋㅋㅋ)
4. 친구들에게 보여준다.
5. 다른 일을 못 한다.



감이 오시나요? 저 같은 경우에는 1번이었어요. 아플 게 뻔한대도 자꾸 건드려보게 되더라구요. 선배는 3번! 비타민C 섭취가 중요하다고 따갑더라도 그렇게 해야 빨리 낫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우습지만 이 심리테스트는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한 테스트입니다. 이미 감을 잡으신 분들이 많겠지만요! 해석도 너무 뻔하니 생략하겠습니다.

3. 이상한 이야기를 마치며

괜히 슬픈 노래들을 들어서 새벽부터 감성이 충만해 이런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아이팟에 들을 곡이 너무 없더라구요. 부디 이해해주시옵고, 이별을 경험했다하여 굳이 극복해내고자 용쓰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힘들어보는 여러분이 되기를? 음, 역시나 끝도 이상하군요. 언제든 '여러분'에서 여러분의 이야기를 공유해주세요. 위로도, 공감도 다 여기에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이별없이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총총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7. 08:30

 저는 결혼식에 가는 게 좋습니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양한 것이 결혼식마다 드러나는 것도, 특히 - 그 부부와 집안이 어떤 가치관을 추구하느냐가 드러나는 - 주례사를 듣는 것도 좋습니다. 결혼식마다 주례사에 들어가는 내용이 생각보다 천차만별인 점이 아주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어디를 가든 공통적인 얘기는 상대방의 결점을 감싸라는 얘기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지난 여러 연애들이 결점을 감싸지 못해 헤어졌습니다. 그러니 백년해로하기 바라는 부부에게 마땅히 옳은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연애에도 어느 정도의 경험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지금까지의 경험들이 해야 할 과제를 마친 것처럼 든든하고 기쁘지만. 그야말로 이제 '어느 정도'의 경험은 겪었다할만한 상황이 오면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부터도 이별을 계속 겪는 것이, 맞는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인지 아니면 내 그릇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인 건지 혹은 둘 다인건지.

 어느 쪽이든 오늘은 무척 기분이 묘하였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결혼식이었으니 아마 이 결혼식 때문은 아니었을 겁니다. 새삼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고 그 생소하고 낯선 느낌이 어렴풋이 낯익었습니다.


 그리고 외로웠습니다. 

 

 지금 혼자인 이 시간 때문이 아니라,
 혹시 영영 당신을 만나지 못할까봐 무척.


 아마 우리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그리고 혼자인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마음은 더욱 쉽게 우리 가까이 찾아올테죠.



 그러나 조금 침착해져봅니다. 너를 만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자신의 상황에서 사람을 만날 기회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면, ‘만나는 일’이 생기기 위해 그 이상 무엇을 더 노력할 수 있는 걸까요? 노력해볼 일이 전혀 없는 건 아니겠지만 사실 그건 노력에 비례해서 반드시 성과가 나오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더 늘려보고, 내가 원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을 주로 더 찾아보는 것 등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the one을 만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조바심을 낸다한들 "만나기 위해"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제 진인사대천명. 다만 결국 내가 원하고 네가 원하는 삶을 함께 만들어 갈 서로를 찾고 싶은 거라면, 지금은 그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빨리 만들어 가는 것밖에는 할 수 없지 않을까.
 

 그래서 마침내 너를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게. 그리고 그 때엔 부디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만나기까지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더라도, 
내 소울 메이트. 너를 만날 수만 있다면.

 


 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사람들이 식장 여기저기의 꽃들을 조금씩 가져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혼식의 꽃은 그렇게 나누어 가져가서 행운을 얻어가는 거라네요.




  결혼식장에서 가져온 바로 그 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일생의 메이트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이 가기를 기원합니다.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s : 우리 블로그에 알찬 답글을 달아주셨던 직업현자님이 일생의 메이트를 만나 3월 3일에 백년가약을 맺으신대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 
        우리 모두 함께 축하하고 그 기운 좀 나눠받아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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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6. 08:30

음악이든 뭐든 오 좋은데 누구지 이 사람 하고 보면 나이가 89..88... 심지어 93년생까지도 발견하게 되는 요즘.


오늘은 영국 출신의 Adele (1988) 입니다. 



 


 
두번째 앨범 '21'이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면서 어딜 가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것도 꽤 오랫동안 -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sexy back 만만치 않게 - 공공장소에서 아델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며 빅마마와 비슷한 느낌이네 라고 생각한다던가요.

아델은 Rolling in the deep에 이어 Turning table, someone like you 이 세 곡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왠만해서는 락밴드나 하우스, 일렉음악으로 자신만의 취향을 고집하는 유러피안들도 아델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요즘은 다들 왜 이렇게 어리지.. 아 Lilly Allen은 아직 85년생인가요.. 요즘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나이가 모두 저보다 어린 것을 보며 저는 다시금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낍니다 뭐지 나 젊은데 왜 괜히 늙은 것 같지 나 아직 이십대인데 아델은 심지어 이혼도 4년 전에 했스므니....언ㄴ...
  

유명한 미국 하이틴 뮤지컬 드라마 Glee에서도 Adele의 노래를 편곡했었는데요, 
Rumor has it 과 Someone like you 두 곡을 함께 합친 버젼으로 
아델과는 다른 색깔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재미가 있어요. 
 
 

원곡도 좋지만 이 편곡버전도 좋아합니동. 가사와 연출도 뭔가 Glee에 딱 맞고 배우들 성량하고도 어울리고 
Glee 버젼의 노래들 중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에요.  


Rolling in the deep은 특히 인기가 폭발적이었던 노래여서, 

John Legend

 


Linkin Park 


 


의 노래도 올라왔어요. 리메이크 버젼 노래들을 좋아해서 즐겨 듣는데 이 두곡 모두 잘 어울리고 좋더라구요 ㅎㅎ


아델의 노래 자체는 워낙 유명해서 많이 들으셨을 것 같아 리메이크 버젼의 노래들을 소개합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 :) 
 




- 그동안 오랫동안 휴재기간이 길어진 점 죄송합니다.
새해에는 좀 더 자주 뵐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 주에 또 뵈어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