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5. 12:24

 

 

수능이 4일 남았다. 이쯤 되면 공부와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멘탈과의 싸움이다. 4층 3학년 교실의 분위기는 자칫 비장하기까지 하다. 전운이 감돈다고나 할까.


목요일 이후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즐거워진다. 족쇄가 풀린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이 기대된다. 체육관은 얼마나 시끌벅적할지, 주변 PC방은 또 얼마나 북적거릴지...


수능이 끝난 고3은 말년병장, 방학한 초딩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잉여로운 존재에 속한다.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후 몇 달간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이 잉여족들은 하루 24시간을 놀고먹는 데 투자한다. 수능 보기 전에는 불안해하면서 놀았지만 이제는 그 최소한의 불안마저도 털어버리고 펑펑 논다. 수능을 잘 본 학생이든 못 본 학생이든 맘놓고 놀아제끼는 점에서는 마치 요플레를 먹을 때는 누구든지 뚜껑부터 핥는다는 만인평등사상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어찌 보면 그들은 수능에만 올인하고 그 외에는 신경을 꺼버리는 개탄스러운 한국 교육 현실의 주인공이자 피해자들이다. 수능이 끝나도 고등학교 교육은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끝이 아니지만, 수능 끝난 고3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대다수의 학교가 단축수업을 실시하며 그마저도 수업을 안 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무단 결석생이나 무단 조퇴생이 대거 발생하기도 한다.


이 고3들의 잉여스러움에 대한 지적이 여러 분야에서 터져나오면서 학교 차원에서 문화탐방을 하거나 영화관람을 하는 등의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뻘짓이나 시간 때우기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듯 수능이 끝났다고 인생이 끝난 게 아니다. 수능 이후에도 원서 제출, 논술, 면접, 적성검사 등 각종 '시험'들이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수험생들을 지켜보고 있다.

 

 

 


거센 바람을 등지고 인생의 또 다른 출발선 앞에 서게 될 고3들에게 묻고 싶다. 수능 시험지를 손에 쥐고 울고 있는가? 나 몰라라 뒤로하고 잠시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가? 그대들에게 고하고 싶다. 훌훌 털고 당장 떠나라고.


이 시기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상을 탈출할 기회는 남은 일생 동안 그리 많지 않다. 곧 있을 점수발표와 대학접수에 연연해 반 답답함과 반 홀가분함으로 어영부영 날짜를 세고 있기엔, 피시방이나 당구장, 노래방에 갇혀 소비적인 문화에 집착하며 또 다른 쳇바퀴를 돌고 있기엔, 고3의 피 끓는 청춘과 두 달 남짓 남은 학창시절의 추억거리가 아깝지 않은가.


물론 일상을 탈출한 뒤에 즐기는 시간들이 일상에서의 그것과 똑같다면 곤란하다. 그동안 묶여있고, 매여 있었던 도시를 떠나 넓은 대자연을 앞에 두고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한다. 그리고 골똘히, 수능 공부할 때보다 더 치열하게,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이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삶의 지향점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여러분은 이제 곧 어른이다. 지금까지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받던 보호는 끝났다. 앞으로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할 결정들은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다. 부모님, 선생님 혹은 다른 사람들의 조언은 듣되, 자신의 생각과 그분들의 생각이 다르거든 자신의 생각대로 할 것을 권하고 싶다. 어른들 말씀 들어 나쁠 건 없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어른들의 말씀대로만 행동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미 여러분들은 20년 가까이 말 잘 듣고 허튼 짓 안 하고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고 기대에 맞춰드렸으니 이제부터는 기성세대의 기대를 조금씩 거부해보길 권한다. 그런다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그러면서 스스로 자라는 것이다. 곧 느끼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자기가 원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어른들이 바라는 것이었다는 것을. 이제부터는 자신만의 욕망을 욕망할 것을 권한다.


독립은 가장 빠르게, 확실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독립하기를 권한다. 20년 동안 부모님 아래에서 먹고 자고 싸고 다 했지만 이제부터는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 등록금 천만원 시대에 그 돈을 전부 벌 수는 없지만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나가기를 바란다. 기숙사비든, 하숙비든, 자기만의 공간은 자기 돈으로 시작해 채워나갈 것을 권한다. 과외도 좋고 알바도 좋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꾸리게 되면 정신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것이다.

 

 

 


꿈을 가질 것을 권한다. 어떤 직업을 가져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그런 거 말고. 그래서 토익점수 높이고 어학연수 가고 스펙을 쌓는다는 그런 거 말고. 그런 건 꿈이 아니라 그냥 목표다. 그건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똑같은 목표란 말이다. 나는 여러분이 개미 무리의 병정개미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내가 말하는 꿈은, 정말 대책 없어 보일 만큼 낭만적인 그런 꿈이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들 행복의 총량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 '차별 없고 부조리 없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이런 것처럼 한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하면 아주 조금 움직일 수도 있는 그런 초대형의 것을 권하고 싶다.


오노 요코가 말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이루어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가슴에 간직하고 끊임없이 꿈꾸는 것, 그리고 그것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그게 꿈이다. 나는 우리 소중한 고3 학생들이 꿈꾸는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7. 29. 07:01

1. 사격에서 진종오가 금메달을 땄고, 수영에서 박태환이 은메달을 땄고, 남자 양궁 단체는 동메달을 땄다. 그래서 메달이 세 개다. 종합 순위 4위란다. 종합 순위 4위? 재밌는 말이다. 그 순위라는 걸 어떻게 매기는가 보면 더 재밌다. 은메달이 100개가 있어도, 금메달 1개보다 못한 것이 지금의 순위 산정 방법이다. 정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순위를 매기는가 싶어 국제 올림픽 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는데, 위와 같은 방식으로 순위를 매기기는커녕 홈페이지 어디에서도 국가별 메달 갯수를 가지고 순위를 매기는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2. 올림픽 정신이라는 게 무엇인가. 스포츠를 통해 지구촌의 대화합을 이끌어낸다는 것이 본래의 목표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꼭 메달의 갯수를 가지고 1등부터 꼴등까지 국가별로 서열화를 시켜야 하는 걸까. 그냥 있는 그대로 승부를 즐기고, 승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패자에게는 위로의 박수를 보내주면 안 되는 걸까. <은메달에 그쳤습니다>라는 말은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분야에서 전 세계를 통틀어 두 번째로 짱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할 말이 아니다. 꼭 1등을 해야만 하는가. 금메달만이 최고인가.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삼성 그룹의 광고카피와, 그들의 불법 재산 승계가 함께 스쳐지나가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3. 남자 축구 어떻게 됐어? 라는 물음에 상대방은 우리가 졌어, 라고 답한다. 왜 <우리>가 졌다고 말하는가. 한국 축구 대표팀이 진 것이고, 박태환이 우승한 것이다. 우리가 이기거나 우리가 진 것이 아니다. 집단과 개인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국가와 시민 간의 관계는 특히나 더 그러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우리>는 누구를 일컫는 말일까? 한국경제를 손에 쥐고 있는 소수의 재벌? 아니면 그 재벌이 소유한 기업으로부터 해고되어 거리를 전전하는 실업자인가? 같은 일을 하고도 남성의 절반밖에 임금을 받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인가? 아니면 학벌주의의 제물이 되어 학교에서 학원으로, 그리고 학원에서 다시 학교로 내몰리는 청소년들을 지칭하는 것인가? <우리>라는 말은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하나의 공동 운명체속에 뒤섞어 놓음으로써 양자간의 갈등을 희석시키고 은폐하는 대단히 이데올로기적인 기호다.

 

4. 올림픽 열기에 편승해 한 몫을 챙기려는 대기업들의 얄팍한 상술은 이젠 신물이 난다. KB는 매번 올림픽 때마다 스포츠 스타를 내세워 브랜드 이미지 향상을 꾀하는 기업인데, 하계 올림픽에는 박태환, 동계 올림픽에는 김연아라는 카드를 칼같이 쓰고 있다. 그런데 그 KB는 몇 년 전 프로축구의 2부리그 격인 내셔널리그에서 국민은행 축구단이 우승해 K리그로 승격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자 구단 운영자금을 감당할 수 없다는 변명으로 K리그 승격을 거부했던 기업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은행이 자금이 없다는 이유로 프로스포츠팀을 만드는 것을 거부했는데, 이번에는 스포츠 스타를 앞세워 돈벌이를 하려고 하다니. 재밌지 않은가? 과거 요미우리의 이승엽과 주니치의 이병규를 중계하느라 국내 프로야구를 외면했던 SBS 스포츠는, 지난 베이징 올림픽 때 야구대표팀이 쿠바와 평가전을 갖게 되자 SBS 공중파 채널을 할애하면서까지 그 경기를 중계했다. 그놈의 애국심이 뭐길래, 국가대표팀이 뭐길래, 민족주의가 뭐길래 말이다.

 

5. 스포츠는 그냥 스포츠 자체로 즐기는 데서 끝나야 한다.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말인 <건전한 여가선용>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딱 좋다. 스포츠에 어떤 목적의식이 가미되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축구 국가대표를 칭할 때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태극전사라는 말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서슬이 퍼렇다. 꼭 국가대항전이 아니더라도 스포츠에서 흔히 쓰이는 평정, 원정, 개선, 출격, 용병 등 수많은 용어는 전쟁에서나 쓰이던 것들이었다. 스포츠 캐스터는 후지산을 무너뜨리고, 만리장성을 넘고, 유럽을 평정하고, 한국으로 개선한다고 한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에서 일그러진 군사주의가 떠오른다.

 

6. 박태환에게 실격 판정을 내린 심판이 중국인이라는 말에, 누리꾼들은 짱깨니, 떼놈이니, 중국놈이니, 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중국인 심판이 아니라 미국인 심판이었단다.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국가간의 대항전은 민족감정으로 번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맹목적인 애국심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그것은 곧 타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적개심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가당치도 않은 순위 집계 시스템 하에 대한민국이 종합 순위 2등을 했다고 해서, 내가 200여국이 넘는 세계의 나라 중에 2등 국가의 시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7. 오늘은 축구 대표팀의 경기가 있다고 한다. 또다시 거리에 붉은 물결이 펼쳐질듯 싶다. 혹자는 이 붉은 물결에서 화합된 대한민국의 단결력을 보고, 혹자는 국가주의적 광기를 보고, 혹자는 축구를 빙자한 축제의 마당을 본다. 몇십만명의 거대한 인파가 경찰의 저지선 안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모습을 통해 혹자는 우리 사회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경배하고, 혹자는 일탈의 욕구가 권력이 허용하는 선 안에서 길들여질 위험성을 지적한다. 월드컵에서 발견되는 우리 사회의 잠재적 에너지를 사회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자는 주장과 신명나는 놀이판에서 겪었던 해방과 긍정의 경험을 그 자체로 인정하자는 반론도 있다. 월드컵도 그렇고, 재미있는 것은 거리로 나오는 응원인파 중 여성과 청소년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흔히 축구팬 하면 청장년층의 남성들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거리에 나온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거리 응원에서 분출되는 열정과 환희가 억눌리고 곤고한 일상에서의 해방의 뜻이라면, 하늘을 찌르는 여성과 청소년의 함성은 억눌린 그들의 꿈과 욕구가 터져나오는 비명 소리는 아닐까.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여성과 청소년의 꿈과 욕구를 억누르고 있으며, 또 이를 분출할 수 있는 합법적 공간을 제약하였는지를 잘 드러낸다. 그런 뜻에서 사실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일상을 떨치고 날아올라 공동체적인 환희를 경험할 수 있는 계기라면, 여성과 청소년에게 그것은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아닌 무엇이라도 좋았다. 이미 관광버스 아줌마와 오빠부대에서 그 단초를 보았다. 축제가 끝난 후, 꿈에서 깨어보니 다시 삭막한 무한경쟁의 장에 외로이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하는 수험생들이 겪을 후유증이 사실 난 제일 두렵다.

 

8. 올림픽과 같은 단기적이고 폭발적인 이벤트에서 얻는 쾌락 말고,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나 여유, 문화활동을 우리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생겼으면 좋겠다. 타인과 공감하고, 소통하고,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는 데서 삶의 기쁨과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콩나물 시루 같은 좁은 교실에 아이들을 가두고 병든 닭처럼 길러내는 대신에, 자유롭게 뛰놀 수 있도록, 자신의 꿈과 미래를 능동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교육헌장에 나와있는 그런 전인교육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7. 16. 10:03

나의 사랑, 8반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하세요. 사랑하는 8반 친구들. 여러분과 함께 한 학기를 보낸 담임선생님입니다. 반갑죠? 벌써 7월 16일입니다. 2012년이 절반 이상이 흘러갔네요. 반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그날을 기억하나요? 천안 국립 청소년 수련원으로 가기 전 학교에서 모였던 오리엔테이션 날 아침, 떨리는 마음으로 심호흡을 크게 하고 8반 교실의 문을 열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여러분처럼 우수한 학생을 만나는 것도 처음이었고, 더군다나 여학생을 맡아본 적은 더더욱 없었기에 더 많이 긴장을 했던 것 같습니다. 

 

떨리기는 피차 마찬가지였겠지요? 우리 반에는 근처에 사는 친구가 거의 없습니다. 명문고라고 하여 멀리까지 유학 아닌 유학을 왔는데, 이상한 놈팽이가 담임이 되면 어떡하나, 같은 반 친구들과 잘 지내니 못하면 어떡하나, 학교생활에 적응은 잘할 수 있을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성적이 안 나오면 어쩔지, 어쩌면 저보다 여러분이 더 많이 걱정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2월 말부터 시작된 우리의 여정이 3,4,5,6월을 거쳐 이제 방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일주일간의 기말고사가 끝나면 고등학생으로서의 첫 방학을 맞이하겠지요. 열흘 이상 여러분을 못 볼 생각을 하니 퍽 섭섭합니다. 다들 같은 마음이겠지요? 

 

정신없이 흘러간 한 학기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생전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 쉬지 않고 어려운 말을 쏟아내는 선생님들. 숙제는 왜 그렇게 많은지. 수행평가는 뭐가 그렇게 복잡한지. 모의고사보다 어려운 내신 시험 덕에 멘붕도 겪었을 테고, 아침저녁으로 버스를 타고 다니느라 체력도 많이 소진했을 것입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굉장한 혹사를 당했던 2012년 1학기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방학이 되면, 부디 푹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반어적 표현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많이 쉬고, 많이 놀고, 그러는 와중에 많은 고민과 명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더 성장한 모습으로 2학기에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것보다,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다녀와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무엇을 잘하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6월 7일에 봤던 모의고사에서 우리 1학년 8반은 1학년 반 중 꼴찌를 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그것 때문에 결코 여러분에게 실망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공부를 조금 더 잘하는 어떤 반 학생들보다, 밝고 명랑한 우리 8반 학생들이 좋습니다. 교실을 조금 더 깨끗하게 쓰는 어떤 반 학생들보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임하는 우리 8반 학생들이 좋습니다. 규칙과 규율을 잘 준수해 착하다고 소문난 어떤 반 학생들보다, 조금 비뚤어보일지언정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내세울 줄 아는 우리 8반 학생들이 좋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8반 학생들의 광팬입니다. 한 반 학생 모두가 똑같이 예쁘다는 어느 선생님의 말씀. 전에는 믿지도 않았고 뻔한 대외용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38명의 학생이 똑같이 예쁠 수가 있구나. 누가 더 예쁘지도 않고, 덜 예쁘지도 않게 한결같이 사랑스러운 것이 가능하구나. 이런 것들을 몸소 느끼게 되자 그런 감동을 준 여러분이 한없이 존경스러워졌고, 그런 것을 느끼게 된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진지모드로) 하지만 때로는 여러분이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여러 학생들은(이미 전국적으로 매우 우수한 성적이지만) 자신의 인생이 실패할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전혀 그럴 필요가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됩니다. 시험에서의 '성공'과 '실패'는 결코 인생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삶을 가지고 '성공‘이니 '실패'니 하고 평가하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다른 걸 다 접어두고 위의 명제만 가지고 봤을 때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도 나쁘지 않은 학교를 나왔고, 27세라는 어린 나이에 교직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걸 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저보고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것은 제 인생에서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지만, 그걸 이루었다고 해서 제가 꿈꾸던 삶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제 미래를 설계하고, 그 길을 걸어나가기 위해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많이 좁아지기는 했지만, 저는 아직도 다양한 꿈과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사가 되어야겠다, 연봉 얼마를 받아야겠다, 결혼은 언제하고 애는 언제 낳아야겠다. 등등. 이런 것들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세상에 불만이 많습니다. 가진 자의 논리대로 돌아가고, 약자가 보호 받지 못하고, 부조리와 불합리가 판치는 이 세상이 싫습니다. 제 꿈은, 제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것입니다. 용기도 많이 사라지고, 많이 비겁해지긴 했지만, 대학에 입학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저는 달라진 거 하나도 없는 '제 자신'일 뿐입니다. 저는 이런 제가 좋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잘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학생들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든지, 그렇지 않든지 또한 어떠한 악조건이 있든지 간에 학생 자신은 변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언제나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자신의 실력에 미치지 못한 점수를 받은 것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은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도 탓할 것은 아닙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보는 우리 8반의 모든 학생들은 정말 피땀을 흘리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저는 다만, 여러분들이 결코 대학 입시와 같은 지엽적인 것들을 인생의 전부라고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승자의 여유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지금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거나, 미취업자로 산다고 해도 낙심한다거나 자신을 원망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만약 제가 그랬다면, 전 이미 인생을 포기했어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보다 더한 시련들을 많이 겪었기 때문입니다.  

 

몇 번 말한 적이 있지만 저는 틱 장애 때문에 굉장히 불우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학교에서는 소위 말하는 ‘왕따’였습니다. 가족들도 저를 부끄러워했습니다. 9층 난간에도 두 번 올라갔지만, 한 번은 용기가 없어서, 한 번은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서 뛰어내리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자주 저를 나무랐지만, 부모님을 원망하기보다는 부모님을 창피하게 해드린 것 같아 너무나 죄송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주눅 들거나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의 이런 처지를 알게 된 친구들이 제가 그렇게 힘든 상황이었는지 몰랐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오히려 그런 경험들이 제가 정말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보다 더 힘든 시기를 보낸 학생들도 얼마든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학생이 그럴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돈이 없다고, 원하는 대로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은 분명 아니니까요. '자신만 보면 미치겠다', '나는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쁜지 모르겠다' 등등은 저에게 질문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하는 푸념들입니다. 왜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지, 자신의 존재를 왜 그렇게 하찮게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성공하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금은 대학이 취업학원화 되었지만, 이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청년실업률이 60%를 넘는다고 하지만, 대학 본연의 목적은 학문 탐구와 진리 추구에 있어야 합니다. 저는 언제나 용기 있게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학생들의 패기와 열의를 적극 지지합니다. 공부, 성적, 대학, 간판. 그런 것들은 언젠가 무의미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언젠가는 계급장을 다 떼고, 인간 누구누구로 평가받는 날들이 올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직함, 포장 등은 어디까지나 사회생활의 출발점에서만 도움을 줄 뿐입니다. 그 이후에 헤쳐 나갈 수많은 고난과 풍파들을 이겨낼 능력과, 용기와, 굳센 의지와, 그리고 따뜻하고 예쁜 심성들은 학교의 간판으로는 길러지지 않습니다.

 

궁극적인 제 꿈은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교직에 몸담든, 다른 어떤 일을 하든지 저는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공부해온 것들, 아이들을 가르쳤던 내용들은 그런 삶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만약에 제가 다른 전공을 했거나, 아니면 대학에 다니지 않았을 지라도 저는 그런 삶을 꿈꿨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을 찾기 위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무슨 대학 무슨 학과가 목표라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큰 꿈을 가질 수 있는 10대들이 그런 하찮은 목표에 얽매이는 게 보기 좋지는 않습니다. 대학에 너무 얽매이지 마시고, 좀 더 고귀한 인생의 목표를 가졌으면 합니다. 대학은 그러한 인생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과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대학이냐 가 아니라, 대학에 입학해서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대학에 입학을 하든, 재수를 하든, 아니면 사회에 나가 일을 하든 그 순간순간의 삶에 만족하시고, 자신의 인생 목표를 향해 자신을 좀 더 가꾸는 학생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욕심을 부릴 만한 것에는 욕심을 내면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다만, 우월감에 빠져서 자만하거나 열등감에 빠져서 자학하거나 남들을 질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고요.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자신을 사랑하고, 그 삶에 만족하기만 하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매우 쉬운 일인데도 사람들은 '성공주의'과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서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기쁨을 느끼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야 행복할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그렇게 되면, 만족을 못 느끼고 더 많은 욕심을 부리죠. 저는 학생들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잘 살펴보고 그것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그 선택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며, 모두 다 같이 축하해줄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그런 세상을 위해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진심을 다해 응원합니다.  

 

오노 요코가 말했습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요. 이루어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가슴에 간직하고 끊임없이 꿈꾸는 것, 그리고 그것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그것이 꿈입니다. 저는 우리 소중한 1학년 8반 학생들이 꿈꾸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기말 시험 후회 없이 치르고, 즐거운 여름 방학 보내세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27. 08:30


영화 An education 을 오랫만에 다시 봤습니다.
(스포 조오금 있어요)

언에듀케이션은 순수한 얼굴의 캐리 멀리건과 조역으로 자주 볼 수 있는 피터 사스가드가 나오는 성장기 영화인데요,

요즘 사운드트랙을 듣다가 노래가 좋아서 영화를 다시 보다 보니
대체로 사운드 트랙이 그 장면이나 여주인공의 마음에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더라구요.

특히 영화의 마지막 엔딩 장면에 Duffy의 Smoke without Fire 대신에
Beth Rowley의 이 노래가 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운드 트랙 중 Beth Rowley의 "you've got me wrapped around your little finger" 를 가져와 봤어요. 
이 노래는 원래 캐리 멀리건이 말 그대로 피터 사스가드에게 푹 빠져 있을 때 나오는 노래 입니다.


 



Duffy- Smoke without fire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더피의 목소리와 가사가 나오는데
뭔가 그렇고 그런 신파성 멜로영화의 엔딩으로 끝나는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시대적 배경도 있으니까 저런 풍의 재즈가 들어가는 것도 좋고 더피의 목소리도 어울리지만 
그러기엔 캐리 멀리건이 너무 어리고 귀엽고 순수하단말이오...
저 귀엽고 순수한 캐리 멀리건 여주인공이 쭈욱 스크린에 나오다가 마지막에 더피의 목소리가 나오면 
뭔가 너무 "그래! 나 아픔을 겪고 폭풍성장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동.
사람이 그렇게 빨리 성장할리가 있습니꺼...

그보다는 Beth의 목소리와 저 노래로 아이러니하게 끝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엔딩 장면에 캐리 멀리건이 성장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 보여지는 만큼 
오히려 순수했기에 그만큼 의심없이 무언가에 푹 빠질 수 있었던 노래를 배경으로 해도 좋을 것 같더라구요. 

 

 언에듀케이션은 사운드 트랙이 대부분 7-80년대의 재즈여서
재즈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영화 줄거리 도중에 파리에 가있는 장면도 있어서
불어로 된 재즈도 있다는!

그럼,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좋은 한 주 되세요! :)






'가장 보통의 존재 > 월요일, 그림으로 가는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Gloomy sunday  (0) 2012.02.13
김연아 이후로  (1) 2012.02.06
Gonzales , 피아노  (3) 2011.12.19
새로운 음악이 듣고 싶을 때 Tastekid.com  (4) 2011.11.28
주드 로, Poker Face  (2) 2011.11.2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14. 08:30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고 계십니까? '진짜 나를 아는' 사람을 얼마나, 혹은 단 한명이라도 가지고 계시나요? 자신의 보여준다는 것은 연애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할까요? 오늘은 참고가 될 만한 사회심리학 연구를 짤막하게 살펴볼까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야 연애가 깊어진다

 연애 단계를 다룬 연구 중에는 루이스(R. A. Lewis)의 6단계가 있습니다. 이는 첫 만남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6단계로 나눈 것인데요,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있으며 도움될 만한 것은 무엇인지 한번 살펴 보려 합니다.

1단계는 유사성의 인지 입니다. 이는 가치관, 지위, 흥미, 관심 등에서 서로 공통점이 많다고 느끼면서 그것을 확인해 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관심, 흥미, 의견이며 이 단계에서 사람들이 본래 성격을 드러내는 일은 잘 없기 때문에 이때 성격은 그리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단계는 '자기 제시(self-presentation)'가 이루어집니다. '자기 제시'란 다른 사람으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나 물질적인 보수 등의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전달하는 행위다. 사람들은 대게 거짓된 자기를 보여주기보다는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은 감추는 식으로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조정합니다. 즉 이 단계에서는 굳이 자신의 본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으므로 두 사람은 서로 바람직한 성격을 가졌으리라 생각하며 상대의 언행에서 진짜 성격을 짐작하는 데 그치게 됩니다.

2단계는 좋은 관계의 구축입니다. 1단계에서 공통점을 발견한 두 사람이 바람직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인데요, 보통 첫 만남이 있는 후 두 번째 데이트 신청을 상대가 허락하는 순간부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시작되지만 아직 헌신하는 사이는 아닌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3단계는 자기 개시의 단계입니다. 2단계의 만남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기 개시(self-disclosure)'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보통 자신에 관계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자기 개시'라고 합니다. 이는 자기 제시처럼 인상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소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의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상대방과 좀 더 친밀한 관계로 진전시켜가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의 속마음을 열고 보여준다는 뜻이지요.

친밀한 관계로 진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개시가 필요합니다. 자기개시가 없으면 형식적인 관계에서 발전하기 힘듭니다. 연애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단계에서는 자신의 약점이나 결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물론 정색을 하고 노골적으로 이야기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나가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혹은 행동으로 은근슬쩍 내비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주의할 점은 솔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처음부터 모두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개시란 교제가 어느 정도 진전된 상태에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4단계는 역할취득 단계입니다. 이 단계가 되면 두 사람은 서로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에 충실하게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서로 맡은 역할에 충실해지다 보니 모르는 사람에게는 두 사람 사이에 전혀 유사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끼리는 서로 유사성을 인지 한 후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별로 문제될 일이 없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여기서 역할 분담을 잘못하면 결혼 후 괴로워진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결혼 전에 기선제압을 해야 한다는 말은 이 단계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는 의미와 동일합니다.

5단계는 역할 적합 입니다. 두 사람간에 암묵적으로 역할 분담이 결정되면 그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는 군요. 분담된 역할에 대해 서로 동의하면 연애는 다음 단계로 진전됩니다.

6단계는 결정 입니다. 이제 두 사람은 하나의 단위로 행동하는 단계에 이르러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결혼하게 되는 거죠. 물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군요.


reference. (일전에도 본 일 있는) 이철우 <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


 루이스의 연애 6단계에 따르면 '형식적인' 관계와 '깊은' 관계를 가르는 경계가 바로 '자기 개시'의 유무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이 내용에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3단계의 요지는 평소 저의 생각과 비슷한 것 같았어요. 제가 초창기 포스팅에서 '연애'가 좋은 이유는 '진짜 나'가 드러나서 자기를 인식하고 다듬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씀 드린 적 있죠? 사회심리학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연애는 '자기 개시'가 이루어져서 자기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좋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좋은 것만을 보여주어 즐겁기만 한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깊고 진한' 연애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린 것 역시 '자기 개시'를 통해 어느 정도 진전된 단계에 이른 연애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요. ㅎㅎ 

 '친밀한 관계' 중 특수한 형태인 것이 연애가 아닐까 합니다. 이 말인즉, 연애관계에 해당되는 어떤 원칙들은 다른 친밀한 관계에도 공유, 적용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자기 개시' 역시 그런 개념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우정 관계의 깊이도 자기개시의 유무와 관계가 있었던 것 같거든요.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추가적인 의문은 남아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의문은 이 원칙이 반드시 유효할까? 라는 것입니다.
 자기 개시 없이도 깊은 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가능할까요? 만약 누구에게도 자기 개시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자기 개시가 너무나 괴로운 일인 사람이라면 어떨까?
 만약 자기 개시 없이도 깊은 관계가 성립한다면, 그건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나요?



 추가적인 의문이 남아있지만, 우선은 Happy Valentine입니다. :D
 오늘 하루 설레는 계획 있으신가요?
 혼자이든 함께이든 오늘 하루는 우리 두근두근한 일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13. 08:30


 

빌리 홀리데이, 사라 브라이트만, 헤더 노바, 시네이드 오코너, 비요크, 국내 가수로는 자우림과 이소라.

글루미 선데이 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작곡가 레조 세레스가 만든 곡으로,
이 한 곡만으로 무명 작곡가는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첫 날엔 다섯 명, 8주 후 187명, 더 불어 200여명에 가까운 자살자와 노래를 부른 수많은 가수들 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노래, Gloomy sunday는 발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이 노래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여 일명 글루미 선데이 이론 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여 정부에서 원곡을 삭제해버렸다고 하지만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보니
70년이 넘게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악보와 원곡을 찾아 헤메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글루미 선데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로 노래에 대해 많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지금 Gloomy sunday 노래 원본 파일을 찾아보려고 하면 주로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 앨범이 나올 것 같아요.

글루미 선데이를 처음 보았던 날,
검은 피아노와 검은 옷을 입은 피아니스트, 처음 독일어를 듣게 되었던 그 날  - 

 이 노래에 대해서는 오케스트라 버젼과 여러 가수들의 리메이크 버젼이 있지만 오늘은 영화의 여주인공 Erika marozsan 의 목소리를 가져 왔습니다.





Trauriger Sonntag,
dein Abend ist nicht mehr weit
(우울한 일요일, 저녁이 찾아드는 이 시간)
Mit schwarzen Schatten teil ich
meine Einsamkeit
(나는 내 외로움을 어둠과 함께 나누고 있네)
Schliess ich die Augen,
dann seh ich sie hundertfach
(눈감으면 떠오르는 수많은 당신의 추억)
Ich kann nicht schlafen, und sie werden
nie mehr wach "spiel fuer mich"
(난 잠들지 못하고 당신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리)
Ich seh' Gestalten ziehn im
Zigarettenrauch
(담배 연기 속에 그려보는 당신모습)
Lasst mich nicht hier, sagt den
Engeln ich komme auch
(날 여기 길 잃은 천사처럼 홀로 두지 마오
나도 그대를 따라 가리니)
Trauriger Sonntag
(우울한 일요일)
Einsame Sonntage hab ich
zuviel verbracht
(그토록 수많았던 고독한 일요일들)
Heut mach ich mich auf den
Weg in die lange Nacht
(오늘 나는 긴 밤 속으로 먼길을 떠나리)
Bald brennen Kerzen und
Rauch macht die Augen feucht
(촛불은 타오르고 담배연기는
내 눈을 젖게 하네)
Weint doch nicht,Freunde,
denn endlich fuehl ich mich leicht
(사랑하는 벗들이여 눈물은 흘리지 말아주오)
Der letzte Atemzug bringt
mich fuer immer heim
(이 마지막 숨결이 나를
영원히 고향으로 인도하리)
Im Reich der Schatten werd' ich
geborgen sein
(그 어둠의 나라에서 완전한 안식을 누리리니)
Trauriger Sonntag
(우울한 일요일)




그럼 다음 주에 또, 좋은 음악 들고 올게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8. 08:30
안녕하세요, 사과모히토입니다.

오늘 제가 데리고 온 이야기는 책도, 인물도 아니고 우울하기 그지없는 이별에 대한 이야기인데 다들 마음이 준비를 단단히 하셨나요? 영하 10도를 밑도는 출근길에 줄창 슬픈 노래만 듣다보니 제 머리가 어떻게 되버렸을지도. 블로그에 잠깐 넘버링 바람이 분 적이 있었는데, 저도 늦게나마 참여해보겠습니다.

1. Sing for me

연애할 때든 실연 후든 모든 유행가 가사가 본인의 이야기인 것 같이 들리는 시기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제 경우에는 친구마다, 연애마다 그 사람이나 관계, 추억 같은 걸 떠오르게 하는 BGM이 하나씩 있는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일례로 나리를 생각하면 린킨 파크의 In the end나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가 흐르고, 조대기를 생각하면 god의 하늘색 풍선(팬미팅에서 처음 만났거든요, 하..)이 들리는 듯 합니다.



그래도 언제든 듣게 되는 노래가 있는데, 바로 브라운아이드소울의 시계입니다. 강군의 추천으로 듣게 된 곡인데 들을 때마다 도입부부터 마음이 잔잔해집니다. 딱히 누군가가 떠오르지는 않더라도.. 헤어지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경험했을법한 그 마음이 전해지곤 합니다.



하나 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이소라님의 감성은 대체.. 들을 때마다 뭉클해지는 노래죠. 원래도 유명했지만 더더욱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곡입니다. 가사가 정말 예술인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구석 하나없이 가슴에 와서 박힙니다.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아, 정말.. 뭐라 감히 표현하기도 힘드네요. 시계가 사운드, 목소리로 가슴을 울린다면 바람이 분다는 가사를 하나하나 귀기울여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2. 후유증 

간혹 몇 명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별의 상태를 즐긴다고도 말합니다. 농반진반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개인적인 소견으로도 사람은 참 슬픈 존재인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이전에 친한 선배와 이상한 심리테스트를 한 적이 있는데요. 입에 나는 하얀 상처 아시죠? 왜 알보칠을 부르는 그 곪은 것 말이에요. 그게 생겼을 때 당신의 선택은? 이 바로 질문이었습니다. 보기는 대충

1. 자꾸 건드려본다.
2. 그냥 냅두고 까먹는다.
3. 오렌지주스를 마신다. (살짝 가학적인 ㅋㅋㅋ)
4. 친구들에게 보여준다.
5. 다른 일을 못 한다.



감이 오시나요? 저 같은 경우에는 1번이었어요. 아플 게 뻔한대도 자꾸 건드려보게 되더라구요. 선배는 3번! 비타민C 섭취가 중요하다고 따갑더라도 그렇게 해야 빨리 낫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우습지만 이 심리테스트는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한 테스트입니다. 이미 감을 잡으신 분들이 많겠지만요! 해석도 너무 뻔하니 생략하겠습니다.

3. 이상한 이야기를 마치며

괜히 슬픈 노래들을 들어서 새벽부터 감성이 충만해 이런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아이팟에 들을 곡이 너무 없더라구요. 부디 이해해주시옵고, 이별을 경험했다하여 굳이 극복해내고자 용쓰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힘들어보는 여러분이 되기를? 음, 역시나 끝도 이상하군요. 언제든 '여러분'에서 여러분의 이야기를 공유해주세요. 위로도, 공감도 다 여기에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이별없이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총총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7. 08:30

 저는 결혼식에 가는 게 좋습니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양한 것이 결혼식마다 드러나는 것도, 특히 - 그 부부와 집안이 어떤 가치관을 추구하느냐가 드러나는 - 주례사를 듣는 것도 좋습니다. 결혼식마다 주례사에 들어가는 내용이 생각보다 천차만별인 점이 아주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어디를 가든 공통적인 얘기는 상대방의 결점을 감싸라는 얘기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지난 여러 연애들이 결점을 감싸지 못해 헤어졌습니다. 그러니 백년해로하기 바라는 부부에게 마땅히 옳은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연애에도 어느 정도의 경험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지금까지의 경험들이 해야 할 과제를 마친 것처럼 든든하고 기쁘지만. 그야말로 이제 '어느 정도'의 경험은 겪었다할만한 상황이 오면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부터도 이별을 계속 겪는 것이, 맞는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인지 아니면 내 그릇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인 건지 혹은 둘 다인건지.

 어느 쪽이든 오늘은 무척 기분이 묘하였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결혼식이었으니 아마 이 결혼식 때문은 아니었을 겁니다. 새삼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고 그 생소하고 낯선 느낌이 어렴풋이 낯익었습니다.


 그리고 외로웠습니다. 

 

 지금 혼자인 이 시간 때문이 아니라,
 혹시 영영 당신을 만나지 못할까봐 무척.


 아마 우리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그리고 혼자인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마음은 더욱 쉽게 우리 가까이 찾아올테죠.



 그러나 조금 침착해져봅니다. 너를 만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자신의 상황에서 사람을 만날 기회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면, ‘만나는 일’이 생기기 위해 그 이상 무엇을 더 노력할 수 있는 걸까요? 노력해볼 일이 전혀 없는 건 아니겠지만 사실 그건 노력에 비례해서 반드시 성과가 나오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더 늘려보고, 내가 원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을 주로 더 찾아보는 것 등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the one을 만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조바심을 낸다한들 "만나기 위해"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제 진인사대천명. 다만 결국 내가 원하고 네가 원하는 삶을 함께 만들어 갈 서로를 찾고 싶은 거라면, 지금은 그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빨리 만들어 가는 것밖에는 할 수 없지 않을까.
 

 그래서 마침내 너를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게. 그리고 그 때엔 부디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만나기까지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더라도, 
내 소울 메이트. 너를 만날 수만 있다면.

 


 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사람들이 식장 여기저기의 꽃들을 조금씩 가져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혼식의 꽃은 그렇게 나누어 가져가서 행운을 얻어가는 거라네요.




  결혼식장에서 가져온 바로 그 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일생의 메이트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이 가기를 기원합니다.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s : 우리 블로그에 알찬 답글을 달아주셨던 직업현자님이 일생의 메이트를 만나 3월 3일에 백년가약을 맺으신대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 
        우리 모두 함께 축하하고 그 기운 좀 나눠받아봐요 ㅎㅎ




'가장 보통의 존재 > 화요일, 나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8. 너를 보여줘  (1) 2012.02.14
#26.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5) 2012.01.24
#25. love letter  (2) 2012.01.17
#24. Question2 - 닮은 사람 vs 다른 사람  (11) 2012.01.07
#23. <딸아, 연애를 해라>  (4) 2012.01.0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6. 08:30

음악이든 뭐든 오 좋은데 누구지 이 사람 하고 보면 나이가 89..88... 심지어 93년생까지도 발견하게 되는 요즘.


오늘은 영국 출신의 Adele (1988) 입니다. 



 


 
두번째 앨범 '21'이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면서 어딜 가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것도 꽤 오랫동안 -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sexy back 만만치 않게 - 공공장소에서 아델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며 빅마마와 비슷한 느낌이네 라고 생각한다던가요.

아델은 Rolling in the deep에 이어 Turning table, someone like you 이 세 곡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왠만해서는 락밴드나 하우스, 일렉음악으로 자신만의 취향을 고집하는 유러피안들도 아델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요즘은 다들 왜 이렇게 어리지.. 아 Lilly Allen은 아직 85년생인가요.. 요즘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나이가 모두 저보다 어린 것을 보며 저는 다시금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낍니다 뭐지 나 젊은데 왜 괜히 늙은 것 같지 나 아직 이십대인데 아델은 심지어 이혼도 4년 전에 했스므니....언ㄴ...
  

유명한 미국 하이틴 뮤지컬 드라마 Glee에서도 Adele의 노래를 편곡했었는데요, 
Rumor has it 과 Someone like you 두 곡을 함께 합친 버젼으로 
아델과는 다른 색깔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재미가 있어요. 
 
 

원곡도 좋지만 이 편곡버전도 좋아합니동. 가사와 연출도 뭔가 Glee에 딱 맞고 배우들 성량하고도 어울리고 
Glee 버젼의 노래들 중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에요.  


Rolling in the deep은 특히 인기가 폭발적이었던 노래여서, 

John Legend

 


Linkin Park 


 


의 노래도 올라왔어요. 리메이크 버젼 노래들을 좋아해서 즐겨 듣는데 이 두곡 모두 잘 어울리고 좋더라구요 ㅎㅎ


아델의 노래 자체는 워낙 유명해서 많이 들으셨을 것 같아 리메이크 버젼의 노래들을 소개합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 :) 
 




- 그동안 오랫동안 휴재기간이 길어진 점 죄송합니다.
새해에는 좀 더 자주 뵐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 주에 또 뵈어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4. 16:00

수업이 없는 시간, 주차장에서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창 재밌게 수다를 떨고 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성수고 최고의 그레이트 티처이신 B선생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제가 롤 모델로 삼고 있는 B선생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도 은근 주변에 여자가 많은 것 같애. 근데 실속이 없지? 너무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다 잘해주지마. 그리고 처음에는 좀 차갑게 굴어봐. 그러다 잘해줘야지. 하긴 이렇게 기술적으로 사람을 대하다보면 한계가 오지. 잘해봐.


나쁜 남자의 시대입니다. 내게 항상 웃어주고, 어떤 부탁을 해도 다 들어주고, 언제나 나만을 바라봐주는 착하지만 따분한 남자의 시대는 갔습니다. 요즘은 시니컬한 매력이 있는 나쁜 남자가 대세입니다.




훈훈한 외모,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능력, 완벽주의적인 성향까지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그 남자. 물론 이기적이고, 독선적인데다, 까칠하기 그지없어 일견 싸가지까지 없어 보이는 그지만, 천천히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면 순수한 매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매력적인 다른 여자가 자기에게 다가와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차가운 그지만, 오직 '내 여자'에게만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을 보이는 남자, 겉으론 강한 척해도 속마음은 한없이 여린 남자,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라도 내 여자를 지켜주려고 하는 든든한 그 남자. 그 어떤 여자가 그런 나쁜 남자의 치명적인 매력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예전에는 ‘그 남자는 나쁜 남자입니다. 무조건 피하세요.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요즘에는 드라마에서도, 소설에서도, 심지어 연애 매뉴얼에서도, '나쁜 남자는 충분히 길들일 수 있다.'는 제법 솔깃한 이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드라마 속의 나쁜 남자 길들이기, 참 쉽습니다. 




오늘 회사에 갓 출근한 키 크고 잘생기고 능력 있고 무려 회장 아들이기까지 한 나쁜 남자에게 다가가 따귀를 올려칩니다. 그러면 그 남자는 부어오른 뺨을 움켜쥔 채 당신에게 다가와 치명적인 나쁜 매력을 뽐내며 이렇게 속삭입니다.

"날 이렇게 막 대한 건 니가 처음이야. 그런 니 마음을 빼앗고 싶어졌어"

그렇게 둘은 연인이 되고, 나쁜 남자인 그 남자는 그 여자에게만큼은 따뜻한 나쁜 남자가 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내 여자에게만 길들여지는 나쁜 남자보다, 내 여자에게 역시 나쁘단 몹쓸 남자들 투성이요, 그런 남자들에게 속아서 우는 여자들 천지입니다. 뭐하러 눈보라 휘몰아치는 험준한 에베레스트에 어떻게 오를 수 있나를 고민하나요? 힘들지 않게, 그래서 즐겁게 올라갈 수 있는 가까운 산을 타는 즐거움을 느껴보면 안 되나요?




나쁜 남자도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할까요?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란, 능력있고, 차가운 매력을 가진 남자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대체로 여자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고, 오는 여자 안 붙잡고, 가는 여자 안 붙잡는다지만, 어쩌다 마음을 준 '내 여자'에게만은 소년 같은 순수함을 보여주는 특성을 보입니다.

나쁜 남자의 마음은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그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고, 그 누구도 쉽게 열 수 없는. 그래서 그런 그의 마음을 연다는 것은 무척이나 특별한 일로 여겨지게 됩니다. 나에게만 열린 난공불락의 요새. 그 어찌 매력적이지 않겠습니까? 진입 장벽이 높은 만큼 자기가 한번 공략(?)하고 나면 남들은 절대 공략 못할 것 같다는 느낌. 그래서 당신은 상대가 나쁜 남자란 걸 알면서도 그에게 끌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하겠지요.


차가운 도시 남자,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 나쁜 남자? 결국 여자하기 나름이라구요!




하지만 그건 마치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를 먹고 싶은데 차갑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야식을 먹고 싶은데 살은 안 쪘으면 좋겠어요.’‘금연하고 싶은데 담배는 피웠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핑크빛 구름처럼 샤방샤방한 형상은 있지만 일단 논리라는 것으로 접근하면 한방에 훅 날아가 버리는 그런 환상입니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처럼 나쁜 남자 중에서도 나만 바라봐주는 그런 남자도 있지 않을까요?

이래서 TV가 애들을 망친다는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여자에게만 따뜻한 나쁜 남자는 없습니다. 당신만을 바라봐주면서도 매력적이고 능력 있고 남자라면, 그건 이미 나쁜 남자가 아니라 착한남자입니다. 나쁨과 한 여자만 바라보는 건 애초에 공존 불가능한 스토리입니다. 콜라의 톡 쏘는 맛은 원하면서도 이빨은 썩지 않길 바란다면? 콜라를 원한다면 이가 녹고 뼈가 상하는 걸 감수해야하고, 불량식품을 먹으면 배탈이 날 걸 감수해야 합니다. 애초에 번지수를 잘못 짚었단 소리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제 경우만은 다를 거예요. 제 사랑만큼은 다를 거예요. 진심은 하늘에도 닿는다는데 그 사람 마음에 언젠가는 닿을 거예요."

그래요, 백번 양보해서 당신 사랑만은 다르다고 칩시다. 죽을 만큼 노력하면 언젠가 될지도 모른다고 칩시다. 근데 하늘에 닿을랑말랑 죽을동살동 노력해야하는 나쁜 남자를 만나는 것보다 애초에 착한 남자를 만나는 게 훨씬 낫지 않나요? 왜 당신은 애초에 잘 닦인 8차선도로를 놔두고 왜 굳이 울퉁불퉁하고 물웅덩이까지 고여 있는 오프로드로 기어들어가려 하나요?

보이는 길밖에도 길은 있다지만 왜 몇 배의 노력과 몇 배의 시간과 몇 배의 마음고생을 해가면서 심지어 종착지가 없을지도 모르는 샛길로 빠져들어 가냐는 말입니다. 물론 그들도 처음에는 당신의 정성에 감동하고 변하려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결코 쉽사리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착한 남자는 매력도 없고, 능력도 없고, 재미도 없어요. 그럼 안정적인 사랑을 원한다면 그런 치명적인 매력은 포기해야하나요?

잘못 짚었습니다. 당신은 완전히 잘못 짚었습니다. 착한 남자는 착한 남자고 재미없는 남자는 재미없는 남자일 뿐입니다. 나쁜 남자는 매력이 있고, 착한 남자는 지루하단 공식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요. 그거는 그거고 이거는 이건데 말입니다. 지금 당신이 만나고 있는 남자가 나쁜 남자입니까? 그렇다면 나쁜 남자를 길들이는데 들이는 노력보다, 차라리 착하면서도 멋있고 매력적인 남자를 만나는 게 훨씬 쉬울 것이라는 사고의 전환을 해보길 권합니다.




굳이 어려운 길을 찾지 마십시오. 아무리 힘들어도 당신에겐 늘 미소를 보이는 그 남자, 바보 같게도 당신 부탁이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는 시늉을 하는 남자, 당신이 잘못한 건데도 오히려 자신이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 남자. 너무 쉬워보여도,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조금 매력이 부족해 보여도, 결국 당신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남자는. 나쁜 남자가 아니라 착한 남자입니다.

내 여자에게만 (그것도 가끔씩만) 따뜻한 나쁜 남자보다 내 여자에게는 언제까지나 따뜻한 착한 남자. 훨씬 매력 있지 않나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