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10. 08:00


야구 뉴비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지도 꽤 된것 같다.
내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사람도 있을 터이다.
아마 거의 없겠지만..

만약 있다면 아마 지금쯤은 좋아하는 팀도 있을것이고,
각 팀을 지칭하는 우스꽝 스러운 별명도 알았을 것이고,
유명한 선수들의 재미진 별명도 알았을 것이다.
게다가 야구의 기본인 스트라이크-볼의 구분과 심리 싸움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정도면 이제 햇병아리 뉴비티는 벗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역시 뉴비는 뉴비, 고작 저정도 안다고 해서
"야구좀 본 사람" 이 되긴 아직 멀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은 이제 갓 뉴비티를 벗은 흔한 야구 관심 종자가
마치 오래전부터 야구를 봐온 올드비인 양 보이게 하는 지식을 전파하려 한다.
이거 하나만 알면 어디가서 뭣도 모르는 야구 뉴비취급은 안당하리라 자신한다.
마치 마법의 주문같은 지식이니 주의깊게 보시기 바란다.
단, 전부 다 맞는말이라는 보장은 없다.
나도 올드비로 위장한 뉴비에 불과하니까...

그 마법의 주문은 "투수의 구질에 관한 지식"이다.
투수가 던지는 공의 종류만 알면 진짜 마치 뭔가 야구 전문가처럼 보인다.
투수가 던진 공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슬라이더네"
"체인지업이네"
"이야 커브볼 떨어지는 각도좀 보소"
등의 말을 나불거려주면 당신이 뉴비로 보일일은 전혀 없다.
그래서 이번엔 변화구의 원리와 한국 프로야구에서 자주 쓰이는 여러가지 구질에 대한 설명을 하려한다.
어렵지 않으니 읽어두면 분명히 어딘가 쓸데가 있다.
그리고 구질에 대한 기본지식을 갖춰두고 야구를 보면 분명히 더 재밌게 야구를 볼 수 있다.
투수가 의미없이 그냥 공 던지는 것을 보는것과
어떤공을 어떻게 던지는지 알고 보는것은 정말 천지차이다.
진짜 이거 알고보면 어마어마하게 재밌게 야구볼 수 있다.


0. 구질에 대해 배우기 전에 필요한 기초지식 "마그누스 효과"


"심심풀이 땅콩 스포츠 지식을 배우는데 이게 왠 물리교과서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저 그림은 굉장히 쉽게 설명돼 있는 편이다.
그러나 저정도의 그림을 보고도 뭔가 골치아픈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을 위해
마그누스 효과의 요지만 설명해 주자면
"공이 회전하는 방향으로 휘어서 진행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공이 왼쪽으로 회전하면 왼쪽으로 휘려하고, 오른쪽으로 회전하면 오른쪽으로 휘려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왼쪽 오른쪽 뿐만 아니라, 공이 아래쪽으로 회전하면 밑으로 휜다.
그리고 공이 위로 회전하면 위로 휜다.
다만 공이 위로 회전하는 경우는 위로 '휜다'라는말은 다소 부적절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투수의 손에서 떠난 공은 중력때문에 당연히 지면쪽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위로 회전하는 공에대한 적절한 표현은 공이 밑으로 '덜 떨어진다'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고 하겠다.
같은 맥락에서 아랫쪽으로 회전하는 공은 '더 떨어진다'라는 말 또한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야구공이다.
야구공의 저 빨간 실밥이 보이는가?
야구공의 저 실밥이 투수들에게는 가장 큰 무기가 된다.
고작 야구공 꼬맨 저 실밥 따위가 무슨 무기가 될수 있냐고?

생각을 한번 해 보자.
야구공은 손가락으로 던진다.
그럼 손가락을 야구공에 걸쳐서 던져야 한다.
공을 던질때는 타자가 치기 어려운 공을 던져야 한다.
'마그누스 효과'때문에 야구공에 회전이 많이 걸릴수록 공이 많이 휜다.
공이 막 휘면서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면 타자들이 치기 어려워 진다.
그럼 투수는 공을 많이 회전시켜야 한다.
손가락으로 공을 던질때, 맨들맨들한 표면을 잡고 던지는게 회전이 많겠는가?
아니면 돌출된 실밥을 잡고 긁으면서 던지는게 회전이 많겠는가?
그렇기에 저 같잖아 보이는 실밥은 투수에게 엄청난 무기가 되는것이다.


1. 패스트볼

                                                              포심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


패스트볼, 빠른 공이라는 뜻이다.
한국어로는 흔히 직구라고 불린다.
공의 회전을 좌,우로 준다기 보다 회전을 위쪽으로 주고,
공에 손가락 힘을 온전히 싣는다.
좌, 우로 공을 회전 시키는데 힘이 낭비되지 않아서
투수가 던지는 구질중에 가장 빠른 볼 스피드를 자랑한다.
공의 변화보다 오로지 속도에만 초점을 맞춘 구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공을 던지는 손가락이 실밥에 닿아있는걸 볼 수 있다.



국내 최고의 직구를 뿌리는 오승환의 공을 다룬 짧은 다큐가 있어서 첨부해 보았다.
재미있으니 끝까지 다 보시기 바란다.
위의 사진에 올린 투심 패스트볼과 포심 패스트볼의 차이점도 잘 설명해주는 좋은 다큐다.
오승환의 공처럼 위력적으로 위로 회전하는 공은 아래쪽으로 '덜 떨어진다.'
중력 때문에 약간은 밑으로 떨어지는 덜 위력적인 직구를 접해온 타자들이
위력적으로 위쪽으로 회전하기에 '덜 떨어지는' 공을 만나게 되면
마치 공이 위로 솟아 오르는듯 느껴지기도 한다.


2. 커브볼



빠른속도의 패스트볼과 정 반대쪽에 서있는 공이 바로 커브볼이다.
사진에서와 같이 커브볼의 회전방향은 패스트볼과는 정 반대이다.
패스트볼이 뒤로 회전하는 것과는 반대로
커브볼은 앞으로 회전한다.
공은 회전하는 방향쪽으로 휘려하기 때문에, 원래 중력때문에 떨어지는 것보다 '더 떨어진다'.
커브볼을 던지는 방법의 더 쉬운 예를 들자면,
마치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이 검지와 중지로 여자주인공의 볼을 쓸어내릴때 처럼,
실밥을 잡고 있는 손을 아랫쪽으로 쓸어 내리듯이 던진다. 그러면 공이 앞으로 회전하게 된다.
커브볼은 아랫쪽으로 더 떨어지는 것 뿐만아니라 직구보다 훨씬 느리기 때문에
타자의 타격 타이밍을 뺏는데 주로 사용된다.



커브볼을 던지는 법에 대한 동영상이다.


3. 슬라이더



위의 사진과 같은 느낌으로 던지는 공이 바로 슬라이더 이다.
슬라이더는 오른손 투수의 경우, 공의 오른쪽 실밥을 두 손가락으로 잡아 던진다.
공의 중간이 아닌 오른쪽을 세게감아 던진다면 공은 당연히 왼쪽으로 회전한다.
축구에서 공을 '감아차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감아차는' 동영상. 오른발 안쪽으로 축구공의 오른쪽 면을 스치듯 감아찬다.
슬라이더는 축구의 감아차기와 정확하게 동일한 원리다.



한국 최고의 슬라이더를 던진다는 윤석민의 투구를 분석한 뉴스의 일부이다.
중간에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공의 회전모습을 잘 보시라.
한국 최고급의 직구와 슬라이더 두가지 구질의 회전모습을 잘 볼수있는 귀중한 사료 되겠다.
윤석민의 투구중 왼쪽 아래로 휘어들어가는 공은 전부다 슬라이더다.
오른손 투수가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 존 왼쪽 아래로 휘어들어간다.


엄청난 회전이 걸린 슬라이더는 이처럼 믿기지 않는 궤적을 보이며 휘어들어간다.
보이는가?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가는듯 하다가 급격하게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저 궤적..
안 속을수가 없는 공이다.


4. 체인지업




체인지업을 쥐는 방법이다.
굉장히 특이하다. 보통 공을 던질 때 아무래도 가장 익숙한 엄지와 검지로 던지는게 정상 아닌가?
하지만 체인지업은 중지와 약지를 이용하여 던진다.
도대체 왜 익숙하지도 않은 손가락을 이용하여 공을 던지는 걸까?



타자들은 보통 투수가 던진 공을 투구폼을 보고 예상해서 때린다.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서 포수의 미트에 들어가기 까지는 정말 찰나의 순간이다.
그 찰나의 순간 타자가 '공을 보고' 맞추는 것은 불가능한 지라
투수의 투구폼과 예상 구속 타이밍에 딱 맞춰 때려냈을 때, 타자는 정타를 때려 낼 수있게 된다.
위의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체인지업의 투구폼은 패스트볼의 투구폼과 정확히 같다.
투구폼이 같아 직구가 날아올 지, 체인지업이 날아올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직구와 체인지업은 비교적으로 힘이 약한 약지와 중지를 이용하여 던지기 때문에
직구보다 구속이 20Km정도 떨어진다.
이처럼 시속 20km라는 엄청난 구속차로 타자의 타이밍 자체를 무너트리기 때문에
체인지업이란 구종이 위력적 일수 있는것이다.
여기에다가 경악 스럽게도, '회전'까지 가미하면 체인지업은 더욱 더 엄청난 공이 된다.
슬라이더와는 정 반대의 원리로 중지와 약지를 이용해 공의 왼쪽으로 감아주면
공은 오른쪽으로 휘어나가게 된다.
체인지업에 슬라이더와는 반대의 회전을 준 공이 바로 '서클체인지업'이 되겠다.


타이밍까지 무너트리고, 공의 궤적변화까지 주는 서클체인지업.
슬라이더와는 정반대의 회전이기 때문에 슬라이더의 궤적과는 정 반대로 향한다.
제대로만 던진다면 정말 엄청난 무기가 된다.




일단은 이정도로만 알아둬도 어디가서 뉴비소리는 듣지 않을 정도의 지식은 된다.
변화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립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회전이다.
'저렇게 던지면 어느 방향으로 공이 회전하겠는가'만 안다면
그립을 외우지 않아도 어떤 공인지 다 알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여자분들께서 이 네가지 구질을 구분할 줄 알았을 경우 상황극을 보여드리고 글을 끝맺겠다.

야구 시즌중 술자리, TV에서 틀어주는 야구중계에
남자들은 정신이 팔려서 이것저것 야구얘기만 하느라 바쁘다.
여자들은 도통 야구에 흥미가 없어서 너무나 재미가 없다.
남자들의 모든 관심사는 야구에 쏠려있다.
저 투수는 공이 어떻네, 저떻네..
저 타자는 뭐가 어쩌네..드럽게 못치네..개새끼니 어쩌구 저쩌구..
정말 여자들은 남자들이 도통 왜이리 스포츠에 환장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신나게 술마시러 왔는데 아주 재미없어 죽을 지경이다.
그때 TV속 투수가 공을 던진다.
조용히 TV를 보던 한 여자분이 조용히 한마디 한다.
"슬라이더네."
남자들: " !!!!!! "

구질을 알아두는 것은 이런 부수적인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9. 20:20
















 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스'를 보기 전까진 배트맨 시리즈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인정할게요. 더군다나 영화판 배트맨 시리즈는 제가 유치원생 꼬꼬마였을 시절에 유치한 설정 탓에 흥행에 한 번 크게 실패하고 더이상 제작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화판 역시 그다지 재미가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한 번 뿌리내린 선입견은 쉽게 바뀌기 힘든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게 웬걸... 4년 전에 갑자기 크리스찬 베일에게 잠깐 빠져 그의 출연작을 훑어보던 저는 (저는 이런 불순한 의도로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라고) 앞에서 말한 '배트맨 비긴스'를 보고 생각을 아주 고쳐먹게 되었어요. 그동안 배트맨을 어린애들 영화로만 생각해 온 제가 바보스럽게 느껴져, 누군가에게 사과라도 하고 싶어졌었죠. 근데 누구한테 사과를 해야하나..







   

-빨리 사과해!
-사..사과하겠습니다!
-필요없어!
-?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저는, 영화의 원작인 만화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과연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졌어요. 하지만 그 책의 제목이 뭔지, 우리나라에 나와있기는 한건지 알 수 없어 그저 궁금증만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작년에 서점에 들러 만화책 코너를 둘러보다 이 책을 발견했지 뭐예요. 수년동안 저를 애타게 했던 그 만화는 바로.. '배트맨 이어 원Batman year one'이었습니다.
 










미국의 유명 만화가 프랭크 밀러frank miller와 데이비드 마주켈리david mazzucchelli가 함께 그린
'배트맨: 이어 원'의 표지입니다. 1987년작이구요.
우리나라에는 민음사 산하의 '세미콜론'에서 2008년 말에 같은 제목과 표지로 출간되었습니다.
세미콜론에서 배트맨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속속 나오고 있으니 모아보아도 괜찮을 것 같군요!












 

작가 중 한 명인 프랭크 밀러의 사진입니다.
'300','씬시티','다크나이트 리턴즈' 등으로 유명한 작가죠.
'배트맨: 이어 원'은 1986년부터 시작된 그의 배트맨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사진 배경에서 알 수 있듯 최근에는 영화감독으로도 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스피릿spirit'라는 제목의 영화였는데..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고 합니다.




 

 

만화는 영화 '배트맨 비긴스'처럼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웨인그룹의 백만장자 아버지 밑에서 남부럽지 않게 성장해온 브루스는 부모와 함께 오페라를 보고 오던 길에 총을 든 강도의 손에 부모를 잃습니다. (영화에서는 저택 옆 동굴에서 날아든 박쥐 때문에 공포증이 생긴 어린 브루스가, 부모와 오페레타 '박쥐'를 보다가 두려움에 칭얼거려 함께 극장을 빠져나오다 강도를 만난 것으로 되어있죠.) 그 후 12년간 도시를 떠나 무예를 익히던 브루스가 고담시티로 돌아오면서 만화는 시작되지요.










부모를 잃었을 당시를 회상하는 브루스
브루스는 타락한 고담시티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그토록 두려워 했던 박쥐가 되기로 합니다.  







브루스는 부모가 살해당한 기억 때문인지 자신은 결코 살인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보여요. 그래서 배트맨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더라도 살인만은 피하려고 하죠. 또한 자신을 추적해온 경찰이 고양이를 쏘아 죽이려고 했다는 이유로 그를 손봐주는 등, 약간은 소년과 같은 모습도 보입니다. 브루스 웨인이 어렸을 적에 자기 탓으로 부모를 잃어버린 충격 때문에 정신적 성장이 소년시절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해석은 오래 전부터 나왔었죠. 그래서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로빈과 친구처럼 활약할 수 있는 것이라구요. 

아무튼 작품 속에서 배트맨은 초반의 어설픈 모습에서 벗어나 점점 더 치밀한 공작을 수행할 내공을 쌓아갑니다. 마침내는 고담시티의 부패한 경찰청장과 마피아 일당을 응징하게 되죠. 하지만 이건 혼자 이루어 낸 건 아닙니다. 때로는 간호사로, 때로는 정보원으로 그를 돕는 충직한 집사 알프레드, '생계형 히어로' 캣우먼으로 등장한셀리나 카일, 그리고 작품의 또다른 주인공인 고든의 협력이 없었다면 그런 성과는 불가능했을 거예요.    












불량 청년들에게 둘러싸여 힘겨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배트맨
발에 채이고 텔레비전으로 맞고.. 좀 안쓰럽습니다. 







작품이 영화와 다른 점 중 한 가지는, 영화에선 그 내적 갈등이 삭제되었던 고든 경감의 이야기가 꽤 비중있게 다뤄진다는 점입니다. 영화에서는 고담 시티의 무능한 경찰 시스템 안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고든의 모습만을 볼 수 있었지만, 만화에서는 그의 가정사와 인간적인(?) 갈등 역시 엿볼 수 있습니다. 만화는 브루스의 귀환과 고담 경찰청에 부임한 고든의 모습으로 시작되는데요, 시카고에서 막 고담으로 온 지 몇 시간도 안돼서 고든은 동료 경관의 나사빠진 언행에 질리고 맙니다. 이 멍청이 동료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고담 경찰은 사실 그 지역 마피아와 결탁하고 있어 이미 도시 치안을 다스릴 능력을 잃은 유명무실한 집단이에요. 고든은 이런 경찰 시스템을 개혁하고자 고군분투 하지만, 소위 '높으신 분들' 눈에는 이 고지식한 새내기 경관이 맘에 들 리가 없죠. 그래서 고든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고담 경찰로부터 갖가지 협박과 린치를 당합니다.

 고든의 사생활 역시 그들에게 고든을 협박할 빌미를 제공합니다. 작중에서 고든은 함께 일하던 미모의 여경사에게 잠깐 한 눈을 팔아 적잖이 마음고생을 합니다. 고든에겐 이미 임신한 부인, 바바라가 있거든요. 그런데도 고든은 직장에서 자신의 오른팔이 되어 주는 여경사 에센에게 마음을 주고, 또 그것을 윗선에 들키고 말죠. 경찰국 간부들은 이것을 빌미로 고든을 협박하지만, 그가 바바라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음으로써 갈등은 일단락 됩니다. 비록 고든은 아내와 함께 정신과 의사에게서 관계 개선 상담을 받아야 했지만요.   











동료 경관의 음모로 느닷없이 습격을 받은 고든 경감.
그는 나중에 이걸 똑같은 방식으로 갚아줍니다. 성깔 있어요, 이 아저씨.










불륜을 저질러 편치않은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고든. 바바라가 정말정말 너그럽게 봐 준 덕분에 그는 위기를 벗어납니다.
이 사람은 아내한테 정말 잘해야 해요.








 이렇듯 고든의 이야기가 이야기의 서브 플롯으로 자리함으로써 작품은 브루스 웨인의 원맨쑈에 그치지 않고 그 재미를 더합니다. 고든과 배트맨이 알게 모르게 힘을 합쳐 썩은 경찰청장을 응징하고 지역 마피아 두목을 처단하는 걸 보면 두 사람이 고담 시티를 지키는 히어로 콤비같아 흥미진진합니다. 처음에는 고든이 배트맨을 코스튬 입고 설치는 범죄자 정도로 여겨 수사를 시작하지만(이 수사과정에서 그는 에센이 가져다준 정보로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아닌지 의심합니다. 물론 브루스가 플레이보이 재벌 2세 코스프레를 해 정체가 탄로 날 위기를 넘기지만요.) 나중에는 그를 동료로 인정합니다. 만화는 청장으로 승진한 고든이 배트맨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막을 내리는데, 여기서 조커의 등장이 암시됩니다. 이건 영화에서도 그렇죠. 







 


여유로운 담배 한 모금.
고든은 승진도 하고 마피아도 때려잡고 가정도 지켰습니다.








작품의 제목은 '배트맨:이어 원'이지만, 어쩐지 배트맨보단 고든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워요. 사실상 이 이야기는 고담시티에서 새로이 등장한 두 영웅의 눈물겨운 생존기가 서로 얽힌 구조를 갖고 있어요. 배트맨뿐만 아니라 고든 역시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거죠. 프랭크 밀러와 데이비드 마주켈리는 길지 않은 분량 속에 그들의 성격, 과거, 몇몇 어설픈 면모들을 잘 나타내, 고담시티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황당무계한 가면 히어로 얘기의 배경이 아닌, 정말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구린내나는 도시의 모습으로 형상화시켰습니다. 물론 배트맨의 탄생 계기를 설득력 있게 묘사한 것도 큰 장점이고, 한국어 번역이 비교적 매끄러운 것도 작품의 재미를 떨어뜨리지 않은 요인이 됩니다.(브이 포 벤데타는.. 안그래도 어려운 글을 번역도 매끄럽지 못하게 해놓아서 거슬리는 부분이 좀 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큰 장점은 커버 디자인이 멋져서 책장에 꽂아놓으면 간지..가 납니다.ㅋㅋ 길지 않은 이야기니 일독을 권합니다! 
고든과 배트맨의 다정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포스팅을 마칠까 합니다. 그럼 다음 포스팅을 통해 또 만나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8. 09:58


  노희경 작가의 유명한 에세이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에서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란 연애하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을 주고받는 데 있어서 감정적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사람을 말하는 것에 가까울텐데요, 충분히 돌려받지 못해서 받을 상처를 두려워하여 감정적으로 헌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에세이를 접했을 때 쯤, 처음 든 생각은 '올인을 하든말든 일단 연애를 해야...'라는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음? 지금이랑 비슷한가요?)

에세이 전문이 보고 싶으신 분은 여기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hdbswl0&logNo=10117967876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서,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와 [사랑은 떠나도 나는 남는다]의 간극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였습니다. 에세이가 말하는 것처럼 나를 다 던져서 사랑하는 게 맞는 건가, 아니면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연애지침서들이 말하듯 내 일부만 내 주는 게 맞는 건가. 그리고 그 의문은 꽤나 오랫동안 제자리에서 우물쭈물거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두 가지는 대척점에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다 내주는 사랑을 하되, 내가 내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분하는 게 필요했던 겁니다. 다시 말해, 내주지 말아야 할 것을 내주지 말아야, 줄 수 있는 것을 계속해서 더 내줄 수 있는 것이더란 말이지요. 친밀한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의 어떤 부분은 내가 해야 할 것을 남에게 전가함으로써 생깁니다. 흔히 혼자서 잘 사는 사람들이 결혼해도 잘 산다고 하지요. 이 말의 의미도 아마 그런 것일 겁니다. 그렇다면 내 주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이고 내 주지 말아야 하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사실 저 질문은 나영이를 시작하게 된 모티브이기도 했습니다. 이런건가 저런건가? 난 잘 모르겠는데,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여러분 생각은 어때요? 라는. 그런 맥락에서 제 생각에 내 주어야 하는 부분이라면 역시, "두려워서 주지 못하는 모든 것"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려워말고 그냥 내 줍니다. 좀 상처받거나, 좀 손해보더라도요.

 그렇다면 남에게 내 주지 말아야 하는 부분은 어떤 부분일까요? 그건 아마
 "스스로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케어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건강한 자기애'라 해야 할까요.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사랑받는지(혹은 사랑받지 못하는지)와 관계없이 사람에게는 내가 스스로를 사랑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에서도 채워질 수 없는 틈 같은 것이 있지요. 그게 바로 나밖에 채울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건 남에게 채우도록 내 줄 수도 없거니와 "내 주지 말아야 할 부분"인 거죠. 


 그러므로, 스스로 사랑해줘야 하는 부분을 타인에게 맡기는 것이 바로 잘못된 올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사랑한다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이냐? 라고 물으실 수 있겠지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를 내가 아니라 남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떻게 하는게 더 좋을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저를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저는 저를 좋아한다고는 하는데 잘해주진 않습니다. 제 미래를 위해 견뎌야 할 일에서 자꾸 도망치게 만들고, 밥 제때 안 먹이고, 아픈 거 제때 신경쓰지 않아서 심하게 감기에 걸리도록 만들기도 하고요 ㅠ_ㅠ 헉, 당장 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뭔진 몰라도 이건 아니라는 느낌.


 즉, 우리가 "남을 잘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이 "사랑하는 마음"만 잔뜩 가지고 있는 게 아니듯이, 실제적인 어떻게 해 주느냐가, 다시 말해 행동이 나와의 연애에서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놓고 또 생각하니, 이렇습니다.
 지금 누군가와 연애 중이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책임은 멈출수가 없는 거구나.



 그러니, 연애를 하든 하지 않든,
 자신이든 타인이든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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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언제나 목적으로 대우하라  (3) 2011.10.1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7. 08:30


Regina Spektor
1980년생, 러시아 태생





우리나라에선 CF에 삽입된 On the Radio, 훈석님이 소개했던 500일의 썸머 의 Us 라는 노래로 알려져 있죠.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익숙한 레지나 스펙터는 두 개의 정규 앨범을 내고 뉴욕에서 주로 라이브 활동을 하고 있는뮤지션 입니다.

오늘은 레지나 스펙터의
Samson, Oedipus 와 같은 그리스 신화에서 소재를 가져온 노래를 가져왔어요.
On the radio나 Fidelity, Us 와 같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노래를 부를 때 외에
또 다른 일면이 보이는 노래들 입니다.  




You are my sweetest downfall
그대는 가장 달콤한 덫
I loved you first, I loved you first
내가 그대를 먼저 사랑했어요, 내가 그대를 먼저 사랑했어요
Beneath the sheets of paper lies my truth
내 진실을 숨긴 종이쪼가리들 밑에서
I have to go, I have to go
난 가야 해요, 난 가야 해요
Your hair was long when we first met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대의 머리는 길었는데
Samson went back to bed
삼손은 침실로 돌아갔어요
Not much hair left on his head
그의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Ate a slice of wonder bread
경이로운 빵 한조각을 먹으며
And  went right back to bed
바로 침실로 돌아갔어요
And the history books forgot about us
이젠 역사책도 우리를 잊어버렸고
And the bible didn't mention us
성경도 우리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아요
And the bible didn't mention us
성경도 우리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아요
Not even once
단 한번도
You are my sweetest downfall
그대는 내 가장 달콤한 덫
I loved you first, I loved you first
내가 그대를 먼저 사랑했어요, 내가 먼저 사랑했어요
Beneath the stars came falling on our heads
우리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별빛 밑에서
But they're just old light, they're just old light
하지만 이제 다 바랜 빛들이에요, 다 바랜 빛이에요
Your hair was long when we first met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대의 머리카락은 길었는데
Samson came to my bed
삼손은 내 침대로 와서
Told me that my hair was red
내 머리카락이 붉다고 말했어요
Told me I was beautiful and
내가 아름답다고 말해주고는
Came into my bed
내 침대로 왔어요
Oh I cut his hair myself one night
오, 어느날 밤 내가 그이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렸어요
A pair of dull scissors in the yellow light
노란 불빛 밑의 무딘 가위로
And he told me that I'd done alright
그는 내가 한 짓을 보고도 내게 괜찮다고 말해줬어요
And kissed me till the morning light
그리고는 아침이 올 때까지 키스해줬어요
The morning light
아침이 올 때까지
And kissed me till the morning light
그리고는 아침이 올 때까지 입을 맞춰줬어요
Samson went back to bed
삼손은 침대로 돌아갔어요
Not much hair left on his head
이젠 그의 머리에 남은 머리카락이 별로 없어요
Ate a slice of wonder bread
(출처 : ty님)



저는 개인적으로 Oedipus 라는 노래를 재미있게 들었는데요,
다소 실험적으로 보이는 구조여서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지나 스펙터가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합니다.
제멋대로 피아노를 가지고 놀면서 가사와 노래를 부드럽게 엮어가는 모습이라던가 -
직접 쓴 가사도 좋구요.

- 처음 시작하는 부분에 음량이 크니 조심해 주세요! - 



I'm the king's thirty second son
Born to him in thirty second's time
Born to him the night still young
Born to him with two eyebrows on
And that's all I was wearing
When I woke up staring at the world
My mom had been around the graves of queens
But not at all a sex machine
She liked to keep her body clean, clean
Thought the world to be quite obscene
But she retired to her chamber
And we remain quite strangers
And to see me made her awful sad
And to touch me made her awful sad
And to see me made her awful
And to touch me made her awful
I'm the king's thirty second son
And all it took was thirty second's time
But a spoiled little prince I was not
Had a chamber maid and a chamber pot
And there's thirty one others just like me
There's thirty one others I can be
Someimtes I'd stand by the royal wall
The sky'd be so big that it broke my soul
And i stood on my toes to catch a glimpse
Of my mother's eyes and my mother's skin
And she retired to her chamber
And we remain quite strangers
And to see me made her awful sad
And to touch me made her awful sad
And to see me made her awful
And to touch me made her awful

And one morning I woke up
and I thought Oedipus, Oedipus, Oedipus, Oedipus
Then one morning I woke up and I thought Rex, Rex, Rex
Then one morning I woke up
and I thought Oedipus, Oedipus, Oedipus, Oedipus
Thirty two's still a goddamn number
Thirty two's still counts
Gonna make it count
Gonna make it count
Gonna oh oh
Thirty two's still a goddamn number
Thirty two still counts
Gonna make it count
Gonna make it count
Gonna oh oh
Long live the king
Long live the king
Long live the king
Long live the king
Long live the king
Long live the king
Long live the king
Long live the
I'm the king's thirty second son
There's thirty one others just like me
There's thirty one others on the way
There's thirty one others after that
Sometimes I stand by the royal gate
People screaming love and hate
And they scream
And they scream
And they scream
And they scream
Long live the king,
long live the queen
And to see me made her awful sad
And to touch me made her awful sad
And to see me made her awful
And to touch me made her awful
And one morning I woke up
and I thought Oedipus, Oedipus, Oedipus, Oedipus
Then one morning I woke up and I thought Rex, Rex, Rex
Then one morning I woke up
and I thought Oedipus, Oedipus, Oedipus, Oedipus
Thirty two's still a goddamn number
Thirty two's still counts
Gonna make it count
Gonna make it count
Gonna oh oh
Thirty two's still a goddamn number
Thirty two's still a goddamn number
Thirty two's still a goddamn number
Thirty two's still a goddamn number
Thirty two
Thirty two
Thirty two
Thirty two
Thirty two
Thirty two
Thirty two
Long live the king
Long live the king
Long live the king
Long live the king
Long live the king
Long live the king
Long live the king
Long live the king



실제 목소리도 노래 부를 때의 목소리와 많이 다르지 않은 귀여운 목소리에요. 
가수의 조건에는 스타성, 가창력, 이미지 등 여러가지가 필요하겠지만
레지나 스펙터의 경우에는 목소리도 그 중에 하나 인 것 같습니다.

On the radio에 익숙하신 분들은 다른 노래도 한 번 들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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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6. 08:30




지금은 모든 교과서가 검인정으로 바뀌면서 사라졌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고등학생들은 국정 교과서로 국어를 공부했습니다. 그 국어 교과서 (하)권에는 관동별곡이라는 공포의 단원이 있습니다. 강호에 병이 깊거나 말거나, 천산만낙에 아니 비친 곳이 있거나 말거나, 제 아무리 성실한 학생도 졸지 않고는 못 지나치는 곳입니다. 그래도 저는 고등학교 때 이 단원을 참 좋아했었는데, 그래서 아이들에게 제가 느꼈던 즐거움을 전해주고 싶었는데, 실력도 경험도 모자란 초보교사에게는 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중간중간에 잡설도 섞어주고, 재미있는 얘기도 해주고 하면서 6시간 만에 관동별곡을 끝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단 한 순간 아이들의 눈이 빛나는 순간이 있었으니, 정철이 경포대에 들러 홍장 고사를 이야기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재미있는 부분이겠다 싶어 강릉의 유명한 기생이었던 홍장에 대해 얘기를 좀 해주려 하니, 아이들이 킥킥 거리면서 웃습니다.

 

 


"기생? 그거 걸레 아닌가요?"

 









저는 정색을 하며 두 가지 부분에서 아니라고 대답했다. 첫째, 기생은 오늘날의 성노동자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 둘째, 걸레라는 말은 결코 써서는 안 되는 표현이라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기생은 신분은 천민이었지만 교양인으로 대접받는 특이한 계층이었다는 점, 상대하는 이들의 격에 맞게 가무, 시, 서, 화, 재능과 지조, 의협 등의 덕목을 모두 지녀야 했다는 점, 어릴 때부터 수 년 간 교육을 받아야만 기생이 될 수 있었고 정기적으로 테스트를 해서 퇴출되었다는 점 등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좋아하는 황진이의 시조를 몇 개 써주고, 그녀의 뛰어난 문학적 소양과 방대한 지식, 예술적 감각에 대해 얘기해주었더니 아이들은 기생이 당시의 식자층이었다는 데에는 일정 부분 공감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이야기합니다.






"에이 그래도 아무나 하고 막 하면 걸레잖아요."

 




저는 그 아이에게 반문했습니다.






"넌 하고 싶지 않아?"

 





아이들은 또다시 킥킥대기 시작합니다.

 

 


"이성에 관심이 많고, 성욕을 느끼는 건 누구나 당연한 거야. 그건 어른이나 너희 같은 청소년이나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그건 지금까지 인류 사회가 이어져 내려오고, 종족이 보존되어온 원인이기도 해. 식욕이나 수면욕은 당연한 것처럼 여기면서, 성욕에 대해서는 쉬쉬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상한 거 아냐? 너희들 집에서 야동 보면 엄마가 뭐라고 하니? 청소년의 성욕이 억압되는 것처럼 여성들도 마찬가지야. 너희들 성 경험 많은 여자들 보고 걸레라고 하는데, 그럼 하는 건 여자 혼자 해? 누구랑 하는데?"

 

 

 

"...남자요.. "

 

 


"그럼 너희들 성 경험 많은 남자한테도 걸레라고 불러? 대단한 정력가라 생각하고, 매력 있고 능력 있는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어쩔 때는 영웅처럼 치켜세우고, 우상처럼 모시지 않아? 다른 게 뭔데? 남자는 그래도 되고 여자는 그러면 안 된다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 있어?"

 




"......"

 






 

 

가장 맑고, 가장 순수하고, 때가 덜 타야 하는 17세의 아이들조차 걸레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 말은 대단히 폭력적인 기호입니다.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언어에는 수많은 성차별적 요소가 존재합니다. 예의를 갖출 때엔 '신사숙녀 여러분'이라고 말하면서 욕할 때는 '년놈'이라 합니다. 운동장 건너편에 있는 학교는 '성수여자고등학교'이지만 우리 학교는 '성수남자고등학교'가 아닌 '성수고등학교'입니다. '미혼모'라는 말은 있지만 '미혼부'라는 말은 없으며, 흔히 쓰는 '미망인'이라는 말은 '아직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 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 상위'라는 말은 있지만, '남성 상위'라는 말은 없습니다. 남성이 상위인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의 태아 성감별과 여아 살해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인권 침해 사안인데도, 그 원인이 되는 남아 선호 악습을 '남아 선호 사상'이라고 부릅니다. 영어에는 존댓말이 없는데도, 외화 번역 자막에 남성은 반말로, 여성은 존댓말로 표현하는 것도 성차별입니다.

 


여성의 짧은 치마가 성범죄를 유발한다고 말합니다. 밤늦게는 돌아다니지 말라고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 우습습니다. 요즘 세상을 흉흉하게 만드는 것은 누구인데 여성들에게 그런 조언을 해야 할까요. 왜 여성들은 밤길을 조심해야 할까요. 누가 여성들을 그렇게 움츠러들게 만들었나요. 무엇이 조두순을, 강호순을 낳았나요.







 

여성들이 밤길을 조심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남성으로부터의 위협'을 배제하면 말입니다. 모든 개인에게는 신체의 자유가 있고, 당연히 밤에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자유가 있는데, 그들은 왜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침해당해야 하는 것일까요. 오히려 밤길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여성에게 위협의 대상이 되고, 공포의 대상이 되는 남성이 아닐까요. 우리나라의 법은 어떤 형사사건에도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거나 주의할 것을 당부하지는 않는데, 유독 성범죄에만은 다른 잣대를 적용합니다.

 

밤길이 위험하니까 다니지 말라든지, 혹은 성범죄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으니 노출이 심한 옷을 입지 말라든지, 정신을 잃을 만큼 술을 많이 마시지 말라는 등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밤에 다니는 것도 개인의 자유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든 아예 발가벗고 다니든(비록 경범죄에 속하더라도)가도 개인의 자유에 해당하는 영역입니다. 정신을 잃을 만큼 술을 많이 마시더라도, 누가 건들지 않으면 얼어 죽지 않는 한 피해를 당할 하등의 여지가 없습니다.

 







한국 사회는 여성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행동은 항상 정갈해야 하며, 웃음을 함부로 흘리면 안 되고, 목소리를 크게 내면 안 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하며, 심지어 남편에게 맞더라도 애들을 생각해서 이혼하면 안 되며,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한 뒤에는 남편을 따르며, 심지어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따르라고까지 합니다. 칠거지악과 같은 반인륜적인 테제가 오랜 시간 사회의 지배적 질서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것이 가끔은 소름 끼치게 무섭습니다.

 

 

 

저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여성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거나, 괜히 헛바람이나 겉멋이 든 것이 아니라, 먹물이 가득 차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모든 인간이 평등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비록 소리 높여 외치거나 앞장서서 구호를 선창할 만큼의 용기와 배짱은 없지만, 누구도 차별 받지 않고, 불합리에 고통 받지 않는,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는 세상이 오기를 원합니다. 여성은 유사 이래 가장 넓은 공간적 범위에서 오랜 시간 동안 마이너리티였던 인간 범주이기 때문입니다.

 

남성우월주의로 똘똘 뭉친 마초 집단에서, 음담패설을 일삼는 남자들만 있는 술자리에서, 가끔 이런 제 목소리를 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비난의 눈초리와 동정의 시선뿐이었습니다. 단순한 사람들은 남자가 되어서 여자 편만 드느냐고 난리법석입니다. 그보다 조금 더 열린 사람들은 남자는 페미니스트로서 한계가 있다는 염려를 보냅니다.






 

남자편 여자편 니편 내편을 가르는 일차원적 사고에는 굳이 응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남자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남성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한 발 물러설 것을 충고하는 이들과는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난 남자야. 그래서 여자를 이해할 수 없어. 하고 외면하는 것은 여성 억압의 가해자, 공모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적 욕망에 의해 생겨난 자기방어기제가 아닐까요. 혹은 남성이라는 사회적 수혜자로서 별다른 불편함을 못 느껴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요.

 

 

제게 여성문제는 타자의 문제, 외부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성의 문제며 제 자신의 문제입니다. 자본주의는 바둑알을 뺏고 뺏기는 싸움입니다. 다섯 개의 바둑알 중에 내가 세 개를 가지면 상대는 두 개밖에 가질 수 없습니다. 내가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에게 하나를 양보한다면, 상대는 나보다 많은 것을 가지게 됩니다. 양성의 메커니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나(남성)는 사회적으로, 또 사적으로 분명 여성에 비해 상대적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취업시장의 문을 두드리다 낙심하지만, 여성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은 남성의 그것보다 조금 더 좁습니다. 오죽하면 남자인 것도 스펙이라고 할까요.

 







남성이 사회적으로 더 많은 기회와 유리한 조건을 누리는 것을 알면서도, 동시에 사적으로 어머니, 누이, 아내의 노동에 의존해 살아가면서도,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에게 여성문제는 당신들의 문제라며 밀어내는 것은 정당할까요. 적어도 사회정의와 평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는 안 됩니다.

 

남성 일반은 여성 일반에 대해 사회적 강자임이 분명합니다. 노동자로 일하는 남성 최씨가 사장인 여성 김씨보다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해도 그것은 성의 차이가 아닌 계급적 차원의 문제입니다. 스스로를 진보라고 표방하는 남성들은 이러한 착각 때문에 부르주아 여성에 대한 적대감을 여성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하고는 합니다.

 

남성도 때로는 피해자라고, 왜 남자를 적으로 만드느냐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일면 타당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남성 역시 여성과 똑같이 손해를 보고 똑같이 피해를 입는다는 식의 뉘앙스라면 곤란합니다. 남성이 여성과 똑같은 피해자라면 꼬랑꼬랑한 유교문화원의 할아버지들은 왜 그리 가부장제 사수에 열심일까요? 문제는 한국의 여성들이 모든 남자를 적으로 보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차별과 억압에 반대해 싸우는 여성주의자들이 다른 운동가들에 비해 너무 평화적이고 온건한 것에 있습니다. 가부장제를 온몸 바쳐 사수하려 하는 남성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라고 여성에게 말하는 이는 정치학에 문외한이거나 고도의 사기꾼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여성억압체제가 남성으로부터도 많은 것을 빼앗아간다는 점에서 남성도 궁극적으로는 가부장제의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 쯤은 가부장제가 규정하는 남성성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 행복, 감격의 순간들을 박탈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강요된 남성성 안에서 남성들은 과연 행복한가요.

 





 

남자는 남자다워야지, 무슨 사내자식이 이렇게 약해 빠졌어,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우는 거야. 이런 말들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기질적으로 여성스러운 남성이나 일반적이지 않은 남성들을 억압하는 말입니다. 여자끼리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 풍경은 자연스럽지만, 남자끼리라면 어떨까요. 한 집 건너 커피전문점이 있는 번화가에서도 남자 둘이서 차를 마시며 조용히 대화하는 풍경은 좀처럼 보기 힘듭니다. 보통의 '어른' 남자들은 폭탄주를 몇 잔 들이키고 뇌가 마비되어야만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솔한 대화란 철저히 형님-동생, 선배-후배의 위계가 선결되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남성에게 요구되는 '남성적' 사회성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권위는 동심으로 돌아가는 즐거움, 육아의 기쁨, 수평적 대화에서 오는 정신적 교감을 빼앗아갑니다. 남성이 누리는 가부장적 특혜는 사실 이러한 손실의 이면입니다.

 







저는 남자로서 여자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여성주의가 근본적으로 양성에게 정의롭기 때문에 여성주의를 지지합니다. 제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남성인 저는 여성이 느끼는 모든 감정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성적 이해와 그것을 토대로 한 의사소통 및 연대는 어떤 인간 사이에든 충분히 가능합니다.

 

잘나가는 기업의 사장님이 노동자들의 문화를 내면화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자본론을 읽고 감명 받은 상무님이 노동자 편에 서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28세의 남성인 저는 주저 없이 페미니스트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6. 01:31


안녕하세요? 훈석입니다.

저는 보는 것을 굉장히 즐기는 편이라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와 드라마, 책과 친하고,

아시다시피, 그것을 나누고 싶어 금요일에 관련 포스팅을 하기도 하죠.

웹툰 또한 무척 좋아합니다.

살면서 이루고픈 일 목록 중에,

#268. 책을 내자!
가 있습니다.

그 책엔 제가 쓴 글과 함께 직접 그린 그림도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모든 일은 한 멘션에서 시작됩니다.




네이버 웹툰 <나이스진타임>, <삐뚤빼뚤해도 괜찮아>의 김진 작가님의 멘션.




그래서 전 갔습니다. ㅎㅎ
네, 대답은 듣지 못했어요...

(출처: www.nicejintime.com)



신촌에 결혼식이 있어서,
마구마구 축하해주고,
강남으로 향했습니다.















입구에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님들의 사진이 있었어요.



"마감 빵꾸 내지 않겠습니다."
<노병가>, <패션왕>의
귀염둥이 기안84님. ㅎㅎ



아이고, 무지막지하게 흔들렸군요.

<콘스탄쯔이야기> 를 연재하시는 김민정 작가님 입니다.


김진님 혼자의 사인회가 아니었다는걸
도착해서 알았습니다.

<의령수>, <아이고>의 김우준 작가님과
<미호이야기>의 혜진양님 (허혜진) 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한시간쯤 남아 전시장을 먼저 둘러봤습니다.





<목욕의 신> 하일권
God of Bath
40.5X53cm, Mixed media on canvas, 2001.


믹스드 미디어라고 하지 말아요!
때밀이잖아요!
ㅎㅎㅎㅎㅎㅎ

아무튼 이렇게 기발할데가!



대표작
<3단합체 김창남>
<두근두근두근거려>
<안나라수마나라>
<삼봉이발소>
<목욕의 신>



<패션왕 우기명> 기안84
Fashion King. Woo Kee myung
39.4X54.5cm, Watercolor on paper, 2011

대표작
<노병가>
<패션왕>




<작가의선물; 이상한 액세서리> 김민정
Strange accessories sent from the author
22.7X15.8cm, Oil on canvas, 2011


잘 안보일까봐 크게 다시 찍었습니다.



<아슬아슬한 공동체> A strange community
19X33.4cm, Oil on canvas, 2011

<꽃스탄츠> Constanze with flower
45.5X53cm, Oil on canvas, 2011


모두 김민정 작가님 그림이구요.
배열이 독특했어요.

<꽃스탄츠>라는 이름도 굉장히 재치있었구요.

대표작은 현재 네이버 웹툰 연재중인
<콘스탄츠 이야기> 가 있습니다.


<열쇠줍는 아이> 최윤진
FINDER - The child who seeks for the key-
29.7X42cm, Watercolor on paper, 2011

대표작
<열쇠줍는 아이>




<아이고> 김우준
IGO(자유 그리고 청춘)
150X150cm, Acrylic on canvas, 2011

대표작
<의령수>
<아이고>




<연꽃> 혜진양
lotus blossom
45X37.5cm, Watercolor on paper, 2011

대표작
<미호이야기>


<좋은 하루 되세요> 노란구미
Have a nice day
73X91cm, Acrylic on canvas, 2011

대표작
<내가 결혼할 때까지>
<세개의 시간>
<돈까스 취업>



<그녀의 옷장> 김진
Her Closet
72.5X90.5cm, Acrylic on canvas, fabric, 2011


제가 이 전시회에 간 이유죠. ㅎㅎ

대표작
<나이스 진타임>
<삐뚤빼뚤해도 괜찮아>





<Coffee & Tea> 권윤주 SNOWCAT
52X32cm, Acrylic on Paper, 2011


<Power On>
56X57.5cm, Acrylic on Paper, 2011



<뽀통령 뽀로로> 이희재
33X27cm, Chinese ink, Watercolor on Korean paper, 2011

대표작
<명인>
<골목대장 악동이>
<간판스타>
<나 어릴적에>
<세상 수첩>
<아이코 악동이>




<바람만들기> 사이로
54X37cm, Chinese ink, Watercolor, Acrylic on Korean paper, 2011




<아침풍경> 사이로
54X37cm, Chinese ink, Watercolor, Acrylic on Korean paper, 2011



참 보기 좋은 그림입니다.

대표작
<만화응접실>
<서울 별곡>
<월요 경제만평>
<사이로 카툰>






 



사람이 많이 북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갤러리 내부 모습이구요.





저 사람 좀 지워주세요.



 


"엄마가 밥먹으래요."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세 작가분의 싸인을 모두 받았어요.

ㅎㅎ





아 그리고,
"선생님. 조금만 뒤로 가주세요."
라고 한 주최 측 스태프. 잊지않겠어요.......



끗!

뉴욕 프라이드~

Posted by 배태랑
2011. 11. 3. 08:00

1. 최정 인간 자기장설

최정은 SK의 3루수다.
이것은 최정의 통산 스탯이다.


3할을 넘기는 타율, 20개의 홈런. 게다가 내야수..
정말 괜찮은 선수임에는 틀림이없다.
하지만 그의 기록에는 정말 놀라운 기록이 하나 있다.
바로 통산 사구기록.
사구란 무엇이냐..
바로 타자의 몸에 맞는 볼이다.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의 몸에 맞았을 경우 타자는 1루까지 안전진루하는 권한을 얻게된다.
타자입장에서는 굉장이 좋은 결과지만 결코 사구를 얻는것이 좋은것은 아니다.
머리나 관절 등에 맞게 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사구를 맞게된 타자와 사구를 던진 투수간의 감정이 격해져서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구는 투수가 됐든, 타자가 됐든 기피의 대상이다.
최정 선수의 저 기록중 네모 친 부분이 보이는가?
그가 각 시즌에 몸에 맞은 사구의 개수다.
뭐, 야구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1년내내 야구하다 보면 뭐 몸에 공도 좀 맞고 그럴수도 있지"
할지도 모른다.
저 개수가 얼마나 엄청난 개수인지 비교를 위해 2011시즌 몸에 맞는 볼 갯수 순위를 올린다.


보이는가? 1위 최정과 2위의 격차가 무려 7개다.
20개에 가까운 사구를 무려 4년동안 몸에 맞았다.
아마도 4년동안 사구부문에서 1위일 것이다.
사구는 타자의 능력으로 얻어 낼 수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선수가 1위를 몇년간 독신한다거나, 꾸준한 상위권에 있는다거나 하는 일은
상식밖의 일이다.
이렇게 까지 공을 몸에 자주 많이 맞는다면 뭔가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근데 진짜 불가사의하게도, 그럴만한 명확한 이유가 없다.
이돼호처럼 덩치가 산만한것도 아니다.
상대팀에 밉보일짓을 해서 투수가 고의로 몸에 공을 맞추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엄청난 거포라서 승부를 피해야만 하는 유형의 타자도 아니다.
그렇다면 유독 최정만 공에 자주 맞는 이유는 무엇일까?
투수가 최정만 노려서 고의로 맞추거나, 최정이 일부러 공을 맞으려고 몸을 비비꼬는것은 아니다.
내 진지하게 이야기하건데, 최정의 몸에는 공을 끌어당기는 자기장이 흐른다.
그래서 공이 최정의 몸에 가서 붙는 것이다.
야구의 신이 그의 몸속에 야구공을 잡아당기는 자석같은것을 심어서
자꾸만 야구공이 그의 몸에 붙는것이다.
확실하다.






2. 오승환 로봇설, 밀랍인형설


오승환은 현존 최고의 마무리 투수이다.
이번시즌엔 포스트시즌까지 합쳐서 무려 50세이브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오승환의 2011 시즌 성적을 첨부한다.


방어율과 실점기록을 보라.
결코 한경기 기록이 아니다.
1년 기록이 저정도면 정말 엄청난 기록이다.
그러다 보니 오승환은 사실 '공던지는 로봇이다'라는 설이 등장했다.
그가 로봇이라는 설은 그의 표정변화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그는 마치 감정이 없는 로봇처럼 오직 한가지 표정만을 지니고 있다.
로봇이 아니라면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표정변화가 없을수 있겠는가?
그는 정말로 로봇이 분명하다.

오승환에 관련된 또 하나의 설은 오승환 '밀랍인형 설'이다.
이 밀랍인형설은 그가 팬들과 찍은 사진에서 비롯됐다.



말이 필요없다.
그는 밀랍인형이 확실하다.

하지만 오승환이라는 로봇, 혹은 밀랍인형을 만든 창조주는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 아니었다.
가끔 로봇설, 밀랍인형설이 이론에서 기정사실화 되어가는 시기 즈음해서
한가지씩 추가기능을 슬며시 끼워넣어 음모론을 희석하곤 한다.
참으로 영악한 창조자가 아닐수가 없다.
창조자가 추가한 추가기능을 발현한 사진을 첨부한다.
꼭 오승환이 뭔가 인간적인 몸짓이나 표정을 할때는 항상 언론인들의 카메라가 함께한다.
이것 또한 미심쩍은 부분이 되겠다.

삼성의 이재용이 삼성라이온스 선수들을 격려차 들렀을때 오승환이 보인 박장대소.
이날 선수들은 금일봉으로 갤럭시 탭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밀랍인형에 새롭게 추가된 '박장대소' 기능이 돋보인다.




삼성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짓고 한국시리즈 MVP수상후 선보인 오승환의 '춤추기'기능이다.
이날 부상으로 K5를 줬다고 한다.
저 기능을 장착한 창조자가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그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2. 08:30


















0.

특집이라고 제목을 다니 왠지 무한도전 같기도 하고 꽤 거창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만 사실 그냥 소개글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만화 리뷰 틈틈이 곤 사토시 감독의 대표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1.

 '퍼펙트 블루'는 '동경대부',''파프리카','천년여우'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곤 사토시今敏가 1998년에 발표한 첫 연출작입니다. 1963년에 태어난 곤 사토시 감독은 췌장암과 싸우다 2010년 8월 숨을 거두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작품 성향은 크게 다르지만, 일본 대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미야자키 감독의 뒤를 이을 인재로 주목받고 있던 그였기에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이가 많았다고 합니다.







곤 사토시 감독의 사진.
인터넷을 통해 그가 생전에 직접 쓴 투병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투병의 고통을 담담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은 그의 일기를 보면
이러한 위트와 재능이 훌륭한 작품으로 세상에 나올 기회를 잃은 것이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퍼펙트 블루'는 편안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남자분이든 여자분이든, 갖가지 형태로 여성의 신체를 소비하며 살고 있는 우리 모두라면 말이에요. 특히 여성분이라면 주인공 미마의 고통이 자신의 일처럼 생생히 느껴져서 영화를 보는내내 더 괴로우실 수 있습니다. 아이돌 가수에서 배우로 전업한 주인공이 겪는 원치 않은 고통과 울분..폭력.. 이런 것들이 시각화된 이 영화를 보고나면 우리 사회가 뜯어버린 비닐 포장지와 리본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장처럼 느껴지거나, 그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어쨌든 잔혹한 폭력 묘사때문에 데이트 영화로는 빵점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봐서도 안됩니다. 그냥 방에서 혼자 조용히 보세요. 공포감 증폭을 원하시면 불도 꺼놓고.







4. 

이야기는 여성 아이돌 그룹 '챰'의 공연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3인조 언더그라운드 아이돌(일본엔 아이돌도 이런 형태로 활동하나봐요)그룹인 '챰'에서 가장 인기 많은 멤버인 주인공 '미마'는 소속사의 결정으로 앞으로 아이돌 활동을 중단하고 배우로 데뷔하게 됩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대로 그룹 활동을 계속 하구요. 소속사의 명령도 있고, 배우를 꿈꾸어 시골에서 도쿄로 홀로 상경한 미마이기에, 그녀는 군말없이 그 결정을 따르기로 합니다.

배우로의 전업이 미마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만큼, 미마의 불안감은 물론이고 챰의 골수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됩니다. 하지만 배우 활동을 하는 것이 아이돌 활동보다 연예인으로서의 긴 수명을 보장받는 길이기 때문에 미마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역할부터 착실히 연기해갑니다.

추리 연속극 '더블 바운드'에서 범죄 피해자의 여동생 역할을 맡은 미마. 그런데 드라마 제작사 측은 미마의 소속사에 그녀가 성폭행 장면을 연기하길 바란다고 통보합니다. 게다가 소속사에서는 미마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높은 수위의 누드집을 발간하기로 하구요. 힘없는 신인 연기자일뿐인 미마는 촬영 관계자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억지로 이 두 가지 촬영을 소화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구요.
 
2인조 그룹으로 안정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나머지 멤버들을 보며 아이돌 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젖는 것도 잠시, 미마는 자신을 몰래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음을 감지합니다. '미마의 방'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마치 미마 자신인양 일기를 게재하고 있는 이름모를 이가 있음을 알아차린거죠. "아~ 오늘 촬영은 정말 하기 싫었어. 하지만 주변에 폐를 끼칠 순 없으니 할 수 없지" 홈페이지의 주인은 미마가 어떤 촬영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마치 머릿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생생하게 일기에 옮겨 놓았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있다는 공포감을 달랠 여유도 없이 이제 미마의 주변 사람이 하나하나 참혹하게 살해되기 시작합니다. 미마에게 싫은 일을 일방적으로 강요했던 소속사의 사장, 미마의 누드집에 실린 사진을 촬영한 (모델을 괴롭히며 촬영하기로 유명한) 유명 사진작가.. 그들이 수차례 흉기에 찔려 참혹하게 살해된 다음, 이제 미마 본인까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미마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이제 그녀의 생명을 위협하려는 그는 대체 누구일까요?












미마를 괴롭히는 건 그녀 자신이기도 합니다.









5. 

작품은 미마가 배우로 데뷔하고 나서 느꼈을 정체성의 혼란을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미마가 촬영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장면과 현실의 장면을 교차시켜 마치 미마의 인격이 여러갈래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수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송곳을 든 살인마의 모자가 벗겨지고 미마의 얼굴이 나타날 때에는 미마에게 자신도 모르는 다른 자아가 생겨 살인을 저지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으면 스토커가 미마인지 미마가 스토커인지.. 살인자인지 헛갈리게 되기 쉽지요. 영화 후반부의 반전을 보기 전까진 관객들은 미마가 새로운 생활에 따른 스트레스로 다중인격장애를 앓게 된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정말 그랬을수도 있죠. 어....? 하지만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음침한 생김새의 스토커는 이 영화의 트릭이 단순히 미마의 정신적 혼란으로 설명되지 않을 것이란 걸 관객들에게 넌지시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의 결말에 대해 쉽게 단정짓지 못하고 끝까지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지요. 마지막에 (스포일러 주의! 반전을 알고 싶은 분은 오른쪽을 드래그하세요.)미마의 매니저가 두 명의 스토커 중 한명이었다 라는 것이 명확해진 순간 관객들이 받은 충격은 상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도 입이 딱 벌어졌으니까요. 정체성의 혼란은 이 영화의 주된 주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러한 알쏭달쏭한 트릭은 이를 표현하기에 효과적인 것이 아니었나 합니다.  










   




무대에서 춤추는 미마를 보며 그녀를 자기 손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해보는 스토커.
이 사람은 항상 미마의 주변을 맴돌며 미마를 지켜봅니다. 









6.

이야기는 미마를 둘러싼 의문이 해소되고, 미마 역시 살인사건의 종결 이후 배우로서의 자신을 찾은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고 해서 그녀가 앞으로의 배우 생활에서 상품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에 혼란을 느끼고 갈등하는 일이 전혀 없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또 스포일러가!!)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인양 홈페이지를 꾸민 것이 그녀의 매니저였다는 것이 밝혀진 다음에 미마가 자기 자신을 '진짜'라고 간단하게 납득해 버리는 마무리는 좀 김새는 느낌이었어요. 그녀를 괴롭히는 이들이 사라졌다고 해도, 결국엔 미마 자신이 계속 그녀를 괴롭히게 되지 않을까요?








영화는 미마의 인격을 소재로 한참 관객들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다음
윙크와 함께 "난 진짜야"라며 거짓말 같이 일련의 충격들로부터 회복된 미마를 보여주며 막을 내립니다.
미마의 방황은 그걸로 정말 끝일까요? 




7.

곤 사토시는 이 영화에서 보여준 현실과 가상의 교차 시퀀스를 다른 작품에서도 선보입니다. 그 다음 연출작인 '천년여우'와 마지막 작품인 '파프리카'에서도 이러한 수법을 볼 수 있지요. 곤 감독은 주로 '다중적인 자아', '여러 가면을 쓰고 있는 현대인'과 같은 주제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천년여우'의 경우는 마찬가지로 여배우의 삶을 소재로 한 '퍼펙트 블루'보다 주인공 여배우가 보여주는 다양한 인격의 교차를 이야기 진행의 중요한 도구로 삼아요. (그래서 더 정신없습니다) 이러한 주제와 표현방식에 흥미를 느끼는 분이라면 곤 감독의 작품을 쭉 감상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대량소비사회의 여성의 성이 상품화 되는 풍조를 까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스스로 상품이 되길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현대인 모두의 운명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미마는 이야기내내 포장지로 예쁘게 꾸며진, '미마가 아닌 미마'를 팔면서 고통받으며,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이러한 인생을 사는 것은비단 그녀와 같은 여성 연예인들의 고통만은 아닐 거예요.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역시 남들이 그렇게 살길 원하는 인생을 살면서 평생을 '진정한 나'에 대한 의문으로 번민합니다. 이른바 '자기계발서'가 서점에서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 증후 중 하나라면 하나겠지요. 작품을 보고 나면, 미마가 '미마린'이라는 이름의 상품으로 소비된 것처럼 우리와 같은 현대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인격마저 상품으로 내놓아야 살아갈 수 있는 지경에 이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조직에 뼈를 묻을 수 있는 충성심을 갖춘 상품으로 꾸며진다고 하면 지나친 생각일까요.    







8.

다음에 소개할 곤 감독의 작품은 2001년에 발표된 '천년여우'입니다. 천년fox가 아니고 천년actress입니다ㅋㅋ 저는 '퍼펙트 블루'보다 이 작품을 더 좋아합니다. 왜냐면.....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2. 08:30

동물을먹는다는것에대하여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지은이 조너선 사프란 포어 (민음사, 2011년)
상세보기

별점평 : ★★★★★
한줄평 :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조나단 사프란 포어란 이름이 익숙한 분들 계시겠죠?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란 제목의, 9.11 사건을 다룬 그의 두 번째 소설이 큰 주목을 받는 동시에 영화화되며 조나단 사프란 포어 또한 화제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재작년에 지식채널e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 화제의 소설이랍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해드릴 책,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는 그의 첫번째 논픽션입니다.


채소들 사이에 있는 사진이 마음에 들어 구글링을 통해 그를 모시고 왔습니다. 생각보다 젊죠? 이런 책을 썼으니 당연히 베지테리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니예니예, 맞습니다! 흐흐흐.. 그동안 다양한 미디어에서 '육식'에 대해 많은 화두를 던졌습니다. 저도 제 코너를 통해 살짝씩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죠! 이효리 씨나 이하늬 씨처럼 채식주의자로 커밍아웃(?)을 하신 분들도 많아지는 추세고, 지상파 방송에서도 육식이 지니는 다양한 문제점, 그 안에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경제적 담론들을 폭로하는 다큐멘터리가 종종 방영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동물을 미친듯이 사랑한다기에는 모자란 사람입니다. 소가죽 구두도 신고 소가죽 가방도 들고 바삭바삭 꼬숩꼬숩 치킨이라면 사족을 못 씁니다. 환경을 미친듯이 사랑한다기에도 모자라고, 건강 염려증이 심하지만 고기를 끊는 것보다는 건강식품을 먹는 쪽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지식이 부족했습니다. 그 과정이 무척이나 폭력적이고 정치적이라는 것을 알고나자, 그 어떤 이유보다 강렬하게 반감이 들더군요.

저자는 아홉살때, 베이비시터를 통해 처음으로 채식주의를 접합니다. 물론 자신의 삶 속에서도 나름의 고민이 있었지만, 아이를 갖게 되면서 앞으로 아이가 먹을 음식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고 그 즈음에 이 책에 대한 집필의지를 다졌을 것 같습니다. (* 아래 사진은 '자이미의 베드스토리'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포어 씨는 광범위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동물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힘쓰는 운동가들부터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죠. 홍보문구인 '막대한 조사에 기반한 팩트'가 더없이 어울립니다. 한편 저자가 가장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은 바로 공장식 축산업입니다. 이는 저비용으로 고수익을 내기 위해 동물들을 식품재료로 사육하는 시스템을 뜻하죠. 동물들은 이 시스템 내에서 식재료 정도의 취급을 받으며 그 정도로 보관, 사육됩니다.

■ 동물을 먹기 전에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들 (미국 통계 기준)

* 우리가 먹는 동물의 99% 이상이 공장식 축산에서 나온다.
* 계란 생산용 닭은 이 책을 양쪽으로 펼쳤을 때 나오는 지면보다도 작은 공간에서 평생을 살고, 알을 낳지 못하는 산란계 수평아리 2억 5000여만 마리는 매해 산 채로 폐기된다.
* 트롤망 어업은 전체 어획물에서 2% 이하밖에 차지하지 않는 목표 어획물을 얻기 위해 100여 종의 다른 어종을 함께 죽인 후 바다에 버린다.
* 닭고기의 80% 이상이 캄필로박터균이나 살모넬라균에 감염된 채 판매된다.
* 해마다 인간에게 쓰는 항생제는 1300톤이지만, 가축에게 투여하는 항생제는 1만 1000톤이며 이 때문에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병원균이 늘어 간다.
* 농장 동물들은 초당 40톤의 배설물을 만들어 내는데, 이는 도시 하수보다 160배나 더 환경을 오염시키고, 우리의 건강을 위협한다.
* 농장 동물들은 자동차 등을 비롯한 운송 수단보다 약 40퍼센트나 더 많은 온실 가스를 배출한다.
* 육지의 3분의 1에 가까운 면적을 가축들이 차지한다.


그저 식육되기 위해 사육된 가축들에게 권리란 없습니다. '고효율'이란 명목 하에 좁디 좁게 구획된 한평 남짓한 공간에 갇힌 채, 고단백 사료와 항생제에 길들여져 갑니다. 소의 주 사료인 옥수수, 그것을 위해 밀림의 면적은 줄어들고 지구 반대편 사람들은 식량난에 허덕입니다. 항생제가 든 고기는 고스란히 그것을 먹은 인간의 몸 속으로 흡수됩니다. 그렇게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지요. 가장 문제인 것은 그들이 사육되는 방식이 너무나 폭력적이며, 거대자본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업'이라는 점입니다.


보통씨와 나탈리양까지, 많은 호평을 받았죠? 저자는 우리가 그토록 즐겨먹는 고기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식탁으로 왔는지 알게 되었을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지 묻습니다. 뭔가 죄책감을 느끼게 하며 채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하기에 쉽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아, 물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반려동물에 엄청난 비용을 지출하는 문화와 그런 동물들을 먹는 문화, 보호종과 식용종을 나누는 차별, 공장식 축산업을 옹호하는 입장까지 다양합니다.

사실 오늘도 저는 돼지목살김치찌개를 2끼나 먹었어요.. 네,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ㅋㅋㅋ 그래도 이번달부터는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싶어요. 육식을 딱 끊기는 힘들겠지만, 윤리적인 사육과 소비가 가능하도록 조금씩 노력해보려구요. 마음이 약해질때마다 요런 책들을 읽으며 참아볼까 합니다. 관심있으신 분들, 고민하시는 분들, 궁금하신 분들 모두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대로 가면 아쉬워서 'Eating Animals' 티져 영상? 짧은 인터뷰? 편집영상을 첨부합니다. 영어실력도 키우실 겸ㅋ 한번 봐주세요! 감사해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1. 08:30

안녕하세요. 글을 '배설'하기 좋아하는 스릉입니다. 어제 무지무지 일찍 잔 덕에 새벽부터 잠이 깼는데, 토끼고양이님의 휴재 공고(빨리 나으세요 ㅠㅠ)를 보고 히히 나도 한번 연애이야기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동이 트기 전부터 키보드를 두들기도 있습니다. (제가 스틸 전문입니다.) 연애라고 하기엔 너무 어리고 풋풋했던 시절의 짝사랑입니다만, 라디오 사연에 당첨된 적도 있는 재미난 이야기라 공유해보고 싶어요 :) 올해 봄쯤에 제 미니홈피에 올렸던 글이라 시점도 약간 안 맞고, 반말로 쓴 것은 양해 부탁드려요!










3월도 어느덧 말경으로 치닫고 있고, 선생님도 학생들도 모두 지쳐가고 있다. 학기 초의 쌩쌩한 기운들은 야간자율학습과 놀토 및 일요일 자습으로 날아가버린 듯 하다. 교사도, 학생도 행복하지 않게 하는 야간자율학습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것 역시 고민해볼 문제다.

 

이맘때쯤 되니 몇 교시에 교실에 들어가더라도 조는 아이가 서너명씩은 꼭 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즐겁게 수업하는 그레이트티처이길 원하는데, 그렇다고 안쓰럽게 조는 아이들을 혼내고 싶지는 않고, 이럴 때마다 나름대로 갖고 있는 이야기보따리를 풀고는 한다.

 

지난 주 수요일인가. 애들이 하도 피곤해하고, 재밌는 얘기를 해달라고 하길래 첫사랑 보따리를 풀었다.

 

중학교 시절, 틱 장애를 심하게 앓았던 나는 대인기피증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었다. 나를 혼내는 선생님들, 나를 놀리는 친구들이 싫어서, 거의 모든 시간마다 양호실에 가서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하고는 했다. 성적이 좋을 수가 없었다. 중학교 2학년 2학기 기말고사에서 영어 67점을 받았다. 당신네 아들이 총명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부모님께는 큰 충격이셨을 것이다. 학원을 가는 게 어떻냐고 말씀하셨다. 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두렵다고 했다. 어머니는 당신 친구분의 남편이 부원장으로 있는 학원에 가라고 했다. 잘 말씀해주시겠다고. 니가 두려워하는 그런 일들은 없게 해주겠다고.

 

그렇게 나는 등불학원에 첫 발을 디뎠다. 반편성 고사를 봤고, 운 좋게도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반에 들어갔다. 시내의 모든 중학교에서 30위권 안에 있는 애들만 모아놓은 반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나는 그반에서 최고 열등생이었던 셈이다. 설렘은 커녕 긴장과 주눅으로 가득한 무거운 마음으로 교실의 문을 열었다.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나는 H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예쁜 아이였다. 과장을 조금 섞자면, 자체적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그런데도 성격이 아주 쾌활하고 좋았다. 나는 지금도 장난끼 가득하고, 잘 웃고, 농담도 잘하는 말괄량이가 좋다. 당시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김현주를 닮았지만, 김현주보다 더 예뻤던 그녀는, 등불학원에서 만난 H는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용기도 없고, 당시 틱 때문에 엄청나게 위축되어 있었고, 내 기억으로도 아주 찌질했던 나와는 달리, 강릉이라는 좁은 도시에서 H는 하이틴 스타였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우리 때 가정용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유행했던 얼짱 카페의 4대 천왕, 이런 것처럼 H는 강릉에서 그런 존재였다. 이름 붙이고 말 만들기 좋아하는 아이들의 입에서, H하면 동명중학교에서 가장 예쁘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웃긴 말이지만, 난 그때 H와 신분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반년동안 말 한 번 걸지 못했다. 그냥 교실 구석 맨 뒤에 앉아, 저 앞에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얼굴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내가 여리여리한 것도 있었지만, 그땐 다들 그랬던 것 같다. 순수하고 맑았던 시절, 누굴 좋아해서 고백한다, 사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런 개념이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중3으로 진급했다. 강릉은 예나 지금이나 비평준화 지역이고, 우리 때는 고입선발고사 시험도 있었다. 좋은 점수를 받아야 고등학교를 골라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우등생들로 가득한 우리 반에서는 모두가 강릉고와 강릉여고에 진학하길 희망했고, 모두가 충분히 진학 가능한 성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중3이 되면서부터 학원에서 저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3시반에 하교하면, 5시부터 학원수업이 시작되고, 10시에 끝나는 시스템이었다. 다소 버겁긴 했지만, H를 보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던 것 같다. 오히려 학원에 더 오래 있고 싶었다. 그녀에게 말 한마디 못 붙이는 찐따였지만, 그래도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것 같다.

 

학원에서 야간수업을 하게 되니 저녁밥을 먹는 것도 골칫거리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 옆에 있는 한솥도시락에 가서 도시락을 사다 먹었다. 밥을 먹고 나면 야간수업을 받기 전까지 시간이 20분 정도 남곤 했는데, 이 시간 동안 여자아이들은 공기놀이를 하고 놀았다. 간혹 성격 좋고 쾌활한 남자아이들이 종종 끼고는 했는데, 나는 그런 성격도 아니었고, 공기놀이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다만 H와 함께 놀고 싶다는 생각만은 가득했다. 결국 집 앞 문구사에서 공기 몇 알을 샀고, 그날부터 피나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나는 엄청나게 다양한 공기기술들을 가지고 있다. 아마 남자 치고는, 대한민국 상위 0.1%안에 드는 실력일 거라 자부한다.

 

덕분에 나는 H와 말도 해보게 되고, 당시 유행했던 메일 주고 받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주 행복했다. 공부도 잘 되었다. 사는 맛이 났다. 성적도 쑥쑥 올라 중3때는 정규고사든, 고입모의고사든 간에, 열 번이 넘는 시험 중에 단 한 번도 전교 10등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그런 우리에게도 작별의 시간이 찾아왔다. 중3이 끝나가던 무렵, 학원에서는 반 편성을 새로 한다고 했다. 강릉고-강릉여고반, 명륜고-강일여고반, 경포고-문성고반, 등으로 반을 다시 짜겠다고 했다. 학원 담임선생님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어차피 우리반은 다 강릉고 강릉여고에 갈 애들이니 바뀔 일이 없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강릉고에 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당시 우리 아버지는 명륜고의 3학년 부장이셨고,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신입생 유치팀장이 되셨다. 각 중학교를 다니며 우수한 학생들을 데려오기 위해 애쓰시고 계시는데, 아들이 되어서 강릉고에 가겠다고 우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 전 강릉고 안 가요. 명륜고 갈거예요. 반에 있는 모든 친구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대체 왜? 우리 아버지가 명고 선생님이시거든요. 근데 제가 강릉고 갈 수는 없잖아요. 모두가 이내 끄덕이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슬펐다. 그때 H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어? 우리 아빠도 명고 선생님인데? 어????

 

나는 집에 오자마자 아빠를 붙잡고 물었다. 아빠, 우리 학원에 어떤 여자애가 있는데, 아빠가 명고 선생님이래. 이름이 H라는데.. 혹시 H씨 성을 가진 선생님 있어?

 

아빠는 껄껄 웃으셨다. 아니 H가 너랑 같은 학원에 다닌단 말야? 어? 아빠가 H를 어떻게 알아? 알다 뿐이냐. 너 기억 안 나? 어렸을 때 H네 가족이랑 속초 콘도에 놀러간 적도 있는데.. 승범이엄마, 거기 그 앨범 좀 가져와봐. 그거 알지?

 

엄마가 가져온 앨범에는 신기한 사진이 있었다. 85년 2월에 훼미리라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테이블 왼쪽에는 우리 부모님, 오른쪽에는 H부모님이 앉아 계셨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나와 H가 앉아 있었다.

 

우리 아버지와 H의 아버지는 같은 해에 학교에 부임했고, 나이도 동갑이었으며, 같은 해에 각각 아들과 딸을 낳았다. 장난 반 재미 반으로 정혼을 했던 셈이었다. 우리 나중에 사돈 맺자, 하면서 말이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반이 되었다. 어쩌다 한 번 그녀를 복도에서 만날 수는 있었지만, 예전처럼 매일 마주할 수는 없었다. 슬펐다. 우리 아버지가 명륜고에 있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그녀는 점점 더 예뻐지고 있었고,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비록 짝사랑이었지만, 이런 게 사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에서는 입학성적 상위 20명을 따로 빼내 동문 선배가 운영하는 학원에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등불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명륜고, H는 강릉여고. 나는 킴스학원, H는 등불학원. 우리는 만날 일이 없었다. 가끔 메일을 주고 받을 뿐이었다. 나는 다음소프트를 만든 이재웅 사장님께 무한한 감사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장님, 한메일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또 일 년이 지났다. 고2가 되었고, 이해찬 장관이 옷을 벗게 되면서 야자폭풍이 몰아쳤다. 전교생이 평일에는 밤 11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6시까지 자습을 했다. 학원에 갈 수 있는 시간은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오후 뿐이었다. 시내 학원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킴스학원도 망했다. 나는 킴스학원이 망하자마자, 등불학원에 찾아갔다. 그녀는 없었다. 등불학원도 이젠 황폐해져 있었다. 그래도 난 등불학원에 등록했다. 그녀가 없다고 해도, 그 건물에서, 그때의 선생님들에게 배우는 게 좋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등불학원은 강릉여고와 200미터 거리에 있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학원을 가기 위해 오후 자습을 조퇴하고 친구 세명과 함께 등불학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2001년 여름이었다. 강릉에도 편의점이 생기던 시절이었다. 강릉여고 건너편이자, 등불학원 옆에, 강릉에서 제일 큰 패밀리마트가 생겼다. 입 짧고 다이어트하기 좋아하는 여고생들은 주로 그곳에서 점심을 때웠다. 편의점답지 않게 테이블도 열 개나 있었던, 대형 패밀리마트였다. 그날도 패밀리마트 안에는 강릉여고의 학생들이 가득했다. 18세 열혈 남고딩들은 장난끼가 발동했다.

 

한 아이가 제안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지는 사람은, 저 안에 들어가서 생리대를 사오자고. 다들 미쳤다고 욕을 하면서도 어느 순간 뭘 낼지 고민하고 있었다. 내 친구들은 남자는 주먹, 이라고 생각하는 단순한 아이들이었다. 나는 호기롭게 보를 냈다. 나머지 세 친구는 가위를 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패밀리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40여명의 여고생이 있었고, 단 한 명의 남고생이 있었다. 왜 그렇게 생리대는 깊숙한 곳에 진열해놨는지, 사장님이 원망스러웠다.

 

위스퍼를 집어들었다. 나를 쳐다보고 있던 곳곳의 아이들로부터 괴성이 들렸다. 계산대까지 가는 10미터가 10리처럼 느껴졌다. 마침 계산대 직원마저 여자였다. 일년동안 받을 눈총과 야유를 다 받고, 이놈의 친구놈들을 죽여야겠다는 마음으로, 계산이 끝나마자자 후다닥 뛰어나갔다. 누군가와 부딪쳤다. 그 아이는 넘어지고, 나는 생리대를 떨어뜨렸다. 죄송합니다. 아 아파.. 어? 승범아?

 

H였다. 그녀는 내 얼굴과 위스퍼를 번갈아보았다. 그녀에게서 오던 메일이 끊겼다.

 

고3이 되었다. 그녀에 대한 기억도 흐릿해져갔다. 당장 내 앞에 서있는 입시라는 괴물과 싸우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포트리스도 끊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서강대에 입학했고, 서울로 떠났다. 수능을 잘 보지 못한 H는, 강릉대 유아교육과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도 아버지로부터 내 소식을 들었겠지. 서울로 떠나기 전에 한번 보고 싶었지만,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에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대학생이 되었다.

 

서울은 별천지였다. 하루하루 재밌고 신나는 일들로 가득했다. 나는 H를 까맣게 잊었다. 매일매일 즐겁게 사느라, 강릉을 떠올릴 일이 없었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그녀와 핸드폰 번호를 교환했지만 문자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일년이 훌쩍 지났고, 나는 선배가 되었다. 04학번들은 귀엽고 착했다. 학교 생활은 더욱 재미 있었다. 5월 대동제가 되었다. 당시 총학에서는 엄청난 이벤트를 기획했다. 학교에서 출발해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를 순회한 뒤 서강대교를 건너서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서강 자전거 대행진을 한다고 했다. 강원도 촌놈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마포경찰서의 협조를 얻어 그 혼잡한 여의도의 교통을 통제하면서까지, 우리는 자전거를 타며 서울을 누볐다.

 

해방감도 찰나, 새내기 한 명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천안에서 올라온, 그녀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아이였다. 대학교 생활이 얼마나 재밌었는지, 그 당시의 나는 그 그 후배의 이름을 보면서도 H를 떠올리지 못했다. 여튼 서울에 갓 올라온 새내기 한 명이, 여의도 한복판에서 사라진 셈이었다. 그 아이는 자전거가 익숙하지도 않았다. 급하게 핸드폰을 열었다. ㅎㅅㅎ를 검색하고 무작정 통화버튼을 눌렀다. 생각보다 금방 받았다.

 

어.. 안녕? 웬일이야?

웬일은 무슨..야! 어디야!

나? 강릉이지..

뭐? 강릉?

 

핸드폰을 다시 봤다. 그 후배가 아니라 H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후배를 찾는 문제가 더 시급했다. 겨우 연락이 닿았고, 학교로 무사히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H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문자를 보내 사과를 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시간은 날아가는듯 흘렀다. 나도 '연애'라는 걸 하게 되었다. 좋은 아이였다. H가 생각날 일은 더더욱 없었다. 군 휴학을 하고 강릉으로 내려가 26개월 동안 공익근무를 했지만, 그래서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었던 셈이지만, 그녀의 이름을 떠올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복학을 했고, 얼떨결에 졸업을 했다. 야구기자와 국어교사 사이에서 헤매다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한 채 노량진 고시원에 들어갔다. 힘들었다. 일년 간의 수험생활을 마치고, 춘천 성수고등학교에 오게 되었다. 출근하기 전날, 일년간의 수험생활을 회고하는 다이어리를 남겼다.

 

잊고 있었던 이름, H가 댓글을 달고 스티커를 붙였다.

 

자기도 졸업하고 3년이나 임용시험 공부를 했다고 했다. 그 마음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힘들었을텐데 고생 많았을 거라고 했다. 다음에 강릉 오면 꼭 연락하라고, 밥 한 번 같이 먹자고 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었다. 6월, 삼척에서 강원도 사립학교 체육대회가 열렸다. 체육대회를 마친 뒤, 선생님들은 버스를 타고 춘천으로 떠나셨고, 나는 그곳에서 만난 아버지 차를 타고 강릉으로 왔다. 그녀를 한 번쯤은 만나고 싶었다. H에게 연락했다. 일요일 낮에 만나기로 했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이 15살 때,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18살 때, 그녀를 떠올리지 않게 된 것이 20살 때, 나는 5년간 그녀를 짝사랑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녀와 마주 앉아, 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 27살이라니.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쇼핑도 했다.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 만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떨리고 설렜는데, 만나는 동안은 이상하게 무덤덤했다.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오랜 친구와 함께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고 그리워했던 그 친구가 맞나 싶었다.

 

오늘 재밌었어. 종종 연락할게. 강릉 오면 또 보자!

 

그렇게 10년 만의 만남은 끝이 났다. 나는 나대로, H는 H대로, 일상으로 돌아가 잘 살고 있다. 가끔 안부를 묻고, 시덥잖은 농담을 던지며, 그냥 딱 그 정도의 관계로 지내고 있다. 나는 그녀를 그리워하고, 좋아하면서도 만날 수 없는 그 시간들을 통해 그녀에 대한 환상과 이미지를 점점 더 키워왔던 것 같다. 한 어린 소년의 짝사랑, 첫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기억은 세월의 가공으로 추억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화된다.

 

지금 나는 괴롭고 힘이 든다. 잠도 잘 오지 않고, 식욕도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오늘도 웃으면서 떠올릴 수 있겠지.

 

 

끝.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