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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1.08.16 #5. 판단하면 사랑할 수 없다 9
  4. 2011.08.09 #4. 과거의 사랑 10
2011. 8. 30. 08:30




 20대 중반을 지나고 나면 사람을 만날 기회가 20대 초반에 비해 현저히 줄어드는 시기가 오는 것 같습니다. 직장이 생겨도 직장에서 연애를 한다는 것은 CC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고요. 게다가 거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자기 인생의 큰 진로를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헌신해야 하는 시기에 놓여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게 되는 거죠. 그러다보니 이 시기는 '소개'로 만나는 일이 가장 일반적인 만남이 되는 것 같습니다.

 '소개팅'을 부탁하거나 제의를 받거나 시켜주거나 하는 일들이 무척 빈번해지면서 가장 많이 묻게되는 질문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입니다. 20대 초반에 소개팅을 할 무렵 그런 질문을 던지면 그 때 돌아오는 대답들은 무척 막연한 내용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좋아'라는 식의 태도랄까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감히 말하건데 그건 어느 정도는 뭐가 뭔지 잘 몰랐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기의 취향도 모르고, 자기 자신도 모르고, 연애도 모르고, 관계도 모르고, 타인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무한한 가능성 같은 거지요.


 그렇지만 경험을 통해 얻는 '체'로 이런저런 것들을 거르고 나면 그 가능성은 훨씬 더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는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소개팅을 즐기는 분이 있으시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사실 한두번은 즐겁더라도 너무 여러번 소개팅이 매번 무산되면 소개팅 자체에 흥미를 잃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을 시도하지 않게 되는 셈이고, 새로운 만남을 시작할 '확률'은 그만큼 낮아지겠지요. 특히 누구를 만나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면 좀 덜하겠지만 개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런 효율은 필요성이 높습니다. 자신과 매치되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그만큼 낮아서 시도가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지요. 또한 '누구를 만나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결국 만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것 뿐이지 그 범위가 무한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과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소개팅을 주선할 때, 정말 연애를 하고 싶어서 소개팅을 원하는데도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냐"라고 묻는 대답에 잘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는 무척 답답합니다. 물론 직관적인 사람들의 "느낌이 좋은 사람"과 같은 대답이야 어쩔 수 없지만 주선하는 과정에서는 반영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건 최종 결정시 본인의 기준으로 쓰면 되기야 하겠지만 적어도 어떤 사람을 데려와야 느낌이 좋을지 정도는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는 겁니다.


(아아. 이걸 말하다보니 예전에 제가 진로상담을 받은 일이 생각나는군요. '어떤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무척 막연하고 형이상학적인 대답을 했던 저를 보는 상담사의 심정이 아마 그런 것이었겠어요... '그래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뭔데!'라고 묻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역시 인간이해에는 역지사지만한게 없네요.)


 물론 겨우 몇 번의 한정된 경험을 통해 형성된 스테레오 타입에는 분명 함정이 있을 겁니다. 그런 함정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체를 너무 절대적으로 고수하지 말고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나, 내가 좋아할만한 사람을 만나야 정말로 좋을 확률이 높은 것 또한 맞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연애는 좋아야 시작되는 것이구요.

 그렇지만 의외로 이것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결론입니다. 그 원인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어떤 사람이 "좋다"라는 동기에는 굉장히 다양한 측면의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연애에 대해 절실히 연구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이 복잡한 현상을 다 따라가기 힘들거나, 혹은 무엇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가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한 마디로 알려면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데, 그럴 여유가 없다는 거죠.

 그럴 때 우리는 전문가를 찾습니다.


 그래서 사회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왜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지, 다른 사람의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끼는지에 대해 '대인 매력(Interpersonal Attraction)'이라는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수십년의 연구 결과, 대인매력을 느끼게 하는 데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고 밝혀졌는데, 그 요인들 중 한두가지의 장점들은 누구나 갖고 있기 마련이랍니다.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요인이 다양하다는 것은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 있고 연애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1)


 그 대인 매력을 느끼게 하는 8가지 요인은 이런 것들이라는군요.


 1.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

 : 예쁜 여자, 착한 여자, 키 큰 남자, 다정한 남자 같은 요소를 말합니다. 당연히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는 상대에게 매력을 느낍니다.

 2. 상대가 평소 어떤 행동을 하는가
 : 나에게 호감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내가 호감이라고 느끼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호감이 가는 것을 말합니다.

 3. 나는 어떤 사람인가
: 자기의 성격이나 자존감, 자신감이야말로 연애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4. 나의 심리 상태와 행동 특성은 어떤가
 : 기분 좋을 때 만나는 사람은 호감이 갑니다. 또 생리적으로 흥분한 상태(무드가 있는 상태)이거나 도움을 받는 상태에서도 상대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5. 서로의 특성은 얼마나 비슷한가
 : 태도나 의견이 유사하거나 신체적 매력도가 비슷하면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가치관이 비슷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성격의 경우는 다르다고 하네요.

 6. 서로 얼마나 서로 교감을 나누는가
 : 연애 감정은 상호작용을 통해 깊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만남의 횟수나 빈도, 호감표현의 적극성,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는지 등이 연애감정이 깊어지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7. 연애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어떤가
 :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이성을 만나 연애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한데,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자란 사람은 일정 연령이 되어도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8. 어떤 장소나 분위기에서 만나는가
 : '여행지에서의 사랑'을 설명할 수 있는 요인입니다. 어떤 장소에서 만나는지에 따라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는 정도도 다르다고 합니다.
 
 
 이상의 8가지 요인은 '어떤 사람이 좋은지'에 대한 메타적인 틀을 제공할 수 있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각각의 틀에 따라 각자가 느끼는 매력의 요소는 또 다르고 다양하겠네요.
 '어떤 사람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틀을 고수할 필요는 없되, 현재까지의 경험과 판단으로 자신의 틀이 뭔지는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좋습니까?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reference
1) 이철우, 『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 북로드,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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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23. 08:30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 허수경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中 





 사람이 뭔가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면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양미숙씨가 그랬어요.(영화 <미스 홍당무>에서요)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 '진짜 이상한' 사람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미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뿐, 누구나 자기 행동에는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있을 거구요. 본인이 그 이유가 뭔지 알든 모르든 말입니다. 자기 행동에 이유가 있다는 말이 그러므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된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거기에도 바람직한 이유와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들이 존재하겠지만 그걸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요.

  요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행동에 대한 이유를 가지고 있고, 적어도 그 당시 그 사람의 판단 하에서는, 그렇게 행동할 만한 이유가 있는 행동을 한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자기의 이유와 판단에 따라 한 행동이 생각이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의외로 사람들은 서로 교류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개와 고양이의 제스쳐가 서로 다르듯이 거기서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상대에 대한 기대도 다들 제각각이기 때문이겠지요. 어쨌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는데 그것을 의도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게 왜 그랬는가'라는 질문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가'라는 원망의 의미라면 
 원망스러운 심정이야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책임소재를 묻는 대상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래야 했으니까'라는 대답이 남지 않을까요. (그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한 것이라면 대답이 좀 달라져야겠지만요. 저는 진심으로 그런 걸 궁금해 하는 사람인데, 저 같은 사람을 잘 못봤거든요.)

 앞서 말했듯, 자기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해서 그 행동이 다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혹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또한 상처가 될지 전혀 몰랐다 하더라도, 상처를 준 것은 응당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렇지만 그것이 응당 미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제 생각일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다만 제가 하고픈 말은 온전히 의도된 상처는 없다는 것입니다. 

 혹 관계에서 상처를 받으셨다면, 
 상대가 결코 '나에게 상처를 주려고'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적의의 대상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오는 '2차 피해'적인 상처에서는 벗어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 그게 여러분에게 상처가 될 줄 알았다면, 혹은 상처가 되지 않을 다른 행동이 뭔지 알았다면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또 한편으로, 의도하지 않아도 상처줄 수 있다는 사실은 의도보다 더 조심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상처주는 사람이 된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의도되지 않아도 상처는 아프지요. 그런 점에서 행동의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저 개인적으로는 사람을 좀 더 잘 알아서, 좀 더 인간으로서 역량을 키워서, 타인을 상처주지 않을 수 있는 행동을 한다면, 그것이 어떤 행동을 더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일 것 같습니다.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을 수 있는 더 큰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상처받아도 결국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구요.


 갈길이 멀겠네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16. 10:25

 

 지난 주 저는 친구와 친구의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그런 종류의 자리였는데, 보통 어색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 되지만,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친구의 남자친구 덕분에 모처럼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과적으로 ‘좋은 사람’ 같다는 평가를 받은 친구의 남자친구는 장난기가 무척 많은 사람 같았습니다. 게다가 미리 친구에게 들은 바대로 ‘흠을 잡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인 것 같더군요.

 

  그 분이 끊임없이 장난을 치는 내용은 제 친구의 행동이나 말에 대해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라는 태클들이었습니다. 그런 장난을 제 친구가 기분나빠하지 않았고, 또 거기서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분의 말이 나쁘게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그 일련의 내용들은 무척 익숙하면서도 불편한 느낌을 주는 패턴이기는 했습니다.

 

  다시 말해 싸움이 일어나는 전형적인 패턴이었다는 뜻입니다.

 

  “싸움”이 일어나는 전형적인 상황 중 하나는 각자가 각자의 입장을 가지고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내가 “옳은데” 상대방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이런 패턴은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상대방을 판단한다는 점입니다. 평가한다고 해야 할까요.

 

  자유주의 혹은 개인주의가 굉장히 보편화되어 있어서 그런지 이미 미국에서는 그런 상황을 뜻하는 전형적인 표현이 자주 쓰이기도 하지요. 바로 Don't judge me.의 상황입니다. 그리고 대개 그 다음의 반응은 말문이 막히거나 I didn't judge you!라는 반박이 이어지지요. 아마 누군가를 judge한다는 말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의미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는 서구만큼 오래지 않은 '자유' 혹은 '개인주의'의 역사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의 가치관이나 호불호나 행동에 대해서도 옳고 그른 것을 따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꼭 국적에 국한된 문제라기 보다는 문화적인 경향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지요. 그러다보니 무의식중에 '무엇도' 옳고 그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도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다’는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이거보세요. 벗어날 수가 없군요.) 혹은 그것을 따질 수 있는 문제인지를 떠나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조금 위험한 데가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불필요하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칫하면 편가르기를 하는 것에 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옳고 그름이 존재한다고 전제할 때, 내 의견이 옳은 것이라고 믿어버리게 되면 상대방의 의견은 그른 것 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겁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가리려 생각할 때는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흑백논리는 버려야 하는 거지요. 잘잘못에서 누가 ‘더’를 따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승패 두 가지의 흑백논리로 가를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요. '반드시 둘 다 잘못이 있다’고만 생각하면 그게 가장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각자 자기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는 게 맞겠지요. 그리고 사실 싸움이 일어났는데 어느 한 사람이 온전히 옳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므로 그게 가장 사실에 가까운 진술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사랑하는 마음'에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옳기 때문에’ 내 말을 들어 달라는 것은 사실 사랑하는 사이에서 통용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옳고 그름’의 감정이 아니니까요. 우리는 우리가 이런저런 속상한 일들을 털어놓으면 ‘그 사람이 진짜 잘못했네’, ‘연인이라면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라며 맞장구를 쳐주는 친구들에게 위로를 얻습니다. 하지만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의 마음은 고맙게 받되,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에서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생각이겠지요.

 

  다시 말하면, 연인 사이에 원하는 게 맞지 않아 싸운 경우, 내가 옳기 때문에 어떤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는 단지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를 바랄 수 있을 뿐이고, 상대가 요구하는 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단지 상대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들어줄 수 있는 것뿐이라는 거지요.

 

  이 말은 우리가 상대에게 무언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요구를 내 힘이 닿는 한 들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때문이죠. 그게 옳기 때문은 아닙니다.

 

어떤 차이가 있냐구요?

‘옳기 때문’은 마땅히 해야 할 것이므로, 하지 않았을 때 물을 책임과 의무만이 남지만

‘사랑하기 때문’은 어떤 순간에도 내가 받아서 고마운 것이므로, 더 많은 다음 단계를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리고 '옳은 것'에 대해서는 이행하지 않았을 때 비난할 수 있지만,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할 수 있을까요? 슬프지만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의무라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슬프게 만들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슬프게 만들지 않으려면 사랑을 표현하고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는 것 뿐입니다. 
 슬프게 만들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사람들은 종종, 그러지 않으려면 표현해야한다는 걸 잊을 뿐이구요.
 그러니 비난보다는 다만 그걸 일깨워 주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래서, 사랑의 감정에 자꾸만 이유와 당위를 붙이려는 것이 아닐까요? 원하는 대로 받지 못한 사랑은 어디에도 물을 길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만큼 상처가 되고 두려운 일도 없겠지요. 그래서 마치 그것이 의무인 것처럼 상대방을 몰아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겠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바람을 피우고 뭐 이런 도덕의 범위를 벗어나는 건 말구요)' 말과 행동을 하는 연인을 가진 여러분. 이해는 사랑을 돕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몰라도' 사랑하니까 해 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걸 해 주지 않았다고 당신을 비난하는 연인을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아주세요. 원하는 대로 받지 못한 사랑이 꽤나 아프고 두려웠던 걸 지도 모르지요.)
 


  결국 사랑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요?

  아마 그래서 마더 테레사 수녀님도 “판단하면 사랑할 수 없다.”고 하시지 않았을까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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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9. 08:30
 

 늦은 밤, 한동안 듣지 않았던 노래를 찾아 다시 들어보는 일이 다들 있으실 겁니다. 그러다 문득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를 만나기도 하고요. 노래는 무언가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힘이 있지만, 몇몇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 보통 그것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대상에 해당되곤 합니다. 그러니까, 노래는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는데요, 지금 음악을 듣다가 바로 그런 노래를 만났습니다.

 

 저에게는 그런 음악이 몇 개 있습니다. 제가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에 더 많이 연상되는 것일 수도 있고요. 리처드 막스의 now and forever라든지 카니발의 취중진담이라든지 영화 nineost 중에서 니콜키드만이 부른 unusual way라든지 하는 것들이 그런 노래들입니다. 그 노래들을 들을 때면 과거 사랑의 시간 중에 가장 아름다운 부분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머릿속에 떠오르곤 합니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보석같이 아름다운 추억들이죠.

 

 어머 왠 자랑질이죠?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요. 누구나 그런 추억 하나쯤은 있잖아요. 그런 거 없으면 연애한 거 아니잖아요.... 미안해요. 사과할께요.

 

 아무튼 과거의 연인이라고 하면, 보통 연인 사이에서 질투의 대상이 되는 단골 소재지만 저는 사랑했던 사람과 사랑할 사람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면, 과거의 사랑을 모두 지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은 분명 행복한 기억이고 그런 자존감은 우리가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리고 헤어진 후에는 각자가 소유한 추억이니까요. 물론 지금 연인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이 살짝 질투 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 질투는 그 과거가 현재를 위협할까봐 생기는 일시적인 두려움일 뿐 과거와 현재가 완전히 분리되었다는 걸 믿을 수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믿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남자든 여자든 과거의 일에 질투하는 연인에게 왜 다 지나간 일 가지고 그래? 라고 몰아붙이지 말아요 _)

 

 사실 과거의 연인들은 지금 그 사람을 있게 해준, 어떤 부분에서는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 덕분에 지금 이 사람이 있는 거고, 이 사람이 과거의 연인들 때문에 성장했다면 저는 그 수혜자일테니까요. 제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저 역시 저의 과거의 연인들에 대한 마음을 과거로 한정해 추억하는 것에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제가 확실히 과거의 마음을 현재로 가져오지 않고 있다고 확신할 때 말입니다. (그런데 보통 남자들은 과거 연인을 현재에 만났을 때 잘 단절을 못한다는 데 사실인가요? 남자의 마음은 방이 여러 개라서 우선순위가 있을 뿐 지나간 연인들도 모두 마음에 담고 있다는 얘기 말이에요.) 물론 연인이 싫어한다면 굳이 티를 낼 필요는 없죠.

 

 연애가 끝나면 모든 시간이 없어진 것처럼 reset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그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사실 이별을 빨리 극복하려면 필요한 일이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그게 더 맞는 사람도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난 연애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을 그 당시 눈앞에서 치우되, 다 버리거나 지우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연인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도 그 사람의 일부니까요. 그러고 보면 연애란, 사람이 얼마나 여러 가지 부분으로 구성된 존재이며 내가 사랑해야 하는 것은 그 중 일부가 아니라 그 전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한 단계 레벨 업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훗날 아이들 앞에서 서로 과거의 로맨틱한 에피소드를 꿰고 있는 남편과 저를 상상하곤 합니다. 장난스럽게 서로의 로맨스를 들추다가 당신 꽤나 대단했네.’라면서 그런 나를 차지한 게 바로 당신이지라고 닭살 돋는 상황을 연출하면 아이들이 어우 엄마아빠 그만 좀 해라고 짜증내는 (나랑 남편만?) 행복한 그림이에요.

 

 상상은 자유니까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과거의 사랑을 모두 지우는 게 좋으십니까, 아니면 남겨두는 게 좋으십니까.

 연인이 그런다면 싫을까요?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을 단절시켜서 간직하는 것은 어느 정도로 가능할까요?

 

 언젠가 손자손녀에게 자랑할 보석 같은 추억 하나씩, 간직하고 계실테죠. 그 내용을 여기서 물을 수는 없지만, 감히 무척 궁금합니다. ㅎㅎ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추억들이 많이 생기시기를 기원합니다.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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